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8월 28일 일요일

리뷰 : for elise ~엘리제를 위하여~(1996/12/6,CRAFTWORK)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for elise ~엘리제를 위하여~>입니다.
CRAFTWORK라는 회사에서 개발한 작품이죠.

CRAFTWORK는 계보상으로 
<어서오세요 시네마하우스에>를 발매한 HARD의 후예입니다.
하지만, HARD에서는 보여 주지 않았던
독특한 분위기의 게임을 만들었는데
첫 게임인 for elise부터 캐치 카피가 '현실과 망상과 광기와'입니다.
미친 게임이라는 거죠.



시스템은 전형적인 명령 선택식입니다.
커맨드 개수가 지나치게 많은 게 아니기 때문에
당대 비슷한 부류의 게임들에 비해 딱히 불편하지 않습니다.
다만, 별 내용이 없어서 불필요했다는 생각은 드네요.
세이브 시점이 한정되어 있다는 것도 아쉽긴 하지만,
시대를 고려하면 특출나게 불편하다고 할 점은 아닙니다.


하지만, 2020년부터 이 게임의 다운로드판을 판매하게 되었는데
다운로드판에서 당시의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은 건 잘못이었습니다.
최근 이 게임에 대해 불편하다는 평가를 많이 봤는데
2020년도에 이 게임을 플레이한 분들은
충분히 꺼낼 수 있는 불만점입니다.



주인공은 심각한 스트레스로 고생하는 회사원입니다.
거래처는 주인공의 설명도 안 듣고 욕만 하고,
원래 이 거래처를 담당했던 회사 동료는 
주인공에게 슬쩍 골치 아픈 일을 떠넘겨 버리죠.
이 과정을 얼마나 잘 묘사했는지 
제 거래처도 아닌데 거래처 사장 얼굴만 봐도 짜증이 날 정도입니다.

상사는 능력 좋고 성실하지만 깐깐한 스타일로
유능한 직원에게는 나름 좋은 상사일 수도 있겠지만
불행하게도 주인공은 멍청하면서 게으릅니다.
상사와 부하직원의 나쁜 조합 중 하나죠.



그런 주인공에게 오아시스와도 같았을 여직원인 치토세입니다.
주인공은 치토세를 남몰래 좋아하고 있지만
치토세는 동료한테 배신당하고, 상사한테 매번 깨지는 주인공을 한심하게 여기는지
쌀쌀맞은 태도로 주인공을 대합니다.
주인공은 치토세와의 이런 관계에서도 스트레스를 받을 뿐이죠.

직장 생활의 스트레스가 정말 잘 묘사된 게임입니다.
보통 이런 게임은 비현실적인 부잣집 아가씨가 나와서 
말도 안 되는 트집으로 깽판을 치는 등 현실성이 결여되어
플레이어에게 잘 와닿지 않는 경우가 많죠.

반면에 이 게임은 굉장히 현실적인 캐릭터와 일상적인 사건으로
주인공에게 감정 이입하기 쉽게 설계되어 있습니다.



이런 주인공의 스트레스 해소법은 무엇이냐?
바로 망상입니다.
매일 밤에 하는 망상 속에서
여성 캐릭터들을 괴롭히는 거죠.

상사나 동료가 여성 캐릭터였다면 정말 좋았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렇지 않기 때문에 새로운 타겟을 찾아야 합니다.

다행히도 망상에 등장시킬 여성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주인공을 열받게 하는 여성 캐릭터들은 얼마든지 있거든요.



주인공은 외근을 농땡이 피우면서
여러 여성 캐릭터를 만나게 되는데
많은 캐릭터들이 주인공을 호구로 알고
거침없이 막말을 쏟아 냅니다.
말만 막하는 게 아니라 행동도 막하는데
주인공에게 별 애정도 없으면서 이용만 하려고 하죠.

