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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월 27일 일요일

리뷰 : 브란마커2(1995/7/28,D.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PC-98시절, D.O.의 이미지는 'RPG'와 '촉수'였습니다.
이미 리뷰한 <돌아가는 길에는 위험이 잔뜩> 이외에도
<EXTERLIEN>, <크리스탈리날 ~봉마의 미궁~>, <루쥬의 전설>,
그리고 <브란마커> 시리즈 등 D.O.는 RPG를 많이 발매했습니다.

제가 이 게임들의 리뷰를 일일히 하지 않는 이유는
모두 특출난 점은 없지만 무난하게 재미있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그 시절은 정말 좋은 RPG가 많이 나오던 시절이었고
D.O.의 게임들이 그런 게임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만큼 좋지는 않습니다.
단순한 시스템이었고, 평범한 스토리였죠.



명작 RPG들의 틈새시장을 노리기 위해
D.O.가 내세운 점은 귀여운 캐릭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결국은 에로게 회사인 D.O.에게는 최고의 장점이라고 할만 했죠.

위의 CG는 <크리스탈리날>의 CG입니다.
갑자기 여전사가 나타나서 히로인을 납치하려고 주인공을 공격합니다.
주인공은 당연히 히로인의 납치를 막으려고 나서지만,
정작 히로인이 결정권은 자신에게 있다며 앞으로 나섭니다.
그리고 여전사에게 보스가 잘생겼는지 물어봅니다.



여전사가 공격하다 말고 보스의 미모를 칭찬하는 걸즈 토크 모드로 들어갑니다.



<루쥬의 전설>에서는 주인공인 여성의 꿈이 '용사님과 결혼하는 것'입니다.
마왕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보고 그를 쓰러뜨릴 용사를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납니다.
정작 여행에서는 용사를 만나기는커녕,
밤에 레즈비언 동료에게 습격당하고, 마왕에게 스토킹이나 당하는 고난의 연속입니다.


뭐, 이런 식의 귀여운 캐릭터와
별로 심각하지 않은 개그 스토리, 괜찮은 그래픽, 늘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촉수 등과 더불어
쉽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난이도 밸런스를 가진 게임입니다.
가볍게 즐길만한 게임으로서 욕할 점이 거의 없어요.


아무튼, D.O.의 RPG를 모두 스킵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제가 그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임 <브란마커2>를 리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브란마커> 1편은 어느 시골 구석 섬의 여전사 샤미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습니다.
젊은 남자들은 모두 섬 밖으로 여행을 떠났기 때문에
샤미가 여전사로서 싸우는 이야기입니다.



제목인 브란마커는 게임 엔딩에서나 등장하는 전사의 징표입니다.
왕가에서 그렇게 심부름을 시키고 상으로 별 쓸모없는 목걸이나 하나 준 거죠.
샤미가 브란마커를 걸고 섬밖으로 떠나면서 1편은 종료됩니다.



1편에서 존재감도 없던 '브란마커'는 사실 대단한 아이템이었습니다.
섬 외부에서도 '브란마커의 전사'는 특별한 존재로 칭송받습니다.
근데, 정작 샤미는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브란마커를 도둑 맞습니다.
샤미가 브란마커의 의미를 이해하고 싸워 나가는 것이
이 게임의 주요 스토리입니다.


옆에 있는 남자는 1편에서부터 같이 여행한 소꿉친구로 이름은 뷔가입니다.
1편에서는 섬밖으로 나갔다가 실패하고 돌아온 실없는 캐릭터에 불과합니다.



2편에서의 뷔가는 이미지가 정말 많이 변했습니다.
실없어 보이는 모습은 똑같지만, 사실은 허술한 척하는 실력자였습니다.

나름 이름을 떨친 전사였으며, 나라의 공주님을 비롯한 여러 여자들에게 인기도 많습니다.
실패하고 섬으로 돌아온 척해서 샤미와 만났지만,
사실 그 만남에는 진지한 목적이 있었던 거죠.
세계관이 확장되면서 보이는 뷔가의 캐릭터 변화가 꽤 마음에 듭니다.



