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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3일 일요일

리뷰 : 갬블러 ~Queen's Cup~(1994/7/22, 퀸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도박게임같은 운이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게임은 난이도 설정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난이도가 너무 낮으면 시시하고, 너무 높으면 짜증나죠.

저는 도박 에로게의 경우는 조작이 좀 들어가더라도
다소 난이도가 높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다른 게임에 비해 H씬이라는 확실한 동기부여가 있기 때문에
조금 불합리하더라도 굴하지 않고 계속 도전할 수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게이머들의 실력은 천차만별이고
개개인의 실력에 일일히 난이도를 다 맞춰줄 수 없습니다.
그만큼 게임 난이도 조절이 힘들다는 이야기죠.
그래서인지 아예 난이도를 포기한 게임들도 존재합니다.



본 리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MISTY에서 발매한 <카지노폴리스 EXCEED JACK>이라는
게임을 먼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아는 한에서 도박 게임 역사상 가장 쉬운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파칭코 게임입니다.
수영장 회원권을 사기위해 파칭코를 열심히 돌리며 돈을 모으는 게임이죠.



수영장 회원권을 구입하면 그 이후로는 돈이 필요하지 않고
여성 캐릭터들과 이벤트를 감상하면 됩니다.

저는 파칭코를 해본적도 없고, 지금도 파칭코에 대해서는 전혀 모릅니다.
하지만, 그런 저조차 이 게임에서는 조금의 어려움도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수영장 회원권의 가격과 주인공의 소지금 때문이죠.
수영장 회원권은 10만엔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이 처음에 가지고 있는 돈은 12만엔으로 설정됩니다.
게임 시작하자마자 파칭코 안 가고 수영장으로 가서
수영장 회원권을 사면 게임 끝입니다.

이게 무슨 도박근절 공익광고 게임인가요?
행복은 파칭코에 있지 않고, 우리의 곁에 이미 존재하고 있다 이겁니까?
파칭코 한 번 안 가고 엔딩을 보는 게 가능한 파칭코 게임이라니
놀라운 난이도입니다.

게다가, 사실 그보다 더 쉽습니다.
파칭코 가서 2만엔을 잃고 나와도 수영장 회원권을 살 수 있으니까요.
난이도 설정이 굉장히 아쉬운 게임입니다.



퀸소프트에서 발매한 <갬블러 ~Queen's Cup~>이라는 게임을 한 번 봅시다.
이 게임은 경마 게임으로 역시 꽤 쉬운 난이도로 유명한 게임입니다.

주인공은 경마로 벌어먹고 사는 도박꾼 인생입니다.
어느 날, 주인공은 경마를 끊고 안정된 삶을 살기로 결심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자신의 동반자가 될 여성이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퀸즈'라는 클럽에서 여성을 만나기로 합니다.

다시 말해, 이 게임은 경마로 돈을 벌어서 클럽에 다니며
여성과 맺어지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게임입니다.
일단, 클럽에 먼저 가봅시다.



세 명의 캐릭터중 하나를 선택 가능합니다.
주인공은 초기 자금으로 10만엔을 갖고 있는데,
여성을 부르는 데 드는 돈이 2만엔이고
추가 술값으로 만엔, 3만엔, 5만엔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제 돈 아니고, 게임 주인공 돈이라지만 너무 바가지 아닌가요?
하룻밤 먹고 마시는데 이 정도 가격이라니 맛도 제대로 안 느껴질 것 같은데요.
5만엔짜리 술은 너무 비싸서 도저히 손이 가지 않습니다.
만엔짜리는 너무 체면이 떨어지니 절충해서 3만엔짜리 술을 주문하겠습니다.

첫날부터 총 5만엔이 지출되었습니다.
전재산의 절반이죠.



여대생인 쥬리입니다.
5만엔 지출한 것치고 별 이야기하는 것도 없습니다.
제가 실제로 이런 상황이었다면 얘기는 들리지도 않고 돈 생각만 나겠죠.