그런 여성 캐릭터들이 망상의 피해자가 되는 겁니다.
어차피 망상이기 때문에
과격한 행위도 거침없이 할 수 있습니다.
상상은 자유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망상 H씬이 지나치게 가학적이고 과격합니다.
또한 내용이 너무 짧고 부실하기 때문에 
H씬 목적으로 에로게를 하시는 분들은
이 게임에 만족하기 힘들 것입니다.



주인공이 망상을 거듭하는동안 인생은 점점 고달파집니다.
주인공 근처에 꼬이는 여성들은
대부분 주인공에게 애정이 없는 막장 캐릭터들 뿐인데
그걸 본 치토세는 주인공의 여자관계가 지저분한 것으로 오해를 합니다.

치토세는 어느새 주인공의 웬수같은 동료와 단 둘이 있는 사이까지 되었죠.
주인공에게 그걸 목격당한 이후에는 아예 회사를 그만둔다고 합니다.



그렇게 계속 스트레스를 받던 주인공은
결국 현실과 망상의 경계가 무너지고,
현실에서까지 잔인한 짓을 저지르게 됩니다.

첫번째 희생자는 보육원의 교사인 노하나인데
정말 불쌍하게도 노하나는 이 게임에 얼마되지 않는 양심적인 캐릭터입니다.
예전에 한 번 도와줬던 주인공에게 보답하기 위해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했는데
끔찍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그 외에도 망상에 버금가는 잔혹한 짓을 저지르던 주인공 앞에
마지막으로 나타난 것은 치토세입니다.
치토세는 사실 주인공에게 그다지 악감정을 갖고 있지 않았고
방황하는 주인공을 집으로 초대하게 되죠.

주인공과 치토세는 마지막으로 인연을 맺게 되지만
이미 미쳐버린 주인공은 치토세를 죽이게 된다는 결말입니다.



이 게임은 전체적으로 완성도가 높지 않은 게임입니다.
게임이 너무 짧기 때문에 중요한 요소들이 많이 결여되어 있죠.
개연성이 많이 부족했고,
엔딩에 이르러서는 '이게 끝이야?'라는 반응이 나올 정도였습니다.
스토리를 다시 곱씹어 생각해 봐도 이해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죠.


주인공이 광기에 이르게 되는 현실의 스트레스는 잘 표현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스트레스에서 망상으로 전환,
망상에서 현실 광기로 전환되는 묘사가 부족했어요.

애초에 광기 부류의 우울게임이었기 때문에
주인공이 상사고 동료고 여자들이고 막 복수하고 다니는 
사이다 스토리를 기대했던 건 아니지만,
미쳐버린 주인공의 행위를 본 플레이어가 
끔찍하다, 오싹하다고 느낄 정도의 반응은 이끌어 냈어야죠.

그런데 후반부가 부실하다 보니
공들여 묘사한 초반부의 스트레스는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하고
진짜로 플레이어들의 스트레스가 되어 버렸습니다.


역으로 생각해 보면 부실한 묘사는
그만큼 강렬하고 충격적인 광기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제대로 된 이유따위는 없이 다짜고짜 미친 짓을 저지르기 때문에
주인공의 광기가 더 강조되는 거죠.
그런 방향의 묘사를 충실히 했다면 좋았겠지만
짧은 게임이었고 후반부는 더더욱 급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그렇게 받아 들였던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총평하자면, 생각보다 그렇게 볼거리가 많지는 않은 게임입니다.
H씬도, 광기 요소도 너무 적어서 거의 즐길 수 없었죠.

주인공을 비롯해 많은 캐릭터들이 
플레이어에게 짜증을 불러 일으키도록 설계되어 있으며,
그 짜증이 밝은 쪽으로도 어두운 쪽으로도 명확히 해결되지 않고
애매모호하게 머리 속에 남게 되는 게임입니다.

