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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7일 일요일

리뷰 : 첫사랑이야기(1992/12/15,게임 테크노폴리스)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2년도에 발매된 <첫사랑 이야기>입니다.
육성+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죠.



플레이를 시작하면 게임은 플레이어의 첫사랑에 대해 물어 봅니다.
첫사랑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중 언제였냐고 물어보죠.
초등학교 시절을 선택하면 초등학생이 주인공이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 게임은 야한 CG나 H씬이 없는 게임이니까요.
순수하게 연애 게임입니다.



아무튼 주인공과 첫사랑했던 소녀에 대해 설정을 완료한 후 게임이 시작됩니다.
과연 이 게임에서는 어떻게 애틋한 첫사랑의 스토리를 보여줄까요?



...사실 이건 첫사랑 이야기 CG가 아닙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컴퓨터 게임을 실행하겠냐'는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면
<전뇌천사>라는 컴퓨터 게임이 실행됩니다. 극중극인 거죠.

게임 테크노폴리스에서는 첫사랑 이야기 발매 후,
1년뒤에 <전뇌천사>라는 게임을 발매합니다.
처음에 저는 <전뇌천사>의 체험판이라도 들어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전뇌천사>의 기승전결이 전부 들어가 있어요.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첫사랑 이야기의 극중극 <전뇌천사>'
-> '해당 <전뇌천사>를 기반으로 한 만화를 테크모폴리스 잡지에서 연재'
-> '해당 만화를 기반으로 한 제대로 된 <전뇌천사> 발매'
대충 이런 흐름입니다.

요약하자면, 게임 내에 다른 게임이 하나 통째로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첫사랑 이야기와는 스토리상 큰 관계없어 보이는 게임이 말이죠.
심지어 CG도 <전뇌천사>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대체 왜 첫사랑 이야기에 이런 걸 넣어 놓은 걸까요?



아무튼 <전뇌천사>가 끝나면 드디어 첫사랑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부모님에게서 갑작스럽게 3개월 후에 이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인공은 고민 끝에 3개월동안 노력하여
그동안 짝사랑했던 첫사랑의 여인에게 고백하기로 합니다.

이 게임의 컨셉은 '첫사랑 성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육성'하는
자기 계발 시뮬레이션입니다.
공부와 운동을 해서 자신에 대한 평가도 높이고 
첫사랑과 만나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며 호감도도 올리는 겁니다.
컨셉 자체는 꽤 괜찮습니다.

게다가 이 게임의 기본 컨셉은 
전설적인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두근두근 메모리얼>과 흡사합니다.
발매일로 살펴 보면 첫사랑 이야기가 1년 이상 앞서죠.
어쩌면 첫사랑 이야기는 <두근두근 메모리얼>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전설적인 미연시로 회자되고 있는 반면에
첫사랑 이야기는 다들 존재조차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뿐만아니라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바닥을 쳐요.

결정적인 문제점은 게임이 재미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내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육성 선택지를 통해 주인공의 능력치는 왔다갔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어요.
지루한 정도가 아니라 제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사실 옛날 게임에는 이런 식으로 별 내용없는 게임이 여럿 있었습니다.
플로피 디스크때문에 게임 볼륨에 현실적인 제약이 많이 걸리던 시기였죠. 
하지만, 이 게임이 용서가 안 되는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첫사랑 이야기보다 CG도 더 많은 <전뇌천사>가 게임 내에 통째로 들어있다는 겁니다.
본편은 심각하게 부실한데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요.

게임은 부실한데 발매는 해야겠으니 개발중이던 다른 게임하고 합친 것 같습니다.
확증은 없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밖에 안 보여요.
첫사랑 이야기를 구매한 사람들은 죄다 속았습니다.
사실은 <전뇌천사>를 구입한 셈이에요. 대놓고 사기를 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PC엔진으로 이식도 되었습니다.
여러 이벤트가 추가된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전뇌천사>가 여전히 들어 있습니다.



98년도에는 속편으로 <속 첫사랑 이야기 ~수학여행~>이 발매되었습니다.
PC판으로는 발매된 적이 없으며
가정용 게임기 PC-FX, 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새턴의 세 가지 기종으로 발매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리뷰의 진주인공입니다.

이 게임은 첫사랑 이야기와 달리 인지도가 있는 편입니다.
쓰레기 게임으로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고,
일본 위키에도 쓰레기 게임이라는 평가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다른 평가로는 '<두근두근 메모리얼>의 아류'라는 이야기가 있죠.
말씀드렸다시피 사실은 첫사랑 이야기가 먼저입니다.


이 게임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자연스러운 설정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스케쥴을 짜서 자기 계발을 하는데
그걸 수학여행 도중에 하다 보니 버스 안에서 운동을 하고,
문화유산 앞에서 독서를 하는 거죠.
사실 이건 단편적인 비판에 불과합니다.

이 게임의 기본 컨셉은 
'일상에서 벗어난 수학여행에서 평소와 다른 첫사랑의 그녀와 친해진다'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매력적인 컨셉입니다.
근데 게임은 수학여행동안 '주인공을 육성하여' 
수학여행이 끝난 이후에 고백을 하는 방식입니다.

첫사랑이 무슨 벼락치기로 되는 건가요?
일주일동안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얼마나 효과를 보겠습니까?
게다가 독서실이나 헬스장에 틀어 박혀서 하는 것도 아니고
버스나 숙소에서 틈틈히 하는 건데 이게 되겠냐고요.

게다가 기적적으로 일주일만에 효과를 봤다고 칩시다.
근데 설령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해도 수학여행 도중에 중간고사라도 보나요?
자신의 발전을 어필할 타이밍이 없잖아요.

