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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2월 30일 일요일

리뷰 : 돌아가는 길에는 위험이 잔뜩(1990/5/16, D.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O.는 Digital Objet의 약자입니다.
꽤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이젠 망한 회사라고 생각했으나
2016년도에 게임을 하나 발매함으로써
아직 목숨은 이어가고 있다고 선포했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리뷰한 회사들이 거의 다 그랬지만
D.O. 역시 이젠 인지도가 바닥을 치는 회사입니다.
하지만 2000년대 초에 에로게의 팬이었던 사람들에게
D.O.는 결코 잊을 수 없는 회사인데
바로 명작 <가족계획>을 발매한 회사이기 때문입니다.

사실 <가족계획> 이외에도 <카나 ~여동생~>, <토리코>시리즈 등
D.O.가 내세울 게임은 많습니다.
하지만 D.O. 스스로가 '<가족계획>을 발매한 그 회사!'로 기억되길 바랐죠.

아무튼, 위에서 언급한 게임들은 윈도우 시절의 D.O.이며
PC-98시절의 D.O.의 이미지는 'RPG'와 '촉수'였습니다.
특히 촉수의 경우는
'스토리 어딘가에 촉수를 끼워 넣을 틈만 있으면 반드시 넣는다'는
원칙에 입각해서 게임을 만든 것으로 추측됩니다.



아무튼 그런 D.O.의 첫 작품 <돌아가는 길에는 위험이 잔뜩>입니다.
D.O.의 대표 스타일인 RPG이지만
스토리상 촉수를 끼워 넣을 틈이 없어 촉수는 등장하지 않습니다.



현대 배경의 RPG입니다.
예전에 리뷰했던 엘프 사의 <엔젤하츠>와 분위기가 흡사합니다.



스토리는 모 학교 이사장의 딸에게 첫 눈에 반한 주인공이 그녀에게 찾아가고,
이사장의 명령을 받은 학교 운동부 여성들이 주인공의 앞길을 막는다는 내용입니다.



<엔젤하츠>와 마찬가지로 똑같은 캐릭터가 계속 덤벼 오며,
승리하면 서비스 씬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은 D.O.의 첫 작품이지만 사실 D.O. 이전에 그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어덜틴'이라는 회사가 있었습니다.
'어덜틴'의 대표작은 <두근두근 스포츠걸> 시리즈였고
이 게임은 <두근두근 스포츠걸>의 CG를 재탕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입니다.
그렇다 보니, 별 스토리없이 가볍게 CG나 감상하는 게임이 된 거죠.


다만, 이 게임은 가벼운 마음으로 플레이하기에는 난이도가 좀 있는 편입니다.
적은 강하고 보상은 형편없어 노가다를 많이 해야하는 게임인 거죠.
예전에 리뷰했던 <메탈아이2>나 <이루미나!> 등과 비교하면
그렇게 밸런스가 엉망인 수준은 아닙니다.


이 게임이 진짜로 짜증나는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동선'입니다.

이 게임에는 다른 RPG 게임의 여관처럼 한 번에 모든 HP를
회복시켜주는 장소가 없습니다.
물약같은 개념인 우유나 요구르트, 케이크를 상점에서 사서
회복해야 하는 시스템인 거죠.
그리고 몬스터 격인 여학생들을 쓰러뜨려도 돈이 나오지 않습니다.
돈 대신 스포츠용품을 얻을 수 있는데 그걸 팔아 돈을 마련하는 거죠.
여기까지는 별 특징은 없습니다. 이런 시스템의 고전 RPG는 종종 있지요.



일단 이 게임은 별개의 던전이 있기는 하지만,
하나의 큰 마을의 맵이 무대입니다.

일단 여학생들을 쓰러뜨리고 아이템을 얻습니다.
적 여학생들은 상당히 강하기 때문에, 회복해야 할 타이밍은 금방 찾아옵니다.


아이템을 돈으로 바꾸기 위해 스포츠용품점에 가야합니다.
이 스포츠용품점은 맵의 '남동쪽' 끝에 있습니다.

돈을 얻었으니 이젠 우유나 케이크를 사야합니다.
우유나 요구르트를 파는 사람, 혹은 케이크 가게는 맵의 '북쪽'에 있습니다.

가끔 회복 아이템을 잘못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배탈이 나면 독에 걸린 것처럼 걸어다닐 때마다 HP가 줄어듭니다.
이런 배탈을 치료하기 위한 약을 파는 약국은 맵의 '서쪽'에 있습니다.

레벨업을 해도 공격력은 오르지 않습니다.
공격력을 올리려면 경찰서에 가서 단련을 해야하는데,
이 경찰서는 맵 '중앙'에 있습니다.

게임오버를 조심하기 위해 세이브를 하기 위해서는
시작점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데 이 집은 맵 '동쪽'에 있습니다.


세세한 문제점이 많지만 결국은 이게 문제입니다.
적과 싸우고 회복하고 레벨업하는 과정에서
동서남북 온갖 방향을 쏘다녀야 합니다.
돌아다니는 과정에서도 계속 적들을 만나고요.

이 게임의 제목답게 '돌아가는 길에는 위험이 잔뜩'입니다.
거기에 귀찮음도 잔뜩이고 분노도 잔뜩입니다.
이런 시설들이 좀 모여 있으면 안 되는 건가요?



총평하자면, 어쨌든 D.O.에겐 첫 게임이었으니 관대하게 볼 수도 있는 부분입니다.
D.O.는 이후에도 수많은 RPG를 만들었지만
이런 문제를 갖고 있는 게임은 딱 이 게임 하나뿐이었죠.



