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31일 일요일

리뷰 : 지오 슬레이브 ~가련한 노예들의 초상~(1996/11/15,소시에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6년도에 소시에르에서 발매한 <지오 슬레이브 ~가련한 노예들의 초상~>입니다.
당대 유행했던 육성 시뮬레이션 장르의 게임으로 
노예를 육성한다는 소재와 지오 슬레이브라는 제목은 조교 시뮬레이션은 연상시키지만
H한 조교가 아닌 격투 방향의 육성을 소재로한 게임이죠.


내막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이 사는 도시에서는 '슬레이브 택틱스'라는 이름의
노예가 투기장에서 결투하는 대회가 정기적으로 개최됩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이 대회의 지배인이죠.

주인공은 아버지를 설득하여 슬레이브 택틱스를 폐지하려고 하였으나
번번이 무시당할 뿐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주인공은 아버지의 슬하에서 나와서 자신만의 노예를 육성합니다.
슬레이브 택틱스에서 승리하여 자신의 실력을 보임으로써
슬레이브 택틱스를 폐지하려는 계획이죠.


'노예 격투 대회 폐지를 위해서 노예 격투를 한다'는
실로 모순적인 행위를 일삼는 주인공이지만
주인공 스스로도 자신이 하는 일의 딜레마를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 주인공의 고뇌도 이 게임의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주인공의 첫번째 노예인 피나입니다.
본래 날개가 있는 종족이었으나 도주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노예 사냥꾼들이 잔인하게도 날개를 잘라 버렸습니다.



날개를 잘려 그냥 가련한 소녀가 된 피나입니다.
이런 가련한 노예를 격투 대회에 내보내서
어떠한 성과를 낼 수 있을지 의문이 듭니다.



육성 시작 5일째가 되는 날,
주인공의 아버지가 보낸 라이벌 게일, 그리고 그의 전투노예와 승부하게 됩니다.
상식적으로 피나를 고작 4일 육성해서 저런 근육질의 남자를 무슨 수로 이기겠습니까?



하지만 이 게임의 난이도는 의외로 높지 않은 편인데
비결은 바로 '웨이트 리프트'와 '체력 보충제'입니다.

'웨이트 리프트'는 훈련의 한 커맨드인데
전투에 필요한 'HP', '공격력', 거기에 훈련에 필요한 '체력'이 모두 올라가는
효율이 너무나도 좋은 커맨드입니다.
'체력보충제'는 가격이 500골드밖에 안 하는데
체력을 언제나 풀로 채워주는 아이템이죠.

계속 약 먹이면서 웨이트만 계속 시키면 무적의 노예를 탄생시킬 수 있습니다.
마치 로이더 시뮬레이션 같네요.



두 번째로 상대하게 되는 적의 이름은 다리아입니다. 
역시 피나에 비해 강력해 보이는 비주얼입니다만
그다지 어렵지 않게 이길 수 있습니다.
승리한 후에는 게일이 다리아에게 화풀이하는 장면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다리아를 도와줌으로써 다리아도 주인공의 노예로 할 수 있습니다.

다리아를 도와주는 모습을 보며
노예들을 위하는 주인공의 숭고한 뜻은 잘 알 수 있었습니다만
그런 숭고한 목적이 있다면 노예들 옷이나 제대로 입혀줬으면 좋겠네요.
노예들이 다 드러난 복장으로 쇠사슬로 묶여 있으니
훈련 장면을 블로그에 올릴 수가 없습니다.


아무튼 이제 주인공에겐 연약해 보이는 피나만 있는 게 아니라
강력한 여전사로 보이는 다리아가 가세했습니다.
이제 게일이 무슨 노예를 데리고 덤벼오든 간에 겁먹을 필요가 없죠.
다음 시합에서는 웨이트 리프트를 만땅으로 한 다리아로 승부를 보겠습니다.



...선 넘네요.
아니, 이 대회에는 심판도 없나요?
저건 누가 봐도 인간이 아닌데 참가시켜도 되는 걸까요?


아무튼 대충 이런 식으로 전개되는 게임입니다.
노예를 육성하며 열흘마다 대결이 있는 방식인 거죠.



