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5일 월요일

리뷰 : 미육의 향기(2)(2008/3/28,el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육의 향기> 리뷰 스토리편입니다.



주인공은 대학생으로 부잣집에서 과외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에게는 게임 시작부터 유키라는 여자친구가 있으며,
유키와의 호화로운 여행을 위해 고액과외를 뛰고 있는 중이죠.

주인공과 유키는 여행 예산을 늘리기 위해서
과외 시간을 좀 더 늘리는 방안을 고려중입니다. 



제자인 오토하는 착하고, 성실하고, 배움도 빠르고,
주인공을 잘 따르기까지 하는 과외업계 최고의 학생입니다.



오토하의 어머니인 카오리입니다.
후처로 들어왔기 때문에 오토하와 혈연 관계는 없습니다.

상냥하고 친절하고 주인공을 신뢰하고 있는 과외업계 최고의 학부모입니다.
주인공 덕분에 최근 오토하의 성적이 좋아졌고
그로 인해 카오리는 과외 시간을 늘리는 정도가 아니라,
주인공이 더부살이로 집에 같이 살며 특훈을 해 줄 것을 부탁합니다.



오토하의 아버지인 마츠타로입니다.
성공한 사업가이나 나이를 먹었고
이제는 일보다 스포츠 취미에 더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을 신뢰하는 모습을 보여주지만,
지나치게 기운이 넘치는 사람이라서 주인공에게는 약간 불편한 사람입니다.
딸을 잘 부탁한다고 어르신이 90도 폴더인사까지 해요.

취미로 인한 외출이 많아서 주인공과 만나는 횟수가 많은 것도 아니고
어쨌든 과외비를 많이 주니 역시 최고의 학부모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최고의 학생과 최고의 학부모가 모인 최고의 가정에서
더부살이하며 과외를 하는 스토리입니다.
이보다 더 꿀알바는 있을 수가 없지만
이런 좋은 환경에도 약간의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바로 아싸 가족입니다. 저택의 3층에서 살고 있는 리츠코와 자녀들이죠.

리츠코는 여기 사는 가족과의 관계도 애매합니다. 마츠타로 전처의 여동생이에요.
오토하에겐 이모이긴 한데,
전처가 죽은 마당에도 왜 빌붙어 사는지 알 수가 없는 인물이죠.

마치 제 집인양 행동하며 엄연히 마츠타로의 현부인인 카오리에게 짜증을 내질 않나
주인공에게는 괜히 시비를 걸지 않나 대놓고 어그로꾼입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실제로 리츠코는 주인공을 쫓아낼 의도가 있었고, 
진짜로 리츠코 때문에 주인공이 쫓겨나는 엔딩도 있어요.
가족들이 모두 주인공을 신뢰하는데 
무슨 권리로 주인공을 쫓아내려고 하는지 의문입니다.
 



리츠코의 딸인 사야입니다. 
근무시간이 불규칙한 간호사가 직업인데
그 와중에 사법시험까지 공부하고 있는 노력파입니다.

아싸 가족 중에서도 진정한 아싸입니다.
인터넷에 돌아 다니는 아싸 화법에 대한 설명을 보면
'대화 흐름을 고려하지 않고 그저 팩트에만 집착',
'갑분싸 발언으로 상대방의 기분을 망침' 등이 있는데
딱 사야가 대화하는 법이에요.

리츠코의 경우는 주인공을 쫓아내겠다는 목적이라도 있었는데
사야는 그런 목적도 없이 아싸 화법을 구사합니다.



마지막으로 리츠코의 아들 타카시입니다.
아직도 사춘기인 건지 그냥 친화력이 없는 건지
대인기피형 아싸입니다.
주인공하고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않는데
어차피 비중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아싸 가족을 보면 가정교육이라는 게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리츠코의 훈육을 받아서 남매가 똑같이 대화도 제대로 못하는 아싸가 되었잖아요.
이렇게 될 동안, 남매의 아버지는 대체 어디서 뭘하고 있는 건지 궁금합니다.



