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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31일 일요일

리뷰 : EVE burst error(2)(1995/11/22,시즈웨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EVE burst error> 리뷰 2편입니다.
일단 본 리뷰에 들어가기 앞서 저번 리뷰의 오류부터 짚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저번 리뷰 마지막 부분에서 저는 주인공이 갑자기 도서관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는데
그냥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리뷰 쓰기 직전 마지막 테스트를 할 때도 잘 들어가졌는데
저는 그 때, 제가 게임 초기화를 실수해서라고 생각했습니다.
리메이크작에서는 그 타이밍에 진행이 막혔기 때문에
PC-98판에서도 그럴 것이라고 착각했던 거죠.

여러 리메이크를 동시에 플레이하다보니 이런 착각을 하고 말았는데
이번 리뷰에서도 이런 착각으로 잘못된 부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혹시라도 또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럽게 생각해주시고 댓글로 정정 부탁드립니다.

실제로 진행이 막히는 부분은 한참 후이지만
일단 막혔다고 치고 왜 막혔는지를 먼저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게임은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당시 정말 많은 게임들이 채용하고 있던 방식이죠.
'본다', '이동하다', '말하다'같은 명령을 선택한 후
'무엇'을 보는가, '어디'로 이동하는가, '누구'와 말하나와 같은 하위항목을 선택하는 방식이죠.
이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은 간단합니다. 진행하기 위한 조건을 채우는 거죠.
뭐, 자세한 설명은 필요없을 것 같네요.

저는 지금까지 리뷰를 쓰면서 많은 게임에 불평을 늘어 놓았는데
이런 단순한 시스템을 제대로 이용하지 못했던 게임들이 생각보다 많기 때문입니다.
수백 개나 되는 커맨드 전부를 의미도 없이 몇 번씩이고 눌러 봐야
앞으로 진행할 수 있는 불합리한 게임들이 많았죠.

EVE burst error는 그런 게임들에 비해 굉장히 편리하고 널럴한 편입니다.
대부분 경우, 이 게임은 '장소 이동'과 '그에 부수하는 대화'를 선택하는 것만으로 진행이 가능합니다.
문제는 한 번 막히면 다른 게임에서 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진행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모든 커맨드를 천 번씩 눌러보더라도 게임을 진행할 수가 없어요.

그 이유는 게임을 진행하는 조건이
현재 진행하고 있는 '코지로' 시점에서 뭘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점인 '마리나' 시점을 진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이 게임은 두 주인공의 시점을
일정 조건 하에 동시에 진행할 필요가 있는 멀티 시점 게임인 겁니다.
이른바 '재핑 시스템'이죠.

재핑 시스템은 게임마다 다르고, EVE 시리즈끼리도 다르며,
심지어 EVE burst error 리메이크마다도 조금씩 다르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 정의해야할 것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일단 '재핑'이라는 단어는 리모컨으로 채널을 바꾼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용어에 집중해서 정의를 내린다면
재핑 시스템을 적용한 게임은 TV 채널을 돌리듯이 
게임 화면을 전환하면서 플레이한다는 의미가 되겠죠.

EVE burst error의 재핑 시스템이란 
코지로에서 마리나로, 마리나에서 코지로로
시점을 변환하면서 플레이하는 시스템을 의미합니다.



이후 리메이크에서는 시점 변환이 편리해졌기 때문에 착각하는 분들이 많은데,
PC-98판에서 시점 변환을 하는 방식은 세이브, 로드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코지로 시점에서 세이브를 한 이후, 마리나 시점을 처음부터 시작하고,
다시 마리나 시점에서 세이브한 이후, 코지로 시점의 세이브를 로드하는 방식이죠.

사실, 이런 방식 자체는 세이브/로드를 지원하는 게임이라면
어떤 게임이든지 가능합니다.
당장 어제 나온 에로게 하나 실행시켜서,
A 캐릭터 루트 진행하다가 세이브하고,
B캐릭터 루트 진행하다가 A 캐릭터 루트 로드하고 그러면 되니까요.
다만, 대부분의 게임들은 각 캐릭터들의 스토리가 전혀 다른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그런 플레이는 불가능하죠.



예전에 리뷰했던 <DESIRE ~배덕의 나선~>처럼 멀티 시점의 게임이라면 괜찮습니다.
똑같은 사건을 '알버트'와 '마코토' 두 시점에서 플레이하는 것이기 때문이죠.
실제로 세이브/로드를 통해 두 시점을 번갈아 가며 플레이했던 사람도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경우도 재핑 시스템으로 봐야한다는 의견도 있죠.
그런 의견대로라면 주인공 선택이 가능한 멀티 시점 게임들은
모두 재핑 시스템으로 볼 수 있을 겁니다.



다른 멀티 시점 게임들도 대부분 EVE burst error처럼 플레이할 수 있기 때문에
EVE burst error만의 특색은 시점 변경을 강제하는 타이밍이 있다는 것뿐입니다.

