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9월 25일 일요일

리뷰 : 츠마미구이(2002/3/15,앨리스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Only you -리쿨스-> 이후로 5년 반만의 앨리스소프트 게임 리뷰입니다.
과거에는 앨리스소프트의 PC-98 게임을 주로 소개해 드렸는데
이번에는 앨리스소프트의 윈도우 시절의 게임을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앨리스소프트는 90년대 가장 뛰어났던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동의 엘프, 서의 앨리스'라고 불리며,
당대 최고의 회사였던 엘프 사와 감히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회사였죠.

옛날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저는 PC-98 시절의 앨리스소프트 게임이
과연 엘프 사와 비교할 수준이 맞는지 의아해 했었습니다.
물론 앨리스소프트에서도 좋은 게임을 많이 개발했지만,
그래도 엘프 사와는 꽤 수준 차이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윈도우 시절에 들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앨리스소프트는 엘프 사와 비교될 수준이 아니었죠.
정확히 말하자면, 앨리스소프트는 엘프 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질과 양에서 훌륭한 모습을 보여준 회사였습니다.

엘프 사가 2000년대 들어 점점 힘이 떨어지고 있었던 반면에,
앨리스소프트는 기복이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최고 수준의 게임을 꾸준히 발매했습니다.

앨리스소프트가 발매한 게임은 셀 수가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 게임 전부를 리뷰할 생각은 없고 중요한 게임 일부만을 리뷰할 생각이지만,
그 일부의 중요한 게임들만 해도
어느 정도가 있는지 현재 계산이 안 서는 수준으로 많죠.
앨리스소프트의 명작들을 전부 리뷰하기 전에,
제가 블로그 문을 닫는 게 더 빠를 수도 있습니다.
그 정도로 명작도 많고, 할 얘기도 많은 회사에요.


이렇듯 앨리스소프트는 에로게 역사상 최고의 회사로 손색이 없지만,
우리나라에서는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로 우익 문제입니다.

사실 앨리스소프트가 우익 논란이 있다거나 
우익 의혹이 있다거나 하는 이야기는 잘못된 이야기입니다.
앨리스소프트는 논란의 여지도 없고 의혹의 여지도 없는 우익입니다.

이것은 게임 한 두개의 문제도 아니고,
애매하고 은근한 상징 몇 가지의 문제도 아닙니다.
앨리스소프트가 자신들의 성향을 드러낸 과정은
굉장히 지속적이고 노골적이었죠.

가볍게 넘길 문제가 아니기는 하지만,
개별 게임 리뷰마다 이 이야기를 하자면 끝이 없기 때문에
앞으로의 리뷰에서는 이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다른 사이트에 잘 설명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 쪽 정보를 참고하시길 바랍니다.

이 문제를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들은
앨리스소프트 리뷰 전체를 거르시기를 권장합니다.
그 정도로 우익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게임이 없어요.  



아무튼 이번에 리뷰할 게임은 앨리스소프트의 <츠마미구이>입니다.
본래 츠마미구이의 뜻은 '군것질한다' 이런 식으로 번역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나라 말로는 딱 들어맞는 표현이 없어서 그렇지 정확한 번역은 아닙니다.

'츠마미'의 뜻은 '손으로 집는다'는 뜻으로
'츠마미구이'란 '손으로 집어 먹는다'는 뜻이죠.
창작물에서 여성 캐릭터들이 튀김같은 걸 요리할 때,
주인공이 집어 먹으려고 하면 '츠마미구이 금지!'같은 대사가 나오곤 합니다.
이 게임의 제목은 그런 츠마미구이의 '츠마' 부분을
'아내'를 뜻하는 '츠마'로 바꾼 언어유희입니다.

저번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이 게임은 한 시대를 풍미한 유부녀물입니다.
'신감각 치유계 유부녀 어드벤처'를 표방했죠.


이 게임의 또다른 특징이라면
바로 저가형 에로게의 조상님 격이라는 겁니다.
앨리스소프트가 당시 계속 오르던 게임 가격에 의문을 품고
다른 게임의 3분의 1 가격으로 발매했다고 합니다.

요즘의 저가형 에로게라면 내용이 짧고 부실하며 
빠른 템포로 사건 및 H씬을 전개시키는 스타일의 게임이 많은데,
츠마미구이는 템포가 그다지 빠르지 않고 내용이 충실한 편입니다.


아쉬운 점은 보이스가 없다는 점입니다.
당시에는 보이스가 없는 게임도 많이 나왔고,
더군다나 이 게임은 저가형이기도 하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다만 H씬이 주목적인 게임에 보이스가 없다는 점은
요즘 플레이하기에는 치명적인 문제죠.
다행히도, 2010년부터 판매되는 다운로드판에는
보이스가 추가되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갖고 있던 것은 2002년판이었는데,
보이스가 없어서 그런지 플레이하는 내내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결국 보이스가 있는 2010년판을 구해서 설치했는데
설치 경로가 2002년판하고 똑같아서 파일을 그대로 덮어 써 버렸죠.

