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1월 22일 일요일

리뷰 : 두근두근 셔터찬스!!(1988/12/8, el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게임 한정으로 지금 플레이할 요소가 딱히 없으며, 스토리 게임도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 하지 않은 사람이 봐도 무방하다고 생각됩니다.



<두근두근 셔터찬스>는 엘프사의 처녀작으로 무려 1988년의 게임입니다.
PC-88이라는 일본의 미연시 전문 구형 컴퓨터에서 한 단계 더 구형 컴퓨터용으로 나온 게임입니다. (컴퓨터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는 길기 때문에 위키를 참고합시다.)

참고로 90년대에 나온 같은 제목의 PS용 게임이 있는데 아무 관련 없는 게임입니다.

1989년도에는 PC-98이라는 한 단계 높은 성능의 컴퓨터인 PC-98로 이식되었습니다.
PC-88버전이나 PC-98버전 모두 한국어 버전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PC-88판과 PC-98판의 차이>

어쨌든 두근두근 셔터찬스는 매우 오래된 게임으로 지금의 시점에서 퀄리티를 논할 수는 없는 작품입니다. 플로피 디스크 몇 장 짜리 게임은 당연히 퀄리티에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주인공 이름은 카메라 고조우’ 입니다. 카메라(亀羅)라는 성은 이 게임을 위해 만든 것 같습니다.
아래의 설명은 전부 뻥입니다. 악당은 바로 주인공입니다.



이 게임은 <학교>편, <간호사>편, <버스 가이드>편 세 개로 나뉘어져 있으며
여기까지는 공통 프롤로그입니다.


<학교>편으로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획기적인 수법입니다. 여러분도 친구가 없다면 이 방법을 써보기로 합시다.
최악의 경우에는 교도소에서 친구를 사귈 수도 있습니다.
 
일단, 간호사 편이나 버스 가이드 편에는 괴롭힘을 당한다는 직접적인 표현이 있지만 학교 편의 의뢰인은 나카마하즈레로서 다소 애매합니다

의뢰인은 단순히 친구가 없는 것일 수도 있고, 괴롭힘을 당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단순히 친구가 없는 거라면 사실 친구들 입장도 이해가 가는데, 사실 아무도 야쿠자하고 얽히고 싶지 않잖아요? 이런 문제를 부끄러운 사진을 찍어서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볼 때 의뢰인 성격도 이상합니다. 왜 따돌림을 당하는지 알 것도 같습니다.
또,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면 야쿠자 불러서 해결하면 되지 않을까요? 굳이 주인공같은 수상한 범죄자를 이용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어찌됐든 주인공과는 별 관계없는 일입니다
의뢰를 받았으면 의뢰인의 사정따윈 생각하지 않고 일처리에 집중하는 것이 프로 정신.



이 이외의 다른 보수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문제가 되고 있는 열정페이따윈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이건 마치 어부가 생선을 잡아서 파는 대가로 생선을 받고, 화가가 그림을 그려주는 대가로 그림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대체 왜 사진사가 보수로 사진을 받죠?


어쨌든 주인공은 그 보수에 만족한다니 별 수 없이 게임이 시작됩니다.
기본 규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탑뷰 형식의 액션 RPG게임입니다.

<선생을 피해 건물 안의 여자를 촬영하는 장면>

게임 설명에는 여자는 붉은머리, 추적자는 노랑머리라고 되어있지만
추적자는 검정머리고 여자는 붉은머리도 있고 노랑머리도 있습니다.
아마도 PC-98 이식판에서 색만 바꾸고 설명은 바꾸지 않은 듯합니다.
실제로 PC-88판에서는 선생님이 노랑머리로 제대로 나옵니다.


선생님의 머리색뿐만 아니라 PC-88버전과 PC-98버전은 여학생들의 위치와 찍은 사진의 그래픽도 달라졌습니다. 당연히 그래픽은 PC-98이 더 나아졌습니다만 PC-98의 사진 배치는 엉성하기 짝이 없습니다.


