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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27일 일요일

리뷰 : 첫사랑이야기(1992/12/15,게임 테크노폴리스)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2년도에 발매된 <첫사랑 이야기>입니다.
육성+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죠.



플레이를 시작하면 게임은 플레이어의 첫사랑에 대해 물어 봅니다.
첫사랑이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중 언제였냐고 물어보죠.
초등학교 시절을 선택하면 초등학생이 주인공이지만 걱정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이 게임은 야한 CG나 H씬이 없는 게임이니까요.
순수하게 연애 게임입니다.



아무튼 주인공과 첫사랑했던 소녀에 대해 설정을 완료한 후 게임이 시작됩니다.
과연 이 게임에서는 어떻게 애틋한 첫사랑의 스토리를 보여줄까요?



...사실 이건 첫사랑 이야기 CG가 아닙니다.
게임을 시작하자마자 '컴퓨터 게임을 실행하겠냐'는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면
<전뇌천사>라는 컴퓨터 게임이 실행됩니다. 극중극인 거죠.

게임 테크노폴리스에서는 첫사랑 이야기 발매 후,
1년뒤에 <전뇌천사>라는 게임을 발매합니다.
처음에 저는 <전뇌천사>의 체험판이라도 들어 있는 건가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아닙니다. <전뇌천사>의 기승전결이 전부 들어가 있어요.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첫사랑 이야기의 극중극 <전뇌천사>'
-> '해당 <전뇌천사>를 기반으로 한 만화를 테크모폴리스 잡지에서 연재'
-> '해당 만화를 기반으로 한 제대로 된 <전뇌천사> 발매'
대충 이런 흐름입니다.

요약하자면, 게임 내에 다른 게임이 하나 통째로 들어가 있다는 겁니다.
그것도 첫사랑 이야기와는 스토리상 큰 관계없어 보이는 게임이 말이죠.
심지어 CG도 <전뇌천사>가 더 많은 것 같아요.
대체 왜 첫사랑 이야기에 이런 걸 넣어 놓은 걸까요?



아무튼 <전뇌천사>가 끝나면 드디어 첫사랑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은 부모님에게서 갑작스럽게 3개월 후에 이사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주인공은 고민 끝에 3개월동안 노력하여
그동안 짝사랑했던 첫사랑의 여인에게 고백하기로 합니다.

이 게임의 컨셉은 '첫사랑 성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육성'하는
자기 계발 시뮬레이션입니다.
공부와 운동을 해서 자신에 대한 평가도 높이고 
첫사랑과 만나 이런 저런 대화도 나누며 호감도도 올리는 겁니다.
컨셉 자체는 꽤 괜찮습니다.

게다가 이 게임의 기본 컨셉은 
전설적인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두근두근 메모리얼>과 흡사합니다.
발매일로 살펴 보면 첫사랑 이야기가 1년 이상 앞서죠.
어쩌면 첫사랑 이야기는 <두근두근 메모리얼>에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두근두근 메모리얼>이 전설적인 미연시로 회자되고 있는 반면에
첫사랑 이야기는 다들 존재조차 모릅니다.
우리나라에서뿐만아니라 일본에서도 인지도가 바닥을 쳐요.

결정적인 문제점은 게임이 재미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아무 내용이 없다는 점입니다.
육성 선택지를 통해 주인공의 능력치는 왔다갔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이렇다 할 이벤트가 없어요.
지루한 정도가 아니라 제가 지금 뭘 하는지도 모를 정도입니다. 


사실 옛날 게임에는 이런 식으로 별 내용없는 게임이 여럿 있었습니다.
플로피 디스크때문에 게임 볼륨에 현실적인 제약이 많이 걸리던 시기였죠. 
하지만, 이 게임이 용서가 안 되는 이유는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첫사랑 이야기보다 CG도 더 많은 <전뇌천사>가 게임 내에 통째로 들어있다는 겁니다.
본편은 심각하게 부실한데 배보다 더 큰 배꼽이 떡하니 버티고 있어요.

