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7월 28일 일요일

리뷰 : 서클 메이트(1994/5/7, 본비봉봉)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서클 메이트>는 PC98시절의 유명한 우울게임 중 하나입니다.
자극적이고 충격적인 소재 때문에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작품입니다.
나름 화제가 된 게임이었으며, WINDOWS판으로 리메이크도 나왔습니다.



시스템은 명령 선택식 + H씬 등에서 부분적으로 포인트 클릭 방식입니다.
H씬에서는 어디를 어떻게 해달라고 여성이 직접적으로 요구하기 때문에
그다지 시간은 걸리지 않습니다.




프롤로그가 굉장히 충격적인 게임 중 하나인데,
주인공의 친구인 쥰이라는 여학생이 지하철에 치여 사망합니다.
시체가 산산조각나는데, 그 중에 피투성이인 머리를 쓸데없이 디테일하게 보여줍니다.
프롤로그만으로도 게임 플레이를 포기한 사람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블로그에는 올리지 않습니다.

주인공과 친구들은 일단 쥰이 자살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학교에는 타살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습니다.
쥰의 사망에 대한 진상을 파헤치는 게임입니다.



우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게임에 대한 제 평가는 불호입니다.
게임 내의 많은 것들이 저를 불쾌하게 합니다.
위에 캐릭터는 주인공 친구의 아버지의 비서라는 멀고 먼 관계인데 자주 등장합니다.
만날 때마다 자꾸 여기 이상한 냄새 안 나냐며 킁킁 거립니다.

저는 저 사무소 어딘가에 시체라도 묻혀 있는 게 아닐까하고 생각했지만
게임 끝날 때까지 냄새에 대한 결말은 없었으며,
그냥 저 캐릭터가 예민한 거였습니다.
킁킁거리는 것은 스토리 상 아무 의미가 없으며,
그냥 저를 불쾌하게 할 뿐입니다.


이 게임에 의미가 없는 건 한 두개가 아닙니다.
맨 처음에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주는 잔인한 CG도
왜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프롤로그는 이 게임에서 유일하게 잔인한 CG, 잔인한 묘사입니다.
아예 사망자가 게임 전체에서 쥰 한 명뿐입니다.

서클메이트는 <미친 과실>이나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처럼
사람이 연쇄적으로 죽으면서,
잔인한 CG로 광기, 호러 분위기를 연출하는 게임이 아니라는 거죠.

서클메이트 스토리도 충분히 미친 광기 스토리지만,
그 광기는 잔인한 살인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초반의 잔인한 CG가 잡아주는 분위기가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군요.



또 짜증나는 것은 주인공에게 덕지덕지 붙은 쓸데없는 설정입니다.
주인공은 학교에서는 PC동아리에 들어있고,
비밀리에 동네밖의 난X클럽에도 속해 있습니다.
제목인 서클 메이트는 이런 의미입니다.

PC동아리는 주인공과 쥰, 그외 친구들의 연결고리이기는 하지만
최후반부 장면 외에 거의 쓸모가 없는 설정입니다. 없어도 될 정도입니다.
X교클럽의 경우는 충격적인 H씬을 많이 보여주기는 하지만
메인 스토리에서 벗어나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이미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이 여자친구도 꽤 비범한 광기를 보여주기는 하는데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어쨌든 주인공은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하는데
여자친구가 자꾸 엇나간다는 식으로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난X클럽에 소속된 주인공을 데리고 이런 전개라니
스토리에 감정이입이 안 됩니다.
그냥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 수준입니다.


게다가 주인공은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읽을 수 있는 초능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의도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이따금 다른 사람의 생각이 머릿속에 흘러 들어오는 정도의 능력입니다.
이게 쥰의 사망 사건 진상을 파헤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지만,
놀라울 정도로 별 도움이 안 됩니다.