이런 게임은 본래 씁쓸한 맛으로 하는 법이지만
충격적인 결말이라기보다는 흐지부지한 결말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보니,
이도 저도 아닌 씁쓸함이었습니다.
'현실과 망상과 광기와'에서 오로지 불쾌한 현실만이 제대로 묘사되었으니
사회 고발 다큐멘터리라면 몰라도 
에로게로서는 쓸모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2022년 8월 21일 일요일

리뷰 : 애자매4 ~분해서 기분 좋았다고 말 못 해~(2014/5/30, 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애자매> 시리즈의 4편인
<애자매4 ~분해서 기분 좋았다고 말 못 해~>입니다.
실키즈 이름으로 발매된 마지막 작품이기도 하죠.

이상할 정도로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시리즈 2편, 3편과 달리 
4편은 꽤나 화제가 되었던 게임이기도 합니다.



먼저 자세히 리뷰하지 않았던 전작들을 살펴 보겠습니다.
우선 2편인 <애자매 츠보미 ~더럽혀주세요~>입니다.
2004년에 발매되었죠.

매우 높은 인기를 구가했던 1편에 비하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인지도가 없었던 게임입니다.

스토리가 완전 같지는 않았지만
캐릭터나 분위기가 1편하고 꽤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새로운 점은 딱히 보이지 않았습니다.
연출 면에서 독특한 시도가 있었지만 딱히 장점이라고 생각되지 않았죠.

게다가, 1편 윈도우판의 칙칙한 색감이 생각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
그래픽은 사실 괜찮은 편이었습니다만
어차피 묻힌 게임이라 대부분은 그 사실에 신경쓰지 않았죠.
그냥 망한 게임이었습니다.



기존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서인지 2006년에 발매된 3편
<애자매 ~어느 쪽으로 할 거야~>는 
그야말로 무지개색 총공격을 시도합니다.
문제는 그래픽만 총천연색으로 바뀐 게 아니라
스토리도 싸구려 러브코미디로 바뀌었다는 거죠.

2편이 전작하고 비슷했기 때문에 애매하게 묻혔다면,
3편은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
전체적인 구성 자체가 전작 모욕 수준이었어요.



사실 저는 그렇게 싫어하는 게임이 아닙니다.
1편에 그렇게 큰 애정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3편에는 좋아하는 성우가 꽤 많이 나왔거든요.
캐릭터도 지나치게 오버한 부분도 있기는 하지만
나름 괜찮았습니다.

다만, 스토리도 개그도 모두 수준 이하였던 건 맞습니다.
의미도 없는 설정, 밑도 끝도 없는 상황극, 짜임새도 없는 스토리 등등
많은 요소들이 스토리를 산만하게 만들었습니다.

게다가 자매가 나온다는 것 이외에는 전작과 너무 단절되어 있어서
대체 왜 '애자매'의 이름을 갖다 붙인 건지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3편 이후 한참 후에야 애자매 4편이 발매됩니다.
실키즈가 문 닫기 전에 발매된 마지막 작품이죠.



초반 스토리는 정통 ㄴㅇ극처럼 전개됩니다.
못생기고, 비만이며, 직업도 없는 주인공이
의사인 유부녀 에리코를 치밀한 계획으로 함정에 빠뜨린다는 스토리죠.
꽤 그럴싸한 초반부입니다.



에리코와 H씬 성공 후 방심했는지,
부주의하게도 에리코와 호텔에서 같이 나오다가
에리코의 딸인 키요미에게 목격당하게 됩니다.
그래도 어떻게 잘 속여 넘겨서
키요미와도 그런 관계가 되는 것에 성공합니다.
키요미는 H씬 후에 심하게 울음을 터뜨리고
주인공이 집까지 데려다 주죠.



그 후, 게임이 슬슬 개그 장르로 변질되기 시작하는데
키요미의 집 앞에서 주인공을 목격한 언니 마나미는
다짜고짜 주인공의 안면에 펀치를 날립니다.



정의로운 폭력에 굴하지 않은 비열한 주인공은
어찌어찌 마나미도 함정에 빠뜨려서
에리코, 마나미, 키요미 셋과 좋은 관계가 되는 것에 성공합니다.