EVE burst error가 이런 시스템을 어떻게 잘 활용했는지는 나중에 설명하겠지만 
기본적인 장점부터 설명하자면,
우선 양쪽 시점의 스토리를 동시에 진행하게 함으로써
좀 더 쉽게 두 개의 스토리를 기억하고 두 스토리를 머리 속에서 연결시킬 수 있다는 겁니다.

이 게임이 만일 코지로 시점을 모두 클리어한 다음,
마리나 시점을 플레이할 수 있었다면 코지로 시점의 초반부는 기억이 나지 않았겠죠.
그럼 코지로 시점 초반부에 깔아뒀던 복선들은 쓸모 없게 될 우려가 있습니다.
EVE burst error는 두 시점을 동시에 진행하게 함으로써 그런 문제를 완화하고 있는 거죠.

또한, 한 쪽 시점이 다른 쪽 시점을 스포일러하는 것도 방지할 수 있습니다.
만일, 코지로 시점을 먼저 플레이했는데 누가 죽는지 다 나오고 범인까지 잡혔다고 하면,
마리나 시점을 플레이할 때는 스포일러를 당한 것과 마찬가지로
긴장감이 떨어질 수밖에 없겠죠.

이 게임은 중요한 시점에서 시점 변경을 강요함으로써 
그런 스포일러를 방지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스포일러가 나올 시점을 플레이어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쯤에서 중요한 사건이 하나 터질 건데 다른 시점 이야기를 먼저 보고 와라'라는 거죠.



PC-98판의 문제점은 시점 변경할 타이밍을 직접적으로 알려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시점을 변경해야할 타이밍이 되면, 그냥 게임이 진행이 안 되는 것뿐이에요.

플레이어로서는 시점 변경 안 하고도 더 진행할 수 있는데 진행이 안 되는 건지,
시점 변경을 해야 진행할 수 있는 건지 구분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그만큼 쓸데없는 고생을 더 해야한다는 거죠. 

기본적인 시스템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나머지는 스토리와 함께 살펴 봅시다.



이번에 소개할 시점은 마리나 시점입니다.
마리나 시점의 주인공은 내각조사실의 1급 수사관 호죠 마리나입니다.
마리나는 아직 젊은 여성이지만 성공률 99%라는 무시무시한 커리어를 가진
엘리트 중의 엘리트입니다.
연상 취향에 스스로도 인정하는 금사빠이기도 하죠.



본래 외국에 있었으나, 임무 때문에 귀국한 마리나는
내각조사실 본부로 가서 부장님에게 먼저 인사를 합니다.
귀국하는 비행기에서는 하이잭 사건이 있었지만
마침 승객이었던 마리나가 깔끔하게 처리했다고 하는군요.



마리나에게 부여된 임무는 엘디아 공화국의 외교관인 미도의 딸,
마야코를 호위하는 임무입니다.
미도 외교관은 굉장히 개혁적인 인물인데,
개혁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딸을 노리고 있다고 합니다.
미도는 정치적인 문제 때문에 딸이 일상적인 생활을 침해받는 걸 바라지 않기 때문에,
마리나가 학교에 마야코의 개인 과외 선생으로 잠입해서
마야코를 지켜주길 바라고 있습니다.



마야코는 호위를 탐탁치 않게 생각했고, 마리나에게도 쌀쌀맞게 대했지만
친화력 만렙인 마리나는 금세 마야코와 친해지게 됩니다.
마야코를 노리는 교통사고나 유괴범 등이 있었지만 마리나는 깔끔하게 퇴치해 버리죠.

재미있는 점은 마리나 시점의 초반부는 코지로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인다는 점입니다.
사립탐정 코지로가 코우에게 그림 수색 사건과
1급 수사관 마리나의 외교관 딸 호위 임무는 완전 별개로 진행돼요. 
같은 동네에 사는 것 빼고는 접점이 없습니다.



플레이 이틀째 밤, 둘의 접점이 하나 밝혀지는데
마리나의 둘도 없는 친구가 바로 야요이였던 겁니다.
저번 리뷰에서 말했던 코지로의 헤어진 전 연인이자,
카츠라기탐정소의 소장인 그 야요이죠.

세상 참 좁습니다. 
뭐, 전세계 모든 사람들도 모두 여섯 다리 정도 건너면 연결된다고 하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그래도 코지로와 마리나는 아직 서로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이입니다.



코지로와 마리나, 이 두 사람은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는 걸까요?
그리고 이 게임은 멀티 시점 및 재핑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했을까요?
분량 조절 실패와 저번 리뷰에서의 제 실수로 인해
그에 대한 설명은 다음 리뷰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10월 24일 일요일

리뷰 : EVE burst error(1)(1995/11/22,시즈웨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PC-98시절 게임 중에서도 
가장 명작으로 손꼽히는 게임 중 하나인 <EVE burst error>입니다.

