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5년까지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이 탄생할 것이며, 곧 네토라레의 시대가 도래할 것이다."
<새댁만화경> 리뷰에서 말씀드렸다시피,
과거의 저는 이런 되도 않는 예언을 했고
네토라레 시대를 몰고 올 메시아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을 계속 기다렸습니다.
이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자면,
그것은 바로 한 장르를 대표하는 작품입니다.
제가 누군가에게 네토라레물을 추천할 일이 갑자기 생겼을 때
바로 뒷주머니에서 꺼내주듯이 망설이지 않고 추천할 수 있는 작품말이죠.
이것이야말로 제가 기다려 오던 '네토라레 불후의 명작'이라는 것을 말이죠.
부제부터가 '네토리네토라레야리야라레'입니다.
이건 뭐, 저한테 헌정하는 작품 수준이었어요.
제가 예언했던 2015년까지 아직 한참 남았는데
이렇게 빨리 나와도 되는 걸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죠.
발매 직후의 반응은 그야말로 폭발적이었습니다.
그것도 긍정적인 쪽으로요.
제가 엘프빠가 된 이후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역대 최고의 분위기였습니다.
그런 분위기에서 미육의 향기를 기다렸던 저는 뭘 하고 있었느냐.
기술적인 문제로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고 있었죠.
에로게라는 게, 일반적으로 그렇게 높은 컴퓨터 사양을 요구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일루젼 사같은 3D 회사 게임을 하지 않는 이상,
발매 시기에 비해 낡은 컴퓨터로도 충분히 플레이할 수 있어요.
당시에 제가 쓰던 컴퓨터가 꽤 낡긴 했지만,
미육의 향기 이전까지의 에로게는 아무 문제없이 플레이가 가능했었죠.
제가 겪은 문제도 낡은 컴퓨터로 충분히 해결 가능한 문제였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당시에는 저와 같은 문제를 겪은 사람은 보이지 않았고,
당연히 해결책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컴퓨터를 잘 모르는 제가 직접 해결책을 찾을 수도 없었죠.
결국 컴퓨터를 바꾼다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문제는 당시에 제 사정은 마음 먹었다고
하루 아침에 컴퓨터를 바꿀 여유가 되지 않았다는 겁니다.
해법은 알고 있었지만 진행은 지지부진했고,
몇 개월 후에 발매된 에우슈리 사의 <전여신ZERO>에서
또 컴퓨터 사양 문제를 겪어야만 했습니다.
특별히 마음이 급하지는 않았습니다.
미육의 향기도 <전여신ZERO>도 기대작이기는 했지만
게임이 몇 개월 후에 어디로 도망갈 리가 없었고,
플레이할 만한 다른 에로게는 얼마든지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겨우 플레이할 수 있었던 미육의 향기는 놀랍게도
당시 제게 있어 매우 실망스러웠던 게임이었던 겁니다.
그렇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 게임을 그다지 높이 평가하지 않습니다.
몇 번 다시 플레이하고 평가는 처음에 비해 꽤 올랐습니다만
아직도 엘프 사에서 좋아하는 게임을 열 개 꼽는다고 했을 때,
고민도 없이 순위 외로 들어가는 게임이죠.
남들이 다 좋다고 하니까 왠지 청개구리 심보가 발동해서 별로인 것 같다고 생각되는
제 홍대병 기질 때문도 있겠죠. 부정 안 하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역시 기대가 너무나도 컸다는 점입니다.
제가 이 게임에 걸었던 기대는 무려,
네토라레 시대를 몰고 올 불후의 명작이었으니까요.
여러 모로 운도 나빴죠.
처음 계획대로 발매 당일에 플레이했다면,
발매 이후 이 게임에 대한 폭발적인 반응을 보지 못했을 것이고
기대가 이렇게까지 커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못하고 기다렸던 몇 개월동안,
기대가 지나치게 커져 있다는 것을 스스로도 눈치채고 있었지만
이미 부풀어 오른 기대를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이 게임의 훌륭한 그래픽이었습니다.
저에게는 어떤 게임이든 그래픽은 그다지 중요한 평가 요소가 아니죠.
그림체가 호불호가 갈리는 면도 있었지만,
당시 모에에 지나치게 치중했던 에로게 판에서
독특한 매력을 보여주는 그래픽이었습니다.
