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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1월 26일 월요일

리뷰 : 열락의 학원(1994/2/25, 시즈웨어)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90년대의 에로게 회사는 주로 '엘프'와 '앨리스소프트' 2강 체제나
여기에 'F&C'를 추가해서 3강 체제로 분류됩니다.
그리고 어떤 분은 여기에 '시즈웨어'를 추가해서 4강 체제로 분류하기도 하는데
저는 시즈웨어가 4강은 택도 없고 4위도 안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왜냐면 '엘프', '앨리스소프트', 'F&C'에 비해서 게임의 양이 너무 부족하잖아요.
질의 문제도 <EVE ~burst error~>는 그 어떤 게임보다도 빛이 나는 게임인 것은 사실이지만
나머지 게임들은 다른 회사의 명작들과 비교가 될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하지만, '그럼 달리 4위는 어디냐'는 질문을 받으면 딱히 생각나는 회사가 없기 때문에
일단 시즈웨어의 게임들을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즈웨어하면 꼭 언급을 해야 되는 사람이 바로 시나리오 라이터 '칸노 히로유키'입니다.
PC-98시절 <EVE ~burst error~>와 <이 세계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한 소녀 YU-NO>라는
두 명작의 시나리오를 쓴 사람이죠.
애석하게도 그 후로는 서서히 몰락하고 결국 명예를 회복하지 못했지만
90년도에는 주목 받는 사람이었던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이 칸노 히로유키가 시즈웨어에서 만든
<Desire ~배덕의 나선~>, <Xenon ~몽환의 지체~>, <EVE ~burst error>를
시즈웨어의 칸노 히로유키 삼부작이라고 하죠.
<Xenon ~몽환의 지체~>를 빼고 <이 세계의 끝에서 사랑을 노래한 소녀 YU-NO>를 넣으면
칸노 3대 명작이 되고요.
<EVE ~burst error~>는 먼 훗날로 리뷰를 미루고
<Desire ~배덕의 나선~>과 <Xenon ~몽환의 지체~>은 이 다음에 리뷰될 것입니다.

시즈웨어의 첫 작품인 <금단의 혈족>은 일단 넘기고
이번 리뷰는 <열락의 학원>입니다.



열락의 학원은 1994년도에 발매된 게임입니다.
시기상으로는 <Desire ~배덕의 나선~>,  <Xenon ~몽환의 지체~>와 같은 연도에 발매된 게임이죠.

칸노 히로유키의 삼부작 직전에 만들어진 게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이 게임의 시나리오를 만든 사람은 칸노 히로유키입니다.
칸노 히로유키 삼부작, 삼부작하니까 칸노 히로유키가 시즈웨어에서
세 작품만을 만들었다고 오랫동안 착각하고 있었죠.

하지만 이 열락의 학원도 칸노 히로유키의 작품이었죠.
더 거슬러 올라가면 <금단의 혈족>도 시나리오는 다른 사람이 썼지만
칸노 히로유키가 프로그램을 담당했습니다.
아무튼 주목해야할 점은 칸노 히로유키의 시나리오 데뷔작인 열락의 학원이
칸노 히로유키가 제작한 건지도 잘 알려져 있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흑역사 취급을 받고 있는 거죠.

모 위키 칸노 히로유키의 설명에는
'자기가 만든 게임이 통신상에서 욕을 얻어먹자 그 충격으로 게임성을 중시하게 되었다'고
되어 있는데
이게 사실이라면 욕을 먹은 그 게임은 열락의 학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열락의 학원은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또한 단일루트 방식으로 시스템 상의 특별한 내용은 없습니다.



게임의 기본적인 스토리는 교육 감시 기구, 통칭 JES의 에이전트인 주인공이
여학교에 교사의 신분으로 잠입하는 스토리입니다.
이 학교는 여학생이 의문의 실종을 당하고 있으며,
그걸 추적하기 위해 먼저 잠입한 여성 에이전트 또한 실종된 상태입니다.



조사 도중에 만나는 척보기에도 수상한 학생들과 함께 하는
H씬 위주의 스토리 전개로 내용 자체는 별로 특이할 것이 없습니다.
약물 중독, 인신매매 등의 강렬한 소재를 사용한 것치고는 아쉬운 것이 사실입니다.
후반부 스토리가 뻔하고 너무 정신없이 전개되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다양한 캐릭터 면에서는 장점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무서운 소재에 걸맞는 눈매가 무서운 캐릭터도 있고,
분위기를 환기시켜 주는 귀여운 캐릭터도 있죠.