제작사인 시즈웨어가 진작에 망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게임은 최근까지 인지도가 꽤 높은 편인데 
꾸준히 리메이크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식과 리메이크의 역사를 대충 살펴보면 
일단 이 게임은 95년도에 발매된지 2년 후인 1997년에,
당대 명작 에로게는 무조건 이식하고 봤던 게임기 세가 새턴에 이식되었습니다.
4개월쯤 후에는 약간의 수정을 거쳐 윈도우 95판이 출시됩니다.

2003년 7월에는 플레이스테이션2 기종으로 <EVE burst error PLUS>가 발매되었는데
이 플스2판은 우리나라에 정식으로 수입되어 한국어판도 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H씬이 추가된 성인판으로 또 PC판이 나왔죠.

그 다음에는 2010년도에 PSP판으로 <burst error -EVE THE 1st.->가 출시됩니다.
2016년 4월에는 PS VITA와 닌텐도 스위치, PC 기종으로 <EVE burst error R>이 출시되었고,
또또 같은 해 11월에는 거기에 H씬을 추가하여 <EVE burst error A>가 발매되었죠.

나중에 각각의 게임들에 대해 설명하겠지만 
이 수많은 리메이크들이 똑같은 게임들이 그대로 이식된 건 아니고,
여러 번의 그래픽과 시스템 설정상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게임을 오랫동안 지켜봐 온 입장에서 감상은
'징하게도 우려먹네'입니다.
거의 6년에 한 번 꼴로 리메이크가 나오고
리메이크의 성인판이 또 나오고 있잖아요.

아무튼 유구한 역사를 지닌 EVE burst error는
이렇게까지 우려먹을 정도로 훌륭한 게임이었다는 겁니다.
과연 무슨 매력이 이 게임을 이렇게까지 오래 지속되게 한 걸까요?



게임을 시작하면, '코지로'와 '마리나' 둘 중
누구의 시점에서 플레이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같은 회사 게임인 <DESIRE ~배덕의 나선~>과 똑같은 스타트 화면이죠.
당대 유행했던 멀티 시점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겁니다.

제 블로그에서도 많은 멀티 시점 게임들을 소개했는데
사실 대부분의 게임들이 그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고민도 없이 불필요한 장면만 많이 넣거나,
시점 전환이 되었는지도 눈치 못 챌 정도로 각 시점간의 차별점이 없거나,
스토리간의 비중 배분에 실패하는 식의 단점들을 많이 갖고 있는 게임이었죠.



이 분야의 정점이라고 불리는 이 게임은 어떠한 정답을 제시했을까요?
우선 '코지로' 루트부터 시작해 봅시다.
주인공의 이름은 아마기 코지로로 꽤 실력있는 사립 탐정입니다.

덧붙여서, 악당은 아니지만 목적을 위해서는 다소 불법적인 일도 하는 편입니다.
허가받지 않은 총기도 소지하고 있는데 사실 모형 총입니다.
진짜와 완벽하게 똑같이 생겼고, 실탄이 발사될 뿐이죠.

업계 최고의 탐정사무소인 '카츠라기 탐정 사무소'의 유능한 탐정이었으나
사장을 고발하고 독립해서 새로운 '아마기 탐정사무소'를 차렸습니다.
하지만, 아마기 탐정사무소에는 의뢰가 전혀 오지 않는데
주인공의 탐정 면허는 정지된 상태이며,
사무소는 해변의 허름한 창고에 차렸기 때문이죠.
의뢰가 오는 게 더 이상한 상태입니다.



그런 주인공 앞에 평소 알고 지내던 기자인 아카네가 등장합니다.
무려 한 건에 300만 엔짜리 의뢰를 소개시켜 줍니다.



의뢰주는 코우라는 이름의 중국인입니다.
사는 곳부터가 엄청나게 큰 저택으로 300만 엔정도는 충분히 지불할 재력이 되는
엄청난 부자처럼 보입니다.

코우의 의뢰는 '이슬람 회화'를 찾아달라는 건데 의뢰 내용이 좀 수상합니다.
해외 여행 다녀온 사이에 그림이 사라졌다는데
그림이 집안에 있는 건지, 누가 훔쳐간 건지도 제대로 모르겠고,
침입 흔적은 있는데 프로 도둑이라기에도 이상하고, 초짜 도둑도 아닌 것 같으며,
그림 자체는 싸구려가 맞아서 탈세도 아니고, 자작극도 아닌 것 같습니다.

코우 스스로도 수상한 의뢰라는 걸 알고 있지만,
돈 많이 줄 테니 쓸데없는 건 신경쓰지 말고 그림이나 찾아 오라는 식으로 이야기합니다.
무려 350만 엔으로 성공보수를 올려주죠.



코우는 다른 탐정에게도 사건을 의뢰했는데
바로 업계 최고의 탐정사무소인 '카츠라기 탐정사무소'에 의뢰한 것입니다.
사무소 소장인 야요이와 2인자인 니카이도를 만나게 되죠.



