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작품 목록

추천 작품 목록

글 목록

2019년 3월 31일 일요일

리뷰 : GIDDY(1991/12/13, 하트전자산업)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트전자산업은 대체로 게임을 잘 만드는 것보다도 게임을 독특하게 만드는 것에
많은 힘을 쏟는 회사였습니다.
특이한 시도를 많이 했지만 완성도가 부족하다보니 도전 자체가 묻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GIDDY>는 그런 하트전자산업의 게임 중에서
다소 정석적인 에로게라고 생각됩니다.



눈 여겨 봐야할 점은 포인트 클릭 시스템입니다.
오른쪽 아래에 있는 입 모양, 눈 모양 등의 아이콘을 클릭한 후
설명을 보고 싶은 화면을 클릭해 가며 게임을 진행하는 방식입니다.

하트전자산업은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하는 회사답게
포인트 클릭 시스템을 초기에 눈여겨 보고 있던 회사였습니다.
다만, GIDDY는 포인트 클릭 시스템의 원조였던 엘프 사의 <ELLE>보다는
반 년정도 후에 발매된 게임입니다.



스토리는 시간여행물로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남겨준 타임머신을 이용해서
클레오파트라나 양귀비, 잔다르크 같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여성들을 만나고 다니며,
하렘을 만든다는 내용입니다.

다른 나라 역사까지 건드리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기는 하지만,
요즘은 아예 역사 인물을 성전환시켜 출연시키는 에로게도 있을 정도니
이런 건 정상적으로 보입니다.

아무튼, 이런 정도의 설정에 그래픽과 캐릭터로 승부를 보는
평범하게 즐길 수 있는 류의 게임입니다.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시간여행을 할 때입니다.
버스 모양의 타임머신을 운전해서 시간여행을 하는데,
시간여행을 할 때마다 선택지가 뜹니다.
차키를 돌린다->클러치를 밟는다->기어를 변환한다->사이드 브레이크를 푼다
-> 엑셀을 밟는다 -> 클러치에서 발을 뗀다의 순서로 선택해야 합니다.

이게 무슨 운전면허 시험이나 안전운전 홍보 게임인가요?
이 부분만 상세하게 만들 이유가 없잖아요. 반복적으로 선택해야 할 이유도 없고요.
이동할 때마다 귀찮은 과정을 강요하는 것뿐입니다.



총평하자면, 하트전자산업 특유의 독창성은 별로 안 보이는 게임이지만
하트전자산업 게임 중 가장 괜찮은 게임입니다.
다른 게임에도 이정도의 완성도가 있었더라면
하트전자산업의 도전정신은 조금 더 응원받았을 것입니다.

2019년 3월 24일 일요일

리뷰 : 하트전자산업 육성 시뮬레이션 시리즈(하트전자산업)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트전자산업 혹은 하트소프트는 90년대 초반에 활동하던 회사였습니다.
지금은 인지도가 전혀 없고, 당대에도 인기가 높았다고 볼 수 없는 회사입니다.
그렇다고 에로게 역사에 남을만한 명작이라도 하나 발매했냐면 그렇지도 않습니다.

하트전자산업 자체는 전혀 기억할 필요가 없는 회사입니다만
이 회사에서 독립한 두 회사는 아직도 건재하게 활동하고 있는데,
그 두 회사가 바로 'interheart'와 'ILLUSION'입니다.

두 회사에 대한 소개는 나중 리뷰에서 하도록 하고,
하트전자산업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이 회사는 크게 히트친 게임은 많지 않지만 회사의 컬러만큼은 확실한 회사였습니다.
바로 '도전정신' 하나만큼은 대단한 회사였다는 거죠.



1990년에 발매된 <브링업>입니다.
육성 시뮬레이션 게임으로서 이 분야 원조이자 레전드로 불리는
<프린세스 메이커>보다도 먼저 나왔습니다.
여성형 안드로이드를 육성하는 게임입니다.



<프린세스 메이커>보다도 먼저 나온 이 게임이 육성 시뮬레이션의 원조가 되지 못한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결정적인 이유는 재미가 없고, 히트를 못 쳤기 때문입니다.

위 화면은 정신수양을 하는 장면입니다.
정작 캐릭터가 명상을 하는 장면은 왼쪽 위에 조그맣게 보일 뿐이고,
배경에 보이는 수영복 장면은 게임과 전혀 상관없는 CG입니다.
대체 왜 아무 상관없는 야시시한 CG를 띄워 놓는 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서비스 신도 게임이랑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어야죠.