2002년판은 덮어 쓰여져서 실행이 되지 않았고,
2010년판은 세이브 파일이 호환되지 않았습니다.
이전까지 플레이한 것들을 죄다 날려 먹고 말았던 거죠.
바로 오늘 아침에 있었던 일입니다.

이번 리뷰는 특히 CG를 거의 게재하지 않았는데
이런 비극적인 사정이 있습니다.
세이브해 놓은 것들을 하나도 못 쓰게 되어 버렸어요.


게임의 스토리를 한 번 살펴 봅시다.
평범한 대학생인 주인공은 옆집에 사는 치호라는 미망인을 짝사랑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모하는 마음을 전하기는 쉽지 않았고
둘 사이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 상태였죠.



그러던 중, 옆집에 카나에라는 유부녀가 이사를 오게 됩니다.
주인공은 치호와 가까워지기 위해 카나에에게 한 수 배우기로 하죠.
과연 주인공에게 부족한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H에 대한 자신감입니다.
그리하여, 카나에에게 H한 조교를 받아
치호에게 그대로 써 먹는다는 스토리입니다.


스토리는 그다지 충실한 편이 아니지만
조교 시뮬레이션으로서 다양한 상황을 연출할 수 있습니다.
조교를 계속 실행함으로써 점점 과격한 H씬을 볼 수도 있고,
색다른 코스튬을 사용할 수도 있죠.
대화 이벤트를 통해 조교에 사용할 포인트도 모아야 하고,
카나에, 치호 두 캐릭터의 호감도 포인트도 있습니다.
그에 따른 각 캐릭터의 엔딩도 존재합니다.



그래픽은 요염하고, 캐릭터는 성숙했으며, H씬은 농후했습니다.
갖춰야 할 요소를 충실히 갖추고 있는 게임이죠.
저가형인 것을 감안하면 훌륭한 편입니다. 



총평하자면, 20년된 H씬 위주의 에로게는
언제나 최근의 더 좋은 게임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옛날에 플레이할 때 마음에 들었다면 모를까
이제 와서는 좀 늦은 감이 있었죠.
예전과 달리 카나에의 캐릭터가 괜찮다고 느끼기는 했지만
게임 자체의 평가를 반전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네요.

역사적 의의 측면에서는 
유부녀물로서나 저가형으로서 한 획을 그었다고 볼 수 있는 게임입니다.
하지만 지금은 더 괜찮은 유부녀물이 많고,
다운로드판 기준으로 오래된 게임치고 그다지 저가도 아니기 때문에 
추천드리고 싶지는 않네요.

2022년 9월 18일 일요일

리뷰 : CARNIVAL(2)(2004/5/14,S.M.L)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츠마미구이>는 당대 유부녀물 중에서
상당히 높은 인기를 자랑하던 게임입니다.
저는 꽤 오래 전에 에로게 유부녀물 인기순위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츠마미구이>는 그 순위에서 2위였습니다.
참고로, 1위는 <츠마미구이2>였죠.

당시에는 <츠마시보리>나 <츠마미구이3>가 나오지 않았고,
본격적으로 유부녀를 다룬 게임이 지금보다 적었기 때문에
지금 순위는 많이 달라졌을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튼, 적어도 당시에는 이 게임이 유부녀물의 대표격이었죠.


현재의 저는 유부녀물을 나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이 게임을 플레이할 당시에는 유부녀 속성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이 게임 1편과 2편에 대해 그렇게 좋은 평가를 내리고 있지는 않아요.
그리고 세월이 바뀌어 취향이 변한 지금,
저는 다시 한 번 츠마미구이 시리즈에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과연 재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 한 번 살펴보도록 하죠.



다음 리뷰에서요.
우선은 제 인생의 트라우마 게임 CARNIVAL 리뷰부터 끝내도록 합시다.

리뷰 1편에서는 주인공의 만행과 제가 주인공을 싫어하는 이유를 주로 설명드렸는데,
2편에서는 먼저 이 게임의 구조를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 게임은 총 3개의 시나리오로 구성되어 있고,
저번에 소개해 드린 줄거리는 시나리오1에 해당합니다.
각각의 시나리오는 서로 다른 캐릭터의 시점을 보여주는데
시나리오1은 마나부의 시점, 시나리오2는 타케시의 시점,
시나리오3은 리사의 시점으로 구성되어 있죠.

주목해야 할 인물은 타케시입니다.
리뷰 1편에서는 이 캐릭터에 대해 소개하지 않았죠.
타케시는 주인공의 다른 인격입니다.
다시 말해, 주인공은 이중인격이라는 거죠.