실제로 바로 다음 RPG인 <EXTERLIEN>에서는 이런 문제점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한 번에 회복할 수 있으며 회복 장소하고 세이브 장소가 모여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밸런스는 비슷한 편이지만 훨씬 더 쾌적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는 거죠.


돌아가는 길에는 위험이 잔뜩은
다소 불편하고 미흡하고 시행착오적인 게임이었지만,
그 시절을 고려하면 소재는 신선하고 CG는 풍부한 게임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 게임이지만
D.O. 팬들에겐 의미깊은 게임일지도 모르겠군요.

2018년 12월 23일 일요일

리뷰 : 7영웅이야기(1995/3/10, 히메야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히메야소프트는 시즈웨어의 모회사입니다.
저번 리뷰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이젠 망했습니다.

히메야소프트는 에로게를 많이 아는 사람에게도 다소 생소한 이름입니다만
<소녀는 언니를 사랑한다> 등으로 유명한 캐러멜BOX 역시
히메야소프트의 산하 브랜드였습니다.
참고로, 캐러멜BOX는 2010년도쯤에 다른 곳으로 넘어갔기 때문에
아직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히메야소프트는 90년대 초중반에 히메야소프트의 이름을 걸어 놓고
여러 게임을 발매하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7영웅이야기>입니다.



7영웅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고전게임으로 나름 알려져 있는 편입니다.
한국어판도 나와 있습니다.
다만, 그 7영웅이야기는 사실 <7영웅이야기2>입니다.
7영웅이야기는 두 편이 제작되었는데
1편은 에로게이고, 2편은 전연령판이었습니다.
그래서 2편만이 우리나라에 정식 발매된 것이죠.

저는 일단 에로게인 7영웅이야기 1편을 리뷰하겠습니다.



SRPG입니다. 시스템은 1편과 2편이 비슷합니다.
예전에도 이야기했던 적이 있지만,
개인적으로 PC-98시절 최고의 SRPG를 꼽으라면 <삼국지 영걸전>을 꼽습니다.
<삼국지 영걸전>이 나온 것이 95년도 2월입니다.
다시 말해, 7영웅이야기는 1편이고 2편이고 <삼국지 영걸전>보다
나중에 나온 게임입니다.

발매 시기를 고려하면 7영웅이야기는 다소 실망스러운 느낌도 듭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유닛들의 행동이 제한적이라는 점입니다.
일곱 유닛들 중에 회복마법을 쓸 줄 아는 캐릭터는 단 하나입니다.
그 외의 캐릭터들은 능력치 상의 차이로 인한,
공격과 방어, 이동거리나 사정거리의 차이를 제외하면 
각각의 유닛 특징이 전혀 없습니다.

무기나 아이템도 전혀 없고, 필살기나 마법도 전혀 없고,
버프나 상성같은 것도 전혀 없습니다.
특별한 전략없이 그냥 전반적으로 유닛들 레벨 잘 올려서 
진격하고 때려 부수면 되는 게임인 거죠.

게임 상 턴제한이 없고, 적이 끊임없이 리필되는 판이 있기 때문에
노가다만 조금하면 난이도도 쉽습니다.
고전 SRPG 중에서도 특히 실망스러운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래도 그냥저냥 플레이할만한데
전략은 없지만 퍼즐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형이나 유닛들의 이동거리를 잘 계산하지 않으면
아무리 레벨이 높더라도 게임오버를 당하게 됩니다.

특히, 여자 캐릭터들이 목욕하는 온천을 방어하는 스테이지가 인상 깊습니다.
이건 2편에서도 비슷한 스테이지가 있는데,
2편에서는 4면에서 오는 적을 4 유닛으로 방어하기 때문에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만
1편에서는 4면에서 오는 적을 2 유닛으로 상대합니다.
제가 특히 레벨이 낮았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적들이 한 번에 죽지 않았기 때문에 더더욱 고생했죠.


시스템에 대해 평가하자면 SRPG로서의 실망스러운 구성을
퍼즐성으로 극복하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게임의 스토리는 일본의 고전 영화 <7인의 사무라이>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늘 도적들의 습격을 당해 재산을 빼앗기는 마을이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싸우지는 못하고, 용병을 고용하자니 돈이 없었죠.
그리하여, 촌장의 떠밀림에 마을 청년 두 명이 
싸움 좀 할 줄 알면서 마을에 무료 봉사할 호구들을 찾아 나섭니다.



그러다 우연히 주인공을 만나게 되고, 이래저래 일곱 명의 전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이 일곱 캐릭터들은 상당히 매력적이고 개성적입니다.
또한, 스토리도 코믹하면서도 진지할 때는 진지하기 때문에
재미있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이 게임의 진정한 악당은 도적이 아닌 마을 사람들입니다.
원래 이런 장르의 마을 사람들이 얄미운 점은 있지만
이 게임의 마을 사람들은 그냥 쓰레기입니다.

주인공 일행이 마을을 구하기 위해 마을까지 찾아가는 기간만
무려 한 달입니다. 그만큼 외지에 있는 마을이죠.
그렇게 한 달이나 걸려 찾아갔는데 마을에 도착하니
마을 사람들이 코빼기도 안 보입니다. 외부 사람이라고 경계하는 겁니다.

폐쇄적인 마을에 살던 사람들이기 때문에
외부인과 서먹한 건 이해합니다.
하지만, 말했듯이 오는데만 한 달이나 걸리는 외딴 마을을 지키기 위해
무보수로 온 용사들을 마중도 안 나와요.
적어도 촌장은 마중 나와야죠. 본인이 불렀잖아요.