그 후로는 하루가 멀다하고 아침, 점심, 저녁에
세 모녀를 부르는 스케쥴 편성 게임이 되죠.
시스템이 그다지 복잡한 구조는 아니기 때문에 금방 익힐 수 있지만
모든 엔딩을 보려면 골치 아픈 면도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봤을 때는 어찌어찌 정통 ㄴㅇ극으로 흘러 왔지만,
본편에서는 그런 어두운 분위기가 많이 사라집니다.

여성 캐릭터들이 다들 특이한 성격이라서 그런지
의외로 주인공에게 큰 혐오감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주인공을 좋아하냐고 물어 보면 절대 아니라고 대답하지만,
그렇다고 억지로 H씬을 하는 건 아니에요.
협박이 큰 의미가 없는 수준입니다.


오히려 주인공이 세 모녀에게 쩔쩔 맵니다.
단순한 협박이 아니라 거짓말을 많이 섞었기 때문에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 거짓말이 거짓말을 부르는 전개가 지속되죠.
그리고 이런 전개가 굉장히 코믹하게 묘사되고 있습니다.



언제나 주인공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마나미도 꽤 재미있습니다만
진정한 웃음벨은 분노 상태의 에리코입니다.
평소에는 쿨하고 인내심이 많아 보이는 캐릭터지만
한 번 화를 내면 엄청나게 폭주하죠.
주인공이 진정시키려고 애를 많이 씁니다.



주인공이 조심성이 없어 목격을 많이 당하기 때문에
목격자 입막음에 나서는 경우가 많은데,
목격자 캐릭터들도 정상이 아닙니다.

마나미 학교의 선생님인 준코 같은 경우는
대놓고 독특하게 만든 천연 캐릭터죠.
워낙 발상의 차원이 다른지라 주인공조차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가장 주인공과 충돌없이 주인공을 잘 따르게 된 캐릭터이기도 하죠.


준코 뿐만 아니라 다른 캐릭터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공은 사람들이 자신을 혐오하는 게 당연하다고 여기고,
실제로도 많은 직장에서 그 때문에 짤리게 되었지만
만나는 캐릭터들마다 주인공을 그렇게 싫어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대부분의 캐릭터들은 주인공에게 심한 짓을 당했음에도 불구하고요.



심지어 에리코의 남편이자 자매의 아버지인 케이스케마저도 주인공을 마음에 들어 합니다.
케이스케는 평소에는 술을 안 마시는데
주인공과 술을 마시는 걸 그렇게 좋아한다고 합니다.



이런 이상한 캐릭터들이 모여 있는 가족이기 때문에
후반부의 해결 파트에서도 별 희한한 논리들이 다 나옵니다.
주인공이 제일 정상인처럼 보인다는 반응까지 있습니다.

하지만, 확실히 재미있어요.
많은 실키즈 게임들이 결말 파트를 간과하고 무시해서 졸속으로 처리했지만
이 게임은 정상적이지는 않아도 에로게다운 방식으로 훌륭하게 묘사했습니다.


이런 시트콤 같은 분위기가 장점이지만
호불호가 갈리는 측면도 있었습니다.
특히, 초반부에는 정통 ㄴㅇ물처럼 전개되었기 때문에
그쪽으로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웠다는 평가도 있었죠.

저도 그런 쪽으로 기대가 컸습니다만,
기대에 대한 실망과 예상치 못한 재미를 저울에 달아봤을 때
예상치 못한 재미 쪽이 더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총평하자면, 실키즈는 꽤 오랫동안 독특함을 추구했던 회사였습니다.
그 독특함이 재미로 연결된 적이 별로 없어서 문제였지만
이 게임은 다른 게임에서 볼 수 없는 매력이 있습니다.

재미있는 스토리에 대해 더 자세하게 전해 드리고 싶었지만
특이한 캐릭터와 복잡한 인간관계가 엉켜 있어서
리뷰에 간결하게 쓸 수가 없는 내용이네요.
웃음만큼은 보장할 수 있는 작품이기 때문에
관심있는 분들은 직접 플레이하기를 권장합니다.