게임은 부실한데 발매는 해야겠으니 개발중이던 다른 게임하고 합친 것 같습니다.
확증은 없지만 저에게는 그렇게 밖에 안 보여요.
첫사랑 이야기를 구매한 사람들은 죄다 속았습니다.
사실은 <전뇌천사>를 구입한 셈이에요. 대놓고 사기를 친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PC엔진으로 이식도 되었습니다.
여러 이벤트가 추가된 것 같은데
안타깝게도 <전뇌천사>가 여전히 들어 있습니다.



98년도에는 속편으로 <속 첫사랑 이야기 ~수학여행~>이 발매되었습니다.
PC판으로는 발매된 적이 없으며
가정용 게임기 PC-FX, 플레이스테이션, 세가 새턴의 세 가지 기종으로 발매되었습니다.
사실 오늘 리뷰의 진주인공입니다.

이 게임은 첫사랑 이야기와 달리 인지도가 있는 편입니다.
쓰레기 게임으로 잡지에 소개되기도 했고,
일본 위키에도 쓰레기 게임이라는 평가가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다른 평가로는 '<두근두근 메모리얼>의 아류'라는 이야기가 있죠.
말씀드렸다시피 사실은 첫사랑 이야기가 먼저입니다.


이 게임이 문제가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부자연스러운 설정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스케쥴을 짜서 자기 계발을 하는데
그걸 수학여행 도중에 하다 보니 버스 안에서 운동을 하고,
문화유산 앞에서 독서를 하는 거죠.
사실 이건 단편적인 비판에 불과합니다.

이 게임의 기본 컨셉은 
'일상에서 벗어난 수학여행에서 평소와 다른 첫사랑의 그녀와 친해진다'입니다.
이번에도 역시 매력적인 컨셉입니다.
근데 게임은 수학여행동안 '주인공을 육성하여' 
수학여행이 끝난 이후에 고백을 하는 방식입니다.

첫사랑이 무슨 벼락치기로 되는 건가요?
일주일동안 공부를 하든 운동을 하든 얼마나 효과를 보겠습니까?
게다가 독서실이나 헬스장에 틀어 박혀서 하는 것도 아니고
버스나 숙소에서 틈틈히 하는 건데 이게 되겠냐고요.

게다가 기적적으로 일주일만에 효과를 봤다고 칩시다.
근데 설령 공부를 잘하게 되었다고 해도 수학여행 도중에 중간고사라도 보나요?
자신의 발전을 어필할 타이밍이 없잖아요.

여러분이 수학여행을 갔다고 생각해 보세요.
기껏 수학여행 왔는데 불국사나 첨성대 앞에서 누가 책 펴놓고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그 학생에 대한 평가가 조금이라도 올라갈 거라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나요?
집단따돌림 안 당하면 다행이죠.

이런 점이 부자연스럽다는 겁니다.
수학여행에서 첫사랑과 맺어지겠다면
대화를 하거나, 배려를 하거나, 특수한 이벤트가 벌어지거나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죠.
하지만, 그 짧은 기간동안 자기 계발은 아니잖아요.

전작의 '첫사랑 성공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육성'하는 컨셉은 괜찮았습니다.
속편의 '일상에서 벗어난 수학여행에서 평소와 다른 첫사랑의 그녀와 친해진다'도 좋아요.
근데 왜 그 두 개를 합치는데요.
기획 과정에서 이건 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아무도 못 한 건가요?



이런 설정들은 억지로 무시하고, 일단 게임을 살펴 봅시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대학생 시절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에는 각 세 명씩
그리고 대학생 시절에는 한 명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시절에는 소꿉친구 타카세 유카가 있습니다.
플스판과 새턴판에는 유카의 동생도 추가됩니다.



오프닝 영상에서 보면, 유카는 틀림없이 주인공을 좋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모르는 주인공은 유카에게
'내 첫사랑이 성공하도록 응원해 줘.'라고 부탁하죠.

