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9일 일요일

리뷰 : 귀작(1)(2001/3/30,el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취작>에 이어 3년만에 발매된 <귀작>입니다.
제가 알기론 2001년도에 발매된 에로게 중 가장 많이 판매된 에로게이며,
엘프 사는 이 게임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연간 최고 판매량을 기록하지 못했습니다.

한국어 패치가 여러 번 시도되었던 작품이나 결국 좌절되었으며,
그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귀작을 플레이한 사람의 숫자가
<유작>, <취작>에 비해 많이 밀리게 되었습니다.

일본에서는 발매 당시에 전작들과 비교해서 약하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만,
주인공 키사쿠의 캐릭터성만큼은 높은 평가를 받아
일본 인터넷상에서는 키사쿠야말로
이 시리즈의 대표격 캐릭터로 통하고 있습니다.



스토리 및 구성은 일단 <취작>을 계승하는 스타일로 시작됩니다.
주인공 키사쿠가 스기모토 제약이라는 회사의 기숙사 관리인으로 임명되어,
점찍어둔 여성들을 촬영, 협박, ㄴㅇ을 하는 단순한 스토리라인이죠.

<취작>에서는 불과 36시간만에 모든 일을 끝내야 했지만,
귀작의 활동기간은 2년입니다.
기간이 늘어난 만큼 활동 무대 역시 넓어졌습니다.



다만, 갈 수 있는 장소는 전작에 비해 오히려 줄어 들었습니다.
기숙사, 회사, 시내. 세 장소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회사에서는 배회하느냐 사무처리를 하느냐,
시내에서는 배회하느냐 영업을 하느냐 등의 선택지도 있지만
특정 경우를 제외하고는 크게 필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벤트가 자주 발생하여,
해변, 계곡이나 볼링장 등에서 활약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전작과의 차이점은 육성 요소입니다.
단순히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간다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수집력이 부족하면 사진을 찍을 수가 없습니다.
또한 영업력이 부족하면, 회사에 계속 다니지 못하고 
해고당해서 게임 오버가 되죠.

정리하면, 키사쿠를 육성하여 회사를 계속 다니며, 
그 와중에 사진을 찍고 ㄴㅇ을 하고 다니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에 관련해서는 발매 당시 아쉽다는 평가를 많이 받은 작품이었습니다.
일단, 이 게임은 1주일단위로 행동을 지정할 수 있으며,
주중에는 '장소 이동/촬영' 파트, 주말에는 '육성/ㄴㅇ' 파트로 
역할이 명백하게 나뉘어져 있습니다.


주중의 '장소 이동/촬영' 파트가 아쉬운 점은
장소 선택에 있어서 전략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전작과 똑같이 여러 장소를 선택해서 이동하는 시스템이지만
비어 있는 시간대나, 촬영 타이밍이 언제인지를 고려해야 했던 <취작>과 달리
귀작은 장소 이동에 대해 그다지 고민할 필요가 없도록 설계되어 있죠.

어느 장소에 언제 가야 되는지에 대한 힌트가 거의 없는데,
사실 어차피 갈 수 있는 장소는 세 곳밖에 없고, 
이벤트 발생 시기 설정이 느슨하기 때문에 어느 장소에 가든 이벤트를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전작과 달리 촬영 결과가 바로바로 나오고, 세이브/로드가 비교적 자유로워서
아무 성과가 없다면 그냥 로드하고 다시 플레이하면 됩니다.



아오이처럼 특수한 방법으로 만나야 하는 케이스도 있었지만
이 또한 '스케쥴 관리'라기보다는 '방법을 모르면 망해야지'라는 개념에 가까웠습니다.

어차피, 어떤 장소에 가든지 간에 중요한 사진을 찍기 위해 필요한 건
'수집력' 수치입니다.
장소이동 파트에서 별 재미를 느끼지 못해도 큰 문제는 없죠.
 


하지만, 육성 시뮬레이션으로서의 면모라도 제대로 보였느냐 하면 그렇지도 못 했는데
육성 난이도가 그다지 어렵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주말의 '육성/ㄴㅇ' 파트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협박', 'ㄴㅇ', 그리고 능력치 육성에 해당하는 '책읽기',
그리고 '아무 것도 안 하기'입니다.

게임을 처음 시작할 때는 딱히 '협박'할 것도, 'ㄴㅇ'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 아무 것도 안 할 수는 없으니 당연히 책을 읽겠죠.



