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28일 일요일

리뷰 : 번개전사 라이디 1&2(ZyX)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ZyX, 직스라고 읽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한 때, 진짜로 한 때만 좋아했던 회사인데
이 회사의 작품 중 하나인 <음내감염2>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저는 출처 불명의 루머인 <음내감염3> 발매를 믿었고 
그로 인해 ZyX를 계속 눈여겨 보았지만 <음내감염3>는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딱히 마음에 드는 다른 게임도 발매되지 않았기 때문에
ZyX는 제게 있어 금방 잊혀진 회사가 되고 말았죠.



<번개전사 라이디> 시리즈는 ZyX의 게임 중에서도 흥행했던 시리즈였습니다.

1994년 9월 20일 <번개전사 라이디>
1995년 12월 22일 <번개전사 라이디2>
2012년 10월 26일 <번개전사 라이디3 ~역습의 사신관~>
2015년 3월 27일 <라이디 3.5 ~포레스 위기일발~>

리메이크와 재판매가 많았던 게임이지만
정식 신작은 이 정도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중간에 리메이크가 많았기는 하지만 3편은 17년만의 속편입니다.

<컁컁 바니>시리즈를 리뷰할 때,
14년만의 속편인 <투신도시3>가 <컁컁 바니> 시리즈 다음으로
가장 오랫만에 나온 속편이라고 설명드렸던 적이 있는데
잘못된 정보였습니다.
<번개전사 라이디> 시리즈가 더 오래됐네요.

착각한 이유는 3편의 존재 자체를 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리뷰를 쓸 때만 잊고 있었던 게 아니라 최근까지도 잊고 있었어요.
이번에 검색해 보고 기억났습니다.

저는 3편과 3.5편은 플레이하지 않았고,
PC-98 시절의 1,2편과 그 리메이크만 플레이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1편과 2편에 대해서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번개전사 라이디>입니다.
번개를 다루는 여전사 라이디가 주인공이죠.
잡혀간 마을처녀들을 구하기 위해 탑을 모험한다는 이야기입니다.
3D 던전형 RPG게임으로 당시에 많이 나왔던 스타일의 게임입니다.



던전에는 여성형 몬스터들이 등장합니다.
몬스터를 쓰러뜨리면 옷이 벗겨지며 야시시한 CG가 나오죠.



총 여섯 개 층으로 이루어진 탑을 모험합니다.
일단은 미니맵이 있으나 그냥 볼 수 있는 건 아니고,
각 층 보물상자에서 지도를 따로 찾아야 볼 수 있습니다.
지도를 찾기 전에는 미니맵 대신 좌표를 보고 미로를 헤메야 합니다.

RPG로서의 번개전사 라이디는 꽤 비판을 많이 받는 편인데
밸런스가 엉망인 탓이 큽니다.
특히, 필살기를 사용할 때, MP 절반을 사용하는 시스템이 많은 비판을 받고 있습니다.
MP가 너무 빨리 소모될 뿐더러, 효율성도 의문이 듭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 더 큰 문제는 바로 미로찾기입니다.
공략집 없이 플레이하기에 상당히 짜증나는 시스템입니다.
틀림없이 직선길로 똑바로 가고 있는데 
갑자기 뒤돌아서 가고 우회전하고 전혀 다른 장소로 워프하고 지 마음대로입니다.
처음에는 무슨 버그인줄 알았어요.

3D 던전에서 이런 트랩이 있는 게임은 많습니다.
근데 이 게임은 3D맵, 미니맵 그 어디에도 전혀 함정이라는 표시가 없고,
뭔가 이상하다는 대사 한 마디도 없어요.
1층부터 6층까지 모든 벽이 똑같이 생겼기 때문에
플레이어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낄 수도 없습니다.
좌표를 일일히 보면서 진행하지 않는 이상
뭐가 잘못됐는지도 모르고 마냥 헤메는 겁니다.


또, 게임 진행상 막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벽을 통과해서 가야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경우에도 아무 표시가 없습니다.
게임 진행이 갑자기 막혔다하면 모든 의심가는 벽에 
일일히 부딪혀 가면서 통로를 찾아야 돼요.

