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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월 29일 일요일

리뷰 : 란스 퀘스트(1)(2011/8/26,앨리스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저는 언제나 태양은 높이 뜨면 내려갈 일만 남았고,
달은 차면 기울며, 만물은 극에 이르면 쇠한다는 사상을 갖고 있습니다.
소설이든, 만화든, 에로게든 극한의 명작을 보게 되면 다음 편을 기대하기 보다는
그것을 만든 작가나 회사가 이후로는 좀 부진하지 않을까 
오히려 걱정하는 마음이 들게 되죠.

제게 있어 <전국란스>는 극한의 명작이었습니다.
플레이했을 때 매우 만족스러웠지만,
그 만족감만큼이나 앨리스소프트의 앞날에 대해 걱정이 들었죠.
딱히 근거는 없었지만 그냥 제 성향이 그랬습니다.

그 후 얼마동안, 제 걱정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기간이나 정도에 이견이 있을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앨리스소프트가 옛날같지가 않다는 생각을 공유하던 시절이 있었죠.
저는 특히 앨리스소프트의 그런 부진을 심각하게 느꼈고
당시 플레이한 많은 앨리스소프트 게임들에 좋은 점수를 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아무리 앨리스소프트에 대해 실망을 거듭하더라도
그 실망감이 평생 지속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을 말이죠.

왜냐? 란스 시리즈가 있잖아요.
저는 앨리스소프트가 얼마나 부진하던지 간에
란스 8편을 플레이하는 그 순간,
앨리스소프트에 대한 제 불신은 눈 녹듯이 사라질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리고 <전국란스> 이후 4년이 지난 대망의 2011년에
저는 드디어 란스 8편, <란스 퀘스트>의 발매소식을 듣게 됩니다.



발매 전 데모영상으로 확인한 란스 퀘스트는 
그야말로 기대할 요소들로 가득한 게임이었습니다.



제가 선호하는 장르인 정통 RPG였으며,
제가 좋아하는 캐릭터가 상당히 많이 등장했습니다.
아마 7편에서 얼음덩이에 갇혀 버렸던 실을 녹여야 하니, 
8편은 스토리에 큰 진전은 없지만 인기 캐릭터들을 대거 등장시킨
올스타전, 팬디스크의 느낌으로 만들었을 것이라 예상했죠.
 


무엇보다 <귀축왕 란스>에서 살짝 맛만 보여줬던 
란스의 딸이 등장한다는 소식은 제 기대를 크게 높였습니다.
에로게에서 주인공의 딸은 치트키입니다. 근친물이 아니라면 말이죠.

데모영상이야 당연히 게임의 좋은 점만 보여주겠지만,
그걸 감안 하더라도 란스 퀘스트가 저를 실망시킬 이유 같은 건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오랫동안의 부진을 털어내고,
제가 다시 한 번 앨리스소프트를 신뢰하게 되는 날이 온 거죠.

그렇게 2011년 8월 26일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에로게에서 가장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앨리스소프트의
전설적인 걸작 란스 시리즈, 그 8편에 해당하는 란스 퀘스트는
과연 어떤 재미있고 감동적인 혼신의 역작이었을까요?



저는 이번 리뷰를 위해서,

란스 퀘스트 초기 버전
란스 퀘스트 매그넘
란스 퀘스트 최종 버전인 ver3.86

이 세 가지를 플레이했습니다.
각 버전의 세세한 특징에 차이가 있기 때문에,
제 기억이 섞였을 수도 있습니다.
혹시 제가 리뷰를 쓰면서 잘못 적은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양해 부탁 드립니다.

일단 저는 초기 버전을 위주로 리뷰하려고 합니다.
망치로 무쌍을 찍을 수 있는 그 버전이요.
이미 많은 보완을 거친 초기 버전을 위주로 리뷰를 하는 이유는
제가 당시 겪었던 엄청난 실망과 분노를 여기에 기록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게임의 기본 화면입니다.
아이템 상점을 이용할 수도 있고, 파티를 편성할 수도 있죠.
나중에 성을 하나 짓기도 하는데 그것은 나중에 살펴 보고
우선 퀘스트 항목을 살펴 봅시다.



퀘스트를 선택하면 퀘스트 목록이 뜹니다.
모든 이벤트는 여기서 퀘스트를 선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전투가 있는 이벤트든, H씬만 감상하는 이벤트든,
단순히 엑스트라 동료를 영입하는 이벤트든 말이죠.

이미 클리어한 퀘스트도 얼마든지 다시 선택할 수 있습니다.
퀘스트를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말이죠.
란스가 다시 동일한 퀘스트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플레이어가 다시 동일한 퀘스트를 하는 것뿐이죠.
란스는 이미 클리어한 퀘스트도 처음하는 것처럼 행동하고,
이미 죽은 캐릭터도 아무렇지도 않게 다시 등장합니다.