이 능력이 사건 수사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어디에 쓰일까요?
더 놀랍게도 수사 외에도 스토리상 필요한 부분이 거의 없습니다.
능력에 부속된 것처럼 보이는 두통이 더 스토리에 도움이 되는 수준입니다.

모든 사건이 끝난 후, 마지막 장면에서
자신을 집요하게 취재하려는 기자에게 복수하는 장면에서는 멋지게 능력이 사용됩니다.
왜 없어도 상관없는 장면에서 진가가 발휘되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건 수사 전개도 너무 느슨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적극적으로 사건을 수사하지 않습니다.
형사도 아니고 그냥 사망자의 학교 친구일 뿐이니까요.
게다가 상황도 '쥰이 자살인 것 같은데, 살인이라는 소문도 있다'같은
애매한 상황입니다.

사망 전 쥰이 주인공에게 보낸 편지가 있는데,
사건이 흥미로워질 내용은 안 적혀 있습니다.
충격적인 사망 장면만 있을 뿐 미스테리한 부분이 전혀 없습니다.

주인공의 초능력으로 의문점을 생성할 여지는 있는데
왜 그런 부분을 이용하지 않았는지 모르겠군요.
그냥 주인공 친구가 죽었다하고 끝나고 이후의 스토리에 연결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쥰의 사망에는 아무런 미스테리가 없느냐? 이건 또 아닙니다.
사실 주인공과 쥰은 H씬까지 진도가 나갈 정도로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또 나중에 담당형사가 말해준 사실로
쥰은 사실 사망할 당시 임신했으며, 그 아이는 혈액형상 주인공의 아이가 아닙니다.

근데 이런 흥미로운 사실이 게임 후반부에 나옵니다.
이게 게임 초중반부에 나왔다면 훨씬 게임에 몰입하기 쉬웠을 텐데요.



제 눈에는 단점이 많이 보이긴 하지만 장점이 없는 게임은 아닙니다.
사실 사건 수사의 관점을 제쳐 놓고 게임을 보면 흥미로운 전개가 많이 나와요.
등장인물 전체가 맛이 갔습니다.

주인공의 인간관계는 친구들과 그 부모님들, 그리고 난X클럽과 병원 관련 인물들인데
난X클럽의 인간들이야 당연히 제정신이 아니죠.
친구들은 비교적 정상적인데 그 부모님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방금 말했던 여자친구도 비범한데, 주인공과 자신이 연인관계인 건 맞지만
자신을 속박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까지는 뭐 정상적이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이 지나칩니다.
다른 남자와 H씬이 있고, 행위 도중에 주인공에게 당당하게 전화까지 합니다.
이렇게까지 하고, 마지막에는 결국 주인공하고 여자친구하고 어떻게 잘 됩니다.
주인공은 심지어 여자친구에게 나중에 난X클럽을 소개해줘야겠다는 생각까지 합니다.

제 리뷰로만 읽으면 미친 얘기같고 실제로 이런 소재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분도 있지만
요즘 에로게는 너무 소프트하고 전형적입니다.
에로게라면 좀 더 과격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미친 요소들이 오히려 서클 메이트를 살려준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장점은 바로 담당형사입니다.
이 형사는 저를 불쾌하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말을 재수없게 하는 스타일이에요.
각 챕터가 끝날 때마다 누군가의 집에 탐문 수사를 가서
택배같은 게 왔다고 억지로 문을 열게 하고, 사람을 범인으로 모는 질문을 계속 합니다.
'당신은 치한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까'같은 질문을 하죠.
그리고 '아니요'를 선택하면, '네'라고 대답할 때까지 거짓말하지 말라고 합니다.
게임이 진도가 안 나가요.
문을 닫으려고 하면 억지로 계속 문을 열면서 한 마디씩 더하는 집요함까지 보여줍니다.

