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월 6일 일요일

리뷰 : 별모래 이야기 시리즈(D.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O.의 PC-98 게임 중에서
별 내용이 없는 <M운라이트 린샹>과
옴니버스 게임 시리즈인 <DOR> 시리즈는 리뷰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별모래 이야기> 시리즈를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별모래 이야기> 1991년 3월 5일 발매
<별모래 이야기2> 1992년 6월 25일 발매
<별모래 이야기3> 1995년 11월 17일 발매

별모래 이야기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추리물의 구성을 띄고 있는 작품입니다.
세 작품 모두 살인 혹은 살인 미수 사건부터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시스템은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입니다.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 때와 마찬가지로
등장인물 A가 B,C,D...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B가 A,C,D...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일일히 물어보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에서 설명했다시피
전혀 쓸모없고 오히려 게임에 방해가 되는 선택지입니다.

게다가 등장인물 중 하나는 '좋아', '싫어' 수준의 단답형으로 대답합니다.
선택지도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대답조차 쓰잘데기 없죠.
이런 시스템은 대체 왜 넣어 놓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게임의 장점을 다 죽여놓는 시스템으로
플레이 타임을 늘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거죠?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의 경우, 이러한 선택지가
저에게 트라우마를 심어 줄 정도였지만
별모래 이야기의 경우는 그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왜냐면, 대부분은 선택하지 않아도 다음 스토리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의 경우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까지 몇 번이고 눌러야 했죠.

그래도 역시 문제가 되는데,
뭘 선택해야 다음으로 넘어갈지 길을 잃었을 때,
결국 한 번씩 다 눌러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D.O.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게임 자체에 언제 무슨 선택지를 일일히 눌러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공략집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선택지를 간편하게 만들면 되잖아요.


제가 이 게임은 추리물의 구성을 띄고 있다고 설명드렸지만,
사실 구성만 그럴 뿐입니다.
게임 내용의 대다수는 H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1편과 2편의 경우는,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육감적인 CG가 특징이었습니다.
3편의 경우도 H씬 위주기는 하지만
1편과 2편처럼 충격적인 수준은 아니었죠.

특히 1편,2편은 DO코드라고 해서 게임 시작 때, 'D', 'O' 코드를 누르면
모자이크도 사라집니다.
사오리 사건 이전이라서 규제가 느슨했던 것 같은데
당시 이 게임을 플레이하셨던 분들은 모자이크가 없는 CG에
상당한 충격을 먹었다고 합니다.
모자이크있는 채로 플레이하는 편이 더 낫다는 분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블로그에 올릴 수는 없는 CG지만 그만큼 H씬의 CG가
과장되고 과격한 수준이었죠.

이렇게 CG가 강점인 시리즈다보니
내용은 주구장창 H씬뿐입니다.
수사하겠다고 누굴 만나러 가면 수사는 됐고 그냥 H씬이나 보는 수준입니다.
내용에서 H씬이 차지하는 비중이 체감상 8할은 되는 것 같습니다.



총평하자면, 이 게임은 추리물이라기보다
'추리물의 탈을 쓴 에로게'입니다.
과격한 CG는 지금 시점에서 봐도 꽤 충격적입니다.

특히, 2편의 경우에는 정말로 모자이크 없이는 못 볼 수준입니다.
HCG의 충격적인 묘사만큼은 역대급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실, 단순히 이것뿐이라면 별모래 이야기 시리즈의 리뷰도
다른 게임들처럼 하지 않고 넘어갔을 겁니다.
CG와 소재 외에는 별달리 특이한 점도 없는, H씬 위주의 고전 에로게일 뿐이니까요.

저는 추리물을 소재로 한 게임도 많이 했긴 하지만,
그보다 더 추리소설을 많이 봤습니다.
명작 추리소설을 많이 보다 보니, 나름 눈이 높아져서 추리물에 대해
좀 더 엄격한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추리게임과 추리소설의 평가 기준은 다릅니다.
추리소설은 논리를 많이 따지는 편인데,
과격한 전개나 묘사가 없더라도
참신한 논리로 시작되고, 모순된 논리로 혼란시키고,
명쾌한 논리로 진전되며, 완벽한 논리로 해결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하는 거죠.

