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8월 25일 일요일

리뷰 : Sela(1995/12/22, HERVES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5년도에 HERVEST에서 발매된 육성 시뮬레이션 <Sela>입니다.

90년대는 이런 스타일과 비슷한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의 전성기였고,
그 중심에는 93년도에 발매된 <프린세스메이커2>가 있었습니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이 발매되면 장점도 단점도
<프린세스메이커2>와 비교당하던 시절이었죠.

Sela는 시스템이나 진행 스타일을 볼 때,
<프린세스메이커2>의 영향을 받은 게임이 틀림없었고
볼륨이나 완성도 면에서 냉정하게 평가하면 <프린세스메이커2>의 하위호환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세계 평화를 위협하는 암흑의 마도사를 쓰러뜨린 기사단의 유일한 생존자입니다.
주인공을 지휘하던 기사단장은 마도사를 쓰러뜨리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였으며,
그 직전에 주인공에게 딸을 부탁합니다.

주인공이 돌아왔으니 아빠도 돌아왔겠다며 기뻐하는 소녀에게
너희 아빠는 죽었다고 말하는 건 참 마음 아픈 일입니다.
아무튼 주인공은 세계를 구한 일원으로서 얻게 된 부귀영화를 모두 버리고,
기사단장의 딸 세라와 함께 시골로 내려가게 됩니다.

하지만, 세라를 육성하는데 굳이 부귀영화를 버릴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입니다.
자녀교육비에 치이며 살아본 적이 없는 미혼 주인공의 한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게임 시작 시점에서 세라는 이미 다 컸습니다.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부터 육성하는 걸 기대한 플레이어에게는 안타까운 일입니다.
플레이어가 세라를 육성하는 기간은 단 1년뿐입니다.
<프린세스메이커2>와 같이 세라에게 아르바이트나 교육을 시킬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이 <프린세스메이커2>와 가장 차이나는 부분은
이벤트의 주체가 세라가 아닌 주인공 자신이라는 점입니다.



마을을 돌아다니며 마을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건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마을 아가씨도 있습니다.
세라에게 특별한 감정을 갖고 있는 마을 청년도 있지만,
주인공이 대화하고 직접 견제합니다.


주인공이 모험을 나가서 돈을 벌어오며,
세라의 아르바이트보다 이쪽이 더 돈이 잘 벌립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는 세라를 열심히 키우기 전에
주인공 장비부터 잘 맞춰줘야 됩니다.

주인공이 열심히 모험해서 벌어 온 돈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합니다.
하지만, 모험해서 벌어온 돈+아르바이트 평균 소득에 비해
장비값이나 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자꾸 주인공이 버리고 온 부귀영화가 생각납니다.



엔딩에 필요한 대관석을 수색하는 이벤트도 주인공이 다 합니다.
대관석을 얻는 스토리는 나름 재미있습니다.


근데, 그럼 세라는 대체 하는 게 뭘까요?
주인공이 모험을 나가 있는 동안
세라에게는 아르바이트 혹은 교육을 시켜 주고,
주인공이 모험에서 돌아온 이후 그에 대한 결과만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이<프린세스메이커2>와의 결정적인 차이입니다.
주인공이 활약하는 어드벤처 파트에 힘을 많이 실어 주고,
세라의 육성 파트는 다소 후순위로 밀려 있습니다.

<프린세스메이커2>와는 다른 재미를 준다는 장점은 있지만,
육성 시뮬레이션이 너무 뒷전으로 밀려있고,
세라의 캐릭터가 너무 수동적이라 아쉽습니다.



앞서 말한 부분은 호불호가 갈리는 부분이고,
이 게임의 명확한 단점은 게임 전개가 너무 단조롭다는 점입니다.

이 게임은 8가지 엔딩이 있습니다.
세라의 파라미터인 건강, 교양, 상냥함, 감수성, 기품, 색기, 미모, 애정 등의
수치가 엔딩에 영향을 줍니다.

근데 정작 베스트 엔딩의 조건은 모든 수치가 150이상,
그 다음 엔딩은 모든 수치가 130이상 이런 식입니다.
각각의 능력치가 엔딩에 주는 영향은 미미하고,
모든 능력치가 총체적으로 영향을 줍니다.

오로지 건강하게 키우고 싶다거나, 교양있는 사람으로 키우고 싶어도
다른 능력치를 등한시하면 그냥 배드엔딩을 보는 시스템인 겁니다.