속마음을 속인 채로 주인공을 지원하는 유카는 정말 큰 도움이 됩니다.
주인공이 무슨 행동을 할 때마다 끊임없이 응원해 주고,
이벤트에 관련된 중요한 힌트도 제공합니다.
심지어 돈도 빌려 줍니다. 아마도 무기한, 무이자로요.



유카의 존재는 이 게임의 결정적인 한 방이었습니다.
스토리마다 성장하는 캐릭터가 매력적이기도 하고, 
단조로울 수 있는 스케쥴 시스템을 화사롭게 만들어 주기도 했고,
동떨어진 각각의 스토리를 한 데 모아주는 역할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게임을 처음 접했을 때,
모든 개별 스토리는 사실 이어져 있으며,
주인공은 여러 연애를 도전해봤지만 번번히 실패해 왔고,
수많은 실패 끝에 결국은 소꿉친구 유카와 이어지게 되는,
사실은 '이것은 유카의 첫사랑 이야기였다'는 반전까지 머리 속에 그렸습니다만
그건 너무 지나친 생각이었죠.

실제로는 각 시대별 캐릭터를 전부 공략한 후에 
각각의 유카 스토리가 열립니다.
초,중,고,대학생 별로 유카의 스토리는 총 4개가 있습니다.



주인공의 능력치와 소유하고 있는 아이템에 따라서
이벤트가 일어나기도 하고, 고를 수 있는 선택지도 달라집니다.
또한 계속 플레이해 보니 공략순서, 회차 플레이 때문에 이벤트가 달라지기도 하고,
랜덤으로 이벤트가 일어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호감도를 올리는 방법으로는 이벤트를 보는 게 가장 좋습니다.
하지만, 이벤트를 찾는 방법이 굉장히 어려운데
유카가 힌트를 주지만 그래도 부족합니다.
변수가 많아서 대체 어떻게 해야 못 본 이벤트를 찾을 수 있는지
짐작하기도 힘들어요.
그래도 이벤트를 전부 보지 않아도 웬만하면 해피 엔딩을 볼 수 있기 때문에
고생해서 100%를 채울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캐릭터가 다양한 것도 이 게임의 장점입니다.
같이 수학 여행을 간 클래스메이트뿐만 아니라,
수학여행지에서 만난 다른 학교 학생도,
초등학생 주제에 열 살 연상의 교생도,
중학생때는 현지에서 만난 연상의 여인도, 
고등학생때는 수학여행 버스 가이드도,
대학생으로 해외여행을 나갔을 때에는 외국인까지 만날 수 있습니다.



스케쥴에서 '견학, 학습'을 선택하면
각각의 유적지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제공합니다.
배경CG도 잘 만들어 현장감을 살려주죠.



호감도가 오르면서 스탠딩 CG가 변경되는 것도 마음에 듭니다. 
처음에는 무관심하게 뒤를 보는 CG입니다만
점점 뒤돌아 서서 즐거워하는 표정으로 변하게 되죠.



수학여행이 끝난 다음에는 고백타임입니다.
'고백한다'와 '고백취소' 두 가지 선택지 중 하나를 고를 수 있습니다.
250가지의 엔딩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도 있는데
큰 차이 없는 엔딩이 무수히 많을 뿐입니다.

다만 '고백취소'를 고르더라도 나름 다양하고 제대로 된 엔딩이 존재하고 있죠.
또한, 능력치를 충분히 높였다면 '고백취소'를 고르더라도 연인이 되는 경우도 있고,
능력치가 부족하면 '고백한다'를 고르더라도 실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다른 캐릭터야 연인이 안 되면 안 보면 그만입니다.
실제로도 첫사랑이었던 여성을 먼 훗날 우연히 만나서 인사한다거나
그냥 주인공을 기억 못한다거나 하는 엔딩도 있죠.
하지만, 소꿉친구 유카 스토리에서 '고백취소'를 고르면 
유카가 빡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급식도 새모이만큼 퍼주고 앞으로 이름도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총평하자면, 첫사랑 이야기는 아이디어 외에 아무 것도 없는 게임일 뿐만 아니라
아예 다른 게임과 합쳐 사기를 친 최악의 게임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속 첫사랑 이야기같은 경우는 세간의 평가와 달리 괜찮은 점이 많습니다.
설정이나 시스템에서 큰 단점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만
캐릭터가 전반적으로 훌륭하고
특히 소꿉친구 유카의 캐릭터가 좋아요.

