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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0일 일요일

리뷰 : 요수전기 시리즈(D.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수전기> 3부작은 당시의 D.O.를 대표하는 시리즈였습니다.
특히 <요수전기2 ~여명의 전사들~>같은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PC-98시절 D.O.의 최고 걸작이었죠.


요수전기 이전에도 '요수'를 소재로 한 게임은
D.O. 설립 초기부터 계속 발매되었습니다.



요수전기 이전에 발매된 <요수 클럽>입니다. 땅따먹기 형식의 게임이죠.
이외에도 짝맞추기를 이용한 게임도 있었죠.
그러니까, D.O.는 일관적으로 무슨 게임이라도 좋으니까
그냥 요수가 촉수로 여자를 습격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땅따먹기라도 좋았고, 짝맞추기라도 좋았으며,
SRPG라도 좋았던 겁니다.
그렇게 발매된 것이 바로 요수전기 시리즈의 1편 '요수전기 ~A.D. 2048~'이었던 거죠.


요수전기 시리즈의 배경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SF입니다.
핵전쟁 이후의 황폐화된 세계에서, 인간들을 습격하는 요수와 맞서 싸우는
대 요수 특수 경찰 A.S.S.P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기동대 대장으로서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A.S.S.P 대원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게임 시스템은 3부작이 약간씩 다르지만 전반적인 틀은 비슷합니다.
다른 요소들이 시리즈를 거듭하며 크게 발전한 것에 비해
게임 시스템이 거의 발전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SRPG로서 시스템은 꽤 불편한 편입니다.


'사선 제한 시스템'처럼 독특한 시스템도 있습니다.
유닛들은 대부분 원거리 공격을 하는데,
공격범위 사이에 유닛이나 장애물이 있으면
그 장애물을 넘어서 공격할 수 없는 시스템이죠.
아군 유닛이라도 장애물로 취급되어 뚫고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총은 곡사화기가 아닌 직사화기이기 때문에
고증에 맞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적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군이 유리한 측면도 있습니다. 괜찮은 시스템이죠.



아쉬운 부분은 공격 범위를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냥 공격할 수 있는 유닛만을 보여줍니다.
내가 왜 저 유닛을 공격 못 하는지,
어디로 이동해야 저 유닛을 공격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아요.
사선 제한 시스템은 좋았지만, 그 시스템을 뒷받침 해주는 기능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다른 부분은 옛날 게임이라는 이유로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지만
저를 진짜로 열받게 하는 것은 바로 '명중률'입니다.
명중률이 지나칠 정도로 낮습니다.
명중률이 70프로, 60프로 이렇게 뜨는데
체감상 그보다 훨씬 낮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무슨 공격만 하면 빗나갑니다.

필살기도 있는데 여러 유닛 동시 공격이나, 두 번 연속 공격입니다.
근데 실상은 여러 유닛 빗나가기와 두 번 연속 빗나가기입니다.
저격이라고 피해와 명중률이 올라가는 필살기도 있는데
이게 가장 유용한 필살기입니다.

적도 명중률이 안 좋은 유닛이 많기 때문에
게임이 아군도 다 피하고, 적도 다 피하는
헛심공방으로 진행돼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군에게는 턴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결국 플레이어가 손해를 보는 시스템입니다.

게다가, 심지어 적 유닛들이 싸우다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 다닙니다.
개별 유닛이 HP가 없을 때, 도망가는 정도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숫자가 부족하면 풀피 유닛도 도망쳐요.
명중률도 낮은데 도망다니는 유닛들까지 잡으러 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대체, SRPG 게임에 공격 명중률 30프로 나오는 적은 왜 나오는 겁니까?
아군 유닛 여럿이 모여서 집중 공격을 하는데도 잡는데 다섯 턴이 걸립니다.
보스 유닛도 아닌데 잡는데 다섯 턴이 걸려요.

