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19일 일요일

리뷰 : 마사루 내일의 유키노죠2(2002/9/27,el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일의 유키노죠>의 속편으로 발매된 <마사루 내일의 유키노죠2>입니다.
주인공과 히로인들은 전원 교체되었지만
전작의 캐릭터들도 비중있게 등장하는,
일상물 에로게 속편으로서는 보기 드문 특징을 지니고 있는 게임이죠.

대체로 보컬 곡에 약한 모습을 보였던 엘프 사 게임 중에서
가장 신나는 오프닝 곡을 사용한 게임입니다.
오프닝 영상 싸비 부분에서 30초동안 미소녀 캐릭터는 안 보여주고 
남자 둘이 복싱하는 모습만 보여주는 점도 특이한 점이죠.



주인공은 전작에서 불의의 사고로 인해 혼수상태였던 쿠보 마사루입니다.
혼수상태에서는 천만다행으로 깨어 났으나
당연히 다시는 복싱을 할 수 없는 몸이 되어 버렸죠.
학년도 유급을 하게 되어 한 살 어린 친구들과 즐거운 학창시절을 보내는 이야기입니다.

과묵하고 어두운 캐릭터였던 전작의 주인공과 비교해서
이번 주인공은 활기차고 밝은 모습을 보여 줍니다.
에로게 주인공으로서는 확실히 이쪽이 더 재미있습니다.



상황은 전작의 세리나 진엔딩에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유키노죠는 세리나와 사귀는 채로 그 동네에 계속 머무르게 되었고,
쇼코는 다시 원래 살던 곳으로 돌아왔죠.

전작에 등장했던 캐릭터들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고,
잠깐 얼굴만 비치는 경우도 있지만
쇼코는 전작 캐릭터 중에서 독보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유키노죠를 완전히 다 잊지는 못한 것 같지만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착실한 모습을 보여주는
착한 여동생 캐릭터입니다.
전작에서 어설펐던 복수심을 갖고 있는 캐릭터보다 훨씬 어울려요.
이래서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나 봅니다.
쇼코 너무 귀엽습니다.



그 외에도 아예 전작의 주인공인 유키노죠 시점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도
스토리 도중에 끼어 있습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1편 메인 히로인인 세리나가 극을 이끌어 가는 역할을 합니다.
'핑크색 머리카락은 메인 히로인의 상징!'이라든가
'다음 출연은 마작일 줄 알았는데'같은 메타발언도 여전하죠.

세리나와 2편 주인공 마사루와의 궁합도 의외로 괜찮아서,
재미있는 개그 장면이 많이 등장합니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으로 일부 스토리에서 중요한 조연으로 활약하기도 하죠.



그 외의 전작 캐릭터들의 비중은 그렇게 크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몇몇 캐릭터들은 전작의 비호감 이미지에서 개선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죠.

유키하고 사나에같은 경우는 개인 엔딩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안 그래도 전작 엔딩이 너무 적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감사하네요.



사나에의 스토리는 별 필요없다고 생각하지만
유키 스토리는 꽤 재미있었습니다.
1편에서 1년이 지난 시점에서 이야기하기에 적절한 스토리였죠.



전작과의 연결점은 여기까지 이야기하기로 하고 2편만의 이야기를 해 보면,
2편의 메인 히로인은 미즈시마 아키라입니다.
느긋하고 매사에 의욕이 없는 캐릭터로
전작의 에너지 넘치는 세리나와는 많이 다른 캐릭터죠.
주인공의 반찬을 뺏어 먹거나 밥을 사달라고 하는 등
주인공을 자주 뜯어 먹으려고 하는 특성도 갖고 있습니다.
주인공과 늘상 티격태격하는 모습이 마음에 듭니다.



엔딩의 개수는 26개로 전작에 비해 조금 줄어 들었지만 여전히 많은 편입니다.
다만, 전작에 비해서는 확실히 애매하고 별 필요없는 엔딩이 줄어 들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하는 애매한 엔딩이 아닌
망할 때는 확실히 망하는 배드 엔딩입니다.
아키라같은 경우는 아예 형무소에 들어가는 엔딩이죠.
그 외에도 여성 캐릭터가 멀리 떠나든가, 완전하게 이별하든가 등
어떻게든 결말이 나는 엔딩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비판점을 굳이 찾자면 몇몇 결말이 복선도 없이 너무 급하게 전개되어
끝맺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죠.



치하루의 경우를 봅시다.
치하루는 복싱을 너무 좋아해서
학교 복싱부의 매니저를 하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의외로 복싱의 기본기를 갖추고 있는데
복싱을 가르쳐 준 치하루의 아버지가 일본 챔피언까지 올랐던 복싱선수였기 때문입니다.



치하루의 아버지는 은퇴한 이후 건설 현장에서 일을 하며 힘겹게 살고 있습니다.
어느날 직장에서 잘려 버리고, 살던 집은 화재 사건으로 홀랑 타 버리기까지 하죠.

주인공이 불난 집에 뛰어 들어가 아버지의 벨트를 꺼내 오기도 하고, 
주인공의 호의로 치하루는 주인공 가족이 사는 집에 얹혀 살기까지 합니다.
게다가 주인공이 치하루 아버지 일자리까지 알선해 줍니다.
이 정도면 뭐, 주인공이 치하루 일가의 어마어마한 은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치하루와 맺어지는 게 치하루 엔딩이죠.
주인공이 알선해 준 아버지의 일자리가 먼 곳에 있어 치하루도 떠나게 되지만
서로를 잊지 않고 이어진다는 엔딩입니다.