이 형사가 찾아가는 집은 진범의 집으로 추정됩니다.
제가 사건과 무관한 집주인이라고 생각하고 형사와 그런 대화를 한다면,
그냥 짜증날 뿐이겠죠.
하지만, 범죄자 입장에서는 계속 찾아오는 형사가 불쾌하면서도
형사의 말 하나하나가 신경쓰입니다. 끊임없이 심리싸움을 해야하죠.

이런 장면을 잘 묘사해놓은 소설은 많이 봤지만,
게임에서는 다소 미흡했는데, 서클메이트에서는 잘 구현되어 있습니다.
이 연출은 꽤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총평하자면, 개인적으로 우울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장르 자체가 제 마음에 들지 않다 보니
단점이 평소보다 더 많이 눈에 들어온 것 같기도 합니다.

우울 게임인 것보다 완성도 자체에 문제가 많다는 것이 제 의견이지만
그런 평가를 내리는 분들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2019년 7월 21일 일요일

리뷰 : 울퉁불퉁한 레몬(1994/1/21, 본비봉봉)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비봉봉은 비쥬얼 아츠 산하의 회사 중 하나입니다.

비쥬얼 아츠는 산하에 수많은 회사를 두고 있습니다.
다수의 산하 회사들은 제가 욕하거나, 혹은 이름만 들어봤고
이름도 못 들어본 회사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SAGA PLANETS처럼 간간이 훌륭한 작품을 내는 회사도 있고,
130cm나 스튜디오 뫼비우스처럼 사라지고 보니 아쉬운 회사도 있고,
otherwise나 RAM처럼 잠깐이나마 히트를 쳤던 회사도 있죠.

세세히 따져 보면 괜찮은 회사들도 좀 있었지만,
비쥬얼 아츠의 이미지는 단 한 회사로 정리됩니다.
바로 <KANON>, <AIR>, <CLANNAD>의 key입니다.
다른 회사가 무슨 짓을 하더라도
key의 명성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립니다.

어쩔 수 없는 노릇입니다. 상대가 key니까요.


하지만, key사는 99년도에 <KANON>으로 데뷔한 회사이며
비쥬얼 아츠는 그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PC-98시절에도 산하에 많은 회사가 있었죠.
그 당시에 비쥬얼 아츠를 대표하는 회사는 역시 본비봉봉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본비봉봉은 90년대에는 상당히 활발하게 작품을 내는 회사였으나,
2000년도에 들어서 Bonbee!로 브랜드명을 바꾼 이후에는
활동이 많이 뜸해졌으며, 2007년도 이후로 작품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망하지는 않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만, 사실상 망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이번에 리뷰할 <울퉁불퉁한 레몬>의 주인공입니다.
에로게 주인공으로서는 특이하게도 뉴하프입니다.
주인공은 부모님을 여의고 여동생과 둘이 먹고 살기 위해,
수술을 하고 업소에 다니게 됩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어느날 사라진 여동생의 비디오가 배달됩니다.
NTR물의 비디오 엔딩 전개가 이 게임에서는 오프닝에 사용됩니다.
주인공은 여동생을 되찾기 위해서,
여동생이 다니던 여학교에 용무원 대행으로 잠입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게임 진행 방식은 <동급생>과 비슷합니다.
무대는 학교와 그 근처로 제한적이지만 교내의 여러 장소를 돌아다니며
수많은 여성들과 접촉하고 조사를 합니다.



장소를 옮겨다닐 때마다 시간도 흐릅니다.
시간 시스템이 나름 정교해서 낮과 밤이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시간에 10분씩 학교의 쉬는 시간도 구현해 놓았습니다.
수업시간에는 복도에 사람이 없다가, 쉬는 시간이나 방과후가 되면
사람이 많아집니다.

이 사람, 저 사람 바쁘게 만나고 다녀야 합니다.
정해진 날짜에 정해진 이벤트를 보지 못하면 게임 오버를 당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행히도 사이비 종교 동아리에 가입하면 게임 오버 대신
시간을 되돌려줍니다.