어떻게든 숨겨진 벽을 찾았다면 그 벽이 어떤 벽인지 꼭 기억해둬야 합니다.
찾아낸 이후에도 그 벽이 3D맵, 미니맵 그 어디에도 표시되지 않아요.
만일, 그 벽이 어떤 벽인지 까먹는다면 또다시 의심가는 벽에
죄다 부딪혀 가면서 진행해야 합니다.



각 층에는 여성 보스가 존재하는데
마을 처녀들을 성고문하고 있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보스들에게는 각각 약점이 있기 때문에,
보스를 만나기 전에 약점을 알아내지 못하면 
제대로 된 전투도 못해 보고 당하게 됩니다.

약점을 모르거나, 전투에서 패배하면 라이디가 붙잡혀 고문당하게 됩니다.
전투에서 승리하면 마을처녀를 구하고 라이디가 보스를 고문하죠.


라이디가 함무라비 대왕과 같은 지역 출신이었는지 
철저하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을 고집합니다.
패배한 보스들은 처절한 고문을 당하면서 용서해 달라고 소리치지만,
냉정한 라이디는 '넌 아무리 빌어도 그만두지 않았잖아.'라는 논리로 
끝을 볼 때까지 고문합니다.



RPG로도, 스토리로도 다소 애매했던 이 게임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바로 이런 여전사 라이디가 고문하고 고문당하는 SM플레이 씬 때문입니다.

21세기가 되어서는 이런 종류의 게임들이 많이 나와있습니다.
여전사나 여병사나 여해적이나 발키리나 공주기사나 대마인 등등
싸우는 히로인과의 과격한 H씬이 들어있는 게임 말이죠.
이 시기에도 싸우는 히로인이 없었던 건 아니지만
과격한 씬은 그 수요에 비해 부족했습니다.

리메이크를 플레이한 분들 중에는
라이디 시리즈가 왜 인기있었는지 이해를 못하겠다는 평가를 하시는 몇 분을 보았는데
게임 자체가 월등히 뛰어 났다기보다는
그 시대에 블루오션이었던 소재를 잘 활용했던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년 후에 발매된 번개전사 라이디 2입니다.
이렇다 할 세계관이나 스토리가 없던 전작에 비해
부족했던 부분을 추가함으로써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RPG파트부터 살펴 보면, 일단 미니맵은 오토매핑 시스템으로 바뀌었습니다.
주인공이 걸어다닐 때마다 미니맵이 완성되는 시스템이죠.
하지만, 전작과 달리 실시간으로 미니맵을 볼 수가 없고
미니맵 버튼을 눌러 따로 켜줘야 하는 불편함이 있습니다.

미니맵 외에는 대체로 전작의 단점들이 많이 개선되었는데
레벨 밸런스도 괜찮아 졌고, 
필살기도 정해진 MP를 쓰고 충전할 수 있는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살짝 짜증나는 부분은 던전에 빈 방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문에 들어갈 때마다 위에 화면과 같이 
'보다', '생각하다', '이동' 명령어가 뜨는 빈 방이 나옵니다.
1개층에 이런 방이 열 몇 개가 나오는데,
그 중 많아야 방 하나 정도에서 아이템이 나오고 나머지는 전부 쓸모가 없어요.

'보다'를 선택하면 그냥 빈방이라고 나오고, 
'생각한다'를 선택하면 별 소용없는 생각만 합니다.
어쩌다 한 번씩 아이템이 나오니 
'보다'나 '생각한다'가 쓸모없다는 걸 알지만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어요.
그러다 보니, 게임 흐름이 너무 자주 끊깁니다.

그냥 자연스럽게 3D맵을 걸어 다니게 만드는 걸로 충분한데,
굳이 빈 방을 만들 필요가 없잖아요.
제작자가 굳이 고생고생해 가며, 플레이어를 귀찮게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많이도 만들었습니다.
몇 걸음 걷다가 빈 방, 또 몇 걸음 걷다가 빈 방, 이런 식입니다.
공실률이 너무 높아서 건물주가 걱정이 될 정도에요.



스토리는 전작과 비슷하게 납치된 마을 처녀들을 구하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납치범인 도적단을 깨부수고, 도적단에게서 노예를 사들이는 흑막을 추적하게 되죠.
스케일이 점점 커지며 종교단체 및 신과의 전투까지 벌어집니다.