본래 주인공도 '카츠라기 탐정사무소' 소속의 탐정이었습니다.
야요이의 아버지인 이전 소장을 고발하여 감방에 쳐놓고 독립하게 된 거죠.
야요이와는 한 때 동거까지 하던 연인 관계였으나 이 일로 헤어지게 됩니다.
안정적인 직장과 매력적인 연인까지 잃게 되었으나
주인공이 선택한 내부고발입니다. 악으로 깡으로 버텨야 하죠.

야요이는 아직도 주인공에게 정이 남아 있는지
원수나 다름없는 주인공에게 그렇게 매정하게 대하지 못하지만
니카이도는 주인공에게 노골적으로 반감을 드러냅니다.

니카이도는 주인공에게 라이벌 의식을 갖고 있으며,
목적은 '이중의 의미로 소장을 손에 넣는다'입니다.
소장 자리에 오르는 게 목표일 뿐만 아니라,
야요이 소장과 애인 관계가 되는 게 목표인 거죠.

아무튼 주인공의 목적은 '카츠라기 탐정사무소'를 제치고
그림을 먼저 찾아 내는 겁니다.



늦은 밤에 카츠라기 탐정사무소를 찾아가 보면
혼자서 야근하고 있는 야요이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사무소의 에이스였던 아버지와 주인공이 한꺼번에 빠져 나가고
2인자인 니카이도는 제대로 통제가 안 되는 상황이지만,
주인공에게 약한 소리 한 번 하지 않고 
꿋꿋하게 사무소를 유지하려고 홀로 노력하는 모습이 눈물 겹습니다.



주인공은 그림에 대해 여러 측면에서 조사를 벌입니다.
자신의 정보통인 글렌에게 연락해 보지만 딱히 유용한 정보를 얻지는 못합니다.
그림이 그다지 가치가 있는 게 아니라는 정보는 얻을 수 있었죠.



도서관에 조사하러 가면 마츠노라는 여성을 만나게 됩니다.
다음날 이슬람 회화에 대해 가르침을 받을 약속을 하게 되죠.
마츠노가 자료를 찾아 놓겠다고 합니다.
사실 마츠노의 정체는 같은 회사의 게임인 <열락의 학원>의 등장인물입니다.
팬 서비스용으로 나온 캐릭터죠.



도서관에서 돌아오는 길에는 마찬가지로 <열락의 학원>의 등장인물인
히무로 쿄코를 만나게 됩니다.
이 캐릭터는 단순히 팬서비스 용이 아니라
EVE 시리즈에서 훨씬 활약하게 되는 매력적인 캐릭터입니다.
지금은 단순히 스쳐 지나가는 사이일 뿐입니다.



주인공 사무소 근처에서는 웬 소년이 불량배들에게 얽혀 있습니다.
주인공은 소년을 도와주는데 도움을 받은 직후 소년은 정신을 잃고 맙니다.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소년을 사무소에 재우게 되죠.



사실 소년이 아니라 여성이었습니다.
외관과 행동으로 볼 때 아랍계 외국인인 것 같으며,
양 눈동자의 색깔이 다른 오드아이입니다.
이름은 푸딩이라고 합니다.



자신을 도와준 주인공을 '코지로님'이라고 부르며, 엄청 따르게 됩니다.
주인공에게 식사도 차려주고 사무소의 청소, 세탁 등을 자진해서 하기도 하죠.

주인공을 푸딩을 돌려 보내려고 했으나,
이런 저런 사정 끝에 주인공 사무소에서 맡는 걸로 합의를 합니다.
보호자에게 연락을 해서 허락을 받으라는 조건 하에서요.



그 후, 주인공은 약속대로 마츠노와 만나기 위해 학교 도서관으로 향합니다.
학교 앞에 가면, 몇 번 정도 스쳐 지나갔던 가슴 큰 여성이 학교로 들어가는 걸 목격하게 되죠.
너무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도서관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리고 이 시점에서 갑자기 게임이 진도가 안 나갑니다.
주인공이 갈 수 있는 모든 장소를 방문하고,
주인공이 취할 수 있는 모든 행동을 다 하더라도 아무 이벤트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버그 걸린 건 아니고 시스템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만일, 계속 진행된다고 하면 게임 초기화를 잘못한 거겠죠.
게임을 계속 진행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이 무엇인지는 다음 리뷰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게임을 이 부분까지 진행하면서 눈치챌 수 있는 독특한 부분은
바로 또다른 주인공인 마리나입니다.
코지로 루트를 진행하는 동안 마리나는 등장도 안 했을 뿐더러
이름 한 번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마리나는 대체 누구일까요?
이 역시 다름 리뷰에서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리뷰 : 가월십야(2001/8/13,TYPE-MOON)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월희>의 팬디스크인 <가월십야>입니다.
원작이 동인게임이었던만큼 팬디스크 역시 동인게임으로 아쉬운 점도 많이 보이지만,
스토리가 좋고 전체적인 구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메인 스토리는 원작 <월희>로부터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주인공 토오노 시키의 단 하루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가 끝날 때까지 무수한 선택지가 나오는 방식이죠.