훈련 파트를 한 번 살펴 봅시다.
'대화', '훈련', '노동', '휴식', '아무 것도 안 한다'가 있습니다.
왜 대화와 휴식, 아무것도 안 한다가 따로 있는지 모르겠군요.
심지어 '휴식'이 아니라, 대화나 아무 것도 안 한다를 고르면 
훈련을 안 했는데도 체력이 회복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말씀드렸다시피, 체력보충제의 효과가 너무 좋아서
휴식 안 하고 약이나 빠는 게 더 이득이죠.

훈련은 '런닝', '스텝업', '검술교련' 같은 게 있는데
이번에도 '웨이트 리프트' 효과가 너무 좋기 때문에 다른 게 필요가 없습니다.
엔딩 조건 때문에 다른 것도 약간 해줄 필요는 있습니다만
거의 필요가 없는 수준이죠.

노동은 '주점', '현장', '시장' 등에서 일을 해서 돈을 벌어올 수 있는데
노동할 시간에 약으로 몸을 만들어서 대회에서 상금을 타오는 게 더 이득입니다.
노동도 굳이 할 필요가 없어요.


이런 식으로 난이도가 쉽고 다양한 커맨드를 모두 사용할 필요가 없다 보니,
육성 파트가 약간 지루한 편입니다.

육성을 어느 정도 수준까지만 맞춰주면 충분히 엔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특별히 많이 육성할 필요가 없어요.
게다가 엔딩 조건은 육성보다는
육성과는 전혀 별개인 대화 횟수에 더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차라리 이 게임이 조교 시뮬레이션이었다면
조교 수준에 따른 캐릭터들의 태도 변화를 확연하게 보여줄 수 있었겠죠.
그러나 이 게임에서는 진행수준에 따른 캐릭터들의 태도 변화를 크게 느낄 수도 없습니다.

이 게임은 육성에 따른 캐릭터들의 태도 변화보다는
노예들의 안타까운 과거에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주인공과의 이벤트는 대부분 H씬과 관련되어 있어
제 취향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이 게임이 노예 제도의 폐지를 목적으로 하는 게임답게
노예들이 마음을 열어가는 과정을 묘사할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 했던 거죠.



최후의 희망은 육성에 대한 중간평가입니다.
그러나 중간평가가 되는 슬레이브 택틱스조차도 난이도가 너무 쉽고,
노예는 4명을 육성하는데 출전할 수 있는 캐릭터는 단 한 명입니다.
게임 진행 중에 눈에 띄는 육성 결과가 안 보여요.



라이벌의 포스가 약한 점도 아쉽습니다.
강력하고 재수없는 라이벌이 있어야 그 라이벌에게 본때를 보여줘야겠다는 
의욕이 생길 텐데 그런 의욕이 잘 안 생겨요.

라이벌인 게일은 외관에 비해 생각보다는 재수없는 성격이 아니기도 하지만
주인공만 계속 승리해 버리니 게일의 캐릭터가 로켓단스러워 집니다.
7연승, 8연승한 적에게 어떻게 포스를 느끼겠습니까?

초반부 이외에는 주인공이 패배해도 게임오버는 아닌 것 같지만
난이도가 너무 쉽다보니 일부러 패배하지 않는 이상
패배할 일이 없었죠.


이 게임의 소재는 좋았고, 전반적인 디자인 또한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세세한 점에서 지루함을 없애는 데는 실패했습니다.
100일이나 되는 기간동안 4명의 노예를 육성하는데
한 60일동안이 지루했던 것 같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난이도가 약했다는 점이었던 것 같아요.
난이도가 적당히 어렵고,
4명의 노예를 각각 육성하고 활용할 때 전술, 전략 등을 수립할 수 있었다면
더 좋은 게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총평하자면, 당대의 육성 시뮬레이션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던 단점인
지루함을 극복하지는 못한 게임입니다.
특히 이 게임은 지루함을 덜어줄 수 있는 요소가 눈에 확연히 보임에도
그런 요소들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조금 더 잘 만들 수 있었을 것 같은데 그렇게 되지 않아 아쉽습니다.

