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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21일 일요일

리뷰 : 트래블 정션(1996/6/28, 칵테일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트래블 정션>입니다.
여행 기획사 직원인 주인공과 여행객들의
남쪽 섬에서 벌어지는 러브코미디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프롤로그는 주인공이 최고 투어 회사에 면접을 보러 가는 장면부터 시작됩니다.
대변이 급해 화장실을 찾던 주인공은 실수로 건방진 사장 딸의 사무실로 들어갑니다.
다양한 착각 끝에 사장 딸은 주인공에게 반하게 됩니다.



면접에서 사장 딸과 다시 만나며 출세가도를 달리는 엔딩도 있지만,
본편에 들어가는 경우에는 주인공은 그 찬스를 살리지 못하고 탈락합니다.



그리하여 본편에서는 다 쓰러져 가는 여행회사에 취직한 주인공입니다.
주인공은 회사의 운명을 걸고, 남쪽 섬의 여행을 기획합니다.



남성은 주인공 하나 뿐이고 여행객 및 다른 여행사 직원은 전부 여성입니다.
여러 여성들과 얽히며 이런 저런 이벤트가 일어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연히 그곳에 와 있던, 주인공에게 반한 사장 딸이 
주인공을 발견하고 접근한다는 내용입니다.


기본적인 설정도 흥미롭고, 실제로 플레이해도 꽤 재미있는 러브코미디입니다.
이 시기 칵테일소프트가 잘 만들었던,
그래픽, 사운드, 캐릭터 등이 전반적으로 평균 이상인 게임이죠.


시스템적으로도 괜찮은 부분이 많은데
포인트 클릭 방식의 진보 역시 중요한 특징입니다.
마우스 포인터를 움직이면 조그마한 글씨를 통해
클릭해야 할 부분과 안 해도 되는 부분을 정확하게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엘프 사의 게임에 비하면, 좋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저를 열받게 했던 F&C 계열의 게임으로서는 훌륭한 시스템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멀티 엔딩 시스템이라는 점입니다.
<에로틱BAKA노벨> 시리즈 리뷰에서도 말했지만
칵테일 소프트는 멀티 엔딩 시스템에 관심이 많은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다만, <에로틱BAKA노벨> 시리즈에서는 멀티 엔딩만 있을 뿐,
개개의 스토리가 별로 좋지 않았죠.

이번에도 역시 엘프나 실키즈만큼 멀티 엔딩 시스템을 잘 사용하지는 못 했지만
전에 비해서는 훌륭한 발전이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바로 분기점에서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능입니다.
지금 게임으로 치면 플로우 차트 기능의 원시적인 형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처럼 이미지로 확인할 수는 없지만,
텍스트를 이용해서 게임을 그 시점부터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겁니다.
이 시절에는 세이브 갯수가 그렇게 많은 시절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름 요긴하게 쓸 수 있는 시스템이었죠.
꽤나 선진적인 시스템이었습니다.


역시 아쉬운 점은 별 이미지가 없다보니 이 분기점이 어디였는지
텍스트만으로는 제대로 파악하기가 힘들다는 점입니다.
이건 옛날이었으니 이해할 수 있는 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스토리도 그렇게 강렬한 엔딩이나 선택지가 없었다는 게 문제죠.
트래블 정션이 단순한 러브코미디가 아니라 서스펜스물이었다면
위기의 순간에서 나오는 선택지가 플레이어의 기억에 쉽게 남을 수 있었고,
이 시스템의 미흡함을 스토리로 보완해 줄 수 있었던 거죠.

다시 말해, 칵테일 소프트가 새로운 시스템을 구상한 것까지는 좋았지만,
이 시스템을 어떻게 활용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부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시스템도 스토리도 나쁘지 않았지만,
그 두 개의 조합이 다소 맞지 않았던 겁니다.


그리고, 칵테일소프트는 운조차도 따르지 않았는데
이 게임이 나온 지 불과 반 년후에,
엘프 사에서 <이 세계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한 소녀 YU-NO>를 발매합니다.



제가 단순히 엘프빠라서 오늘따라 엘프, 엘프하고 노래를 부른 게 아닙니다.
그만큼 이 게임이 엘프와 악연으로 묶여있기 때문이에요.

트래블 정션이 가진 분기점부터 시작하는 시스템은 크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시절을 참작하면 그래도 진보적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이죠.

하지만 불과 반 년후에 나온 게임이
ADMS라는 시각적으로 확연히 어디인지 알 수 있으면서도
세이브와 로드의 이동도 자유롭고 부드러운 시스템에,
더더욱이 시스템과 스토리의 시너지가 역대급이라는 평을 듣는 
PC-98 최고의 명작이었다는 게 문제입니다.

말이 반 년후지, 둘 다 똑같은 96년도에 나왔어요.
분기점에서 시작하는 시스템, 고작 그거 하나 때문에 
그 시절 끝판왕하고 비교당하는 게임이 되어 버린 겁니다.
어린 시절 축구교실 좀 같이 다녔다고, 
국가대표하고 비교당하는 조기 축구회 멤버같은 느낌입니다.
비교하면 비교할수록 초라해질 뿐이죠.



총평하자면, 지금이야 뭐, 칵테일소프트도 묻혔고 이 게임도 묻혔습니다.
이제는 비교당할 일조차 없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게임일 뿐이죠.

이번에도 역시 멀티 엔딩 시스템이나, 캐릭터 커스텀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칵테일소프트는 선두주자라는 상징성을 빼앗겼습니다.
미래의 트렌드는 기가 막히게 읽고 있었지만, 아무 것도 얻지 못했죠.
90년대야 칵테일소프트가 그 외에도 가진 게 많았지만요.

그런 슬픈 사연을 뒤로 하고, 게임 자체만 보면 괜찮습니다.
이 시기 칵테일소프트의 대표작 중 하나로 손색이 없는 게임입니다.

댓글 2개:

  1. yu-no 리뷰 계획은 없으시다고 들은 것 같은데 백개먼님이 글 속에 잠깐이라도 언급해주시니 반갑네요.. 그나저나 yu-no도 96년에 나왔다니 하급생이랑 비슷한 시기에 나온 걸까요? 둘 다 좋아하는 작품인데 엘프사는 당시에 정말 대단했군요

    이번에도 깔끔하고 재미있는 리뷰와 함께 적어주시는 정보들 잘 보고 갑니다. 칵테일소프트 게임은 늘 백개먼님 리뷰로만 접하고 딱히 직접 플레이해본 건 없는 것 같은데, 너무 잘 써주셔서 팬이 된 것 같아요(대부분 혹평이지만..)

    백개먼님의 '총평하자면~'이 나오는 단락이 하이라이트라 기대되기는 하는데 사실 저 부분이 나오면 글이 거의 끝난다는 뜻이라 항상 아쉽네요.

    이제 정말 본격적으로 추워지는데 감기 조심하시고 행복한 한 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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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kle p//
    YU-NO는 엘프 사 게임을 리뷰할 당시 리메이크가 곧 나오려고 하던 쯤이었기 때문에
    리메이크까지 플레이해 보고 리뷰하려고 미뤘습니다.
    정말 좋아하는 게임이기때문에 언젠가는 꼭 리뷰하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칵테일소프트의 게임은 시대를 고려하면 대부분 괜찮은 편인데
    스토리가 부족하다보니 제 기준상 혹평이 되어 버려서 아쉽습니다.
    사실 저는 칵테일소프트를 편애하는 편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칵테일소프트 게임은 2000년도를 전후해서 있다 보니
    도스 게임 리뷰에서는 제 애정이 표현이 안 되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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