H씬은 CG중복이 많아 억지로 늘린 감이 있으나
그걸 제외해도 분량이 적지 않았기 때문에
에로 목적으로도 충분히 만족하실 수 있을 겁니다.

2022년 8월 14일 일요일

리뷰 : 애자매(1994/9/30, 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실키즈 최전성기인 PC-98시절, 실키즈의 3강이라고 하면
<카와라자키가 일족>, <노노무라병원사람들> 그리고 <애자매>였습니다.

<노노무라병원사람들>은 속편이 나오지 않았고
<카와라자키가 일족>은 속편이 엘프 사에서 나왔으나,
<애자매> 시리즈는 실키즈 명의로 총 4편이 나왔으니,
사실상 실키즈를 상징하는 게임은 바로 애자매라고 볼 수 있겠죠.

이 게임의 명성에 비해 
저는 사실 이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이 게임의 장점이라면,
화려한 그래픽, 매력적인 캐릭터, 과격한 스토리 등이 있는데
모두 '당시로서는'이라는 전제가 붙죠.

그런 요소들은 당시 에로게에서 가장 빨리 발전하는 부분이었으며,
제가 플레이하던 2000년대만 해도
더 좋은 게임들이 많이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저는 2000년대의 에로게를 주로 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애자매>에서 딱히 인상깊은 부분을 발견할 수 없었던 거죠.



시스템은 명령 선택식과 선택지형 멀티엔딩을 혼합한 형태입니다.
명령이 그렇게 많지는 않지만
멀티엔딩을 보기 위해 반복 플레이를 할 때는
다소 귀찮다는 단점이 있죠.
읽은 문장 스킵 기능이 따로 없기 때문에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입니다.


주인공은 악당 사업가의 양아치 아들로
아버지에게 용돈 좀 부탁하기 위해서 회사로 찾아갑니다.
해외로 출국하려던 아버지는 출발하자마자 교통사고를 내 버리죠.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용돈을 받고 싶으면
이 사고 뒷처리를 깔끔하게 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러고선 사고 낸 본인은 무책임하게 해외출장을 가버리죠.

여기서 말하는 뒷처리라는 건
블랙박스 확인하고, 보험회사 부르고, 과실비율 따지고,
마음에 안 들면 모 변호사 유튜브에 제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악당다운 뒷처리를 말하는 거죠.



마침 상대방은 주인공이 한 눈에 반할 정도의 미인입니다.
이름은 유키에라고 하죠.
주인공은 손해 배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키에를 아버지 사무실로 유인합니다.



사무실에는 아버지의 비서인 유미가 있습니다.
주인공은 유미에게 음료를 부탁하면서
수면제를 타라는 신호를 보냅니다.

그 후 주인공은 잠이 든 유키에의 사진을 찍고,
협박해서 H도 하고, 수리비까지 덤탱이 씌워 버립니다.
게다가, 유키에는 유부녀로 두 딸이 있고,
그 두 딸은 주인공과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아내죠.
이제 주인공의 다음 타겟은 유키에의 두 딸입니다.



루미와 토모코 자매입니다. 이 둘이 바로 애자매죠.
겉모습은 타이틀 화면에 비해서 매력이 떨어지는 것 같네요.

아무튼 이런 식으로 H씬, H씬, H씬만을 추구하는 게임입니다.
초반 스토리만 봤을 때는 전형적인 ㄴㅇ계열 게임이지만
사실 ㄴㅇ물로서의 정체성이 뛰어나지는 않습니다.
여성캐릭터들의 주인공을 거부하는 마음은
그렇게까지 확고하지는 않죠.


이 게임의 진정한 매력은
자매를 비롯한 3P, 4P에 있습니다.
복수 H씬이 질과 양 모두 훌륭하죠.

