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23일 일요일

리뷰 : V.G.시리즈(GIGA)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3년도부터 역사가 시작된 에로게 회사 GIGA는 2020년 3월에도 신작을 낸
에로게 업계의 최고참 중의 하나입니다.
오랜 역사에 걸쳐 훌륭한 게임들을 여럿 만들어 내기도 했지만
'기가마인'이라고 불리며 수없이 많은 지뢰작을 양산해 낸 회사이기도 합니다.

제가 한참 에로게를 즐기던 때에 GIGA는 놀라운 명작 게임들을
몇 개정도 발매했기 때문에 상당히 좋아했던 회사였고,
그로 인해 지뢰작들도 꾸준히 플레이하면서 믿었었지만,
GIGA는 저를 실망시키고, 실망시키고, 또 실망시켰던 것입니다.
저는 2015년에 발매된 <시로가네 스피릿츠>에 실망한 이후
GIGA사의 게임은 다시는 안 하겠다고 다짐했고
2016년의 <BALDR HEART>를 마지막으로 4년째 전혀 쳐다보지도 않는 회사입니다.

지금은 빠에서 돌아선 까가 되었지만
2000년대 중반에는 감탄이 나오는 명작을 많이 발매했고,
제가 가장 좋아했던 GIGA의 게임들은 
시나리오 라이터 '마루토 후미아키'가 참여한 작품이었습니다.

마루토 후미아키의 작품 중 <V.G.NEO>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초기 GIGA사의 메인 프랜차이즈였던 V.G. 시리즈의 마지막 작품이었죠.
93년도부터 2003년까지 수많은 게임이 나왔던 시리즈입니다.



먼저 GIGA사의 역사적인 데뷔작이자 V.G. 시리즈의 첫 작품인
<V.G ~배리어블 지오~>입니다.
유카, 마나미, 카오리, 준, 치호, 레이미라는 여섯 캐릭터가 등장하는
대전액션게임입니다.



웨이트리스들이 싸우고 패자는 의문의 사람들에게 ㄴㅇ당하는 룰의 단순한 게임입니다.
PC-98답게 동시대 대전액션게임들에 비해,
액션 면에서 돋보이는 점은 없지만
미소녀들과 H씬으로 인해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특히 주인공격인 포니테일 웨이트리스 유카의 경우 상당한 인기가 있었습니다.



<VIPER> 시리즈 중 하나인 <VIPER V16>에 등장한
웨이트리스 캐릭터가 유카의 오마쥬입니다.



또한, 제가 표절게임 <벚꽃의 계절>을 리뷰하면서 언급했던
또다른 표절게임 <마법소녀 파라다이스>에도 유카의 표절 캐릭터가 등장합니다.
심각할 정도로 똑같은 캐릭터를 갖다 붙여 놓은 수준이죠.



다음은 인기에 힘입어 발매된 PC엔진의 <ADVANCED V.G.>입니다.
가정용 콘솔 게임답게 경기 후 ㄴㅇ장면은 모두 삭제되었고,
기존의 유카, 준, 치호, 마나미, 카오리, 레이미 외에
사토미, 아야코, 에리린이 추가되었습니다.
최종 보스 캐릭터도 있긴 한데 별로 중요하진 않습니다.



그 다음에는 PC-98에서 <V.G.2 ~희신무투담~>이 발매됩니다.
PC판인만큼 다시 H씬이 추가되었습니다.
<ADVANCED V.G.>에 등장했던 캐릭터 외에 테루미와 유미코가 추가되었죠.



그 다음으로 발매된 건 슈퍼패미콤판 <슈퍼 배리어블 지오>입니다.
규제가 느슨했던 PC-엔진판도 H씬 비슷한 것조차 등장도 못했는데
슈퍼패미콤판에 H씬이 들어있을 리 없습니다.
캐릭터는 <ADVANCED V.G.>의 아홉 명 그대로입니다.
사실상 PC엔진 게임을 슈퍼패미콤으로 이식한 거죠.



이번에는 플레이스테이션판 <ADVANCED V.G.>입니다.
스토리나 연출 상으로 여러 가지가 추가되었는데 캐릭터는 또 그대로입니다.
무슨 격투대회가 이렇게 신규 유입이라고는 없는
고인물 대회인지 모르겠습니다.
다음에 발매된 세가새턴판 <ADVANCED V.G.>도 
플레이스테이션판과 같은 듯 약간 다른데
여전히 캐릭터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저는 사실 대전액션게임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 때문에
조작이 어떤 식으로 발전했는지 같은 건 잘 모릅니다.
어릴 적에 관심있게 지켜봤던 <킹 오브 파이터즈> 시리즈 같은 것도
스토리나 캐릭터의 변화에 대해 유심히 봤을 뿐,
대전이 어떻고는 잘 몰랐어요.
V.G. 시리즈는 특히 미소녀 대전격투 시리즈인데
캐릭터의 변화가 시리즈마다 적다는 부분은 아쉬운 부분입니다.


