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1월 29일 일요일

리뷰 : 몽환야상곡(1995/4/24,ApRico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ApRicoT은 CROSSNET 계열의 회사입니다.
이 회사 계열의 게임 중에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던 건 
<AYAKASHI>나 <메이플 컬러즈>였죠.
그 외 유명했던 게임은 오메가스타의 <그녀x그녀x그녀>로 상당히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었고
<별하늘의 메모리아>나 <형형색색의 세계> 등을 만든 FAVORITE도 괜찮았습니다.

이 CROSSNET은 2009년에 갑자기 망해 버려서 많은 사람들을 당황하게 했으나
후일 ApRicoT, 오메가스타, FAVORITE는 각각 독립한 회사로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되살아난 이후 오메가스타는 <미소녀만화경> 시리즈로 여전히 주목받았고,
FAVORITE도 나름 꾸준히 관심을 받고 있는 반면,
ApRicoT은 아직도 망한 것으로 알고 계시는 분도 있을 정도로 
별 존재감이 없습니다.



이번에 리뷰할 게임은 ApRicoT의 <몽환야상곡>이라는 게임입니다.
PC-98 시절의 대표적인 저택물이죠.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대학생인 주인공은 여름방학동안 자신을 찾는 여행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던 중 산 속에서 태풍을 만나 절벽에서 떨어져 생명의 위기를 맞게 됩니다.

깨어나 보니 주인공이 있던 곳은 서양식 저택입니다.
저택은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휩싸인, 폐쇄된 공간으로 
어째서인지 밖으로 나가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저택의 여주인은 '문은 때가 되면 열릴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합니다.

이 폐쇄된 저택에는 다양한 고민을 지닌 여성들이 있습니다.
저택을 돌아다니며 여성들이 지닌 다양한 고민들을 해결하는 것이
이 게임의 목표입니다.



주인공은 저택에서 탈출하는 방법이나 저택의 비밀같은 건 별 관심이 없습니다.
또한, 초자연적인 저택의 구조가 대체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지
게임 내에서 아무 설명도 없죠.
애초에 게임의 목적이 그런 요소들과 전혀 동떨어져 있죠.

이 게임에서 저택은 고민을 가진 캐릭터들의 도피처의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저택은 공간적으로 현실세계와 단절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간적으로도 단절되어 있습니다.
일부 캐릭터들의 고민은 상당히 오래 되고, 스케일이 큰 고민도 있는데
최악의 결말 직전에 시간을 멈춰서 
고민 해결을 기다리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각 캐릭터들이 저마다 처한 상황이 제각각이다 보니
독특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도 매력적입니다.
'유라'라는 캐릭터의 경우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전혀 없이
오랫동안 창고 안에서만 갇혀 살아 일반 상식이 부족한 캐릭터입니다.
주인공을 처음 만났을 때는,
주인공이 쥐구멍 너머로 보였기 때문에 주인공을 '쥐'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런 부류의 캐릭터는 제대로 묘사하기 상당히 어려운데
이 게임은 능숙하게 표현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게임의 문제점은 쓸데없이 늘어지는 부분이 너무 많아서
게임 플레이가 지루해진다는 점입니다.
플레이어가 다닐 수 있는 장소가 너무 많고
진행이 막히는 부분이 너무 많아
저택의 모든 곳을 공허하게 돌아다닐 뿐인 상황이 자주 발생하고
원할한 게임 진행에 방해가 됩니다.

각 캐릭터들은 자신의 고민이 해결되더라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고민이 해결된 이후에도 저택에 계속 남아
주인공과 다양한 대화를 하고, 
때로는 다른 캐릭터들의 고민을 해결하는데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이 시절 게임치고는 캐릭터 활용이 굉장히 좋은 편이죠.

문제는 별 의미없는 대사가 많아져 게임이 늘어진다는 점입니다.
마치 옛날에 방영했던 대하사극같은 느낌입니다.
옛날 대하사극 같은 경우는 한 사건이 터지면 
온동네 사람들이 돌아가며 한마디씩 하는 장면이 있었죠.
'왕건아우가 이겼다고?', '왕건이가 또 이겼단 말인가!', '왕장군이 이겼다는구나, 허허.'
하면서 그냥 한 편을 때워 버리며 억지로 분량을 늘리는 거죠.  

이 게임도 그런 느낌입니다.
하나의 사건이 터지면 여러 캐릭터들이 한 마디씩 하는데,
그것도 이벤트 취급이기 때문에
저택을 다 돌아다니면서 그 한 마디, 한 마디를 다 봐야 해요.
너무나도 귀찮은 방식입니다.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 단일 루트로 진행되지만
마지막에 캐릭터를 선택함으로써 각 캐릭터의 엔딩을 볼 수 있는 
멀티엔딩 구조를 지니고 있습니다.
마지막 부분 이외에는 아무 차이도 없기 때문에
멀티 엔딩이라기보다는 후일담에 가까운 구성이네요.



총평하자면, 폐쇄된 공간과 서양 저택의 분위기를 잘 살린 작품입니다.
그 분위기에 어울리는 시나리오가 곁들여져
인상깊은 장면이 많았던 게임이었습니다.

다만, 시나리오 작가의 역량에 많이 의존한 게임이었는데
게임 시스템이 시나리오를 쾌적하게 즐기기에
좀 방해가 되었던 것이 유감스러웠습니다.

댓글 1개:

  1. np21//
    저도 사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캐릭터는 인어공주였습니다.
    시나리오 라이터가 왠지 인어공주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안타깝게도 인어공주는 블로그에 올릴 수 있는 CG가 단 하나도 없었네요.

    리뉴얼판도 플레이하려고 했는데 게임은 멀쩡히 진행되는데
    뭐가 문제인지 그래픽이 심각하게 깨지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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