당대 게임들에는 이런 요소가 적었을 뿐더러
만약 있더라도 상황이 단발적이거나,
주요 캐릭터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착실하게 스토리와 캐릭터 등을 구축해서 
복수 H씬까지 연결시키고 분량도 풍부했던
이 게임은 상당히 시대를 앞섰다고 봐야겠죠.



진엔딩인 하렘엔딩도 지금이라면 ㄴㅇ물의 필수 요소나 마찬가지이지만
당시에는 광기어린 엔딩처럼 받아 들여졌습니다.


이런 저런 요인으로 인해 굉장히 인기있던 게임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인기가 상당했죠.
요즘은 오래 되어서 인지도가 많이 줄어 들었겠지만
제 체감으로는 게임 발매 후 10년 넘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했던 작품이었습니다.



그 인기에 힘입어 2000년도에 이 게임은 리메이크가 됩니다.
하지만, 리메이크는 원작팬들에게 매우 심각하게 까이게 되었죠.

스토리는 다른 점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똑같았고,
인터페이스는 더 괜찮아졌지만
그런 걸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은 사람들조차 이 게임을 까기 바빴어요.



가장 큰 문제는 그래픽이었습니다.
원작의 그래픽이 워낙 화려했죠.
리메이크의 그래픽도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고 봅니다만
자매의 헤어 컬러가 너무 칙칙한 색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CG만 보고 리메이크 플레이를 포기할 정도였죠.

그 외에는 딱히 할 말이 없네요.
원작에 지나치게 충실한 리메이크였으니까요.
저는 언제나 그런 식의 리메이크를 싫어했죠.



총평하자면, 역사적으로 봤을 때는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을 줬던 게임입니다.
그 시절, 뽕빨물의 대표와도 같은 게임이었죠.
비공식 한국어판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나라에도
꽤 오랫동안 인기있었던 게임입니다.

20년 전까지도 찾는 사람이 많은 게임이었지만
역시 지금까지 현역은 힘들다고 생각됩니다.
좀 더 좋은 뽕빨물이 많이 있죠.
어색한 번역툴을 활용해서라도 그쪽을 찾는 쪽이 나을 거라고 봅니다.

2022년 8월 7일 일요일

리뷰 : 여계가족3 ~비밀~(2012/11/22,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계가족> 시리즈의 3편, <여계가족3 ~비밀~>입니다.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제목인데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그다지 와닿지 않는 제목이기 때문에
따로 설명하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여계가족>의 2편은 2005년에 나왔고,
실키즈는 2006년도부터 발매하는 게임 스타일을
독특한 스타일에서 좀 더 대중적인 모에 스타일로 변화시켰습니다.
변화된 실키즈의 노선 위에서는
어른스럽고 색다른 분위기의 게임인 <여계가족> 시리즈가
다시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었죠.

지금에야 과거를 돌이켜 보면, 고작 6~7년 후의 속편이었지만
당시에는 <여계가족> 시리즈의 신작이 나온다는 건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습니다.



여계가족3는 정말 오랜만에 나온 과거 실키즈 스타일의 게임이었고
그 사실만으로도 제가 기대하기에는 충분했습니다.
발매되었을 당시에는 기대가 컸던만큼 실망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평범한 게임 정도로 평가하고 있죠.



스토리는 절대적으로 보면 부족한 점도 많은 스토리지만
시리즈 1편, 2편에 비하면 확실히 좋아졌습니다.
주인공이 약에 취해 ㄴㅇ에 빠지는 스토리도 있는데
엉성했던 2편의 ㄴㅇ스토리와 달리 잘 짜여져 있죠.



막대한 부를 지니고 있던 카라사와 가문의 외딴섬 별장이 배경입니다.
카라사와 가문의 남자 당주는 이미 죽었고,
현 당주는 병에 걸려 제대로 등장조차 안 하는 노부인입니다.

카라사와 가문 장녀의 남편인 이타미는
카라사와 가문의 재산을 통째로 차지할 음모를 꾸미고 있죠.
이타미의 비서가 바로 주인공입니다.