저는 소꿉친구 캐릭터가 좋습니다.
많은 게임에서 매력적인 소꿉친구 캐릭터를 많이 봐 왔죠.
유카의 캐릭터 자체가 다른 캐릭터와 특별히 구별되는 매력이 있는 건 아닙니다.

다만, 초, 중, 고, 대학교의 스토리를 단계적으로 거치며
정말로 소꿉친구와 함께 성장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것만큼은 이 게임 이외에서는 느끼기 힘들었던
이 게임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벤트 100%를 이 악물고 보겠다는 치열함만 없으면
유카만 바라 보더라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게임입니다.
최고 중의 최고는 아닐지라도 
쓰레기 게임은 과언이라고 생각합니다.

2020년 9월 20일 일요일

리뷰 : 비밀의 화원(1992/1/31,게임 테크노폴리스)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게임 테크노폴리스의 <비밀의 화원>입니다.
게임 테크노폴리스에서 발매한 게임 중 가장 화제가 되었던 게임이라고 합니다.

원화가나 연출이 유명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주로 에로게가 아닌 다른 분야에서 활약한 분들이라 잘 모릅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플레이하면서 원화, 연출을 중점적으로 평가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 이 게임에 대해 할 말이 많지는 않습니다.
어쨌든 게임 테크노폴리스의 대표작이기 때문에
가볍게 한 번 살펴 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의 아파트 옆호실에 
히메카라는 이름의 미인이 이사를 오게 됩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히메카는 주인공 학교의 임시 교사로 오게 된 것입니다.



주인공은 히메카가 정체를 숨기고 잠입한 탐정이었다는 사실을 엿듣게 됩니다.
학교에서 일주일 전에 있었던 살인사건을 조사하려온 겁니다.
살해당한 사람은 마키에라는 학생으로
주인공과 사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만, 
갑자기 이유도 모르고 일방적으로 주인공을 차 버렸습니다.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은 히메카와 협상을 통해 
성공시 에로게스러운 '보상'을 받기로 하고 조사를 도와주기로 합니다.
대략 이런 내용의 수사물입니다.



이 게임의 특징은 먼저 대사창이 화면 위, 아래로 두 개가 있다는 점입니다.
위의 대사창은 상대방이 하는 말, 아래의 대사창은 주인공이 하는 말입니다.
따로 말하는 사람 이름을 적지 않아도 누가 말했는지 혼동되지 않는다는 점은 좋습니다만
CG 크기가 줄어들게 되죠.
400라인 초창기 게임들의 대부분이 그랬듯이
CG를 크게 만들지 않고고 여백을 어떻게 활용할까를 고민했던 것 같습니다.



<보다>, <말하다>같은 단순한 명령 선택 방식이 아닌
그때 그때 경우에 맞는 문장을 선택하는 방식인 것도 독특합니다.
세세한 묘사가 가능하면서도, 쓸데없는 부분은 적은 방식이죠.



가장 흥미로운 시스템은 동행인 시스템입니다.
주인공 혼자서도 조사가 가능하지만,
잠입한 미녀탐정 히메카,
아무 이유없이 주인공을 돕는 좋은 친구 켄,
그리고 연극부의 이마리 중 한 명을 선택해서 같이 조사를 다닐 수 있습니다.
중간에 바꿀 수도 있죠.

이 시스템이 흥미로운 이유는 
각 동행인에 따라 대사가 달라지는 정도가 아니라,
증인들의 협력 태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게임의 난이도 자체가 변한다는 점입니다.
증인들은 대개 학생들인데 학기 중에 갑자기 임시 교사로 온 히메카는 
아무래도 대하기 어려운 상대죠.
반면에 1학년인 이마리는 상대적으로 만만합니다.