<EVE>시리즈의 레귤러 캐릭터인 히무로 쿄코도 등장합니다.
<EVE>시리즈 때의 비해서는 매력이 많이 부족한 상태이기 때문에
쿄코의 팬이라고 해도 열락의 학원 플레이를 권장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총평하자면, 아쉬운 게임이기는 한데 그렇게 못 만든 게임도 아닙니다.
스토리가 부족한 H씬 위주의 게임은 옛날부터 지금까지 얼마든지 있었죠.

제가 생각했을 때, 이 게임에서 아쉬웠던 건 발매연도라고 생각됩니다.
늘 말했듯이, 이 시기는 게임이 1년이 다르게 발전하던 시기였습니다.
분명한 건, 이 게임은 94년도에 자신있게 내놓을 퀄리티는 아닙니다.
1, 2년 정도만 더 빨리 발매되었다면 다른 평가를 받았을 수도 있었을 것 같습니다.

2018년 11월 18일 일요일

리뷰 :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2018/10/26, 칵테일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2018년 10월 26일, 드디어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가
소수의 우려와 극소수의 기대 속에 발매되었습니다.
본래는 6월 발매로 발표되었고, 저도 특별히 그 시기에 맞춰
컁컁 바니 시리즈의 리뷰를 적었는데 1개월, 1개월 점점 미뤄지다 보니
10월달에 발매가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다행스럽게 생각하는 점은,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가 딱 한 달만 더 늦게 발매되었다면
저는 이 게임의 리뷰를 하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칵테일소프트의 게임들을 리뷰 중이면 몰라도
다른 회사 게임들 리뷰 도중에 끼워 넣을 생각은 없었죠.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는 '에로게 사상 최초! 22년만의 속편'입니다.
<컁컁 바니 i mail>은 무시되었는데, 그걸 끼워넣는다고 해도 18년만이죠.
제가 아는 한에서 그 이전 기록은 14년만의 속편이었던
앨리스소프트의 <투신도시3>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번개전사 라이디3>가 17년만의 속편으로 더 오래되었습니다.)


'에로게 사상 최초!'라는 문구는 대단해 보이지만 그 실상은 다르죠.
대체 왜 약 20년동안 컁컁 바니 시리즈가 나오지 않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앨리스소프트의 경우에는 <투신도시> 시리즈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잘 나가고 있었으니,
오랫동안 속편을 아껴왔다고 해도 이해가 가지만
칵테일 소프트는 그럴 형편이 아니에요.
약 20년동안 아껴온 것이 아니라, 그동안 낼 수 없었다고 해야 정확합니다.

헌팅 게임은 꽤 오랫동안 트렌드에 좀처럼 맞지 않았죠.
어떤 에로게 장르이든지, 학원물이 대세입니다.
히로인은 소꿉친구나 여동생이나 학교 친구가 하는 거죠.
오늘날, 생판 모르는 사람을 헌팅하는 게임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컁컁 바니의 스타일은 지금으로서는 선호되지 않는 스타일입니다.

제가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 발매 소식을 들었을 때,
매우 놀랐고, 당연히 망할 거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이런 점입니다.
십 수년동안 트렌드를 따르지 못 했던 F&C가
트렌드에 맞지 않는 20년된 게임 속편을 발매하겠다고 하니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했던 거죠.

아무튼 칵테일소프트는 이번에는 나름 칼을 갈았는지,
지금은 다른 에로게 회사 직원이거나 프리로 뛰고 있는,
2000년대 초반의 칵테일 소프트 스태프들을 다시 모셔왔습니다.
어쨌든 그리하여,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가 완성됩니다.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2>의 스와티와 프리미에르3의 스와티입니다.
22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훨씬 어려진 느낌입니다.
그 때의 느낌을 살리기보다는 지금의 트렌드를 따르는 쪽을 택한 것 같습니다.
그래픽은 그다지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피아캐롯에 어서오세요4>보다는
훨씬 괜찮아진 것 같습니다.