사실 주인공은 이타미에게 몰래 복수할 계획을 세우고 있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이타미 때문에 사망했기 때문이죠.
이타미를 몰락하게 할 증거는 이미 모아뒀지만
결정타를 먹일 타이밍을 재고 있는 중입니다.



이타미의 부인인 장녀 토와입니다.
병으로 움직이기도 힘든 당주 어머니를 모시고 있으며,
이타미의 더러운 성격에도 불평 한 번 토로하지 않는 정숙한 아내죠.
주인공은 토와를 동경하고 있습니다.

다만, 너무 고지식한 스타일이라 답답합니다.
이타미의 악랄한 계략이 눈앞에 닥친 상황에서도
자신이 어떻게든 설득해서 막아보겠다 이런 소리만 하고 있죠.
이타미는 설득이 통하는 상대가 아니고
토와 말 들으면 백퍼센트 망하는 엔딩입니다.

이 캐릭터의 해피 엔딩이 없다는 점이 많은 분들에게 아쉬웠던 것 같습니다.
메인 악역의 부인이었으니 후일담 정도는 저도 궁금한데
제대로 묘사된 스토리는 없었죠.



차녀인 시에입니다.
안하무인에 오만한 성격으로
자매 중에서 유일하게 후계자 자리에 큰 욕심을 갖고 있죠.

뭣도 모르고 욕심만 많은 아가씨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날카롭고 상당한 능력이 있습니다.
다른 자매들에 비해 후계자가 되기에 적합한 건 사실입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을 싫어하지만,
주인공에게 심한 일을 당한 이후에도
손익을 계산하여 주인공과 손을 잡는 냉철한 모습도 보여줍니다.



막내인 키라라입니다.
어린 애같은 성격에 무방비합니다.
주인공을 '오빠'라고 부르며 
친근하게 해변에서 놀아달라고 떼를 쓰죠.

사실 그런 태도는 모두 계산된 행동입니다.
속으로는 주인공이 믿어도 되는 인물인지 계속 관찰하고 있죠.
유산에 욕심이 있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위기상황에서 제 앞가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두뇌는 갖추고 있습니다.



삼녀인 안리입니다.
과거 어떤 사건때문에 기억상실에 걸렸던
침착하고 조용한 소녀죠.

다른 캐릭터들에 비해 역할이 애매했기 때문에
저는 이 캐릭터야말로 스토리의 중심일 거라고 짐작했습니다.


안리의 캐릭터가 가장 잘 드러나는 스토리는 ㄴㅇ루트입니다.
약에 취해서 주인공이 여성 캐릭터들을 습격하고 다니는 스토리죠.

주인공은 키라라를 덮친 이후에 방에 감금해둡니다.
안리는 주인공에게 키라라가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는데
사실대로 대답할 수는 없으니 저택 밖에서 봤다고 대답하죠.



한참 후에 주인공 눈앞에 다시 나타난 안리입니다.
빗속에서 계속 키라라를 찾아다녔던 것 같습니다.
게다가 말하는 걸로 볼 때,
주인공이 거짓말을 했다는 것과
키라라가 주인공 방에 있는 것을 이미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은 공포에 질려서 도망가죠.



주방에 가서 부엌칼로 위협해 보지만 택도 없습니다.
겉보기와 달리 무지막지한 힘을 갖고 있고, 주인공은 순식간에 제압당합니다.

중요인물일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요.
실제로 플레이해 보면 정말 엄청난 공포입니다.
주인공에게 켕기는 점이 있기 때문에 더더욱 무서워요.
진짜 악역인 이타미조차 명함도 못 내밀 공포입니다.



척보기에는 악랄하고 비열할 뿐, 무능해 보이는 이타미는
그래도 악역으로서 포스가 없는 건 아닙니다.

