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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10월 17일 일요일

리뷰 : 가월십야(2001/8/13,TYPE-MOON)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월희>의 팬디스크인 <가월십야>입니다.
원작이 동인게임이었던만큼 팬디스크 역시 동인게임으로 아쉬운 점도 많이 보이지만,
스토리가 좋고 전체적인 구성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재미있는 작품으로 볼 수 있습니다.



메인 스토리는 원작 <월희>로부터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주인공 토오노 시키의 단 하루를 다루고 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하루가 끝날 때까지 무수한 선택지가 나오는 방식이죠.

하루의 내용은 짧은 편이고,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간에
단 한 번의 플레이로는 이 게임의 극히 일부분밖에 볼 수 없습니다.
여러 선택지를 골라가며 무수히 반복 플레이를 해야 하는 게임인 거죠.



게임을 반복하다 보면 눈치챌 수 있는데,
사실 플레이어가 게임을 반복하는 것뿐만 아니라
주인공이 계속 똑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루프물의 스토리를 지니고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주인공은 어제의 일이라든가 과거의 일에 대한 기억이 애매한 상태입니다.
일반적인 루프물이라면
주인공이 루프를 인식하고, 직전 루프를 어제로 기억하고 있다든가
아니면 루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고, 기준일에서 어제를 기억하고 있다든가 할 텐데
이 게임의 주인공은 어제에 대한 기억이 그냥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스토리가 어디로 가든지 간에
기억을 못한다고 퉁쳐 버리고 모순없이 스토리를 끌고 갈 수 있으며,
그만큼 자유로운 루프가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선택지는 주인공의 행동을 선택하는 것뿐만 아니라
그 날 하루를 디자인하는 역할도 겸하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오늘은 학교축제날이야'라고 생각하면 학교 축제날이 되는 거고,
'오늘은 체육대회날이야'라고 생각하면 체육대회날이 되는 방식이죠.

그뿐만 아니라 설정 역시도 선택지를 통해 변경이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등교할 때 '아키하를 기다린다'와 '혼자서 간다'는 선택지가 있는데,
'아키하를 기다린다'를 선택하면
원작에서 아키하가 주인공 학교로 전학왔던, 
아키하 루트의 설정대로 하루가 진행되는 겁니다.
'혼자서 간다'를 선택하면
아키하는 다른 학교에 다니고 있다는 설정의 하루가 되는 거죠.

원작의 특정 캐릭터 엔딩의 후일담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설정을 오가며 전부 즐길 수 있게 되어 있습니다.



캐릭터들의 설정이 상당히 강화되었고,
원작의 캐릭터들과 함께 새로운 이벤트를 즐길 수 있기 때문에
원작의 팬들은 재미있게 할 수 있는 팬디스크입니다.

다만, 동인게임이기 때문인지 캐릭터들과의 이벤트 양이 생각만큼 많지는 않았습니다.
알퀘이드나 아키하의 이벤트는 조금 부족하다고 느껴졌고,
히스이는 팬디스크의 최고의 수혜자가 아닌가 생각되네요.



원작에서 좀 심심하다고 느꼈던 코하쿠는
드디어 제가 좋아하는 코하쿠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이 루프하는 세계의 이상함을 깨닫고
그것을 해결하는 중심 스토리도 꽤 잘 잡혀 있습니다.
에로게 팬디스크 중에서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스토리에 속합니다.


이 게임의 문제점은 미친 수준의 난이도입니다.
이 게임은 단순히 주인공의 일상을 보여주는 스토리가 아니라
선택지를 통해 여러 이벤트를 보고,
이벤트를 본 기준이 충족되면 선택지와 이벤트가 점점 늘어나고,
그걸 통해 이 세계의 진실을 찾아내는 스토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의 기본적으로 제공되는 선택지만 해도,
버라이어티한 하루를 보여 줘야 하기 때문에 정신없을 정도로 선택지가 많습니다.
근데 그 선택지들이 점점 새끼를 치는 겁니다.

게다가 똑같은 선택지를 골라도 이벤트가 달라질 때도 있습니다.
하루동안 선택한 선택지의 조합에 따라,
혹은 게임 진행도에 따라 똑같은 선택지라도 다른 이벤트를 보여주는 거죠.

문제는 무슨 선택지가 새로 생겼고, 무슨 이벤트가 새로 생겼고 하는 과정을
플레이어에게 전혀 표시해 주지 않는다는 겁니다.
선택지가 자꾸 새끼를 치는데 누가 무슨 새끼를 쳤는지 말도 안 해줘요.
스토리 외적인 부분에서 시엘이 힌트를 주는 코너가 있지만
그 정도로는 부족할 정도로 난이도가 어렵습니다.

아무 표시가 없다보니 플레이어가 뭐가 부족해서 게임 진행이 안 되는지 알 수가 없고,
모든 선택지를 다 조합해 가면서 중요 이벤트를 찾아야 합니다.
하루 종일 이미 본 장면만 보다가 게임이 끝나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인 거죠.
선택지에 표시를 해 주거나 게임 진행도를 표시해 줬다면 더 좋았을 것입니다.



아쉬운 점도 있기는 했지만,
팬디스크에 루프물을 도입한 아이디어 자체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했고,
저는 이런 스타일의 팬디스크가 앞으로 많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었습니다.
결과는 <Fate/hollow ataraxia>, 단 하나만 나왔습니다.

에로게 업계에도 팬디스크 전성기가 있기는 했지만 
많은 팬디스크 게임들이 H씬이나 추가된 애프터 스토리나 
공략 불가 캐릭터 스토리를 추가했을 뿐이었습니다.
스토리나 구성에 대한 고민은 굳이 하지 않았죠.
원작을 하지 않은 사람은 팬디스크를 사지도 않을 텐데
팬디스크에까지 그런 정성을 들이는 건 낭비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 경향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만 그래도 아쉬운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그래서, 가월십야나 <Fate/hollow ataraxia>가 더 빛나 보입니다.



총평하자면,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잘 만든 팬디스크입니다.
월희 세계관의 팬이라면 좋아할 요소를 많이 담고 있죠.
소개해 드린 메인 스토리 외에도 여러 단편도 함께 즐길 수 있습니다.

<Fate/hollow ataraxia>의 기본적인 아이디어는 가월십야에서 나온 것입니다.
스토리와 편의성 측면에서는 <Fate/hollow ataraxia>가 압도적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월십야만의 매력도 있는만큼 한 번 해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다만, 난이도 때문에 가볍게 할 만한 게임은 아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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