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6월 19일 일요일

리뷰 : 사랑스러운 언령(2001/7/27, 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엘프의 자회사인 실키즈는 96년 <비 욘드 ~흑대장이 보고있다~>를 마지막으로
잠시 활동을 중단했습니다.
아무런 게임도 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실키즈의 대표작인 <카와라자키가 일족>이나 <노노무라병원사람들>,
<애자매>, <코이히메>, <비 욘드 ~흑대장이 보고있다~>의 윈도우 이식을
담당했던 것도 실키즈가 아닌 엘프 사였죠.

그렇게 사라진 회사로 남을 뻔했던 실키즈는 2001년에 컴백하고,
2014년에 진짜로 문을 닫습니다.
이 2001년부터 2014년까지를 보통 실키즈 2기라고 부르죠.

실키즈 2기 또한 활동기간이 10년을 넘어가며,
중간에 이미지 체인지를 한 적도 있기 때문에
그 특성을 한 번에 정리하기는 어렵습니다.

일단 전반부인 2001년부터 2006년 게임들의 특성을 살펴보자면,
실키즈 게임들의 대표적인 특징은 '멀티 엔딩'입니다.

사실 이 시기에는 실키즈 게임뿐만 아니라 에로게의 90프로 이상이 멀티엔딩이었죠.
다만, 대부분의 멀티엔딩은 '캐릭터별 엔딩'이었습니다.
캐릭터별 엔딩은 지금도 수많은 미연시에서 사용되고 있는 방법이기 때문에
특별히 설명이 필요없을 것 같군요.

반면에, 실키즈의 멀티엔딩은 하나의 캐릭터가 수많은 엔딩을 갖고 있고,
배드엔딩도 여러 개가 있는 '선택지와 분기를 이용한 멀티엔딩'이었습니다.
워낙에 에로게가 많고, 시스템이 다양하기 때문에
명확하게 나뉘어 떨어지는 건 아니지만
대체로 실키즈의 멀티엔딩은 다른 에로게와는 다른 느낌을 주었습니다.

실키즈가 이런 방식의 멀티 엔딩을 좋아했던 이유는
대표작인 <카와라자키가 일족>, <노노무라병원사람들>의 빛나는 성공때문입니다.
하지만, 실키즈 2기의 멀티엔딩들은 이전만큼의 성공을 보여주지 못했죠.
개별 게임 리뷰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 보겠지만
멀티엔딩에 대한 실키즈의 무리한 집착은 두고두고 실키즈의 발목을 잡게 됩니다.



실키즈의 두 번째 특징은 간호사입니다.
과거 엘프, 실키즈의 고전 게임 리뷰 때도 몇 번 얘기한 적이 있는데
얘네들은 간호사를 무지하게 좋아했어요.
부활한 실키즈 2기는 이런 취향을 전혀 숨길 생각이 없었고,
상당히 많은 간호사 캐릭터들을 뽑아냈습니다.

사실 에로게의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학원물을 제외하면
병원물은 그렇게 드문 장르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걸 고려해도 실키즈는 굉장히 많은 간호사를 등장시켰죠.

<flutter of bird ~새들의 날개짓> -> 시골 병원물
<사랑스러운 언령> -> 요괴물(간호사 요괴 등장)
<노예개호> -> 시골 요양원
<Sweet ~반숙의 천사들~> -> 병원물
<flutter of bird2 ~천사들의 날개> -> X
<시체를 닦다> -> 병원물
<여계가족> -> X(간호사 코스프레 등장)
<육체전이> ->X
<애자매 츠보미> -> X
<여계가족 ~음모~> -> X(간호사 코스프레 등장)
<사랑의 힘> -> 주요 무대가 병원

실키즈 게임 초반 상태는 대충 이렇습니다.
공교롭게도 간호사에서 자유로운 세 게임은 모두 학원물이네요.



극초반 한정으로 실키즈의 또다른 특색이라면 느린 템포입니다.
요즘 창작물에서 나오는 슬로 라이프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평범한 일상을 보여주는 스타일이죠.

사실 이건 실키즈만의 특색은 아니었고,
90년대말~2000년대 초의 유행과도 같았습니다.
느린 템포가 반드시 잘못되었다는 건 아니지만
요즘 플레이하기에는 다소 지루할 수 있습니다.


실키즈의 극초반 게임들은 너무나도 평범하고,
지루한 점이 있어서 리뷰할 것이 얼마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무 것도 안 하고 넘어갈 수는 없으니
<사랑스러운 언령> 딱 하나만 리뷰하고 넘어가기로 하죠.



2001년도에 발매된 <사랑스러운 언령>입니다.
그다지 인기가 많은 게임은 아니었고, 내용도 평범한 게임입니다.



주인공은 신사에서 살고 있으며, 유령이 보이는 특이체질 소유자입니다.
주변에 심령현상 사진을 찍겠다고 설치는 친구 누님도 있지만
주인공에게 유령들은 일상적인 생활일 뿐이죠.



주인공과 맺어지는 유령 캐릭터는 총 셋입니다.
위에 보이는 캐릭터는 요코라는 이름인데,
무려 40년 전에 사망하신 어르신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꽃다운 나이에 사망하셨기 때문에 젊은 유령이고
공략 캐릭터에 해당합니다.



