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M.L에서 발매된 <CARNIVAL>이라는 게임입니다.
중고 게임으로는 프리미엄이 붙은 게임 중 하나인데,
다운로드 판이 있기는 하지만 패키지판은 원가보다 비싸게 팔리고,
소설도 있는데 그것도 희귀해서 비싸게 팔린다고 합니다.
게임 내용 자체는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편입니다.
이 게임에 대한 제 평가는 아주 간단하게 표현 가능하죠.
제 에로게 인생 3대 트라우마라고 하면,
<학원투항사진>, <CARNIVAL>, <고혹의 각>입니다.
이 세 게임을 제가 가장 싫어하는 에로게들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죠.
이 중에서 <학원투항사진>과 <고혹의 각>은
더럽고, 잔인하고, 징그럽고, 역겨운 내용을 담고 있으며,
시각적인 CG가 특히 충격적입니다.
불쾌한 CG 게재를 최대한 지양하며
'소재는 저급해도 리뷰는 저급하지 않아야 한다'는
제 블로그의 원칙상 <학원투항사진>, <고혹의 각>은
평생 리뷰를 올리지 않을 게임이 되겠죠.
다시 말해, CARNIVAL은 제가 블로그에 리뷰를 올릴 수 있는 게임 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싫어하는 게임이라는 것이고,
리뷰의 대부분이 이 게임에 대한 비판에 할애될 것입니다.
호불호가 갈리는 게임인만큼 이 게임을 좋아하시는 분들도 많이 계시는데
그런 분들은 제 리뷰를 보면 불쾌할 수도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일단 제가 이 게임을 플레이하게 된 경위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2004년도에 이 게임이 처음 발매되었을 때에는
저는 이 게임에 아무 관심도 없었습니다.
이 게임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이후에 나온 <SWAN SONG>과 <키라키라>라는 게임 때문이었죠.
이 게임들의 시나리오 라이터는 세토구치 렌야라는 작가인데
2019년에 새로운 게임의 시나리오를 쓰긴 했지만
당시에는 딱 세 작품만 내고 2008년도에 은퇴 선언을 했습니다.
<SWAN SONG>과 <키라키라>는 제가 정말 재미있게 했던 게임이었고,
세토구치 렌야는 은퇴를 해 버렸으니,
제가 그 재미와 감동을 다시 한 번 느끼기 위해서는
과거의 작품을 찾아 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그리고 그런 과정을 거쳐 큰 기대를 품고 플레이했던
<CARNIVAL>은 당시 제 일기장을 초토화시켰습니다.
'내 일기장을 쌍욕의 카니발로 만들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주인공을 아무 이유 없이 패던 선배가 될 수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겠다.'
당시의 제 평가입니다.
위에 '씨X'이라는 욕을 장난으로 쓰긴 했지만
사실 그런 상스러운 욕설을 그렇게 좋아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순간적으로 입에서 그런 욕이 튀어 나올 때는 있겠지만,
퇴고까지 하는 글을 쓸 때는 그런 욕을 절대 쓰지 않죠.
이번 리뷰에서도 그 원칙은 유지되겠습니다만 장담은 못하겠군요.
리뷰 어딘가에 그런 욕이 쓰여져 있더라도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
게임에 대해 이야기하기 싫은 마음에 서론이 길어졌는데
이제 스토리를 한 번 살펴 봅시다.
스토리는 경찰차의 교통사고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교통사고가 난 틈을 타서 연행되던 소년이 탈출하게 되죠.
이 소년이 이 게임의 주인공입니다.
그 후 과거로 돌아가,
어떻게 이 소년이 경찰에 쫓기게 되었나 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됩니다.
주인공의 이름은 마나부로 사교성도 없지만,
굳이 친구가 필요하지 않다는 사상의 소유자로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는 외톨이죠.
점심시간같은 때는 체육창고에 홀로 숨어 있습니다.
