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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5월 10일 일요일

리뷰 : VIPER 시리즈(소니아)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는 에로게 CG가 움직이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는 게 뭐 어때서?'라는 생각을 아주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죠.
그렇다 보니, 사실 소니아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지 않습니다.
오랜 역사와 많은 게임을 가지고 있는 소니아 리뷰는
이번 한 번에 몰아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소니아는 90년대에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에로게를 만들던 회사였습니다.
자신들의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었죠.
애니메이션 에로게하면 소니아였고, 소니아하면 애니메이션 에로게였습니다.

97년 이전까지는 그랬습니다만 윈도우 시절로 들어서면서 귀신같이 몰락했습니다.
망한 이유로는 포맷 적응 실패, 윤리위원회와의 분쟁, 스텝들의 퇴사, 작품질의 하락, 경쟁사들의 대두, 방향성의 상실, 버그와 미완성 작품 발매, 데모버전 사기, 배송 실수 등등...
셀 수없는 분석들이 존재합니다.
이런 이유로 소니아는 2003년도에 거의 야반도주에 가까운 폐업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확실한 건, 소니아가 발매하던 게임을 순서대로 플레이해보면
누가 봐도 망할 수밖에 없는 흐름이었다는 겁니다.
모 위키에서 소니아와 바이퍼 시리즈에 대해 설명하면서
97년도 이후 시리즈부터는 '망했다'는 평가를 꼭 덧붙이는데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있을 수 없습니다.


저는 애니메이션 에로게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당연히 소니아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고로, 바이퍼 시리즈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거나
왜 망했는가를 굳이 분석하지는 않겠습니다.
그냥 두 작품정도만 뽑아서 살펴보도록 하죠.

리뷰에 들어가기에 앞서 유의하셔야 할 점은,
애니메이션 에로게에 대한 제 개인적인 호불호와 관계없이
소니아는 90년대에 상당한 화제성을 몰고 다녔던 회사라는 점입니다.
제가 다소 악평을 내리더라도,
소니아의 에로게는 그 화제성만으로도 충분히 성공했다고 볼 여지가 있는 거죠.

안타깝게도 소니아의 성공요인은 제가 그렇게 많은 점수를 주는 부분이 아닙니다.
오늘 리뷰는 평소보다 더 편파적이라는 걸 감안하고 봐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바이퍼 시리즈에서 가장 성공한 작품인 <VIPER CTR ~아스카~>입니다.
97년도에 발매된 작품이죠.



초기 옴니버스 시리즈 중에서 성공적인 캐릭터였던 아스카를 소재로 한 후일담입니다.
아스카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는 <VIPER V10>의 '노던 라이트'라는 에피소드인데
짧고 별볼일 없는 스토리입니다.

이름도 제대로 안 나오는 검도부 '주장'이 주인공입니다.
아스카라는 다른 학교에서 온 검도소녀와 검도 대결에서 패배한 주장은
일주일 후에 재대결을 신청합니다.

열심히 연습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력적으로는 한참 떨어지는 주장이었으나
재대결에서는 운좋게 승리하게 되고,
승리한 주장은 사전에 약속한대로 아스카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를 얻게 됩니다.
진짜로 변태적인 짓을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제대로 된 H씬도 안 나오는 배드엔딩이고
신사답게 아무 짓도 안 해야 합니다.



아무튼 그로 인해 주장에게 좋은 감정을 품게 된 아스카가
주인공과 사귀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그 후에 주인공과 아스카는 여러 번 재대결을 했지만
그 후로는 단 한 번도 주장이 이기지 못한다는 결말입니다.

<VIPER V10> 에피소드 '노던 라이트'의 내용은 요약이라기 보다는 이게 전부입니다.
애니메이션을 이용한 H씬에 온 힘을 쏟는 VIPER 시리즈는
초기에는 더더욱 게임에 별 스토리가 없었죠.

하지만, 아스카의 캐릭터는 너무나도 잘 뽑혔습니다.
검도 호구를 벗는 단 한 장면만 보고도 이 캐릭터는 대박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였어요.
아무튼 이렇게 사귀게 된, 주장과 아스카의 후일담을 다룬 작품이
<VIPER CTR ~아스카~>인 겁니다.