남은 돈이 5만엔밖에 없기 때문에 경마를 통해 돈을 버는 수밖에 없습니다.
경마장으로 향합니다.



저는 경마도 단 한 번도 해 본적도 없고, 잘 알지도 못합니다.
말에 대한 세부 스탯이 있는 것 같지만 무시하기로 하겠습니다.

인터넷 공략에 따르면 배당이 낮은 말 두 마리를 확인하고
그 두 마리 번호의 연승식에 올인하면 된다고 합니다.
잘 이해는 못 하겠지만, 일단 시키는대로 하겠습니다.
어차피 돈이 다 털렸을 때, 게임오버가 되는 건지 아니면
다른 이벤트가 있는 건지 궁금하기도 하니
바로 5만엔을 올인합니다.



말이 달려가는 장면도 나옵니다.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게 고작 두 판만에 5만엔이 189만엔이 되었습니다.

진짜 엄청 쉽네요. 주인공은 왜 이 좋은 걸 그만두려고 하는 거죠?
이보다 더 안정된 삶이 어디에 있습니까?
공무원하던 사람도 공무원 때려치고 경마에 올인해야될 판입니다.
좀 더 벌고 싶었지만, 소지금이 100만엔이 넘어가면
강제로 경마를 그만두고 클럽으로 가야되는 것 같습니다.



다시 클럽에 가면 어제 불렀던 쥬리만을 부르는 게 가능합니다.
쥬리를 부르는 비용이 2만엔이며
추가 술값으로 만엔, 3만엔, 5만엔이 들어갑니다.

지금 애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제가 가진 돈이 얼만데,
이걸 메뉴판이라고 갖다주는 겁니까? 더 비싼 거 없나요?
마음 같아서는 5만엔짜리 한 20개 주문해 버리고 싶은데
그런 커맨드가 없으니 일단 5만엔짜리 시키겠습니다.

생각해 보면, 어차피 제 돈 한 푼 안 나가는데 전날에는 약간 추태를 부린 것 같습니다.
2만엔 그거 조금 아껴서 어떻게 하겠다고 3만엔짜리 술 주문하고
참 쫌스러운 짓이었죠.



쥬리와 마찬가지로 또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마음에 여유가 생겨서 그런지,
전날보다 훨씬 대화가 재미있고 유익한 것 같아요.

근데, 대화가 다 끝나고 마지막에 주인공이 팁으로 100만엔을 덥석 줘버립니다.
지금 소지금이 180만엔인데 100만엔을 줘버려요.
아직 여유가 있기는 하지만, 100만엔이라는 액수를 보니
또다시 제 마음 속에 숨겨둔 쫌스러움이 튀어나올 것만 같습니다.

이렇게 팁을 주는 이유는 100만엔이 넘어가면
경마를 하지 못하도록 게임이 설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100만엔보다 소지금이 적도록 초과금을 팁으로 주는 방식입니다.



다시 경마장에 와서 돈을 벌어야 합니다.
사실, 첫날에 운이 좋아서 고작 두 판만에 땄을 뿐,
그렇게까지 게임이 쉽지는 않습니다.
배당이 낮은 말이라고 무조건 이기는 시스템은 아니에요.

이 게임이 진짜 쉬운 이유는 바로 '배당률' 때문입니다.
위의 짤을 보시면 배당이 낮은 말은 5번말, 6번말, 7번말입니다.
1등, 2등은 저 세 마리가 할 확률이 가장 높겠죠.
근데, 배당을 보세요.
5,6번 연승이 12.2배, 5,7번 연승이 14배, 6,7번 연승이 11.9배입니다.
세 항목에 모두 돈을 걸어서 두 개는 잃고 하나만 딴다고 해도
3~4배의 이익이 생기는 겁니다.