따라서, 정보 수집할 때 히메카보다는 이마리와 같이 다닐 때 증인들은 더 협력적이고, 
그로 인해 게임 난이도는 더 쉬워지는 겁니다.
난이도뿐만이 아니라 스토리의 마무리까지 달라져요.

참신한 시스템이었지만 스토리가 짧았던 이 게임에서는 다소 부실하게 느껴집니다.
좀 더 활용할 여지가 많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캐릭터는 연극부의 이마리가 가장 마음에 듭니다.
PC엔진판에는 보이스도 들어있는데 그 시절 게임치고 상당히 좋습니다.
밝고 건강한 캐릭터로 특유의 사교성으로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으며
일주일 전에 죽은 마키에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고작 일주일 전에 언니가 죽었는데 왜 밝고 건강한 거죠?
좀 더 슬퍼하는 태도를 보여 줘야죠.



일주일 전에 언니가 죽은 학생에게 연기를 시키는 연극부도 이상합니다.
이마리는 정말 강한 마음의 소유자인가 보군요.



이 게임에서 가장 아쉬운 건 역시 스토리입니다.
수사 도중 살인도 한 번 더 일어나지만
전체적인 볼륨 자체가 적어서 긴장감을 느낄 틈이 없습니다.
쉽게 예측가능한 스토리기도 하고요.



이 게임에는 PC엔진판도 있습니다.
토쿠마 서점은 애초에 콘솔 게임을 꽤 많이 발매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소녀 게임의 콘솔 이식에도 적극적인 편이었죠.

H씬같은 성인게임 요소를 수정하고, 맵 이동 시스템을 변경한 것 이외에
크게 달라진 점은 없습니다.
풀보이스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상황에 보이스가 들어있기 때문에 
플레이하기에 괜찮은 점도 있죠. 



총평하자면, 괜찮은 그래픽 이외의 장점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인 게임입니다.
참신한 시스템은 스토리에 발목이 잡혀 제대로 활약하지도 못 했습니다.
스토리가 좋았다면 여러 장점들이 좀 더 눈에 들어왔을 것 같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못했죠.

특정 부분에서 유명한 스탭들이 투입되었던만큼
다른 부분에도 신경을 썼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2020년 9월 13일 일요일

리뷰 : 너에게만 사랑을...(1991/10/10,게임 테크노폴리스)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테크노폴리스는 토쿠마 서점이라는 회사에서 
80,90년대에 발매했던 잡지 이름입니다.
본래 게임뿐만 아니라 PC 전반을 소개하는 잡지였지만
몇 번의 변화 끝에 미소녀 게임 전문 잡지가 되었죠.

토쿠마서점은 잡지를 넘어서 게임 산업에도 진출하였고
미소녀 게임을 비롯하여 상당한 양의 게임을 발매했습니다.
게임 테크노폴리스에서 발매한 게임들이 그렇게 유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름 화제가 되었던 게임들은 몇 개정도 있습니다.

개중에는 당대 최고의 에로게 회사였던 페어리테일이 개발한 게임도 있고,
우주SF물에는 <초시공요새 마크로스>를 제작한 회사가 참여하기도 했으며
그 외에도 이름난 스탭들이 종종 참여했습니다.

 

91년도에 발매된 <너에게만 사랑을...>입니다.
기획은 게임 테크노폴리스지만, 제작은 페어리테일 사에서 했습니다.



시스템은 평범한 어드벤처 게임으로 특이한 점은 전혀 없습니다.
배드 엔딩이 몇 개 있기는 하지만 딱히 중요한 부분은 아닙니다.



첫 장면은 선남선녀의 결혼식부터 시작합니다.
주인공의 형과 주인공이 짝사랑했던 연상의 여인 미사의 결혼식이죠.