그 아버지 아키히코입니다. 
리츠코하고는 이혼했는데 가끔 찾아옵니다.
마츠타로의 전부인의 여동생의 전남편 주제에
집에 제 멋대로 들어와서 주정이나 부리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쌩양아치죠.

제가 오해했네요. 리츠코의 가정교육이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아키히코보다야 리츠코를 닮는 게 훨씬 낫죠.

아싸 가족과 그렇게 많이 조우하는 것도 아니고,
만나도 기껏해야 기분 나쁜 정도이기 때문에
뭔가 트러블이 일어나거나 그런 건 없습니다.



주인공의 꿀알바 인생에 가장 문제가 되는 존재는 카오리입니다.
완벽한 미인에 몸매까지 훌륭한 이 사모님은 지나치게 무방비하죠.
의도치 않은 유혹으로 주인공의 이성을 자꾸 흔듭니다.



게다가 뭔놈의 집에 엿보기 구멍까지 있습니다.
거울 뒤에서 이 구멍을 발견한 주인공은 옆방에 있는 카오리를 자주 훔쳐보게 됩니다.

이런 부분에서 선택지가 뜨는데,
주인공이 그대로 카오리를 덮칠지, 아니면 참을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대로 덮치면 다양한 배드엔딩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주로 경찰에게 쫓기거나, 교도소에 수감되거나 하는 엔딩이죠.

불륜이나 강ㄱ때문에 체포되는 건 아닙니다.
오히려 카오리도 소외감을 느끼던 차에 주인공에게 끌리게 되죠.
그래서 계속 관계를 맺었고 꼬리가 길어지다 보니 마츠타로에게 들킨 겁니다.
그런 아수라장 속에서 주인공이 마츠타로를 우발적으로 살해하고만 것이죠.

이 게임 부제가 '네토리네토라레야리야라레'인데 이래도 되는 걸까요?
'얘들아! 네토라레 하자!'하고 사람들 모아 놓고 막상 하니까 배드엔딩입니다.
부제값을 못하는 게임 같은데요. 사실 여기에는 큰 불만이 없습니다.



진짜 불만점은 네토라레의 묘사 방식이죠.
제가 좋아하는 네토라레는 좀 더 장기적이고 누적적이고 심리적입니다.

근데, 이 게임의 네토라레는 단발적이고 대부분 물리적이에요.
한 번 덮치고 바로 배드엔딩이잖아요.

어떤 배드엔딩에서는 문장 몇개로
'한 번의 관계 후 서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다가
다시 그 때의 감정을 못 잊고 딱 한 번만 더 하기로 하고,
그것이 세 번, 네 번 거듭되다가 서로 육욕을 탐내게 되었다.'
이런 짧은 묘사가 나오는데
이런 과정이 바로 제가 보고 싶었던 거에요.

그 부분을 이런 식으로 퉁쳐 버린 것에 이유가 없지는 않지만,
결국 이 게임 대부분의 네토라레 씬은 누적이라는 게 없이 갑작스러웠던 겁니다.
제 스타일과는 맞지 않았어요.



그리고 '네토리네토라레야리야라레'라는 제목은 복잡한 인간관계를 연상시키지만,
초반의 이 게임은 살살 약만 올릴 뿐 카오리 이외의 네토라레를 딱히 보여주지 않습니다.

밤중에 뭔가 있는 것처럼 보였던 타카시와 오토하의 밀회 장면도 딱히 뭐가 있지는 않았고,
의도치 않게 장거리 연애가 되어 버린 유키 역시 별 문제가 없습니다.



주인공이 대부분의 시간을 과외에 할애하고,
저택에서 숙식까지 해결하는 바람에
유키와 만날 시간은 많이 줄어 들어 버렸죠.
가끔 유키가 찾아올 때도 있지만
평소 때는 전화로만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네토라레 게임에서는 더 할 나위 없는 상황입니다만 
이 역시 별 사건이 터지지 않습니다.
유키가 일하는 가게 점장의 활약을 기대했지만
활약은 개뿔 등장조차 하지 않았죠.