<꽃과 뱀> 리뷰에서도 이야기했었지만,
당시 에로게에 삽입되는 모션이나 애니메이션은
CG의 퀄리티 다운을 상당히 각오하는 일이었죠.
왜 이렇게까지 움직임에 집착하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퀄리티였습니다.
장담할 수 있는 건 미육의 향기에서 보여줬던 움직이는 CG의 퀄리티는
동시기 어떤 에로게보다도 월등했다는 겁니다.
퀄리티 다운이 거의 없이 움직이는 H씬을 훌륭하게 표현했습니다.
기술적인 문제였든 예산적인 문제였든
제가 그 시기에 불가능하리라고 여겼던 것을 보란 듯이 성공시켰던 거죠.
다만, 애초에 지향점 자체가 제가 원하는 부분은 아니었습니다.
예전에도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저는 에로게 CG가 굳이 움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더군다나, 저는 엘프 사가 미육의 향기 이전까지
움직이는 CG에 집착하는 걸 굉장히 안 좋게 봤던 사람이기도 합니다.
게임이나 잘 만들지 쓸데없는 짓을 한다고 생각했던 거죠.
그래서 훌륭한 결과물이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다지 감흥이 없었던 겁니다.
3D 맵 이동은 꽤 아쉬운 활용도를 보여줬습니다.
이 게임은 <유작>같은 방탈출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같은 곳을 반복적으로 이동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이동하는 장소에 따라 스토리에 유의미한 분기가 생기는 것도 아니죠.
그냥 스토리가 흘러가는 것에 맞춰서 제한된 자유도로 이동하는 것뿐이라
없어도 큰 상관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됩니다.
스토리 진행도에 따라 열쇠를 찾아 들어갈 수 있게 만든 시스템은 좋았지만
이 역시 메인 스토리와는 관계없이 팬서비스적인 측면이 강했습니다.
물론, 중요한 스토리도 하나 있었지만 굳이 이런 형식을 취할 필요는 없었죠.
맵을 확장시켜나가는 재미를 주지는 못한 시스템이었습니다.
다만, 주인공이 샤워를 하고 나왔을 때나 클라이맥스 부분에서
조명이 꺼진 저택의 음산한 분위기를 3D맵으로 만든 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유행이 지난 시스템이었기 때문에
만일 전면적으로 활용했다면 게임의 편의성에 상당한 장해가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꼭 필요한 순간에만 이 시스템을 활용하려고 한 것 같은데
그 필요한 순간이 너무 없었죠.
거의 활용되지도 못했을 뿐더러
가끔 활용되었던 순간에도 그다지 재미있게 활용되지 못했습니다.
이 정도면 시스템 자체를 완전히 빼 버렸어야 해요.
게임의 가치를 올려줄 정도로 활용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습니다.
너무나 감질감질나게 글을 쓰셔서 얼른 다음 리뷰를 보고 싶어 안달이 나네요. 사실 미육의 향기도 리뷰를 할법하신데 그동안 리뷰를 미뤄오신 것 같은 느낌이어서 역시나 백개먼님이 별로 좋아하시진 않나보다 예상은 하고 있었습니다.
답글삭제사실 저도 이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데 이유는 별게 없습니다. 그냥 이 장르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네토리에서 유발하는 감정 자체가 삶에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되는 괴로운 감정이라 보기 때문입니다. 이미 현실에서 겪어본 입장에서 게임에서 또 겪는 건 정말 사양하고 싶은 감정이었죠. 근데 미육의 향기에서 느끼긴 했습니다. 원치 않는 감정을 만들어 내는 것을 보고 그런 점에서 엘프가 게임 자체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즉 저는 게임은 엘프가 잘 만들었다 생각하지만 제가 ntr을 싫어한다는 이유로 너무 잘만든 이 게임을 좋아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개먼님이 어떤 생각으로 실망을 하셨는지가 엄청 궁금합니다.
feveriot//
답글삭제네토라레라는 장르 자체가 호불호가 많이 갈리는 장르죠.
옛날에는 이렇게까지 호불호가 갈릴 거라고는 예상을 못했기에
네토라레의 득세를 예상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말도 안되는 예상이었지만요.
딱히 미육의 향기를 싫어해서 리뷰를 미뤘던 것은 아니고
순서대로 가다보니 생각보다 오래 걸렸습니다.
이후로 계속 할 말이 많은 게임들이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빨리 리뷰하고 싶었던 마음도 있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