 
다행히도 그 다음에 나온 플레이스테이션판 <ADVANCED V.G.2>에서는
신규 캐릭터 추가가 있었습니다.
고인물 아홉 캐릭터 이외에 타마오, 쿄코, 사키라는 캐릭터가 추가되었죠.
타마오라는 캐릭터가 특히 중요합니다.

여기까지가 윈도우 시절 이전까지의 V.G. 시리즈입니다.
PC-98 이외에도 PC엔진, 슈퍼패미콤, 플레이스테이션, 세가새턴 등
당대 유명한 콘솔에는 전부 발을 걸쳐 봤죠.

시리즈 별로 큰 변화는 없었지만 새로운 게임이었다기보다
똑같은 게임을 여러 게임에 이식하는 수준이었다고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그리고 99년이 되었고, 윈도우 플랫폼으로 새로운 V.G가 발매됩니다.


 
<V.G. CUSTOM>입니다.
등장한 캐릭터는 치호, 레이미, 유카, 사토미, 마나미,
아야코, 에리린, 준, 카오리입니다.
다 아는 사람들입니다. 전통의 고인물들이죠.

뭐, 사실 이 게임은 <V.G.2 ~희신무투담~>의 리메이크입니다.
CG 자체는 전부 다시 그린 것 같지만 H씬의 구도도 다 똑같습니다.
아무 것도 추가되지 않았다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다음 시리즈를 기대해 봅시다.



마찬가지로 99년도에 발매된 윈도우판 <V.G. MAX>입니다.
등장캐릭터는 또 유카, 또 치호, 또 타마오, 또 사토미, 또 마나미, 또 테루미,
또 준, 또 카오리, 또 레이미의 고인물 파티입니다.



대전 게임 내에서의 그래픽은 이전에 비해 독특하게 바뀌었지만
또다시 큰 변경없는 캐릭터가 너무 실망스럽습니다.

사실 시리즈마다 히든 캐릭터나 보스 캐릭터가 따로 추가된 게임도 있긴 하지만
딱히 무시해도 상관없고, 시리즈마다 누적도 없어요.
게다가 <V.G. MAX>는 시리즈 최후의 대전액션게임입니다.
하다못해 역대 캐릭터들을 모은 올스타전격 게임이라도 나왔으면 좋았겠지만
그런 거 없이 늘 똑같습니다.

캐릭터가 강점인 게임 시리즈에서 캐릭터에 신경을 너무 안 썼다고 생각됩니다.


 
2000년도에 발매된 <V.G.Adventure>입니다.
대전액션이 아닌 스토리가 있는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V.G.Adventure의 주인공은 타마오입니다.
타마오는 자신의 스승격이자 늘 따르던 유카가 어디론가 사라져서 슬픕니다.
슬픔을 달래기 위해 대회에서 만났던 다른 캐릭터들에게 전화를 겁니다.

하지만, 다른 캐릭터들은 대화도 제대로 안 해주고 
매몰차게 바쁘니까 끊으라고 합니다.
다들 시리즈 내내 맨날 보던 얼굴만 보니 
몇 마디 나누는 것조차 질려 버릴 수 있죠. 이해합니다.
근데 수행 중이니까 바쁘다고 끊으라는 건 그렇다 치고
인터넷 하는 중이니까 끊으라는 건 뭐죠?

PC통신이라 전화가 안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 집에는 전용선이 깔려 있어서 전화하면서 인터넷도 된다~'고 
자랑만 하고 그냥 끊어버려요.
아니, 인터넷 하는 게 그렇게 급하고 바쁜 일인지도 의문입니다만
인터넷하면서 전화 충분히 할 수 있잖아요.
전화하기 싫어서 별 핑계를 다 댑니다.


 
낙심한 타마오에게 전화가 걸려옵니다.
전화를 건 상대는 준으로 외국에 있는 줄 알고 타마오가 전화를 걸지 않았던 캐릭터죠.
준은 다짜고짜 타마오 집 앞에 왔으니 바로 나오라고 합니다.

타마오는 준을 반가워하면서도 
'다른 사람들이 너무 쌀쌀 맞아요'라고 하소연 해보지만
준은 냉정하게 '그런 건 내 알 바 아니고 일단 싸우자'라고 합니다.
상여자 스타일이군요.



