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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2월 12일 일요일

리뷰 : EVE new generation(2006/8/31,카도카와서점)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VE 시리즈에 지나치게 의존하던 시즈웨어는
결국 <EVE ZERO>를 마지막으로 이 시리즈에서 손을 놓아 버립니다.
6년 후, 시리즈 다음 작품이 발매되는데
바로 카도카와서점에서 플레이스테이션2용으로 발매한 <EVE new generation>이었습니다.
이후 TYRELL LAB이라는 F&C계열 회사에서 윈도우용 성인 게임으로 이식했죠.


이 게임은 어느새 시리즈 다섯 번째 작품으로,
EVE시리즈를 플레이하고자 하시는 분들이 플레이를 도전해도 좋다고 생각되는 작품입니다.

네, 이 게임 플레이하세요. 
저라고 맨날 게임 욕만하고 싶겠습니까? 칭찬할 때도 있어야죠.
그렇게 생각 안 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개인적으로는 늘 관대한 기준으로 게임을 평가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EVE 시리즈의 속편들이 지나치게 수준 이하였을 뿐이죠.



사실 이 게임도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게임입니다.
장점만큼이나 문제점도 많은 게임이죠.
가장 큰 문제점은 이번에도 부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new generation. 너무 새로웠던 거죠.



가장 먼저 확인할 수 있는 다른 시리즈와의 차이점은
스토리의 템포가 빠르다는 점입니다.
코지로는 게임 시작하자마자 총격전을 벌이고,
마리나는 게임 시작하자마자 테러 계획 고백 후 자살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죠.

시리즈의 다른 게임들은 초반부가 다소 느슨하게 진행됩니다.
<EVE burst error>만 해도 코지로가 맡았던 사건은 유실물 수색,
마리나가 맡았던 사건은 외교관 딸 호위였죠.

완전 별개라고 생각했던 사소한 사건들이 점점 규모가 커지면서,
예상치 못한 접점을 갖게 된다는 구성은 EVE 시리즈의 전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전통은 양날의 검이었는데
<EVE burst error>처럼 중후반부의 스토리 밀도를 폭발적으로 향상시킬 수도 있었지만,
후반부 전개가 빈약하다면 처음부터 끝까지 그냥 부실한 게임이 될 수밖에 없었고
실제로도 몇몇 게임이 그렇게 되었습니다.

new generation은 그런 전통을 깨 버리고 초반부터 치고 나가는 전략을 선택했습니다.
그에 발맞춰 시스템도 바뀌었는데,
플레이를 피곤하게 했던 쓸데없는 맵 이동을 최소화하고 
시점 변환 타이밍을 대놓고 알려주는 방식을 택했죠.



플레이 시간을 쓸데없이 늘려 버렸던 맵 이동이 간소화되면서
게임 플레이가 쾌적해졌느냐? 애석하게도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많은 분들은 이 게임 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했죠.
맵 이동은 없지만 한 장면, 한 장면이 모두 귀찮은 일을 강요했던 겁니다.

PS2에서는 방향키와 버튼을, 윈도우판에서는 마우스를 이용하는 방식이었는데
특히 윈도우판이 엄청난 비판을 많이 받았죠.
PS2 패드에는 버튼이 많았지만 마우스에는 버튼이 몇 개 없으니까요.

시스템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조사한다', '대화한다', '기타' 커맨드 중 하나와
중앙 혹은 상하좌우 중 하나를 선택하는 방식이었죠.

문제는 그 시스템의 운용이었는데
단순한 대화를 하는데도 '대화한다' 커맨드 뿐만 아니라
'조사한다', '기타' 등을 계속 눌러줘야 대화가 진행되었습니다.

무슨 커맨드를 어떤 때에 활용해야 하는지도 명확하지 않았습니다.
제작자 본인들도 혼동했는지 처음 보는 인물을 소개할 때, 
어떤 때는 '조사한다' 커맨드를 눌러야 했고,
또 어떤 때는 '기타' 커맨드를 눌러야 했어요.