전반적인 설정과 캐릭터는 꽤 괜찮았습니다.
단점을 해결하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게임이라도 짧았다면
더 재미있게 즐길 수 있었을 거라고 생각되네요.

2021년 1월 25일 월요일

리뷰 : 복수(1997/5/23,CROWD)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복수>는 1997년도에 CROWD에서 발매된 선택지형 멀티엔딩 게임입니다.
2001년도에 리메이크 되기도 했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던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중학 시절 여학생들에게 이지메를 당하고 있었고,
그로 인해 고교 진학 거부까지 생각하고 있었으나
결국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학교로 진학을 하게 됩니다.

해당 학교는 여학교에서 공학으로 전환된지 얼마 되지 않아 남학생들이 적었으나,
주인공의 취미인 컴퓨터 동아리를 적극적으로 밀어주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다른 부원없이 홀로 컴퓨터부 활동을 하며,
친구는 없지만 괴롭힘도 없는 무난한 고교 시절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어느날, 복도에서 불량 그룹과 마주치게 됩니다.
엮이기 싫어서 조용히 지나갔더니
그 날부터 4인조에게 괴롭힘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 되도 않는 트집으로 말 걸었으면 말 걸었다고 괴롭혔겠죠.



왼쪽부터 부잣집 아가씨 리라, 두뇌파인 야요이, 파워담당인 호시코,
리더인 슌입니다.
RPG 파티처럼 역할이 딱딱 구별되어 있습니다.



리더인 슌은 칼까지 들고 협박합니다. 괴롭힘도 가벼운 장난 수준이 아니죠.
호시코는 주인공보다 힘이 세고, 야요이는 흉계를 꾸미고,
리라는 부자라서 빽도 있다 보니 다들 만만치 않은 상대입니다.
저항을 하려다가 역으로 당하게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그럼에도 주인공은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복수를 결의하게 됩니다.



4인조에게 같이 괴롭힘을 당하는 캐릭터인 시노부입니다.
주인공은 시노부에게 힘을 주기 위해서 자신의 복수 계획을 이야기하고
복수를 도와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야기를 하면서, 자신의 결의도 다지게 되죠.



최근에 나오는 에로게라면 이런 경우에 복수 방법은 당연히 최면 어플이며,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에도 최면술 정도는 쓸 수 있었지만
안타깝게도 이 게임 세계관에는 최면술이 없습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특기인 컴퓨터를 활용한 복수를 계획합니다.
학교의 CCTV나 잠금장치 등을 해킹하여 자신이 조작할 수 있게 하였고,
전기충격기도 개조하는 등의 준비를 합니다.
4인조를 한 명씩 가둬둔 후에 습격하는 작전이죠.
이 방법을 쓰기 위해서는 자신이 습격하는 동안
컴퓨터실에서 자신을 도와줄 조력자 한 명이 필요합니다.
 


주인공은 이미 시노부에게 자신의 복수 계획을 이야기한 바 있습니다.
시노부에게 도움을 요청할 것인지 선택지가 뜨게 되죠.

하지만, 글쎄요. 심약해 보이는 시노부가 정말로 
주인공의 복수 계획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요?
자신을 괴롭히던 4인조에게 저항할 만큼 비정해질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도움만 안 되는 수준이라면 그나마 낫죠.
오히려 주인공의 복수 계획을 4인조에게 고자질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요?
주인공과 시노부는 서로 알게 된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이입니다.
주인공을 팔아 넘기고 시노부 자신만 이지메에서 해방되는 스토리도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저 시절에 안경이란 민폐 캐릭터의 상징과도 같은 아이템이었죠.
<유작>의 리카, <협박>의 아야, <시즈쿠>의 미즈호 등이 생각납니다.
지금 보니, 시노부는 미즈호랑 좀 닮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드는군요.

시노부에게는 미안하지만, 아무래도 믿을 수가 없네요.
다른 조력자를 찾아 보겠습니다.



시기 적절하게도 컴퓨터부에 새로운 부원이 들어왔습니다.
이케도라는 녀석으로 왼쪽의 살찐 친구입니다. 그 옆에는 고문 선생님이죠.
이케도는 에로게에 관심이 있어서 컴퓨터부에 들어왔다고 합니다.