돈을 걸 수 있는 상한선은 99900엔입니다.
돈이 어느정도 있으면 99900엔을 잃어도 경마를 다시 할 수 있죠.
표본이 많았던 건 아니지만 제 경험으로 미루어 볼 때,
제가 사용한 방식대로만 하면 3~4번에 한 번은 이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번 이기면 못해도 7배를 딸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돈을 딸 때까지 계속 하면 무조건 이득을 보는 배당률입니다.
기대값 자체가 그렇게 되어 있어요.
여성 캐릭터에게 팁으로 100만엔이고 200만엔이고 부담없이 던져줄 수 있습니다.
경마장에서 다 지원을 해주니까요.



처음에 말했듯이 저는 다소 어려운 난이도를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이 게임의 쉬운 난이도는 의외로 마음에 들었습니다.
이렇게까지 졸부 마인드로 게임을 해 본적이 없어요.
경마 게임이 없이, 소지금같은 시스템이 없거나 애초에 초기 소지금이 많았다면
돈 쓰는데 별 감흥이 없었겠죠.
반대로 경마 게임이 너무 어려웠다면 돈을 흥청망청 쓰기 아까웠을 겁니다.
쉬운 난이도의 경마게임으로 돈을 쉽게 버니 졸부 마인드가 생겨난 거죠.

이걸 노리고 게임 디자인을 한 거라면,
정말 절묘한 방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기왕이면 100만엔 팁같은 것도 한꺼번에 퉁칠 게 아니라
사용할 수 있는 항목을 다양하게 만들었다면
좀 더 졸부처럼 돈을 물쓰듯 쓰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 다음에는 클럽에 자주 드나들면서 데이트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캐릭터당 스토리가 길지도 않고 별 내용도 없지만
캐릭터는 귀엽기 때문에 나름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작품입니다.



총평하자면, 제작자의 의도가 과연 이것이었나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재미있게 한 작품입니다.
굳이 졸부 체험이 아니라도
캐릭터가 귀엽고 대화 자체도 잘 짜여져 있는 편이기 때문에
나름 즐길 수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만, 경마 자체의 완성도는 낮은 편입니다.
경마를 잘 아시는 분들이 플레이하시면 오히려 실망할 것 같군요.
경마에 큰 관심이 없고 미소녀에 관심있는 분들이 플레이해야할 게임입니다.

댓글 6개:

  1. 매번 재밌는글 감사드립니다
    매주 일요일밤마다 생각나서 오게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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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nknown //

    재미있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대한 일요일 저녁에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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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이렇게까지 졸부 마인드로 게임을 해 본적이 없어요.'
    이 대목에서 너무 웃었네요ㅋㅋㅋㅋㅋ

    올해들어 제가 웃은 적이 드물었는데 백개먼님 블로그를 안 찾아서 그랬나보네요 항상 재밌는 리뷰 감사합니다ㅋㅋㅋ
    도박게임을 그렇게 많이 리뷰하신 적 없는것같은데 이렇게 진심으로 몰입하셔서 쓴 리뷰는 처음 읽는 것 같아요ㅋㅋㅋ 개인적으로 이런 종류 게임은 잘 못해서 예전에 괜찮다고 하신 엘프사 마작도 약간 깔짝대다 말았는데 글을 너무 재밌게 쓰셔서 갬블러는 좀 해보고싶네요..

    올해들어 참 이리저리 세상 분위기도 흉흉한데 늘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행복한 주말 되세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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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dkle p//
    이 시기에는 보드게임&H씬 구성의 게임이 많았지만
    마냥 H씬 위주의 게임이라 리뷰할 내용이 거의 없어서
    일부러 스킵하고 있습니다.
    리뷰할 내용만 없을 뿐,
    게임 자체는 어중간한 스토리게임보다 훨씬 재미있습니다.
    갬블러는 이런 류 게임으로는 다소 어중간한 편이기 때문에
    도박게임으로는 비추천입니다.

    다른 좋은 게임을 찾아서 리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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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표현이 너무 재밌어요 ㅋㅋㅋ 게임을 마구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지만 일어의 난관을 뚫을 수 없는지라;; 정독만 하구 갑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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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Unknown//

    에로게는 텍스트 위주라 일본어를 몰라도 재미있게 할 수 있는 게임이 많이 없죠.
    좋은 게임들이 우리나라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는 점이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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