주인공이 용무원 대행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5일뿐입니다.
5일동안 열심히 돌아다니며, 여동생을 찾고 학교 내의 음모를 파헤쳐야 합니다.
대체, 여동생을 잡아간 범인은 누구일까요?



용무원 대행으로 취직하고 처음으로 교장에게 인사하러 갑니다.
교장의 외관만 보면,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범인 혹은 흑막을 찾은 기분입니다.
바로 교장 멱살잡고 여동생 내놓으라고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주인공이 학생회 명단을 좀 보면 안 되겠냐고 하자,
학생들의 개인정보가 담겨 있어서 안 된다고 수사를 방해하는 게 영 수상합니다.
주인공은 장난전화로 교장을 속여서 학생회 명단을 훔쳐 냅니다.


나중에서야 밝혀지게 되지만, 사실 교장은 좋은 사람입니다.
주인공이 수사를 계속 하며 진상에 다가가게 되자,
주인공을 내쫓아야 한다는 의견이 학교에서 나오게 되는데
교장이 주인공을 실드쳐줍니다.

교장은 여학교의 학생들이 너무 점잖고 활기가 없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교장답지 않은 화려한 옷차림도 학생들이 좀 더 활발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의도적인 컨셉이었던 겁니다.
주인공이 용무원 대행으로 오고 나서, 학생들이 많이 명랑해졌다고 기뻐하며
주인공이 문제없이 계속 학교에 있을 수 있도록 지원해줍니다.

생각해 보면, 학생회 명단을 함부로 보여 주지 않은 것도 
교육자로서 당연한 행동이었죠. 참교육자입니다.
다만, 저런 옷차림이 학생들의 활발함이랑 관련이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군요.



학교를 돌아다니며, 많은 미소녀들과 이야기를 나누어야 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라도 꾸준히 나누어야 해피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등장 캐릭터가 상당히 많기는 하지만
각 대화가 길지도 않고, 캐릭터들이 귀엽기 때문에 템포 좋게 게임을
진행해 나갈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학생 캐릭터들은 주인공에게 적지 않은 호감을 갖고 있습니다.



수사를 거듭할수록 '최면'이나 '원X교제'같은 소재들이 등장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겁지 않은 개그물로 진행됩니다.
여기까지는 아쉽지 않은데, 그 후 진범을 잡고, 모든 진상을 알게 되고, 
여동생까지 되찾는 과정까지도 다소 허무합니다.
악역을 좀 더 악역답게 만들고, 마지막을 좀 더 통쾌하게 만들었다면
좀 더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사건이 해결된 이후, 이별의 시간이 찾아옵니다.
주인공과 깊은 인연을 맺었던 학생 열 두명이 모두 체육관에 모였습니다.
교장은 주인공이 학교에 계속 남아서 일해주기를 바랍니다.

학생들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교장은
만일 단 한 명의 반대도 없이 열 두 학생 전원이 찬성한다면
주인공을 학교에서 고용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하여, 캐릭터들이 하나씩 앞으로 나오며
주인공 덕분에 용기를 얻었네, 뭔가를 배웠네 하며 주인공의 잔류를 찬성합니다.
처음에는 주인공을 경계하던 캐릭터도 있고,
주인공을 열렬히 좋아했던 캐릭터도 있었는데
그런 캐릭터들이 한 마디씩 하며 성장한 모습을 보여주는 건 꽤 감동적입니다.



그렇게 다들 찬성하던 중 뜬금없이 얘가 반대해서 학교에서 쫓겨났습니다.
보통 다들 찬성하는 분위기면 눈치봐서 찬성해야 되는 거 아닌가요?
모두가 예스할 때, 혼자 노라고 말합니다.
교장도 가차없어서 진짜로 한 명만 반대하니까 바로 쫓아냅니다.
설득할 시간도 안 줘요.

