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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8일 일요일

리뷰 : 컁컁 바니6 i mail(2000/8/25, 칵테일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컁컁 바니 시리즈의 리메이크인 Primo를 포함하면 아홉번째 작품인
<컁컁 바니6 i mail>입니다.
이 게임 이후로 컁컁 바니 시리즈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컁컁 바니 시리즈를 절단낸 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칵테일 소프트에서조차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를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2>에 이은 22년만의 속편이라고 표현함으로써
i mail을 은근슬쩍 없는 셈치고 있습니다.



전작에서 가장 변한 부분은 역시, 모나코라는 신 캐릭터의 등장입니다.
오프닝곡 시작부분에서 과하게 신나서 방방 뛰고 있죠.
스와티와 칠복신이 하던 주인공의 연애를 도와주는 역할을
이 게임에서는 모나코가 맡게 됩니다.
모나코라는 이름의 뜻은 Mobile Navigation Communicator입니다.
새로운 휴대폰에 탑재된 인공지능 시스템입니다.



오른쪽 하단부에 있는 3등신 캐릭터가 바로 모나코입니다.
쉴새없이 움직이는 게 귀엽기는 한데, 모션이 너무 한정적이라서 아쉽습니다.
주인공이 혼잣말할 때 맞장구를 쳐주고,
주인공이 다른 여자들에게 메일을 보낼 때 조언을 해줍니다.
아리스나 스와티에 비해 별 도움은 안 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활기찬 목소리로 게임의 분위기를 일신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귀중한 캐릭터입니다. 전용 스토리도 있어요.



그 외의 캐릭터는 다소 미묘한데, 개성이나 매력이 떨어지는 편이라고 생각됩니다.
위의 캐릭터는, 아미라는 이름의 아이돌 캐릭터인데
옛날에 좋아했던 성우가 연기하기도 해서 나름 마음에 든 캐릭터입니다.

다만, 나머지 캐릭터들은 인상이 흐릿합니다.
i mail의 문제라기보다는 2000년대의 F&C의 게임들은 캐릭터의 기복이 심한 편이었습니다.
특히, 다수의 캐릭터를 등장시키는 게임에서 이런 문제가 많았습니다.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대충 캐릭터를 만든 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칵테일소프트치고는 그다지 좋지 않았던 그래픽 역시
이 게임의 매력을 반감시켰습니다.


다시 말해, 이 게임은 칵테일 소프트가 가진 강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게임입니다.
한 3,4년만 지나면 그래픽이나 캐릭터가
더이상 칵테일소프트만의 강점이 아닌 시기가 오지만,
이때까지는 다른 회사에 비해 상당히 좋은 편이었습니다.
다만, i mail은 예외였을 뿐이죠.

그래픽이나 스토리, 캐릭터로만 본다면 다소 부족하기는 하지만,
제 개인적으로는 나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2000년대의 F&C 게임들 중 이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도 많았죠.

성우에 대한 선호도와 칵테일 소프트에 대한 낮은 기대치,
그리고 칵테일소프트에 대한 제 팬심을 더하면
이 게임은 그렇게까지 나쁜 게임은 아니다라고 평가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아마도 어딘가의 평행 우주에서는 그렇게 평가될 지도 모르죠.

하지만, 여기서는 아닙니다.
이 게임은 망겜이 맞습니다. 심각할 정도로요.
이 게임의 가장 큰 단점은 바로 메일 시스템입니다.



i mail이라는 제목답게 여성 캐릭터들과 휴대폰 메일을 주고 받습니다.
스마트폰 시기 이전, 우리나라에서는 문자를 주고 받았지만
일본에서는 메일을 주고 받았죠.
캐릭터가 메일을 보내오면, 주인공은 답장을 보냅니다.
무슨 답장을 보낼 지 선택할 수도 있고, 정해진 답장을 보낼 수도 있죠.
그리고 메일을 통해 데이트를 신청할 수도 있습니다.

단순한 시스템이죠. 여기까지만 읽으면 대체 이 시스템이 뭐가 그렇게 문제가 될까하는
생각이 드실 겁니다.



첫 번째 문제이자, 가장 치명적이고 근본적인 문제는
칵테일 소프트가 메일 시스템의 역할을 잘못 생각했다는 점입니다.