하루의 내용은 짧은 편이고,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간에
단 한 번의 플레이로는 이 게임의 극히 일부분밖에 볼 수 없습니다.
여러 선택지를 골라가며 무수히 반복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게임인 거죠.



게임을 반복하다 보면 눈치챌 수 있는데,
사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반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계속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루프물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어제의 일이라든가 과거의 일에 대한 기억이 애매한 상태입니다.
일반적인 루프물이라면
주인공이 루프를 인식하고, 직전 루프를 어제로 기억하고 있다든가
아니면 루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준일에서 어제를 기억하고 있다든가 할 텐데
이 게임의 주인공은 어제에 대한 기억이 그냥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가 어디로 가든지 간에
기억을 못한다고 퉁쳐 버리고 모순없이 스토리를 끌고 갈 수 있으며,
그만큼 자유로운 루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선택지는 주인공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날 하루를 디자인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오늘은 학교축제날이야'라고 생각하면 학교 축제날이 되는 거고,
'오늘은 체육대회날이야'라고 생각하면 체육대회날이 되는 방식이죠.

그뿐만 아니라 설정 역시도 선택지를 통해 변경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등교할 때 '아키하를 기다린다'와 '혼자서 간다'는 선택지가 있는데,
'아키하를 기다린다'를 선택하면
원작에서 아키하가 주인공 학교로 전학왔던, 
아키하 루트의 설정대로 하루가 진행되는 겁니다.
'혼자서 간다'를 선택하면
아키하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설정의 하루가 되는 거죠.

원작의 특정 캐릭터 엔딩의 후일담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설정을 오가며 전부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캐릭터들의 설정이 상당히 강화되었고,
원작의 캐릭터들과 함께 새로운 이벤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원작의 팬들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팬디스크입니다.

다만, 동인게임이기 때문인지 캐릭터들과의 이벤트 양이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습니다.
알퀘이드나 아키하의 이벤트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히스이는 팬디스크의 최고의 수혜자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원작에서 좀 심심하다고 느꼈던 코하쿠는
드디어 제가 좋아하는 코하쿠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이 루프하는 세계의 이상함을 깨닫고
그것을 해결하는 중심 스토리도 꽤 잘 잡혀 있습니다.
에로게 팬디스크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스토리에 속합니다.


이 게임의 문제점은 미친 수준의 난이도입니다.
이 게임은 단순히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주는 스토리가 아니라
선택지를 통해 여러 이벤트를 보고,
이벤트를 본 기준이 충족되면 선택지와 이벤트가 점점 늘어나고,
그걸 통해 이 세계의 진실을 찾아내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선택지만 해도,
버라이어티한 하루를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정신없을 정도로 선택지가 많습니다.
근데 그 선택지들이 점점 새끼를 치는 겁니다.

게다가 똑같은 선택지를 골라도 이벤트가 달라질 때도 있습니다.
하루동안 선택한 선택지의 조합에 따라,
혹은 게임 진행도에 따라 똑같은 선택지라도 다른 이벤트를 보여주는 거죠.

문제는 무슨 선택지가 새로 생겼고, 무슨 이벤트가 새로 생겼고 하는 과정을
플레이어에게 전혀 표시해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선택지가 자꾸 새끼를 치는데 누가 무슨 새끼를 쳤는지 말도 안 해줘요.
스토리 외적인 부분에서 시엘이 힌트를 주는 코너가 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할 정도로 난이도가 어렵습니다.

아무 표시가 없다보니 플레이어가 뭐가 부족해서 게임 진행이 안 되는지 알 수가 없고,
모든 선택지를 다 조합해 가면서 중요 이벤트를 찾아야 합니다.
하루 종일 이미 본 장면만 보다가 게임이 끝나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인 거죠.
선택지에 표시를 해 주거나 게임 진행도를 표시해 줬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기는 했지만,
팬디스크에 루프물을 도입한 아이디어 자체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고,
저는 이런 스타일의 팬디스크가 앞으로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었습니다.
결과는 <Fate/hollow ataraxia>, 단 하나만 나왔습니다.

에로게 업계에도 팬디스크 전성기가 있기는 했지만 
많은 팬디스크 게임들이 H씬이나 추가된 애프터 스토리나 
공략 불가 캐릭터 스토리를 추가했을 뿐이었습니다.
스토리나 구성에 대한 고민은 굳이 하지 않았죠.
원작을 하지 않은 사람은 팬디스크를 사지도 않을 텐데
팬디스크에까지 그런 정성을 들이는 건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향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래서, 가월십야나 <Fate/hollow ataraxia>가 더 빛나 보입니다.



총평하자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잘 만든 팬디스크입니다.
월희 세계관의 팬이라면 좋아할 요소를 많이 담고 있죠.
소개해 드린 메인 스토리 외에도 여러 단편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Fate/hollow ataraxia>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가월십야에서 나온 것입니다.
스토리와 편의성 측면에서는 <Fate/hollow ataraxia>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월십야만의 매력도 있는만큼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난이도 때문에 가볍게 할 만한 게임은 아니네요.