처음에는 도깨비불만 보이고 사람 형체는 보이지도 않지만,
친밀도가 높아짐에 따라 희미하게 유령의 본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죠.
이 시대의 몇몇 미연시는 특히 호감도의 시각화를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나마 최근 미연시와 비교한다면, <도트코이>와 비슷한 느낌이죠.



CG감상이나 이벤트 회상을 할 수 있는 오마케 모드에서는
유령 캐릭터들을 반투명으로 처리하기도 했습니다.



스토리는 이런 유령들의 생전 소원을 해소시켜주는 내용입니다.
크게 감동적이진 않지만 적당한 수준의 스토리를 갖추고 있는 게임이죠.



하루에 여섯 번 행동할 수 있으며,
각 행동마다 하나의 장소를 방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꽤 많은 경우에 아무 이벤트가 없는 장소를 방문하게 되고,
이런 부분이 게임을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가 됩니다.



이 게임은 그런 지루함을 해소하기 위해
중간중간에 다양한 요괴들이 등장시켰습니다.
미소녀 요괴도 있고, 징그럽게 생긴 요괴도 있죠.
개그 이벤트도 있고, 요괴를 퇴치하는 이벤트도 있습니다.
나름 지루함을 덜어주는 장치입니다.



이 정도라면 별 할 말이 없는 평범한 게임이겠지만
제가 이 게임에 주목하게 된 이유는 카오루라는 캐릭터 때문입니다.
이 캐릭터의 스토리는
어쩌면 역대 에로게 중에서도 가장 예측할 수 없는 스토리일지도 모르는
충격적인 반전의 스토리죠.



카오루는 1년 전 운전 도중에 교통사고로 사망한 캐릭터입니다.
기본적으로 나쁜 캐릭터는 아니지만 가끔 불같이 화를 내기도 하고
화나면 잠수를 타 버려서 주인공을 만나주지도 않습니다.
생색낼 생각은 없지만 주인공이 일방적으로 도와주는 관계인데
화나서 며칠동안 나타나지도 않는 건 너무하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것저것 도와주는 와중에,
최종적으로는 사라진 반지를 찾아주기로 합니다.
하지만, 1년 전 교통사고에서 사라진 반지를 어떻게 찾겠습니까?
이미 누가 한참 전에 주워갔겠죠.

주인공은 과거로 시간여행을 하기로 하고,
여러 요괴를 퇴치하여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아이템을 모으기로 합니다.



열심히 아이템을 모아 과거로 돌아간 주인공은
사고 직전의 카오루를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여기서 밝혀지는 충격적인 반전은
카오루가 술을 마시고 운전 중이었다는 겁니다.

여러 에로게에 등장하는 미소녀 유령에게는 참 다양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질병, 사고, 저주, 실험 등등, 
대부분의 경우는 본인의 잘못 때문에 사망한 게 아닌
불운하고 동정할만한 사망이었죠.

하지만 카오루는 사상 유일, 아마도 미래에도 등장하지 않을
음주운전 사망자 유령이었던 겁니다.
심지어, 사고 직전에는 운전 중에 전화까지 하려고 하죠.
역대 최고의 자업자득 유령입니다.

이런 캐릭터를 위해 열심히 아이템을 모은 주인공은 뭐가 되는 걸까요.
현재로 돌아오면 카오루도 후회하는 태도를 보여주긴 합니다.
하지만, 이미 늦은 이야기죠.



총평하자면, 게임 자체는 20년이 더 지난 오늘날에 복기할 정도로 내용있는 게임은 아닙니다.
요즘 미소녀 게임에 익숙한 분들께는 실망스러운 내용밖에 없는 게임이겠죠.
그렇다고 역사적으로 무슨 의미가 있는 게임도 아닙니다.

실키즈 2기의 게임들은 대체로 이와 비슷한 평가를 내릴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게임들의 리뷰를 생략할 것이며
이제부터 살펴 볼 실키즈 게임들은 특별히 가려 뽑은,
정말 독특한 소재의 게임들일 것입니다.

댓글 2개:

  1. 어떤 것이 생략되고 어떤 것이 리뷰가 될 지 궁금하네요. 이후 실키즈라는 이름을 이어간 실키즈 플러스 게임들은 어떤 느낌을 가지고 계신지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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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everiot//
    실키즈플러스의 게임들은 이번 리뷰 계획에 없지만
    나나이로 린카네이션, 아케이로 괴기담, 빛의 바다의 아페이리아는 굉장히 좋아하는 게임입니다.
    버터플라이 시커도 좋아하고 실키즈사쿠라의 ㄴㅇ계열 게임들도 좋아하죠.

    욕하는 게임이지만 근설의 환영은 나름 카와라자키 일족2을 추구했고,
    실키즈사쿠라의 자매물도 새로운 애자매를 만들어 보려는 노력이 보여서 마음에 듭니다.

    전체적으로 이런 스탭들을 가지고도 마로환같은 걸 만들었던 말년의 엘프가 오히려 억제기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갖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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