탑뷰 방식의 필드형 RPG입니다. 난이도는 조금 어렵지만 적절한 편이죠.
적이 강하기는 하지만, 노가다만 조금하면 금방 대등하게 싸울 수 있습니다.

진짜 어려운 건 퍼즐입니다.
아무리 찾아도 길이 안 보여서 같은 곳에서 수 시간을 헤멘 적도 있어요.
맵이 상당히 큰 편이다보니, 어떤 식으로 퍼즐을 풀어야 할지
한 눈에 들어오지가 않습니다.



전반적으로는, 큰 결점이 없는 좋은 게임입니다.
딱히 비판할 점은 없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속편 떡밥을 많이 뿌렸음에도 불구하고 브란마커3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죠.



브란마커 1편은 2006년에 리메이크도 나왔습니다.
1편의 리메이크를 시작으로 2편 리메이크, 그리고 3편 제작까지 염두에 둔 것 같지만
결국 2편 리메이크도 나오지 못했습니다.



총평하자면, 좀 더 좋은 게임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하지만,
잠재력을 꽃 피우는 건 3편으로 미뤄 버렸고 결국 3편은 나오지 않았습니다.
옛날에는 3편을 기다리는 사람도 있었겠지만, 이제는 너무 늦어버렸죠.

가볍게 즐기기에는 별 문제없는 RPG입니다.
귀여운 미소녀 고전 RPG를 찾는 분이라면
그 시절 D.O.에 관심을 가져봐도 좋다고 생각됩니다.

2019년 1월 20일 일요일

리뷰 : 요수전기 시리즈(D.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요수전기> 3부작은 당시의 D.O.를 대표하는 시리즈였습니다.
특히 <요수전기2 ~여명의 전사들~>같은 경우는
논란의 여지가 없는 PC-98시절 D.O.의 최고 걸작이었죠.


요수전기 이전에도 '요수'를 소재로 한 게임은
D.O. 설립 초기부터 계속 발매되었습니다.



요수전기 이전에 발매된 <요수 클럽>입니다. 땅따먹기 형식의 게임이죠.
이외에도 짝맞추기를 이용한 게임도 있었죠.
그러니까, D.O.는 일관적으로 무슨 게임이라도 좋으니까
그냥 요수가 촉수로 여자를 습격하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겁니다.

땅따먹기라도 좋았고, 짝맞추기라도 좋았으며,
SRPG라도 좋았던 겁니다.
그렇게 발매된 것이 바로 요수전기 시리즈의 1편 '요수전기 ~A.D. 2048~'이었던 거죠.


요수전기 시리즈의 배경은 포스트 아포칼립스 SF입니다.
핵전쟁 이후의 황폐화된 세계에서, 인간들을 습격하는 요수와 맞서 싸우는
대 요수 특수 경찰 A.S.S.P의 스토리를 다루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기동대 대장으로서 여성으로만 이루어진 A.S.S.P 대원들을
지휘하는 역할을 맡고 있습니다.



게임 시스템은 3부작이 약간씩 다르지만 전반적인 틀은 비슷합니다.
다른 요소들이 시리즈를 거듭하며 크게 발전한 것에 비해
게임 시스템이 거의 발전하지 않은 것은 상당히 아쉬운 부분입니다.
SRPG로서 시스템은 꽤 불편한 편입니다.


'사선 제한 시스템'처럼 독특한 시스템도 있습니다.
유닛들은 대부분 원거리 공격을 하는데,
공격범위 사이에 유닛이나 장애물이 있으면
그 장애물을 넘어서 공격할 수 없는 시스템이죠.
아군 유닛이라도 장애물로 취급되어 뚫고 공격할 수가 없습니다.