육성 시뮬레이션으로서 가장 아쉬운 점은 멀티엔딩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프린세스 메이커>와의 결정적인 차이이기도 하죠.
서비스 신보다 육성 시뮬레이션 자체의 재미에 좀 더 집중했어야 합니다.



하트전자산업의 두 번째 육성 시뮬레이션인 <유코 이야기>입니다.
이 게임도 <프린세스 메이커>가 발매되기도 전에 나온 게임입니다.

4개의 챕터가 있으며 그 중 두 개는 명령선택식 어드벤처,
나머지 두 개가 육성 시뮬레이션입니다.

유코 이야기의 소재는 '여성 관능 소설가 육성 시뮬레이션'입니다.
놀랍군요. 심각하게 놀랍습니다.
'여성 관능 소설가'를 육성한다는 것도 비범합니다만
이 게임이 나온 시기를 생각해 보세요.

보통 이런 소재는 그 장르의 전성기가 끝났을 때나 등장하는 거죠.
육성 시뮬레이션의 붐이 지나고 장르 자체가 식상해졌을 때,
어떻게든 참신한 소재를 찾아 보겠다고 무리수를 던지면서 등장하는 소재가
'여성 관능 소설가 육성'같은 거죠.

근데 이런 소재를 이 분야 원조 <프린세스 메이커>가 등장하기도 전에 써먹고 있습니다.
육성 시뮬레이션의 부흥기는 커녕 장르 자체가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하트전자산업에서만 육성 시뮬레이션이 끝물인 겁니다.
이 정도는 돼야 '도전 정신'의 회사인 거죠.



아무튼, 유코 이야기도 브링업과 같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유코가 관능 소설을 쓰는데,
그 소설 내용이 어떻게 육성하더라도 똑같다는 거죠.



하트전자산업의 세 번째 육성 시뮬레이션인 <복서 메이커>입니다.
이번에는 <프린세스 메이커>보다 나중에 나온 게임입니다.

제목 그대로 복싱선수를 육성하는 게임입니다.
일정을 짜서 훈련을 하고, 능력치를 높여 복싱 경기를 통해
랭킹을 높여나가는 게임입니다.
<프린세스 메이커>와는 방향성이 다릅니다만,
90년대에 많이 등장했던 장르이기도 하고
전작들보다 더 재미있게 육성을 진행할 수 있습니다.



복싱 경기도 나름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는데
보디블로, 잽, 훅, 어퍼, 스트레이트 같은 공격 기술뿐만 아니라
클린치같은 것도 있습니다.

육성 부분에서 아쉬운 점은 항목이 쓸데없이 많다는 점입니다.
'상반신 근력', '상반신 지구력', '하반신 근력', '하반신 지구력' 등등
다 복서에게 필요한 항목이기는 하죠.
근데 게이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능력치들을 굳이 따로 키워야할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시합할 때, 그 능력치가 각각 어떻게 쓰이는지 알기 힘들잖아요.

펀치력이나 테크닉같은 요소만 남겨두고
쓰잘데기 없는 항목을 생략했다면 참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듭니다.


 

랭킹 22위와 챔피언의 모습입니다.
누가 봐도 반대로 생각하겠지만, 위에가 랭킹 22위, 아래가 챔피언입니다.
랭킹 22위의 저 포스 좀 보세요. 저같으면 시합 시작하자마자 수건 던집니다.



하트전자산업은 92년도에 <바람으로 ~날개여, 사랑이 있는 곳으로~>를 발매했습니다.
'경주용 비둘기 교배/육성 시뮬레이션'입니다.
미소녀 게임은 아니지만 하트전자산업 육성 시뮬레이션 중에서
가장 완성도가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총평하자면, 시리즈를 거듭하면서 육성 시뮬레이션의 완성도는 계속 높아지고 있었습니다.
다만, 너무 느리게 높아졌던 거죠.
<프린세스 메이커> 시리즈와는 승부 자체가 안 되는 수준이었습니다.

하트전자산업은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습니다.
회사가 한 2년만 더 버텨서 육성 시뮬레이션의 전성기에 게임 몇 개만 더 냈더라면,
하트전자산업은 육성 시뮬레이션의 원조로서 기억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

2019년 3월 17일 일요일

리뷰 : 껍질 속의 작은 새(1996/2/29,BLACK PACKAGE)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껍질 속의 작은 새>는 메이드 조교 카드게임입니다.
95년도에 PIL사가 <SEEK>라는 작품을 통해 조교물의 유행을 만들었고,
이 작품은 그 분위기에 편승한 작품 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껍질 속의 작은 새는 조교 대상 히로인으로 메이드를 선택했는데,
만일 메이드를 선택하지 않았다면 단순한 <SEEK>의 아류작으로 기억되었을 겁니다.