VIPER CTR에서도 아스카는 여전히 귀엽습니다.
노던 라이트에서는 단조로운 스토리로 인해 매력을 많이 보여주지 못한 아스카였지만
CTR에서는 오해와 질투, 고민 등 다채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아스카가 고민하는 이유는 주인공의 사촌동생 미키때문입니다.
일본에서는 사촌간의 결혼이 가능하죠.

주인공은 미키와는 절대 그럴 마음이 없다고 부인하지만
지낼 곳이 없는 미키는 주인공과 단칸방에서 같이 살기까지 합니다.
아스카는 꿈에서 주인공과 미키의 H씬까지 볼 정도로 걱정을 하지만
둔감한 주인공은 그런 아스카의 고민도 모르고 미키하고 놀러나 다닙니다.



한편, 아스카의 지인 중에서도 웬 이상한 남자가 등장합니다.
남자의 이름은 타케시입니다.

타케시는 아스카의 검도 후배로 등장하자마자,
'아스카씨는 강한 남자가 좋다더니 왜 이런 비리비리한 놈하고 사귀고 있냐?'는
반박할 수 없는 팩트 공격을 시전합니다.
타케시는 주인공에게 아스카와 사귈 자격이 있는지 시험하겠다며 결투를 신청합니다.



결투날이 다가옴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연습할 생각이 없는 주인공을 본 아스카는
주인공이 정말로 자신을 사랑하는지 의심하게 됩니다.
안 그래도 사촌동생 미키의 등장으로 흔들리던 마음이 더욱 흔들리는 거죠.
주인공은 그런 아스카의 마음은 전혀 모릅니다.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타케시는 주인공과 달리 입만 산 남자가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실력도 없는 주제에 연습마저 게을리하던 주인공은 처절하게 패배를 맛보게 되고
타케시는 '넌 역시 아스카씨랑 사귈 자격이 없었어.'라고 말하죠.
시합 때는 죽도로 때리고 시합 끝나고는 팩트로 한 번 더 때립니다.

패배에 크게 상심한 주인공은 덜 쳐맞았는지 하지 말아야 할 말까지 내뱉게 되는데
'애초에 내가 사귀자고 한 적 없고, 아스카가 매달려서 사귀어 준 거다.'라는
폭탄 발언을 내뱉습니다.



누가봐도 주인공하고 아스카는 급이 다른데 개소리나 지껄이는 주인공을 보며,
아스카는 충격을 받고 타케시와 떠나고,
검도 후배들까지 등을 돌렸으며,
속터지며 지켜보던 저조차 주인공을 버리기로 결심했습니다.



다행히도, 미키의 거짓말 섞인 중재에 의해 주인공은 금방 제정신을 차리게 되고
타케시를 찾아가 재대결을 신청합니다.



주인공은 아스카의 집으로 가서 사과하고 자신에게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하지만
아스카는 이제 더 이상 주인공을 믿지 못하겠다고 이야기합니다.

과연 주인공이 아스카를 설득할 수 있을지,
실력차가 현격한 타케시와의 재대결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거기에 덧붙여 미키의 남은 스토리까지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이 남아 있지만
제 리뷰는 여기까집니다.



VIPER CTR은 캐릭터도 괜찮았고, 스토리도 무난했습니다.
90년대의 연애 애니메이션을 보는 기분으로 가볍게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을 보는 기분으로 플레이하는 게임이라기 보다는
그냥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곁다리에 쓸모도 없는 배드엔딩이 두 개 있었지만
그건 없어도 상관없는 내용이었죠.

심도있는 텍스트 묘사도 없고,
선택지에 의한 유의미한 분기나 멀티 스토리도 없고,
플레이어가 게임 내에 개입하거나 캐릭터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도 없다면,
이건 그냥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도 상관없잖아요?
제작하는 입장에서 무슨 이득이 있는지는 제가 잘 모르겠지만,
감상하는 입장에서는 애니메이션에 비해 아무 메리트가 없는데요.

