*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PACE PROJECT에서 발매된 <전학생>입니다.
나름 유명했던 게임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게임은 'DOS시절의 전설적인 개쓰레기똥겜'입니다.
저는 전학생의 이런 악명을 알고난 후에 이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입니다.
보통 이 정도의 악평을 듣는 게임을 플레이하면,
생각보다 욕할 점이 많지 않다든가 의외로 괜찮은 부분도 보이거나 할 때도 있습니다.
왜냐면,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플레이하니까요.
기대가 없는데 어찌 실망이 있겠습니까?
전학생에 대한 제 평가도 아마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로 결론이 날 확률이 높았죠.
옛날에 플레이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 코우다 마리코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전학생입니다.
새로운 학교에서의 일상을 진행해 나가면서 로스트 버진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엔딩도 있고,
불행한 일을 당하여 게임 오버식의 배드엔딩도 있으며,
그냥 아무 일없이 1년을 진행하는 엔딩도 있습니다.
게임은 멀티 윈도우에 명령 선택식으로 진행됩니다.
'학교에 간다', '전철을 탄다' 등을 선택해서 주인공을 조작해서
여고생의 하루를 체험하는 방식이죠.
대부분의 경우는, 딱히 선택지가 없고 클릭할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의미하고 단순한 클릭일뿐이죠.
이런 클릭이 게임 시간 하루에 몇 번 나오느냐?
일반적으로 특별한 이벤트 선택지 몇 개를 제외하면
하루에 나오는 클릭할 것들은 대충 이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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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난다
학교갈 준비를 한다
집을 나간다
전철역으로 향한다
역에 들어간다
전철에 타지 않는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에 타지 않는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에 탄다
전철에서 내린다
역에서 나온다
학교로 향한다
수업준비를 한다
수업에 집중
쉬는시간 종료
수업에 집중
쉬는시간 종료
수업에 집중
오늘 수업 종료
혼자서 돌아간다
전철역으로 향한다
역에 들어간다
전철에 타지 않는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에 탄다
전철에서 내린다
역에서 나온다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간다
갈아입고 식사
무엇을 할까?
공부를 한다
공부끝
휴식을 한다
휴식 끝
공부를 한다
공부 끝
휴식을 한다
휴식끝
목욕탕에 들어간다
목욕을 끝낸다
이제 잔다
안녕히 주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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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노란 글씨만 선택지입니다.
나머지는 선택지도 없이 그냥 클릭만 하는 거에요.
뭐가 이렇게 많죠?
게다가 대부분이, 아니 거의 100프로가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쓸데없이 세세하잖아요.
고작 등교를 하는데
'학교갈 준비를 한다.', '집을 나간다.', '전철역으로 향한다.'
'역에 들어간다.', '전철을 탄다.', '전철에서 내린다.'
'역에서 나온다.', '학교로 향한다.'를 다 클릭해야 됩니다.
학교 가는데 만나는 사람도 없고 아무런 이벤트도 없는데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다고요.
게다가 똑같은 식으로 하교까지 해야 됩니다.
거기에 보시다시피 저것만 있는게 아니에요.
'전철에 타지 않는다'와 '전철을 기다린다'도 있어요.
전철이 왔는데 전철이 혼잡하다면 주인공이 그냥 안 탑니다.
플레이어가 선택할 여지도 없이요.
이런 클릭을 대체 왜 해야되는 걸까요?
게임 제작자한테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학교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업 준비를 한다.' 후에 '수업에 집중'과 '쉬는 시간 종료'가 세 번정도 반복되죠.
대체 수업시간 동안, 또 쉬는 시간동안 이벤트가 별로 없는데
왜 이걸 세 번이나 반복하는 거죠?
의미가 전혀 없잖아요.
선택지가 있는 것도 마찬가입니다.
'공부를 한다'같은 경우는 '공부를 한다'와 '공부를 안한다'가 있습니다.
공부를 안한다를 선택하면 '휴식을 한다'와 '휴식을 안한다'가 나옵니다.
휴식을 안한다를 선택하면 '산책을 한다'와 '산책을 안한다'가 나옵니다.
산책을 안한다를 선택하면 '공부를 한다'와 '공부를 안한다'가 나옵니다.
공부를 안한다를 선택하면 '휴식을 한다'와 '휴식을 안한다'가 나옵니다.
...
네, 무한 반복입니다.
'공부', '휴식', '산책' 중 뭐 하나는 해야하는 겁니다.
하나도 안 하면 게임이 진도가 안 나갑니다.
'이제 잔다'의 선택지같은 경우는 선택하면 하루가 끝납니다.
'아직 안 잔다'를 선택하면 '공부를 한다'와 '공부를 안한다'가 나옵니다.
공부를 안한다를 선택하면 '휴식을 한다'와 '휴식을 안한다'가 나옵니다.
휴식을 안한다를 선택하면 '이제 잔다'와 '아직 안 잔다'가 나옵니다.
또, 무한 반복입니다.
이 게임은 육성 시뮬레이션이 아닙니다.