2021년 10월 10일 일요일

리뷰 : 월희 -A piece of blue glass moon-(2021/8/26,TYPE-MOON)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21년 8월 26일에 발매된 월희의 리메이크작
<월희 -A piece of blue glass moon->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랫동안 기다려 왔던 리메이크였던만큼
발매 후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고,
리메이크 게임 자체도 꽤 잘 나왔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호평이 많은 리메이크인 것 같습니다.


발매 전 사람들을 가장 불안하게 만들었던 요소는
'분할 상법'입니다.
이번 리메이크에는 알퀘이드-시엘 루트만이 들어 있고,
나머지 캐릭터들의 루트는 후속작에 수록이 예고되어 있죠.

발매 후에는 분할에 대한 불만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 정도면 분할을 인정해 줄 수 있다는 의견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실, 월희 원작의 분량으로 볼 때,
풀보이스만 지원한다고 해도 분할될 수밖에 없는 규모였습니다.
그만큼 내용이 많은 게임이니까요.

저는 분할 소식을 들었을 때, 그다지 불만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두 개로 나눠진만큼 그래픽, 사운드, 연출, 스토리 면에서
어마어마한 추가 요소가 있을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었죠.


참고로 이번 리뷰는 스크린샷 없이 가겠습니다.
닌텐도 스위치판으로 플레이했는데 게임 내 스샷이 금지되어 있기도 하고,
방법이야 많지만 유명 게임 리뷰하는 중에 굳이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싶지 않네요.
비주얼적 요소에 대해서는 다른 사이트에서 확인하시길 바랍니다.

그래픽의 측면에서는 확실히 진일보했습니다.
사실 원작의 그래픽이 너무나도 약점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나왔어도 발전했다는 평가를 받았겠지만
그래도 깔끔하게 잘 뽑혔다고 생각합니다.

연출 면에서는 논란이 잠깐 있기도 했지만 
제가 볼 때는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났습니다.
물론, 저는 타입문보다 자본력이 안 되는 회사 게임들 전문이기 때문에
연출에 대해서는 관대한 기준을 갖고 있지만
어쨌든 제 기준에서는 충분하고도 남는 수준의 연출이었습니다.

게임의 그래픽이나 연출에 대해서는 깊게 보지 않는 편이기 때문에
웬만하면 불만을 가지지 않는 편이고,
이 게임에서 불만이 있을 부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시스템의 측면에서는 '비주얼 노벨이 이 정도면 됐지'라는 의견도 많은 것 같습니다만
제게는 아쉬운 면이 보였습니다.

가장 불만이었던 것은 플로우 차트입니다.
애초에 게임이 절반으로 쪼개진 시점에서 플로우 차트는
덜 아름다울 수밖에 없긴 하죠.
플로우 차트는 분기가 많고 스토리가 가지를 많이 치는 게임에서
더 유용한 기능이기 때문입니다.

월희 리메이크는 선택지는 많았지만
스토리 전개와 별 관계없는 선택지나 개그성 선택지, 배드엔딩이 많았을 뿐
스토리의 큰 줄기는 세 개밖에 되지 않는 게임이었습니다.
플로우 차트 활용도가 그렇게 크지 않은 게임이라는 거죠.
사실, 최근에는 더 단순한 게임도 플로우 차트를 활용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이 자체는 불평할 거리가 아닙니다.

문제는 게임 도중, 플로우 차트의 이동이나 활용이 자유롭지 못하다는 겁니다.
일단, 첫 스토리인 알퀘이드 루트를 클리어하더라도
플로우 차트를 통해 특정 지점에서 게임을 재개하는 기능이 없습니다.
따로 세이브한 것을 로드하던가 아니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면 이전에 봤던 장면이 플로우 차트에 표시되긴 합니다.
근데 이동은 여전히 한정적입니다.
미래나 현재 플레이에서 선택하지 않은 장면으로는 이동이 불가능할 뿐더러
무슨 장면인지 상세하게 확인하는 것조차 불가능합니다.
처음에는 버튼이 안 먹는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이동이 제한되어 있어요.
닌텐도 스위치의 터치 스크린을 활용해도 마찬가지입니다.

플로우 차트의 유일한 활용법은
현재 플레이에서 선택해 온 길을 되돌아 갈 때 뿐입니다.
한참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 때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하죠.
대사, 장면 스킵 기능이 잘 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불편하진 않지만
그래도 시간이 많이 낭비됩니다.

사실, 말씀드린 것처럼 분기가 많은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플로우 차트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이유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최근의 플로우 차트를 활용한 게임들은
훨씬 더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죠.
이 게임은 다른 요소들이 다 정상급인 게임인데
플로우 차트 시스템만이 너무 구식이라서 아쉽습니다.


스토리는 상당히 많은 부분을 수정했습니다.
네로같은 비중이 적지 않았던 캐릭터조차
다른 캐릭터로 완전히 갈아 엎을 정도였죠.