<틀림없이 운동장에서 찍은 사진인데 복도의 여자가 찍혀있습니다>


 <야외 테니스장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탈의실 사진이 찍혀 있습니다>


사진 찍는 장소와 CG는 다소 매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습니다.
가장 충격적인 부분은 여기입니다.

<옥상에서 찍은 사진>

CG만 보면 마치 철봉을 하고 있는 여자처럼 보이지만 사진을 찍은 장소는 옥상입니다.
그러니까 저 여자는 철봉이 아닌 옥상 난간에서 저런 위험한 행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학업 성적을 비관해서 자살하려는 걸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주인공은 여자를 도와주긴커녕 팬티 사진이나 찍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인성을 짐작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조작은 동시대 명작 액션 RPG와 비교하면 여러 면에서 불편합니다.



스페이스 바를 누른 후 2~3초 후에 사진이 찍히는데 그 사이에 여자는 계속 움직이며 플래시 밖으로 나가버릴 때도 있어서 불편합니다. 
적절한 타이밍을 찾는 것도 애매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여자가 움직이는 궤도를 예측해서 그 앞을 막아버린다든가, 머리를 써서 하면 해결되기 때문에 오히려 게임을 재밌게 할 수도 있습니다.



옥상에서 나갈 때, 이 장면에서 위로 가는 키를 누르는 게 아니라, 아래로 가는 키를 눌러야 합니다.
물론 옥상에서 내려가는 거지만 문은 엄연히 주인공보다 위에 있기 때문에 계속 헷갈립니다.


가장 큰 불만점은 겉보기에는 넓은 공간인데 움직임이 너무 제한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위 장면에서 주인공은 학교 구석에 몰려 있으며 뒤에서 선생이 따라오고 있습니다.
척 보면 학교 뒤로도 도망갈 수 있고, 옆의 넓은 공간을 이용해서 빠져 나갈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안됩니다.

지금 저 곳은 주인공이 북서쪽으로 갈 수 있는 최대한의 장소입니다.
위로도 옆으로도 더 갈 수가 없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무 장애물도 없어보이지만 위로도 좌우로도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유일하게 움직일 수 있는 뒤에서 선생님이 쫓아오고 있기 때문에 탈출 방법은 없습니다. 잡혔습니다.

아무리 옛날 게임이라도 용서되지 않는 것이 단순히 색이라도 다르게 처리했다면 해결될 문제였습니다.
선생이나 경비가 급박하게 쫓아오고 있는 시점에서 내가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명확히 확인할 수 없다는 건 불편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술래잡기 게임으로서는 치명적인 문제점이라고 생각됩니다.

 

붙잡혔습니다. 붙잡히면 필름만 몰수 당한 후 바로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장소에서 바로 다시 시작합니다.

선생들은 학교 내를 쉴새없이 뛰어다니며 고생고생해서 주인공을 잡아놓고는 필름만 뺏고 바로 풀어줍니다. 그리고 풀려나면 바로 다시 학교를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수 있습니다. 필름 10장밖에 없다더니 바로 리필됩니다.
선생들이 학교 밖으로 쫓아내지도 않습니다. 주인공이 하는 짓은 엄연한 범죄로 사실 경찰에 신고해서 넘기는 게 기본입니다어쩌면 이 선생들은 좋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이것은 주인공 입장에서 좋은 사람일 뿐입니다. 재차 생각해보면 주인공의 행위로 인해 피해를 입는 사람은 선생이 아닙니다. 학생들이죠.
선생으로써 재발방지를 위해 주인공을 경찰에 넘겨서 학생들을 보호할 의무가 있습니다. 그러나 선생들은 신고는커녕 쫓아내지도 않고, 재발방지책이고 뭐고 없으며 신나게 쫓아와 기세등등하게 필름을 몰수하는 것뿐입니다. 정말이지 직무유기가 따로 없습니다.

