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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9월 16일 일요일

리뷰 : 에로틱BAKA노벨 시리즈(칵테일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칵테일소프트에서 에로틱BAKA노벨이라는 수식어를 붙인 작품은
딱 두 개가 있습니다.

<전화벨이...> - 1993년 8월 17일 발매
<언젠가 어딘가에서> - 1995년 4월 28일 발매

이 두 게임을 에로틱BAKA노벨 시리즈라고 하며,
이번에는 두 게임을 동시에 리뷰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에로틱BAKA노벨이 뭔데?'라는 질문에는 솔직히 대답을 못 하겠습니다.
대체 칵테일소프트가 왜 이런 수식어를 붙였는지 저도 궁금합니다.

에로틱이야 에로게라면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딱히 <전화벨이...>가 다른 게임에 비해 특별히 에로틱한 장면이 많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BAKA는 이 시기의 BAKA가 지금 말하는 에로게의 바카게의 의미와
같은 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오늘날의 바카게의 의미는 개그가 독특하고 특출난 작품,
PC-98시절로 따지자면 <프로스튜던트G>나 <전격 너스>같은 게임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전화벨이...>같은 경우는 개그가 많이 배제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다시 말해, '에로틱BAKA'라는 수식어가 아까울 정도로
특별히 에로틱하지도 특별히 BAKA하지도 않습니다.


'노벨'같은 경우도 의문스럽습니다.
Leaf사가 '비쥬얼 노벨'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을 때보다
앞서 노벨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동 시기의 게임들과, 심지어 칵테일소프트가 스스로가 내놓은 게임들과도
전혀 차별성이 없습니다.




시스템적인 차별 방식이라면 게임의 진행 방식을 들 수 있습니다.
보통 에로게는 텍스트가 계속 진행되는 상황이라면
텍스트에서 다음 텍스트로 진행할 때, 화면 어느 곳을 클릭해도 상관없습니다.
이건 PC-98시절에도 당연한 방식이었고, 칵테일소프트의 게임도 그랬습니다.

근데, 이 시리즈만큼은 오른쪽 아래의 화살표가 그려진 버튼을 눌러야 합니다.
마우스 커서가 저 버튼의 위에 있지 않다면 엔터키를 눌러도 진행이 되지 않습니다.

특이하면서도 불편한 방식입니다.
이런 시스템을 사용함으로써 좀 더 '노벨'같을 거라고 생각한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칵테일소프트 내부적으로 봤을 때,
에로틱BAKA노벨 시리즈의 특징은 바로 '멀티 엔딩' 시스템입니다.
두 게임의 평가는 결국 '멀티 엔딩'을 얼마나 적절히 사용했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전화벨이...>



전화벨이...는 무려 28개의 멀티 엔딩을 가지고 있는 게임입니다.
스토리는 숙취로 고생하고 있는 주인공의 방에서 전화벨이 울리며 시작됩니다.
'전화를 받는다', '안 받는다'의 두 개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전화는 주인공이 숙취로 고생하게 된 원인, 전여친 사유리에게서 걸려 온 겁니다.
다짜고짜 '당장 만나고 싶다'고 이야기합니다.
이것도 '만나러 간다', '안 간다'의 선택지를 고를 수 있습니다.



그 후, '자동차로 이동', '왼쪽'같은 별 의미없어 보이는 선택지를 고른 후,
사유리와 만납니다.
마지막으로 '내 방'과 '사유리의 방' 중 어느 곳으로 이동할 것인지 결정합니다.
'사유리의 방'을 골라봅니다.



갑자기 웬 남자가 나타나더니 총을 쏴서, 총 맞고 둘 다 죽었습니다.
이렇게 엔딩 하나를 보게 되었군요.
이 엔딩 하나 보는데 10분도 안 걸렸습니다.

스토리가 짧았고, 선택지는 플레이어가 생각할 부분이 전혀 없었고,
왜 이러이러한 엔딩을 맞게 되었는지 설명도 부족합니다.
아직 실망하기는 이른데, 어차피 28개의 엔딩 중 하나의 엔딩일 뿐이기 때문이죠.
짧지만 강렬하고, 별다른 설명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엔딩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증폭됩니다.