여러분이 수학여행을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껏 수학여행 왔는데 불국사나 첨성대 앞에서 누가 책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학생에 대한 평가가 조금이라도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나요?
집단따돌림 안 당하면 다행이죠.

이런 점이 부자연스럽다는 겁니다.
수학여행에서 첫사랑과 맺어지겠다면
대화를 하거나, 배려를 하거나, 특수한 이벤트가 벌어지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하지만, 그 짧은 기간동안 자기 계발은 아니잖아요.

전작의 '첫사랑 성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육성'하는 컨셉은 괜찮았습니다.
속편의 '일상에서 벗어난 수학여행에서 평소와 다른 첫사랑의 그녀와 친해진다'도 좋아요.
근데 왜 그 두 개를 합치는데요.
기획 과정에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아무도 못 한 건가요?



이런 설정들은 억지로 무시하고, 일단 게임을 살펴 봅시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는 각 세 명씩
그리고 대학생 시절에는 한 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절에는 소꿉친구 타카세 유카가 있습니다.
플스판과 새턴판에는 유카의 동생도 추가됩니다.



오프닝 영상에서 보면, 유카는 틀림없이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주인공은 유카에게
'내 첫사랑이 성공하도록 응원해 줘.'라고 부탁하죠.

속마음을 속인 채로 주인공을 지원하는 유카는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주인공이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끊임없이 응원해 주고,
이벤트에 관련된 중요한 힌트도 제공합니다.
심지어 돈도 빌려 줍니다. 아마도 무기한, 무이자로요.



유카의 존재는 이 게임의 결정적인 한 방이었습니다.
스토리마다 성장하는 캐릭터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스케쥴 시스템을 화사롭게 만들어 주기도 했고,
동떨어진 각각의 스토리를 한 데 모아주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모든 개별 스토리는 사실 이어져 있으며,
주인공은 여러 연애를 도전해봤지만 번번히 실패해 왔고,
수많은 실패 끝에 결국은 소꿉친구 유카와 이어지게 되는,
사실은 '이것은 유카의 첫사랑 이야기였다'는 반전까지 머리 속에 그렸습니다만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이었죠.

실제로는 각 시대별 캐릭터를 전부 공략한 후에 
각각의 유카 스토리가 열립니다.
초,중,고,대학생 별로 유카의 스토리는 총 4개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능력치와 소유하고 있는 아이템에 따라서
이벤트가 일어나기도 하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달라집니다.
또한 계속 플레이해 보니 공략순서, 회차 플레이 때문에 이벤트가 달라지기도 하고,
랜덤으로 이벤트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으로는 이벤트를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이벤트를 찾는 방법이 굉장히 어려운데
유카가 힌트를 주지만 그래도 부족합니다.
변수가 많아서 대체 어떻게 해야 못 본 이벤트를 찾을 수 있는지
짐작하기도 힘들어요.
그래도 이벤트를 전부 보지 않아도 웬만하면 해피 엔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고생해서 100%를 채울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캐릭터가 다양한 것도 이 게임의 장점입니다.
같이 수학 여행을 간 클래스메이트뿐만 아니라,
수학여행지에서 만난 다른 학교 학생도,
초등학생 주제에 열 살 연상의 교생도,
중학생때는 현지에서 만난 연상의 여인도, 
고등학생때는 수학여행 버스 가이드도,
대학생으로 해외여행을 나갔을 때에는 외국인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스케쥴에서 '견학, 학습'을 선택하면
각각의 유적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배경CG도 잘 만들어 현장감을 살려주죠.



호감도가 오르면서 스탠딩 CG가 변경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처음에는 무관심하게 뒤를 보는 CG입니다만
점점 뒤돌아 서서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변하게 되죠.



수학여행이 끝난 다음에는 고백타임입니다.
'고백한다'와 '고백취소'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250가지의 엔딩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큰 차이 없는 엔딩이 무수히 많을 뿐입니다.

다만 '고백취소'를 고르더라도 나름 다양하고 제대로 된 엔딩이 존재하고 있죠.
또한, 능력치를 충분히 높였다면 '고백취소'를 고르더라도 연인이 되는 경우도 있고,
능력치가 부족하면 '고백한다'를 고르더라도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캐릭터야 연인이 안 되면 안 보면 그만입니다.
실제로도 첫사랑이었던 여성을 먼 훗날 우연히 만나서 인사한다거나
그냥 주인공을 기억 못한다거나 하는 엔딩도 있죠.
하지만, 소꿉친구 유카 스토리에서 '고백취소'를 고르면 
유카가 빡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급식도 새모이만큼 퍼주고 앞으로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총평하자면, 첫사랑 이야기는 아이디어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게임일 뿐만 아니라
아예 다른 게임과 합쳐 사기를 친 최악의 게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속 첫사랑 이야기같은 경우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괜찮은 점이 많습니다.
설정이나 시스템에서 큰 단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훌륭하고
특히 소꿉친구 유카의 캐릭터가 좋아요.

저는 소꿉친구 캐릭터가 좋습니다.
많은 게임에서 매력적인 소꿉친구 캐릭터를 많이 봐 왔죠.
유카의 캐릭터 자체가 다른 캐릭터와 특별히 구별되는 매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초, 중, 고, 대학교의 스토리를 단계적으로 거치며
정말로 소꿉친구와 함께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것만큼은 이 게임 이외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이 게임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벤트 100%를 이 악물고 보겠다는 치열함만 없으면
유카만 바라 보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최고 중의 최고는 아닐지라도 
쓰레기 게임은 과언이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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