분기별로 어느 정도의 수치가 필요한지도 다 알려 줍니다.
그러니 그 수치에 도달할 때까지 책을 읽어야 합니다.

ㄴㅇ은 나중에라도 언제든지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영업력이 모자라면 바로 짤립니다.
그럼 ㄴㅇ을 미루고 당연히 책을 읽겠죠. ㄴㅇ은 남는 시간에 하면 되고요.

만일, 실수로 책 안 읽고 ㄴㅇ만 하다가 게임오버 당하면 어떻게 할까요?
로드해서 책을 읽으면 됩니다.


제가 쉽다고 생각하는 건 바로 이런 문제 때문입니다.
책만 성실히 읽으면 문제 없이 목표치에 도달할 수 있게 되어 있는데
책 읽는 것 이외에는 딱히 할 일이 없어요.



심지어, 게임 내에서 더 좋은 책을 계속 선물해 줍니다.
이렇게 선물받은 책은 다시 플레이하거나 로드를 하더라도 그대로 남아 있어서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어요.
좋은 책만 얻게 된다면 육성 요소 자체가 박살이 나버릴 정도로
난이도가 쉬워져 버립니다.

책을 읽을 때 특정 수치가 오르면 특정 수치가 하락하는 방법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거나,
체력 수치같은 것을 만들어서 주중이나 주말에 강제로 휴식이 필요하도록 만들었다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게임 내에 육성을 고민하거나 방해하는 요소가 너무 없어서 아쉽습니다.



이렇듯 '장소이동'이나 '육성' 시스템이 미흡한 부분이 많이 보였고,
이런 점에서 당대 엘프 팬들의 비판이 꽤 많았습니다.
다만, 귀작이 <취작>을 어설프게 따라하려다 실패한 게임도 아니고
확실하게 방향성이 다른 게임인데 비판이 좀 과했다는 생각도 듭니다.

사실, 비판이 심했던 이유는 시대 상황과 관계가 있습니다.
당시 에로게는 점점 비주얼 노벨 스타일로 넘어 가는 추세였으며,
많은 에로게들이 게임 시스템을 등한시하던 시기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게임 시스템에 관해서 당대 1인자였던 엘프 사가,
징하게 신작은 안 내고 리메이크만 주구장창해대던 엘프 사가
훌륭한 시스템을 갖고 있던 게임인 <취작>의 후속작을 발매하겠다고 선포한 겁니다.

그리하여, 귀작의 시스템에 많은 이목이 쏠리게 되었던 거고,
그 시스템은 팬들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습니다.
에로게가 비주얼 노벨로 쏠리는 경향에 불만을 갖고,
엘프가 뭔가 한 번 보여주길 바랐던 올드팬들에게
귀작이 보여준 내용은 아쉬움이 많이 남았던 거죠.



다만, <취작>과는 방향성이 달랐던 게임이었기 때문에
귀작이 아쉬운 점만 있는 게임은 아니고 눈 여겨볼 점도 틀림없이 있습니다.

귀작에서 가장 발전한 부분은 캐릭터 개개인의 사정이 있고,
그 사정에 따라 다른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입니다.
<취작>에서는 짧은 활동 기간과 난이도 문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모든 캐릭터의 패턴이 획일화될 수 밖에 없었지만
귀작에서는 캐릭터마다 다양한 협박 이유와 결말을 만들었습니다.

어떤 사진을 찍느냐에 관계없이 정해진 약점을 알아내지 못한다면
협박에 실패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ㄴㅇ에 대한 반응 역시 제각각이라 절 당혹스럽게 했던 캐릭터들이 있었죠.



또한, 키사쿠의 입체적인 캐릭터에서 나오는 개그만큼은
시리즈에서 가장 훌륭한 모습을 보여 줍니다.
니코동에서 키사쿠의 활약상을 모은 인기 동영상이 있었는데
지금은 삭제된 것 같군요.

마냥 악랄한 짓만 하지 않는 예측불가능한 키사쿠의 행동,
브레이크 없이 막말하는 키사쿠와 그 말을 호의적으로 받아 들이는 주변사람들이 주는
착각물같은 느낌 등,
이 게임은 ㄴㅇ계열 에로게로서는 이례적으로 뛰어난 개그를 선보입니다.
에로적인 측면보다 개그 면에서 이 게임은 더 높은 점수를 받을만 하다고 봅니다.

다음 편에서 소개할 내용은
개그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키사쿠를 둘러싼 각 캐릭터들,
그리고 이 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키사쿠의 캐릭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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