주인공의 소중한 한정판 콜렉션을 함부로 만지면서 막무가내로 빌려달라고 합니다.
어쨌든, 시노부를 선택하지 않은 이상 이제 이 캐릭터에게 조력을 부탁할 수밖에 없겠죠.
로드 한 번 하겠습니다.



다시 생각해 보니, 믿는 마음이 중요한 것 같아요.
동병상련이라는 말도 있듯이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모으면 이루지 못할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시노부도 이지메의 아픔을 딛고 잘 도와주겠죠. 믿습니다.



복수를 할 때, 신경써야 할 것은 바로 '약점'입니다.
4인조의 각 캐릭터들을 습격할 때 협박해서
다른 캐릭터의 약점을 질문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듣는 약점은 꽤 중요한 정보도 있어서
약점을 듣지 않고 대충 습격하다가 배드 엔딩을 보게 되는 경우도 있죠.
반면에, 전혀 쓸모없는 약점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호시코 왈 "리라는 우리중에서 가장 멍청해. 
그렇게 보여도 약점 투성이니까 따로 무서워 할 필요없어."

야요이 왈 "리라에게는 딱히 약점같은 게 없어.
야무져 보이지만 마음이 약하고 머리도 나쁘니까 주인공이 충분히 잡을 수 있을 거야."

누가 약점 말하라고 했지 인신공격하라고 했나요?
부잣집 아가씨 리라에게만 특히 평가가 가혹합니다.
주변 사람에게 평소에 돈을 안 썼나 봅니다.



습격한 후 사진을 찍습니다.
나중에 컴퓨터실에 잠입해서
컴퓨터 수업 때 사용하는 그 캐릭터 자리의 컴퓨터 배경화면을
습격당한 사진으로 바꿔서 경고를 합니다.
뒷사람이나 옆사람이 볼 수도 있는데 너무 과감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수영부의 야요이같은 경우는 두뇌파답게,
주인공에게 습격당해 묶인 상황에서도 이빨을 텁니다.
사실 자신도 다른 셋에게 괴롭힘을 당해 어쩔 수 없이 어울려 다녔고
주인공이 복수를 해줘서 너무 감사하다고 하네요.
이런 허접한 구라에 누가 속냐고 생각했는데
주인공은 그대로 믿어 버립니다.



아니나 다를까, 풀려나자마자 표정이 싹 바뀌는 야요입니다.
다행히도 멀리 도망 못 가고, 다시 붙잡을 수 있습니다.



모든 복수가 완료된 상태입니다. 4인조의 달라진 눈빛을 볼 수 있습니다.
이제 더 이상의 괴롭힘은 없지만
주인공은 여전히 친구 하나 없습니다.
주인공은 복수의 허망함을 느끼게 됩니다.



진엔딩은 마지막에 시노부와는 맺어지는 엔딩입니다.
제가 플레이했을 때는, 처음 본 엔딩이 진엔딩이었는데
정석적으로 선택지를 고른다면 게임이 그다지 어렵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총평하자면, H씬 위주의 게임으로서 딱히 스토리를 보고 할 게임은 아닙니다.
다만, 이쪽 장르로서는 독특하게도 복수물의 정석이 끝까지 유지된다는 점은
주목할만 합니다.

많은 에로게들이 복수로 시작해서 타락으로 끝나던가 하렘으로 끝나던가
아무튼 게임 후반부에는 복수라는 주제가 희미해져 버립니다.
아예 모 MC물처럼 프롤로그에만 있던 복수가 본편으로 가자마자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경우도 있죠.  

이 게임은 목적을 달성한 이후에는 더 이상의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으며,
복수의 허망함으로 결말을 맺었습니다.
처음의 주제가 마지막까지 유지되었죠.
대단한 스토리는 아니었지만 제목값정도는 했던 게임이라고 평가할 수 있겠네요.

2021년 1월 17일 일요일

리뷰 : 진 유리색의 눈 ~돌아보면 곁에~(2000/4/14,AIL 팀 리바)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리색의 눈>의 리메이크 버전인 <진 유리색의 눈 ~돌아보면 곁에~>입니다.
원작이 발매된지 3년밖에 지나지 않았던 2000년에 발매된 리메이크였으며
기본적인 캐릭터 디자인이 크게 변화하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리메이크는 원작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죠.
그러나 예상과 달리, 상당히 많은 것들이 변화한 리메이크였습니다.



