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 13일 일요일

리뷰 : 너에게만 사랑을...(1991/10/10,게임 테크노폴리스)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테크노폴리스는 토쿠마 서점이라는 회사에서 
80,90년대에 발매했던 잡지 이름입니다.
본래 게임뿐만 아니라 PC 전반을 소개하는 잡지였지만
몇 번의 변화 끝에 미소녀 게임 전문 잡지가 되었죠.

토쿠마서점은 잡지를 넘어서 게임 산업에도 진출하였고
미소녀 게임을 비롯하여 상당한 양의 게임을 발매했습니다.
게임 테크노폴리스에서 발매한 게임들이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화제가 되었던 게임들은 몇 개정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당대 최고의 에로게 회사였던 페어리테일이 개발한 게임도 있고,
우주SF물에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제작한 회사가 참여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이름난 스탭들이 종종 참여했습니다.

 

91년도에 발매된 <너에게만 사랑을...>입니다.
기획은 게임 테크노폴리스지만, 제작은 페어리테일 사에서 했습니다.



시스템은 평범한 어드벤처 게임으로 특이한 점은 전혀 없습니다.
배드 엔딩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첫 장면은 선남선녀의 결혼식부터 시작합니다.
주인공의 형과 주인공이 짝사랑했던 연상의 여인 미사의 결혼식이죠.



하지만 미사는 하와이 신혼여행 도중 홀로 집에 돌아옵니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은 어른의 사정이 개입되어 있었던,
서로가 원치 않았던 결혼이었습니다.
형은 신혼여행지 호텔에 미사를 혼자 버려두고 현지 여자들과 놀아났고,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미사는 그냥 귀국해 버린 겁니다.

이 게임은 순탄치 않은 혼인 생활에 고통받는 미사와
그런 미사를 남몰래 사랑하는 주인공을 소재로 한 형수물입니다.



어느 날, 미사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기억상실 상태가 됩니다.
주인공 형은 잠시 병문안을 왔으나 상태가 별로 나쁘지 않은 걸 확인하고,
데이트해야 된다면서 매정하게 돌아가 버립니다.
간병은 주인공의 몫입니다.



주인공이 집에 잠시 돌아와 보니 현관부터 이 상태입니다.
부인이 큰 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는데도 자제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여자는 거실까지 가는데 몇 분 걸리지도 않을 텐데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걸까요?

나쁜 건 주인공 형이고 여자가 뭘 알겠나 싶지만
주인공이 거실을 엿보니 둘이서 H씬과 함께 
병원에 관련된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막장 드라마식 재미라도 있을 것 같지만,
실제 플레이해보면 딱히 그런 재미는 느낄 수 없습니다.
그 후에 미사가 퇴원하고, 퇴원 당일날 기억찾고,
기억 찾자마자 이혼하고 끝에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내용이 없습니다.



91년도 게임이니 분량이 적은 건 이해 못 할 바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주제 스토리에 곁다리가 너무 많다는 점이에요.

주인공을 좋아하는 소꿉친구 캐릭터는 충분히 등장할 수 있습니다.
단조로운 스토리를 환기시켜 줄 수 있는 귀중한 캐릭터죠.
근데, 그 캐릭터 활용이 부족합니다. 납치 이벤트 이런 건 필요없잖아요.
게임의 분위기를 해치기만 합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한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고 하고 저도 그건 인정하지만,
캐릭터들이 너무 많이 나오니 
메인 스토리인 미사의 상황이 뒷전으로 밀려나 버립니다.



게다가 캐릭터 수가 많은 점은 스토리상 단점으로도 작용합니다.
이 게임 구도는 부인을 냅두고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는 주인공 형과
형수를 소중히 여기며 보살피는 주인공을 대비시키는 방식인데
정작 스토리에서는 주인공도 형과 다를 바 없게 행동합니다.
미사가 기억상실로 침대에서 누워있는 동안
형과 마찬가지로 주인공도 여러 여성들과의 H씬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미사와 혼인한 관계도 아니고,
미사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형과 달리 계속 미사를 걱정하기 때문에
형과는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형을 비난하기에 떳떳하지 못한 약점을 갖게 되는 셈이죠.

당대 에로게 스타일이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스토리와 관계없이 등장한 캐릭터에는 억지로라도 H씬을 넣으려고 해요.
스토리는 갈피를 못 잡고, 분위기는 망가져 버리고
'너에게만 사랑을...'이라는 제목과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전개입니다.



총평하자면, 이 게임을 제일 재밌게 즐기는 방법은 그냥 요약만 보는 겁니다.
소재 자체는 꽤 괜찮은 스토리가 나올 것 같아 보이지만,
플레이하면 메인 스토리에 대한 심도 깊은 내용은 전혀 없어요.
기대에 못 미쳤다 정도가 아니라
예상과 전혀 다른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메인 스토리가 충실하다면, 서브 스토리나 캐릭터가 많은 건 문제가 아닙니다.
분량 문제 때문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포기해야 할 지는 명백하죠.
이 게임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얕아진 스토리를 캐릭터로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메인 스토리를 살렸다면 색다른 게임으로 평가내렸을 것입니다.

댓글 3개:

  1. 이래저래 제목이랑 내용이 하나도 연관이안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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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매주 잘 보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 전반적인 게임들이 플레이보이식의 흐름을 보였기에 순애물에 대한 반작용을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플레이어들의 판타지가 90년대까지는 플레이보이였다면 이후에는 그냥 연애 자체가 된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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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Unknown//
    같은 제목의 노래나 드라마가 있기 때문에
    제목을 그렇게 지은 것 같습니다.
    정작 내용이 제목을 따라오지 못해서 아쉽네요.

    feveriot//
    주인공은 대개 한 명이라서 그런지 그 시절 트렌드의 영향을 많이 받죠.
    개인적으로는 주인공이 속터질 정도로 답답하는 게 유행이던 시절보다는
    저 시절이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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