1편 종반부에서 주인공이 이중인격이었다는 점을 확실히 드러내지만,
사실 그 이전부터 복선을 상당히 많이 깔아두었습니다.
딱히 반전을 숨길 의도는 없었다고 보여집니다.



타케시는 어릴 적부터 학대를 받아왔던 마나부가 만들어낸 인격입니다.
폭력에 순응하는 마나부와 달리 타케시는 당한만큼 갚아주는 성격이죠.

어린 시절에는 두 인격이 서로 대화도 하면서 공존하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타케시는 학대를 일삼던 어머니를 절벽에서 밀어 죽여 버렸고,
충격을 받은 마나부는 타케시를 머리 속 깊은 곳에 가둬 버렸던 거죠.

마나부는 어머니 사망의 진상을 기억에서 지워 버렸고,
타케시는 어릴 적 친구인데 어느새 사라져 버린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미사와 선배를 살해한 건 당연히 타케시이며,
마나부가 찾던 리사 폭행범도 타케시입니다.
리사가 여러 거짓말을 했던 이유도
타케시의 존재를 마나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죠.



아무튼 시나리오2는 타케시 시점에서의 이야기입니다.
마나부가 타케시의 존재조차 헷갈리고 있는 반면에,
타케시는 마나부의 기억을 전부 가지고 있습니다.

시나리오2의 내용은 주인공의 어린 시절을 더 자세히 보여주고,
시나리오1에서 일어났던 마나부의 행동을 새로운 시점에서 관전하고,
중간중간에 뛰쳐 나와 포악한 짓을 하는 스토리죠.

뭔가 애매했던 마나부의 캐릭터와 달리,
화끈한 타케시의 캐릭터를 선호하는 분들이 계셨는지
시나리오2를 선호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다만, 개인적으로 시나리오2는 불필요했다는 입장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주인공이 이중인격이라는 사실은
게임이 숨기고 싶어했던 반전이 아닙니다.
또한, 타케시가 저지른 행위 역시 시나리오1에서 대략적으로 암시했죠.

그리하여 시나리오2는 새로운 시점의 이야기인데
새로운 사실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아는 이야기를 반복할 뿐이죠.
좀 더 과격한 H씬을 보여주기는 하지만 그것뿐이에요.
스토리적으로 불필요합니다.


타케시의 캐릭터 자체도 크게 필요하지 않아 보였습니다.
어릴 적 기준으로는 온순한 마나부와 과격한 타케시가 확실히 대비가 됩니다.
하지만, 게임의 주요 사건이 일어나는 때에는
이미 마나부가 타락해서 연쇄 감금과 강X을 하고 있어요.
타케시하고 하는 짓이 똑같잖아요.

하이드씨가 포악한데, 지킬 박사도 포악하다면
이중인격이라는 설정이 있을 이유가 뭐죠?
좀 더 마나부의 캐릭터를 순하게 표현했어야 한다고 봅니다.


이런 이유로 시나리오2는 저에게 똑같은 스토리를 
한 번 더 플레이하는 수준에 지나지 않는다고 느껴진 겁니다.
그것도 또다른 중2병 시점으로요.
인격을 나누어 스트레스가 두 배가 되었을 뿐입니다.



시나리오3은 리사 시점의 이야기입니다.
마나부가 감금하는 것까지 도와주고, 타케시가 폭력을 행사해도 포용했던
리사의 행동 원리를 설명해 주죠.

사실 리사는 어릴 적부터 변태인 아버지에게 성적 학대를 받아 왔습니다.
어머니는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암시가 있는데 결국 방관했죠.
리사는 너무 어렸기 때문에 아버지가 하는 행위를 이해하지는 못했으나
해서는 안 될 몹쓸 짓이라는 건 어렴풋이 눈채채고 있었습니다.
겉으로는 성격 좋은 아가씨로 성장한 리사였으나 그 속은 공허했죠.



그 와중에 만나게 된 것이 바로 마나부&타케시였던 겁니다.
마나부 얘는 무슨 어릴 적부터 말하는 게 재수없습니다.
중2병이 엄청 빨리 왔나 봐요.



시나리오1과 중복되는 부분은 또 불필요했다고 생각하지만
리사 시점의 어릴 적 이야기, 이즈미와 종교행사에 가서 제기하는 논의,
마지막 부분의 마나부와의 문답 등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과거에는 시나리오2와 3에도 더 불평했지만,
지금 플레이해보니 시나리오1에 대한 제 반감이
2와 3의 평가에 많은 영향을 끼쳤던 것 같습니다.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게까지 나쁜 수준은 아니에요.



