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8월 6일 일요일

리뷰 : 미친 과실(1992/5/1, 페어리테일)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친 과실>은 범상치 않은 제목과 타이틀 화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범상치 않은 게임입니다.

90년대 초반, 이 게임은 많은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친 과실을 사상 최악의 우울게임이라고 합니다.



시스템은 단순합니다.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입니다.
분기도 없이 하나의 스토리가 쭈욱 흘러가는 시스템이죠.
공략도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스토리입니다.


주인공은 대학생으로 자신의 교수인 츠키시마 교수의 가든 파티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 츠키시마 교수의 딸 세 자매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낯가림이 심한 셋째 딸 미카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둘째 아키미가 폭력까지 쓰며 주인공을 데려갑니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아키미는 주인공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직 초반 프롤로그이며 이런 저런 캐릭터 소개를 하는 도중입니다.
아키미의 캐릭터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아직 제대로 된 이벤트도 없었다고 방심하는 와중에...



갑자기 난간이 부숴지면서 아키미가 사망합니다.
그냥 사망하는 것도 아니고 아래층에 있던 촛대에 찔러서 잔인하게 사망합니다.

이 게임이 얼마나 제목만큼 미친 짓을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건입니다.


저는 블로그에 잔인한 CG를 올릴 생각이 없습니다.
CG는 꽤 잔인하고, 충격적일 정도로 적나라합니다.
시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고양이를 전자렌지에 넣고 돌린 시체도 보여줍니다.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한다면 상당히 충격적인 CG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옛날 그래픽이다 보니 잔인한 CG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순한 CG만이라면 훗날 나오는 게임들이 훨씬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섬뜩함은 CG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죠.


일단은 위에서 보이는 사건처럼, 긴장감의 고조도 없이
한순간에 슥삭 캐릭터를 죽여버리는 충격적인 전개가 섬뜩합니다.



츠키시마 교수의 집에서 가정부를 하고 있는 마키입니다.
주인공과 인연을 맺은 다음날, 쓰레기 소각로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하호호 웃던 사람들이 다음날 갑자기 시체로 발견되는 전개입니다.


그 다음으로 섬뜩한 것은 CG를 능가하는 텍스트입니다.
마키의 불에 탄 시체를 이 게임은 CG로 보여줍니다.
CG는 잔인하긴 하죠.
하지만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소각로를 강하게 긁으면서
모든 손톱이 나갔다는 묘사야말로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더 큰 원인입니다.

시각적인 묘사보다 텍스트를 이용하는 방법은 꽤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섬뜩하게 하는 것은 범인의 정체입니다.
범인의 정체는 반전이 아닙니다.
노골적으로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고, 딱히 추리를 하지 않더라도
주요인물들이 범인을 제외하면 전멸할 정도로
너무 많이 죽어나가서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범인은 이 열 살밖에 안 된 소녀, 츠키시마 교수의 셋째 미카입니다.
이정도밖에 안 된 어린이가 범인이라는 결말은 고전 추리소설에서도
꽤 자주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같은 유명한 소설가도 사용했던 방법이죠.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여자 어린이치고 힘이 좋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는지 그 방법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개연성따위는 버리고, 오로지 이 어린 소녀가 그렇게 잔혹한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하는 충격적인 전개만 있을 뿐입니다.

아직 어려서 본인이 저지른 일을 잘 모른다는 전개도 아닙니다.
확실하게 알고, 태연하게 연쇄살인을 저지릅니다.



미카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입니다.
보시다시피, 추락하는 아키미와 소각로에서 불타는 마키입니다.
주인공이 이 그림을 발견했을 때, 이 게임을 하면서 가장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잔인한 게임들과 비교해서
미친 과실의 특징을 하나 더 들어본다면, 바로 긴장감의 집약입니다.

요즘 나오는 게임들은 볼륨을 상당히 중요시합니다.
섬뜩한 공포 게임이라고 해도, 수십시간에 달하는 플레이 시간을
전부 긴장감 넘치는 장면으로 채우는 건 불가능하죠.

그러다 보니, 치유되는 장면도 넣고, H한 장면도 넣고, 개그도 넣습니다.
이러면, 공포 게임이 다소 루즈해지는 단점이 있죠.

미친 과실이 굳이 의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짧은 게임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다 보니 빠른 전개를 택했고,
긴장감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뭐,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볼만한 장면을 원하는 게이머도 있으니까요.
긴장감의 집약은 미친 과실의 장점이라기 보다는,
색다른 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총평하자면, 사실 개연성을 무시해버리고 순간적인 임팩트만을 중시한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충격적이면서도, 클리어한 후 곱씹어 보면 그 치밀함에 감탄하게 되는 스토리를
훨씬 좋아합니다.
따라서 미친 과실에 높은 점수는 주지 않겠습니다. 한계가 명확한 게임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당대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자기 색깔이 명확한 게임입니다.
프롤로그가 끝날때 쯤부터 섬뜩하기 시작해서
스탭롤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소름이 끼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90년대에는 나름 잘 나갔던 페어리테일을 대표할만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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