퀘스트의 재방송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클리어했냐에 따라 해금되는 퀘스트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고,
2번 선택하면 새로운 동료가 영입되는 퀘스트도 있습니다.



맵이 있는 퀘스트를 선택하면
고전적인 방식의 필드형 RPG가 시작됩니다.



하나의 전투에 나갈 수 있는 아군 캐릭터는 최대 다섯입니다.
적 몬스터도 최대 다섯이 등장하죠.

수십 캐릭터가 등장하는 게임에
싸울 수 있는 아군은 고작 다섯 명밖에 없습니다.
그렇다고 다섯 캐릭터만 열심히 키워서 클리어할 수 있는 게임이라면
그건 너무 시시하겠죠.
6편에서도 이런 경우가 있었는데,
그 때는 SP라는 개념으로 한 캐릭터가 싸울 수 있는 전투 수를 제한했습니다.



란스 퀘스트에서는 그것을 좀 더 전략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위해,
전투 수가 아닌 스킬 수를 제한했습니다.

위에 나온 매직은 단일 공격인 전격을 2개, 전체 공격인 전자결계를 2개,
그리고 약점 서치라는 보조 마법을 3개 갖고 있습니다.
전투 중에 단일 공격 두 번 날리고, 전체 공격 두 번 날리면
더 이상 공격할 수단이 없죠.
그리고 아무리 쉬운 퀘스트라도
이 정도만으로 클리어할 수 없으니 파티원을 교체해야 하는 겁니다.

이 아이디어의 골격 자체는 나쁘지 않았습니다만
이것이 많은 사람들의 짜증을 불러 일으켰던 시발점이었습니다.


일단 기본적인 스킬 횟수가 적어도 너무 적었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공격횟수 4번은 지나치게 적잖아요.
물론, 레벨업을 통해서 포인트를 모으고 
그 포인트로 스킬 횟수를 늘리는 방법이 있습니다만,
그걸 감안해도 횟수가 꽤 짜게 설정되어 있는 편이었습니다.

스킬 횟수가 너무 적어 전투 중에
비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단일 공격을 다 써버렸는데 적이 하나 밖에 안 남았다면,
단 하나의 적을 위해 전체 공격을 써야 하는 거죠.



여기에 화룡점정으로 '대기' 버튼까지 없습니다.
'대기'를 할 수 없으니 아무리 비효율적이라고 해도
스킬 횟수 한 번을 꼭 썼어야 했죠.

단일 적에 전체 공격을 써야 하는 경우는 양반입니다.
마법이 통하지도 않는 적에게 마법을 써야 하고,
모든 아군이 풀피인데도 회복 마법을 써야 하죠.
이런 상황 역시 전략적으로 풀어 보게 하려는
앨리스소프트의 의도는 이해가 가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는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짜증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스킬을 다 써버린 캐릭터는 교체를 해야 하는데,
교체 역시 무한히 되는 건 아닙니다.
퀘스트를 완료하면서 올릴 수 있는 '카리스마'라는 수치가 있는데
이 '카리스마'의 수치만큼만 교체가 가능합니다.

문제는 이 '카리스마' 수치도 굉장히 짜게 설정되어 있어
중반부에 캐릭터 교체가 크게 제한된다는 점입니다.
다양한 캐릭터를 활용하기 위한 교체 시스템인데
'카리스마'의 제한이 다양한 캐릭터 활용을 또 방해하고 있죠.
결국 버려지는 캐릭터가 많아집니다.

더 짜증나는 건, 전투 도중에는 멤버 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입니다.
스킬 횟수를 다 써버렸든, 아니면 HP가 떨어져서 기절했든 간에 바꿀 수 없어요.
해당 전투에서는 그냥 짐짝으로 대기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파티원 중 한 캐릭터가 짐짝이 된만큼 전투는 더 어려워집니다.
제한 턴이 지나서 경험치를 못 얻게 되거나,
아예 전투에서 패배해서 퀘스트를 실패하게 되죠.


이런 점들이 게임을 너무 귀찮게 만들고 있다는 겁니다.
스킬 횟수는 적은데 그마저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도 없고,
교체 횟수는 제한적인데 교체를 안 하면 더더욱 망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교체를 미리미리 한다면,
나중에 스킬 횟수가 모자라서 퀘스트를 실패하고
그럼 또 짜증이 나는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전투를 하다 보면 아군의 공격이 빗나갈 때도 있고,
던전을 탐험하다 보면 길을 잘못 들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설 때도 있습니다.
다른 RPG라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갈 수도 있는 경우지만,
이 게임에서는 그게 결국 스킬 횟수의 낭비가 되고, 교체 횟수의 낭비가 되고,
퀘스트 실패로 이어집니다.
RPG에서 별것 아닌 해프닝 하나하나에
다른 게임보다 더 많은 짜증이 누적되는 거죠.