게다가 상당수의 경우에 불필요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대화'는 사람하고만 하면 됩니다.
근데 그 '대화하다' 커맨드를 상하좌우 다 선택할 수 있도록 만들어 놨죠.

'천장하고 대화를 왜 함?', '바닥하고 대화를 왜 함?'
이런 멘트가 게임 내내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데
애초에 이런 커맨드들을 안 만들었으면 되잖아요.
저도 천장하고 대화하기 싫어요. 
근데 게임이 진도가 안 나가니까 있는 커맨드들을 다 눌러볼 수밖에 없는 것뿐이에요.

 

다시 스토리 이야기로 돌아와서,
이 게임은 스토리가 초반에만 치고 나가고 중반부에 느슨해지는 스타일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미스테리한 일이 벌어지죠.

코지로가 보호하고 있는 노이라는 캐릭터는
자신이 순간이동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언제, 어디로 순간이동을 할 것인지는 본인이 정할 수는 없고
비자발적으로 갑자기 순간이동을 하게 된다고 하네요.



첫 번째 장면, 코지로는 야요이에게 노이를 맡겨 놓았는데
노이가 탈출구가 없는 화장실에서 갑자기 사라졌다고 합니다.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것처럼 말이죠.

두 번째 장면, 경찰 병원에서 보호하고 있던 노이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경찰 관계자들이 철통같이 지키고 있던 감시를 뚫고 말이죠.
마리나가 관계자들을 추궁하지만 감시원들조차 사라진 방법을 모르겠다고 합니다.

세 번째 장면, 코지로는 MRI 촬영 때문에 노이를 병원으로 데려갑니다.
노이를 MRI실에 두고 코지로와 의사는 옆방에 있었는데
몇 초간 정전이 된 틈에 노이가 또 사라집니다.
출구라고는 코지로가 있던 옆방 밖에 없었는데 말이죠.



네 번째 장면, 코지로는 알토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문이 닫히는 걸 틀림없이 봤습니다.
근데 엘리베이터가 지하까지 내려왔을 때, 알토는 온데간데 없이 사라져 버렸죠.

같이 엘리베이터에 타고 있던 마리나는 수레에 숨어 있어서 바깥 상황을 알 수 없었으나
엘리베이터는 한 번도 멈추지 않았고, 알토가 중간에 내리지 않았던 것도 확실합니다.



다섯 번째 장면, 마리나 시점에서
에피라는 여성이 마리나를 순간이동시켜 주겠다고 합니다.
마리나는 코웃음을 치며 아무 장소나 이야기하죠.
근데 정신이 들어보니 어느새 그 장소에 와 있습니다.

코지로 시점에서 코지로는 마리나와 에피의 대화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리고 총소리 때문에 잠깐 한 눈을 판 사이에 마리나가 사라져 버리죠.
그 장소에는 에피만이 남아 있었고 유일한 출구는 코지로가 지키고 있었습니다.


순간이동에 관해 다양한 미스테리가 펼쳐지는데 놀랍게도
이 게임의 메인 테마는 순간이동이 아닙니다.
그 외에도 쌍둥이 간의 기억 공유, 집단 기억상실, 타임 리프 등
수많은 사건들이 벌어집니다.

게임의 분량에 비해 미스테리한 사건이 너무 많이 벌어질 뿐더러
이 사건들이 한 호흡에 해결되는 것도 아닙니다.
모두 제각기 다른 트릭들이 사용되고 있죠.
게다가 현실성도 없고, 억지스러운 트릭도 꽤 많이 사용되고 있어요.

이렇다 보니, 내용이 너무나도 산만해집니다.
중간중간에 사건을 정리하는 시간이라도 가졌으면 좋겠지만
그조차도 부족합니다.
게임 내내, 현란한 사건을 계속 터뜨리면서 
세세한 점이 부실하다는 걸 덮어 버리는 수법을 쓴 거죠.