배드엔딩에서는 치하루의 아버지가 
복싱부 주장 아키오네 집안이 경영하는 체육관에 취직하게 됩니다.
중간 과정 다 잘라 먹고 세월이 흐르니
아키오는 챔피언이 되고 치하루는 아키오의 약혼녀가 되었다는 엔딩이죠.



복싱부 주장 아키오입니다.
전작부터 등장했던 캐릭터인데 저는 언젠가 이 캐릭터가 뒤통수칠 거라고 진작에 예상했죠.

문제는 저 엔딩을 제외하면 게임 스토리에서
아키오와 치하루가 이어질 복선이 딱히 보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주인공이 직접적으로 둘의 관계를 묻기까지 하는데
아키오는 '자신은 쇼코 일편단심!'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까지 합니다.

물론 남녀 관계라는 게 어떻게 될 지 모르는 거지만,
창작물의 엔딩으로서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웠습니다.
엔딩에서 명확한 결말을 내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 엔딩의 개연성은 부족한 면모를 보여준 게 흠이었죠.



마키의 경우도 개연성 측면에서 아쉬운 점이 보였습니다.

마키는 주인공보다 두 살 연상의 대학생으로 재벌집의 아가씨입니다.
게다가 마키가 3학년, 주인공이 1학년이었던 시절에
둘은 서로 연인이었던 관계죠.

마키의 졸업식날, 뜬금없이 마키가 '이제 대학생활을 즐기겠다'하면서 주인공을 차 버립니다.
주인공은 별 이유도 없는 실연에 큰 충격을 받았고
마키와의 관계를 흑역사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마키와 길가다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마키는 아무렇지도 않게 주인공에게 쇼핑 좀 도와달라고 하는 뻔뻔한 모습을 보입니다.
어이없이 차인 충격이 아직 남아 있는 주인공은 당황스러웠지만 어쨌든 같이 다니게 되고,
그 이후로 마키가 계속 주인공을 찾아 오죠.

주인공이 실연의 충격을 마키에게 이야기하며
'지금까지 일은 이제 다 잊어 줄 테니까, 이제 그만 나를 내버려 둬.'라고 말하지만
마키는 '지금까지 일은 다 잊겠다.'라는 말만 쏙 빼듣고 여전히 주인공과 어울리려고 하는
방약무인한 아가씨입니다.



어쨌든 어찌어찌하여 둘은 연인이 되고, 반 년이 흐르게 됩니다.
쇼코는 주인공과 대화 중 '주인공은 마키에게 반 년간 단 한 번도 선물을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재벌집 딸인 마키니까 필요한 게 없을 거다.'라는 게 그 이유였죠.

착하고 귀여운 여동생 쇼코는 주인공에게
'속는 셈치고 뭐든지 선물하면, 마키씨가 기뻐할 거야'라는 조언을 해 줍니다.
주인공은 납득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여동생의 이야기를 따르기로 하죠.
마키에게 갖고 싶은 게 뭔지 물어보기도 하고,
혼자 나름대로 고민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해피엔딩이고 배드엔딩이고 
주인공이 마키에게 뭔가 선물하는 장면이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처음에는 분기가 많은 게임이다 보니,
제가 어디서 못 보고 지나쳤는 줄 알았어요.

소소한 재미를 주는 작은 이벤트가 될 수도 있는 장면이고
클라이막스의 피날레를 장식할 중요한 장면이 될 수도 있는 장면인데
이 장면을 빼 먹으면 어떡합니까?
물론, 전개가 예상되는 뻔한 장면이라는 의견도 있겠지만
이렇게까지 빌드업했으면 선물주는 장면이 당연히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이 정도면 엔딩을 많이 만들다 보니 작가가 
만들던 스토리를 까먹은 거 아닙니까?



이런 국지적인 비판을 제외하면 스토리는 나름 재밌게 즐길 수 있는 편입니다.
각 캐릭터의 고민과 심리 묘사도 깊게 들어가는 편이고,
전작에 비해 패턴이 다양해진 점이 마음에 듭니다.



주인공과 맺어지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우리의 여동생 쇼코가
유키노죠와의 과거를 극복해나가는 스토리를 따로 만든 점도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엔딩도 존재합니다.
복싱을 그만둔 이후 목표도 없이 살던 2편의 주인공과,
복싱을 하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고 자신을 속이던 1편의 주인공이 대결하는 장면이죠.

2편뿐만 아니라 뭔가 엉성했던 1편까지
제대로 완결시킨 멋진 장면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총평하자면, 1편을 재밌게 한 사람이라면 재미있게 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고,
1편에 실망한 사람이라면 그 실망감을 조금이라도 덜어줄 수 있는 게임입니다.
에로게로서 H씬은 전작에 비해 약하지만
나머지 모든 부분이 전작을 능가하죠.

전작의 캐릭터를 대거 투입했지만
전작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얄팍한 상술이 아니고,
오히려 전작의 가치를 높여 주는 점이 특이합니다.

1편과 2편이 동시에 발매되었다면 1편의 평가도 더 올라갔으리라는 의견은
정말 예리한 분석이라고 생각됩니다.
내일의 유키노죠 시리즈를 플레이한다면
텀을 두지 않고 한꺼번에 플레이하기를 권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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