중후반부부터는 이 분야의 끝판왕이 스테이지마다 하나 둘씩 등장하는데 분통 터집니다.
명중률이 30프로가 나오는 건 그렇다 치고,
'HP 흡수 스킬'과 '연속 공격 스킬'까지 달고 있습니다.
제가 유닛 넷으로 다굴치면 다 피하고 8정도 데미지만 들어가는데
HP 흡수로 20을 회복해 버립니다.
아군 유닛 HP가 흡수되면 제 피도 빨리는 느낌이에요.

포위해서 공격하면 HP 흡수로 반격해 옵니다.
길을 터주면 불리할 때는 그냥 도망가요.
그래서 도망칠 길을 만들어 주고 때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근데, 이 유닛이 날아다녀요. 아군 유닛은 못 날아다니고요.
도망치게 놔두면 절대 못 쫓아갑니다.

보스급도 아닌 유닛 하나를 잡는데
출격한 유닛의 절반 이상을 투입하고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섯 유닛이 출격하는데 넷을 투입하고도 잡을 수가 없어요.

어떤 스테이지에서는, 유닛 넷으로 집중 공격을 했는데
그 유닛 하나를 잡기는커녕, 아군 두 유닛이 당해 버렸습니다.
나머지 두 유닛을 투입해서 무려 9턴이나 써서 겨우 그 유닛 하나를 잡았죠.
4+2 유닛이 9턴동안 때려서 겨우 하나를 잡았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반대쪽에 적이 하나 숨어 있어서 턴제한을 넘겨 게임오버 당했습니다.
이게 무슨 술래잡기 게임인가요?
대체 왜 한 대도 안 맞은 적이 도망가서 숨는 건데요?

명중률을 올리기 위해 오만가지 방법을 다 써 봤습니다.
매뉴얼에서 이동을 안 하고 공격을 하면 명중률이 올라간다고 해서 그렇게 해 봤고,
총 종류마다 명중률 상성이 있다고 해서 이런 저런 시도도 많이 했어요.
인터넷에서도 공략법을 찾아봤는데,
'명중률 낮은 유닛은 냅두고 주위의 유닛을 먼저 처리하라'는 팁밖에 못 받았습니다.

명중률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낮아서,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제가 잘못하고 있는 게 없어요.
제가 뭔가 실수한 게 있다면 누군가 좀 알려주세요.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요수전기2의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기 직전의 스샷입니다.
게임 시스템에 너무 지독하게 당해서 성취감도 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성공했습니다.



이렇게까지 개고생을 하면서 요수전기 시리즈를 플레이할 가치는 있습니다.
제 리뷰 패턴상, 이 정도로 욕을 했으면 
플레이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이 게임은 플레이할 가치가 있습니다.



1편은 사실 별 내용이 없습니다. 넘어가도 큰 상관은 없지만
똑같은 캐릭터가 계속 나오는 시리즈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익히는 관점에서는 플레이할 필요가 있죠.

속 요수전기는 전작에 비해 스토리와 볼륨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스토리에 결정타는 없지만, 적당히 괜찮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요수전기2와 스토리의 연계성이 크기 때문에
요수전기2를 플레이하겠다면 우선적으로 예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수전기2는 시리즈의 완결편으로서 게임성을 제외한 모든 것이 향상되었습니다.
기존 캐릭터의 매력을 이끌어 내는 각자의 특수한 상황,
신 캐릭터와의 갈등과 타협해가는 과정,
중요 인물마저 죽어 나가는 후반부의 시리어스한 전개,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캐릭터가 어느새 습격당하고 있는 충격적인 장면 등이
모두 훌륭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은 마무리 엔딩입니다.
콜드 슬립을 거절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다음 세계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 보겠다는 대원들의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요수전기 1편의 리메이크와 속 요수전기의 리메이크는 2006년에 나왔습니다.
시스템이 다소 개선되었습니다.
제가 제기했던 사선 제한 시스템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죠.

문제는 어느정도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에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시스템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13년전의 불편함을 살리는 방향으로 리메이크 되었죠.

공격하면 캐릭터들의 대사로 '공격 성공했습니다.', 
'공격이 빗나갔습니다.'라고 합니다.
또한 공격을 받으면 '공격 받았습니다.', '공격 피했습니다.'라고 하죠.
공격 할 때, 받을 때마다 쓸데없는 대사를 해서 게임 진행을 방해합니다.