이 게임은 일본 서브컬쳐 계에 메이드붐을 일으킨
'메이드물의 실질적 원조'라고까지 불리는 게임입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칭호입니까?
이 게임에는 뿌리 깊은 팬도 많아서 2010년도까지도 리메이크가 진행되었습니다.
결국 좌절되었지만요.

개인적으로 메이드를 좋아하는 편인데,
굳이 이 게임이 없었어도 메이드붐은 곧 왔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 게임 이전에도 인기있는 메이드 캐릭터들은 있었고,
메이드 캐릭터는 주로 조연을 맡다가 점점 비중이 높아지는 추세였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장르의 시작이라는 건 다 그런 거고,
조금이라도 빨리 메이드 시대를 연 이 작품의 공로는 실로 어마어마한 거죠.



무대는 19세기의 영국,
조교를 시행하는 주인공은 포스터라는 이름의 조교 전문가입니다.
잘나가던 때도 있었으나, 국가에 수배된 몸이 된 주인공에게
드레드라는 부자가 협박에 가까운 방법으로 메이드 조교를 의뢰합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저택에는 클레어, 메아, 뮤하라는 메이드가 있습니다.
메아와 뮤하는 조교를 받는 입장이라기 보다는 주인공을 서포트하는 입장입니다.
제대로 조교를 받는 메이드는 클레어밖에 없습니다.
나머지 히로인은 본래 메이드가 아니었고,
거리에서 이런저런 방법으로 헌팅해서 메이드로 만든 후 조교하는 겁니다.



카드 게임 그 자체로는 대단한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전의 조교물들과 달리 알기 쉽고 편리한 점은 있지만,
결국은 카드 두 개를 적당히 선택하면 될 뿐 딱히 머리를 쓸 필요가 없어요.

기본 컨셉은 구속도를 올리고, 내구도 저하를 억제하며,
카드들의 상성을 통해 애정과 충성도를 올리는 겁니다.
문제는, 난이도가 너무 쉬워요. 게임에서 주어진 기간이 너무나도 깁니다.

초반에는 내구도가 금방 달아서, 조교를 몇 번 하지도 못하고 시간이 지나갑니다.
근데 중반으로만 가도 내구도가 게임의 밸런스를 망칠 정도로 강해집니다.
무슨 카드를 써야 효율적일지 고민할 필요가 없어요.
무슨 카드를 얼마나 쓰든, 어떻게 쓰든 강력한 내구도로 다 버텨내요.

시간이 모든 것을 해결해줍니다.
엔딩 조건을 다 채운 후반에는 게임이 지루해지고요.


이 게임의 시뮬레이션적 재미는 카드를 어떻게 사용하느냐보다,
카드를 어떻게 모으느냐, 여자를 어떻게 헌팅하느냐,
자금 운용이나 접대같은 전반적인 운영을 어떻게 하느냐입니다.

자유행동이나 외출을 통해, 캐릭터들과 만나기도 하고, 카드를 얻기도 합니다.
카드는 조연들이 그냥 주기도 하고, 창관에 가서 모을 수도 있고, 상점에서 살 수도 있고,
카지노에서 포커 승부를 통해 얻을 수도 있습니다.
그 중에서 카지노는 승률이 낮지는 않지만 사기가 틀림없습니다.



평생 한 번도 못 본 로얄 스트레이트 플러쉬를 이 게임에서만 두 번 만났습니다.
그 외에도 풀하우스 확률도 너무 높은 것 같아요.



메이드들의 조교 수치가 일정 수준에 이르면 접대를 시킬 수 있습니다.
접대 내용은 충성도가 높을수록 과격해지며,
한 번 시행하면 애정도와 충성도가 뭉텅이로 깎여 나갑니다.

하지만, 접대 이외에는 딱히 돈을 많이 벌 수단이 마땅치 않고,
돈을 못 벌면 새로운 캐릭터를 헌팅해 올 수가 없죠.
초반 캐릭터인 클레어를 소중히 대해 주고 싶지만,
클레어가 유일한 돈줄이니 어쩔 수 없습니다. 접대를 시킬 수 밖에요.



