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저에게 있어 가장 놀라운 사실은
리메이크가 살아 생전에 발매되었다는 겁니다.
솔직히 제 눈으로 못 볼 줄 알았거든요.
많은 사람들이 정말 오랫동안 기다려 온 리메이크로
리메이크가 된다는 이야기가 처음 나온 이후에도 한참 기다렸어야 했던 게임입니다.
어떤 분은 리메이크 발매 소식을 듣고 '또 나와?'라는 반응을 보이더군요.
옛날에 리메이크가 한 번 나왔던 걸로 알고 있었나 봅니다.
리메이크가 발매되면 리뷰해 봐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예상 못한 부분이 있어 리메이크에 관해 어느 정도 얘기할지는 아직도 고민 중입니다.
리메이크에 대해 고민하는 중에 구작에 대해 이야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타입문의 팬층은 엄청 두터우며,
타입문의 세계관은 매우 심도 깊은 설정으로 유명합니다.
개인적으로 <월희>나 <Fate/stay night>를 좋아하지만
저는 그 정도까지 강력한 팬은 아니에요.
리뷰를 쓸 때 여러 설정에 대해 어설프게 아는 척을 하지 않을 것이며,
어디까지나 에로게 및 비주얼 노벨 전반의 팬으로서
월희를 플레이하고 느낀 점을 이야기할 것입니다.
잘 아시는 분들이 보기에 잘못된 부분이 있더라도
너그러이 넘어가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2000년도에 발매된 월희입니다.
본래 동인 게임이었고, 그만큼 미흡한 점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인기를 끌었던 게임이었습니다.
복잡한 세계관과 설정,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어우러진 게임으로
수많은 파생작들이 나오기도 했죠.
전설의 17분할이나 '크큭, 선이 보인다', '이것이 사물을 죽인다는 것이다',
'당신이 한국의 시키인 것입니까.'등의 드립도 이쪽 세계관 작품에서 나온 드립입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선택지형 비주얼 노벨 게임입니다.
Leaf에서 에로게에 도입한 이후,
대다수의 에로게들이 비주얼 노벨 장르로 발매되었고
월희는 그 중에서도 Leaf의 스타일과 흡사하게 발매된 게임이었습니다.
특히, 스토리적으로 Leaf사의 <키즈아토>가 많이 연상되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월희가 발매되기 이전
<키즈아토>는 전기물 비주얼 노벨의 간판과도 같은 대표작이었는데
그런 작품과 흡사하다는 점은 이 게임의 평가를 깎아 먹는 요인이었죠.
지금은 월희에 비해 <키즈아토>를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별 문제 없어진 것 같기도 합니다.
초반 스토리부터 살펴 봅시다.
어릴 적 주인공인 토오노 시키는 사고로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사고를 당해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습니다.
의식 불명에서 깨어난 주인공의 눈에는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이상한 선들이 보이게 됩니다.
'직사의 마안'이라는 능력으로
과일칼로 선을 따라 살짝 긋기만 해도 침대가 동강이 나버리는
무시무시한 능력이죠.
다행히 입원 도중 뛰어난 마술사를 만나게 되었고,
그 마술사에게서 선이 보이지 않게 해 주는 안경을 받게 됩니다.
주인공은 건강의 문제 때문인지 가문에서 밀려나 다른 집에서 살게 되었지만
안경 덕분에 주인공은 평범한 인생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인공 설정이 참 매력적입니다.
당시에도 참신하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나와도 어디에 꿀리지 않을 독특한 개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고등학생이 된 주인공은 자신을 쫓아낸 아버지의 죽음을 듣고
다시 토오노 가문으로 복귀하게 됩니다.
토오노 가문의 당주는 여동생인 아키하로
저택에서 다른 사람들은 다 쫓아 냈다고 합니다.
주인공과 아키하, 그리고 메이드 둘만 저택에 남게 되었습니다.
아키하는 히스이라는 무표정 메이드에게 주인공을 돌보라고 시킵니다.