여전히 게임의 인기는 고문하기/당하기에 의존하고 있지만
다양한 방법으로 재미를 주려는 시도만큼은 칭찬하고 싶습니다.



총평하자면, 지금 이 시점에는 훨씬 좋은 대체재들이 많은 게임입니다.
오랜만에 1,2편을 잡았지만 굳이 3편을 구해서 하고 싶다는 생각까지는 안 들었는데
그만큼 매력이 애매합니다.

대체재가 많다는 사실을 제쳐놓고 생각하면 
게임 자체는 제가 좋아하는 스타일입니다.
라이디가 당하는 장면보다는 하는 장면이 더 좋아요.
제가 만일 94, 95년도에 이 게임을 플레이했다면 
굉장히 마음에 드는 게임이라는 평가를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6월 21일 일요일

리뷰 : 얀얀의 격투동창회(1995/5/27,텐신도)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텐신도는 90년대에 나름 괜찮았던 회사입니다.
21세기에는 딱히 큰 활약은 없었으며 
같은 계열 회사인 유니존시프트가 더 많은 게임을 냈습니다만
게임을 발매 안 한지 20년이 가까워지는 지금까지도
텐신도 홈페이지는 멀쩡히 살아있고 사후지원도 오랫동안 해 준 회사입니다.


PC-98시절의 텐신도는 유려한 피부채색이 장점이었습니다.
그래픽 외의 내용은 딱히 특징적이지 않았고, 일관적이지도 않았습니다.
어드벤처, 퀴즈게임, RPG, 옴니버스 등 다양한 장르를 만들었고
소재도 제각각이었습니다.

텐신도는 그런 제각각의 게임들을 모아서
팬디스크를 발매했는데 그것이 바로 <얀얀의 격투동창회>입니다.



얀얀의 격투 동창회에 들어있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작품은 다섯 개입니다.

<마샬 에이지> 
- 텐신도의 데뷔작으로 명령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미니게임형 배틀이 가미되었습니다.

<얀얀의 퀴즈 1인분> 
- 이름 그대로 퀴즈게임입니다.

<G.R. ~그래비티 리스폰스~>
- '카츠만의 사춘기 만만세'와 'SEEKER'가 들어있는 옴니버스 게임입니다.
'SEEKER'는 SM 계열의 게임으로 속편까지 있습니다.
'카츠만의 사춘기 만만세'는 게임 자체는 짧고 내용도 없습니다만
특이한 시스템을 갖고 있는데,
시작할 때, '오사카 여자가 좋다'는 선택지를 고르면
등장인물들의 대사가 전부 오사카 사투리로 바뀝니다. 

<JINN ~영원의 용사~>
- 무난하게 잘 만들어진 3D 던전형 RPG 게임입니다.

<고이스>
-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옴니버스 게임입니다.


뭐, 이 정도의 게임들이 모여 있습니다.
단순한 게임들이기 때문에 특별히 리뷰할 이야기는 많지 않습니다.



해당 게임들의 캐릭터를 모아서 만든 얀얀의 격투동창회입니다.
얀얀은 텐신도의 마스코트 캐릭터로 오른쪽의 중국풍 옷을 입은 캐릭터입니다.
여러 캐릭터 중 같이 대결할 넷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UNO나 원카드와 비슷한 규칙의 카드게임입니다.
플레이어까지 다섯이 모여서 게임을 합니다.
규칙이 단순하고 친숙하기 때문에 금방 배워서 즐길 수 있습니다.
간단한 한자를 읽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읽을 수 없어도 플레이하면서 배우면 됩니다.



게임에서 1등을 하면 H씬을 볼 캐릭터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굳이 1등을 못하더라도 꼴등만 면하면 꼴등한 캐릭터의 H씬을 볼 수 있죠.

H씬은 기본적으로 포인트 클릭 방식인데
단순한 포인트 클릭 방식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을 시험했습니다.



대략적인 게임 내용은 이정도로 딱히 이야기할 것이 많지 않은 게임입니다.
텐신도의 다른 게임들과 마찬가지로 별 내용이 없죠.
특히 이건 팬디스크격 미니게임이기 때문에
다른 게임들을 리뷰하지도 않고 이 게임만 리뷰한다는 건 이상한 일입니다.