여기까지가 제가 이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입니다.
시나리오 라이터의 이름을 보고
기대를 꽤 많이 한 게임이었는데 많이 실망했었죠.
하지만, 이 게임이 저에게 최악 중에 최악으로 남게 된 이유는 따로 있는데,
바로 오프닝 영상입니다.

뛰어난 작화, 유려한 영상미의 풀애니메이션에
노래까지 훌륭한 이 게임 오프닝의 유일한 단점은 
바로 게임과 별 관련이 없다는 점입니다.
이 게임은 에로게 분야에서 오프닝 낚시로 유명한 게임 중 하나였죠.



이 시기 저는 주로 니코동에서 활동했고,
이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에도 오프닝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영상이 그만큼 훌륭하고 유명했으니까요.
'OP 사기' 같은 코멘트를 자주 보긴 했지만
뭘 사기친 것인지는 게임을 플레이하기 전에는 알 수 없었습니다.


근데 게임을 플레이해 보니,
제가 그동안 영상을 보면서 정립한 이미지와 
실제 게임의 캐릭터가 들어맞는 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영상에서는 다섯 캐릭터들의 비중이 같은 것처럼 나왔지만
실제로는 리사가 압도적으로 높고, 이즈미가 그나마 나으며,
두 캐릭터 정도는 아예 등장하는 의미조차 없었습니다.

주인공을 두고 리사와 이즈미가 사랑싸움을 하는 장면같은 건
실제 게임에 거의 없었고,
아름다운 자매 사랑을 보여주던 훈훈한 언니는
게임에서 썩은 표정으로 주인공을 개패고 있었으며,
유쾌하지만 진지할 때는 진지한 누님처럼 보이던 여경은
감금 피해자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었어요.

영상동안 주인공이 1초 눈 부라리는 장면 가지고
이 게임이 광기 게임이라는 상상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이 게임의 오프닝 영상은 시나리오 라이터와 함께
이 게임을 기대하게 만든 주축이었으며,
제 실망감의 낙폭을 더 키운 주범이기도 합니다.
이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지금도 가끔 이 게임의 오프닝 노래를 들으면 깜짝깜짝 놀라요.



근데 게임을 다 플레이하고 나서도 이 게임 영상이 계속 보이는 겁니다.
오프닝 영상이 너무 훌륭하고 유명해서요.
니코동에서 '개인적 에로게 오프닝 영상 모음집'같은 영상을 볼 때마다 
갑자기 막 튀어 나왔어요.
전주 딱 2초만 들어도 짜증이 몰려 오는데
깜빡이도 안 켜고 계속 뛰쳐 나와요.

아무리 충격적이고 화가 나는 게임이라도
악감정은 플레이하는 그 때뿐이고
웬만하면 금세 잊혀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근데 이 게임은 제 인생에 계속 튀어 나와서
그 분노를 상기시켜 줬어요.


어이없는 이야기지만 이 잘 만든 오프닝이
이 게임이 저에게 최악 중의 최악이 된 이유입니다.
가식적인 오프닝을 보면서 게임의 스토리를 생각할 때마다
원한이 골수에 사무치게 되었죠.



이 오프닝 영상은 게임을 시작할 때마다도 나와서 
이번에 또 제 심기를 건드리려고 했습니다. 
다행히 AVI 파일을 다른 파일로 바꾸는 간단한 작업으로 회피할 수 있었네요.



총평하자면, 만일 제가 이 게임을 최근에서야 처음 플레이한 거라면
그렇게까지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냉정하게 평가하면 그렇게까지 최악은 아니고
몇몇 장점도 보이는 게임이죠.

시나리오 라이터에 대한 기대가 적었더라면,
오프닝에 사기를 당하지 않고 상응하는 각오를 하고 플레이했더라면
저와 이 게임의 사이는 좀 더 좋을 수도 있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결국 이번에도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이 게임 때문에 나온 증상으로
퇴근길에 이 게임을 할 생각에 가슴이 괜히 울렁거리고,
집에 와서도 무기력증으로 컴퓨터를 켜기가 싫었고,
플레이하는 도중에도 계속 목이 마르더라고요.

아마, 10년 후에 제가 다시 이 게임을 플레이한다고 해도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제게 있어 CARNIVAL은 평생 짊어지고 가야할 저주같은 게임인 거죠.

2022년 9월 12일 월요일

리뷰 : CARNIVAL(1)(2004/5/14,S.M.L)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M.L에서 발매된 <CARNIVAL>이라는 게임입니다.
중고 게임으로는 프리미엄이 붙은 게임 중 하나인데,
다운로드 판이 있기는 하지만 패키지판은 원가보다 비싸게 팔리고,
소설도 있는데 그것도 희귀해서 비싸게 팔린다고 합니다.

게임 내용 자체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입니다.
이 게임에 대한 제 평가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 가능하죠.