어릴 때 플레이할 때는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저 둘의 첫인상이 무서웠죠.
히스이말고 코하쿠 좀 붙여주지라고 생각했습니다.
명랑한 메이드 스타일로 삭막한 저택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죠.
아무튼 이런 캐릭터들과 약간 기괴한 사건도 있긴 하지만
문제없이 대저택의 생활을 시작하게 되는 주인공입니다.
그러나 며칠 후, 주인공은 어마어마한 사고를 치게 됩니다.
그런 주인공의 행복회로는 다음 날 등교길에서 바로 박살납니다.
주인공은 하교길에 금발의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뭔가에 홀린 듯이 그대로 집까지 미행합니다.
그리고 초인종을 눌러 여인이 문을 연 틈으로 들어가
자신의 능력으로 여인을 열 일곱 토막을 내서 살해해 버리죠.
주인공은 시체 토막을 눈앞에 두고서야 '내가 왜 그랬지'하고 자책합니다만
알지도 못하는 여성을 한참 미행해서 토막까지 내버렸는데
이걸 누가 우발적인 살인이나 충동적인 살인으로 보겠습니까?
이 정도면 비싼 변호사를 구할 게 아니라
판사를 매수할 생각을 해야 하는 수준입니다.
주인공은 공원에서 자책하다 정신을 잃게 되는데
눈을 떠 보니 저택의 침대입니다.
코하쿠가 발견해서 데려왔다고 합니다.
주인공을 돌보던 히스이의 이야기로는 주인공 몸이 진흙투성이이기는 했지만
피는 전혀 묻어 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인공이 생각해 보니 모르는 여성을 갑자기 죽일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아무래도, 토막 살인은 나쁜 꿈이었던 것 같습니다.
살해당했던 여인이 등교길에서 주인공을 기다리고 있는 거에요.
주인공은 당황해서 도망가지만 그녀는 여유있게 주인공을 쫓아 옵니다.
그녀의 이름은 알퀘이드로 정체는 흡혈귀였습니다.
그래서 열 일곱 토막이나 났음에도 사망하지 않았던 거죠.
이렇게 주인공은 최근 온 동네를 공포에 몰아 넣고 있는 문제인,
사람들이 피가 빨려 살해당한다는 연쇄 살인 사건과
기이한 흡혈귀 소동에 휘말리게 된 것입니다.
대략적으로 이 정도가 초반 도입부입니다. 멋지지 않습니까?
이후로 캐릭터들이 숨만 쉬어도 재밌을 수밖에 없을 것같은 훌륭한 스타트입니다.
우선 가장 눈에 띄는 건 부족한 그래픽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시대보정+동인게임보정을 고려하면,
그렇게 혹평할 부분은 아니라고 봅니다.
하지만, 20년이나 그래픽을 일신한 리메이크가 나오지 않았던 게임이었고,
명성은 높은 게임이다 보니
도전했던 많은 사람들이 장벽을 느꼈던 요인이었습니다.
특히 H씬에서는 힘을 주려고 노력한 모습은 보이는데,
정작 그 H씬에 좋은 평가를 내린 사람은 단 한 명도 보지 못했습니다.
안 되는 부분에 많은 CG를 할애하지 않고,
다른 부분 CG에 신경쓰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네요.
보이스가 없는 것에 아쉬워했던 사람도 있었지만
이것만큼은 어쩔 수 없는 부분이었죠.
당시에는 상업게임에도 보이스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았고,
지금 동인게임에도 보이스가 들어가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 정도 분량의 옛날 동인 게임에 보이스가 들어가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죠.
다만, 음악 파트도 취약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리하여, 그래픽, 사운드 면에서 불만족했던 의견이 많은 게임이었고
당대에도 도서로 나오면 모를까 PC게임으로서는 부족하다는 의견이 꽤 있었습니다.
시나리오가 아무리 매력적이라고 해도
미흡한 점이 너무 많아 그걸 모두 속이기에는 한계가 있었던 거죠.