그래픽만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최신 트렌드를 따르려고 한 점이 많이 보입니다.
예를 들면, 주인공의 캐릭터죠.
과거의 뻔뻔함으로 무장한 헌팅 전문 주인공이 아닌,
운명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헌팅을 해야 하지만 뭔가 어설픈 초식남 주인공이죠.
게임 내에서도 등장인물들의 대사로 '20년 전과는 다르구나'같은 말이 자주 나오죠.

하지만, 여러 노력에도 불구하고 선입견 때문인지
대화의 흐름이나 사건 전개가 낡아 보였습니다.
신기하게도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를 다 끝내고 다른 최신 게임을 하는데,
평범한 게임이었지만 컁컁 바니 이후에 하니까
굉장히 트렌디해 보였습니다.

게임 중에 '좋아요'라든가, '모바일 게임'이 자꾸만 언급되는데
'이 게임은 최신 게임입니다'라고 억지로 강조하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마치, 대학 교수님이나 회사 부장님이 이벤트에서
어울리지도 않는 신세대 복장을 입고,
상황에 맞지도 않는 최신 유행어를 쓰는 느낌이었죠.



스와티가 사와디에게 유행어를 배우는 모습인데
'데헷'이라니 대체 언젯적 유행어죠?



선택지 쪽도 아쉬운 점이 많은데 가장 큰 문제는
난이도가 지나치게 낮다는 점입니다.
선택지마다 스와티나 사와디가 옆에서 표정으로 답을 알려 줍니다.
귀엽기는 한데 이래서야 배드엔딩을 보려면
일부러 틀려야 하잖아요.



매뉴얼에서 보면 스와티는 '이지모드',
그리고 견습여신인 사와디는 '하드모드'라고 합니다.
스와티는 정답을 알려주고, 사와디가 정답과 오답을 섞어서 알려줌으로써
혼란을 준다면 괜찮은 아이디어 같은데, 실제로는 둘 다 정답만 알려줍니다.
역사 퀴즈 부분에서만 차이가 있을 뿐이에요.


사실 쉬워진 난이도 역시 최신 트렌드의 반영일 수도 있겠죠.
요즘 에로게는 대부분 선택지가 복잡하고 어렵지 않습니다.
제작자도 귀찮고, 플레이하는 사람도 귀찮기만 하니까요.
지금 시점에 <컁컁 바니 슈피리어>처럼 제작진도 클리어하기 힘들었다는
선택지 게임을 낸다면 귀찮은 게임이라고 몰매 맞겠죠.

하지만 그 시절 게임들이 어려웠던 이유는,
지금처럼 자유자재로 세이브도 안 되고, 읽은 문장 스킵 기능도 없고,
대화 로그도 볼 수 없었고, 호감도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방법들이 다 있는 지금은 굳이 옆에서 알려주지 않아도 난이도가 어렵지 않고,
설령 틀리더라도 금방 다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차라리 스와티와 사와디의 힌트를 옵션으로 조정할 수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난이도가 이래서야 선택지 게임으로서 의미가 없죠.
게다가 틀린 선택지를 고르더라도 별로 대단한 결말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개인적으로는 누님 캐릭터인 카고메의 외모가 마음에 들었습니다만
실제 플레이에서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캐릭터는 과장되고, 개그는 진부했죠.
개인 루트의 분량이 짧은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미지 변화를 너무 많이 해서 걱정되었던 스와티는 그래도 마음에 들었습니다.
스와티 루트 역시 별 내용이 없어서 아쉽기는 했지만요.



총평하자면, 저는 별로 마음에 들지는 않았고,
다른 분들도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부분부분 괜찮은 면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런 면조차 다른 최신 게임들에 비해 크게 훌륭하지는 않았죠.

저는 <캔버스> 시리즈의 3,4 혹은 <피아캐롯에 어서오세요 G.O.>같은
다른 사람들이 혹평했던 F&C의 일부 게임들을 나름 마음에 들어했습니다.
전체적으로는 망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일부 캐릭터가 정말 좋았던 거죠.
아쉽게도, 컁컁 바니 프리미에르3에는 그런 건 없었습니다.