그리고 이 게임은 애니메이션 게임치고 내용이 비교적 충실하기 때문에
플로피 디스크가 무려 40장이나 됩니다.
PC-98 에로게 중 가장 많은 플로피디스크 장수인 거죠.
게임 내용은 비디오 하나 보면 되는 분량인데 말이죠.
디스크 갈아끼우며 설치하는 시간만 한참을 잡아 먹습니다.
게임 플레이하는 시간과 비슷하게 걸리는 것 같아요.


아무튼 VIPER CTR은 나름 재미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90년대 스타일의 추억을 느끼는 기분으로
지금 플레이해도 무난한 게임이에요.



그 다음 소개해드릴 게임은 <VIPER F40>입니다.
97년도에 나온 게임인데 이번에는 PC-98이 아닌 윈도우용으로 나온 게임입니다.
소니아에서 나온 쓰레기 게임의 대표, 쓰레기 게임의 상징 등으로 통하는 게임인데
정말 억울한 평가가 아닐 수 없습니다.

쓰레기 게임인 건 맞지만, 사실 이 게임 이후에 나온 소니아 게임들은
VIPER F40보다 더 쓰레기입니다.
하지만, 이후의 게임들은 화제성이 떨어졌고 플레이한 사람도 상대적으로 적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은 VIPER F40이 대표적인 쓰레기 게임으로 통하게 된 거죠.
사실 VIPER F40은 소니아의 쓰레기 게임 중에서도
그나마 덜 쓰레기인 게임에 해당합니다.



주인공은 라이카라는 이름의 여성입니다.
예전에는 경찰에 속해 있었지만 퇴직하고 현재 직업은 사립탐정이죠.
그래서 경찰 조직에도 나름 인맥을 갖고 있습니다.
경찰은 현재 연쇄 실종 사건을 조사중인데
경찰서에 사건 조사를 중단하라는 협박문이 도착합니다.
물론, 경찰서에서 그런 협박을 받아들일 리 없으며, 그로 인해 비극이 시작됩니다.



라이카의 조수인 시라입니다. 경찰부장의 딸이기도 합니다.
착한 성격으로 모두에게 사랑받는 여성이었는데
경찰부장의 딸이라는 이유로 의문의 조직에 납치당하고 시체로 발견됩니다.

시라는 심장에 심각한 병이 있었는데
시라를 납치한 조직은 그 사실을 모르고 시라를 능X하려고 합니다.
결국 충격을 받은 시라가 사망하게 된 거죠.

주인공은 시라의 죽음에 눈이 뒤집히고 복수심에 불타오릅니다.



두 번째 희생자는 라이카와 친분이 있는 여경찰 리리아입니다.
경찰 동료인 마크와는 연인 관계입니다.
시라가 사망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리아의 자택에서 의문의 조직에 습격당합니다.
리리아는 죽지는 않았지만 의문의 조직에게 능X을 당하게 되고,
같이 있던 마크는 총에 맞은 시체로 발견됩니다.

이 사건에서 경찰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현장 상황이 마치 리리아가 마크를 총으로 쏜 것처럼 사건이 조작되어 있는데
리리아가 누군가에게 습격당했다는 증거는 전혀 인멸되지 않고
그냥 남아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이상한 사건 현장을 본 라이카는
리리아를 습격한 조직과 마크를 살해한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닐까하는 가설을 제시합니다.



이 게임의 스토리는 상당히 반전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경찰측 등장인물들이 사실은 악당이었던 거죠.

여러 반전이 있지만 중요한 반전은 살해당한 경찰 마크가
연쇄 실종 사건에 연관되어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시라를 납치하고 죽음에 이르게 만든 조직도 사실 마크의 사주를 받았던 거죠.

게다가 마크에게는 리리아 이외에 이미 애인이 있었습니다.
리리아와 사귀는 척했던 이유는 정보를 빼내기 위해서 였죠.
마크는 리리아와 헤어지기 위해서 길거리 양아치들에게
리리아 자택을 습격하라고 사주했던 겁니다.
리리아는 습격당했고, 마크는 계획대로 충격받은 리리아에게 헤어지자고 이야기합니다.