엔딩도 결국은 세라와 주인공이 잘 되느냐, 잘 안 되느냐 뿐입니다.
<프린세스메이커2>처럼 다양한 직업으로 키울 수 없는 거죠.

게다가 육성하면서 등장하는 이벤트도 다양하지 않습니다.
사실상, 여러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비슷비슷한 이벤트를 반복적으로 보는 귀찮은 작업을 견뎌야 한다는 거죠.



총평하자면, 나름 재미있는 게임입니다만
여러 번 즐기기 보다는 단 한 번 즐기기에 적합한 게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멀티 엔딩 방식의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에 이런 말은
칭찬이라고 할 수 없는 것 같군요.

2019년 8월 17일 토요일

리뷰 : MARINES ~가이롬의 봉인~(1994/7/25, HERVES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비쥬얼 아츠 산하의 HERVEST에서 제작한
<MARINES ~가이롬의 봉인~>입니다.
HERVEST는 PC98시절 RPG나 시뮬레이션을 주로 제작하는 회사였습니다.
MARINES의 경우는 퍼즐 게임입니다.



퍼즐 게임의 내용은 각각의 능력치를 가진 캐릭터 넷을 조종해서
장애물을 피해 성으로 '쿠아로'라는 이름의 공을 넣는 게임입니다.
가장 신경써야할 것은 곳곳에 놓여져 있는 회오리 바람입니다.
'쿠아로'의 방향을 전환시켜 줍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난이도가 점점 높아집니다.
회오리가 정신없을 정도로 많아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만, 경로가 어느정도 정해져 있기 때문에
퍼즐 자체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는 어렵지 않습니다.



회오리가 전환시켜주는 방향은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주인공 파티는 고작 넷이며, 한 명은 공을 던져야 합니다.

따라서, 회오리가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건 눈속임일 뿐입니다.
그 회오리를 전부 조작할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습니다.

플레이어가 조작할 수 있는 건 세 캐릭터 뿐이고
세 캐릭터의 능력도 이미 정해져 있는 단 하나뿐입다.

'쿠아로'는 무한으로 던질 수 있기 때문에,
시작하자마자 대충 궤도를 알기 위해 던져 보고,
문제가 되는 구간을 알아낸 후, 캐릭터들을 이용해서 
그 문제를 조금씩 수정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해결될 수 있습니다.
다른 능력이나 아이템 같은 것이 있어서 좀 더 다양한 패턴이 있었다면 
더 플레이어를 골치 아프게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만, 패턴이 고정되어 있는 것치고는 난이도가 좀 있습니다.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적당히 생각을 해야할 필요가 있는 거죠.
단순한 패턴으로 이렇게 즐길 수 있는 퍼즐을 만들어 낸 것에서
제작자의 역량을 알 수 있습니다.
머리를 잘 쓴 것 같아요.

회오리를 이용한 퍼즐이 메인이지만
RPG스타일의 다른 퍼즐도 존재하고
보스전은 RPG스타일의 전투 방식입니다.



전투 시스템은 그다지 호평하지 않습니다.
왜 있는지 이해가 안 되는 수준입니다.

전투를 이기기 위해 필요한 것은 퍼즐 맵 곳곳에 있는 보물상자입니다.
보물상자에서 스킬이나 능력치 상승이 나오고
그렇게 육성된 캐릭터로 전투를 하는 거죠.

문제는 그 보물상자를 얻는 데는 그다지 어려움이 없다는 점입니다.
보물상자를 찾을 때, 퍼즐을 이용해서 찾는 것도 아니고
여러 아이템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도 아닙니다.
HP 상승 같은 경우는 어떤 캐릭터에게 부여할지 선택하기는 하지만
HP 상승이 너무 미미해서 그다지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전투의 난이도가 낮은 건 아니지만, 
육성이나 스킬 사용에서 전략적인 판단을 할 부분이 많지 않았습니다.
전투 시스템은 이 게임에서 마이너스 요소라고 생각되는군요.




총평하자면, 귀여운 캐릭터를 조작하며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퍼즐게임입니다.

HERVEST 게임의 경우는 설정이나 스토리가 쓸데없이 깊게 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게임도 마찬가지입니다. 프롤로그부터 복잡한 세계관이 펼쳐집니다.
그런 내용에 대해 소개를 하지 않는 이유는,
불필요할 뿐더러 오히려 이 게임을 즐기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잘 만든 미소녀 퍼즐게임입니다.
그렇게 단순하게 정리하는 편이 이 게임을 더 잘 표현하는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2019년 8월 11일 일요일

리뷰 : SATYR(1994/9/2, Aypi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Aypio라고 쓰고 아보리오라고 읽습니다.
어느 나라의 읽는 방법인지는 모르겠군요.