그래도 욕 나올 정도도 아니었고, 딱히 분노하지도 않았습니다.
아까도 말했듯이, 대학 교수나 회사 부장님이 무리하게
신세대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느낌이었는데
그 교수나 부장님에게 개인적으로 호감이 있는 상황인 겁니다.
어설픈 그 모습이 안쓰럽다는 생각이 드는 거죠.

F&C는 답답할 정도로 매번 문제가 많았고,
오랫동안 개선된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피아캐롯에 어서오세요4>나 <코나카나2>에 이르러서는 분노가 극에 달해서
이 회사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접게 되었죠.

컁컁바니 프리미에르3도 발매 이전에는 스와티 캐릭터나 팔아 먹을 생각으로
게임은 대충 만들 거라고 생각했지만, 의외로 미흡하나마 노력한 모습이 보였습니다.
이번만큼은 그 노력에 더 눈이 가는군요.

2018년 11월 11일 일요일

리뷰 : 요코하마 엘레지 & 글래스의 운명(1994~1995, FMC)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FMC도 산타페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딱히 기억할 필요가 없는 회사입니다.

1994년 9월 28일 <요코하마 엘레지>
1995년 9월 14일 <글래스의 운명>

이 두 작품만을 발매했을 뿐만 아니라 저 두 게임도 딱히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역시나 F&C의 계열사가 아니었다면 저도 그냥 무시해 버렸을 겁니다.
다행스러운 점은 적어도 산타페에 비해서는 인상 깊은 게임을 발매했다는 점이죠.
칵테일소프트보다는 페어리테일의 스타일과 비슷한 
시리어스 계열의 게임을 주로 발매했습니다.



요코하마 엘레지는 프롤로그가 상당히 충격적인 작품입니다.

주인공은 전 클레이사격 국가대표 선수로 상당히 유명한 사람입니다.
또한, 그의 연인 아이네는 카미오라는 가명으로 활동하는 엄청 유명한 아이돌입니다.



그러나 주인공의 연인은 프롤로그에서 여러 사람에게 범해지고 자살하게 됩니다.



그 후, 아이네와 꼭 닮은 여동생인 시오리가 등장합니다.
사실 자살한 것은 아이돌 카미오가 아닌 여동생이었던 것으로 하고,
아이네 대신 카미오로 바꿔치기해서 활동합니다.



언니가 죽고 언니 대신 아이돌 활동을 하는 시오리의 캐릭터가 특히 골때립니다.
주인공의 캐릭터는 연인이 불행한 일을 겪은만큼 상당히 어두운 캐릭터지만
등장하는 다른 여성 캐릭터들은 프롤로그만큼이나 미친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아무튼 그로부터 2년 후, 갑작스러운 아이돌의 은퇴 현상과 
불법 비디오 루머가 난무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신인 아이돌의 보디가드가 되어 이에 맞선다는 내용입니다.

프롤로그와 설정, 캐릭터 등의 범상치 않음이 정말로 저를 기대하게 합니다.
이 게임 제작사가 F&C의 계열사라는 것을 잠깐동안 잊을 정도로 자극적이죠.
늘 궁금한 것이 이렇게까지 자극적인 소재를 만들었다면,
앞으로의 스토리도 계속 자극적으로 만들어서
게이머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줘야겠다는 욕심같은 건 없는 걸까요?



그 후의 스토리는 황당할 정도로 별 거 없습니다. 
마무리는 끔찍할 정도로 허무하고요. 흑막 찾아서 총으로 빵 쏘고 끝입니다.
본편에 존재하는 건 그럴싸한 스토리가 아니라 아이돌의 댄스와 노래입니다.
여러 장르의 노래가 나오고 그에 관한 댄스가 움직이는 CG로 나와요.
그건 그것대로 대단하긴 하지만 스토리를 희생하면서까지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

아이돌의 댄스 무대같은 건 저번에 리뷰한 <미소녀 오디션 ~아이돌을 찾아라~>,
이런 게임에 넣어놨어야죠.
요코하마 엘레지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광기에 휩싸인 스토리로 계속 밀고 나가고요.
스토리에 치중했으면 좀 더 나은 게임이 될 수 있었지만
결국 소재를 살리지 못한 게임입니다.



다음은 글래스의 운명입니다. 
꽃이 만발한 타이틀 화면의 분위기처럼 이 게임은 소녀만화 스타일로 진행됩니다.