하지만 미사는 하와이 신혼여행 도중 홀로 집에 돌아옵니다.
사실 두 사람의 결혼은 어른의 사정이 개입되어 있었던,
서로가 원치 않았던 결혼이었습니다.
형은 신혼여행지 호텔에 미사를 혼자 버려두고 현지 여자들과 놀아났고,
우연히 그 장면을 목격한 미사는 그냥 귀국해 버린 겁니다.

이 게임은 순탄치 않은 혼인 생활에 고통받는 미사와
그런 미사를 남몰래 사랑하는 주인공을 소재로 한 형수물입니다.



어느 날, 미사는 교통사고를 당하게 되고 기억상실 상태가 됩니다.
주인공 형은 잠시 병문안을 왔으나 상태가 별로 나쁘지 않은 걸 확인하고,
데이트해야 된다면서 매정하게 돌아가 버립니다.
간병은 주인공의 몫입니다.



주인공이 집에 잠시 돌아와 보니 현관부터 이 상태입니다.
부인이 큰 사고를 당해 입원해 있는데도 자제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그건 그렇고 여자는 거실까지 가는데 몇 분 걸리지도 않을 텐데
뭐가 그렇게 급했던 걸까요?

나쁜 건 주인공 형이고 여자가 뭘 알겠나 싶지만
주인공이 거실을 엿보니 둘이서 H씬과 함께 
병원에 관련된 이야기를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죄책감이라고는 전혀 없는 사람들이죠.


아무튼 이런 식으로 진행되어 막장 드라마식 재미라도 있을 것 같지만,
실제 플레이해보면 딱히 그런 재미는 느낄 수 없습니다.
그 후에 미사가 퇴원하고, 퇴원 당일날 기억찾고,
기억 찾자마자 이혼하고 끝에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내용이 없습니다.



91년도 게임이니 분량이 적은 건 이해 못 할 바 아닙니다.
문제는 그런 주제 스토리에 곁다리가 너무 많다는 점이에요.

주인공을 좋아하는 소꿉친구 캐릭터는 충분히 등장할 수 있습니다.
단조로운 스토리를 환기시켜 줄 수 있는 귀중한 캐릭터죠.
근데, 그 캐릭터 활용이 부족합니다. 납치 이벤트 이런 건 필요없잖아요.
게임의 분위기를 해치기만 합니다.



이 게임을 플레이한 많은 사람들이 캐릭터들이 매력적이라고 하고 저도 그건 인정하지만,
캐릭터들이 너무 많이 나오니 
메인 스토리인 미사의 상황이 뒷전으로 밀려나 버립니다.



게다가 캐릭터 수가 많은 점은 스토리상 단점으로도 작용합니다.
이 게임 구도는 부인을 냅두고 다른 여자들과 놀아나는 주인공 형과
형수를 소중히 여기며 보살피는 주인공을 대비시키는 방식인데
정작 스토리에서는 주인공도 형과 다를 바 없게 행동합니다.
미사가 기억상실로 침대에서 누워있는 동안
형과 마찬가지로 주인공도 여러 여성들과의 H씬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은 미사와 혼인한 관계도 아니고,
미사를 전혀 신경쓰지 않는 형과 달리 계속 미사를 걱정하기 때문에
형과는 다른 점이 있기는 하지만
어쨌든 형을 비난하기에 떳떳하지 못한 약점을 갖게 되는 셈이죠.

당대 에로게 스타일이 대체로 이런 식입니다.
스토리와 관계없이 등장한 캐릭터에는 억지로라도 H씬을 넣으려고 해요.
스토리는 갈피를 못 잡고, 분위기는 망가져 버리고
'너에게만 사랑을...'이라는 제목과는 점점 멀어져만 가는 전개입니다.