유키와의 관계가 삐걱거리기 시작한 것은
집에 찾아 온 유키가 마츠타로와 만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왠지 마츠타로가 미친듯이 유키를 마음에 들어 합니다.
아예 유키가 일하는 가게까지 쳐들어가서
유키를 가정부로 영입까지 하죠.

여기까지면 모르겠는데 유키의 미니스커트에까지 강한 집착을 보입니다.
청바지라도 입고 오는 날이면 주인공에게까지 뭐라고 따지죠.
미니스커트의 매력을 보여주겠다며 카오리에게 미니스커트를 입히기도 합니다.

엿보기 구멍으로 보니 뜬금없이 마츠타로가 유키를 덮치고 있는 장면도 있습니다.
분노한 주인공이 마츠타로를 살해해 버리는 배드엔딩이죠.
다만 이 부분도 제대로 된 복선이 부족한,
누적이라고는 없는 단발적인 네토라레입니다.
이유가 나중에 나오긴 하지만, 네토라레 측면에서 볼 때는 아쉬웠죠.



이런 애매한 네토라레를 반복하는 와중에,
이번에는 주인공과 사야의 인솔하에 
오토하, 타카시를 수영장에 데려가는 이벤트가 벌어집니다.

리츠코가 여전히 재수없지만 비교적 온건한 어투로
타카시를 잘 부탁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역시 부모는 부모인 거죠.
자식이 아싸인 것을 신경쓰고 있었던 것 같고,
그렇게 갈구던 주인공에게 부탁까지 하고 있습니다.



수영장에서 사야와 여러 대화를 나누던 주인공은 전화로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는데
리츠코가 계단에서 굴러 떨어져 생사를 오가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을 때가 다 된다더니 조금만 온건해지니까 이렇게 됩니다.

카오리와 유키의 말로는 전남편인 아키히코가 와서 
다툼 끝에 계단에서 밀었다고 합니다.
리츠코는 이렇게 병원에서 혼수상태에 빠지게 되죠.



한 사람이 큰 부상을 당하자 집안 분위기가 전반적으로 다운되는데
마츠타로는 눈치없이 미니스커트, 미니스커트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이후 다른 큰 사건이라면 오토하가 감기로 쓰러져 버리는 이벤트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선택지를 잘 고르면 오토하 엔딩을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진엔딩 루트를 타면 오토하 간병 이벤트에서 사야와 가까워지기 시작합니다.
말을 이상하게 해서 그렇지 사실은 상냥한 캐릭터였다는 것도 알게 되죠.
사야가 성 문제에 대한 혐오증도 갖고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주인공은 점점 사야에게 끌리게 되고
사야가 감기에 걸리자 주인공이 반강제로 
사야를 자기 방에 데려다 놓고 간병하는 이벤트도 있습니다.

주인공은 자기 방에 사야를 숨겨둬서 전전긍긍하고 있는데
마츠타로는 그 놈의 미니스커트 타령만 하고 있죠.



결국 마츠타로가 유키를 습격해서 강제로 청바지를 벗겨 버리는 이벤트가 일어납니다.
복도에서 반라 상태로 흐느껴 울고 있는 유키에게 자초지종을 들은 주인공은
마츠타로의 방에 따지러 갑니다.
마츠타로는 영문 모를 소리를 하더니
적반하장으로 주인공에게 총을 겨누기까지 합니다.

이미 마츠타로와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넌 사이가 된 주인공은
이제는 더 이상 오토하의 과외를 할 수 없겠죠.
더 해 달라고 부탁해도 주인공 측에서 거절입니다.
주인공도 이제는 마츠타로의 미친 짓을 더 이상 받아 줄 수가 없어요.


근데 그날 밤, 마츠타로가 갑자기 살해당해 버립니다.
마츠타로와 싸운 주인공은 유력한 용의자가 되어 버리죠.



경찰서에서 조사받느라 고생한 주인공을 위해
카오리나 사야가 자취방으로 찾아오기도 합니다.

그렇게 자취방에서 지내던 주인공에게
갑자기 마츠타로의 집으로 초대하는 문자가 전송됩니다.