일단 그릇이 작은 인간인 건 맞습니다.
카라사와가의 재산을 독차지하려는 수법도
유괴, 감금, 약물 같은 치졸한 방법입니다.
마침, 가족들이 모여있는 무대가 외딴 섬이었기 때문에 통하는 방법일 뿐이지
그다지 대단한 계획이라고는 할 수 없죠.

그래서, 주인공도 다소 방심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타미의 부정행위에 대한 증거를 모았음에도 불구하고,
결정타를 먹일 시기를 간만 보고 있었죠.
이타미가 감금 작전을 실행하기 직전에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결과를 알고 있는 저에게는 굉장히 답답한 주인공이지만
이해를 못할 건 아닙니다.
이타미는 그만큼 허술한 악당처럼 보이니까요.



하지만, 이타미는 단순히 비열하고 잔혹한 것뿐만 아니라
의외로 치밀함도 겸비하고 있는 악당이었습니다.

주인공의 정체는 진작에 간파하고 있었고,
배신을 계획하고 있다는 것도 다 알고 있었죠.
사건 당일 주인공에게 알려준 시점보다 훨씬 전에 섬에 도착했으며,
외부로 연락하지 못하도록 통신을 끊어 버렸습니다.
통신을 끊기 직전에 외부와 연락해서
경찰이 아무 움직임이 없다는 보고까지 받는 철저한 모습까지 보여줬죠.

통신회선을 완전히 망가뜨리지 않고, 
언제든지 수리가 가능한 상태로 둔 점은 실수였지만
이런 방심은 허용 가능한 범위입니다.
워낙, 압도적인 우세였으니까요.



이런 위기를 해결함에 있어 주인공의 역할은 너무 없었습니다. 
그냥 주인공이 이타미에게 두들겨 맞고 정신을 잃은 상태에서
깨어나 보니 다른 캐릭터가 이미 다 해결했다는 결말이 되었죠.
주인공은 폼만 잡을 줄 알았지 이타미에게 철저히 당하고
반격도 제대로 못했습니다.



이렇듯 스토리의 가장 큰 문제점은 서스펜스 요소의 부족함입니다.
배드엔딩은 대부분 이타미가 깡패들을 이끌고 와서 섬을 장악하고
여성 캐릭터를 붙잡아서 ㄴㅇ하는 엔딩입니다.
주인공 혼자서는 어떻게 해 볼 수가 없는 재앙과도 같은 엔딩이죠.
이런 상황을 어떻게든 극복해내는 것이
이 게임의 메인 스토리일 것입니다. 

근데 게임 중반부까지 주인공은 여성 캐릭터들과 친목질만 하고 있을 뿐,
딱히 어떤 대책을 세우고 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큰 위기가 임박했는지도 모르고 방심만 하고 있죠.

다소 느슨한 분위기로 스토리가 진행되어 실망스럽지만,
그래도 스토리의 절정 부분에서는
이 거대한 위기를 어떻게든 극복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기대하게 됩니다. 
그렇게 '큰 거 온다, 큰 거 온다.'하면서 기다리고 있는데
정작 중요한 부분마저 날림으로 처리해 버린 거죠.

스토리 처음부터 끝까지 서스펜스적인 재미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 재미가 있는 척했던 낚시만이 있었을 뿐이죠.



총평하자면, 분위기만 잘 잡아놓고 스토리로 망치는
실키즈의 옛날 그 모습 그대로의 게임이었습니다.
원화가 때문인지 <미육의 향기>를 재밌게 하신 분들이
이 게임을 많이 찾았던 것 같은데,
많은 분들이 실망을 하셨었죠.

그래도 주인공이 자매들을 포섭하는 과정과
과정에 부수하는 H씬은 꽤 괜찮았습니다.
캐릭터들의 역할도 나름 잘 분배되었죠.

제가 기대했던 시리즈 방향성과 달랐던 것은 아쉬웠습니다만
1편과 2편에 비하면 모든 면에서 훌륭합니다.
오래 가지는 못했지만
실키즈가 옛 스타일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선언이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