플레이 초반부에는 적지 않게 당황했는데
알지도 못하는 캐릭터가 여럿 등장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월희를 좋아하긴 했지만,
그 세계관을 그렇게까지 깊게 알고 있던 것은 아니었죠.
제 기억에 없는 캐릭터가 등장했을 때,
이 캐릭터가 그동안 쌓아온 세계관의 연장선에 있는 캐릭터인지
아니면 리메이크에서 새로 등장한 캐릭터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후속작을 염두에 뒀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렇게 등장시킨 캐릭터들 중 일부는 제 생각보다 비중이 별로 없었습니다.
아마도 후속작을 플레이할 때쯤이면 누구였는지 기억이 안 날 것 같네요.

그 후에는 원작의 흐름을 많이 따라갔습니다.
변화된 부분이 적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제가 좋다고 생각한 부분이 거의 다 들어가 있었어요.
자잘한 부분까지도요.
그것도 정말 자연스럽게 녹여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리라고 생각합니다만
리메이크에서 가장 변화한 건 시엘입니다.
구작을 복습하기 전에 제가 시엘에 대해 기억하는 장면은
알퀘이드한테 멱살 잡힌 장면 정도였기 때문에
그렇게 강한 캐릭터라고는 생각을 못 하고 있었죠.

근데 리메이크에서 보여 준 시엘의 퍼포먼스는
어마어마한 수준이었습니다.
알퀘이드가 구작에 비해서 그렇게 비중이 줄어든 건 아닌데
시엘 비중이 미친듯이 늘어나 버렸기 때문에
리메이크에서 알퀘이드를 홀대한다는 느낌을 받을 정도였습니다.

시엘이 받은 여러 버프와
시엘의 새로운 스토리가 상당히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시엘 캐릭터에는 결국 정을 붙이지 못 했습니다.
시엘 루트에서도 알퀘이드의 매력이 더 보일 정도였죠.

그러다 보니, 시엘 루트가 다소 길게 느껴졌습니다.
제 개인적인 취향으로는 알퀘이드한테도 힘을 좀 줘서
엔딩 하나 정도 더 만들어줬으면 좋았을 것 같아요.


총평하자면, 타입문은 예나 지금이나 업계에서 최고의 관심을 받고 있는 브랜드이며
이에 영향을 받아 월희에도 많은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월희는 워낙에 옛날 게임이었기 때문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조차 쉽게 건드리지 못하는 게임이었죠.
리메이크는 이런 사람들의 관심을 충족시켜 주기에
충분한 완성도를 지닌 훌륭한 게임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분할 상법'은 불만이 아니었으나 '분할'은 불만이었습니다.
저는 코하쿠파이며, 맛만 보여 준 수준인 이번 작품에서도 
코하쿠가 가장 매력적이었습니다.
충격적인 배드엔딩조차 마음에 들 정도였죠.
근데, 분할로 인해 코하쿠 스토리는 또 기약도 없이 밀려 버렸습니다.

구작 월희는 동인 게임이었기 때문에
나스 키노코가 하고 싶었던 것을 모두 하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처음 분할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는
이번에야말로 모든 힘을 다 쏟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큰 기대를 했었죠.

다만, 아직까지는 제가 원했던 모습이 안 나왔던 것 같습니다.
시엘 노말엔딩까지는 좋았지만 
시엘 트루엔딩은 제가 원했던 방향과는 조금 달랐어요. 아쉽습니다.

제 생전에 나올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제가 원하는 부분에 정성을 쏟은 후속작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2021년 10월 3일 일요일

리뷰 : 월희(2)(2000/12/29,TYPE-MOON)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흔히 알려진 월희의 공략 순서는
알퀘이드 -> 시엘 -> 아키하 -> 히스이 -> 코하쿠 순서입니다.
시스템상으로도 선택지 변화를 통해 어느 정도 강제된 순서입니다만
엄격히 정해진 건 아니고,
알퀘이드나 아키하 루트를 제끼고 시엘, 히스이, 코하쿠 루트 순서로 가는 것도 가능하죠.



하지만, 월희를 처음 플레이한다면 우선은 알퀘이드 스토리를 
가장 먼저 보는 게 순리라고 할 수 있겠죠.
우울한 사정과 복잡한 비밀들이 많은 월희 스토리 중에서
가장 명쾌하고 시원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스토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

네로와의 전투씬이나 로아와의 전투씬의 마무리도 멋졌고,
주인공이 알퀘이드에 대한 의혹을 잠시 가졌던 적도 있지만
금방 풀렸기 때문에 스토리가 그다지 무거워지지 않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재미라는 측면에서 보면 가장 훌륭한,
부담없이 할 수 있는 루트라고 생각합니다.



알퀘이드는 이 게임에서 가장 인기 높은 캐릭터지만 
개인적으로는 그다지 좋아하는 캐릭터가 아니었는데
오랜만에 월희를 플레이해 보니 제가 너무 무시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천연 캐릭터가 널리고 널린 캐릭터 중 하나지만
알퀘이드는 흡혈귀 설정이 더해져 지금 봐도 다른 천연 캐릭터들과 구분되는
고유한 매력이 있는 캐릭터네요.