그런 주인공의 곁에는 늘 참견하는 소꿉친구로 리사가 있습니다.
공부도 잘 하고, 운동도 잘 하고, 집안도 좋고, 인기도 많은 소꿉친구인데
왠지 주인공과 어울리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리사와 별로 같이 있고 싶은 생각이 없습니다만
친절한 소꿉친구를 매몰차게 거절하기도 그렇죠.
아무튼 그런 애매한 관계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의 앞에 미사와라는 선배가 등장합니다.
교내 남학생 중 가장 인기남인 미사와 선배는
주인공과 전혀 접점이 없는 타인입니다.
갑자기 방과 후에 옥상에서 보자고 하죠.
이 선배가 위에서 말한 제가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서라도 되고 싶은 선배'이며,
미사와 선배의 등장은 개인적인 세이브 포인트입니다.
세이브1에 정성스럽게 저장을 해두도록 하겠습니다.
미사와 선배는 아무 이유도 설명하지 않고
다짜고짜 주인공에게 폭력을 행사합니다.
참고로 그 자리에는 에이미라는 선배도 있으며
마찬가지로 주인공을 아무 설명없이 때리는 역할입니다.
에이미 선배는 교내 여학생 중 최고의 인기인인데,
주인공은 이유도 모르는 채로 학교 남녀 인기 1위들에게 쳐맞는 신세가 되었죠.
하지만, 주인공은 딱히 불평하지 않는데
미사와 선배에게 호출되었을 때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주인공은 편부모 가정에서 어릴 적부터 학대에 노출되었던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습니다.
주인공을 학대하던 어머니는 옛날에 사망했지만
그 후 학창시절에도 주인공은 많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했고,
언젠가 한 번은 리사가 구해줬던 적도 있었죠.
그 후로도 미사와 선배에게 몇 번이나 불려가서 영문도 모르고 얻어 맞던 주인공은
클래스메이트인 이즈미와 대화 도중 힌트를 얻게 됩니다.
학교에 주인공이 리사와 사귀는 것이 아니냐는 소문이 돌고 있고,
미사와 선배는 리사에게 고백했으나 차였던 적이 있으며,
에이미 선배는 리사 때문에 학교 최고의 인기녀 지위를 위협받고 있다는 거죠.
다음 날, 옥상에서 주인공은 '리사와 저는 아무 관계도 아니에요'라고 했으나
더 심한 폭행을 당할 뿐입니다.
특히, 에이미에게 그 이야기는 발작 버튼이었는지
그 동안 조심하던 주인공 얼굴에까지 상처를 내 버리죠.
결국, 주인공이 폭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리사에게 알려집니다.
주인공은 리사에게 '아무 일도 없었다'라고 이야기하지만
눈치 빠른 리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금방 알아챕니다.
주인공은 옥상에서 미사와 선배와 리사가 언쟁하는 모습을 목격합니다.
그 후 주인공은 잠시 기억을 잃게 되는데 정신이 돌아와 보니,
미사와 선배는 칼에 베여 피투성이가 되어 사망했고
자신의 양손에는 피가 묻어 있었으며
리사는 옷이 흐트려진 채로 쓰러져 있습니다.
누가 봐도 범인은 주인공이고
다른 사람이 갑자기 나타나 범행을 저질렀다고 보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아마도 미사와 선배는 리사를 범하려고 했고
주인공은 그걸 막기 위해 미사와 선배를 죽인 거겠죠.
주인공은 과거에도 이런 중대한 상황에서
갑자기 기억을 잃었던 경험이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사정으로 주인공은 경찰서로 연행되었던 겁니다.
그 후 프롤로그와 같이 주인공은 경찰차에서 탈출하게 되었죠.
수배범이 된 주인공은 도주를 결심하는데,
도주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리사를 만나고자 합니다.
과거 리사가 자신을 도와줄 때 건네줬던 손수건을 돌려 주고 떠나기로 한 거죠.
