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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8월 27일 일요일

리뷰 : 살인의 드레스(1987/10/1, 페어리테일)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시대적 보정을 고려한다면, 페어리테일 사의 게임 중 원톱은
<살인의 드레스>입니다.
페어리테일식 서스펜스 게임의 시초이기도 합니다.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배드엔딩도 약간 있지만 기본적으로 단일 엔딩식 게임입니다.
이 시스템 자체는 특이한 점이 없습니다.

특이한 점은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바꿀 수 있다는 점입니다.
친구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는 게임인데도 
등장인물들의 이름을 플레이어의 지인들로 바꿀 수 있도록 만들었죠.


스토리는 주인공의 여자 지인이 화장실에서 알몸으로 살해되면서 시작됩니다.
주인공은 그 살인사건에 대해 조사하고 
그 와중에 추가로 살인이 일어납니다.

스토리의 절대양이 많지는 않고,
범인도 의외성이라고는 전혀 없는 결말입니다.
하지만, 87년도라는 시대를 고려하면,
스토리의 분량도 완성도도 상당한 수준입니다.

87년도의 성인 게임은 제대로 된 스토리도 찾기 힘든 수준입니다.
되도록이면 CG를 많이 보여 주게 되는 스토리와
약간의 퍼즐성을 가미한 어드벤처가 많았습니다.
살인의 드레스는 이런 시대에 흔치 않은 스토리 중심의 게임이었던 거죠.



하지만, 지금 플레이한다면 역시 망설여지는 게임입니다.
너무나도 낡은 그래픽도 문제지만,
스토리도 지금 먹힐 정도로 훌륭하지는 않습니다.

플로피 디스크 몇장 짜리에 많은 것을 넣어야 했던 매체의 근본적인 문제점입니다.
소설 같은 건 백년 전의 작품을 봐도 여전히 재미있습니다.
종이는 제한이 없었으니까 분량도 제한이 없었죠.

살인의 드레스가 발매된 시점은 성우도 쓰지 않던 시절이었지만,
CG 몇 장이나 효과를 추가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부담이었던 시절이었죠.
내용은 당연히 짧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시절에 어떻게든 스토리를 제대로 만들었던 건 높이 평가하지만,
역시 지금 시점에서는 그렇게 재밌는 스토리가 아닙니다.



총평하자면, 시대적인 가치와 지금 플레이할 가치가 전혀 다른 게임입니다.
시대적인 가치로 보자면 80년대 게임 중에서도 최고입니다. 훌륭한 게임이죠.
하지만, 지금 플레이할 가치는 없습니다.

박물관에 전시되는 유물같은 게임입니다.

2017년 8월 20일 일요일

리뷰 : 드라큘라 백작(1992/11/27, 페어리테일)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브램 스토커의 소설을 읽든, 읽지 않았든 드라큘라 백작이라는 이름을 듣고
흡혈귀가 떠오르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페어리테일 사의 <드라큘라 백작>은 당연히 흡혈귀가 나오는 게임입니다.

흡혈귀는 에로게에서 너무나도 많이 다룬 소재라서
사실 어느정도 식상한 소재입니다.
단순한 모에 요소로서 흡혈귀를 등장시킨 작품도 있고,
능력자 배틀물 같은 곳에서 초능력에 대한 설명으로 흡혈귀를 등장시키기도 하고
아무튼 다양하게 쓰입니다.

현재는 오히려 흡혈귀물 에로게의 틀이 어느 정도 잡혀있기 때문에
흡혈귀가 등장하는 게임들은 모두가 비슷비슷하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 비슷한 게임들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92년도에 나온 드라큘라 백작은 틀이 잡혀 있기 전에 나온 게임이기 때문에
신선하게 느껴집니다.



주인공은 드라큘라이며 게임의 배경은 중세 유럽입니다.
다이쇼 시대를 다룬 <유메지 아사쿠사기담>나,
영화같은 느낌을 주는 <신주쿠 이야기>처럼
이 게임도 독특한 유럽 분위기를 잘 살린 게임입니다.



흡혈귀물이라는 게 확연히 드러나는 부분은 H씬입니다.
H씬은 꼭 여자의 피를 빠는 것으로 마무리됩니다.
사실, 여기에는 게임 외적으로 규제가 심해진 사정에 의해서라고 합니다.



게임은 포인트 클릭 시스템으로 전개됩니다.
우선 위에 있는 눈, 입, 손, 뇌 모양 등을 클릭합니다.
눈은 보다, 입은 말하다, 손은 만지다, 뇌는 생각하다 등을 의미합니다.
그 옆에 있는 화살표는 맵을 이동할 때 사용합니다.