근데 굳이 이 게임을 리뷰한 이유는
이 게임이 우리나라에서 의외로 플레이한 사람이 많은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게임 제목이 얀얀의 격투동창회인지 모르고
탈의 카드게임으로 플레이했더라도 말이죠.

물론 대다수의 경우, 제대로 된 루트로 얻은 건 아니었지만
윈도우판도 있고, 게임이 쉽고, 
굳이 일본어를 이해하지 않아도 H한 CG를 보기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한국어 패치가 나오지 않은 게임치고는 이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플레이한 게임입니다.


요즘은 좀처럼 보기 힘든 방식이지만
저는 회사의 캐릭터들을 모아서 만든 통합 팬디스크격 게임을 좋아합니다.
엘프 사의 <엘프 올스타즈 탈의작> 시리즈나
앨리스소프트의 <마마뇨뇨>, <와이드뇨> 같은 걸 좋아하죠.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와 접할 기회도 늘어나고,
미처 플레이하지 못하고 놓쳤던 게임도 관심을 가질 수 있는 계기가 되는 거죠.

안타깝게도 이 게임을 플레이하고 
텐신도의 다른 게임에 관심을 가졌다는 이야기는 못 들어 봤습니다.
일본어를 못 해서 이 게임이 다른 게임 캐릭터를 모아서 만든 게임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죠.
하지만. 그런 일본어를 모르시는 분들까지 관심을 갖고 열심히 플레이할 정도였으니
그것만으로도 이 게임은 통합 팬디스크격으로 잘 만들어진 게임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일본어를 알았다면, 혹은 이 게임이 너무 옛날 게임이 아니었다면
다른 게임들에 충분히 관심을 갖게 할 수 있었겠죠.



총평하자면, 명작까진 아니지만 
PC-98 게임 중에서 초심자에게 추천하기 좋은 게임 중 하나입니다.
카드게임이 단순하면서도 정말 재미있어요.

10년 전쯤까지는 이 게임을 플레이했다는 사람을 많이 봤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습니다. 
워낙 옛날 게임이니까요.
하지만, 지난 10년동안 이 게임을 대체할만한 좋은 게임은 나오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관심있으신 분이라면 가볍게 플레이해보는 걸 추천합니다.

2020년 6월 14일 일요일

리뷰 : VR데이트 오월클럽(1995/8/25,데자이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데자이어라는 회사에서 발매한 <VR데이트 오월클럽>입니다.
헌팅게임입니다. 근데 이제 VR을 곁들인 헌팅게임이죠.

시대 배경은 2023년입니다. 이 리뷰 작성일로부터 3년 남았군요.
그때의 VR 기술은 비약적인 발전을 통해
마치 실제로 가상현실에 들어가 있는 느낌을 주게 됩니다.
아픔이나 냄새까지 느낄 수 있다고 합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취직이 결정된 대학 졸업 예정자입니다.
대학시절 마지막 봄방학에 주인공은 여자친구를 만들기로 합니다.

여자친구를 만들기 위해서 주인공은 어떤 데이트 클럽에 가입하게 됩니다.
그 클럽의 이름은 바로 '오월클럽'
'오월클럽' -> 'MAY CLUB(메이 클럽) -> 'MAKE LOVE(메이크 러브)'인 겁니다.

주인공은 전재산을 털어
오월클럽에서 제공하는 가상현실세계 입장권을 구매합니다.
이 가상현실세계에서 여자를 헌팅하는 거죠.

이 장소, 저 장소를 돌아다니며 여성들과 만나면서
대화를 나누고, 애정을 키워나가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시스템 부분을 한 번 살펴 봅시다.
이 게임의 가상현실 세계는 무한으로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아닙니다.
입장 횟수에 제한이 있죠.

2월 16일부터 3월말까지의 기간동안
하루는 아침, 점심, 저녁의 세 파트로 나뉘어져 있으며
그 중 2월에는 열 다섯번, 3월에는 30번 입장할 수 있습니다.
입장권을 전부 써버리면 게임 오버입니다.