사실 주인공이 있는 5일동안, 학교 내를 계속 돌아다니며
열두 캐릭터들과 최소 6번은 대화해야 해피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학교를 아무리 돌아다녀도 두 명정도가 잘 안 보여서
해피엔딩 못 볼줄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쉽게 해피엔딩을 봤었는데 좀 방심했나 봅니다.



총평하자면, 전체적으로 조합이 잘 된 에로게입니다.
본비봉봉은 이 시기의 게임 회사치고는 시스템의 편의성을 많이 고려하는 회사였고,
엘프의 <동급생>만큼이나 편리하게 게임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거기에 매력적인 캐릭터들을 다수 등장시킴으로서
게임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도록 만들었습니다.
스토리가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지금 플레이해도 손색없는 고전 게임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2019년 7월 14일 일요일

리뷰 : 타락나라의 앤지 ~광계의 X노예들~(1996/4/19, PIL)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 게임은 리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리뷰할 게임을 선정하는 기준은
제가 좋아하는 게임이거나 좋아하지 않더라도
그 게임과 관련하여 할 얘기가 있을 때입니다.
혹은, 별 감흥이 없거나 오히려 싫어하더라도
그냥 넘어가기에는 너무나도 유명한 게임을 리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타락 나라의 앤지 ~광기의 X노예들~>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호불호가 상당히 갈리는 작품 중 하나로 저는 극불호입니다.
PIL 스스로가 소개하는 이 게임의 장르는
'변태계열 스카톨로지 개그 SM 게임'입니다.



주인공은 앤지라는 이름의 여성입니다.
주변의 남자들이 너무나도 시시하고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습니다.

그러던 중, 길거리에서 전신고무슈트, 세일러복 상의, 딜X가 붙은 기저귀 조합이라는
블로그에 감히 올리지도 못할 임팩트있는 옷차림을 한 사람을 발견합니다.
덧붙여, 토끼 귀를 하고, 시계를 보고 있습니다.



누구라도 피할 외관에 뜬금없이 필이 꽃힌 앤지는 친구와 함께 미행하여
그 사람이 지하계단으로 내려가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앤지와 그의 친구 루비는 계단을 내려가려다 그 아래로 떨어지게 됩니다.
그 아래에 있는 세계는 단순히 건물의 지하가 아니라
변태적이고 퇴폐적인 이세계 타락나라였던 것입니다.


게임의 제목, 그리고 시계를 보는 토끼가 등장하는 프롤로그에서
이 게임은 소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패러디했다는 것을
어렵지 않게 눈치챌 수 있습니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는 특유의 불가사의하고 우스꽝스러운 분위기 때문에
소설, 영화, 만화, 게임 등 많은 창작물에 영향을 주었습니다.
남성향 에로게에서는 유니존 쉬프트의 <앨리스 퍼레이드>가 있고,
오토메 게임에도 시리즈가 있죠.
제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연관된 모든 작품들을 확인한 건 아니지만,
적어도 에로게에 한정해서는 타락나라의 앤지가 가장 이상할 겁니다.



타락나라에 떨어진 앤지와 루비는 여러 장소들을 돌아다니며,
많은 사람들을 만납니다.
이 이동의 과정은 RPG처럼 되어 있습니다.
적과 조우하고, 경험치를 받고 레벨을 올리는 방식입니다.

문제는 전투 방식이 너무 변태적이라는 겁니다.
멀쩡하게 생긴 남자가 나타나서 오줌을 먹게 해달라고 해서
앤지와 루비 둘 중 하나가 그걸 또 줍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해요. 더 상세히 적을 생각은 없지만 굉장히 하드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스캇물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더럽잖아요.
근데 이 게임은 그 더러움을 개그로 풀어냈습니다.
그래서 더 엽기적이고, 더 변태적이고, 더 충격적입니다.



총평하자면, 소재 자체가 저에게는 감당이 안 되는 게임입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소재이지만 게임 자체는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패러디와 개그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게 즐길 수 있다고, 혹자는 말합니다.
이런 소재에 면역이 있으신 분이라면 할 만한 게임입니다.
그런 면역은 어떻게 생기는 건지 모르겠군요.