총평하자면, 이 게임을 제일 재밌게 즐기는 방법은 그냥 요약만 보는 겁니다.
소재 자체는 꽤 괜찮은 스토리가 나올 것 같아 보이지만,
플레이하면 메인 스토리에 대한 심도 깊은 내용은 전혀 없어요.
기대에 못 미쳤다 정도가 아니라
예상과 전혀 다른 게임을 하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메인 스토리가 충실하다면, 서브 스토리나 캐릭터가 많은 건 문제가 아닙니다.
분량 문제 때문에 둘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한다면
어느 쪽을 포기해야 할 지는 명백하죠.
이 게임은 정반대의 선택을 했습니다.

얕아진 스토리를 캐릭터로 채우기엔 역부족이었던 것 같아요.
차라리 메인 스토리를 살렸다면 색다른 게임으로 평가내렸을 것입니다.

2020년 9월 6일 일요일

리뷰 : 하렘 블레이드 ~The Greatest of All Time.~(1996/4/26,GIGA)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렘 블레이드  ~The Greatest of All Time.~>입니다.
당대에 흔치 않았던 보컬이 있는 오프닝 영상으로 화제가 되었으며,
게임 자체도 꽤 인기가 있었습니다.

윈도우 시절의 속편으로는 <PureMind 〜Prelude to HARLEMBLADE〜>와
<하렘 블레이드2 ~DARK ANGEL~>이 있습니다.
속편들은 1편만큼의 인기를 끌지는 못 했으나
이 중 <하렘 블레이드2>는 한국후찌즈에 의해 
H씬이 삭제된 채로 한국에 정발된 적이 있기도 합니다.



용사의 두 아들, '카인'과 '아벨'이 등장합니다.
싸움을 좋아하는 난폭한 형 카인과
싸움을 싫어하는 마음 여린 동생 아벨.
성격상 아벨이 무난하게 주인공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고 예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이들의 장래는 섣불리 예측할 수 없듯이,
아벨은 아버지가 사망한 후 각성하여 전 세계에 명성을 떨치는 용사로 자란 반면에
카인은 마을의 천덕꾸러기 백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백수답게 잠이나 자던 카인의 꿈에
어떤 여성이 등장하여 '마왕이 부활한다'고 알려 줍니다.
카인은 '그건 내 동생한테 얘기해'라고 답하죠.



아무튼 주인공은 날백수 카인입니다.
소꿉친구인 쇼콜라가 카인을 깨우는 장면부터 본격적인 게임이 시작됩니다.

마을의 유력자인 쇼콜라의 아버지는 쇼콜라가 
자랑스러운 용사 아벨에게 시집가길 바랍니다.
하지만, 쇼콜라는 아벨보다 카인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삼각관계죠.

어느 날, 쇼콜라가 불가사의한 힘에 의해 사라지게 됩니다.
아벨은 쇼콜라의 행방불명에 마왕이 관련되어 있음을 느끼고
쇼콜라를 찾아 여행을 떠납니다.
아벨의 혼잣말을 엿들은 카인도 쇼콜라를 찾아 마을을 떠난다는 스토리입니다.



일단 이 게임은 2D 필드형 RPG입니다.
장소를 이동할 때, 전체맵이 활용되기도 합니다.

특이한 점은 시간 개념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10분, 20분씩 시간이 진행되죠.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가면 여성을 만날 수도 있고,
몇 일 몇 시에 만나자는 약속을 하기도 합니다.

당대 유행했던 <동급생> 스타일을 RPG에 접목시킨 겁니다.
이 시기에 헌팅 스타일의 게임은 상당히 많았지만
중세 판타지 배경의 RPG 장르에 도입한 건 신선한 시도였죠.

다만, 이렇게 하면 명백한 문제점이 생깁니다. 게임이 너무 귀찮아진다는 거죠.
<동급생>식 이동 및 이벤트 감상과 
RPG식 이동 및 전투를 동시에 해야 하니까요.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GIGA는 인계 시스템을 도입합니다.
한 번 엔딩을 본 후에 2회차 플레이부터는
저번 플레이의 레벨, 경험치, 아이템, 장비, 돈 등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게 만든 거죠.
최근 게임들에 자주 사용되는 방식이기도 하니 
더 설명할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인계 시스템은 하렘 블레이드의 결정적인 장점이었습니다.
이외에도 자동전투가 가능하며,
착용하면 잡몹들과 일일히 상대하지 않아도 되는 갑옷도 있으며,
약간 비싸기는 하지만 마을에서 마을로 워프할 수 있는 방법도 있습니다.
어차피 회차를 반복하면 돈이 썩어나기 때문에 전혀 부담이 되지 않죠.



