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소니아가 몰락한 이후, 애니메이션 에로게의 새로운 상징이 된 회사는
우미츠키제작소, 훗날의 Jellyfish였습니다.
우미츠키제작소는 PC-98 후반부부터 애니메이션 에로게를 내기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소니아의 <Viper 시리즈>를 표절하기도 했죠.
하지만 소니아의 몰락시점에 <러브 에스컬레이터>라는 작품을 내면서 점점 성장했고,
애니메이션 그래픽만큼은 많은 게이머들에게 인정받는 회사가 되었습니다.
Jellyfish가 게임을 많이 낸 회사는 아니지만
일단 발매한 게임은 굉장한 화제성을 몰고 다닙니다.
꽤 오랫동안 소식이 없는 회사이지만 언제 또 갑자기 충격적인 신작이 나올지는
아무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 소개해 드릴 게임은 우미츠키제작소의 <러브 에스컬레이터>입니다.
'PC-98 최후의 대작'으로 불리는 게임입니다.
98년도에는 이미 윈도우즈용 게임이 대세였기 때문에
사실 시기가 다소 늦은 게임이었고 '최후의 대작'이라는 거창한 칭호도
명예롭기만 한 칭호는 아니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게임의 강점은 '리에'라는 캐릭터입니다.
다른 캐릭터도 여럿 나오기는 하지만 그냥 곁가지에 불과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을 재미있게 하기 위한 첫단계는
리에에게 애정을 가질 수 있냐에 달려 있습니다.
리에를 정말 좋아하는 사람조차
게임은 좀 별로였다는 평가를 하시는 분들이 많기 때문에
애정없이는 정말 플레이하기 힘든 게임입니다.
이 게임은 <LOVERS ~사랑에 빠지면~>이라는 제목으로
2003년도에 리메이크 되기도 했고,
이쪽이 익숙하신 분들도 많을 거라고 생각됩니다.
좀더 강력해진 그래픽과 보이스 추가로 인해
리에는 더더욱 귀엽습니다.
저도 일단 리메이크작 위주로 리뷰를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어느 날, 주인공의 친구 와키야가 주인공에게
좋아하는 여성이 생겼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바로 리에입니다. 주인공과 중학교 동창이죠.
와키야는 주인공에게 리에와 잘 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와키야의 간곡한 부탁에 주인공은 어쩔 수 없이 승낙하게 됩니다.
과거 회상에서 주인공과 리에의 중학생 시절이 나옵니다.
서로에게 호감을 품고 있으며,
연인되기 한 발짝 직전까지 갔던 사이였죠.
하지만, 이런 저런 사건으로 인해 진학 이후에는
인사만 겨우 하고 다니는 수준의 소원한 관계가 되었습니다.
주인공은 친구의 끊임없는 부탁에 의해 리에에게 접근하게 됩니다.
대화를 하게 되는데, 아직도 리에는 주인공에 대한 호감이
적지 않은 상태인 것 같습니다.
주인공은 와키야의 계획에 의해 리에를 놀이공원에 초청합니다.
전화 한 통만으로도 까무러치게 놀라는 리에인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주인공이 먼저 전화했던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랬던 주인공이 주말에 놀이공원까지 같이 가자고 하니
리에가 얼마나 부푼 기대를 품고 주말을 기다렸겠습니까?
그리하여 주인공, 와키야, 리에, 그리고 리에의 친구 마유미와
넷이서 놀이공원에 가게 됩니다.
주인공은 리에는 친구와 같이 다니도록 양보하고
자신은 까칠한 성격의 마유미와 같이 다닙니다.
주인공 친구 이외에 모두가 불행해진 놀이공원이었습니다.
다음에 리에를 만나게 되면, 착한 리에도 어지간히 분노했는지
'다시는 어디가자고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고 떠나려고 합니다.
다행히도, 아무리 쓰레기 같은 에로게 주인공이라도
게임 중 한 번은 각성하는 날이 오듯이
이 주인공은 이미 리에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확인하고 리에에게 고백하러 온 것입니다.