총은 곡사화기가 아닌 직사화기이기 때문에
고증에 맞는 시스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적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아군이 유리한 측면도 있습니다. 괜찮은 시스템이죠.



아쉬운 부분은 공격 범위를 정확히 보여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냥 공격할 수 있는 유닛만을 보여줍니다.
내가 왜 저 유닛을 공격 못 하는지,
어디로 이동해야 저 유닛을 공격할 수 있는지 명확히 보여주지 않아요.
사선 제한 시스템은 좋았지만, 그 시스템을 뒷받침 해주는 기능이 부족했다고 봅니다.


다른 부분은 옛날 게임이라는 이유로 불편함을 감수할 수 있지만
저를 진짜로 열받게 하는 것은 바로 '명중률'입니다.
명중률이 지나칠 정도로 낮습니다.
명중률이 70프로, 60프로 이렇게 뜨는데
체감상 그보다 훨씬 낮은 것 같은 기분입니다.
무슨 공격만 하면 빗나갑니다.

필살기도 있는데 여러 유닛 동시 공격이나, 두 번 연속 공격입니다.
근데 실상은 여러 유닛 빗나가기와 두 번 연속 빗나가기입니다.
저격이라고 피해와 명중률이 올라가는 필살기도 있는데
이게 가장 유용한 필살기입니다.

적도 명중률이 안 좋은 유닛이 많기 때문에
게임이 아군도 다 피하고, 적도 다 피하는
헛심공방으로 진행돼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얼핏 보면 공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아군에게는 턴 제한이 있기 때문에
결국 플레이어가 손해를 보는 시스템입니다.

게다가, 심지어 적 유닛들이 싸우다 불리하다 싶으면 도망 다닙니다.
개별 유닛이 HP가 없을 때, 도망가는 정도가 아니라
전반적으로 숫자가 부족하면 풀피 유닛도 도망쳐요.
명중률도 낮은데 도망다니는 유닛들까지 잡으러 다녀야 합니다.


그리고 대체, SRPG 게임에 공격 명중률 30프로 나오는 적은 왜 나오는 겁니까?
아군 유닛 여럿이 모여서 집중 공격을 하는데도 잡는데 다섯 턴이 걸립니다.
보스 유닛도 아닌데 잡는데 다섯 턴이 걸려요.

중후반부부터는 이 분야의 끝판왕이 스테이지마다 하나 둘씩 등장하는데 분통 터집니다.
명중률이 30프로가 나오는 건 그렇다 치고,
'HP 흡수 스킬'과 '연속 공격 스킬'까지 달고 있습니다.
제가 유닛 넷으로 다굴치면 다 피하고 8정도 데미지만 들어가는데
HP 흡수로 20을 회복해 버립니다.
아군 유닛 HP가 흡수되면 제 피도 빨리는 느낌이에요.

포위해서 공격하면 HP 흡수로 반격해 옵니다.
길을 터주면 불리할 때는 그냥 도망가요.
그래서 도망칠 길을 만들어 주고 때리는 방법도 있습니다.
근데, 이 유닛이 날아다녀요. 아군 유닛은 못 날아다니고요.
도망치게 놔두면 절대 못 쫓아갑니다.

보스급도 아닌 유닛 하나를 잡는데
출격한 유닛의 절반 이상을 투입하고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섯 유닛이 출격하는데 넷을 투입하고도 잡을 수가 없어요.

어떤 스테이지에서는, 유닛 넷으로 집중 공격을 했는데
그 유닛 하나를 잡기는커녕, 아군 두 유닛이 당해 버렸습니다.
나머지 두 유닛을 투입해서 무려 9턴이나 써서 겨우 그 유닛 하나를 잡았죠.
4+2 유닛이 9턴동안 때려서 겨우 하나를 잡았다고요.
그래서 어떻게 됐는지 아세요?



반대쪽에 적이 하나 숨어 있어서 턴제한을 넘겨 게임오버 당했습니다.
이게 무슨 술래잡기 게임인가요?
대체 왜 한 대도 안 맞은 적이 도망가서 숨는 건데요?