또, 주인공이 마을사람들에게 
'같이 싸워달라고는 안 할 테니까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정도로만 훈련해라'고 하니,
그럴 수 없답니다. 마을 규칙이 싸우는 건 안 된답니다.
그럼 계속 도적들한테 털리면서 살면 되잖아요.
싸우기는 싫고, 다른 사람이 지켜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주인공 일행은 돈 한 푼 못 받습니다.

나중에 몬스터가 최면으로 마을사람들을 조종해서
마을 사람들이 주인공 일행을 공격하는 스테이지도 있습니다.
물론, 마을 사람들 잘못은 아니지만 마을 규칙때문에 못 싸운다던 사람들이
공격해 오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좀 그렇죠.
마을 사람들을 공격하면 게임오버지만
그래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기가 힘이 듭니다.



그리고 또, 주인공의 동료인 탈주닌자 시노부의 문제도 있습니다.
탈주닌자인 시노부는 주인공 일행이 우연히 추격자들에게서 구해준 것을 계기로
동료가 된 캐릭터입니다.
그 때문에 주인공 일행은 도적떼뿐만이 아니라
시노부를 노리는 닌자들의 공격도 방어해야 하죠.

그 때, 마을사람들이 주인공에게
'닌자들이 계속 공격해오는데 시노부는 마을에서 내보내면 안되겠냐'고 합니다.
시노부도 마을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지금까지 계속 싸워왔는데
해도해도 양심이 있다면 이럴 수는 없는 거 아닙니까?

주인공도 열받았는지 '시노부가 나가면 우리도 다같이 나가는데 괜찮겠냐'하니까
그제서야 마을사람들이 '그건 곤란하다'며 꼬리를 내립니다.
그런 대화도 할 필요도 없이 그냥 나가버려도 할 말이 없는 사태입니다.


게임이 끝나갈 때쯤에는 
세계를 멸망시킬 다크드래곤이 부활하기 직전의 위기가 찾아 옵니다.
마을촌장은 다크드래곤을 봉인할 수 있는 화이트오브라는 아이템을 주는데
봉인을 위해서는 한 사람의 목숨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마을 사람들은 능력이 안 돼서 봉인을 할 수없다는 이유가 있기는 하지만
대놓고 마을을 지켜준 일곱 명중 한 명에게 희생하라는 거죠.

아무튼 한 명도 희생하지 않기 위해서는
다크드래곤의 부활 자체를 막아야 합니다.
주인공 일행은 부활을 막기 위해 전장으로 향합니다.


쉽게 예상이 가능하지만 결국 부활은 못 막습니다.
부활한 다크드래곤을 몇 번이고 쓰러뜨리지만 다크드래곤은 계속 부활할 뿐입니다.
일행들은 지쳐있고, 다크드래곤을 막을 방법은 결국 한 사람이 희생해서 봉인하는
방법뿐입니다.



이 역할에 어울리는 정의로운 기사가 일행 중에 있었지만
이 기사는 뒤따라 오는 몬스터를 막기 위해 이미 사망했습니다.
남은 여섯 캐릭터 중 한 명이 희생할 수밖에 없죠.



봉인 아이템인 화이트오브를 갖고 있던 주인공은 너무 지쳐서 
화이트오브를 땅에 떨어뜨리고 맙니다.
마을 사람들에게 배운 건가요? 티나는 연기입니다.
본인 외에 다른 사람이 희생하라는 거죠.

아무튼 여섯 중 누가 죽을지는 플레이어가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이 선택 장면에서는 꽤 마음이 아팠는데, 나름 이 캐릭터들에게 정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누구 하나를 선택하기가 꽤 어려웠죠.



한 명을 선택하면 약소하나마 멀티 엔딩입니다.
살아 남은 다섯 캐릭터들의 후일담이 나오는 방식인데
많이 중복되기 때문에 굳이 여섯 캐릭터 엔딩을 전부 볼 필요는 없습니다.
엔딩 CG를 전부 보고 싶다면 한 번씩 선택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총평하자면, 시스템은 단조롭고, 스토리는 식상한 판타지입니다.
하지만, 캐릭터의 강점은 그 단점을 채워주고도 남습니다.

그런 캐릭터의 특징이 SRPG 전투 유닛에도 반영되어 전투도 재미있게 할 수 있었다면 
저는 이 게임을 스토리가 좀 부족하더라도 명작으로 꼽았을 것입니다.
다행스럽게도 SPRG 파트는 쉽기 때문에 전투는 적당히 넘기듯이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시스템이나 스토리는 1편이나 2편이나 비슷하지만
캐릭터는 1편이 좀 더 괜찮습니다.
2편을 재미있게 하신 분들이라면 1편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8년 12월 16일 일요일

리뷰 : 에이미라고 부르지마 & 라뷔니(1995~1996, 시즈웨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칸노 히로유키 얘기에 뒷전으로 밀려났던 시즈웨어의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칸노 히로유키는 95년도에 <EVE ~burst error~>를 마지막으로 엘프 사로 이직했고
시즈웨어는 그 후에도 계속 게임을 발매했습니다.
아쉬운 게임들이 많았지만 나름 호평받았던 게임들도 있었죠.