다시 말해, RPG는 RPG대로 즐길 수 있게 해 놓고서도
필요하면 여성을 공략하는 일에 집중할 수 있도록 편리한 여건을 만들어 놓은 겁니다.
당연한 시스템인 것처럼 보이지만
비슷한 시기의 수많은 게임들이 하지 못했던 일입니다.

서브 캐릭터까지 치면 여성 캐릭터가 20명까지 등장하고
1회 플레이만으로는 모든 캐릭터 동시공략이 절대 불가능하지만,
몇 회를 플레이해도 크게 부담되지 않는 RPG 시스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찮은 부분이 어느 정도는 있습니다.
아쉬운 점은 매일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를 방문하는,
마치 출석 체크와도 같은 단순 패턴이 너무 많이 사용되었다는 점입니다.
막상 매일 만나봤자 별 하는 얘기도 없어요.



뭐, 몇몇 캐릭터의 문제일 뿐이고 큰 문제가 되는 수준은 아닙니다.
다른 캐릭터들은 이벤트 분배를 비교적 무난하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진짜 아쉬운 부분은 하렘 블레이드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된 하렘물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여성 캐릭터들끼리의 스토리상 접점이 거의 없습니다.
여성 캐릭터가 20명이 등장한다고 해도 이런 식이라면
주인공과 여성 캐릭터의 1대 다수가 아닌
스무 개의 1대1일 뿐입니다.
<동급생>도 이런 방식이기는 했지만 <동급생>은 '하렘급생'이 아니었잖아요.
이 게임은 '하렘 블레이드'고요.


각 캐릭터의 스토리가 끝나면 해당 캐릭터는 주인공 파티에 합류합니다.
여러 캐릭터들을 영입함으로써
주인공 한 명에 다수의 여성들로 구성된 파티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GIGA는 이 게임에 하렘 블레이드라는 제목을 붙였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문제는 그런 파티가 전혀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거에요.

파티에 여성이 열 명이 있더라도 전투에 출진할 수 있는 캐릭터는
주인공 외 단 둘뿐입니다.
전투 난이도가 쉽고, 캐릭터들 특성에 큰 차이도 없어서
굳이 출진 캐릭터를 바꿔가면서 플레이할 이유도 없어요.

또한, 필드 이동에서도 파티원이 몇 명이 되든간에 주인공 한 명만 표시됩니다.
스토리가 끝나 파티에 합류한 캐릭터가 대사를 하는 경우도 거의 없고,
1대 다수의 H씬도 없고, 하다 못해 하렘 엔딩도 없어요.

수많은 여성 캐릭터들과 같이 다니고 있다는 사실을 느끼는 방법은
파티원 목록을 열어 여성 캐릭터들 이름을 하나하나 읽는 것뿐입니다.

소위 '장부상 하렘'이라는 겁니다.
진짜로 미소녀랑 같이 다니는 지는 모르겠고 장부에 이름만 올리는 거죠.
다른 미소녀 게임을 하더라도 옆에 엑셀창 하나 띄우고
등장하는 여성 캐릭터 이름 하나하나 적어 놓으면,
이 게임 수준의 하렘을 만들 수 있습니다.



총평하자면, 참신함도 있고, 편의성도 훌륭한 게임이에요.
다만, 하렘물은 아닙니다.

근데, 굳이 하렘 아니면 어떻습니까?
<동급생>이랑 비슷한 시스템인데, <동급생> 좋잖아요. 이 게임도 좋습니다.
제목을 잘 지어서 제가 플레이 전에 다른 기대를 했다면 더 높은 점수를 주었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