이 게임은 엑스트라나 프리미에르2처럼 지도를 클릭하며
맵을 이동할 수 있습니다.
게임 진행 방식은 대충 이렇습니다.

디저트 카페에 방문합니다.
하즈키 "어서오세요. 주문은 뭘로 하실래요?"
주인공 "경단을 줘"
모나코 "음? 더 대화 안 해?"
주인공 "일하는데 방해하면 미안하니까..."

그리고 메일 확인 타임입니다.
메일들에는 여성 캐릭터들의 이런 저런 일상 이야기가 쓰여져 있고,
주인공이 정성스럽게 답장을 합니다.

그 후, 약국에 방문합니다.

쥰 "어서와. 오늘은 뭐가 필요해?"
주인공 "쥰씨요."
쥰 "헛소리하려면 돌아가"
모나코 "일하는데 방해하면 안 돼."

또다시 메일 확인 타임입니다.
그 후, 이번에는 오픈 카페에 방문하죠.

주인공 "루이쨩, 안녕"
루이 "지금은 일하는 중이니까.... 말 걸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메일 확인 타임입니다.
대체 맵 이동 시스템은 왜 있는 건지 전혀 알 수가 없는 상황입니다.

제가 악의적 편집을 하거나 그런 게 아니에요.
저런 방식이 게임 내내 주욱 이어지는 매크로 이벤트입니다.
기껏 만나서는 일하는데 방해된다면서 제대로 된 대화 한 번을 안 하고,
모든 중요한 일상 대화를 메일로 하고 있어요.

이러려면, 주인공이 그냥 집구석에 쳐박혀서
여성 캐릭터들하고 메일만 주고 받아도 되잖아요.

메일을 주고 받는 시스템은 다른 게임에서도 전혀 없던 게 아닙니다.
지금 나오는 게임들 중에서도 스마트폰을 이용한 LINE으로
짧은 문자를 주고 받는 시스템이 있죠.
하지만, 그런 게임의 메일, 문자 시스템들은
여성 캐릭터와 직접 만나서 대화하고, 놀고, 웃고, 떠들고, 꽁냥꽁냥하고 할 거 다 한 후에,
저녁에 문자나 주고 받으며 하루를 마무리하는 정도의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근데, 이 게임은요?
만나서 하는 대화는 아예 없는 거나 다름없고, 모든 것이 메일로만 이루어집니다.
이게 무슨 바쁜 현대인들의 랜선 연애 방식을 풍자하는 게임인가요?

나중에 데이트를 하게 되면 '나이는 어떻게 되니?', '평소에 뭐하고 노니?'
이런 걸 물어 보는데 그런 얘기를 일상 대화에서 해야죠.
그리고 데이트에서는 특별한 이벤트가 일어나야 하고요.

메일 시스템은 스토리를 보조해주는 역할에 그쳤어야 하는데,
이 게임은 메일 시스템을 게임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이것이 칵테일 소프트의 가장 큰 실수입니다.



두 번째 문제점은 그럼 이렇게까지 전면적으로 내미는
메일 시스템이 과연 스토리와는 어울렸냐 하는 점입니다.

아이돌 캐릭터인 아미같은 경우,
우연히 잘못 전송된 메일 때문에 메일 친구가 된 사이입니다.
서로의 얼굴도, 이름도, 개인정보도 모른 채 메일만 주고 받다가
호감을 쌓고, 오프라인에서도 만나게 된다는 스토리죠.

요즘도 종종 있는 스토리입니다.
온라인 게임 친구가 알고 보니 학교의 인기 아이돌이었다는 식으로요.
아미의 스토리는 시스템과 어울리는 스토리였고, 나름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여덟 명의 캐릭터 중에 유일하게 괜찮은 스토리라는 점입니다.

나머지 캐릭터들은 거의 메일 시스템의 존재 이유가 없는 스토리입니다.
동네 수녀님이 기계치라서 주인공에게 메일에 대해 배우고 싶다거나,
주인공 휴대폰이 너무 신형이라 관심을 갖고 말을 걸어주는 캐릭터가 있지만
빈약하고 억지스럽습니다.
심지어, 절반 정도되는 캐릭터는 메일 시스템과 아무 관련도 없어요.