아쉬운 점은 다섯 히로인 중에서 가장 등장이 적다는 점입니다.
아키하, 히스이, 코하쿠 루트에서는 사실상 등장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학교 선배인 시엘입니다.
엉뚱한 면도 있지만 이해심 많고 온화한 선배로서
주인공과 옛날부터 아는 사이였다는 건 다 페이크였고,
사실은 교회 소속의 엑소시스트입니다.



시엘 스토리도 다른 루트에 비해서는 비교적 단순하고 배틀이 많은 편입니다.
시엘의 과거나 고뇌가 알퀘이드보다 더 깊고
주인공 개인의 고민도 있기 때문에
알퀘이드 루트보다는 분위기가 좀 더 무거운 스토리입니다.

다섯 캐릭터들 모두 인기가 많은 편이지만
굳이 순위를 매기자면 시엘이 최하위권으로 알고 있고,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이 얕은 캐릭터였습니다.
알퀘이드는 이번 구작 복습 때 재평가를 하게 되었지만
시엘은 그마저도 안 되었죠.
리메이크에서 어떤 인상을 받았는지는 나중에 얘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여동생 아키하입니다.
이 게임은 알퀘이드/시엘 루트와 아키하/히스이/코하쿠 루트,
크게 두 줄기로 나눌 수가 있는데,
월희 전반에 대한 소개를 알퀘이드 루트가 하고 있다면,
후반 루트에 대한 소개는 아키하 루트가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스토리는 괜찮았지만, 아키하에겐 굿엔딩이 없이
트루, 노멀 엔딩밖에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뭔가 아키하만 덜 행복한 결말을 맞았다는 기분이 들었죠.

또한, '여동생이 사실은 친여동생이 아니었다'는 비밀같은 건
마땅히 여동생 루트에서 알려줬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스토리 전개상 불가피한 면도 있었지만
그래도 이전 루트에서 알려줘 버린 건 스포일러 수준이었죠.

 

예전에는 아키하의 첫인상이 무섭다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진실을 알고 플레이해서 그런지 귀여운 면모가 눈에 많이 들어 왔습니다.
오히려, 좀 더 날카로운 모습을 더 보여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네요.

알퀘이드와의 대면은 구판에서 없는 것으로 착각하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딱 한 번 있었습니다. 짧지만 마음에 드는 장면이네요.



과묵하고 무표정한 메이드인 히스이입니다.
히스이의 스토리는 놀라운 반전이 많이 사용되기도 했고,
토오노 집안의 비밀을 관통하는 핵심적인 반전 역시 히스이의 스토리에서 드러납니다.



요즘은 히스이같은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메이드도 많이 있죠.
당시에도 많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저는 당시에 히스이를 신선한 캐릭터라고 생각했습니다.

게임 내에서도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만,
사실은 감정 표현이 풍부한 편입니다.
히스이의 스토리에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도 좋긴 하지만
그것보다는 다른 스토리에서 예상치 못한 모습을 보여주는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활발한 메이드이자 히스이의 쌍둥이 언니인 코하쿠입니다.
중요한 비밀은 이미 히스이의 스토리에서 다 밝혀져서 놀라움은 좀 덜하지만,
월희를 마무리하는 스토리로는 코하쿠의 스토리가 가장 적합했다고 생각합니다.

플레이어가 히스이 루트를 플레이하면서 알게 된 비밀을
주인공이 드럽게 눈치 못 채는 장면이 계속 됩니다.
코하쿠가 마음 아파하는 모습이 보여서 안타까웠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월희에서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일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리뷰했던 모든 게임을 통틀어서
제가 코하쿠보다 더 열렬히 좋아했던 캐릭터는 단 하나 밖에 없었죠.

다만, 지금 보니 코하쿠에 대한 호감은
<멜티 블러드>나 다른 2차 창작물의 역할이 컸다고 생각됩니다.
오랜만에 플레이한 월희 본편에서 코하쿠는 제 기억보다 훨씬 담백한 캐릭터였네요.

그래도 여전히 좋아하는 캐릭터입니다.
게임 도중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으로 거칠어지는 제 마음을 치유해 주는 존재죠.
뒤통수를 크게 한 번 치긴 하지만요.



총평하자면, 동인 게임의 한계로 아쉬운 점도 많은 게임이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게임입니다.

이번 리뷰는 계획에 없던 것이기도 하고,
게임을 워낙 오랜만에 플레이하기도 했고,
리뷰 쓰는 것도 많이 조심하려다 보니 
재미있는 내용을 많이 못 적었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실은 제가 소개한 내용보다 훨씬 재미있는 게임이에요.
파생되는 세계관이나 작품들이 많기 때문에
타입문을 좋아하시는 분들이라면 기초교양으로 플레이해봐도 좋은 게임입니다.

리메이크가 전부 나온다면 모르겠지만,
아직 리메이크는 절반밖에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구작 월희는 아직도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