명중률을 올리기 위해 오만가지 방법을 다 써 봤습니다.
매뉴얼에서 이동을 안 하고 공격을 하면 명중률이 올라간다고 해서 그렇게 해 봤고,
총 종류마다 명중률 상성이 있다고 해서 이런 저런 시도도 많이 했어요.
인터넷에서도 공략법을 찾아봤는데,
'명중률 낮은 유닛은 냅두고 주위의 유닛을 먼저 처리하라'는 팁밖에 못 받았습니다.

명중률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낮아서, 제가 뭘 잘못하고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근데 아무리 찾아봐도 제가 잘못하고 있는 게 없어요.
제가 뭔가 실수한 게 있다면 누군가 좀 알려주세요. 제보 기다리겠습니다.



요수전기2의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기 직전의 스샷입니다.
게임 시스템에 너무 지독하게 당해서 성취감도 없었지만,
그래도 저는 성공했습니다.



이렇게까지 개고생을 하면서 요수전기 시리즈를 플레이할 가치는 있습니다.
제 리뷰 패턴상, 이 정도로 욕을 했으면 
플레이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게 자연스러운 흐름이지만 
이 게임은 플레이할 가치가 있습니다.



1편은 사실 별 내용이 없습니다. 넘어가도 큰 상관은 없지만
똑같은 캐릭터가 계속 나오는 시리즈이기 때문에,
캐릭터를 익히는 관점에서는 플레이할 필요가 있죠.

속 요수전기는 전작에 비해 스토리와 볼륨이 크게 향상되었습니다.
스토리에 결정타는 없지만, 적당히 괜찮은 스토리를 가지고 있죠.
그리고, 요수전기2와 스토리의 연계성이 크기 때문에
요수전기2를 플레이하겠다면 우선적으로 예습하는 것이 좋습니다.



요수전기2는 시리즈의 완결편으로서 게임성을 제외한 모든 것이 향상되었습니다.
기존 캐릭터의 매력을 이끌어 내는 각자의 특수한 상황,
신 캐릭터와의 갈등과 타협해가는 과정,
중요 인물마저 죽어 나가는 후반부의 시리어스한 전개,
방금 전까지 웃고 떠들던 캐릭터가 어느새 습격당하고 있는 충격적인 장면 등이
모두 훌륭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훌륭한 것은 마무리 엔딩입니다.
콜드 슬립을 거절하며 죽음을 각오하고
다음 세계를 준비하는 과정을 지켜 보겠다는 대원들의 모습이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요수전기 1편의 리메이크와 속 요수전기의 리메이크는 2006년에 나왔습니다.
시스템이 다소 개선되었습니다.
제가 제기했던 사선 제한 시스템에 대한 문제도 어느 정도 해결되었죠.

문제는 어느정도 개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2006년에 나왔다고는 믿을 수 없을만큼
시스템이 그다지 좋지 않다는 점입니다. 
13년전의 불편함을 살리는 방향으로 리메이크 되었죠.

공격하면 캐릭터들의 대사로 '공격 성공했습니다.', 
'공격이 빗나갔습니다.'라고 합니다.
또한 공격을 받으면 '공격 받았습니다.', '공격 피했습니다.'라고 하죠.
공격 할 때, 받을 때마다 쓸데없는 대사를 해서 게임 진행을 방해합니다.

원작에서도 그런 대사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원작에서는 그런 대사가 없었다면 
화면 효과가 부족하고 게임 진행이 너무 빨라서
플레이어가 상황 파악을 못 했을 겁니다.
그 대사는 부족한 PC-98의 시스템에서
상황을 정리해 주는 역할을 하는 대사였던 겁니다.