원거리 연애 스토리같은 거라도 하나 만들면 좋았잖아요.
맨날 얼굴 보고 사는 동네사람들끼리
대화는 안 하고 메일만 주고 받는 이상한 스토리가 되어 버렸습니다.


세 번째 문제점은, 그래서 그렇게라도 만든 시스템이
일관성있게 유지되느냐 하는 점입니다.

말씀드렸다시피, 메일 시스템에는 세 가지 패턴이 있습니다.
여자한테서 메일이 오고, 플레이어가 세 가지 답장 중 무슨 답장을 보낼까 선택하는 방식.
여자한테서 메일이 오고, 이미 결정된 답장을 플레이어가 보낼 뿐인 방식.
마지막으로 플레이어가 먼저 몇날 몇시에 데이트를 하자고 메일을 보내는 방식입니다.

그나마 마음에 드는 건 첫 번째 방식입니다.
무슨 메일을 보내야 호감도가 오를까 궁리하면서 답장을 선택하는 거죠.
이상한 답장을 보내면 모나코가 가차없이 비판을 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방식은 그냥 송신 버튼을 누르는 것뿐이고,
세 번째 방식은 스케쥴을 확인해서 그 시간대를 선택하는 것뿐이니
별 재미가 없습니다.

문제는 그나마 재미있는 첫 번째 방식이 초반부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8명 동시공략을 기준으로 하루에 선택해야 하는 메일은 거의 30통씩 옵니다.
하지만 게임 시간으로 대략 5일정도만 지나도
선택해야 하는 메일은 하루에 많아야 다섯 통,
혹은 딸랑 한 통, 아예 전혀 안 오는 날도 있습니다.

각 캐릭터들과 데이트하기 시작하면 아예 메일 자체가 열 통도 안 와요.
그나마 오는 것도 이미 정해진 답장을 그냥 송신하는 것뿐입니다.
초반에는 30통 가까이 되는 메일 답장 선택하느라고 귀찮고,
중반에는 그냥 정해져 있는 답장을 그대로 보내는 것만 하느라 귀찮습니다.
어느 정도 게임 전체에 적절히 배분을 했어야죠.

초반에는 메일이 엄청 많이 오고,
중후반에는 메일이 너무 안 옵니다.
태생부터 망한 시스템이 운용조차 망했습니다.




그리하여 최종적인 문제점은, 게임 중후반부가 되면
메일 시스템은 그냥 여성 캐릭터들의 스케쥴 확인하고
데이트나 권유하는 용도로 전락해 버린다는 겁니다.
시간을 조금이라도 틀리거나, 메일을 늦게 보내 버리면
데이트를 못하게 됩니다. 데이트를 못 하게 되면 그 캐릭터 공략 자체가 꼬입니다.
신중하게 메일을 보내야 하죠.

시스템이 의미도 없고 재미도 없을 뿐더러 귀찮습니다.
게임의 원활한 진행을 방해하는 수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을 '너무 길어서 지루하다'고 평가합니다.
다른 모든 캐릭터들의 메일을 씹고, 한 캐릭터만 집중 공략하며 실험해 본 결과
스토리가 길지도 않고 텍스트 양이 많지도 않습니다.

어처구니없이 불편한 시스템 때문에 별로 길지도 않은 게임이
너무 길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겁니다. 코미디가 따로 없죠.



총평하자면, 2000년대의 칵테일 소프트의 게임들은
칵테일에 물을 탔다고 평가됩니다. 별 내용없이 밍밍하다는 뜻이죠.
아니, 물을 탔다는 것도 너무 약한 표현입니다.
아예 희석시켰습니다. 칵테일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게임투성이었어요.

그런 기준에서 본다면, i mail은 그래도 물8:칵테일2 정도로
칵테일 맛이 조금은 나는 게임입니다.
F&C의 다른 게임들에 비해 마음에 드는 부분이 틀림없이 있어요.
하지만, 거지같이 불편한 시스템이 그 모든 것들을 망쳐 버렸습니다.

마치 군대 수통에 물을 탄 칵테일을 채워놓고,
방독면을 끼고 방독면 빨대로 쪽쪽 빨아먹는 기분입니다.
밍밍하고 마시기도 불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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