제 에로게 인생 3대 트라우마라고 하면,
<학원투항사진>, <CARNIVAL>, <고혹의 각>입니다.
이 세 게임을 제가 가장 싫어하는 에로게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이 중에서 <학원투항사진>과 <고혹의 각>은
더럽고, 잔인하고, 징그럽고, 역겨운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각적인 CG가 특히 충격적입니다.
불쾌한 CG 게재를 최대한 지양하며
'소재는 저급해도 리뷰는 저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 블로그의 원칙상 <학원투항사진>, <고혹의 각>은
평생 리뷰를 올리지 않을 게임이 되겠죠.

다시 말해, CARNIVAL은 제가 블로그에 리뷰를 올릴 수 있는 게임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게임이라는 것이고,
리뷰의 대부분이 이 게임에 대한 비판에 할애될 것입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인만큼 이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은 제 리뷰를 보면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제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 경위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2004년도에 이 게임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에는
저는 이 게임에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이후에 나온 <SWAN SONG>과 <키라키라>라는 게임 때문이었죠.

이 게임들의 시나리오 라이터는 세토구치 렌야라는 작가인데
2019년에 새로운 게임의 시나리오를 쓰긴 했지만
당시에는 딱 세 작품만 내고 2008년도에 은퇴 선언을 했습니다.

<SWAN SONG>과 <키라키라>는 제가 정말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었고,
세토구치 렌야는 은퇴를 해 버렸으니,
제가 그 재미와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서는
과거의 작품을 찾아 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큰 기대를 품고 플레이했던
<CARNIVAL>은 당시 제 일기장을 초토화시켰습니다.

'내 일기장을 쌍욕의 카니발로 만들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주인공을 아무 이유 없이 패던 선배가 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

당시의 제 평가입니다. 

위에 '씨X'이라는 욕을 장난으로 쓰긴 했지만
사실 그런 상스러운 욕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순간적으로 입에서 그런 욕이 튀어 나올 때는 있겠지만,
퇴고까지 하는 글을 쓸 때는 그런 욕을 절대 쓰지 않죠.

이번 리뷰에서도 그 원칙은 유지되겠습니다만 장담은 못하겠군요.
리뷰 어딘가에 그런 욕이 쓰여져 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은 마음에 서론이 길어졌는데
이제 스토리를 한 번 살펴 봅시다.

스토리는 경찰차의 교통사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교통사고가 난 틈을 타서 연행되던 소년이 탈출하게 되죠.
이 소년이 이 게임의 주인공입니다.

그 후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 이 소년이 경찰에 쫓기게 되었나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마나부로 사교성도 없지만,
굳이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상의 소유자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외톨이죠.
점심시간같은 때는 체육창고에 홀로 숨어 있습니다.

그런 주인공의 곁에는 늘 참견하는 소꿉친구로 리사가 있습니다.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집안도 좋고, 인기도 많은 소꿉친구인데
왠지 주인공과 어울리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리사와 별로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만
친절한 소꿉친구를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그렇죠.
아무튼 그런 애매한 관계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의 앞에 미사와라는 선배가 등장합니다.
교내 남학생 중 가장 인기남인 미사와 선배는
주인공과 전혀 접점이 없는 타인입니다.
갑자기 방과 후에 옥상에서 보자고 하죠.

이 선배가 위에서 말한 제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되고 싶은 선배'이며,
미사와 선배의 등장은 개인적인 세이브 포인트입니다.
세이브1에 정성스럽게 저장을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세이브를 마치고 방과 후에 옥상에 올라가면
미사와 선배는 아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다짜고짜 주인공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참고로 그 자리에는 에이미라는 선배도 있으며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아무 설명없이 때리는 역할입니다.
에이미 선배는 교내 여학생 중 최고의 인기인인데,
주인공은 이유도 모르는 채로 학교 남녀 인기 1위들에게 쳐맞는 신세가 되었죠.

하지만, 주인공은 딱히 불평하지 않는데
미사와 선배에게 호출되었을 때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인공은 편부모 가정에서 어릴 적부터 학대에 노출되었던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주인공을 학대하던 어머니는 옛날에 사망했지만
그 후 학창시절에도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언젠가 한 번은 리사가 구해줬던 적도 있었죠.



그 후로도 미사와 선배에게 몇 번이나 불려가서 영문도 모르고 얻어 맞던 주인공은
클래스메이트인 이즈미와 대화 도중 힌트를 얻게 됩니다.

학교에 주인공이 리사와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고,
미사와 선배는 리사에게 고백했으나 차였던 적이 있으며,
에이미 선배는 리사 때문에 학교 최고의 인기녀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는 거죠.