하지만 결국은 실망하게 되는데, 남은 엔딩들도 전부 이런 식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열 받는 부분은 28개의 엔딩 중에 단 하나도
분량이 충실하고 복선들을 이어주는 엔딩이 없다는 점입니다.
딱 하나만 있었어도, 이 게임의 평가는 크게 상승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초반에 '전화를 안 받는다'와 '사유리와 안 만난다'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그걸 선택하면, 사유리가 등장하지 않고 다른 여자 캐릭터들이 등장합니다.
사유리와 함께하는 본편은 H씬이 충실하지 않기 때문에
그걸 보완하려고 이런 루트를 만든 것 같은데,
문제는 이런 엔딩이 28개 중 17개라는 점입니다. 절반이 넘어가잖아요.

본편이 허술하고, 쓸데없는 엔딩이 더 많으면 어쩌자는 거죠?
<노노무라병원사람들>을 생각해보세요.
원장 부인이 사건을 맡을 것인지 주인공 탐정에게 물어봅니다.
선택지로 '거절'할 수도 있죠. 거절하면 그냥 별 다를 게 없는 엔딩 하나입니다.
선택지는 있으되, 별 쓸모없는 곁가지는 버리고 본편을 더 충실하게 만들었잖아요.

<노노무라병원사람들>에서 주인공 탐정이 거절하고
병원을 나간 후에도 스토리가 끝나지 않았다면 어떨까요?
도시 한복판에서 여자를 만나 H씬이나 보여주는, 별 내용 없는 스토리가 추가되고,
정작 병원 내의 본 사건은 흐지부지하게 끝나버린다면요?
당연히 망하겠지요. 근데 전화벨이...가 바로 이런 식이라는 거에요.
쓸모없는 엔딩 17개를 만들 바에야, 본편을 제대로 만들었어야 합니다.


이 게임 이후로 PC-98 에로게는 멀티 엔딩 게임이 확연히 늘어났습니다.
하지만, 멀티 엔딩 에로게 시대의 문을 연 게임으로 평가받는 건
정작 이 게임보다 4개월 후에 발매된 <카와라자키가 일족>입니다.
전화벨이...는 <카와라자키가 일족>보다 먼저 나온 멀티 엔딩 게임이라는
타이틀 밖에 없는 게임일 뿐입니다.



<언젠가 어딘가에서>



언젠가 어딘가에서는 전화벨이...에서의 단점이 약간은 수정되었습니다.
에로틱하고 BAKA스러운 면은 강화되었죠.
멀티 엔딩 게임으로서의 장점은 여전히 부족합니다.
칵테일소프트 스스로도 멀티 엔딩의 장점을 살릴 수 없다고 판단한 건지
선택지 및 엔딩의 개수가 전화벨이...에 비해 줄어 들었습니다.

시작은 삑삑 거리는 시끄러운 효과음이 들리면서 시작됩니다.
이 소리가 무슨 소리인가로 <포케벨(우리나라의 삐삐)>, <가스 경보기>, <알람시계>
셋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진행하는 스토리이죠.
세 가지 스토리가 있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세 가지 스토리를 전부 클리어하면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선택지가 새로이 뜹니다. 더미 스토리 같은 느낌이죠.

이 게임은 기본적으로는 별거 없는 스토리이지만,
내용이 충실하기 때문에 전화 벨이...보다는 높이 평가합니다.
다만, 이 게임이 나온 95년도는 다른 멀티 엔딩 게임이 많이 나왔던 시기였고,
언젠가 어딘가에서가 그런 분위기 속에서 눈에 딱 띄는 점이 없다는 게 아쉽습니다.



총평하자면, 고전 에로게의 멀티 엔딩 시스템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한 게임들입니다.
이 게임 이전에도 <나오미 ~미소녀들의 관~>이나 <ANGEL>의 일부 스토리처럼
이 회사는 멀티 엔딩 시스템을 많이 활용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어찌 보면, 멀티 엔딩 게임의 유행을 미리 예견하고 있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작 만들어 낸 결과물이 아쉽다보니 아무 소용없는 일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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