그렇다고 리사의 집으로 가는 건 너무 위험합니다.
이전에 주인공은 리사와 함께 축제에 가기로 약속한 적이 있는데,
리사라면 반드시 축제에서 기다려 줄 거라고 생각한 주인공은
축제 장소에서 리사를 만나기로 합니다.
축제 장소에 너무 일찍 갔기 때문에 리사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기다리는 도중에 에이미 선배가 보여서 급하게 숨기도 하고,
이상한 4차원 소녀와 대화를 나누기도 합니다.
밤이 되자, 리사는 축제에 진짜로 나타납니다.
리사는 주인공에게 자신의 집에 숨는 것이 어떠냐는 제안을 합니다.
마침, 리사의 가족들은 몇 주간 부재 중인 상황이었죠.
딱히 갈 곳이 없던 주인공은 그 제안을 받아 들입니다.
딱 여기까지 플레이했을 때의 감상은
'그럭저럭 플레이할만 하다'였습니다.
아직 본격적인 사건은 시작도 안 했지만,
과거의 저는 여기까지의 스토리에서도 불쾌함을 느꼈었죠.
주인공의 사고 방식이 너무 중2병처럼 느껴졌고
유일한 이해자인 리사에게 냉정한 것도 이해가 가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제 보니, 주인공에게는 충분히 불행한 사정이 있었고,
중2병끼가 과하기는 하지만 이해 못할 수준은 아니었고,
리사에게도 그렇게까지 쌀쌀맞지 않았어요.
문제는 지금부터입니다.
사실 사건 관계자인 리사의 집이 안전할까하는 의문은 있지만
어쨌든 오갈 데 없는 주인공에게는 유일한 안식처죠.
그냥 가만히 있는 게 가장 좋은 방법일 텐데
주인공은 슬슬 미친 짓을 시작합니다.
여유를 찾은 주인공이 자신의 처지를 잘 생각해 보니,
이렇게 된 건 모두 학교 폭력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에이미를 그냥 둘 수 없다고 생각했고,
낯뜨거운 별명인 '복수의 비스트'를 자칭하게 됩니다.
대낮 축제 준비 때, 에이미를 목격했으니
에이미는 틀림없이 축제에 왔을 겁니다.
리사가 목욕하는 동안 리사의 집을 떠나
커터칼을 들고 에이미를 습격하기로 결심합니다.
가기 전에 리사 얼굴이나 보고 가겠다면서
리사가 목욕하는 장면을 훔쳐 보는데,
리사의 몸에는 누군가에게 맞은 흔적이 있습니다.
주인공은 리사 또한 에이미에게 폭행당한 거라고 생각하게 되죠.
주인공은 축제에서 에이미를 찾아냈고,
커터칼로 위협해 인적 드문 곳으로 끌고 옵니다.
자신을 폭행한 이유와 리사도 폭행했는지 여부 등을 추궁하죠.
어제까지 아무 반항도 못하고 맞기만 하던 주인공이
고작 커터칼 하나 들고 세상을 다 가진 양 재수없게 굽니다.
중2병스러운 대사 하나하나가 너무 오그라들어요.
추궁하면서 에이미의 옷을 벗기고 H씬까지 있는데
에이미의 폭행죄는 적지 않으니 그럴 수 있다 칩시다.
근데, 선택지에 따라 에이미의 여동생인 마리까지 습격하는 전개도 있습니다.
어리고 순수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마리는 왜 끌어 들이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운명에는 거역할 수 없다', '이미 자신은 수라의 길로 들어섰다'
이런 소리를 하는데 이게 무슨 개소립니까?
자기 자신에게 지나치게 심취해 버린 거 아닌가요?
지켜 보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이런 상황을 도저히 버틸 수 없습니다.
저는 이런 때를 위해 세이브1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이렇게 스트레스가 쌓일 때마다 로드를 하는 거죠.