그 다음에 화면에 보이는 포인트를 클릭하는 방식입니다.
아이템도 얻을 수 있고, 그 아이템을 잘 사용해서 막힌 길을 뚫을 수도 있습니다.
난이도가 높지는 않기 때문에 굳이 머리를 쓸 정도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나름 즐길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H씬에서도 이 시스템을 사용하는데 <레이라>와 마찬가지로
모든 포인트를 클릭하기 전에는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지 않습니다.
플레이어로서는 본인이 클릭하지 않은 부분이 어디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고
진도는 나가지 않아서 답답하기만 합니다.
<레이라> 때처럼 심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아쉬운 시스템입니다.
실제로 플레이하면 그 부분이 얼마나 짜증나는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드라큘라 백작은 오랜 잠에서 깨어나 본인이 사랑했던 여자들이
살해되어 백골이 된 것을 발견합니다.
드라큘라 백작은 복수를 위해 이 여성들을 만나기 전인 과거로 돌아갑니다.
스토리는 나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눈에 확 띄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총평하자면, 이 시기의 페어리테일 사 게임들이 공통적으로
잘 만들어 놓은 분위기를 잘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색다른 설정과 분위기 때문에 기대를 하게 만들지만
정작 스토리는 평범한 수준입니다. 독창성만큼의 완성도를 못 보여줍니다.

드라큘라 백작을 그 중에서 그나마 괜찮은 완성도를 지닌 게임이라고 
그냥 좋게 평가할 수도 있지만,
게임 초반에 준 기대감이 너무나도 저를 아쉽게 합니다.

2017년 8월 13일 일요일

리뷰 : 신주쿠 이야기(1992/7/23, 페어리테일)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신주쿠 이야기>입니다.
이 게임을 간단히 정의한다면 '영화같은 게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페어리테일 사에서도 어느 정도 영화같은 분위기를 의도해서 제작했습니다.



시스템은 특이한 점이 없는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그래픽은 <유메지 아사쿠사기담>과 마찬가지로 세피아 톤입니다.
딱히, 더 이야기할 점은 없군요.




이 게임에서 중요한 점은 스토리입니다.
주인공이 하는 일은 심부름 센터랑 비슷한 일입니다.
이번 의뢰는 위장 유괴입니다. 재벌집 딸에게서 자신을 유괴한 척 해달라는 의뢰를
받았습니다.



맨 오른쪽에 있는 사람이 주인공입니다.
아는 동생 하나 불러서 백주 대낮에 길거리에서 의뢰인을 강제 납치합니다.



쇼핑도 하고, 놀이공원도 가고 신나게 놉니다.
물론, 이렇게 노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재벌집의 경영권 다툼과 그로 인해 살해 위협까지 얽히는 내용입니다.


스토리는 전개로 보나, 분량으로 보나
킬링 타임용 가족 영화같은 느낌이 납니다.
참고로, 이 게임에는 H씬도 없습니다.
스토리가 훌륭하지는 않지만,
전개가 빠르기 때문에 지루하지 않습니다.


이 시기에는 지금처럼 에로게가 다들 비슷비슷하지 않았습니다.
틀이 정해져 있지 않던 시기였고, 새로운 시도가 넘쳐나던 시기였습니다.

신주쿠 이야기도 이런 새로운 시도의 일환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제작자의 입장에서는 비싼 배우를 써도 되지 않으니 제작비가 절감될 수도 있겠죠.
이 시기에는 성우도 없었으니까요.
사실 제작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하지만, 플레이어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영화를 보고 말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텍스트 게임으로서의 화려한 문장도 없고,
어드벤처 게임으로서 선택지에 의한 분기, 멀티엔딩이 있는 것도 아닙니다.
CG를 많이 넣었다는 장점은 있지만, 이것도 영화의 영상미와 비교한다면
그다지 장점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개인적으로, 영화같은 게임, 애니같은 게임, 소설같은 게임보다
어드벤처 게임으로서의 특성을 잘 살린 게임을 더 좋아합니다.
영화같은 게임인 신주쿠 이야기는 제 취향에 맞지 않는 게임이었습니다.



총평하자면, 독특한 분위기의 게임입니다.
하지만, 그 분위기가 제겐 딱히 장점이라고 생각되지 않습니다.

이 게임을 하느니, 차라리 영화 한 편을 보는 것을 권장하겠습니다.

2017년 8월 6일 일요일

리뷰 : 미친 과실(1992/5/1, 페어리테일)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친 과실>은 범상치 않은 제목과 타이틀 화면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범상치 않은 게임입니다.

90년대 초반, 이 게임은 많은 사람들의 트라우마가 되었습니다.
절대 과장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친 과실을 사상 최악의 우울게임이라고 합니다.



시스템은 단순합니다.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입니다.
분기도 없이 하나의 스토리가 쭈욱 흘러가는 시스템이죠.
공략도 그다지 어렵지 않습니다.
중요한 건 스토리입니다.


주인공은 대학생으로 자신의 교수인 츠키시마 교수의 가든 파티에 참석합니다.
그곳에서 츠키시마 교수의 딸 세 자매를 만나게 됩니다.

처음에는 낯가림이 심한 셋째 딸 미카와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둘째 아키미가 폭력까지 쓰며 주인공을 데려갑니다.



초면인데도 불구하고 아키미는 주인공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주인공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눕니다.