전투 방식은 가위바위보와 비슷한 방식으로 공격-방어를 정하고,
공격측에서 기술을 걸고, 방어측에서 예측하는 방식입니다.
2000년도에 들어 발매된 게임인데 
오히려 PC-98시절의 전투 스타일로 퇴보했습니다.
난이도가 딱히 어렵지도 않고 단순해서 재미는 별로 없습니다.



준과의 연습경기 후, 갑자기 최면에 걸린 사토미가 둘 앞에 나타납니다.
전투 후 승리하면, 사토미가 갑자기 나타난 트럭에 의해 어디론가 잡혀가서 ㄴㅇ당합니다.
타마오와 준은 사토미를 구하기 위해 비행기를 타게 되고
이름 모를 섬에 착륙하게 됩니다.

섬에는 최면에 걸린 고인물 캐릭터들이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장소를 이동하며 캐릭터들과 싸움에서 이겨 최면에서 깨어나게 해야 하죠.



인터넷 애호가 카오리도 최면에 걸려있는 상태입니다.
전화할 시간도 없이 열중하던 인터넷은 어쩌고 여기 있는 걸까요?

뭐, 이렇게 저렇게 해서 유카까지 구해낸다는 스토리입니다.
등장인물은 타마오, 준, 사토미, 카오리, 치호, 유카, 레이미와
이전에 보스 캐릭터로 잠깐 등장했던 레이미의 어머니 미란다입니다.
아무래도 GIGA 수뇌부에서 신캐릭터의 등장을
결사적으로 반대하기라도 했나 봅니다.

캐릭터의 문제를 빼고 보면, 대전액션게임에서 어드벤처 게임으로의 첫 전환은
실패였다고 생각될 정도로 엉성한 게임이었습니다.
차라리, 대전액션게임이었으면 이해라도 해 줄 텐데
전투는 전투대로 재미없고, 스토리는 스토리대로 허술했죠.
H씬도 억지로 넣은 티가 지나치게 났으며 그마저도 재미없었습니다.



그 다음 게임은 2001년도에 발매된 <V.G.Re-birth>입니다.
이 게임은 프리랜서 기자인 남성이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주인공은 유카를 취재하던 도중 V.G.의 존재를 알게 됩니다.



대략적인 게임 디자인은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플레이어의 선택에 의해 대전 직전에 
화장실이나 매점 등, 둘 중 하나의 장소로 이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플레이어들에겐 지긋지긋하지만 주인공과는 초면인 캐릭터와 
우연히 만나서 다정하게 대화를 나눕니다.



다시 격투를 구경하러 온 주인공은
방금 만난 캐릭터가 격투에서 패해 ㄴㅇ당하는 모습을 지켜보게 됩니다.
방금까지 평범한 대화를 나누던 캐릭터의 비참한 모습으로
플레이어에게 충격을 주려고 한 듯한 배치인데 나름 성공적인 것 같네요.



V.G.에서 패배한 자에 대한 비인간적인 처사에 대한 고뇌도
미흡하게나마 스토리에 포함되어 있는데 꽤 마음에 듭니다.



주인공과 유카, 타마오, 레이미가 연결되는 루트가 각각 있는데
시리즈 전체의 주인공인 유카를 매력적으로 그린 부분도 높이 평가합니다.
다른 시리즈에서는 그 부분이 좀 약했죠.

<V.G.Re-birth>는 전투 시스템은 과감히 빼버리고 스토리를 강화한 게임임에도 불구하고
사실 여전히 스토리의 아쉬움이 컸던 게임입니다.
카오리, 마나미, 준, 에리린, 치호 등 오랫동안 붙박이였던 캐릭터들을
1회성으로 소모하여 제대로 살리지 못하기도 했죠.
그래도, 부분적으로 마음에 드는 부분이 있었으며
모든 면에서 엉성했던 <V.G.Adventure>보다는 훨씬 괜찮았습니다.


지금까지 소개한 V.G.시리즈 중 제 마음에 드는 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대전액션게임을 잘못하기도 하고
확 와닿는 스토리를 가진 게임도 없었습니다.

그나마 있는 추억도 대부분은 시리즈 마지막 게임 <V.G.NEO>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다음 리뷰는 V.G.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한 
마루토 후미아키의 <V.G.NEO> 리뷰입니다.

댓글 1개:

  1. np21//
    아무래도 PC-98 기종이 액션 게임에 적합하지 않았던 탓이 컸던 것 같습니다.
    당시는 대전액션이 잘 나가던 시기이기도 했고요.

    모든 이식판이 인기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부 콘솔용은 의외로 인기가 좀 있던 것 같습니다.

    답글삭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