결국에는 리에와 잘 이어지고 해피엔딩이라는 결말입니다.
저의 러브 에스컬레이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여기까지 플레이했을 때는 굉장히 감동적이었고 만족스러웠습니다.
주인공이 좀 답답하기는 했지만
이 시기 주인공은 이런 부류의 주인공이 많았고,
나중에는 각성하기도 하니 큰 문제가 되지는 않았죠.
리에는 정말 귀여웠고, 스토리도 괜찮았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여기까지가 게임 내 시간으로 1개월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1년을 다루고 있다는 점이죠.
아직 무려 11개월이나 남아있었고
11개월동안 보여주는 수많은 것들이 저에게는 별 의미없거나 감점요소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만스러워 하는 건 역시 주인공 캐릭터입니다.
잠깐 각성했던 주인공은 리에와 사귀는 데 성공한 이후 다시 퇴화해 버립니다.
주인공은 리에와 친구를 잘 맺어주려고 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리에와 잘 되었죠.
결과적으로 친구를 배신하는 모양새가 되기는 했지만,
사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리에가 주인공이 좋다는 걸 어쩌겠습니까?
조연이 시건방지게 리에를 넘보는 거야말로 주제넘은 짓이었죠.
결과가 이렇게 된 건 어쩔 수 없다치고,
주인공이 사과를 하든, 절교를 하든 친구에게 진실을 말해야 할 의무는 있습니다.
근데, 차마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숨겨요.
며칠 숨기는 것도 아니고 몇 개월을 계속 숨깁니다.
아예, 시간을 끌다 보면 친구가 리에를 포기하지 않을까하는 요행까지 노립니다.
친구가 신나서 이것저것 도와달라고 하는 걸 거절도 못하고,
진실도 못 밝히고, 리에와는 신나게 사귀고 이게 무슨 네토라레인가요?
주인공은 불필요한 죄책감을 가지고
친구는 마냥 바보되는 스토리입니다.
또다른 문제점은 처음 1개월 이후의 스토리가
지나칠 정도로 H씬 위주라는 점입니다.
뽕빨물로서 취향이라는 분도 있지만
조교물과 비슷한 단점으로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게임이 아니라 작업을 하는 수준으로 귀찮은 과정을 반복해야합니다.
제 경우에는 H씬이 취향에서 어긋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데이트나 기타 이벤트가 많았더라면 더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었을 것 같지만
그렇지 못했죠.
정말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있었던 게임인만큼 아쉬움은 더더욱 컸습니다.
H씬에 주로 사용된 애니메이션에 관해서는
PC-98판, 리메이크판 모두 호불호가 갈리는 편입니다.
다만, 리메이크판의 첫 체험 애니메이션만은
이 게임의 격을 혼자 한 단계 높였다고 불릴정도로 전설적인 퀄리티죠.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저는 애니메이션 에로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입니다만
그런 저조차도 인정할 수 밖에 없는 높은 수준의 애니메이션이었습니다.
총평하자면, 게임 전체적으로는 봤을 때는 나쁜 점이 좋은 점보다 많긴 합니다.
캐릭터의 귀여움을 스토리와 시스템으로 작정하고 죽이는 급의 게임입니다.
그런 요소를 냉정하게 평가한다면, 평균 이하의 게임이 되겠죠.
하지만, 좋은 점은 분명히 있고, 그것을 그냥 버리기에는 아깝다고 생각됩니다.
저처럼 처음의 한 달과 리에의 귀여움이 마음에 드시는 분도 있고,
첫 체험 애니메이션이 마음에 드시는 분도 있겠죠.
뒷부분을 전부 버리더라도 플레이할 가치가 있다는 분도 있습니다.
정말로 버릴 생각이 있는 분께는 추천해도 괜찮을 것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np21//
답글삭제연애게임 취향이라도 잘 안 맞고
뽕빨물 취향이라도 살짝 아쉬운 게임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후반부에는 너무 무의미한 노가다 게임이 되어 버려서
오히려 게임 뒷부분을 크게 잘라서 가볍게 할 수 있는 게임으로 만드는 편이
좋았을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