주인공에게 능력치같은 게 없어요.
'공부'를 하든, '휴식'을 하든, '산책'을 하든 향후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럼 이 선택지를 왜 만든 걸까요?
저한테 묻지 마세요. 저도 모릅니다.
사실 처음에 할 때는 의미 없어 보이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조금 선택지가 늘어나기는 합니다.
'수업에 집중' 같은 경우는 나중에 수업에 집중을 못해서 선택지가 생기는데
수업 중에 오나X를 할 수 있게 되는 식으로 선택지가 늘어나죠.
현실에서도 학기 초에서는 수업에 집중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업에 집중 못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마저도 그게 끝입니다. 선택지가 많이 안 늘어나요.
그리고 조금 늘어난 선택지가 무한히 반복됩니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심각할 정도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학생이나 회사원의 평범한 일상도 저것보다는 더 다양한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건, 게임상에서의 단 하루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이 짓을 최장 1년을 반복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저도 농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겨운 짓을 1년을 반복해야 한다고요.
비슷한 게임으로 리뷰한 것중 칵테일소프트의 <커스텀메이트3>가 있었죠.
그 게임은 신혼인 회사원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했고 재미있었지만,
그걸 1년이나 반복해야 하다보니 게임이 지루해지는 케이스입니다.
근데 이 게임은요?
하루가 이미 지겨운데, 그 하루를 1년동안 반복해야 하는 겁니다.
<커스텀메이트3>에서는 그나마 날짜를 자동으로 넘길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게임에도 자동 기능이 존재합니다.
저속 시한진행, 중속 시한진행, 고속 시한진행의 옵션이 있군요.
지금의 오토와 비슷한 기능입니다.
선택지에서 주인공이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면서 천천히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플레이어는 그냥 모니터만 하염없이 쳐다보면 됩니다.
계속 반복되는 똑같은 장면만 쳐다보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서
떨어지는 낙엽이나 흐르는 냇물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도 재봤습니다.
고속 시한진행으로 하루를 보내는데 4분 10초가 걸렸죠.
이 4분 10초의 하루를 1년동안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정말 무쓸모한 자동진행입니다.
1년을 진행하지 않는 방법은 결국 빠른 로스트 버진뿐입니다.
배드엔딩이고 뭐고 빨리 무슨 엔딩이라도 봐서 이 게임을 멈추는 것이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이런 탈출조차도 쉽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어떤 조건 하에서 일어나는지도 잘 모르겠고
자주 일어나지도 않아요.
이 지독한 일상을 계속 보내다 보면, 어쩌다 한 번 이벤트가 일어나는 겁니다.
게임 전체의 이벤트 숫자가 적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이벤트를 보기 위해서는 불필요하면서도 지루한 일상을
수도없이 반복해야 하죠.
게다가 이 게임은 전체적으로 크게 세 가지 분기로 나뉘어집니다.
학생회에 들어가거나, 신체조부에 들어가거나,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않거나입니다.
모든 이벤트, 모든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세이브, 로드를 계속 사용하면서 이 엔딩, 저 엔딩을 보더라도
최소 세 번은 플레이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지루한 게임을 세 번이나 플레이해야 한다고요.
하루가 1년같고, 1년이 10년 같은데 세 번이나 플레이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게다가, 심지어 이 게임은 버그가 많기로 악명 높은 게임입니다.
무슨 버그가 많냐고요?
주로 게임진행이 잘 안 되고 똑같은 이벤트가 계속 반복되는 버그입니다.
안 그래도 똑같은 짓을 끊임없이 반복하느라고 짜증나는 게임인데
버그까지도 계속 같은 짓을 반복하도록 시킨다고요.
이 무슨 정신고문 게임입니까?
이렇게까지 지루하고, 귀찮고, 무의미한 고생을 시키는 게임은 본 적도 없습니다.
클릭하면서 하면 클릭하는 고생이 아깝고, 자동진행하면 시간이 아까운 게임입니다.
스토리를 감상한다는 건 어림도 없고, 선택지 게임으로서 즐기는 것도 불가능하며,
CG구경만 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임입니다.
똥겜, 쓰레기겜이라는 칭호조차 과분합니다. 겜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조차 아까워요.
이런 건 똥, 쓰레기라고 불려야 합니다.
진정하고 총평하자면, 이 시기는 게임에 대한 표준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이야 틀에 박힌 에로게밖에 안 나오지만
이 시대에는 틀이 없었고 많은 시도를 하는 시기였죠.
이 게임도 무슨 시도를 하고 싶었던 건지 보일듯 말듯하기는 합니다.
아마 여고생의 평범한 일상을 체험시켜주고,
그 중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어떻게 버무려 나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생각은 있었겠죠.
참신함은 있어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참신함은 그 시절에는 환영받지 못했고,
지금도 환영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먼 미래에도 아마 마찬가지겠죠.
남녀노소 그 누구도 재미있게 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생애가 너무나도 스펙타클한 나머지
대체 지루함이란 뭘까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