주인공의 담임 선생님 캐릭터인 카오리같은 경우에는 성격이 아예 정반대로 변했습니다.
원작에서는 오컬트에 환장한 캐릭터였으나
리메이크에서는 조금 지나치게 진지한 캐릭터가 되었죠.

원작에서 선생님의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은
존재 자체가 미스터리인 루리를 선생님과 만나게 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캐릭터로 보나 스토리로 보나 뭔가 엉성했죠.



가짜 애인 행세를 하는 장면도 있습니다.
선생님이 평소 친구에게 애인있다고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주인공에게 애인 행세를 해서 친구 좀 같이 만나 달라고 부탁하는 거죠. 

원작에서는 친구가 잡담 도중 선생님의 오컬트 취미를 비웃는데 선을 넘습니다.
주인공이 '오컬트를 좋아하는 게 어때서!'라고 대신 화를 내며
주인공과 선생님의 사이가 급진전된다는 스토리입니다.
리메이크에서는 정 반대로 친구가 카오리는 너무 진지하다고 비웃고
주인공은 '진지한 게 어때서!'라고 화를 내죠.

이렇듯 캐릭터를 바꾼 듯하면서도 스토리는 
원작의 스토리를 대체적으로 따라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캐릭터로 보나, 스토리로 보나 훨씬 자연스럽고 세련되어졌죠.
물론, 스토리 자체가 크게 변경된 케이스도 있고요.



가장 훌륭한 변경점은 쓸데없는 반복 이벤트가 큰 폭으로 줄었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는 호감도를 올리기 위해서,
내용도 그다지 없는 이벤트를 똑같은 선택지를 선택하면서
몇 번이고 반복해야 했죠.

반면에 리메이크 같은 경우는 가벼운 개그 이벤트를 많이 삽입하여
반복적인 장면을 최대한으로 줄였습니다.
짧은 개그 이벤트가 너무 많아서 불만이신 분도 있을 수 있지만
똑같은 장면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죠.



불필요하다고 생각했던 ㄴㅇ씬도 모두 삭제되었습니다.
소비자들은 순애물에 굳이 ㄴㅇ씬따위가 삽입되어 있는 것을 바라지 않았고
그런 요구가 리메이크에서는 반영된 거죠.



다만, 주인공이 보는 비디오에 <협박>의 일부 과격한 H씬이 포함되어 있씁니다.
비디오를 보다가 루리에게 들켜서 당황하는 장면도 있죠.
루리에게 이미지를 깎이기 싫다면 비디오를 안 보는 선택지를 고르면 됩니다.
저는 당연히 비디오를 안 보는 선택지를 골랐습니다.
그냥 유리색의 눈을 끄고 <협박> 게임을 하면 되니까요.



리메이크의 변경점은 대충 이 정도입니다.
그래픽의 변화는 크게 눈에 띄는 수준이 아니지만
스토리, 캐릭터, 시스템 등이 전반적으로 크게 좋아졌어요.
변화한 모든 것들이 마음에 듭니다.



루리의 스토리와 비중이 상향된 것도 마음에 듭니다.
원작에서나 리메이크에서나 루리는 이 게임의 중심이며 기둥인 것은 마찬가지이지만,
리메이크에서는 일상 이벤트가 대폭 늘어났기 때문에
주인공의 일상과 가장 밀접한 루리의 비중도 늘어난 거죠.



또한, 리메이크에서는 원작의 스토리를 강화하며 코루리라는 캐릭터를 등장시켰습니다.
코루리의 캐릭터 자체는 결국 좋아할 수 없었지만
이 캐릭터덕분의 루리의 스토리가 더욱 풍성해졌다고 볼 수 있죠.



소꿉친구 캐릭터인 요코가 메구미와 주인공을 사이에 두고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도 마음에 듭니다.
요코의 스토리도 이 장면의 연장인데
시츄에이션 자체는 제 취향이었지만 스토리는 더 좋았을 수도 있었다고 보네요.