가상세계에 입장하지 않는다면 집에서 취침 외에 
주인공이 할 수 있는 일이 전혀 없습니다.
입장권이 충분하지 않으니 게임내 시간 기준으로
거의 3분의 2가량을 집에서 잠만 자야합니다.
입장권의 개수가 지나치게 부족하다고 볼 수 있죠.



근데 막상 플레이해 보면 입장권의 개수는 전혀 부족하지 않습니다.
왜냐구요?
오월클럽 이 녀석들이 일처리를 어떻게 하는 건지
상당히 많은 시간대에 여성 캐릭터들이 가상현실 세계에 등장조차 안 합니다.
그냥 입장권 내고 들어가서 허탕치고 나오는 경우가 엄청 많아요.

여성 캐릭터 수가 적은 것도 아닌데
게임을 왜 이렇게 널럴하게 만든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게임에서 계속 허탕을 치면서 아무도 안 나오는 시간대를 기억해 둬야 돼요.
그리고 다음 회차를 플레이하면서, 그 시간대에는 잠이나 자는 거죠.



이 게임의 특징 중의 하나는 에로게 기준으로
여성 캐릭터들의 연령대가 비교적 높다는 점입니다.
수많은 캐릭터들이 이미 사회인이기 때문에
일상에 관한 대화를 할 때,
독특하게도 직장인의 애환같은 어른스러운 주제가 등장하는 편이죠.
그런 부분은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의 내용은 딱히 중요한 건 아닙니다.
왜냐면 일반 헌팅 게임에서도 이 정도는 그려낼 수 있으니까요.

이 게임은 일반적인 헌팅 게임이 아니라 가상현실을 이용한 헌팅게임입니다.
그리고 가상현실세계는 주인공이 사는 동네와 똑같이 구현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그냥 현실세계에서 헌팅을 하면 되는데,
비싼 돈을 쓰면서 가상현실세계에 들어가 헌팅을 해야하는 이유는 뭘까요?
기껏 가상현실세계에 들어갔으니 
일반적인 헌팅 게임에서는 볼 수 없는 요소가 게임 내에 포함 되어있는가,
그게 바로 이 게임 평가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내용이죠.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이 게임은 일단은 그런 요소를 갖추고 있습니다.
프로그램을 해킹해서 벽을 뚫고 다니는 사람이나
외관의 나이대와 현실 세계의 나이대가 다른 사람이 등장하고,
가상현실세계에서 어떤 이유로 이별해야 했던 사람을
현실세계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는 등 스토리도 갖추고 있죠.

또한 풍기 위원회같은 사람도 등장해서
'가상세계에서의 H는 규제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주인공이 서로 합의된 경우라면 괜찮지 않냐고 묻자,
'가상세계는 실제 육체끼리 접촉하는 게 아니라서 사람들이 다소 개방적이 되는데
그런 상태에서의 합의를 실제 합의라고 볼 수 있냐.'고 합니다.
개방적이 되든, 합의를 하든 그걸 왜 신경쓰는지
다소 꼰대스러운 참견이기는 하지만,
가상현실세계에서 한 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다만, 이런 소재를 담고만 있을 뿐 
스토리까지는 살리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니시쿠보 리에코의 스토리를 봅시다.
주인공과 가상현실 세계에서 처음 만나서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며 친해지게 된 사이입니다.
하지만, 마음 속에 고민을 안고 있는 듯합니다.

사실, 리에코는 이미 결혼해서 남편이 있었습니다.
남편이 본인과의 관계를 자꾸 피하려고 해서, 바람피는 걸로 의심하는 중인 거죠.
주인공에게 남편과의 관계 회복을 도와달라고 합니다.

아니, 오월클럽이 무슨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도 아니고
왜 그걸 주인공에게 도와달라고 하죠?
주인공도 '남의 가정사에 내가 왜 끼냐'고 반론합니다.
그러자 리에코를 화를 내며 '무슨 일이라도 도와준다며'라고 화를 내죠.

이건 참 적반하장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도와준다고 했을 때는 유부녀인줄 몰랐죠.
알았으면 그런 말 안 했을 겁니다.

오히려 화를 내야하는 건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은 애인을 만들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시간만 빼앗겼잖아요.
더군다나 일반적인 헌팅도 아니고,
주인공은 가상현실세계에서 헌팅을 하기 위해 적은 금액이지만 전재산을 쏟아 부었습니다.
시간은 원래 금이지만, 지금 주인공에게는 더더욱 금인데
리에코가 결혼 사실을 숨기는 바람에 그 귀중한 시간을 빼앗겨 버린 거에요.
이건 누구라도 화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죠.


