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80년대에 에로게를 가장 잘 만든 회사라면 역시 에닉스라고 생각합니다.
<드래곤퀘스트> 시리즈로 유명한 그 에닉스입니다.
저는 최근에 스퀘어에닉스에서 나온 <드래곤퀘스트 빌더즈2>를 재미있게 하기도 했고,
<드래곤퀘스트> 시리즈 덕분에 에닉스에 애착이 있는 사람으로서,
에닉스가 에로게 만들던 시절을 딱히 흑역사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대의 최강자였으니까요.
하지만, 에닉스로서는 그 칭호에 대해 억울하게 생각할 것 같은데,
에닉스가 '모에'나 '에로'에 호소하는 '에로게'를 만들려고 하기 보다는
약간의 '성인 요소'가 가미된 '정통 어드벤처'를 만들려 했던 의도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도쿄 헌팅 스트리트>같은 진짜 흑역사를 제외하면
에닉스는 H씬이 없는 일반 어드벤처 게임이나
H씬이 있더라도 다양한 재미를 주려고 하는 어드벤처 게임을 주로 만들었습니다.
지금의 에로게와는 전혀 다른 방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에닉스를 최고로 치는 이유는 그냥 잘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억울하면 에로를 넣지 말았어야죠.
딱히 어떤 게임을 저격하려는 의도는 없지만
저는 잘 만든 작품이라고 해서 에로게가 아니라는 논리를 싫어하는 편입니다.
<MISTY BLUE>입니다.
사실상 에닉스 최후의 에로게이자 에닉스 어드벤처 게임의 종착역이라고
불릴만한 작품입니다.
주인공 카즈야는 뮤지션 지망생으로서 고교 졸업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됩니다.
마츠야마라는 고등학교 선배이자 프로듀서가 주인공과 같이 일해 보자고 권하여
주인공은 일본으로 귀국합니다.
콘서트장에서 만난 주인공과 마츠야마는 의견 대립으로 말다툼을 하고 헤어집니다.
집으로 돌아가려던 주인공은 고교시절의 연인 마이코와 재회합니다.
주인공과 마이코는 고교시절 친구들을 불러 같이 술집에서 한 잔합니다.
그리고, 다음날 자기 방에서 깨어난 주인공은 TV를 트는데
뉴스에서 말하길 고교선배 마츠야마가 살해당했고,
직전에 말다툼을 한 자신이 유력한 용의자로 수배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은 경찰을 피하며,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기 위해
사건을 조사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시대를 고려했을 때,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연출과 사운드입니다.
오프닝과 스토리 군데군데에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장면이 눈에 띄고,
뮤지션을 지망하는 주인공의 스토리답게
신나는 사운드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게임 디자인 측면에서는
어드벤처 게임의 노하우가 집약되어 있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대화 내용을 선택할 수 있고,
그에 따른 호감도를 옆에 있는 파란색 바로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호감도에 따라 대화 흐름이 변하기 때문에 다양한 방식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인상적인 시스템이 많지만
가장 놀라웠던 시스템은 여러 사람과의 대화하는 방식입니다.
위의 CG는 주인공, 유타, 마이코, 에리의 네 캐릭터가 술집에 모여서 대화하는 장면입니다.
파란색 테두리는 해당 캐릭터 선택 유무를 표시합니다.
마이코를 선택하면 마이코와 대화하고, 에리를 선택하면 에리와 대화하는 방식이죠.
재미있는 점은 중복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입니다.
마이코-에리를 동시에 선택하면 주인공, 마이코, 에리 셋이서 대화하고,
마이코-유타를 동시에 선택하면 주인공, 마이코, 유타 셋이서 대화합니다.
넷 모두를 선택하면 넷이서 한꺼번에 대화합니다.
다양한 패턴으로 대화할 수 있는 거죠.
보통 이런 시스템은 별 내용도 없고 귀찮기만 하지만,
이 게임은 숫자패드의 1,7,9를 통해서 편리하게 선택/선택 해제를 할 수 있습니다.
생각보다 귀찮지 않고, 활용도도 훌륭합니다.
만일 주인공과 에리, 단 둘이서만 대화하고 있으면
에리를 몰래 좋아하는 유타가 질투하며 대화에 끼어드는 장면도 있습니다.
총평하자면, 에닉스가 꾸준히 어드벤처류를 만들지 않은 게 정말 아쉬울 정도로
동시기 게임들보다 높은 완성도를 보여주는 게임입니다.
다양한 시스템들을 사용했으면서도
독창성과 편의성, 어느 것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스토리는 약간 아쉬웠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 시기 게임들을 잘 아시는 분들에게는
분위기와 연출, 시스템만 감상해도 충분히 감동할만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최근 이 게임을 해보고 검색을 했는데 리뷰하신 것을 발견해 반갑습니다.
답글삭제에닉스는 PC게임에서 많은 명작 어드벤처 게임들을 만들었는데 그 완성형이 미스티 블루라는 점에 매우 동의합니다. 그래픽, 음악, 스토리쪽에서 유명한 스태프들을 기용해 높은 연출력을 보여주며 4명이 대화하는 시스템도 대화의 분위기를 잘 전달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주인공의 행동이 불쾌하게 여겨지기도 하고, 복선이 에매하게 회수되는 부분은 아쉽습니다.
엘프의 게임을 좋아해서 관련있는 회사를 찾아보다가 엘프의 매인 프로그래머였던 카나오 아츠시(金尾淳)가 에닉스 출신이며 후에 TAMTAM이란 회사를 만들어 에닉스의 콘솔부분에서도 계속 관여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그리고 PC로 발매된 에닉스의 게임을 모두 해보자라는 목표를 세워 약 반년이 지나니 끝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스티 블루는 완성도에 비해 그렇게 인지도가 높은 편은 아닌데, 이런 점이 왜 에닉스에서 더 이상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지 않았는지를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당시의 어드벤처 게임은 더 이상 발전이 없는 한계까지 와 있었고 다른 제작사들의 수준도 비슷하게 올라가 수익성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당시 에닉스의 어드벤처 게임을 만들었던 스태프들의 이야기를 보면, 옆에서 다른 팀이 만들고 있던 드래곤 퀘스트가 팔리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는 글도 봤습니다.
요즘도 꾸준히 리뷰글 올리시는 것을 보고 성실하신 부분에 놀랍니다. 계속 즐거운 게임생활 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