근데, 그게 왜 화면 효과가 충분한 리메이크에도 있냐는 거죠.
'공격 받았습니다'라고 하는데 저도 다 보고 있습니다. 저도 눈이 있다고요. 
쓸데없이 클릭수만 늘어나고 게임 진행만 방해 되잖아요.

전투 애니메이션 옵션은 '욕 나올 정도로 느림'과 '생략' 단 두 개 뿐입니다.
중간이 없어요. '공격 받았습니다' 이런 소리 할 시간에
스피디한 전투 애니메이션 옵션을 만들 생각을 했어야죠.



아예, 더 불편해진 점도 있는데
이동하거나 공격하면 '예/아니오'로 확인하는 창이 뜬다는 점입니다.
이동하면서 공격하면 이동할 때 한 번, 공격할 때 한 번, 총 두 번 확인창이 뜹니다.
다행히도 속 요수전기 리메이크에서는 두 번 물어보지 않습니다만
이런 쓸데없는 기능은 대체 누가 생각하는 겁니까?
게임이 심각할 정도로 불편해지잖아요.
원작에도 이따위 시스템은 없었어요.

게다가 제가 정말 원수같이 생각하는 명중률의 문제도 전혀 개선되지 않았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리메이크 쪽이 더 편리하기는 하지만
시대를 고려하면 최악인 수준의 시스템입니다.



리메이크의 그래픽은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입니다.
저는 나름 좋아하는 원화가인데 게임의 매력을 원작에 비해
못 살린 것같은 느낌을 주기는 합니다.

더 아쉬운 점은 CG 하나 제대로 추가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죠.
그보다 더더욱 비판 받는 점은 대사도 제대로 추가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원작에서 요수가 습격하는 H씬은 CG만을 보여주는 수준입니다.
대사가 거의 없어요. 많은 사람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이지만
옛날 게임이고 볼륨에 한도가 있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있습니다.
하지만, 리메이크는 그러면 안 돼죠.
06년 나온 에로게의 요수 H씬이 고작 4클릭만에 끝나 버리면 어쩌자는 거죠?
게임성을 개선하지 못했다면, CG나 스토리적인 부분을 강화했어야죠.

말씀드렸다시피, 요수전기 1편은 별 내용없는 게임입니다.
그런 게임을 리메이크하겠다면,
SRPG요소를 편리하게 만들거나, 스테이지를 다수 추가하거나,
캐릭터나 스토리를 추가하거나, H씬이라도 빵빵하게 만들던가
이도저도 아니라면 '속 요수전기'와 통합 리메이크를 했어야죠.


하지만, 진짜 정답은 그냥 1편은 리메이크하지 않았어야 했다고 봅니다.
왜냐구요? 가장 중요한 명작 요수전기2는 리메이크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죠.
위에서 말했던 땅따먹기 게임 <요수 클럽>부터 시작해서
속 요수전기까지 리메이크가 되었지만
요수전기2 차례에서 D.O.가 몰락해 버렸어요.

그러게 왜 걸작을 놔두고 쓸데없는 작품을 리메이크하는 거죠?
지금 즐길 수 있는 요수전기2는 96년도에 나온 윈도우 이식판이 그나마 최선입니다.
보이스는 포함되어 있지만, 전투 시스템은 개선되지 않은 판입니다.



총평하자면, 시리즈 전체적으로 봤을 때, 요수전기 시리즈는 갈수록 훌륭해지며
마지막에는 누적된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매력을 지닌 작품입니다.

보통 이렇게까지 훌륭한 엔딩을 보면,
SRPG에서 쌓였던 제 원한들은 눈녹듯이 사라지기 마련이지만
이 게임은 눈이 너무 많이 왔습니다.
머리 속에서 저울질해 볼 때, 저에게는 마이너스가 더 컸던 것 같아요.