제 생각으로는 결혼 사실을 숨긴 유부녀, 리에코는 
이런 사실을 짚어주기 위해 일부러 등장시킨 캐릭터입니다.
근데, 정작 게임 내에서는 이런 설명이 전혀 안 나옵니다.
주인공은 화도 안 내고, 저런 이야기는 언급조차 안 되며 
스토리는 가상현실과는 전혀 상관없는 삼천포로 빠지게 됩니다.



주인공은 리에코의 요청을 거부하지 못하고,
현실세계에서 리에코와 그녀의 남편을 만나게 됩니다.
남편은 자기 부인이 어디서 만난지도 모르는 남자인 주인공을 데리고 왔는데도
전혀 화를 내지 않습니다.
뭔가 찔리는 게 있긴 있는 모양입니다.


남편은 주인공과 단 둘이서 대화하기 위해 리에코에게 자리를 비워주길 요청합니다.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고백하는데 리에코와의 H가 원만하지 못했던 이유는
자신은 누군가가 자신의 H를 구경하지 않으면 느끼지 않는 체질이기 때문이랍니다.
그리고 부탁을 하게 되죠.
'저희 부부와 같이 호텔에 가서 저희의 H를 지켜봐 주세요.'라고.

다행히도, 이 전개에서 두 번 정도 선택지가 나옵니다.
이 정신나간 부부랑 못 어울리겠다고 도망치는 선택지가요.
도망치지 않는다면 호텔에서 부부 사이의 모든 오해가 풀리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부탁을 해 오죠.
'원만한 부부관계를 위해 저희 집에서 함께 살면 안 되나요?'라고.

또 선택지가 나오고 도망치지 않는다면 대망의 일처다부제 엔딩입니다.
막장드라마 뺨치는 스토리입니다.
여자친구를 만들겠다는 주인공의 꿈은 어디 갔는지 모르겠군요.



총평하자면, 가상현실에 걸맞는 주제를 많이 도입했으나
스토리는 그 소재에 따라주지 못한 케이스입니다.
뭘 해야하는지는 알고 있었으나
정작 어떻게 해야하는지는 몰랐던 것 같은 느낌입니다.

가상현실같은 독특한 요소를 빼고 
헌팅 게임으로만 평가한다면 그냥저냥 재미있는 게임입니다.
당대에는 <동급생>을 위시하여 헌팅게임이 많이 나오던 시기였고
VR데이트는 그 많은 게임들에 결코 뒤쳐지지 않는 재미를 가지고 있는 게임이죠.


마트에 가서 진열되어 있는 아이스크림을 이것 저것 집는 것과 같습니다.
PC-98시절의 헌팅게임을 하고 싶어서 이것 저것할 때,
VR데이트도 그냥 한 번 집어서 플레이해 보고 만족할 수는 있는 수준입니다.

다만, 꼭 이 게임을 해 봐야할 특별한 이유가 없을 뿐이죠.
가상현실이라는 거창한 소재를 도입한 것치고는 다소 아쉬운 결론입니다.

2020년 6월 7일 일요일

리뷰 : GAOGAO! 시리즈(2) -3편~4편-(포나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GAOGAO! 3rd 와일드 포스>입니다.
전작에서 다시 수 백년이 흐른 미래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멸종위기였던 인류는 이번 작에서 거의 사멸하여 어디론가 사라졌고
지구에는 변이체들이 살고 있습니다.
'인간'이라는 단어조차 아는 존재가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이번작의 주인공은 우르피라는 변이체입니다.
각지를 떠돌며 여행하던 주인공은 
라비라는 이름의 여성 변이체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칼을 뽑게 됩니다.

칼을 본 라비는 착란 상태에 빠지게 되고
라비를 진정시키려던 우르피는 라비와 함께 큰 구멍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구멍 아래에는 이세계같은 지하세계 '언더그라운드'가 있었고
우르피와 라비는 지상세계로 돌아갈 방법을 찾기 위해
언더그라운드를 여행한다는 스토리입니다.