주인공이 쳐맞고 있는 장면을 보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사실 학교 폭력은 절대 해서는 안 될 나쁜 행위이지만,
이 게임은 저에게 최악의 트라우마에요.
그 때, 그 때 이런 식으로 스트레스를 해소해 주면서 플레이하지 않으면,
게임을 더 이상 플레이할 수가 없어요.
많은 양해 바랍니다.
여동생을 말려들게 하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는다면
주인공은 에이미를 리사의 집으로 끌고 가서 감금합니다.
이유는 에이미를 그대로 두면 경찰에 신고할 것 같아서
리사네 집에 끌고 왔고 그대로 감금한 거라고 합니다.
신고가 두려웠으면 에이미를 만나러 가지 말았어야 했고,
적어도 축제 장소에서 일 저지르고 도망갔으면 상황이 이렇게 복잡해지지 않았겠죠.
이제 에이미는 주인공이 어디에 숨어있는지 다 알게 되었으니 그냥 보내줄 수 없게 되었고,
리사는 목욕하다 뜬금없이 감금죄 공범이 되어 버렸습니다.
리사는 에이미를 풀어 주자고 이야기하고
어떻게 할 것인지 선택지가 뜹니다.
에이미를 해방해 주면, 다음날 리사의 어머니가 등장합니다.
몇 주 동안 안 돌아 온다더니 갑작스럽게 돌아왔죠.
하필 리사는 외출한 상태입니다.
딸 혼자 있어야 할 집에 남자가,
그것도 살인 용의 수배범이 혼자 있는 위험한 상황임에도
리사의 어머니는 그다지 당황하지 않습니다.
리사의 친구인 주인공을 기억하고 있는지 오히려 좋은 덕담을 해주죠.
근데 갑자기 주인공이 급발진을 하더니,
'리사를 학대한 게 바로 당신이지'라며 추궁을 합니다.
리사 어머니를 묶어 놓고 또 H씬이 시작되죠.
리사 어머니를 의심한 이유도 잘 모르겠고,
확실하지도 않은데 왜 갑자기 H씬인지도 모르겠어요.
제가 봤을 때는 대화하던 도중 별 이유도 없이 급발진한 것뿐입니다.
아무튼 H씬이 끝난 후에는 리사를 볼 면목도 없고 하니 도망치고,
그냥 주인공이 미쳐 버리는 배드엔딩입니다.
에이미를 풀어주지 않는다를 선택하면,
감금상태인 에이미와 H씬입니다.
이 정도면 그냥 변태 아닌가요?
도주도 복수도 별 관심 없는 것 같은데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이 되면,
묶여 있던 에이미가 흔적도 없이 감금 장소에서 사라져 있습니다.
리사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집 안을 뒤져봐도 에이미는 나오지 않는데
신발은 또 그대로 있습니다.
만일 에이미가 도망쳐서 경찰에 신고라도 했다면
주인공은 꼼짝없이 체포되는 신세인데,
주인공은 리사의 집을 떠나지도 않고
에이미 수색도 적당히 찾다가 포기해 버립니다.
정말로 신고 때문에 에이미를 감금했던 건지 의심이 드는 부분입니다.
주인공 스스로도 자기 자신을 이상하다고 생각합니다.
자신은 '복수의 비스트'가 아니라 '어중간한 비스트'였다고요.
비스트 칭호만큼은 끝까지 포기 못하는군요.
아무튼, 리사를 폭행했던 건 에이미는 아니었습니다.
아무리 추궁해도 그런 증거는 나오지 않았죠.
주인공은 리사를 괴롭힌 범인을 찾기 위해
리사의 친구인 이즈미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즈미도 리사의 몸 군데군데에 있는 상처를 알고 있지만
어디서 넘어졌다는 변명만 들었을 뿐 진실은 모르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이즈미에게 지금부터 같이 리사네 집으로 가서
같이 리사를 추궁하자고 제안합니다.