총평하자면, 최고의 명작까지는 아니지만
전반적으로 밸런스가 잘 맞는 아름다운 작품입니다.
원작도 좋았지만 리메이크의 발전은 특히 눈에 띕니다.

진 유리색의 눈은 고작 3년만에 나온 리메이크였고,
2000년까지는 PC-98 게임이 아무런 변화없이
그대로 윈도우로 이식되는 경우도 많았죠.
그래서 <유리색의 눈> 역시 별다른 변화없이 윈도우로 이식할 수 있었지만 
AIL사는 과감한 변화를 시도했고 훌륭한 결과물을 만들어 냈습니다.

분량이 얼마 안 되는 이런 리뷰를 적고 나서도 후회할 때가 있는데
몇 달에서 몇 년을 고민하며 제작했을 게임에 어찌 아쉬움이 없겠습니까.
진 유리색의 눈은 그런 아쉬움을 멋지게 풀어 낸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2021년 1월 10일 일요일

리뷰 : 유리색의 눈(1997/3/7,AIL)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협박> 이후 거의 1년만에 발매된 <유리색의 눈>입니다.
AIL사의 모든 게임 중에서 가장 높은 완성도를 지닌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드코어한 것으로 이름을 알린 AIL사에서 가장 훌륭한 게임이
이런 소프트한 게임이라니 참 아이러니합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와 단 둘이 살던 주인공은
사고로 아버지까지 잃게 됩니다.
슬픔을 딛고 잃어선 주인공은 혼자 살아가기 위해 
작은 자취방으로 이사를 하게 됩니다.



소꿉친구이자 건물주인 코토부키와 요코가 이사를 도와주러 왔습니다.
주인공이 살 자취방은 귀신이 나온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매우 집값이 저렴하죠.
이사 도중, 사고로 방바닥을 박살내 버립니다.



그날 밤, 이사를 끝낸 주인공은 귀신이 나오는 악몽을 꾸게 되고
우연히 부숴진 방바닥에서 숨겨져 있던 항아리를 찾아내게 됩니다.
그리고, 그 항아리를 열어 보니...



항아리에서 봉인되었던 금발의 설녀가 튀어 나왔던 것입니다.
설녀의 이름은 루리로 이름과 설녀라는 사실 이외의 모든 기억을 잃고 있습니다.
오갈 곳 없는 루리는 주인공과 동거하게 되고,
그 와중에 벌어지는 주인공과 주변 여성들과의 연애를 다루고 있는 것이
유리색의 눈의 스토리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시간 관리형 게임으로 <동급생>과 유사한 스타일입니다.
시간마다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면서 여성 캐릭터들의 호감도를 올려야 하죠.

<동급생>과의 차이점이라면 여성 캐릭터들하고 데이트 약속을 하는데
굳이 약속 시간과 장소를 기억할 필요는 없고,
약속시간이 되면 주인공이 알아서 찾아간다는 점입니다.
아르바이트나 약속 시간을 펑크내고 싶어도 그런 자유도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시간이 되면 사실상 강제로 이동해야 하죠.

시간에 맞춰 무언가를 해야 한다기 보다는
남는 시간을 어떻게 잘 때울 것인가가 이 게임을 잘 할 수 있는 비결입니다.

'시간 때우기' 커맨드가 따로 있기 때문에
시간 보내는 것 자체는 쉽지만 그래서야 여성들의 호감도를 올릴 수 없죠.
또한, 특정 캐릭터의 공략을 위해서
고양이를 키운다거나, 꽃을 키운다거나, 개발을 한다거나하는 시간도 필요합니다.



시간 때우기의 관점에서 이 게임을 봤을 때,
가장 아쉬운 점은 반복 이벤트가 너무나도 많다는 점입니다.

쌍둥이 캐릭터의 경우, 누가 누군지 정확히 알아보면 호감도가 오르는데
몇날 며칠을 이 이벤트만 주구장창 합니다.
그렇게 알아 보는 게 좋으면 누구 하나가 헤어스타일을 바꾸면 될 텐데요.

