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5일 일요일

리뷰 : WHITE ALBUM(1998/5/1,Lea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과거 <WHITE ALBUM>은 인기있는 미연시의 대명사와도 같은 게임이었습니다.
제가 에로게를 한창 하던 시기에
에로게에서 마약이란 백색마약 밖에 없었죠.
분홍마약이니 주황마약이니 하는 건 한참 후에나 들어본 용어였습니다.
다만 저는 화이트앨범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남들이 다 좋다고 하면 왠지 청개구리짓을 하고 싶었던 성격 때문일 수도 있겠죠.



독특하게도 주인공은 게임 시작 시점부터 
유키라는 이름의 매력적인 애인과 교제하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유키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사귀던 사이로
지금은 대학생입니다.



가수를 꿈꾸던 유키는 게임 시점에서는 탑급 아이돌이 되었습니다.
바쁜 스케쥴로 인해 주인공과 연애할 수 있는 시간은 점점 줄어만 가죠.
점점 주인공은 유키와의 관계에서 벽을 느끼게 되고,
다른 여성들과 인연을 맺는다는 게 이 게임의 기본 스토리입니다.

하지만 비록 서로 잘 만나지 못하더라도,
착하고 순수하고 귀여운 탑급 아이돌 여자친구를 두고
굳이 다른 여성을 만날 이유가 있을까요?



그 이유가 여기 있네요.
이 캐릭터의 이름은 리나입니다.
유키의 친구로서 유키 이상의 탑급 아이돌이죠.
많은 사람들이 그랬지만 저도 유키보다 리나에 더 큰 매력을 느꼈습니다.
사실 죄책감이야 주인공만 느끼면 되는 거고,
저는 그냥 게이머로서 다른 캐릭터를 마음에 둬도 되지 않을까요?



이 게임의 시스템은 주인공의 스케쥴을 짜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대학에 갈지 아니면 아르바이트를 할지를 결정하는 거죠.
예를 들어, 리나를 공략하려면
리나가 자주 오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아니면 방송국 AD 아르바이트를 해야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제가 어떻게 행동하더라도
리나가 등장할지말지는 완전히 랜덤이라는 점입니다.
사실 옛날에 제가 이 게임에 짜증을 냈던 이유도 이 랜덤 시스템 때문이었죠.



다행히 이제는 굳이 랜덤 시스템에 속을 썩이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면, 랜덤 시스템 따위는 치워 버린 리메이크가 이미 나왔거든요.
리메이크에서는 생각한 캐릭터를 만나는 일이 어렵지 않은 시스템으로 바뀌었죠.

다만 스토리에 큰 보강이 없었기 때문에,
게임을 하다 보면 비어있는 시간이 꽤 많습니다.
일상 대화라도 좀 보강을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스토리 보강이 아쉬웠던 것 이외에는 전반적으로 잘 된 리메이크라고 생각합니다.
그래픽이 깔끔해 진 것이 마음에 듭니다.
전체적으로 캐릭터들이 가늘어져서
유키의 푸근한 느낌이 줄어든 듯한 인상을 받긴 했는데
그래도 나름 매력이 있었어요.



또한 사요코라는 공략 캐릭터가 하나 추가되었습니다.
현 시점에서 기존 캐릭터들의 스토리는
옛날 게임에 보충이 없다 보니 다소 부실하게 느껴지지만,
사요코의 스토리는 풍부하죠.

이렇게 매력적인 포니테일이 옛날에도 있었다면,
제가 화이트 앨범에 부정적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화이트앨범의 스토리 자체는 크게 좋은 편이 아닙니다.
옛날 게임이라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분량이 적고
분위기를 고조시켜 줄 부분에서 최근의 게임들에 비해 묘사가 적은 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이 게임의 스토리는 훨씬 좋게 느껴지는데
그것은 잘 쌓은 캐릭터 때문입니다.
잘 구축해 놓은 캐릭터들의 관계에 그에 따른 행동 하나하나가
간결하게 게이머들의 감성을 자극하죠.



그런 의미에서 유키의 캐릭터가 가장 잘 표현된 것도
유키 본인의 스토리보다도 리나의 스토리에서였다고 봅니다.
단순히 싸대기 때리는 장면이 있어서가 아니라
리나 엔딩 직전에 보여주는 유키의 태도가
제 감정을 폭발시키죠.

생각해 보면, 이런 착한 여자친구를 배신하고
다른 여자를 만날 이유가 없습니다.
주인공이 괜히 유키에게 벽을 느꼈을 뿐이죠.
리나 스토리 마지막 장면의 유키를 보면
아무 상관없는 게이머에게도 죄책감이 느껴질 정도입니다.
그만큼 게임이 잘 만들어졌다는 거죠.

아무튼 이제 와서 어쩌겠습니까?
저는 이미 리나 엔딩을 봤는 걸요.



리나 엔딩 장면입니다.
유키가 누구죠?

아무리 생각해 봐도 리나가 더 좋은 것을 어쩔 수가 없습니다.
스토리로 봐도 이 게임의 진짜 스토리는 리나 스토리라는 생각이 드네요.



총평하자면, 전체적으로는 잘 만든 게임임에 틀림없습니다.
옛날에 플레이했을 때는 잘 느끼지 못했지만
리메이크를 플레이했을 때는 좋은 점을 많이 찾을 수 있었죠.

호불호가 많이 갈리지만 야요이 스토리 같은 것도 하나의 볼거리라고 생각합니다.
유키와 사요코의 스토리도 괜찮았고, 리나는 좋았습니다.
좋은 리메이크도 나왔고, 리메이크에도 한국어 패치가 있다고 하니
지금 하기에도 손색없는 고전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