그래도 장점이 확실한 작품입니다. PC-98 시절의 명작 중 하나로 손색이 없어요.
제대로 된 리메이크가 있어서 제가 좀 더 편리하게 엔딩에 접근할 수 있었다면
평가가 달라졌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2019년 1월 13일 일요일

리뷰 : 잡음영역(1994, D.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잡음영역>은 저택물이면서 멀티엔딩 시스템을 가진 게임입니다.
PC-98 시절에 그런 특징을 가진 작품은
대표적으로 <카와라자키가 일족>을 들 수 있습니다.
잡음영역은 <카와라자키가 일족>의 영향을 어느 정도 받은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잡음영역이 <카와라자키가 일족>과 비교할 때,
뛰어난 점은 호러 쪽이라고 생각됩니다.
배드 엔딩 사망 장면의 잔인함도 <카와라자키가 일족>에 비해 심한 편이지만,
그보다 저 위 마키에의 표정을 보세요. 얼굴만 봐도 벌써 무섭잖아요.

스토리도 예사롭지 않지만, CG가 정말 좋은 것 같습니다.
원화는 제 마음에 드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게임의 분위기와 잘 맞습니다.




호러 분위기는 좋았지만 아쉬운 점도 많은데
우선 호러만 강조하다보니 쉬어갈 타이밍이 없습니다.

쌍둥이 루트는 이제 좀 쉬어가나 하는 타이밍에 주인공을 찔러 버립니다.
갑작스러운 배드 엔딩이기도 했고, 찌른 이유도 소름끼치지만
저는 무슨 일이 생길 거라로 어느 정도 짐작했습니다.

게임 자체가 너무 긴장된 흐름으로 가다보니, 방심할 틈을 주지 않고
반전도 충격이 약해집니다. 강약조절을 했으면 어땠을까 싶군요.



가장 아쉬웠던 점은 마음에 드는 캐릭터가 없었다는 점입니다.
저는 <카와라자키가 일족>의 미사코를 상당히 좋아했는데,
미사코 같은 밝은 캐릭터가 잡음영역에도 있었다면 참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캐릭터의 존재만으로 분위기를 환기시킬 수 있고
위에서 언급한 강약조절도 쉽게 되었을 것입니다.

또한, 잡음영역은 쓸데없는 엔딩이 많고, 반복적인 구간이 많아서
플레이하기가 좀 피곤한 시스템입니다.
<카와라자키가 일족>도 마찬가지였고,
그 게임에서는 배드엔딩만 수십 번을 볼 정도였습니다.

그래도 <카와라자키 일족>에서 비교적 덜 피로했던 이유는
'미사코와 함께 이 미친 곳을 꼭 탈출하겠어.'라는 확실한 동기 부여가 있었기 때문이죠.
잡음영역은 그런 동기가 부족했습니다.

옛날에는 잡음영역이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게임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이 게임에서 아쉬웠던 건 결국 캐릭터였던 것 같습니다.



잡음영역은 2001년에 D.O. 클래식으로 리메이크 되었습니다.
다른 리뷰에서도 이야기하겠지만, D.O.는 자신들의 장단점을 잘 모르고
리메이크를 했다고 생각됩니다.

시나리오는 그대로인 채로, 캐릭터 디자인과 원화를 완전히 교체했다고
당당히 이야기하는데 그게 바로 문제입니다.



원작보다 안 무섭잖아요. CG가 분위기를 못 살려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D.O. 공식 홈페이지 리메이크 페이지에 인물 소개가 잘못 나왔습니다.
마리코 소개란에 미사오 CG를 걸어 놨어요.
아무리 혹평받은 리메이크라지만 이러면 안 돼죠.



총평하자면, 사실 <카와라자키가 일족>과의 비교는 취향 차이입니다.
잡음영역의 분위기가 더 좋다는 분도 많겠죠.