2019년 7월 7일 일요일

리뷰 : 학원소돔 ~교실의 X노예들~(1995/9/8, PIL)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학원소돔 ~교실의 X노예들~>입니다.
제목의 소돔은 사드 후작의 소설 <소돔의 120일>에서 따왔다고 합니다.

흉악한 범죄자가 총 들고 여학교로 쳐들어와서
학급을 점거하고 학생들을 감금한다는 충격적인 내용입니다.
비교될만한 PC-98시절의 게임은 스튜디오 뫼비우스의 <악몽>이 있습니다.
<악몽>은 한 학급을 통째로 저택으로 납치하는 것이었고,
학원소돔은 학교를 점거한다는 차이점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점거하는 스타일의 게임은
Liquid의 <병원소돔>이나, 스튜디오 뫼비우스의 <The God of Death> 등이 있습니다.
G.J?의 <110 ~산부인과 사형수 병원잭~>이라는 게임도 있는데
학원소돔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은 작품으로 굉장히 흡사합니다.
학원소돔은 이런 점거 계열 게임의 원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원소돔이 후대의 게임들과 가장 차별화된 요소는
주인공이 범죄자가 아니라 협박 당하는 피해자 중 하나라는 점입니다.



주인공은 학교의 남성 교생선생님입니다.
수업 도중 갑자기 웬 정신 나간 범죄자가 총 들고 나타나서 협박합니다.
이 범죄자는 본인 스스로 나쁜 짓을 하는 건 물론이고,
하필 주인공에게 이런 저런 몹쓸 짓을 시킵니다.
어떤 학생들을 어떻게 괴롭힐 것인지 선택권도 주고, 직접 실행도 해야됩니다.
어쩌겠습니까? 시키는 사람이 총 들고 있는데.



게임 도중 다양한 선택지가 뜨는데,
범죄자의 명령에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도 있고,
협박을 핑계로 적극적으로 몹쓸 짓을 할 수도 있습니다.
명령을 따르지 않고 반항하는 선택지도 있는데 총 맞고 게임오버 당합니다.



선택지에는 시간제한도 있습니다.
오른쪽아래에 있는 게이지가 카운트 다운식으로 줄어드는데,
주어진 시간 내에 선택을 안 해도 총 맞는 경우도 있습니다.
총든 범죄자가 눈앞에 있는데 대답 좀 늦을 수도 있잖아요.
사람 야박하게 선택지 읽는 동안 쏴 버립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주인공이 범죄자가 아니라
범죄자에게 협박당하는 입장의 소시민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게임을 '앞잡이 시뮬레이션 게임'이라고 부릅니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이 게임이 아쉬운 점은 엔딩입니다.
범죄자에게 적극 가담하는 선택지를 많이 선택했다면,
해방된 이후 학생들에게 경멸당하는 엔딩이 있었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의 경멸과 현재의 총알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하는 게임이 되는 거죠.

선택지가 엔딩에 영향을 주기는 합니다.
여성 캐릭터들의 호감도 수치에 영향을 줘서
호감도가 높은 특정 캐릭터의 엔딩을 볼 수 있는 거죠.



다만, 이런 대형 사건으로 인한 마음의 상처가
수개월만에 쉽게 치유된 듯한 인상을 주는 엔딩이라서 아쉽습니다.
마지막에, 고난과 역경이 있더라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강조하는 것도 뜬금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평하자면, 굉장히 하드코어한 게임입니다.
PC-98시절 중에서는 손에 꼽을만한 하드코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단순히 하드코어만 본다면 후대의 게임들이 이보다 더합니다.
학원소돔만의 재미는 주인공이 처한 상황과 게임 시스템에 있죠.
범죄자 앞잡이짓 게임 한 번 해보고 싶다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