제가 시즈웨어를 그렇게 높이 평가하지 않는 이유는
시즈웨어가 지나치게 희대의 히트작인 <EVE ~burst error~>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EVE시리즈와 전혀 관계없는 작품이 더 괜찮았음에도 불구하고
시즈웨어는 <EVE ~burst error~>를 만든 회사라는 프레임에
스스로 갇혀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THE LOST ONE ~Last chapter of EVE~>,
<ADAM THE DOUBLE FACTOR>,
<EVE ZERO ~ark of the matter~> 등이 대대적인 홍보에도 불구하고
내용물은 완전 개판이었으며 그렇게 시즈웨어는 몰락하게 됩니다.


시즈웨어는 03년을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면 상태에 들어갔고,
모회사인 히메야소프트는 17년도에 법적으로 소멸했습니다.
사실 법적으로야 17년도에 소멸했지만 사실상 10년도에 망했다고 봐야합니다.
따라서 시즈웨어는 부활 가능성이 전무한, 완전히 끝난 회사라고 보면 됩니다.


PC-98시절에 칸노 히로유키가 참여하지 않은 시즈웨어 게임은
<에이미라고 부르지마> 1995년 5월 19일 발매
<GLO.RI.A ~금단의 혈족~> 1996년 4월 5일 발매
<라뷔니> 1996년 6월 21일 발매
총 세 개가 있습니다.
이중 <GLO.RI.A ~금단의 혈족~>은 <금단의 혈족> 시리즈이기 때문에 일단은 제쳐두고
<에이미라고 부르지마>와 <라뷔니> 이 두 게임을 리뷰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에이미라고 부르지마>



에이미라고 부르지마는 전형적인 에로틱 코미디입니다.
별 내용은 없지만 무난하게 할 수 있는 게임이죠.

제목의 의미는 주인공의 이름은 에이미가 아니라 에미인데
스토리에서 자꾸 에이미라고 불리기 때문입니다. 그 외 큰 의미는 없죠.
이런 말하긴 좀 그렇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어감때문에
차라리 에이미라고 부르는 편이 좋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아무튼 진행 방식은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로 큰 특징은 없습니다.
옴니버스 형태로 [여고생]편, [간호사]편, [메이드]편이 있는데
<Xenon ~몽환의 지체~>와 마찬가지로 패러렐 월드 개념입니다.
똑같은 캐릭터가 다른 배역으로 등장하는 시스템이죠.



그 외에 이 게임을 접한 분들이 많이 언급하는 건 바로 헤어스타일의 압박입니다.
주인공의 헤어스타일이 꽤 독특하긴 하지만
이쪽 장르에서는 크게 이상하다고 볼 정도는 아닙니다.
비슷한 헤어스타일도 많이 있죠.
고작 이정도라면 이 게임의 헤어스타일이
그렇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지도 않았겠죠.



이 게임 최고의 헤어스타일을 자랑하는 캐릭터입니다.
[여고생]편에서는 학생, [간호사]편에서는 문병온 사람, [메이드]편에서는 여교사를
맡고 있는 캐릭터입니다.
화면의 절반이 넘어가는 헤어스타일입니다.
이 게임의 개그보다도 헤어스타일이 더 웃긴 수준이죠.

총평하자면, 에이미라고 부르지마는 딱히 인상 깊은 게임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헤어스타일만 이야기하는데
그만큼 다른 특징이 보이지 않는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라뷔니>



라뷔니는 러시아어입니다. 우리나라말로 번역하면 '여노예들'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게임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형편없는 외관과 변태같은 성격으로 소문나서
잘 알지도 못하는 이런 엑스트라 캐릭터들에게조차 경멸당하는 신세입니다.
만나는 캐릭터들마다 주인공에게 쌀쌀 맞은데
그런 주인공에게 친절하게 대해 주는 건
소꿉친구인 미사키와 선생님인 요코뿐입니다.



사실 주인공도 문제가 많은데 취미가 도촬입니다. 범죄잖아요.
어쨌든 탈의실을 도촬하던 주인공은 요코 선생님에게 들켜 약점을 잡히게 되고
요코 선생의 노예가 된다는 스토리입니다.
제목은 '여노예들'이었는데 정작 노예는 주인공입니다.
어쨌든 약점을 잡혀 노예가 된 주인공은 요코 선생의 집에 끌려가 H를 하게 됩니다.

이대로 그냥 노예주인공이 협박당하는 뽕빨물같은 전개로 흘러갔더라면
더 나은 평가를 받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런 장면은 생략됩니다.
몇 달이 흘러, 주인공은 요코 선생의 취향대로인 노예가 되는데
멋있고 남자다운 모습으로 갱생하는 거죠.



오랜만에 학교를 간 주인공은 더 이상 경멸당하지 않습니다.
다들 친근하게 주인공을 반겨줍니다.
하지만, 주인공은 그런 여자들에게는 관심이 없고 마음 속엔 요코 선생뿐입니다.
근데 또 정작 요코 선생은 주인공에게 관심이 없고 다른 남자 선생과
사귀는 모습을 보여주는 막장 드라마같은 전개입니다.
그냥 뽕빨물이 더 괜찮다고 생각될 정도로 스토리가 이도저도 아니게 흘러가 버립니다.



그래픽 측면에서 주요 특징은 H씬이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입니다.
저는 에로게의 애니메이션이나 모션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딱히 CG가 움직여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하지만, 애니메이션이나 모션을 에로게에 넣는 방식은 끊임없이 개발되어 왔죠.
PC-98 시절 후기인 96년도쯤에는 이러한 경향이 더 강했는데
라뷔니는 그 중에서도 애니메이션이 꽤 많이 들어있는 게임입니다.