언더그라운드의 세계는 '블루'라는 이름의 대장과
그의 부하, 그리고 그들의 지휘를 받는 괴물들이 끊임없이 
무고한 시민들을 습격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우연히 이리아라는 전사의 영혼을 만나 그녀를 부활시키게 됩니다.
스토리는 이리아와 함께 블루를 쓰러뜨린다는 비교적 왕도적인 전개로 흘러갑니다.


3편은 높은 완성도로 인해 시리즈 중에서도 꽤 인기 있는 작품이지만
시스템면에서는 여전히 불만스럽습니다.
1편과 2편에서 문제였던
갈 수 있는 장소가 쓸데없이 많다는 문제점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장소를 이동할 때, 쓸데없는 멈춤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주인공이 동료들과 함께 이동을 하는 장면입니다.
'보다', '말하다', '질문하다'의 커맨드가 있습니다.
주변을 몇 번 보고, 동료를 몇 번 보고, 몇 마디 말하고, 질문 몇 번 하면...



맨 밑에 '이동' 커맨드가 나옵니다.
여기까지는 다른 게임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당연한 패턴이죠.
그리고 '이동' 커맨드를 누르면...



배경은 전혀 변화하지 않고 '이동' 커맨드만 없어졌습니다.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긴 한 걸까요?
어쨌든 다시 한 번, 주변을 몇 번 보고, 동료들을 몇 번 보고, 몇 마디 말하고, 질문 몇 번 하면 
이동 커맨드가 다시 생깁니다.

그리고 다시 이동을 하면 또 배경 변화없이 이동 커맨드만 사라집니다.
또 다시, 주변을 몇 번 보고, 동료들을 몇 번 보고, 몇 마디 말하고, 질문 몇 번 해야합니다.
이런 패턴이 게임 내내 너무 많이 나옵니다.

'이동' 커맨드를 누르면 딱 한 걸음씩만 이동하는 건가요?
걸어다니면서 대화하는 장면을 표현하고 싶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게임이 시원하게 전개되지 않고 뚝뚝 끊기는 느낌입니다.

이동하면서 꼭 해야할 만한 중요한 대화를 하는 것도 아니에요. 별 필요없는 대화만 합니다.
설령, 대단한 대화를 해야한다고 해도, 한꺼번에 하면 되잖아요.


마지막 부분, 블루와의 결전에서는 연구소같은 곳에서 
맨 윗층에 있는 블루를 찾아가야 하는데
이 건물이 무려 7층짜리입니다.

물론 연구실에서 세계의 비밀이라든지를 알려주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7층은 너무 많아요.
게다가, 올라갈 때마다 문이 잠겨있어서 열쇠를 찾아야 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스토리를 정신없이 몰아쳤어야 했는데
너무 진도가 느렸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3편에서 블루를 쓰러뜨린 우르피 일행은 인간들이 저질렀던 만행을 알게 되었고
세계 어딘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 전설의 존재 
'인간'을 토벌하기 위해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최종편인 <카난 ~약속의 땅~>에서는 3편의 주인공이었던
우르피 일행이 지상세계에 돌아와 토벌을 하기 위해 
'인간'을 찾아다니며 여행한다는 내용입니다.



카난 ~약속의 땅~은 주인공이 둘인 멀티 시점 게임으로
또다른 주인공은 카이토라는 이름의 인간입니다.

과거 멸종 직전에 몰린 인간들은 도시를 포기하고 지하에 소규모 쉘터를 만들어
나눠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카이토가 살던 쉘터에서는 카이토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이 병으로 죽게 됩니다.
혼자 남게된 카이토는 책에서 본 '카난'이라는 이상향을 찾아 쉘터 바깥으로 나오게 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에서는 '카난'보다는 '가나안'이라는 단어가 익숙할 것 같습니다.


정리하자면 4편의 내용은 인간의 만행을 알게 된 3편의 변이체와
변이체에 막연한 두려움을 안고 있는 2편의 인간이 서로 이해하고 화합하는 스토리입니다.

제가 저번 리뷰에서 2편은 플레이하는 것이 좋다고 했던 이유가 바로 이겁니다.
2편은 이미 수 백년전의 이야기지만
4편의 주인공인 카이토의 심리가 2편과 연결되어 있죠.



