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1일 일요일

리뷰 : 울퉁불퉁한 레몬(1994/1/21, 본비봉봉)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비봉봉은 비쥬얼 아츠 산하의 회사 중 하나입니다.

비쥬얼 아츠는 산하에 수많은 회사를 두고 있습니다.
다수의 산하 회사들은 제가 욕하거나, 혹은 이름만 들어봤고
이름도 못 들어본 회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SAGA PLANETS처럼 간간이 훌륭한 작품을 내는 회사도 있고,
130cm나 스튜디오 뫼비우스처럼 사라지고 보니 아쉬운 회사도 있고,
otherwise나 RAM처럼 잠깐이나마 히트를 쳤던 회사도 있죠.

세세히 따져 보면 괜찮은 회사들도 좀 있었지만,
비쥬얼 아츠의 이미지는 단 한 회사로 정리됩니다.
바로 <KANON>, <AIR>, <CLANNAD>의 key입니다.
다른 회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key의 명성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립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상대가 key니까요.


하지만, key사는 99년도에 <KANON>으로 데뷔한 회사이며
비쥬얼 아츠는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PC-98시절에도 산하에 많은 회사가 있었죠.
그 당시에 비쥬얼 아츠를 대표하는 회사는 역시 본비봉봉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본비봉봉은 90년대에는 상당히 활발하게 작품을 내는 회사였으나,
2000년도에 들어서 Bonbee!로 브랜드명을 바꾼 이후에는
활동이 많이 뜸해졌으며, 2007년도 이후로 작품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망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상 망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리뷰할 <울퉁불퉁한 레몬>의 주인공입니다.
에로게 주인공으로서는 특이하게도 뉴하프입니다.
주인공은 부모님을 여의고 여동생과 둘이 먹고 살기 위해,
수술을 하고 업소에 다니게 됩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어느날 사라진 여동생의 비디오가 배달됩니다.
NTR물의 비디오 엔딩 전개가 이 게임에서는 오프닝에 사용됩니다.
주인공은 여동생을 되찾기 위해서,
여동생이 다니던 여학교에 용무원 대행으로 잠입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게임 진행 방식은 <동급생>과 비슷합니다.
무대는 학교와 그 근처로 제한적이지만 교내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여성들과 접촉하고 조사를 합니다.



장소를 옮겨다닐 때마다 시간도 흐릅니다.
시간 시스템이 나름 정교해서 낮과 밤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시간에 10분씩 학교의 쉬는 시간도 구현해 놓았습니다.
수업시간에는 복도에 사람이 없다가,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가 되면
사람이 많아집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바쁘게 만나고 다녀야 합니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이벤트를 보지 못하면 게임 오버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사이비 종교 동아리에 가입하면 게임 오버 대신
시간을 되돌려줍니다.

주인공이 용무원 대행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5일뿐입니다.
5일동안 열심히 돌아다니며, 여동생을 찾고 학교 내의 음모를 파헤쳐야 합니다.
대체, 여동생을 잡아간 범인은 누구일까요?



용무원 대행으로 취직하고 처음으로 교장에게 인사하러 갑니다.
교장의 외관만 보면,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범인 혹은 흑막을 찾은 기분입니다.
바로 교장 멱살잡고 여동생 내놓으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학생회 명단을 좀 보면 안 되겠냐고 하자,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서 안 된다고 수사를 방해하는 게 영 수상합니다.
주인공은 장난전화로 교장을 속여서 학생회 명단을 훔쳐 냅니다.


나중에서야 밝혀지게 되지만, 사실 교장은 좋은 사람입니다.
주인공이 수사를 계속 하며 진상에 다가가게 되자,
주인공을 내쫓아야 한다는 의견이 학교에서 나오게 되는데
교장이 주인공을 실드쳐줍니다.

교장은 여학교의 학생들이 너무 점잖고 활기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장답지 않은 화려한 옷차림도 학생들이 좀 더 활발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의도적인 컨셉이었던 겁니다.
주인공이 용무원 대행으로 오고 나서, 학생들이 많이 명랑해졌다고 기뻐하며
주인공이 문제없이 계속 학교에 있을 수 있도록 지원해줍니다.

생각해 보면, 학생회 명단을 함부로 보여 주지 않은 것도 
교육자로서 당연한 행동이었죠. 참교육자입니다.
다만, 저런 옷차림이 학생들의 활발함이랑 관련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군요.



학교를 돌아다니며, 많은 미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라도 꾸준히 나누어야 해피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등장 캐릭터가 상당히 많기는 하지만
각 대화가 길지도 않고, 캐릭터들이 귀엽기 때문에 템포 좋게 게임을
진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 캐릭터들은 주인공에게 적지 않은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수사를 거듭할수록 '최면'이나 '원X교제'같은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겁지 않은 개그물로 진행됩니다.
여기까지는 아쉽지 않은데, 그 후 진범을 잡고, 모든 진상을 알게 되고, 
여동생까지 되찾는 과정까지도 다소 허무합니다.
악역을 좀 더 악역답게 만들고, 마지막을 좀 더 통쾌하게 만들었다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건이 해결된 이후, 이별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주인공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학생 열 두명이 모두 체육관에 모였습니다.
교장은 주인공이 학교에 계속 남아서 일해주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장은
만일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열 두 학생 전원이 찬성한다면
주인공을 학교에서 고용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하여, 캐릭터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오며
주인공 덕분에 용기를 얻었네, 뭔가를 배웠네 하며 주인공의 잔류를 찬성합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을 경계하던 캐릭터도 있고,
주인공을 열렬히 좋아했던 캐릭터도 있었는데
그런 캐릭터들이 한 마디씩 하며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꽤 감동적입니다.



그렇게 다들 찬성하던 중 뜬금없이 얘가 반대해서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보통 다들 찬성하는 분위기면 눈치봐서 찬성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모두가 예스할 때, 혼자 노라고 말합니다.
교장도 가차없어서 진짜로 한 명만 반대하니까 바로 쫓아냅니다.
설득할 시간도 안 줘요.

사실 주인공이 있는 5일동안, 학교 내를 계속 돌아다니며
열두 캐릭터들과 최소 6번은 대화해야 해피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학교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두 명정도가 잘 안 보여서
해피엔딩 못 볼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쉽게 해피엔딩을 봤었는데 좀 방심했나 봅니다.



총평하자면, 전체적으로 조합이 잘 된 에로게입니다.
본비봉봉은 이 시기의 게임 회사치고는 시스템의 편의성을 많이 고려하는 회사였고,
엘프의 <동급생>만큼이나 편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다수 등장시킴으로서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스토리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플레이해도 손색없는 고전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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