시즈웨어의 모회사인 히메야소프트에서 발매한 <ZENITH>라는 게임과 비슷합니다.
<ZENITH>는 거의 풀애니메이션에 가까운 그래픽으로
별 쓸데없는 장면조차 애니메이션입니다.
그런 <ZENITH>의 문제점은 플레이 타임이 5분이라는 점이죠.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PC-98시절에 플로피 디스켓 게임이잖아요.
지금이야 DVD가 기가 단위의 용량을 커버하지만
그때는 100메가도 버거운 시절이었습니다.
애니메이션을 넣으면 그만큼 분량이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라뷔니에도 비슷한 문제점이 있지만 그나마 분량이 긴 이유는
애니메이션을 계속 재탕하기 때문이죠.
그렇게 해서라도 애니메이션을 넣을 이유가 있는 걸까요?
이해가 안 갑니다.



총평하자면, 이 게임은 상당히 많은 비판을 받았던 게임입니다.
이유는 대충 <EVE ~burst error~> 이후, 사람들의 이목이
시즈웨어로 집중된 상황에서 나온 스토리가 빈약한 게임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딱히 그런 명작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비판점이 많은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스토리의 방향성을 좀 더 명확하게 정했어야 합니다.
애매한 스토리는 고생해서 만든 애니메이션과 시너지 효과도 전혀 내지 못했습니다.

2018년 12월 9일 일요일

리뷰 : XENON ~몽환의 지체~(1994/12/9, 시즈웨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XENON ~몽환의 지체~>입니다.
<Desire ~배덕의 나선~>, <EVE ~burst error~>와 더불어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 착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찾아보니 옹호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습니다.

이 게임은 주요 특징은 선택지에 따라 엔딩이 달라지는
멀티 엔딩 방식이라는 점입니다.
또한 엔딩 하나를 보면 새로운 엔딩이 생기는 방식을 택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 시스템이 생겨난 이유입니다.
칸노 히로유키는 <Desire ~배덕의 나선~>에서 [마코토]편이
높으신 분들로 인해 에로 위주의 NTR 스토리가 된 것을 한탄했습니다.
그래서 다음 작품인 XENON은 멀티 엔딩으로 만들고
그 중 일부 엔딩을 에로하게 만들면 된다는 생각으로 이 게임을 제작한 것입니다.



의사와의 꿈 상담에서부터 게임이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특수한 장소에서 어떤 여성과 만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꿈의 세계는 SF 배경인 것처럼 보여집니다.
꿈 장면이 다 지나간 이후에는 의사가 꿈에 대해서 질문합니다.
질문한 것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면 처음부터 다시 플레이해야 하는데,
질문이 너무 세세합니다.
장소가 어디였고, 문은 어땠고, 뭘 하려고 했고, 기온은 어땠고,
여자는 무슨 색 리본과 옷을 입고 있었고를 다 기억해야 합니다.


프롤로그의 꿈 장면 같은 건 대충 읽고 넘길 수도 있는 건데
철저하게 암기하듯이 해야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그런 질문사항들이 다음 장면에 꼭 필요하지도 않고요.
쓸데없이 불편합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시작되는 스토리를 DREAM_1이라고 하는데
이걸 클리어하지 못하면 다른 엔딩을 볼 수 없습니다.



DREAM_1의 스토리는 괜찮은 편인데 SF 배경의 꿈과 병원 배경의 현실을 오가며
주인공의 기억 혼란, 주인공의 정체 등
미스테리한 스토리가 나름 재미있습니다.
단점이 있다면 너무 짧다는 점인데 어차피 엔딩1일 뿐이니
다른 엔딩들을 기대하게 합니다.



문제는 다른 모든 엔딩들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점입니다.
애초에 설정조차 DREAM_1과 같지 않습니다.
같은 캐릭터들이 전혀 다른 배역으로 등장합니다.

미스테리한 분위기의 DREAM_1과 달리
DREAM_2와 DREAM_3은 패러렐 월드 개념으로 단순한 에로 코미디입니다.

막무가내의 우주 해적과 병원 생활을 하던 평범인의 영혼이 뒤바뀌어 버립니다.
평범인이 된 우주 해적의 스토리가 DREAM_2,
우주해적이 된 평범인의 스토리가 DREAM_3입니다.



그냥 마구잡이로 깽판치고 다니다 보면 하렘 엔딩이 되는
개연성이라고는 없는 스토리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DREAM_∞이라는 스토리가 있는데
별 내용없이 H씬만 실컷 보여주는 스토리입니다.


XENON의 가장 큰 문제점은 가장 쓸만한 스토리인 DREAM_1이
제일 처음에 나오고, 가장 분량이 적다는 점입니다.
멀티 엔딩 게임에서 처음 보는 엔딩이 기대치를 크게 올려 놓고,
나머지 엔딩들은 실망시키는 역할만 하면 어쩌자는 거죠?

루트에 따라서 캐릭터가 맡은 역할과 설정이 달라지는 게임은
XENON 이외에도 많이 있습니다.
<카마이타치의 밤>이나 <몽환포영>같은 경우도
개그성 스토리가 일부 있었죠.

하지만, 그건 메인 스토리가 탄탄하고, 분량도 많은 상태에서
유머러스한 쉬어가기 엔딩을 조금 넣어놓은 정도였죠.
XENON은 메인 스토리가 곁다리로 보일 정도로 분량이 적습니다.


애초에, 기획 자체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멀티 엔딩으로 만들어서 일부 엔딩은 시리어스하게 만들고,
일부 엔딩은 에로 코미디로 만들겠다는 어설픈 타협이
이도저도 아닌 게임으로 만든 거죠.