다음 날, 옥상에서 주인공은 '리사와 저는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라고 했으나
더 심한 폭행을 당할 뿐입니다.
특히, 에이미에게 그 이야기는 발작 버튼이었는지
그 동안 조심하던 주인공 얼굴에까지 상처를 내 버리죠.

결국, 주인공이 폭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리사에게 알려집니다.
주인공은 리사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눈치 빠른 리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아챕니다.

주인공은 옥상에서 미사와 선배와 리사가 언쟁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 후 주인공은 잠시 기억을 잃게 되는데 정신이 돌아와 보니,
미사와 선배는 칼에 베여 피투성이가 되어 사망했고
자신의 양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으며
리사는 옷이 흐트려진 채로 쓰러져 있습니다.

누가 봐도 범인은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아마도 미사와 선배는 리사를 범하려고 했고
주인공은 그걸 막기 위해 미사와 선배를 죽인 거겠죠.
주인공은 과거에도 이런 중대한 상황에서
갑자기 기억을 잃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사정으로 주인공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던 겁니다.
그 후 프롤로그와 같이 주인공은 경찰차에서 탈출하게 되었죠.

수배범이 된 주인공은 도주를 결심하는데,
도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리사를 만나고자 합니다.
과거 리사가 자신을 도와줄 때 건네줬던 손수건을 돌려 주고 떠나기로 한 거죠.

그렇다고 리사의 집으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이전에 주인공은 리사와 함께 축제에 가기로 약속한 적이 있는데,
리사라면 반드시 축제에서 기다려 줄 거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축제 장소에서 리사를 만나기로 합니다.



축제 장소에 너무 일찍 갔기 때문에 리사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도중에 에이미 선배가 보여서 급하게 숨기도 하고,
이상한 4차원 소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밤이 되자, 리사는 축제에 진짜로 나타납니다.
리사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집에 숨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합니다.
마침, 리사의 가족들은 몇 주간 부재 중인 상황이었죠.
딱히 갈 곳이 없던 주인공은 그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딱 여기까지 플레이했을 때의 감상은
'그럭저럭 플레이할만 하다'였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사건은 시작도 안 했지만,
과거의 저는 여기까지의 스토리에서도 불쾌함을 느꼈었죠.
주인공의 사고 방식이 너무 중2병처럼 느껴졌고
유일한 이해자인 리사에게 냉정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주인공에게는 충분히 불행한 사정이 있었고,
중2병끼가 과하기는 하지만 이해 못할 수준은 아니었고,
리사에게도 그렇게까지 쌀쌀맞지 않았어요.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사실 사건 관계자인 리사의 집이 안전할까하는 의문은 있지만
어쨌든 오갈 데 없는 주인공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죠.
그냥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텐데
주인공은 슬슬 미친 짓을 시작합니다.

여유를 찾은 주인공이 자신의 처지를 잘 생각해 보니,
이렇게 된 건 모두 학교 폭력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에이미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낯뜨거운 별명인 '복수의 비스트'를 자칭하게 됩니다.

대낮 축제 준비 때, 에이미를 목격했으니
에이미는 틀림없이 축제에 왔을 겁니다.
리사가 목욕하는 동안 리사의 집을 떠나
커터칼을 들고 에이미를 습격하기로 결심합니다.

가기 전에 리사 얼굴이나 보고 가겠다면서
리사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 보는데,
리사의 몸에는 누군가에게 맞은 흔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리사 또한 에이미에게 폭행당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죠.



주인공은 축제에서 에이미를 찾아냈고,
커터칼로 위협해 인적 드문 곳으로 끌고 옵니다.
자신을 폭행한 이유와 리사도 폭행했는지 여부 등을 추궁하죠.

어제까지 아무 반항도 못하고 맞기만 하던 주인공이
고작 커터칼 하나 들고 세상을 다 가진 양 재수없게 굽니다.
중2병스러운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오그라들어요.

추궁하면서 에이미의 옷을 벗기고 H씬까지 있는데
에이미의 폭행죄는 적지 않으니 그럴 수 있다 칩시다.



근데, 선택지에 따라 에이미의 여동생인 마리까지 습격하는 전개도 있습니다.
어리고 순수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마리는 왜 끌어 들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운명에는 거역할 수 없다', '이미 자신은 수라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소리를 하는데 이게 무슨 개소립니까?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심취해 버린 거 아닌가요?
지켜 보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도저히 버틸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때를 위해 세이브1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로드를 하는 거죠.



주인공이 쳐맞고 있는 장면을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사실 학교 폭력은 절대 해서는 안 될 나쁜 행위이지만,
이 게임은 저에게 최악의 트라우마에요.
그 때, 그 때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면서 플레이하지 않으면,
게임을 더 이상 플레이할 수가 없어요.
많은 양해 바랍니다.