마츠타로의 집에서는 아키히코와 타카시가
카오리와 유키를 잡아 놓고 심문을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게임의 반전이 설명되는데
사실 카오리와 유키가 의도적으로 주인공을 끌여 들였던 겁니다.
마츠타로를 주인공 손으로 죽여서 그의 유산을 독차지할 속셈이었던 거죠.


사실 많은 배드엔딩 혹은 오토하 엔딩을 봤다면
카오리가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주인공과 그렇게 열렬한 사랑을 나눴다는데 
주인공이 교도소만 가면 입을 싹 씻어요.
반전 자체가 그렇게 예측 불가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고 다시 게임을 플레이하면
카오리가 얼마나 절묘하게 덫을 놓았는지가 보입니다.
하나부터 열까지 철저하게 계획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계획대로 안 됐을 경우 또 다른 계획을 세우는 임기응변이 뛰어났죠.

무엇보다도 친절하고 정숙한 사모님 연기가 워낙 완벽했기 때문에
주인공의 의심을 전혀 사지 않고 계획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카오리의 계획이 실패했던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의 자제력이었습니다.
주인공이 마시는 음료에 특수한 약까지 탔음에도 불구하고
주인공은 끝까지 카오리를 덮치지 않았죠.



또다른 이유는 사야의 존재였습니다.
주인공은 카오리의 유혹에 끌려가지 않고 사야에게 매력을 느꼈던 거죠.
이 게임의 진엔딩은 사야와 연결되는 겁니다.



이런 전개를 카오리 시점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바로 진엔딩 이후에 볼 수 있는 스토리인 <미육의 카오리>입니다.
일본어로 미육의 향기와 똑같이 읽히죠.



카오리는 마츠타로의 유산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그에게 접근했고,
이제 다른 남자의 손으로 마츠타로를 죽이는 계획만을 남겨두고 있었습니다.

카오리는 유키를 협박해서 남자를 하나 유인해 오라고 했고
그렇게 주인공이 과외 선생으로 섭외되었던 겁니다.

카오리가 볼 때, 주인공은 너무나도 쉬운 상대였습니다.
자신의 매력에 취하고 있는 것이 확연히 느껴졌죠.

단 한 번이라도 관계를 갖게 된다면,
자신의 기술로 주인공을 마음대로 조종할 자신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주인공의 자제력으로 인해 그 단 한 번이 어려웠다는 거죠.



시간이 많지는 않았는데 
리츠코가 카오리의 계획을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던 겁니다.
리츠코가 그렇게 주인공을 쫓아내려고 했던 이유는
카오리의 악랄한 계획을 어그러뜨리기 위해서였죠.

리츠코를 제외한 다른 가족들은 그렇게 염려할 바가 못 되었습니다.
자신의 매력에 빠진 마츠타로는 손쉽게 조종할 수 있었고,
사야같이 남자에 관심도 없는 여성은 신경쓸 필요조차 없었죠.
그래서 과감하게 유일한 장애물인 리츠코를 계단에서 밀어버렸던 겁니다.



본편에서 나왔다시피, 카오리의 실수는 사야를 너무 얕봤다는 겁니다.
주인공이 사야를 방에 숨기고 간병을 해줬을 때,
카오리는 주인공의 방에 무언가 자신의 계획에 장애가 될 수도 있는 것이 
숨겨져 있다는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지만 그 정체는 짐작도 하지 못했죠.


미육의 카오리는 이 게임에서 가장 잘 짜여져 있는 스토리로 평가합니다.
카오리는 단순히 계획의 일환으로서가 아니라
성욕 측면에서도 주인공에게 덮쳐지기를 원하는데
그게 안 됐을 때의 초조함이 정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다만 본편의 경우는 애매했다고 봅니다.
진실을 잘 모르고 있던 첫 플레이에서는
그렇게 큰 사건도 터지지 않았고 
스토리가 너무 느슨하게 흘러간다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저와 안 맞았던 점은 이 게임의 네토라레 성향이 너무 약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부분이기도 하죠.
이 게임은 네토라레를 기대하고 플레이할 게임이 아니라는 것을요.