아직 초반 프롤로그이며 이런 저런 캐릭터 소개를 하는 도중입니다.
아키미의 캐릭터에 대해서 잘 알지도 못하고
아직 제대로 된 이벤트도 없었다고 방심하는 와중에...



갑자기 난간이 부숴지면서 아키미가 사망합니다.
그냥 사망하는 것도 아니고 아래층에 있던 촛대에 찔러서 잔인하게 사망합니다.

이 게임이 얼마나 제목만큼 미친 짓을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을 하는 사건입니다.


저는 블로그에 잔인한 CG를 올릴 생각이 없습니다.
CG는 꽤 잔인하고, 충격적일 정도로 적나라합니다.
시체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고양이를 전자렌지에 넣고 돌린 시체도 보여줍니다.
게임에 진지하게 몰입한다면 상당히 충격적인 CG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옛날 그래픽이다 보니 잔인한 CG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단순한 CG만이라면 훗날 나오는 게임들이 훨씬 고어하고 그로테스크합니다.
하지만, 이 게임의 섬뜩함은 CG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죠.


일단은 위에서 보이는 사건처럼, 긴장감의 고조도 없이
한순간에 슥삭 캐릭터를 죽여버리는 충격적인 전개가 섬뜩합니다.



츠키시마 교수의 집에서 가정부를 하고 있는 마키입니다.
주인공과 인연을 맺은 다음날, 쓰레기 소각로에서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됩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하하호호 웃던 사람들이 다음날 갑자기 시체로 발견되는 전개입니다.


그 다음으로 섬뜩한 것은 CG를 능가하는 텍스트입니다.
마키의 불에 탄 시체를 이 게임은 CG로 보여줍니다.
CG는 잔인하긴 하죠.
하지만 뜨거움을 견디지 못하고 소각로를 강하게 긁으면서
모든 손톱이 나갔다는 묘사야말로 사람들에게 트라우마를 심어주는
더 큰 원인입니다.

시각적인 묘사보다 텍스트를 이용하는 방법은 꽤 훌륭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또 섬뜩하게 하는 것은 범인의 정체입니다.
범인의 정체는 반전이 아닙니다.
노골적으로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고, 딱히 추리를 하지 않더라도
주요인물들이 범인을 제외하면 전멸할 정도로
너무 많이 죽어나가서 금방 알아챌 수 있습니다.




범인은 이 열 살밖에 안 된 소녀, 츠키시마 교수의 셋째 미카입니다.
이정도밖에 안 된 어린이가 범인이라는 결말은 고전 추리소설에서도
꽤 자주 사용했던 방법입니다.
아가사 크리스티나 엘러리 퀸같은 유명한 소설가도 사용했던 방법이죠.

아무리 똑똑하고, 아무리 여자 어린이치고 힘이 좋더라도,
어떻게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었는지 그 방법에 대한 설명은 전혀 없습니다.
개연성따위는 버리고, 오로지 이 어린 소녀가 그렇게 잔혹한 연쇄 살인을
저질렀다하는 충격적인 전개만 있을 뿐입니다.

아직 어려서 본인이 저지른 일을 잘 모른다는 전개도 아닙니다.
확실하게 알고, 태연하게 연쇄살인을 저지릅니다.



미카가 스케치북에 그린 그림입니다.
보시다시피, 추락하는 아키미와 소각로에서 불타는 마키입니다.
주인공이 이 그림을 발견했을 때, 이 게임을 하면서 가장 섬뜩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최근의 잔인한 게임들과 비교해서
미친 과실의 특징을 하나 더 들어본다면, 바로 긴장감의 집약입니다.

요즘 나오는 게임들은 볼륨을 상당히 중요시합니다.
섬뜩한 공포 게임이라고 해도, 수십시간에 달하는 플레이 시간을
전부 긴장감 넘치는 장면으로 채우는 건 불가능하죠.

그러다 보니, 치유되는 장면도 넣고, H한 장면도 넣고, 개그도 넣습니다.
이러면, 공포 게임이 다소 루즈해지는 단점이 있죠.

미친 과실이 굳이 의도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습니다.
단순히, 짧은 게임에서 많은 사람들을 죽이려다 보니 빠른 전개를 택했고,
긴장감이 유지된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뭐, 이 부분은 호불호가 갈린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저것 볼만한 장면을 원하는 게이머도 있으니까요.
긴장감의 집약은 미친 과실의 장점이라기 보다는,
색다른 점이라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총평하자면, 사실 개연성을 무시해버리고 순간적인 임팩트만을 중시한 게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습니다.
충격적이면서도, 클리어한 후 곱씹어 보면 그 치밀함에 감탄하게 되는 스토리를
훨씬 좋아합니다.
따라서 미친 과실에 높은 점수는 주지 않겠습니다. 한계가 명확한 게임이라고 봅니다.

그래도, 당대의 게임들과 비교하면 자기 색깔이 명확한 게임입니다.
프롤로그가 끝날때 쯤부터 섬뜩하기 시작해서
스탭롤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도 소름이 끼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90년대에는 나름 잘 나갔던 페어리테일을 대표할만한 작품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