하지만, 이즈미와 둘이서 추궁해 봐도
리사는 폭행을 당한 적이 없다며 시치미를 뗄 뿐입니다.
계속 물어 보았으나 아무런 성과도 얻을 수 없었습니다.
문제는 지금부터인데,
갑자기 주인공이 이즈미를 이대로 집에 돌아가게 할 수는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이즈미가 경찰에 신고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오늘 밤만이라도 이즈미에게 리사의 집 한 칸에서 감금되어 있으라고 하는데,
이쯤되면 주인공은 그냥 감금이 하고 싶을 뿐인 거 아닌가요?
곰곰이 생각해 봐도 주인공의 주장은 말이 안 돼요.
하루 밤 감금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다음 날 아침에 신고하면 어쩔 건데요?
게다가 주인공은 이즈미에게 물어 볼 것이 있어서 자진해서 이즈미 앞에 나타났고,
리사네 집에 같이 가자고 한 것도 다름 아닌 주인공입니다.
이즈미는 주인공이 하자는 대로 다 했을 뿐인데
이제 와서 못 믿겠으니 감금하겠다고요?
이런 억지가 어디있습니까?
그렇습니다. 바로 지금입니다.
아무튼 성격 좋은 이즈미는 주인공을 이해한다면서,
자신의 집에 외박하겠다고 전화를 겁니다.
이즈미를 감금하고 나서 주인공은 한숨 자고 일어나는데,
깨어나 보니 또 이즈미가 사라져 있습니다.
사실 이번엔 별 거 아닌데 리사가 아무리 생각해도 미안해서
그냥 보내줬다고 합니다.
주인공이 한참 리사에게 자신을 속였다며 화를 내는 중에
현관에서 초인종 소리가 들려 옵니다.
무려 순경인 모모에가 찾아 온 겁니다.
모모에 말로는 자신은 그냥 순찰 도는 도중이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인공이 생각할 때는
도망친 이즈미가 신고한 게 틀림없습니다.
너무 비약적인 생각인 것 같기도 하지만,
주인공의 의심이 아예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닙니다.
타이밍이 너무 절묘했으니까요.
그래서 주인공이 어떻게 하느냐.
모모에를 기습해서 또 감금합니다.
아니, 리사네 집이 무슨 교도소냐고요.
동네 사람들 다 감금되게 생겼습니다.
제가 말했죠?
주인공은 그냥 감금이 하고 싶은 것뿐이라고요.
그냥 순찰이었다는 모모에의 말을 믿었다면 아무 문제가 없었겠지만,
수배범이라 신경이 날카로워진 주인공의 처지를 이해한다고 칩시다.
그럼 신고를 당한 수배범이 취할 행동은 무엇일까요?
경찰에게 알려진 은신처를 버리고 도망을 쳐야할까요,
아니면 경찰을 잡아서 감금을 해야할까요?
진짜로 경찰에게 신고를 당했다고 생각한다면,
여유있게 모모에를 감금하고, 심문하고, H씬까지 했겠습니까?
애초에 살인범을 잡으러 순경 혼자 온 것을
'신고를 받고 공을 세우고 싶어서 혼자 온 게 아닌가?'하고
그런 부분은 또 자기 좋을 대로 생각하는 주인공입니다.
모모에와의 H씬 이후에,
주인공은 모모에에게서 빼앗은 총을 들고 거리를 활보합니다.
주인공이 정녕 수배범이 맞냐 싶지만
주인공의 정신이 몽롱하다는 묘사가 있으니 이 정도는 이해합시다.
그러던 중, 길거리에서 이즈미를 만나게 됩니다.
집에 외박한다고 전화까지 한 이즈미는
딱히 갈 곳이 없어서 산책 중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이즈미가 경찰에 신고한 게 아니냐고 추궁하는데
이즈미의 해명을 듣다 보니 이즈미는 범인이 아닌 것 같습니다.
모모에가 진짜로 순찰중이었다는 가능성은 끝까지 생각 안 하는 주인공에게
남은 가능성은 리사가 신고했다는 가설뿐입니다.