총평하자면, 이도저도 아닌 게임들을 보면 윗선의 개입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XENON은 그런 느낌이 꽤 심하게 드는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이나 <Desire ~배덕의 나선~>이나
칸노 히로유키의 생각대로 만들었다면 더 좋은 게임이 됐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칸노 히로유키가 하고 싶은 거 다 하면 어떤 참사가 벌어지는가는
2000년대의 아벨 소프트웨어가 보여줬지만,
그래도 XENON처럼 아쉬운 것보다는 나은 것 같아요.

2018년 12월 2일 일요일

리뷰 : DESIRE ~배덕의 나선~(1994/7/22, 시즈웨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DESIRE ~배덕의 나선~>입니다.
저번에 소개했던 칸노 히로유키의 출세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본 시스템은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에 단일 엔딩 방식으로 진행됩니다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죠.
시스템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멀티 시점'입니다.
시작할 때, [알버트]편과 [마코토]편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일단, [알버트]편을 선택해 봅시다.
주인공 알버트는 기자입니다.
본인도 큰 기대는 안 했지만 외딴 섬의 연구시설 DESIRE에서 취재 허락이 나왔기 때문에
비행기를 타고 DESIRE로 향합니다.
DESIRE의 기술 책임자인 마코토는 알버트의 연인이기도 합니다.
연인과의 재회, 그리고 비밀로 둘러싸인 DESIRE 취재에 대한 기대를 품고
주인공은 외딴 섬으로 향합니다.



갑자기 옆에 앉아있던 여성이 시비를 겁니다.
이 여성의 이름은 카스미로 DESIRE 후원 재단의 중요 인물입니다.



DESIRE에 도착하면 여러 여성들이 주인공을 맞이해 주지만
정작 마중나오기로 했던 마코토와는 엇갈립니다.
이 게임의 멀티 시점 시스템에서 확실히 고평가할 수있는 부분입니다.
알버트와 마코토가 같이 있는 상황이 얼마되지 않는다는 점이죠.

간단한 점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시스템의 수많은 게임들이
못했던 점입니다.
일례로 elf사의 <천신란마>같은 경우,
시작할 때 남자 주인공/여자 주인공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스토리를 진행하는데
둘이 8,90프로는 함께 다닙니다.
이래서야 멀티 시점으로서의 의미가 없는 거죠.

게다가 또 수많은 경우, 이러한 멀티 시점이 스토리의 확장 역할로만 사용되었습니다.
실키즈사의 <뫼비우스로이드>의 리뷰 때 설명드렸다시피,
멀티 시점 시스템이 H씬 몇 번 더 보여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거죠.
반면에 DESIRE의 경우, 두 주인공의 행동이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다른 주인공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궁금하게 합니다.
각각의 스토리가 따로 진행되면서도 서로의 스토리에 시너지를 주는 역할을 하는 거죠.



이 시스템의 단점은 나중에 이야기하고, 다시 스토리에 대해 이야기하면
주인공은 섬을 산책하는 도중, 해변에서 티나라는
정체불명의 아이가 쓰러져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티나는 섬 외부에서 표류되어 온 것으로 보이며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코토와 만날 수 있었지만,
간만의 재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사랑을 나눌 시간도 없습니다.
웬일인지, 티나가 주인공을 미친듯이 따릅니다.
어린 애가 주인공에게 착 달라붙어 있으니 뭘 해볼 수가 없습니다.
주인공은 마코토에게 티나를 재우고 나중에 방에 찾아가겠다고 합니다.



티나를 재우고 마코토 방으로 가려는데
이번에는 크리스티라는 낮에 만났던 총무가 방에 찾아옵니다.
크리스티의 갑작스러운 유혹에 주인공은 홀랑 넘어가 버리고,
H씬 이후 한참 후에야 마코토 방을 찾아갑니다.
근데, 마코토는 어딜 갔는지 이미 방에 없습니다.
뭐, 이렇게 마코토와는 계속 엇갈립니다.



마코토와의 엇갈림을 뒤로 하고, 섬의 미스터리 파트입니다.
연구소 소장인 마르티나와 인터뷰를 합니다.
마르티나는 까탈스러운 연구자로 소문이 났는데
주인공이 보기에는 그렇게까지 엄격한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 섬이 대체 무슨 연구를 하는지 명쾌한 설명은 들을 수가 없습니다.



소장의 방을 무단으로 조사하면 가족 사진을 발견합니다.
남편과 딸은 이미 사망한 걸로 알려져 있는데
수상하게도 소장의 딸이 티나와 상당히 닮았습니다.



그런 식으로 DESIRE의 미스터리를 조사하며,
마코토와는 계속 엇갈리고
연구소의 다른 여자들을 꼬시고 다니는 주인공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연보라색 포니테일의 셰릴을 가장 좋아합니다.



어찌됐든 이런저런 미스테리한 사건이 지나가고
마지막 장면에 이릅니다.
마르티나의 연구는 전쟁 병기로도 발전할 수있는 위험한 연구였지만
마르티나는 자신의 어떤 목적을 위해 반드시 연구를 완료하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마르티나는 연구물인 반응 장치로 떨어져 버리고,
주인공과 티나도 반응 장치로 떨어지고 맙니다.



그 연구가 뭐였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주인공은 티나와 단 둘만이 살아있는 세계로 떨어집니다.
6년동안 티나와 생활하게 되고, 어린 아이였던 티나도 상당히 매력적인 여성이 됩니다.