많은 플레이어들이 게임 스토리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고,
이해를 위해 2회차 플레이를 한 사람들은 이 게임의 속임수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캐릭터 면에서도 많은 비판을 받습니다.
코지로와 마리나를 제외하면 이전 작품들과 연관되어 있는 캐릭터는
야요이, 본부장, 히무로 쿄코 셋 뿐인데
야요이와 본부장은 후반부에 완전히 사라져 버렸고
히무로 쿄코는 까메오 출연급으로 짧은 활약만을 보여줍니다.
코지로와 마리나의 캐릭터도 어색하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이 게임의 시나리오는 우치코시 코타로로 그의 대표작은 <EVER17>입니다.
이 게임이 듣는 가장 많은 비판은 우치코시의 색깔이 너무 많이 들어갔다는 점이죠.
우치코시의 방식이 무조건 틀린 건 아니고 단점만큼 장점도 존재하지만
EVE의 레귤러 캐릭터들은 캐릭터성이 확연히 죽어 버렸다는 비판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이것이 이 게임이 호불호가 갈리는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이 게임을 좋게 평가하는 사람이나, 나쁘게 평가하는 사람이나
'이 스토리를 굳이 EVE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하는 의문을 제기하죠.



상술한 문제점들에도 불구하고, 
제가 이 게임을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멀티 시점을 활용한 트릭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는 점에 있습니다.

말씀드렸던 순간이동 트릭 중 일부도 
코지로의 시점과 마리나의 시점이 결합함으로써 미스테리가 완성되었죠.
또한 코지로와 마리나, 둘이 같은 사람을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전혀 다른 사람을 생각했었다는 서술 트릭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코지로는 마리나의 살인 장면을, 
마리나는 코지로의 살인 장면을 목격한다는 장면이 훌륭했습니다.

트릭이 거칠고, 억지스럽고, 편의주의적이었던 건 아쉬운 부분입니다만
짧은 한, 두 장면에 걸친 게 아니라
여러 장면에 걸쳐 몇 번이고 살인 사건을 보여줌으로써
멀티 시점을 이용하려는 의지를 확실히 드러냈죠.

많은 EVE시리즈의 속편들이 참신한 아이디어만 있었을 뿐,
스토리 진행 도중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잃어 버렸습니다.
참신한 아이디어가 처음부터 끝까지 유지되지 못했죠.



하지만 new generation은 멀티 시점 활용에 대한 확고한 의지가 있었습니다.
무리수를 많이 두었지만 각 장면들은 화려했으며,
작가의 이전 작품들과 유사한 트릭들도 많았지만 EVE의 시스템과 어울렸습니다.
너무 많은 트릭들을 한꺼번에 넣어 스토리를 산만하게 만든 문제점은 크지만,
그만큼 시스템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고 활용에 대한 의욕이 높았다고 평가합니다.



총평하자면, <EVE burst error>에 큰 애정을 갖고 계신 분들이나
작품 내에 쓰인 트릭을 진지하게 추리할 생각이신 분들은 즐길 수 없는 작품입니다.
전작들과는 완전히 단절된 작품으로 봐야 옳고,
설명이 안 된 미스테리는 없지만 몇몇 트릭은 SF 수준으로 무리한 트릭이었죠.
논리적으로 말이 안 되는 부분만 소개해도 리뷰 몇 편은 나올 겁니다.

하지만, 어찌어찌 결말까지 끌고 가서 해결이 되었기 때문에
EVE 시리즈치고는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는 게임이기도 합니다.
괜찮은 아이디어들이 많이 포함되었고 개중에는 감탄할만한 트릭도 있죠.

전체적으로 즐길 요소 자체는 다른 쓰레기 속편보다 월등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EVE burst error>는 물론, <EVER17>과도 비교되면서 까이는 작품인데
그런 역대급 명작들과의 비교는 너무 가혹하지 않겠습니까?


나름의 인기를 끌었고, 그 여세를 몰 생각이었는지
<EVE작>이라는 캐릭터를 활용할 탈의마작 게임도 만들어졌습니다.
<EVE작>은 호불호 갈리고 그런 거 없이
만장일치로 쓰레기통에 쳐 박히고 말았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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