나오는 장소가 정해져 있기 때문에 맞추는 건 어렵지 않지만
별 내용도 없는데 맨날 똑같은 얘기만 하는 건 너무나도 지칩니다.
이런 똑같은 얘기만 반복한다고 호감도가 오를 정도면
그냥 서로 얼굴만 봐도 호감도가 오를 것 같네요.



캐릭터는 루리 이외에도 또다른 설녀나 퇴마사 등을 등장시켰고,
스토리도 어울리게 만들었습니다.



이미 애인이 있는 여성이나 미혼모도 히로인으로 등장시켰는데
지금 관점에서는 호불호가 약간 갈릴 수 있는 문제네요.

호불호가 갈릴 수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AIL사 게임답게 ㄴㅇ씬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캐릭터도 아니고 주인공이
스토리 도중 분노한다거나 하여 홱까닥해버리면서 
여성 캐릭터를 ㄴㅇ하는 겁니다.

요즘 발매되는 게임에서는 거의 사용되지 않는 방식이죠.
사용된다고 해도 범인은 주인공이 아니고요.
저는 딱히 ㄴㅇ계열을 싫어하는 편도 아니고
순애물에 ㄴㅇ씬이 일부 포함되어 있더라도 싫어하지 않지만
이 게임에는 스토리로 보나 캐릭터로 보나
별로 어울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이 게임은 루리와 요코를 중심으로 캐릭터들이 너무 좋았고,
스토리도 양호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은 게임입니다.
<협박>이 뜨기 전에 이 게임이 먼저 발매되었더라면
AIL사의 역사가 달라졌을 수도 있다고 보네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은 
이 게임이 DOS가 아닌 윈도우용으로 나왔어야 한다는 겁니다.
97년도는 이미 윈도우가 많이 보급되었던 시기였기 때문에
윈도우로 나왔다면 더욱 흥행할 포텐셜이 있던 게임이었다고
사람들이 평가하는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은 세가 새턴으로 이식되기도 했지만
왜인지 윈도우판은 나오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이 게임을 윈도우에서 볼 수 있게 된 건
3년 후의 리메이크작 <진 유리색의 눈 ~돌아보면 곁에~> 덕분이었죠.

다음 리뷰인 <진 유리색의 눈 ~돌아보면 곁에~> 리뷰에서
이 게임에 대한 더 자세한 설명과 함께
리메이크에서는 무엇이 변경되었나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1월 3일 일요일

리뷰 : 협박(1996/4/27,AIL)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6년도에 발매된 AIL사의 <협박>입니다.
스트레이트한 제목짓기 방식이죠.
'끝나지 않는 내일' 같은 부제는 윈도우로 이식되면서 새로 첨부되었고
원작의 제목은 단 두 글자, 협박입니다.

AIL사가 과격한 방향으로 나가게 된 원인을 이야기할 때,
<듀얼 소울>이니 <음마제복사냥>이니
사실 이런 얘기들 아무 소용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이유는 이 협박이 히트를 쳤다는 거에요.
협박의 후속작 뿐만 아니라 AIL사의 많은 게임들이 협박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 졌습니다.
AIL사의 실질적 조상이라고 할만 하죠.



기본적인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여주인공인 아스카는 학교의 인기남에게서 고백을 받아 서로 사귀게 됩니다.
마음이 들떠 있던 주인공은 그 날 목욕도중 ㅈㅇ를 하게 되죠.
목욕이 다 끝난 후에 주인공은 목욕탕 창문이 열려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리고 며칠 후, 행복하게 지내던 아스카는 신발장에 들어있는 편지봉투를 발견하는데,
그 봉투 속에는 주인공의 ㅈㅇ사진과 함께 
'료스케와 헤어져'라는 협박 편지가 들어 있던 것입니다.

이 편지를 시작으로 아스카의 일상은 급격하게 망가지고,
가족이나 친구 등 주변 인물들까지 휘말리게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이 게임의 가장 큰 인기비결은 과격한 H씬입니다.
다양한 시츄에이션에 질과 양 모든 면에서
당대 최고의 수준이었죠.

저도 좋아하는 부분이지만
수위 때문에 이 부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별로 없군요.