여동생을 말려들게 하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면
주인공은 에이미를 리사의 집으로 끌고 가서 감금합니다.
이유는 에이미를 그대로 두면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아서
리사네 집에 끌고 왔고 그대로 감금한 거라고 합니다.

신고가 두려웠으면 에이미를 만나러 가지 말았어야 했고,
적어도 축제 장소에서 일 저지르고 도망갔으면 상황이 이렇게 복잡해지지 않았겠죠.
이제 에이미는 주인공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다 알게 되었으니 그냥 보내줄 수 없게 되었고,
리사는 목욕하다 뜬금없이 감금죄 공범이 되어 버렸습니다.


리사는 에이미를 풀어 주자고 이야기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지가 뜹니다.



에이미를 해방해 주면, 다음날 리사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몇 주 동안 안 돌아 온다더니 갑작스럽게 돌아왔죠.
하필 리사는 외출한 상태입니다.

딸 혼자 있어야 할 집에 남자가,
그것도 살인 용의 수배범이 혼자 있는 위험한 상황임에도
리사의 어머니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습니다.
리사의 친구인 주인공을 기억하고 있는지 오히려 좋은 덕담을 해주죠.

근데 갑자기 주인공이 급발진을 하더니,
'리사를 학대한 게 바로 당신이지'라며 추궁을 합니다.
리사 어머니를 묶어 놓고 또 H씬이 시작되죠.

리사 어머니를 의심한 이유도 잘 모르겠고,
확실하지도 않은데 왜 갑자기 H씬인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봤을 때는 대화하던 도중 별 이유도 없이 급발진한 것뿐입니다.
아무튼 H씬이 끝난 후에는 리사를 볼 면목도 없고 하니 도망치고,
그냥 주인공이 미쳐 버리는 배드엔딩입니다.


에이미를 풀어주지 않는다를 선택하면,
감금상태인 에이미와 H씬입니다.
이 정도면 그냥 변태 아닌가요?
도주도 복수도 별 관심 없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묶여 있던 에이미가 흔적도 없이 감금 장소에서 사라져 있습니다.
리사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집 안을 뒤져봐도 에이미는 나오지 않는데
신발은 또 그대로 있습니다.

만일 에이미가 도망쳐서 경찰에 신고라도 했다면
주인공은 꼼짝없이 체포되는 신세인데,
주인공은 리사의 집을 떠나지도 않고
에이미 수색도 적당히 찾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정말로 신고 때문에 에이미를 감금했던 건지 의심이 드는 부분입니다.

주인공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복수의 비스트'가 아니라 '어중간한 비스트'였다고요.
비스트 칭호만큼은 끝까지 포기 못하는군요.


아무튼, 리사를 폭행했던 건 에이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추궁해도 그런 증거는 나오지 않았죠.



주인공은 리사를 괴롭힌 범인을 찾기 위해
리사의 친구인 이즈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즈미도 리사의 몸 군데군데에 있는 상처를 알고 있지만
어디서 넘어졌다는 변명만 들었을 뿐 진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즈미에게 지금부터 같이 리사네 집으로 가서
같이 리사를 추궁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즈미와 둘이서 추궁해 봐도
리사는 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며 시치미를 뗄 뿐입니다.
계속 물어 보았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갑자기 주인공이 이즈미를 이대로 집에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즈미가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오늘 밤만이라도 이즈미에게 리사의 집 한 칸에서 감금되어 있으라고 하는데,
이쯤되면 주인공은 그냥 감금이 하고 싶을 뿐인 거 아닌가요?


곰곰이 생각해 봐도 주인공의 주장은 말이 안 돼요.
하루 밤 감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음 날 아침에 신고하면 어쩔 건데요?

게다가 주인공은 이즈미에게 물어 볼 것이 있어서 자진해서 이즈미 앞에 나타났고,
리사네 집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다름 아닌 주인공입니다.
이즈미는 주인공이 하자는 대로 다 했을 뿐인데
이제 와서 못 믿겠으니 감금하겠다고요?
이런 억지가 어디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아무튼 성격 좋은 이즈미는 주인공을 이해한다면서,
자신의 집에 외박하겠다고 전화를 겁니다.

이즈미를 감금하고 나서 주인공은 한숨 자고 일어나는데,
깨어나 보니 또 이즈미가 사라져 있습니다.
사실 이번엔 별 거 아닌데 리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해서
그냥 보내줬다고 합니다.

주인공이 한참 리사에게 자신을 속였다며 화를 내는 중에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 옵니다.



무려 순경인 모모에가 찾아 온 겁니다.
모모에 말로는 자신은 그냥 순찰 도는 도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생각할 때는
도망친 이즈미가 신고한 게 틀림없습니다.

너무 비약적인 생각인 것 같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의심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으니까요.

