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4월 14일 일요일

리뷰 : 어둠의 능선(1994/3/25, ILLUSION)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에로게 회사 ILLUSION은 93년도에 하트전자산업에서 분리된 브랜드 중 하나입니다.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도 인지도가 꽤 높은 회사 중 하나입니다.

ILLUSION의 가장 큰 특징은 무엇보다도 3D입니다.
<커스텀메이드 3D>가 발매되기 이전까지, 3D 에로게 그 자체가 곧 ILLUSION이었습니다.
물론, 예외도 있었지만 다들 그 예외에 대해 잘 몰랐습니다.
3D 에로게를 보면 다들 ILLUSION 게임이라고 생각했고,
높은 확률로 정답이었으며, 틀렸더라도 반박하는 사람은 딱히 없었습니다.

<커스텀메이드 3D> 이후에도, 역시 3D 에로게의 상징은 ILLUSION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저런 비판도 많이 받았고,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깊은 역사와 훌륭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는 에로게 회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ILLUSION이 처음 탄생한 PC-98 시절에는 3D 에로게는 기술적으로 힘들었고,
ILLSUION도 평범하게 2D 게임을 만들었습니다.
독특한 에로게를 만들기도 했고, 평범한 텍스트 어드벤처를 만들기도 했습니다.
개중에는 훗날 3D 에로게에 사용되는 기술이 먼저 쓰인 에로게도 있는데
<어둠의 능선>이 그 중의 하나입니다.



어둠의 능선은 1994년도에 발매된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스토리는 애인이 살해당한 주인공이 진상을 파헤쳐 나간다는 내용입니다.
수사물로서는 그다지 대단한 점은 없지만,
같은 회사의 <감금>이나 <우라 맨션 발금>같은 농후한 H씬용 게임입니다.
극화체의 그래픽과 더해져 분위기가 잘 짜여져 있는 게임입니다.



대부분은 단순한 명령 선택식으로 진행되지만 어둠의 능선만의 특징도 가지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는, 선택지 부분에서 아무 것도 누르지 않고 잠시 시간이 지나면,
"왜 멍하니 있어?" 등으로 상대방이 말을 걸어 온다는 점입니다.
아예 아무 것도 누르지 않고 대기하고 있어야, 스토리가 진행되는 부분도 있죠.

이런 시스템이 가끔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정확히 누르려고 하는 순간에 때마침 선택창을 치워 버리는 경우도 있죠.
대기해야 하는 순간에, 선택지를 연타하다가 오히려 진행이 안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H씬에서도 마우스를 이용한 독특한 시스템이 있습니다.
이 시기 많은 게임에서 H씬에 마우스는 포인트 클릭용으로만 사용했습니다.
반면에 이 게임은 마우스의 움직임을 손 동작이나 피스톤 동작같은 
게임 CG의 모션하고 연동시켰죠.

이 역시 실제 플레이에서는 스피디한 진행에 다소 방해가 됩니다.
마우스를 빨리 움직인다고 게임 진행이 딱히 빨리 되는 것도 아니고,
모션도 그렇게 빨라지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게임은 모션 기능을 많이 활용해 주길 바란 건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마우스를 움직이는 작업을 요구합니다.

H씬을 빨리 넘기고 다음 스토리로 가고 싶은 입장에서
아무리 마우스를 격하게 움직여도 
세상 느긋하게 움직이는 모션을 보고 있으면 복장 터집니다.



총평하자면, 시스템 상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기는 했지만,
그 새로움이 방해가 되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이 다른 회사에서 발매한 게임이었다면 혹평하고 리뷰를 끝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작사가 ILLUSION이라면 의미가 다릅니다.
이 게임의 발매는 ILLUSION이 3D 게임을 내기도 전이었지만,
3D 게임에서 하고 싶었던 시도가 투영된 작품입니다.

ILLUSION은 좀 더 실시간으로 게임과 플레이어가
상호작용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선택하지 않아도 말을 걸어주는 시스템이나,
마우스 움직임이 게임 내 움직임과 연동되는 시스템은
그러한 목표를 갖고 만들었던 시스템인 거죠.

마우스 연동 같은 경우는, 실제로 3D 게임에서 여러 번 쓰였던 시스템입니다.
어둠의 능선에서는 다소 아쉬운 시스템이었지만,
그런 것들이 모여서 지금의 ILLUSION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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