충격을 받은 리리아는 마크를 그대로 보낼수는 없다고 생각했고,
마침 총이 옆에 있었기 때문에 마크를 쏴버립니다.
조작이 아니라 마크를 쐈던 것은 진짜로 리리아였던 거죠.
마크는 헤어질 계획으로 습격작전을 결행했지만
자신이 살해당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을 겁니다.



VIPER F40은 말씀드린대로 상당히 비판을 많이 받았던 게임입니다
과격한 노선에 대한 비판도 있었고,
등장 캐릭터에 비해 의외로 빈약한 H씬 분량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가장 비판받아야 할 부분은 스토리인데
일단 반전을 너무 과도하게 사용한 문제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문제점은 반전에 대한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점이었죠.

마크는 리리아와 '헤어지기 위해서' 양아치들에게 자신들을 습격해달라고 의뢰했고,
리리아는 '버림받기 싫어서' 마크를 쏴 죽였습니다.

원인과 결과가 연결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확 와닿지는 않습니다.
VIPER F40에는 이외에도 반전이 많았지만 전부 이런 식입니다.
반전에 대한 복선과 설명이 부족해요.

세세한 설명없이 게임에 임팩트있는 장면만 담으려고 하다 보니,
등장인물들의 행동이 붕붕 떠버립니다.
'얘네 왜 이래?', '얘는 왜 갑자기 이런 일을 당해?'하는 의문이
게임 끝날 때까지 시원하게 해소되지 않아요.


그러면 왜 VIPER F40에는 이런 세세한 설명이 부족할까요?
제 진단으로는 이 게임이 애니메이션 게임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애니메이션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 중 가장 큰 이유는
애니메이션 게임은 애니메이션에 많은 비용을 투입하는 나머지
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다른 요소를 소홀히 한다는 점입니다.

VIPER 시리즈 말고 다른 애니메이션 게임도 대부분 비슷한 문제점을 공유합니다.
애니메이션 게임은 다른 에로게보다 분량을 늘리기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임팩트 있는 장면만을 우겨 넣고 세세한 설명은 빼버리는 거죠.
나중에 플레이해 보면, 스토리는 충격적이지만
등장인물들은 죄다 밑도 끝도 없이 행동하고 있습니다.



총평하자면, 소니아를 비롯한 애니메이션 게임들은
언제나 작품성에 비해 높은 관심을 받고 있고,
그것만으로도 제작사 입장에서는 가치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처음에 말씀드린 것처럼 애니메이션 게임에 대해 오랫동안 비판적인 입장입니다.
그 때문에 게임의 문제점을 '이게 다 애니메이션이기 때문'이라고
편견에 따른 결론을 내리기도 합니다.
제 결론이 공평하다고는 저 스스로도 말하기 힘들군요.

오늘 말씀드린 부분 이외에도 애니메이션 게임을 싫어하는 이유가 많은데
그건 다른 게임 리뷰에서 이야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튼 관심있는 분들께는 VIPER CTR을 그나마 추천합니다.
바이퍼 시리즈 중 가장 즐거운 마음으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입니다.

댓글 3개:

  1. 이런겜은 연출같은거에 올인해서 정작 중요한게 텅텅 빈 기분이네요 de fana 같은 비슷한게임들도 스토리가 너무짧다던지하는 문제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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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Unknown//
    바이퍼시리즈는 동시대 비슷한 부류의 게임보다 충실한 편인 건 틀림없는데
    저에게는 그게 이정도인가 하는 생각밖에 안 드네요.
    제가 중요시하는 부분과 관점이 달라서 아쉬운 평가밖에 내릴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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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np21//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CTR정도만이 지금 플레이할 수 있는 수준이라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활용도라도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 인기있는 시리즈가 될 수 있었겠죠.
    제가 지향하는 관점과는 조금 다른 시리즈지만 인정할 부분이 있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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