지금까지 숨겨 주고, 밥도 주고, 해 달라는 거 다 해 줬는데
배은망덕하기 짝이 없는 주인공입니다.
사실 리사도 주인공에게 거짓말을 한 것도 있고,
주인공에게 숨기는 것도 많다는 묘사가 있었습니다.
주인공이 리사를 믿지 못하는 건 백 번, 천 번 양보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근데, 리사가 신고했다고 생각하면 도망을 쳐야죠.
만약에 리사가 신고했고 신고를 받고 온 경찰이 붙잡혔다면
리사가 다음에 할 행동은 대체 뭐겠습니까? 당연히 다시 신고를 하겠죠.
리사에게 신고할 마음이 있었다면 주인공은 벌써 진작에 철창 신세인데
왜 이런 기본적인 것도 생각을 못하는 겁니까.
이게 다 리사까지 감금하고 싶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겠습니까?
실제로 선택지에 따라 리사를 감금하는 스토리도 있습니다.
제가 주인공을 싫어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말도 안 되는 행동들 때문입니다.
행동 하나하나에 앞뒤가 없어요.
저저번 리뷰부터 의도치 않게 광기 특집이 되어 버렸는데
이 게임의 주인공 역시 미쳐있습니다.
어릴 적 학대와 학교 폭력 등
주인공이 광기에 빠져들 이유는 충분히 있었죠.
다만, 미친 이후의 행동이 너무 어색했습니다.
현실에서는 별 이유도 없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창작물에서 그렇게 하면 개연성 부족으로 이어집니다.
그건 광기라는 설정을 덧붙였다고 해도 마찬가지에요.
게다가 게임 내의 묘사로는 주인공이 아무 심사숙고없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엄연히 그럴 듯한 생각을 하고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플레이하는 내내,
주인공이 무슨 맥락으로 행동하는 건지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이즈미를 감금하고, 경찰을 습격하는 걸 보면
경찰 수사에서 몸을 피하는 것에 집착하는 것 같지만,
별다른 경계도 없이 에이미나 이즈미를 만나러 밖을 돌아 다닙니다.
리사에 집착해서 리사를 괴롭힌 범인을 찾으러 다니는 것 같지만
어느 순간 그런 목적은 잊어 버리고 리사에게 총을 겨누고 있어요.
모든 일의 시초인 복수의 목적은 이미 초반부에 사라졌습니다.
정말로 감금에 집착하는 게 아닐까 할 정도로
감금할 때만큼은 온갖 이유를 다 갖다 붙였죠.
이 게임은 저에게 10년 넘게 트라우마였는데
이번에 플레이해 보니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었습니다.
사건은 계속 일어나는데 주인공의 행동에 공감을 못하겠고,
주인공의 내면을 묘사하는 작가의 필력은 괜찮았으나
주인공 캐릭터 때문에 그게 허세와 중2병으로 보였던 거죠.
광기라기 보다는 억지로 미친 척하려는 어린 애로 보였습니다.
게임하는 내내, 오그라들고 고통스러웠죠.
정말 안타깝지만 이 게임은 아직도 한참 남았습니다.
해야 할 이야기도 많이 남아 있어요.
이번 리뷰는 1편입니다만 2편을 써야할지는 계속 고민 중입니다.
사실 지금도 게임을 올클리어하지 못했어요.
미사와 선배의 분투에도 불구하고
플레이하는 내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
제가 끝까지 게임을 할 수 있을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리뷰쓰는 것조차 너무 힘이 드네요.
과연 제가 이 고통을 극복하고 리뷰 다음편을 올릴 수 있을까요?
저조차도 알 수 없는 미래입니다.
혹시 다음 리뷰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CARNIVAL 리뷰 2편이 아닌 다른 게임 리뷰가 적혀 있더라도
그러려니 넘어가 주시길 바랍니다.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