하지만 또다시 무슨 사건 끝에, 티나와 헤어지고 주인공은 혼자서
원래의 사람들이 있던 세계로 돌아오게 됩니다.



원래 세계로 돌아오니 6년은커녕, 하루도 안 지나 있습니다.
주인공이 무사히 돌아와서 그동안 주인공이 꼬셨던 여성들이 기뻐하고, 싸우고 있습니다.

그래도 주인공은 티나를 생각하며,
티나를 찾아 세계 여행을 떠나는 것으로 [알버트]편은 마무리됩니다.

[알버트]편은 굉장히 잘 만들어져 있습니다.
캐릭터가 매력적이기 때문에, 재미있게 스토리를 진행할 수 잇고
다음 편을 위한 떡밥들을 굉장히 잘 뿌렸죠.



그 다음은 [마코토]편입니다.
[마코토]편에서 먼저 아쉬운 점은 [알버트]편과 분량 자체가 다르다는 점입니다.

[알버트]편에서는 특정 커맨드를 선택하면 그 하위 커맨드가 존재합니다.
'보다'를 선택하면 '하늘', '활주로'이런 식으로 다음 선택지가 나오는 방식이죠.
반면에, [마코토]편에서는 '보다'를 선택하면 그냥 끝입니다.
글로 설명하면 다소 와닿지 않으실 수 있지만 플레이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스토리 자체도 명백하게 [마코토]편은 [알버트]편에 종속되어 있습니다.
두 시나리오가 평등하지 않고 사실상 순서가 있어요.
실제로도 세가 새턴판을 비롯한 다른 이식작에서는
[알버트]편을 클리어해야만 [마코토]편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부분이 이 분야 레전드 <EVE ~burst error~>에 비해서 약한 점이죠.



[마코토]편의 스토리로 넘어와서 마코토 역시 알버트와의 
오랜만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마침 연구시설 DESIRE에 큰 문제가 생기는데
제어 시스템은 말을 안 듣고, 스파이가 들어왔다는 정보까지 들어와서
마코토가 할 일이 엄청나게 늘어납니다.

[알버트]편이 DESIRE 밖에서 연구시설의 미스터리를 훑어보는 역할을 하고 있었다면
[마코토]편은 DESIRE의 내부사정을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의 첫날 밤.
설명했다시피 티나의 방해 때문에 알버트와 사랑을 나누지 못했고,
티나를 재우고 온다는 말만 믿고 마코토는 자신의 방에서 기다리게 됩니다.
하지만, 알버트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알버트 방문 앞으로 찾아 가서
알버트와 크리스티의 H씬을 목격하게 됩니다.
이게 알버트가 나중에 마코토의 방에 찾아갔을 때,
마코토가 사라졌던 이유입니다.



그렇게 실의에 빠진 마코토는 해변에 갔다가
동료 연구원인 카일과 반강제로 H를 하게 되고,
그 후 계속 협박당해서 관계를 계속 한다는 충격적인 NTR 전개로 흐릅니다.

[알버트]편을 처음 했을 때는 카일을 그냥 재수없는 캐릭터 정도로 생각했었지만
그 수많은 복선에도 불구하고 NTR은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거의 NTR물의 둔감 계열 주인공만큼이나 눈치가 없었던 거죠.

결정적인 이유는 사실 이 게임이 옛날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이 시기에 이런 식의 멀티 시점 NTR물이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거죠.
NTR물로 [마코토]편을 평가하자면 놀라울 정도로 진보적인 형태입니다.
24년 전의 게임인데 최근의 NTR물과 비슷한 흐름이에요.
시대를 고려하자면, 정말 훌륭한 수준입니다.
마지막에, 카일을 미화한 점이 살짝 아쉽습니다.

당시에는 이 게임으로 인해, NTR의 세계에 눈을 떴다는 사람도 있을 정도였죠.
뭐, 저는 이 게임을 하기 전에 이미 눈을 뜬 상태였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NTR물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이 게임은 지금 봐도 훌륭한 NTR물입니다.
하지만, 이 NTR에 대해서는 아쉬운 평가를 내리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H씬 위주의 NTR 전개 때문에
[알버트]편에서 깔아놓은 복선이 허무하게 쓸려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H씬 하나만큼은 유감없이 보여줍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중심 내용이었던 'DESIRE의 미스터리'가 뒷편으로 밀려나 버렸어요.
중요한 복선적 요소들을 최후반부에 가서야
대충 언급정도만 하면서 넘겨 버립니다.
게다가 [알버트]편에서 쭉 진행되던 긴장된 호흡도 끊겨 버려요.

[알버트]편의 서스펜스적 요소 정말 좋았습니다. NTR은 사랑하죠.
하지만 이 두 조합이 매끄럽지가 않았습니다.

NTR 좋아요. 근데 왜 그걸 음모와 배신, 미스터리가 가득한 욕망의 섬, 의혹의 연구시설 DESIRE에서 하냐는 거죠.
상암월드컵 축구경기장 빌려 놓고 피구를 하는 격이 잖아요.
NTR 같은 건, 아파트 단지나 학교 학생회실 같은 곳에서 하라고요.


아무튼 마코토 편은 복선 회수도 제대로 안 되고,
새로운 복선을 제대로 깔아놓지도 못한 NTR 스토리였습니다.
소문에 의하면, 칸노 히로유키는 [마코토]편이 윗사람들의 강요에 의해
H씬 위주로 스토리가 변한 것에 대해 한탄했다고 합니다.
저도 안타깝군요.