클라이맥스에서 다소 과격한 H씬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역시나 단발적이었고 폭력적이었어요.
타락하는 과정을 교묘하게 표현하는 내용이 아예 없었던 겁니다. 

네토라레의 완성도가 문제였던 것이 아니라
아예 제가 원했던 방향하고 차이가 있었어요.
'네토리네토라레야리야라레'라는 거창한 제목은
반전을 위한 장치에 불과했던 겁니다.

다른 경우였다면, 저는 이 게임의 이런 장치와 반전을 높이 평가했을 겁니다.
문제는 제가 이 게임에 걸었던 기대는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이었다는 거죠. 
근데 네토라레는 미끼에 불과했던 겁니다.


비유하자면 제가 물고기이고 눈앞에 미끼에 대해,
'저건 내 인생에서 가장 기가 막힌 맛의 먹이일 거야'하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던 겁니다.
그렇게 낚을 거였으면 미끼가 맛있기라도 하지,
덥석 물고 보니 심지어 플라스틱 루어였던 거에요.

이 충격은 엄청 났고,
저는 이 게임을 몇 번 플레이하면서 많은 장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지만
아직도 그렇게 좋은 평가는 내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에는 <유키의 향기>나 <리츠코의 한숨> 같은 번외편도 존재합니다.
<유키의 향기>는 허무하게 마무리지었던 유키 엔딩의 후일담을 담고 있고,
<리츠코의 한숨>은 숭고한 뜻에 비해 좋은 점을 많이 어필하지 못했던 
리츠코의 캐릭터를 살려 주고 있죠.
미육의 향기 팬이라면 플레이할만한 매력을 담고 있습니다.



총평하자면, 엘프사의 간만의 인기 게임에,
모략이 판치는 어른들이 스토리, 성숙한 캐릭터들과 농후한 H씬,
잘 짜여져 있는 반전과 탄탄한 복선까지 
제가 좋아할 만한 요소를 듬뿍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다만, 좋아함이라는 건 산수가 아니죠.
좋아하는 요소를 아무리 더한다고 해도 그 결과물을 반드시 좋아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틀림없이 싫어할 게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하게 되는 경우도 있고,
그 반대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미육의 향기는 그 대표적인 경우였죠.


개인적인 호불호와 상관없이,
21세기 에로게에서 좀처럼 볼 수 없는 상당히 독특한 스타일의 게임입니다.
모에가 득세하던 당시 분위기에 신선한 충격을 던져줬던 게임이고
지금도 모에에 지친 분들께 다양한 재미를 줄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2022년 4월 17일 일요일

리뷰 : 미육의 향기(1)(2008/3/28,el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5년까지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이 탄생할 것이며, 곧 네토라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새댁만화경> 리뷰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과거의 저는 이런 되도 않는 예언을 했고
네토라레 시대를 몰고 올 메시아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을 계속 기다렸습니다.

이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것은 바로 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네토라레물을 추천할 일이 갑자기 생겼을 때
바로 뒷주머니에서 꺼내주듯이 망설이지 않고 추천할 수 있는 작품말이죠.
  


<미육의 향기>의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 저는 직감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제가 기다려 오던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이라는 것을 말이죠.

부제부터가 '네토리네토라레야리야라레'입니다.
이건 뭐, 저한테 헌정하는 작품 수준이었어요.
제가 예언했던 2015년까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나와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발매 직후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그것도 긍정적인 쪽으로요.
제가 엘프빠가 된 이후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역대 최고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육의 향기를 기다렸던 저는 뭘 하고 있었느냐.
기술적인 문제로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었죠.



3D 맵화면에서 화면이 새하얘져서 진행이 불가능했습니다.
에로게라는 게, 일반적으로 그렇게 높은 컴퓨터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일루젼 사같은 3D 회사 게임을 하지 않는 이상,
발매 시기에 비해 낡은 컴퓨터로도 충분히 플레이할 수 있어요.