잡음영역도 충분히 인상깊은 게임입니다.
고전 저택물에 관심이 있으신 분에게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2019년 1월 6일 일요일

리뷰 : 별모래 이야기 시리즈(D.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O.의 PC-98 게임 중에서
별 내용이 없는 <M운라이트 린샹>과
옴니버스 게임 시리즈인 <DOR> 시리즈는 리뷰하지 않을 예정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별모래 이야기> 시리즈를 리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별모래 이야기> 1991년 3월 5일 발매
<별모래 이야기2> 1992년 6월 25일 발매
<별모래 이야기3> 1995년 11월 17일 발매

별모래 이야기 시리즈는 기본적으로 추리물의 구성을 띄고 있는 작품입니다.
세 작품 모두 살인 혹은 살인 미수 사건부터 스토리가 시작됩니다.



시스템은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입니다.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 때와 마찬가지로
등장인물 A가 B,C,D...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B가 A,C,D...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일일히 물어보는 선택지가 있습니다.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에서 설명했다시피
전혀 쓸모없고 오히려 게임에 방해가 되는 선택지입니다.

게다가 등장인물 중 하나는 '좋아', '싫어' 수준의 단답형으로 대답합니다.
선택지도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대답조차 쓰잘데기 없죠.
이런 시스템은 대체 왜 넣어 놓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게임의 장점을 다 죽여놓는 시스템으로
플레이 타임을 늘리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 거죠?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의 경우, 이러한 선택지가
저에게 트라우마를 심어 줄 정도였지만
별모래 이야기의 경우는 그정도까지는 아닙니다.
왜냐면, 대부분은 선택하지 않아도 다음 스토리 단계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죠.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의 경우는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까지 몇 번이고 눌러야 했죠.

그래도 역시 문제가 되는데,
뭘 선택해야 다음으로 넘어갈지 길을 잃었을 때,
결국 한 번씩 다 눌러봐야 하기 때문입니다.



D.O.도 그걸 알고 있었는지 게임 자체에 언제 무슨 선택지를 일일히 눌러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공략집이 들어있습니다.
하지만, 그냥 선택지를 간편하게 만들면 되잖아요.


제가 이 게임은 추리물의 구성을 띄고 있다고 설명드렸지만,
사실 구성만 그럴 뿐입니다.
게임 내용의 대다수는 H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특히 1편과 2편의 경우는,
당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육감적인 CG가 특징이었습니다.
3편의 경우도 H씬 위주기는 하지만
1편과 2편처럼 충격적인 수준은 아니었죠.

특히 1편,2편은 DO코드라고 해서 게임 시작 때, 'D', 'O' 코드를 누르면
모자이크도 사라집니다.
사오리 사건 이전이라서 규제가 느슨했던 것 같은데
당시 이 게임을 플레이하셨던 분들은 모자이크가 없는 CG에
상당한 충격을 먹었다고 합니다.
모자이크있는 채로 플레이하는 편이 더 낫다는 분들도 있을 정도입니다.

블로그에 올릴 수는 없는 CG지만 그만큼 H씬의 CG가
과장되고 과격한 수준이었죠.

이렇게 CG가 강점인 시리즈다보니
내용은 주구장창 H씬뿐입니다.
수사하겠다고 누굴 만나러 가면 수사는 됐고 그냥 H씬이나 보는 수준입니다.
내용에서 H씬이 차지하는 비중이 체감상 8할은 되는 것 같습니다.



총평하자면, 이 게임은 추리물이라기보다
'추리물의 탈을 쓴 에로게'입니다.
과격한 CG는 지금 시점에서 봐도 꽤 충격적입니다.

특히, 2편의 경우에는 정말로 모자이크 없이는 못 볼 수준입니다.
HCG의 충격적인 묘사만큼은 역대급에 들어가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그리고 사실, 단순히 이것뿐이라면 별모래 이야기 시리즈의 리뷰도
다른 게임들처럼 하지 않고 넘어갔을 겁니다.
CG와 소재 외에는 별달리 특이한 점도 없는, H씬 위주의 고전 에로게일 뿐이니까요.