사실 텍스트에 관해서도 비판이 없지는 않았는데
한국어 패치가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느끼기 힘들 수 있으나
게임에 오타나 문장 구성 등이 많은 지적을 받기도 했습니다.
시나리오 라이터인 나스 키노코의 문체 자체도 불호가 있는 편인데
월희는 초기 작품이다 보니 그런 점이 더더욱 드러났던 것 같습니다.
다만, 가격은 상업 게임에 비해 많이 저렴했기 때문에
여러 부족한 부분에 대해 변명의 여지는 있습니다.
동인 게임이라고 무조건 온건하게 볼 필요는 없지만
가격이 싸면 그만큼 기대도 줄여야죠.
<키즈아토> 리뷰에서도 이야기했던 적이 있는
선택지형 비주얼 노벨만의 특성을 잘 이용한 점은
게임으로서의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이야기하자면
선택지형 비주얼 노벨은 다른 매체와 달리
얼마든지 배드 엔딩을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좀 더 높은 긴장감을 줄 수 있습니다.
소설이나 만화에서는 작품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아무리 죽을 위기에 빠졌다고 해도 주인공이나 인기 캐릭터는 좀처럼 죽지 않습니다.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 남을 거라고 예측하기가 보다 쉽죠.
반면에 비주얼 노벨은 위기에 빠지면 그냥 죽여 버려도 상관없습니다.
사망은 배드 엔딩 중 하나일 뿐이고 스토리는 다른 루트에서 그대로 진행하면 되니까요.
그만큼 죽을 위기에 놓였을 때, 반전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거죠.
이 게임에서도 '이건 완전히 죽었다' 싶었을 때,
극적으로 살아나는 장면이 꽤 있었습니다.
좀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말도 안 되게 살아나는 장면이 있어서 아쉬웠지만요.
어떤 파트에서는 잘못된 선택지를 고른 후에도 당장 큰 사건은 터지지 않고
한참동안 평범한 일상을 보낼 수 있습니다.
게이머가 잘못된 선택지를 골랐던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도록
오랫동안 평온을 주면서 방심시키는 거죠.
그 후, 주인공이 갑작스러운 빈혈로 정신을 잃게 되고 밤 늦게 하교를 하게 됩니다.
다행히 이 게임의 오아시스와도 같은 존재, 코하쿠가 데리러 왔습니다.
하교를 해야 하는데, 갑자기 코하쿠가 이상한 방향으로 주인공을 데려 갑니다.
집으로 가야하는데 학교 계단을 올라가고 있어요.
코하쿠한테 물어 보려고 하는데 코하쿠는 어느새 사라져 있습니다.
그리고 갑자기 앞에 흡혈귀가 나타나 주인공을 죽여 버려 배드엔딩으로 직행하게 되죠.
선택지를 잘못 골랐다고 바로 배드엔딩을 주는 게 아니라
평온을 줘서 선택지를 골랐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 후,
그 평온을 하나하나 사라지게 하면서 긴장감을 높이는 방식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키즈아토>와 비슷한 전개로 흘러간 부분은 아쉬웠지만
여러 사건들을 활용해서 주인공이 자신을 의심하게 되는 과정은
<키즈아토>보다 더 발전시켜서 풀어냈죠.
다만, 기본적인 루트가 다섯 개나 되는데
몇몇 루트에서는 트릭이 사실상 중복되는 점이 아쉬웠습니다.
누구 루트에서 주인공이 범인이 아니라는 점이 이미 밝혀졌는데
다른 루트에서는 또 다시 주인공이 다시 범인인 척 트릭을 쓰고 있습니다.
아무리 묘사를 색다르게 해봤자 벌써 김 다 새버린 거죠.
사실 그런 아쉬운 부분을 제외하더라도
루트별로 뛰어난 반전이 많은 게임입니다.
다섯 캐릭터 중에 버릴 캐릭터가 하나도 없듯이
캐릭터별 스토리 중에도 버릴 부분이 없어요.
모두 훌륭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개별 스토리에 관해서는 다음 리뷰에서 좀 더 자세히 살펴볼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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