스토리 면에서는 '협박'이라는 소재를 상당히 잘 사용했습니다.
처음 익명의 협박을 받았을 때,
그 범인이 누구인지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짐작하기 어렵지는 않지만
초반에는 해답을 알려주지는 않고 계속 복선만 뿌립니다.

또한 협박자는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으로 협박의 다양한 형태를 보여 줬습니다.
주인공의 친구 중 한 명은 체육교사의 협박을 받고 있었고,
그 체육교사는 협박자가 신발장에 편지를 넣는 모습을 목격하여
협박에 협박을 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전개가 있습니다.



또한, 이 게임은 PC-98버전 기준 24개의 멀티 엔딩 게임입니다.
별 일 일어나지 않는 엔딩도 있지만,
수많은 엔딩들이 주인공을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엔딩입니다.

다른 게임이라면 똑같은 엔딩이 나올 만한 장면에서도
이 게임에서는 다양한 엔딩을 보여줍니다.
오늘 협박에 응하지 않든지, 내일 협박에 응하지 않든지
스토리 자체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이지만
전혀 다른 장면의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엔딩에서, 주인공이 진짜 빠져 나갈 구멍이 없이 포위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그 와중에, 주인공이 고난과 역경을 딛고
행복한 결말을 맞는 해피엔딩까지 있기 때문에 감동적이기까지 합니다.
해피엔딩 스토리에서 처녀성을 억지로 강조하는 점은 아쉬웠지만요.



이렇게 선택지도 많고, 엔딩도 많은 게임이지만
중요한 부분부분에 '힌트' 선택지가 존재하여
편의성 면에서도 상당한 신경을 쓴 게임입니다.



윈도우 이식판에서는 S-Navi라는 플로우 차트도 보여줍니다.
저 정신없는 차트 좀 보세요. 힌트 없이는 클리어하기 매우 힘든 게임이 되었겠죠.



인기있는 게임이었기 때문에 98년도 이식판을 시작으로 몇 번이고 새로 발매되었습니다.
윈도우 이식판에서는 신캐릭터를 등장시키고,
보이스를 입히고, 스토리와 엔딩을 더 추가하여 더더욱 좋은 게임이 되었죠.

이런 인기에 힘입어 이 게임은 시리즈 3편까지 발매됩니다.



2005년에 발매된 <협박2 ~상처에 피는 꽃 선혈의 다홍색~>입니다.
주요 등장인물은 거의 달라졌지만
전작과 기본적인 세계관은 공유하는 작품이죠.

스토리 면에서는 전작에서 봤던 장면을 많이 사용했지만
반전도 자주 사용하여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를 만들어 냈습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전작에 비해 패턴이 다양하지 못하다는 점이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아하는 게임입니다.
ㄴㅇ계열 게임 중에는 손에 꼽을 정도로 좋아하는 게임이죠.
제 ㄴㅇ계열 게임은 이 게임 전과 이 게임 후로 나뉘며,
이 게임 전에 플레이했던 ㄴㅇ계열 게임은 적지 않은 수이지만
모두 최소 2회차 플레이를 했죠.

이 게임을 하고 나서 게임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달라졌거든요.
누구에게나 자신의 게임관에 큰 영향을 준 게임이 하나정도는 있을 텐데
저에게는 그 중의 하나가 협박2입니다.
혁명이었죠. 지금도 종종 꺼내서 플레이하는 게임입니다.



마지막으로 <협박3 ~아득히 울려퍼지는 빛과 그림자의 음애가~>입니다.
아쉬워하는 사람들도 많았지만
적당히 괜찮은 장면도 있었고 그럭저럭 할 만한 게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작들에는 미치지 못했지만요.



총평하자면, 1편은 취향만 맞는다면
동시대 탑 클래스의 누키게입니다.
스토리도 좋고, H씬의 양도 풍부하고, 편의성마저 훌륭하죠.

다만, 그 취향이 맞기는 쉽지 않습니다.
블로그에 자세한 설명은 올리지 않았지만 엄청 과격해요.
아마도 8할 이상의 분들에게는 안 맞지 않을까 싶네요.

이런 알맹이없는 리뷰를 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협박이 워낙 유명한 게임이고 저에게 의미깊은 점도 있기 때문에
이정도만 이야기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