비쥬얼 아츠의 계열사 중 하나로
13cm, 130cm, 13cc 등의 에로게 회사가 이 회사와 같은 계열입니다.
13cm 등이 Aypio 쪽으로 병합되었다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그런 정보는 전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 착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130cm에는 그럭저럭 좋은 추억이 많습니다.
<Princess bride>, <그녀들의 유의>, <오니우타> 등이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저는 대체로 좋은 게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에 <여름색 나팔꽃 레지던스>가 개발 도중 다른 회사로 넘어가 버리고
그 후 사실상 사라진 회사가 되었을 때, 참 아쉬웠습니다.

반면에 Aypio는 그다지 인상깊지 않은 회사였습니다.
좋아하는 게임이 전혀 없죠.
그래도 pc-98시절, Aypio는 나름 활발한 회사였고
리뷰없이 그냥 넘어가기에는 아쉬운 회사이기 때문에
딱 하나만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SATYR>입니다. 사티아라고 읽습니다.
꽃 육성 시뮬레이션, 원예 시뮬레이션입니다.



꽃집 아가씨 아야카의 부모님이 여행을 가게 되어,
주인공에게 꽃집일을 도와달라고 부탁하는 스토리입니다.



꽃마다 요정이 있기 때문에 꽃과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귀여운 캐릭터로 의인화된 꽃을 대화하면서 키우는 게임이죠.
전반적으로 아이디어는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실제 게임은 아이디어에 미치지 못하였습니다.
가장 큰 문제는 게임이 너무 쉽고 단순하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꽃이 등장하고 그에 따라 키우는 방법이 각각 다르지만
실질적으로 플레이어가 하는 일이라고는
실내, 실외, 그늘 등 꽃의 배치 장소를 바꿔주는 것뿐입니다.
파라미터도 단조롭고,
갑작스러운 이벤트가 발생하는 경우도 없어요.

이 분야 레전드 <프린세스 메이커2>보다도 발매가 늦은 게임인데
심각할 정도로 시뮬레이션 요소가 없습니다.



다만, 캐릭터는 잘 짜여져 있습니다.
대화는 별 내용 없지만 그래도 꽤 즐겁습니다.
요정도 꽃집 아가씨 아야카도 매력적입니다.



총평하자면, 나름 재미있게 플레이했지만
더 좋은 게임이 될 가능성이 너무나도 많이 보이는 게임입니다.

게임의 깊이가 너무 부족합니다.
다회차 플레이가 가능할 정도로 많은 변수가 있었다면
명작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2019년 8월 4일 일요일

리뷰 : 누크3 ~최후의 성전~(1994/12/16, 본비봉봉)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누크> 시리즈는 본비봉봉의 간판 시리즈였습니다.
바보같고 여자를 밝히는 전형적인 90년대 스타일의 주인공과
IQ 180의 천재 미소녀 피릴이 악당들의 음모를 파헤친다는 어드벤처 시리즈입니다.



이 시리즈의 마스코트인 IQ 180의 천재 미소녀 피릴입니다.
파르 왕국이라는 가상 국가 출신입니다. 주인공과는 PC 통신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피릴과 함께 파르 왕국의 길버트 제약회사에서 만든
신약 '누크'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1편의 스토리입니다.

개인적인 의견으로 피릴은 천재, 외국계라는 설정에 비해
매력이 미묘하다고 느껴집니다.
해킹 실력 이외에는 천재라는 설정도 잘 와닿지 않습니다.



주인공과 자주 부딪히는 길버트사 친위대 4인방입니다.
피릴보다도 이쪽이 더 매력적입니다.

악랄한 짓을 서슴지 않는 악당이지만 불필요한 살인을 하지 않는 주의이기 때문에
주인공 일행은 궁지에 몰아놓고서도 마지막에는 당하는 역할입니다.