카이토는 바깥세상에서 안젤라라는 인간처럼 보이는 생물을 만나게 되어 함께 다닙니다.
하지만, 사실 안젤라는 원래 날개를 가지고 있었으나
나쁜 인간에 의해 강제로 뜯긴 겁니다.

변이체들은 카이토를 사악한 유괴범이라고 생각하며,
안젤라를 구출하기 위해 습격하게 카이토를 습격합니다.
카이토는 또 자신을 이유없이 습격하는 변이체들을 보며
'역시 변이체는 흉포한 생물'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거죠.



안젤라의 날개를 뜯은 인간처럼 사악한 인간들도 존재합니다.
괴물들을 이끌고 와서 변이체 마을을 습격하고 불태워 버리는 나쁜 짓을 하죠.
사실 여기에는 더 복잡한 스토리가 있지만 제 리뷰에서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튼 서로의 종족에 대한 이해에 대한 내용이 이 게임의 핵심입니다.
카이토의 경우는 안젤라가 갑자기 고열에 시달려 약을 구하려고 합니다.
두건을 덮어 쓰고, 변이체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 용기있게 잠입합니다.

마을에 잠입한 카이토는 변이체들이 생각 외로 친절한 것을 알게 됩니다.
그래도, 자신이 인간이라는 게 들키면 변이체들은 돌변해서 습격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변이체에 대한 편견을 많이 버리게 됩니다.



이렇게 계속 오해와는 와중에도, 
서로 계속 도와주는 장면도 계속 나오면서 오해를 풀 수 있는 실마리가 많이 등장하죠.
멀티 시점에서 각각의 주인공이 직접 만나는 장면은 많지 않아도,
두 주인공이 베푼 선행이 간접적으로 다른 주인공의 편견을 해소하는데 도움을 줍니다.
멋진 기법이군요.

작중에서 우르피가 말한 대사야말로 이 게임의 주제입니다.
'인간 중에서도 착한 성격이 있고 나쁜 성격이 있는 게 당연할 텐데,
왜 그걸 생각하지 못했을까?'



4편에서 고평가하는 부분은 게임 전개에 변칙이 많아 
예측할 수 없는 사건이 많이 나온다는 점입니다.

3편에서는 우르피 일행이 고정되어 있었지만
4편에서는 동료들과 헤어지기도 하고, 
아예 전편의 보스였던 블루와 단 둘이 같이 다니기도 합니다.
다양한 캐릭터와 같이 다니며, 개성있는 대화를 즐길 수 있습니다.



스토리 측면에서도 예측불허인데 우르피와 맺어졌던 히로인 라비가 중반부에 사망합니다.
시체가 발견 안 되는 애매한 사망도 아니고 틀림없이 사망하고 무덤에 묻히게 되죠.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전개덕분에 게임이 지루할 틈이 없습니다.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이 너무 많다는 점입니다.
위에 화면 오른쪽에 보이는 게 주인공 일행입니다.
SRPG게임도 아니고 어드벤처 게임에 무려 열 두명이 같이 다니고 있잖아요.



사실 열 두명이 같이 다니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등장인물들이 너무 많으니 개개인에 대한 스토리가 잘 조명되지 않아요.

변이체를 함부로 대하던 박사가 개심하는 스토리가 있는데 나름 감동적이었지만
복선이 너무 부족해서 갑작스러운 개심이라 당황스러웠죠.
분량 제한의 압박이 심하던 시절의 게임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면이 있습니다.



총평하자면, 시리즈는 대체로 좋았고 
4편은 지금 플레이해도 고평가할만한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수백년씩 뛰어넘는 장대한 역사를 다룬 시리즈이면서도,
주제의식을 잘 전달한 게임입니다.
시나리오 라이터의 역량이 느껴집니다.

지금 추천드리기 곤란한 점은 수준이 고르지 않은 시리즈물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1편부터 4편까지 순서대로 하는 걸 추천하지만
대부분은 1편이나 2편을 견디지 못하고 포기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GAOGAO! 4부작이 리메이크가 되었다면 추천하기 수월했겠죠.



사실, 리메이크도 있습니다. 1편만요.
4편까지 순서대로 리메이크할 것을 기획했던 것 같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 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