그래서 주인공이 어떻게 하느냐.



모모에를 기습해서 또 감금합니다.
아니, 리사네 집이 무슨 교도소냐고요.
동네 사람들 다 감금되게 생겼습니다.


제가 말했죠?
주인공은 그냥 감금이 하고 싶은 것뿐이라고요.

그냥 순찰이었다는 모모에의 말을 믿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수배범이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주인공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칩시다.

그럼 신고를 당한 수배범이 취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경찰에게 알려진 은신처를 버리고 도망을 쳐야할까요,
아니면 경찰을 잡아서 감금을 해야할까요?

진짜로 경찰에게 신고를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여유있게 모모에를 감금하고, 심문하고, H씬까지 했겠습니까? 
애초에 살인범을 잡으러 순경 혼자 온 것을
'신고를 받고 공을 세우고 싶어서 혼자 온 게 아닌가?'하고
그런 부분은 또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주인공입니다.



모모에와의 H씬 이후에,
주인공은 모모에에게서 빼앗은 총을 들고 거리를 활보합니다.
주인공이 정녕 수배범이 맞냐 싶지만
주인공의 정신이 몽롱하다는 묘사가 있으니 이 정도는 이해합시다.



그러던 중, 길거리에서 이즈미를 만나게 됩니다.
집에 외박한다고 전화까지 한 이즈미는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산책 중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이즈미가 경찰에 신고한 게 아니냐고 추궁하는데
이즈미의 해명을 듣다 보니 이즈미는 범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모모에가 진짜로 순찰중이었다는 가능성은 끝까지 생각 안 하는 주인공에게
남은 가능성은 리사가 신고했다는 가설뿐입니다.



지금까지 숨겨 주고, 밥도 주고, 해 달라는 거 다 해 줬는데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입니다.

사실 리사도 주인공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있고,
주인공에게 숨기는 것도 많다는 묘사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리사를 믿지 못하는 건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근데, 리사가 신고했다고 생각하면 도망을 쳐야죠.
만약에 리사가 신고했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이 붙잡혔다면
리사가 다음에 할 행동은 대체 뭐겠습니까? 당연히 다시 신고를 하겠죠.
리사에게 신고할 마음이 있었다면 주인공은 벌써 진작에 철창 신세인데
왜 이런 기본적인 것도 생각을 못하는 겁니까.

이게 다 리사까지 감금하고 싶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선택지에 따라 리사를 감금하는 스토리도 있습니다.



제가 주인공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들 때문입니다.
행동 하나하나에 앞뒤가 없어요.

저저번 리뷰부터 의도치 않게 광기 특집이 되어 버렸는데
이 게임의 주인공 역시 미쳐있습니다.
어릴 적 학대와 학교 폭력 등
주인공이 광기에 빠져들 이유는 충분히 있었죠.
다만, 미친 이후의 행동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현실에서는 별 이유도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창작물에서 그렇게 하면 개연성 부족으로 이어집니다.
그건 광기라는 설정을 덧붙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게다가 게임 내의 묘사로는 주인공이 아무 심사숙고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그럴 듯한 생각을 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플레이하는 내내,
주인공이 무슨 맥락으로 행동하는 건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즈미를 감금하고, 경찰을 습격하는 걸 보면
경찰 수사에서 몸을 피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별다른 경계도 없이 에이미나 이즈미를 만나러 밖을 돌아 다닙니다.

리사에 집착해서 리사를 괴롭힌 범인을 찾으러 다니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런 목적은 잊어 버리고 리사에게 총을 겨누고 있어요.

모든 일의 시초인 복수의 목적은 이미 초반부에 사라졌습니다.
정말로 감금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감금할 때만큼은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붙였죠.
 

이 게임은 저에게 10년 넘게 트라우마였는데
이번에 플레이해 보니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건은 계속 일어나는데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을 못하겠고,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은 괜찮았으나
주인공 캐릭터 때문에 그게 허세와 중2병으로 보였던 거죠.

광기라기 보다는 억지로 미친 척하려는 어린 애로 보였습니다.
게임하는 내내, 오그라들고 고통스러웠죠.



정말 안타깝지만 이 게임은 아직도 한참 남았습니다.
해야 할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어요.

이번 리뷰는 1편입니다만 2편을 써야할지는 계속 고민 중입니다.
사실 지금도 게임을 올클리어하지 못했어요.
미사와 선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플레이하는 내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끝까지 게임을 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리뷰쓰는 것조차 너무 힘이 드네요.

과연 제가 이 고통을 극복하고 리뷰 다음편을 올릴 수 있을까요?
저조차도 알 수 없는 미래입니다.
혹시 다음 리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CARNIVAL 리뷰 2편이 아닌 다른 게임 리뷰가 적혀 있더라도
그러려니 넘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