저는 소녀 만화를 거의 보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TV에서 방영한 <들장미 소녀 캔디>라든가 <들장미 소녀 린>이라든가
아니면 진짜 문제가 있는 것으로 유명한 <들장미 소녀 제니>라든가를
본 적이 있긴 한데 띄엄띄엄 봤을 뿐더러 결말도 못 봤죠.
그런 탓인지 저는 이런 스타일의 소녀만화에
'주인공은 열심히 살아보려고 노력하지만 끊임없이 불행해지는 우울한 스타일'이라는
트라우마에 가까운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 글래스의 운명이 충격적인 전개로 흐를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주인공은 여자인데 프롤로그에서는 아직 꼬맹이입니다.
갈색머리의 착하고 귀여운 소녀로 제 편견에 딱 들어맞는 이미지입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주인공이 어릴 적에 재혼하게 되었고
계모와 의붓 언니를 만나게 됩니다.
이 장면에서도 역시 계모와 의붓 언니는 주인공을 괴롭힐 거라는 편견이 떠올랐습니다.
생긴 것도 좀 무섭다고 생각했죠.



본편에서 주인공은 학생이 됩니다. 
제 편견과 달리, 다행히도 계모와 의붓 언니와 아무 갈등도 없는 화목한 가정에서
행복하게 잘 자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계모가 다짜고짜 주인공의 싸대기를 때리면서
역시나 스토리는 우울해집니다.
주인공의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사망해 버리고만 거죠.
계모의 명예를 위해 말씀드리면, 
계모가 갑자기 아버지가 사라졌다고 돌변했다거나 그런 건 아니고
나름 동정할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또한, 이후로도 신데렐라나 콩쥐팥쥐의 계모처럼
주인공을 아무 이유없이 괴롭히는 악녀로 변해 버린 것도 아니고요.



이런 상황에서도 주인공의 의붓언니는 여전히 주인공에게 친절하고,
배우가 되어 아버지가 없는 상황에서도 가족들을 이끌어 가는 자랑스러운 언니입니다.



하지만 또, 교통사고를 당합니다. 
다행히도 겨우 목숨은 건지지만 배우로서의 생명은 끝장나게 됩니다.
주인공이 정말 끊임없이 불행해지는 제 편견에 정말 잘 들어맞는 게임입니다.
주인공을 괴롭히는 편견대로의 나쁜 언니였다면 이런 불행한 일은 당하지 않았겠죠.




아무튼 이제는 주인공이 성우이자 배우가 되어 가족들을 지탱합니다.
열심히 살아보려는 모습에 눈물이 다 납니다만
앞으로도 그녀에게는 미친 전개가 계속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 게임은 멀티엔딩 게임이고 갑자기 계모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엔딩도 있습니다만
해피엔딩으로 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고난이 더 충격적입니다.
제 소녀만화에 대한 편견까지도 넘어선 무시무시한 전개입니다.
내용이 워낙 자극적이기 때문에 블로그에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총평하자면, 같은 회사에서 단 두 개 나온 작품으로서 정말 절묘합니다.
요코하마 엘레지는 자극적인 프롤로그에 비해 심심한 내용의 게임이었고,
글래스의 운명은 행복하고 훈훈한 프롤로그에 비해 정신 나간 스토리의 게임이었죠.

공통적으로 NTR요소도 있고 분위기가 꽤 음침합니다.
이런 FMC의 스타일이 이후 F&C의 경향과는 맞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18년 11월 4일 일요일

리뷰 : 미소녀 오디션 ~아이돌을 찾아라~(1993/2/5, 산타페)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F&C의 수많은 계열사 중 하나인 산타페입니다.
1992년에는 <디스크 미소녀 대도감>과 <101번째 어프로치샷>을 발매했고
1993년에 <미소녀 오디션 ~아이돌을 찾아라~>를 발매한 이후,
전혀 활동이 없습니다.
활동 기간과 게임의 질, 양으로 보자면 전혀 기억할 필요가 없는 회사입니다.
F&C의 계열사가 아니었다면 이런 회사는 그냥 무시했을 겁니다.

<디스크 미소녀 대도감>은 예전에 리뷰한
칵테일소프트의 <미소녀 통신 CHAT의 추천>과 비슷한 팬디스크입니다.