저는 추리물을 소재로 한 게임도 많이 했긴 하지만,
그보다 더 추리소설을 많이 봤습니다.
명작 추리소설을 많이 보다 보니, 나름 눈이 높아져서 추리물에 대해
좀 더 엄격한 평가를 내리게 됩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추리게임과 추리소설의 평가 기준은 다릅니다.
추리소설은 논리를 많이 따지는 편인데,
과격한 전개나 묘사가 없더라도
참신한 논리로 시작되고, 모순된 논리로 혼란시키고,
명쾌한 논리로 진전되며, 완벽한 논리로 해결하는
그런 소설을 좋아하는 거죠.

반면에 추리게임의 경우는, 논리를 많이 보지 않는데
애초에 논리로 승부하는 게임이 별로 없기 때문입니다.
잔인한 묘사, 마구잡이식 살인, 멋진 탐정,
충격적인 반전, 복잡한 인간 관계, 처절한 동기, 미쳐 버린 캐릭터 등이
추리게임에서 주로 내세우는 자랑거리입니다.

장르적 특성 때문이죠.
논리보다는 좀 더 플레이어에게 와닿기 쉬운 내용으로 어필하려고 합니다.
저도 논리보다는 다른 요소를 많이 보고 평가하는 편입니다.

근데 그러다 보니, 스토리가 지나치게 왜곡되는 게임들이 생겨납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주제에 모든 걸 다 알고 있었다고 폼이나 잡는 탐정,
피만 철철 흘러나오는 CG,
반전에 반전에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다보니 뭐가 뭔지 알 수 없게 된 스토리같은 거죠.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논리를 경시하다 못 해, 아예 전무한 수준이라는 거죠.
PC-98 시절에 범람했던 추리 에로게의 상당 수가
살인과 범인만 있을 뿐, 주인공은 생각없이 그냥 이동만 계속 하다 보면
범인이 자폭하고 사건이 해결됩니다.

윈도우 시절에도 주인공 탐정이 여자들 하고 놀아나는 동안,
사건은 여동생이 다 해결해 주고, 주인공 탐정은 마지막에 주먹질이나 하는 게임이나,
추리가 아니라 기억력 테스트를 게이머들에게 풀어내라고 하는 게임이나
수많은 게임들이 제 혈압을 오르게 합니다.


얘기가 쓸데없이 길어졌습니다.
하고 싶은 얘기는 산더미지만, 그건 그 때 그 게임의 리뷰에 가서 이야기하도록 하죠.

아무튼 별모래 이야기의 리뷰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별모래 이야기에는 있기 때문입니다. 논리가요.
플레이 타임 내내 H씬 밖에 없는 게임이지만
뜻밖에도 얼마 안 되는 추리파트만 모아서 살펴 보면 의외로 괜찮습니다.
에로 빼면 시체인 게임이지만 그 시체는 그야말로 추리소설의 시체에요.



엄청 훌륭한 수준은 아닙니다. 기껏해야 틀만 갖추고 있는 수준이지요.
하지만 다른 게임들은 그정도도 못합니다.

1편에서는 펜션 손님들의 한 밤중의 알리바이를 묻고 다닙니다.
다들 모여서 카드놀이를 했다고 하는데,
어떤 사람은 '블랙잭'을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신경쇠약'을 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도둑잡기'를 했다고 합니다.
카드놀이를 한 시간도 각각 다르고요.

2편은 다잉메시지, 3편은 독살을 소재로 삼고 있는데,
수사 도중에 대단한 사건이 터지는 건 아니지만, 단서를 조금씩 드러내며
플레이어를 서서히 미스터리의 늪으로 빠지게 하는 매력이 있습니다.
조금이지만 감탄했습니다.



진짜로 총평하자면, 어쨌든 에로 위주의 게임이고
'추리물의 탈을 쓴 에로게'라는 평가는 변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추리물의 탈'이 의외로 제대로 만들어져 있는 거죠.

H씬을 줄이고, 좀 더 추리극에 집중했더라면
더 좋은 게임이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