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월 21일 일요일

리뷰 : 심문유희(1995/7/7, RED-ZONE)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심문유희>는 무려 선상 미스터리 게임입니다.
배 위를 무대로 삼은 게임은 몇 년에 한 번 나오는 정도이고,
그마저도 늘 실망스럽습니다만, 그래도 언제나 저를 기대하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심지어 미스터리물입니다.
이쪽 게임계에서는 추리물이 거의 전멸 수준이고,
나오면 그마저도 아마추어 애송이 학생탐정이 9할이상이니
심문유희의 프로 사립탐정은 정말 귀한 케이스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심문유희는 첫 느낌만 봤을 때,
정말 저에게 큰 기대를 준 게임이었습니다.



시스템은 단순한 명령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멀티엔딩이라기 보다는 배드엔딩이 살짝 첨가되어 있는 수준의
단일 루트 게임입니다.

보통 이 시기의 이런 선상 미스터리 게임은
기계실에, 선장실에, 갑판에, 101호실에, 102호실에 어쩌구저쩌구하면서
온갖 장소를 다 방문해가며 시간을 버려야 하지만,
심문유희는 갈 수 있는 장소를 한정하고 있어 게임 공략이 수월합니다.



주인공은 사립탐정입니다. 대놓고 셜록 홈즈스러운 분위기를 냈습니다.
영국에서 일본으로 가는 모레타니아호라는 배를 탔습니다.



배 안에서 브렌다라는 여성과 만나 그녀 방으로 가서 술을 마십니다.
주인공은 술을 마시던 도중 정신을 잃어 버리고 깨어나 보니
브렌다는 살해 당해 있습니다.

같은 배에 타고 있던 형사에게 범인으로 지목당한 주인공은
본인 스스로 진범을 찾기 위해 수사를 해 나간다는 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만 보면, 선상 미스테리물로서 분위기를 상당히 잘 만든 게임입니다.
그래픽도 훌륭하니 금상첨화입니다.
그리고 여기까지가 제가 칭찬할 점입니다.
이 게임은 저를 상당히 실망시켰던 게임 중 하나입니다.

애초에 '심문유희'라는 제목부터가 에로게의 제목으로서 의미심장합니다.
평범한 탐정물에서 나오는 심문방식이 아닐 거라고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주인공이 탐정으로서 지닌 역량 문제입니다.
제가 기대한 건 뛰어난 추리력과 말빨을 지닌 주인공의 심문 스킬이었습니다.
그 와중에 H한 장면이 있을 수는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부수적인 내용이었어야죠.
다짜고짜 불쌍한 여자들 괴롭히면서 '어서 불어라'하는
고문 스킬이 출중한 탐정을 기대한 게 아니었습니다.

아예 대놓고 탐정이 변태 캐릭터였던 <노노무라병원사람들>의 주인공도
이렇게까지 나쁜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비교적 최근에 나온 게임인 waffle사의 <야바이>나 <선악>같은 경우는,
대놓고 고문을 하는 게임이었고 더 심한 짓을 하기는 했지만,
어쨌든 심문을 당하는 사람들은 가해자였습니다.
심문유희처럼 척봐도 불쌍한 캐릭터들을 괴롭힌 건 아니었죠.

탐정 캐릭터를 쓰레기로 묘사하거나,
아니면 심문당하는 캐릭터를 쓰레기로 묘사하거나,
그조차 아니라면 탐정의 심문 행위에 당위성을 부여할 스토리를 만들었어야죠.
이도저도 아니다 보니,
멀쩡한 탐정이 불쌍한 여자를 별다른 이유도 없이 괴롭히는 게임이 되어 버렸습니다.

RED ZONE 회사의 성향상,
추리적인 측면보다 H적인 측면에 집중한 건
아쉽지만 그런대로 이해를 합니다.
그래도 어느정도 등장인물의 행동에 공감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었어야죠.
제가 보기엔 주인공이 범인만큼이나 나쁜 놈이에요.



배드엔딩의 CG이기는 하지만 이게 제가 원하는 엔딩입니다.
대놓고 나쁜 놈 캐릭터였다면 이렇게까지 증오하지 않았을 겁니다.



총평하자면, 저는 미스테리물에는 깐깐한 편입니다.
위에는 지나가는 말로 대충 적었지만,
사실 실망했던 가장 큰 이유는
별로 미스테리물로서의 장점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라고 할 수 있겠죠.

선상 미스테리의 분위기를 이 정도로 살린 게임은 드물기는 합니다.
선상 미스테리의 맛만 보려고 한다면 적절한 게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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