당시에 제가 쓰던 컴퓨터가 꽤 낡긴 했지만,
미육의 향기 이전까지의 에로게는 아무 문제없이 플레이가 가능했었죠.
제가 겪은 문제도 낡은 컴퓨터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저와 같은 문제를 겪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당연히 해결책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컴퓨터를 잘 모르는 제가 직접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었죠.

결국 컴퓨터를 바꾼다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당시에 제 사정은 마음 먹었다고
하루 아침에 컴퓨터를 바꿀 여유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해법은 알고 있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했고,
몇 개월 후에 발매된 에우슈리 사의 <전여신ZERO>에서
또 컴퓨터 사양 문제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특별히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습니다.
미육의 향기도 <전여신ZERO>도 기대작이기는 했지만
게임이 몇 개월 후에 어디로 도망갈 리가 없었고,
플레이할 만한 다른 에로게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요.
컴퓨터를 바꾸게 될 언젠가를 느긋한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리하여 미육의 향기의 플레이는
발매 이후 한참 후에나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플레이할 수 있었던 미육의 향기는 놀랍게도
당시 제게 있어 매우 실망스러웠던 게임이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게임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몇 번 다시 플레이하고 평가는 처음에 비해 꽤 올랐습니다만
아직도 엘프 사에서 좋아하는 게임을 열 개 꼽는다고 했을 때,
고민도 없이 순위 외로 들어가는 게임이죠.



이 게임이 실망스러웠던 이유는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왠지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서 별로인 것 같다고 생각되는
제 홍대병 기질 때문도 있겠죠. 부정 안 하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기대가 너무나도 컸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게임에 걸었던 기대는 무려,
네토라레 시대를 몰고 올 불후의 명작이었으니까요.

여러 모로 운도 나빴죠.
처음 계획대로 발매 당일에 플레이했다면,
발매 이후 이 게임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기대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고 기다렸던 몇 개월동안,
기대가 지나치게 커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미 부풀어 오른 기대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많은 평가를 받았던 부분 중 하나는
이 게임의 훌륭한 그래픽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어떤 게임이든 그래픽은 그다지 중요한 평가 요소가 아니죠.

그림체가 호불호가 갈리는 면도 있었지만,
당시 모에에 지나치게 치중했던 에로게 판에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그래픽이었습니다.



더더욱 높은 평가를 받았던 것은 이 게임의 움직이는 CG였습니다.
<꽃과 뱀>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당시 에로게에 삽입되는 모션이나 애니메이션은
CG의 퀄리티 다운을 상당히 각오하는 일이었죠.
왜 이렇게까지 움직임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퀄리티였습니다.

장담할 수 있는 건 미육의 향기에서 보여줬던 움직이는 CG의 퀄리티는
동시기 어떤 에로게보다도 월등했다는 겁니다.
퀄리티 다운이 거의 없이 움직이는 H씬을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였든 예산적인 문제였든
제가 그 시기에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것을 보란 듯이 성공시켰던 거죠.

다만, 애초에 지향점 자체가 제가 원하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저는 에로게 CG가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엘프 사가 미육의 향기 이전까지
움직이는 CG에 집착하는 걸 굉장히 안 좋게 봤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게임이나 잘 만들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겁니다.



3D 맵 이동은 꽤 아쉬운 활용도를 보여줬습니다.
이 게임은 <유작>같은 방탈출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동하는 장소에 따라 스토리에 유의미한 분기가 생기는 것도 아니죠.

그냥 스토리가 흘러가는 것에 맞춰서 제한된 자유도로 이동하는 것뿐이라
없어도 큰 상관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됩니다.