다양한 메이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것도 이 게임의 장점입니다.
개인적으로 아이샤의 캐릭터가 마음에 드는데
조교물에 어울리는 캐릭터는 아니지만,
불쌍해보이는 캐릭터가 많다보니 분위기를 일신해주는 캐릭터 담당이 소중하게 생각됩니다.



껍질 속의 작은 새가 히트를 치고, 속편으로 이후의 이야기인 <어린 새의 지저귐>이나
팬디스크인 <아이샤포커> 등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어린 새의 지저귐>에서는 전작의 캐릭터들도 다시 등장하고
일부 캐릭터는 또 다시 조교를 받기 때문에
껍질 속의 작은 새의 팬이라면 역시 재미있게 할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총평하자면, 스타일 자체가 요즘 유행과는 좀 차이가 있는 게임입니다.
조교물 장르 자체는 요즘 많이 사라진 편입니다.
캐릭터 측면에서도 요즘 메이드는 좀 더 냉정하고, 발랄하고, 건방지고, 능글맞죠.

메이드 붐을 일으킨 게임이라는 역사적 의미는 있지만
지금 플레이해도 최고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그 시절에 조교물에 대해 알고 싶은 분이시라면
<SEEK>, <토리코>와 함께 플레이할만한 게임 중의 하나라고 생각됩니다.

2019년 3월 10일 일요일

리뷰 : 매혹의 조서(1995/12/8,BLACK PACKAGE)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BLACK PACKAGE사는 개인적으로 딱히 좋은 추억이 있는 회사는 아닙니다.
심지어 능X 계열용 브랜드였던 BLACK PACKAGE TRY의 경우는
일부러 피하는 회사 중 하나였습니다.
그래픽은 거칠고, 묘사는 과격하고,
캐릭터들의 몸매는 눈쌀이 찌푸려질 정도로 과장된 회사였죠.



말 나온 김에, 얘기하고 넘어 가겠습니다.
96년도에 나왔던 BLACK PACKAGE의 게임 <GET!>입니다.
2010년도를 전후해서 전반적인 에로게 캐릭터 가슴 크기에 인플레이션이 일어났는데,
이 회사는 96년도에 저 정도입니다.

저도 어느정도 큰 쪽을 선호하는 사람이지만 정도라는 게 있잖아요.
사실 저 위에 CG도 마음에는 별로 안 들지만,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어요.
근데 2000년대의 BLACK PACKAGE TRY의 게임의 거유 캐릭터들은
사람으로 보이지도 않을 정도입니다.

뭐, 어느 정도 수요가 있으니까 그런 게임이 계속 나오는 거겠죠.
취향은 존중합니다. 하지만, 저는 그런 게임을 정말 싫어합니다.
그런 게임에 관련된 트라우마도 있습니다.


아무튼, 다시 BLACK PACKAGE의 얘기로 돌아와서
BLACK PACKAGE도 2015년 이후로 사실상 망한 회사입니다.
오랜 활동 기간에 비해, 대표작이라고 할 만한 건 떠오르지 않는군요.

PC-98시절에 발매한 작품들도 눈에 띄는 게임은 거의 없습니다.
딱 하나, <껍질 속의 작은 새>만큼은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지만,
그건 바로 다음 리뷰에서 이야기하도록 하고,
이번에는 가볍게 BLACK PACKAGE의 데뷔작, <매혹의 조서>에 대해 리뷰하겠습니다.




매혹의 조서는 헌팅 게임입니다. 당시에 자주 보이던 장르 중 하나죠.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 헌팅하는 이유는 '일'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잡지사 계약직으로서 '성인 여성의 성 의식 조사'에 관한 기사를 써야합니다.
할당량까지 정확히 세 사람이 남았습니다.

어떤 파티에 참석해서 만난 8명 중에서 세 명을 헌팅해서
조서를 쓰는 것이 이 게임의 내용입니다.



선택지를 잘 선택해서 호감도를 올리는 방식입니다.
여덟 캐릭터 중 동시에 공략 못하는 캐릭터도 존재하고,
장소 이동이나 선택지도 마음대로 안 되는 부분이 많아서
난이도가 조금 있는 편입니다.

내용 자체는 길지 않고, 텍스트 스킵도 가능하기 때문에
반복하면서 플레이하면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닙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평범한 게임이지만 당시에는 나름 주목받았던 작품입니다.
공략 히로인 8명 중에 친동생이 끼어 있었기 때문이죠.
지금도 에로게의 친동생은 범상치 않은 소재이기는 하지만
시대를 고려하면, 정말 대단한 도전이었습니다.

