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EVE burst error> 리뷰 2편입니다.
일단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저번 리뷰의 오류부터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번 리뷰 마지막 부분에서 저는 주인공이 갑자기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는데
그냥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리뷰 쓰기 직전 마지막 테스트를 할 때도 잘 들어가졌는데
저는 그 때, 제가 게임 초기화를 실수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메이크작에서는 그 타이밍에 진행이 막혔기 때문에
PC-98판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착각했던 거죠.
여러 리메이크를 동시에 플레이하다보니 이런 착각을 하고 말았는데
이번 리뷰에서도 이런 착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또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생각해주시고 댓글로 정정 부탁드립니다.
실제로 진행이 막히는 부분은 한참 후이지만
일단 막혔다고 치고 왜 막혔는지를 먼저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당시 정말 많은 게임들이 채용하고 있던 방식이죠.
'본다', '이동하다', '말하다'같은 명령을 선택한 후
'무엇'을 보는가, '어디'로 이동하는가, '누구'와 말하나와 같은 하위항목을 선택하는 방식이죠.
이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진행하기 위한 조건을 채우는 거죠.
뭐, 자세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네요.
저는 지금까지 리뷰를 쓰면서 많은 게임에 불평을 늘어 놓았는데
이런 단순한 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던 게임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수백 개나 되는 커맨드 전부를 의미도 없이 몇 번씩이고 눌러 봐야
앞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불합리한 게임들이 많았죠.
EVE burst error는 그런 게임들에 비해 굉장히 편리하고 널럴한 편입니다.
대부분 경우, 이 게임은 '장소 이동'과 '그에 부수하는 대화'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진행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한 번 막히면 다른 게임에서 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진행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커맨드를 천 번씩 눌러보더라도 게임을 진행할 수가 없어요.
그 이유는 게임을 진행하는 조건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코지로' 시점에서 뭘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점인 '마리나' 시점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게임은 두 주인공의 시점을
일정 조건 하에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는 멀티 시점 게임인 겁니다.
이른바 '재핑 시스템'이죠.
재핑 시스템은 게임마다 다르고, EVE 시리즈끼리도 다르며,
심지어 EVE burst error 리메이크마다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정의해야할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일단 '재핑'이라는 단어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용어에 집중해서 정의를 내린다면
재핑 시스템을 적용한 게임은 TV 채널을 돌리듯이
게임 화면을 전환하면서 플레이한다는 의미가 되겠죠.
EVE burst error의 재핑 시스템이란
코지로에서 마리나로, 마리나에서 코지로로
시점을 변환하면서 플레이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PC-98판에서 시점 변환을 하는 방식은 세이브, 로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코지로 시점에서 세이브를 한 이후, 마리나 시점을 처음부터 시작하고,
다시 마리나 시점에서 세이브한 이후, 코지로 시점의 세이브를 로드하는 방식이죠.
사실, 이런 방식 자체는 세이브/로드를 지원하는 게임이라면
어떤 게임이든지 가능합니다.
당장 어제 나온 에로게 하나 실행시켜서,
A 캐릭터 루트 진행하다가 세이브하고,
B캐릭터 루트 진행하다가 A 캐릭터 루트 로드하고 그러면 되니까요.
다만, 대부분의 게임들은 각 캐릭터들의 스토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그런 플레이는 불가능하죠.
예전에 리뷰했던 <DESIRE ~배덕의 나선~>처럼 멀티 시점의 게임이라면 괜찮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알버트'와 '마코토' 두 시점에서 플레이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세이브/로드를 통해 두 시점을 번갈아 가며 플레이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도 재핑 시스템으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죠.
그런 의견대로라면 주인공 선택이 가능한 멀티 시점 게임들은
모두 재핑 시스템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EVE burst error만의 특색은 시점 변경을 강제하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EVE burst error가 이런 시스템을 어떻게 잘 활용했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기본적인 장점부터 설명하자면,
우선 양쪽 시점의 스토리를 동시에 진행하게 함으로써
좀 더 쉽게 두 개의 스토리를 기억하고 두 스토리를 머리 속에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게임이 만일 코지로 시점을 모두 클리어한 다음,
마리나 시점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면 코지로 시점의 초반부는 기억이 나지 않았겠죠.
그럼 코지로 시점 초반부에 깔아뒀던 복선들은 쓸모 없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EVE burst error는 두 시점을 동시에 진행하게 함으로써 그런 문제를 완화하고 있는 거죠.
또한, 한 쪽 시점이 다른 쪽 시점을 스포일러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코지로 시점을 먼저 플레이했는데 누가 죽는지 다 나오고 범인까지 잡혔다고 하면,
마리나 시점을 플레이할 때는 스포일러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이 게임은 중요한 시점에서 시점 변경을 강요함으로써
그런 스포일러를 방지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스포일러가 나올 시점을 플레이어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중요한 사건이 하나 터질 건데 다른 시점 이야기를 먼저 보고 와라'라는 거죠.
PC-98판의 문제점은 시점 변경할 타이밍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점을 변경해야할 타이밍이 되면, 그냥 게임이 진행이 안 되는 것뿐이에요.
플레이어로서는 시점 변경 안 하고도 더 진행할 수 있는데 진행이 안 되는 건지,
시점 변경을 해야 진행할 수 있는 건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만큼 쓸데없는 고생을 더 해야한다는 거죠.
기본적인 시스템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스토리와 함께 살펴 봅시다.
이번에 소개할 시점은 마리나 시점입니다.
마리나 시점의 주인공은 내각조사실의 1급 수사관 호죠 마리나입니다.마리나는 아직 젊은 여성이지만 성공률 99%라는 무시무시한 커리어를 가진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연상 취향에 스스로도 인정하는 금사빠이기도 하죠.
내각조사실 본부로 가서 부장님에게 먼저 인사를 합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는 하이잭 사건이 있었지만
마침 승객이었던 마리나가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하는군요.
마리나에게 부여된 임무는 엘디아 공화국의 외교관인 미도의 딸,
마야코를 호위하는 임무입니다.
미도 외교관은 굉장히 개혁적인 인물인데,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딸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미도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딸이 일상적인 생활을 침해받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마리나가 학교에 마야코의 개인 과외 선생으로 잠입해서
마야코를 지켜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마야코는 호위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마리나에게도 쌀쌀맞게 대했지만
친화력 만렙인 마리나는 금세 마야코와 친해지게 됩니다.
마야코를 노리는 교통사고나 유괴범 등이 있었지만 마리나는 깔끔하게 퇴치해 버리죠.
재미있는 점은 마리나 시점의 초반부는 코지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사립탐정 코지로가 코우에게 그림 수색 사건과
1급 수사관 마리나의 외교관 딸 호위 임무는 완전 별개로 진행돼요.
같은 동네에 사는 것 빼고는 접점이 없습니다.
마리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바로 야요이였던 겁니다.
저번 리뷰에서 말했던 코지로의 헤어진 전 연인이자,
카츠라기탐정소의 소장인 그 야요이죠.
세상 참 좁습니다.
뭐, 전세계 모든 사람들도 모두 여섯 다리 정도 건너면 연결된다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도 코지로와 마리나는 아직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멀티 시점 및 재핑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했을까요?
분량 조절 실패와 저번 리뷰에서의 제 실수로 인해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 리뷰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