게임 내에서 악역, 개그, 에로 등 다양한 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진짜 악당스러운 분위기를 보여주는 것은 보스 길버트와 비서인 라비아입니다.
라비아는 2편 초반에는 주인공의 통역 조력자로 별볼일 없는 캐릭터였으나
길버트의 비서가 된 이후에는 지능적인 악당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누크3 ~최후의 성전~>의 무대는 이집트로서 
3편은 고고학을 소재로 한 게임이 되었습니다.
'최후의 성전'이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3편에서 주인공 일행은 주인공과 피릴 뿐만 아니라
재벌 2세인 시카자키와 박물관 관장 미스 마데린까지 4명으로 구성됩니다.

시카자키는 2편부터 등장했던 캐릭터로서 피릴의 대학 선배입니다.
초반에 등장할 때까지만 해도, 재수없는 엄친아였습니다.
피릴에게 찝적대는 역할이었으며
돈, 외모, 학벌 거기에 싸움실력까지 주인공보다 우월했던 
강력한 사랑의 라이벌이었습니다.

초반에만 해도 분명 그랬는데, 2편에서 주인공과 계속 여행을 다니며
말싸움을 하더니 어느 순간 주인공과 친구가 되었고,
알고 보니 시카자키도 바보였습니다.

3편에서는 갑자기 콧수염을 기르고 등장했습니다.
'길버트의 비서 라비아가 시카자키의 회사에 캡스톤이라는 유물을 주문했다'는
정보를 주인공과 피릴에게 전해줍니다.
주인공과 피릴은 그 유물에 중대한 비밀이 있다고 생각하고
박물관에 잠입하여 그 유물을 조사하려고 합니다.

캡스톤은 피라미드 꼭대기의 돌이며
주인공과 피릴은 캡스톤에 들어있던 철판을 손에 넣게 됩니다.


당연히 박물관 보안이 전문 털이범도 아닌 학생 둘에게 간단히 뚫리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박물관의 책임자인 미스 마데린은 주인공 일행의 행동을 묵인합니다.
다음 날, 미스 마데린은 주인공 일행을 찾아가 사정을 듣게 됩니다.
사정을 들은 미스 마데린은 주인공, 피릴과 함께
이집트로 건너가 유적을 조사하기로 합니다.


여기까지가 누크3의 대략적인 전개입니다.
캐릭터들은 매력적이지만 사실 스토리 자체는 아쉬움이 많습니다.

다만, 누크3의 장점은 스토리가 아니라
다양한 시스템을 이용하여 게임성 및 연출의 완성도를 높인 점입니다.
누크3의 기본 시스템은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이지만
그 외에도 여러 시스템을 도입하여 다양한 시도를 하였습니다.



건물 탐색이나 유적 탐사 부분에서 RPG처럼 필드를 이동할 수 있으며
미로를 헤메거나 퍼즐을 풀어내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난이도가 쉬운 편이라서 아쉬운 점도 있지만
패턴이 다양하고 쓸데없는 노가다성 퍼즐을 최대한 배제한 편이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누크3 뿐만 아니라 누크 시리즈, 더 나아가 본비봉봉의
가장 큰 시스템적 특색은 바로 '하늘의 소리'입니다.

'하늘의 소리'는 기본적으로 해설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보통 에로게는 주인공 1인칭의 서술로 진행되고, 
그것은 본비봉봉의 게임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1인칭으로 진행하는 도중, 본비봉봉 게임에는 
특이하게도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의 해설이 덧붙여지는데
그 해설이 스스로 자신을 '하늘의 소리'라고 자칭합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하늘의 소리입니다.>

'하늘의 소리' 텍스트는 화면의 윗부분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본비봉봉에는 하늘의 소리가 등장하며,
지금까지 리뷰한 <울퉁불퉁한 레몬>, <서클메이트>에도 등장합니다.

하지만, 이제서야 '하늘의 소리'를 소개하는 이유는
'하늘의 소리' 시스템은 누크 시리즈에서 가장 잘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단순한 해설, 조언 정도의 역할에 그쳤던 '하늘의 소리'이지만
누크 시리즈에서는 개그, 츳코미류의 태클의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특히, 누크의 주인공이 바보이기 때문에
주인공의 머릿속에 태클을 걸어주는 역할을 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 생각 할 때냐?', '가끔은 좋은 생각도 하는구나!', '아니, 그럴 일은 절대 없거든.'
이런 식으로 말이죠.


다른 회사 게임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스타일입니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하늘의 소리'를 읽다 보면
웬일인지 낯설지가 않은 스타일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유명한 짤을 하나 첨부하도록 하겠습니다.