반면에 추리게임의 경우는, 논리를 많이 보지 않는데
애초에 논리로 승부하는 게임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잔인한 묘사, 마구잡이식 살인, 멋진 탐정,
충격적인 반전, 복잡한 인간 관계, 처절한 동기, 미쳐 버린 캐릭터 등이
추리게임에서 주로 내세우는 자랑거리입니다.

장르적 특성 때문이죠.
논리보다는 좀 더 플레이어에게 와닿기 쉬운 내용으로 어필하려고 합니다.
저도 논리보다는 다른 요소를 많이 보고 평가하는 편입니다.

근데 그러다 보니, 스토리가 지나치게 왜곡되는 게임들이 생겨납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주제에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고 폼이나 잡는 탐정,
피만 철철 흘러나오는 CG,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보니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 스토리같은 거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논리를 경시하다 못 해, 아예 전무한 수준이라는 거죠.
PC-98 시절에 범람했던 추리 에로게의 상당 수가
살인과 범인만 있을 뿐, 주인공은 생각없이 그냥 이동만 계속 하다 보면
범인이 자폭하고 사건이 해결됩니다.

윈도우 시절에도 주인공 탐정이 여자들 하고 놀아나는 동안,
사건은 여동생이 다 해결해 주고, 주인공 탐정은 마지막에 주먹질이나 하는 게임이나,
추리가 아니라 기억력 테스트를 게이머들에게 풀어내라고 하는 게임이나
수많은 게임들이 제 혈압을 오르게 합니다.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산더미지만, 그건 그 때 그 게임의 리뷰에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아무튼 별모래 이야기의 리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별모래 이야기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가요.
플레이 타임 내내 H씬 밖에 없는 게임이지만
뜻밖에도 얼마 안 되는 추리파트만 모아서 살펴 보면 의외로 괜찮습니다.
에로 빼면 시체인 게임이지만 그 시체는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시체에요.



엄청 훌륭한 수준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틀만 갖추고 있는 수준이지요.
하지만 다른 게임들은 그정도도 못합니다.

1편에서는 펜션 손님들의 한 밤중의 알리바이를 묻고 다닙니다.
다들 모여서 카드놀이를 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블랙잭'을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신경쇠약'을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도둑잡기'를 했다고 합니다.
카드놀이를 한 시간도 각각 다르고요.

2편은 다잉메시지, 3편은 독살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수사 도중에 대단한 사건이 터지는 건 아니지만, 단서를 조금씩 드러내며
플레이어를 서서히 미스터리의 늪으로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조금이지만 감탄했습니다.



진짜로 총평하자면, 어쨌든 에로 위주의 게임이고
'추리물의 탈을 쓴 에로게'라는 평가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추리물의 탈'이 의외로 제대로 만들어져 있는 거죠.

H씬을 줄이고, 좀 더 추리극에 집중했더라면
더 좋은 게임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댓글 2개:

  1. 리뷰 인상깊게 잘 봤습니다.

    백개먼님의 장르론을 읽다 보니 든 생각인데 제가 백개먼님 리뷰를 좋아하는 이유가 논리가 잘 짜여져 있어서 그렇다는 생각이 드네요. 거기다 특유의 감각과 재치도 있으셔서 늘 즐겁게 읽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저한테도 사실 디오는 가족계획 이미지밖에 없었는데ㅋㅋㅋ 의외로 여러가지 시도도 하고 게임도 냈다는 걸 알게 돼서 신선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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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kle p//

    가족계획 이후 D.O.가 몰락한 걸 생각하면
    D.O.의 진짜 전성기는 90년대인 것 같습니다.
    요수전기2, 토리코나 카나~여동생~ 같이
    촉수, 조교, 최루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좋은 작품을 쏟아냈으니까요.
    전혀 색깔없는 작품이나 내는 지금의 D.O.와는 천지 차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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