저택 내에 들어갈 수 없는 방이 있어, 
스토리 진행도에 따라 열쇠를 찾아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은 좋았지만
이 역시 메인 스토리와는 관계없이 팬서비스적인 측면이 강했습니다.
물론, 중요한 스토리도 하나 있었지만 굳이 이런 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었죠.
맵을 확장시켜나가는 재미를 주지는 못한 시스템이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조명이 꺼진 저택의 음산한 분위기를 3D맵으로 만든 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부분부분 보여 준 포인트 클릭 시스템은 그냥 불필요했습니다.
이미 유행이 지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만일 전면적으로 활용했다면 게임의 편의성에 상당한 장해가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순간에만 이 시스템을 활용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 필요한 순간이 너무 없었죠.
거의 활용되지도 못했을 뿐더러
가끔 활용되었던 순간에도 그다지 재미있게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면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빼 버렸어야 해요.
게임의 가치를 올려줄 정도로 활용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비판은 제 기준으로는 지엽적인 비판입니다.
그래픽이나 시스템이 많은 면에서 저에게 어필하지 못하긴 했지만
스토리가 제 마음에 들었다면 아무 문제 없었겠죠.

미육의 향기가 저에게 실망스러웠던 진정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음 리뷰는 이 게임의 스토리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2022년 4월 10일 일요일

리뷰 : 새댁만화경(2005/2/25,옐로피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5년까지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이 탄생할 것이며, 곧 네토라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예전에 제가 했던 예측 중에서 가장 크게 틀렸던 예측 중 하나입니다.
애니메이션보다 에로게 산업이 잘 나갈 거라고 예측했던 것만큼이나 틀려 먹었죠.

사실 마냥 틀렸다고 하기에는 아까운데, 저 발언을 했던 건 정말 옛날이었습니다.
네토라레라는 용어가 에로게 좀 했다는 오타쿠들에게조차 생소했던 시절이었어요.
'네토라레가 뭐임? 사토라레(2001년 일본영화)는 아는데'라는 반응을 몇 번이고 봤습니다.

그 때에 비하면 네토라레라는 용어는
적어도 인터넷상에서는 꽤 많이 퍼진 용어가 되었습니다.
AV나 만화 등에서 네토라레는 다소 화제가 되는 장르가 되었죠. 
또한 예전에 일본 성인 남녀 AV 인기 장르 랭킹이라는 자료를 본 적이 있는데,
남녀 모두 1위가 '네토리, 네토라레'였던 겁니다.
이 정도면 제가 예측했던 '네토라레의 시대'가 왔다고 봐도 좋지 않을까요?


양심적으로 고백하자면, 지금의 현실은 제 예측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저는 옛날부터 에로게 전문이었고, AV나 만화 따위는 어찌되든 알 바 아니었죠.
제가 말한 '네토라레의 시대'란,
순애물만을 전문적으로 만드는 회사, 당시 예로 들었던 것은 key사인데
그런 회사의 순애물까지도 네토라레의 엔딩이 하나 정도 끼어있는 그런 시대였던 겁니다.
무슨 마약했길래 이런 생각을 했나 싶지만, 그 때는 반정도 진심이었습니다.

반은 농담이었어요. 그렇잖아요.
당시 제가 지인들에게 네토라레의 매력을 열심히 설파했음에도,
그 누구도 넘어오지 않더라고요.
그러나 보니, 저도 반발심이 생겼고 다소 오버해서 미래를 예측했던 거죠.
 

지금의 NTR 문화와 제 예측의 결정적인 차이점은
네토라레를 다루는 방식에 있습니다.
저는 좀 더 주인공이 모르는 곳에서 무언가 벌어지고 있다는,
미스테리에 중점을 둔 작품을 원했습니다만
현재 그런 묘사를 제대로 하는 작품은 거의 없죠.

다시 말해 저는 네토라레가 하나의 스토리 소재가 될 거라고 예상했지만,
현재 인기있는 네토라레는 그 자체가 성적 취향인 겁니다.
스토리에 대한 고민은 하나도 없이,
판에 박힌 NTR물만 나오더라도 에로하면 그만인 작품이 대세가 되었습니다.
이게 제 과거 예측이 틀렸다고 인정하는 이유입니다.

예측 실패와는 별개로, 당시의 저는 '네토라레의 시대'를 몰고 올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을 오매불망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제 예측과는 달리 에로게판에서 네토라레물의 성장은 지지부진했고,
ㄴㅇ계열의 메이저 회사들마저도 네토라레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죠.