딱 이겁니다. 오덕체요.
표현방식이 약간 다를 뿐 내용 자체가 이런 식으로 흘러갑니다.
'하늘의 소리'는 주인공이 더더욱 찌질해 보이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겁니다.

심한 정도는 아니지만 면역이 없는 분들에게는
누크3는 다소 오글거리는 게임이라고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또 다른 특이한 시스템은 바로 정신 트레이스 시스템입니다.
이 시스템은 간단히 설명하면 시점의 변환입니다.
주인공의 시점뿐만 아니라 다른 시점을 보여줌으로써,
다른 인물들의 생각과 다른 곳에서 일어나는 사건 등을 알려주는 역할입니다.

친위대 4인방의 행동을 표현할 때 유용하게 사용됩니다.
특히 4인방은 각각 개성이 풍부하기 때문에
각자의 생각을 들여다 보는 것은 꽤 재미있는 방식입니다.

정신 트레이스 시스템이 자주 사용되는 경우는 바로 H씬입니다.
H씬 직전에 누구의 시점에서 전개할지 물어봅니다.
주인공과 피릴의 H씬이 있다면 주인공 시점, 피릴 시점 두 시점에서 즐길 수 있는 거죠.

사실 H씬을 두 시점에서 즐기는 것은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도 패턴을 다양화하여 다양하게 즐길 수가 있도록 만들었죠.

일단, 재벌 2세 시카자키와 엑스트라 회사원의 H씬입니다.
시카자키 시점에서 보면 시카자키는 평소 회사 여직원들이 자신을 눈여겨 보고 있고,
자신을 인기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직원의 시점에서는 여직원들은 모두 시카자키를 경멸하고 있었고,
자신은 돈을 위해 시카자키와 H를 하는 것뿐입니다.
같은 H씬에서도 정반대의 느낌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더 놀라운 경우는 H씬에서 당사자 둘 뿐만이 아니라 
제 3자의 생각을 볼 수 있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이 다른 여성과 H씬을 하는 와중에 피릴의 생각이 텍스트로 보여집니다.
그 장면을 보는 플레이어는
죄책감을 느낄 수도 있고, 주인공을 욕할 수도 있습니다.
신기한 시스템입니다. NTR물에서 더 활용될 여지도 보이고요.


하지만, 정신 트레이스 시스템의 끝은 따로 있습니다.
주인공과 피릴의 H씬 직전에 누구의 시점에서 진행할 것인지 선택지가 뜹니다.
'주인공', '피릴', 그리고 이 자리에 있지도 않은 '미스 마데린'입니다.
'뜬금없이 미스 마데린은 뭐야'라고 생각하고 한 번 선택해 봅니다.

갑자기 미스 마데린의 신음소리가 텍스트로 등장합니다.
그리고 '하늘의 소리'가 이렇게 말하죠.
'와, 이쪽도 한창이군요!'
주인공과 피릴의 H씬 CG를 보여주면서,
전혀 다른 곳에 있는 미스 마데린과 누군가의 H씬이 텍스트로 뜨는 겁니다.

제가 아는 특이한 표현법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엄청난 기법입니다.
보통은 시점 이동을 하더라도, 미스 마데린 쪽의 H씬 CG를 보여주지 않나요?
마치 다른 자막을 켜놓고 영화를 보는 느낌입니다.



포인트 클릭 방식도 자주 사용됩니다.
주인공, 피릴, 미스 마데린이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는 중입니다.
각 캐릭터들을 클릭함으로써 각자의 의견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근데, 아무리 셋을 여러 번 클릭해도 진행이 안 됩니다.
정보 공유는 옛날에 끝났고 계속 반복 대사만 하는데도 말이죠.

답은 웨이트리스입니다. 뒤에 배경처럼 존재하는 웨이트리스도 계속 클릭해줘야 합니다.
별 대사가 없는데도 말이죠.
그렇게 클릭하다보면...



사실 길버트의 비서 라비아가 엿듣고 있었던 거죠.
이 연출 역시 마음에 듭니다.
다른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시스템 그 자체를 도입하고 만족한 것이 아니라
그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해야 멋질까를 고민한 흔적이 엿보입니다.



총평하자면, 스토리는 다소 아쉽긴 합니다만
캐릭터와 시스템이 괜찮은 게임입니다.
특히, 시스템의 경우는 PC-98시절 등장했던 많은 게임 시스템을
한 게임에 집대성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시대를 대표할 만한 게임입니다.
PC-98시절 스타일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플레이해볼 가치가 충분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