그동안 F&C에서 발매한 게임들의 캐릭터를 모아서
H씬을 재탕해서 보여주는 게임입니다.
분량은 상당한 편이지만, 별 의미는 없는 게임이죠.


<101번째 어프로치샷>은 페어리테일의 <나를 골프에 데려가>의 시스템을 재탕했습니다.



캐릭터는 오리지널 캐릭터지만 <나를 골프에 데려가>에 비해 스토리가 없죠.
골프 미니게임&H씬이라는 단순한 구성입니다.

이 두 게임에서 알 수 있듯이 산타페 사의 정체성은
별 내용없이 이미 만들어진 재료들을 다시 우려먹는 수준의 회사입니다.



그렇게 재탕만 하던 회사가 93년에 드디어 완전 새로운 게임을 발매하는데
그게 바로 미소녀 오디션인 거죠.
그간의 수준을 보면 이 게임 역시 별로 기대가 되지는 않습니다.



게임 시스템은 진짜 오디션입니다.
플레이어가 심사위원이 되어 미소녀들을 심사하는 게임이죠.

우선 평가항목 8개를 선택해야 합니다.
[룩스], [스타일], [헤어스타일], [연령], [교복], [센스], [성격], [지성],
[기품], [색기], [귀여움], [청순도], [분위기], [말씀씀이], [H경험 정도] 중에
8개를 선택하는 겁니다.

[H경험 정도]같은 건 대체 왜 항목에 있는 거죠? 사생활이잖아요.
이런 것까지 심사해야 하나요?

다른 항목들도 애매한데, [룩스]는 외모의 좋고 나쁨을 채점하는 거고
[스타일]은 플레이어의 기호인지를 채점하라고 하는데, 그게 그거죠.
굳이 따지자면 다른 느낌이기는 하지만
이렇게까지 세세하게 채점할 필요가 있나 싶습니다.

아무튼 채점할 항목 8개를 고르고 나면,
그 다음은 32명의 미소녀를 채점하는 시간입니다.



캐릭터를 하나 선택하면 교복을 입은 미소녀가 등장합니다.
일단 첫 인상 점수를 묻습니다.
첫 인상 점수를 매기고 나면 자기소개를 시작합니다.



자기소개 이후에는 미소녀 본인이 자신있는 옷으로 갈아입습니다.
수영복이나 레오타드의 경우도 있고, 평범한 옷인 경우도 있죠.
그리고 캐릭터에게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마지막으로 본인이 선택한 항목에 대한 점수를 매기는데
8개 항목과 종합평가가 또 있습니다.


이 채점 시스템의 단점은 멀쩡한 키보드 놔두고 마우스로
숫자를 선택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마우스로 숫자 하나하나 찍기가 불편해요.
첫 인상 + 선택한 8항목 + 종합평가해서 10항목을
각각 서른 두 번씩이나 선택해야 합니다.
아까도 봤듯이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항목들이었는데
그게 쓸데없이 많으니까 게임이 귀찮아집니다.



그래도 심사 시스템을 제대로 활용하려는 노력은 엿보이는데
원화가를 다양하게 투입해서 캐릭터들의 생김새가 차이가 많이 나게 조정했습니다.



또한, 복장, 성격이나 말투도 다양하게 만들었습니다.
첫인상이 마음에 든다 했더니 제대로 시작하자마자
실망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자기소개도 귀찮아 하고
남들은 수영복 같은 걸 입고 심사받을 때, 파자마를 입고 심사받습니다.
'신장이 얼마나 되니?'하고 물어 보니 '커'라고 대답하고 끝입니다.

오디션을 볼 마음이 전혀 없는데 억지로 끌려온 느낌입니다.
뭐, 이런 캐릭터를 좋아하시는 분도 있겠죠.



총평하자면, 시스템은 참신했지만 채점 항목이 너무 많고, 캐릭터도 너무 많습니다.
캐릭터가 많은 건 좋게 평가할 여지도 있지만 채점 항목은 간소화시킬 필요가 있었죠.

더군다나 별로 마음에 안 드는 캐릭터일지라도 질문은 스킵할 수는 있지만
채점은 스킵할 수가 없었습니다.
32명의 채점을 강제로 해야 한다면 그건 게임이 아니라 일이 되는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