그러던 중 한 때 업계 1위급이었던 한 회사가 네토라레를 전면적으로 내세우기 시작하는데,
그 회사는 바로 제가 늘 사랑하는 회사 엘프 사였습니다.

사실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였죠.
엘프 사는 잘 나가던 시절이든 몰락했던 시절이든
게임 내에서 부분적으로 네토라레의 성향을 꾸준히 내비춰 왔으며,
저는 그런 게임의 영향을 듬뿍 받았던 사람이었으니까요.
저와 엘프 사가 네토라레로 다시 뭉치게 된 것은 필연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는 운명이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저에게 처음으로 에로게의 멋짐을 알려줬던 엘프 사가
다시 한 번 저에게 최고의 네토라레 게임을 선사해 줄 것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엘프 사가 네토라레 전문 회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2008년도부터입니다.
저는 엘프 사의 2008년도부터 2015년까지를
시나리오 라이터의 이름을 따서 '도텐 메이카이의 시대'라고 부릅니다.
해당 시기 엘프 사의 네토라레물은 모두 도텐 메이카이의 시나리오였죠.

이 시기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엘프 사는 2008년 이전에 이미 자회사인 옐로피그에서
도텐 메이카이 시나리오의 네토라레물을 만들기도 했는데
그것이 2005년의 <새댁만화경>과 2006년의 <남편 앞에서 X해져>인 것입니다.



<새댁만화경>은 옐로피그에서 2005년에 발매되었습니다만
2년만에 그래픽을 개선하여 <새댁만화경 완전판>이 나왔고,
다시 2년만에 엘프 사에서 애니메이션 추가판이 발매되었습니다.

지금 가장 유명한 것은 2009년에 발매된 애니메이션 추가판이죠.
<남편 앞에서 X해져 버려>와 합본으로 발매되었고,
제가 가지고 있는 것도 이 게임입니다.



스토리는 무고한 도둑 누명을 쓴 유부녀가
마트 경비원에게 협박 받아서 타락한다는 정석적인 NTR물입니다.



다른 게임에 비해서 독특한 면은
주인공과 여성 캐릭터의 타락에 이르기까지의 심리묘사를
상당히 자세하게 다룬다는 점입니다.
많은 NTR물에서 간과하는 부분이죠.

엔딩 역시 일반적인 NTR물과는 다르기 때문에
NTR에 익숙한 분들에게도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입니다.

대체적으로 평범한 NTR물은 아니고 상급자용입니다.
에로적인 측면에서는 그렇게 특출나지 않기 때문에,
전형적인 NTR물이 질린다 하는 사람이
독특한 재미를 찾고 싶다 할 때 플레이할만한 게임이죠.



개인적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네토라레당하는 쪽인 남편의 비중이 많이 없다는 점입니다.

사실 네토리와 네토라레, NTL과 NTR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입장에서 보면
이 게임은 빼앗는 쪽에 중점을 둔 네토리, NTL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둘을 엄격하게 구별하는 편이 아니고,
리뷰에서 용어를 굳이 구별해서 사용하면 혼란스럽기 때문에 
대체로 구별하지 않고 NTR, 네토라레라는 용어를 주로 사용할 예정입니다.

다만, 제 취향적으로는 남편의 입장을 거의 활용하지 않아서 좀 아쉬웠죠.
용어를 따지자면 제 취향은 엄격한 의미의 네토라레입니다.



총평하자면, 에로에 치중한 NTR물이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 할 말이 많지는 않습니다.
이 게임만의 특색이 좀 더 있기는 하지만 다른 리뷰에서 더 자세하게 소개하고 싶어요.

이 리뷰를 작성한 이유는
당시 제 입장과 앞으로 소개할 엘프 사를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앞으로 소개할 '도텐 메이카이의 시대'의 예고편인 거죠.

아무튼 엘프 사는 2008년 드디어 본격적인 NTR 게임을 만들기 시작하며,
다음 리뷰는 그 첫 게임 <미육의 향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