사실 이 문제를 회피하는 간단한 방법이 있긴 있습니다.
바로 노가다를 열심히 하는 거죠.
레벨 높이 올려서 다 때려잡고, 스킬 횟수도 올려서 많이 공격하고,
카리스마 올려서 교체 쉽게 하면 간단히 해결되는 문제잖아요.

하지만, 그 방법도 이론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요구하는 노가다가 너무 많다는 점은 둘째치고,
시스템적으로 방해되는 사항이 많아요.

저는 카리스마를 높이기 위해 같은 퀘스트를 반복적으로 하다 보면,
그게 레벨도 높이고, 돈도 벌고, 아이템도 얻을 수 있고
그런 자연스러운 플레이 과정에서 나오는 노가다를 좋아합니다.
근데 그런 식으로 플레이할 수가 없어요.



맵에 놓여 있는 보물상자를 열기 위해서는 관련 스킬이 필요합니다.
관련 스킬이 없는 캐릭터가 보물상자를 열려고 하면,
성공확률은 고작 30%죠.
운을 믿고 30%에 도전했다가는 귀중한 보물들이 다 터져 나갑니다.



각 퀘스트에는 난이도라는 것이 존재합니다.
난이도보다 5 이상 레벨이 높은 캐릭터는 그 퀘스트에서 얻을 수 있는 경험치가 급감하죠.
위에 있는 '아이돌 마법사' 퀘스트의 난이도는 15인데
레벨 20 이상인 캐릭터는 저 퀘스트로 노가다를 해 봐야
레벨이 잘 오르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렇다고 저 난이도에 맞는 레벨의 캐릭터로만 파티를 짠다면,
위에서 설명한 스킬 횟수 부족하고 교체 횟수 부족하고 하면서 또 열받게 되는 거죠.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일제사격'같은 올인성 스킬을 가진 캐릭터로
퀘스트 시작 -> '일제사격'으로 경험치 얻음 -> 퀘스트 포기
이런 식으로 플레이하는 겁니다.
시간만 들일 뿐 에디터 쓰는 것과 다름 없는 
이런 노가다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게임 자체가 제대로 노가다하기에는 아다리가 잘 안맞습니다.


경험치, 돈을 얻으려는 노가다는 딱 그것만 노리고 노가다를 해야하고,
아이템을 얻으려고 하는 노가다는 딱 아이템만 노리고 노가다를 해야합니다.
퀘스트 실패를 하면 경험치와 돈은 얻을 수 있지만
퀘스트 동안 얻었던 아이템은 전부 사라지기 때문이죠.
괜히 자연스러운 플레이로 노가다하려다가
기껏 얻은 레어 아이템을 탈출구까지 도달 못해서 다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눈물 납니다. 진짜로요.



뭐, 이 외에도 짜증났던 포인트가 많기는 한데
생각나면 다음 리뷰에서라도 이야기하겠습니다.
어차피 리뷰 2편도 욕이 태반이에요.

소개해 드린 문제점의 대부분은 추가 패치를 통해 많이 수정이 되었습니다.
'대기'버튼도 생기고, 전투 중 교체도 생겼죠.
앨리스소프트가 멍청하게 까먹어서 그런 기능을 안 넣은 건 아닐 테고,
나름의 생각이 있었던 것 같지만 많은 게이머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추가 패치에서 개선했다는 건 실패를 인정한다는 뜻이겠죠.


아무튼 제가 이 게임을 기대했던 요소 중 하나 RPG는 
이런 이유로 크게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래도 이 게임에는 지금까지 란스 시리즈를 함께해 온 많은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설마 그런 검증된 캐릭터들이 실망스러울 일이 있겠습니까?
다음 리뷰에서 한 번 보도록 하죠.

댓글 2개:

  1. 란스퀘스트를 할 때는 겉보기와 달리 왤케 게임이 뻑뻑하지라는 인상만 있었는데 듣고 보니 이런 이유들로 인한 것이었구나 싶네요. 저는 기본적인 JRPG로의 맵 디자인이나 퀘스트 구조 자체가 어설픈 편이라고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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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feveriot//
    저는 드래곤퀘스트같은 고전 RPG를 좋아하기 때문에
    그런 부분에는 크게 불만이 없었던 것 같네요.
    약간 낡은 스타일이었다는 점은 동의합니다. 개성도 많이 부족했고요.

    그래도 제가 좋아하는 HP와 물약이 허용하는 범위에서 헤메는 스타일이었다면
    고전적인 감성을 좋아하는 제 취향에는 맞는 게임이 되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 시스템의 존재 이유는 이해하고
    앨리스소프트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이해하는데
    막상 게임을 플레이하면 재미보다는 불편함이 너무 많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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