아무튼, [알버트]편과 [마코토]편을 끝마치고 나면
새로운 스토리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바로 연구소장 마르티나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편입니다.
명령 선택식도 아닌 클릭만 하다 보면 끝나는 스토리 진행 방식입니다.
내용도 짧죠. 하지만, DESIRE 연구의 진정한 목적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죠.

그리하여, [마르티나]편 마지막에서 밝혀지는 이 게임 최대의 반전은
마르티나의 정체가 바로 티나였다는 사실입니다.
[알버트]편에서 이야기했듯이, 알버트와 티나가 반응장치로 떨어지기 전에
마르티나가 먼저 반응장치로 떨어졌죠.



반응장치로 떨어진 마르티나는 어린 소녀 티나가 되어
다시 해변에서 알버트를 만나게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 반전을 저는 정말 빠르게 간파해 버렸습니다.
알버트가 둘째 날 마르티나 소장을 인터뷰할 때,
마르티나가 연구 목적에 대해 얼버무리면서 '윤회' 어쩌구 하는 얘기를 했었죠.
이 '윤회'라는 단어가 인상깊었고, 
어째서인지 '마르티나가 티나 아니야?'라는 생각을 해버린 거죠.

정작 제 전공인 NTR은 멍청하게도 눈치 못 채놓고
중요한 반전은 대충 때려 맞춰 버렸습니다.
이 반전을 일찌감치 눈치채 버린 것때문에 제가 DESIRE를 정말 재미있게
플레이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반전을 눈치채고도 재미있게 플레이한 작품도 많이 있지만
DESIRE는 그렇지 못했던 거죠.

게임 내에 이 반전에 대한 복선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옛날에는 별 근거 없이 대충 때려 맞췄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지금 생각해보면, 제가 칸노 히로유키의 패턴을 잘 알고 있었던 탓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칸노 히로유키의 두 개의 명작, 
<EVE ~burst error>와 <이 세계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한 소녀 YU-NO>를 플레이한 이후에
DESIRE를 플레이했습니다.
이 두 게임을 해 본 사람은 DESIRE가
저 두 명작과 상당히 비슷하다는 걸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먼저 나온 건 DESIRE지만 어쨌든 나중에 나온 두 게임이 훨씬 유명합니다.
아무튼, 비슷한 게임을 먼저 하다보니
반전도 쉽게 예측할 수 있었던 거죠.
아마도 제가 예측을 못 했다고 해도, 반전의 놀라움은 크지 않았으리라고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이식판에 대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이 게임은 97년도에 세가 새턴판을 시작으로
98년도에 윈도우즈판, 2004년에 플레이스테이션2판,
그리고 2017년에 플레이스테이션 비타 및 윈도우용으로 리마스터 판,
같은 해 말에 18금 버전의 리마스터 A판이 출시되었습니다.
<EVE ~burst error~>보다는 못하지만 꽤 많이 리메이크 되었죠.

세가 새턴판은 그래픽이 많이 바뀌었죠.
그리고 세가 새턴판의 그래픽이 해상도만 조금씩 바뀌고 무려 20년동안 유지되었습니다.



눈물나는 점은 셰릴의 그래픽입니다.
원래 혼혈이라는 설정이었지만 피부가 훨씬 더 까매졌고
무엇보다 연보라색 포니테일이 초록색이 되었습니다.
그 후, 20년동안 단 한 번도 연보라색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셰릴 빼고는 전반적으로 새로운 그래픽 쪽이 더 마음에 듭니다.
특히 마코토가 더 날카롭고 지적인 인상이 된 것이 마음에 들어요.

세가 새턴판에는 부분 애니메이션도 추가되어 있는데
이 역시 이후의 모든 이식판에 공통적으로 등장합니다.


세가 새턴판과 플레이스테이션판에서 가장 궁금한 점은 바로 [마코토]편이었습니다.
[마코토]편은 말씀드렸다시피 H씬 위주였고
특히, 마코토와 카일의 반강제적 H씬이후, 협박당하는 스토리인데
H씬을 빼 버리면 내용 전개가 되지 않는 상황이었죠.

세가 새턴판이야 그런 등급제에 있어서 나름 느슨한 편이었지만
플레이스테이션은 상당히 엄격했습니다.
그런 묘사가 있는 18금 게임은 상상도 할 수 없었죠.



그리하여 H씬으로 인한 협박 대신에 마코토에게 최면을 거는 것으로
내용이 바뀌었습니다.
아니, 최면은 괜찮은 건가요?
물론 H씬이야 보여주지 않지만 최면을 건 후에 마찬가지로 협박을 하는데
스토리가 뭔가 이상합니다.



98년도에 나온 <DESIRE 완전판> 이후로는 [마르티나]편 이후에,
또 하나의 스토리가 추가되었습니다.
애니메이션으로만 진행되는데, 다소 열린 결말이던 원작과 달리
티나를 나선에서 구해내는데 성공하는 결말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팬들에게는 호불호가 갈리는 결말이었죠.



총평하자면, 저는 이 게임의 훌륭함을 부정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시대를 고려하면 최상급의 명작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고민 끝에 추천작품에 올리지는 않도록 하겠습니다.

이유는 역시나 <EVE ~burst error~>와 <이 세계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한 소녀 YU-NO>의
존재입니다.
DESIRE는 엄밀히 말하자면, 저 두 명작의 조상님이라고 봐야 하지만,
지금 플레이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위 호환정도로 생각되는 거죠.

두 작품을 플레이한 사람이라면 DESIRE가 다소 시시하다고 느껴질 것이고,
두 작품을 플레이하지 않았다면 그냥 저 두 작품을 플레이하실 것을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