한 번 더 생각해봅시다. 과연 선생들은 직무유기를 할 뿐일까요? 과연 선생들이 몰수한 필름은 어떻게 처리되는 걸까요? 선생들이 그 필름을 버렸다는 묘사는 전혀 없습니다.
선생들이 경찰에 신고하지 않는 이유도 주인공을 쫓아내지 않는 이유도 짐작이 갑니다.
선생들은 직무유기 정도가 아니라 몰래 주인공을 방조하며 주인공이 찍은 필름을 몰수하는 척하며 사리사욕을 채우고 있었던 것입니다. 믿을 사람 하나 없는 세계관입니다.


어쨌든 게임에 익숙해지면 사진을 찍는 일도 선생들을 따돌리는 일도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하지만 특히, 학교 편은 난이도가 높은데 여자 한 명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의뢰인이 왜 꼭 10장을 고집하는지 모르겠지만 한 장이라도 잘못 찍히면 욕을 얻어 먹습니다
9장 잘 찍어왔는데, 단 한 장도 봐주지 않는 냉혹한 의뢰인입니다.



의뢰인은 제대로 10장 찍어오라고 다시 기회를 줍니다. 아마도 기회는 무한인 걸로 생각됩니다. 의뢰인이 학교를 졸업하고도 남을 때까지 재도전해도 게임오버는 되지 않습니다.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던 여자 하나는 작은 풀숲에 숨어있었습니다.
운동장을 몇 바퀴씩 돌면서 욕을 몇 번이나 먹은 끝에 겨우 찾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풀숲에 숨어 있다가 10초에 한 번씩 잠깐 나왔다 들어가기 때문에 찾을 수 없는 것도 당연합니다.
어디있는지만 확인하면 풀숲에 숨어있어도 사진을 찍을 수가 있기 때문에 문제는 없습니다.



어쨌든 10장을 다 찍어서 보내주면 의뢰인이 정말 고맙다며 억지로 훈훈하게 마무리합니다. 이제부터 협박에 들어갈 생각이면서 착한 척하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의뢰 비용으로 자신의 사진을 보내줍니다. 부끄러우니 너무 보지 말아달라는 귀여운 소녀틱한 부탁과 함께.
그러나 사실 이 부분에서 또 뒤통수를 칩니다.


<의뢰인이 자기 사진이라며 보내준 다섯 장의 사진>

누가 봐도 한 사람의 사진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 사진을 보내 놓고 자기 사진인 척 하고 있습니다.
이정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면 주인공의 손을 빌리지 않고 자기 손으로 찍어서 협박했으면 됐을 것을... 프로인 주인공을 공범으로 만들어 법망을 피할 노하우를 배울 속셈인 것 같습니다.
과연 믿을 놈 하나 없는 세계입니다.

참고로 PC-88버전에서는 다섯 장이 아닌 한 장만 보내줍니다. 본인 사진 확률일 가능성도 있지만 증거는 없습니다.



의뢰인한테 속아 놓고 주인공은 애써 쿨한 척 마무리합니다.



연락방법을 알았으니 즉시 이 범죄자를 경찰에 신고하도록 합시다.
 




<학원>편 이외에 <간호사>편이나 <버스가이드>편도 거의 똑같이 전개됩니다.

총평하자면, 두근두근 셔터찬스는 스토리도 거의 없는 짧은 게임입니다.
그래픽은 당연한 얘기지만 현재와 많이 차이 나기 때문에 눈의 즐거움을 찾고 싶다면 다른 게임을 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또한, RPG게임으로서도 PC-88 시대의 명작, <제나두>나 <하이드라이드> 같은 유명한 게임을 하는 게 낫습니다.
게다가, 속편이나 세계관이 연결된 시리즈가 현재까지 계속 나오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다시 말해, 어떤 면에서 봐도 이 게임을 21세기에 할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이 게임의 의의는 한때, 고전 에로게 업계의 최고 중 하나였던 엘프사의 기념할 만한 첫 게임이라는 점에 있습니다.
미연시 팬으로서 고전 미연시가 어땠는지 알고 싶다면, 짧고 가볍게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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