원작에서도 그런 대사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그런 대사가 없었다면 
화면 효과가 부족하고 게임 진행이 너무 빨라서
플레이어가 상황 파악을 못 했을 겁니다.
그 대사는 부족한 PC-98의 시스템에서
상황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는 대사였던 겁니다.

근데, 그게 왜 화면 효과가 충분한 리메이크에도 있냐는 거죠.
'공격 받았습니다'라고 하는데 저도 다 보고 있습니다. 저도 눈이 있다고요. 
쓸데없이 클릭수만 늘어나고 게임 진행만 방해 되잖아요.

전투 애니메이션 옵션은 '욕 나올 정도로 느림'과 '생략' 단 두 개 뿐입니다.
중간이 없어요. '공격 받았습니다' 이런 소리 할 시간에
스피디한 전투 애니메이션 옵션을 만들 생각을 했어야죠.



아예, 더 불편해진 점도 있는데
이동하거나 공격하면 '예/아니오'로 확인하는 창이 뜬다는 점입니다.
이동하면서 공격하면 이동할 때 한 번, 공격할 때 한 번, 총 두 번 확인창이 뜹니다.
다행히도 속 요수전기 리메이크에서는 두 번 물어보지 않습니다만
이런 쓸데없는 기능은 대체 누가 생각하는 겁니까?
게임이 심각할 정도로 불편해지잖아요.
원작에도 이따위 시스템은 없었어요.

게다가 제가 정말 원수같이 생각하는 명중률의 문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리메이크 쪽이 더 편리하기는 하지만
시대를 고려하면 최악인 수준의 시스템입니다.



리메이크의 그래픽은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입니다.
저는 나름 좋아하는 원화가인데 게임의 매력을 원작에 비해
못 살린 것같은 느낌을 주기는 합니다.

더 아쉬운 점은 CG 하나 제대로 추가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죠.
그보다 더더욱 비판 받는 점은 대사도 제대로 추가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 요수가 습격하는 H씬은 CG만을 보여주는 수준입니다.
대사가 거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이지만
옛날 게임이고 볼륨에 한도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메이크는 그러면 안 돼죠.
06년 나온 에로게의 요수 H씬이 고작 4클릭만에 끝나 버리면 어쩌자는 거죠?
게임성을 개선하지 못했다면, CG나 스토리적인 부분을 강화했어야죠.

말씀드렸다시피, 요수전기 1편은 별 내용없는 게임입니다.
그런 게임을 리메이크하겠다면,
SRPG요소를 편리하게 만들거나, 스테이지를 다수 추가하거나,
캐릭터나 스토리를 추가하거나, H씬이라도 빵빵하게 만들던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속 요수전기'와 통합 리메이크를 했어야죠.


하지만, 진짜 정답은 그냥 1편은 리메이크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봅니다.
왜냐구요? 가장 중요한 명작 요수전기2는 리메이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위에서 말했던 땅따먹기 게임 <요수 클럽>부터 시작해서
속 요수전기까지 리메이크가 되었지만
요수전기2 차례에서 D.O.가 몰락해 버렸어요.

그러게 왜 걸작을 놔두고 쓸데없는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거죠?
지금 즐길 수 있는 요수전기2는 96년도에 나온 윈도우 이식판이 그나마 최선입니다.
보이스는 포함되어 있지만, 전투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은 판입니다.



총평하자면, 시리즈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요수전기 시리즈는 갈수록 훌륭해지며
마지막에는 누적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보통 이렇게까지 훌륭한 엔딩을 보면,
SRPG에서 쌓였던 제 원한들은 눈녹듯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이 게임은 눈이 너무 많이 왔습니다.
머리 속에서 저울질해 볼 때, 저에게는 마이너스가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장점이 확실한 작품입니다. PC-98 시절의 명작 중 하나로 손색이 없어요.
제대로 된 리메이크가 있어서 제가 좀 더 편리하게 엔딩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평가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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