다만, 여덟 캐릭터 중 비중이 딱히 크지는 않고,
스토리도 자극적인 편은 아닙니다.
이 소재를 잘만 살렸으면, 시대를 뛰어넘은 막장 드라마 게임으로서
이름을 날렸을지도 모를 텐데요.



총평하자면, 적당한 난이도, 괜찮은 그래픽, 성숙한 캐릭터.
가벼운 헌팅 게임에 무엇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스토리가 별볼일 없기 때문에 오래도록 기억될 만한 명작은 아니지만,
당시로서는 적당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한 게임입니다.

2019년 3월 3일 일요일

리뷰 : RED(1992/12/19,DISCOVERY)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제 기억 속에서의 DISCOVERY는 그다지 인상깊은 회사가 아닙니다만
그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당연 <RED>를 뽑겠습니다.
DISCOVERY 게임 중에서 스토리가 가장 좋은 게임입니다.



기본 시스템은 명령 선택식 어드벤처 게임으로 대단한 특색은 없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힌트가 없어서 곤란한 부분도 있지만,
이 시기의 게임치고 어려운 수준은 아닙니다.



독특한 점은 건슈팅 모드입니다.
게임 중간중간에 주인공이 습격당하고, 마우스로 조준점을 클릭해서
적을 쓰러뜨리는 방법입니다.
조작감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가끔 분위기를 환기시켜주는 용도로 사용되는 거죠.



스토리는 SF스릴러+탐정물입니다.
주인공인 탐정은 얼마 전까지 같이 탐정일하던 숙부가 사망한 관계로,
그의 일을 이어받아 '메모리 큐브'라는 것을 찾아야 합니다.

사실 찾네 마네 할 것도 없는 것이 평소 알고 지내던 노인이 이미 갖고 있습니다.
그걸 받아오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의뢰입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하니 사건은 복잡해지는데,
그 노인이 갑자기 살해당하고만 것입니다.
게다가 일을 의뢰해온 여성은 흑막스러운 분위기만을 남기고 연락두절됩니다.
주인공은 경찰에게 의심을 받으면서도 메모리 큐브를 찾아 나서고,
큐브에 관련된 거대한 음모를 파헤친다는 내용입니다.



이 게임에서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는 주인공의 조수인 티아입니다.
아쉬운 점은 이 게임은 2부 구성인데, 1부에서는 티아가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납치를 당하거든요.



메모리 큐브를 찾아 다니는 1부는 그 시기의 탐정물 중에서도 심심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별 대단한 사건없이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뿐이죠.
티아가 사라지고 대신 형사의 딸인 베타하고 같이 다니는데 
티아의 빈자리를 채워주기는 부족한 느낌입니다.

베타의 가치는 오히려 티아가 돌아온 이후인 2부에서 빛이 납니다.
주인공의 여자관계를 난장판으로 만드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죠.



2부에서는 메모리 큐브를 둘러싼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주인공 일행이 우주로 향하는 스토리입니다.
우주에서 우연히 표류되어 온 여성 그룹 중에 주인공의 첫사랑 오로라가 있어서,
주인공과 티아의 관계는 난리가 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빛나는 건 역시 티아입니다.
누군가의 함정에 빠져 둘 다 사망할 수도 있는 위기에 빠졌는데도,
주인공이 자신을 구해줄 거라고 믿으며, 
과감하게 하나뿐인 산소통을 주인공에게 넘기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다행히도, 주인공의 활약으로 둘은 함정에서 빠져 나오게 됩니다.

함정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함정에 빠뜨린 인물,
그리고 우주 정거장을 추락시키려는 음모를 꾸민 범인을 찾게 되는데...



범인은 주인공의 첫사랑이었던 오로라였습니다.
주인공의 총을 빼앗아 주인공에게 겨누는 장면입니다.
주인공은 오로라를 설득하며, 한걸음씩 다가갑니다.
가까이 다가가도 결국은 자신을 쏘지 못하는 오로라를 보며
주인공이 오로라를 설득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그 때,



오로라는 총에 맞고 원자로 속으로 추락해 버립니다.



티아가 주인공에게 총을 겨누는 오로라를 보고 쏴 버린 겁니다.
티아는 오로라가 주인공을 쏘려고 해서 구해주려고 했다고 하지만,
주인공은 오로라는 자신을 쏘지 않았고,
설득이 먹혀들고 있었는데 왜 맘대로 쏴버리냐고 화를 냅니다.
물에 빠진 사람 구해주니 보따리 내놓으라는 식입니다.
주인공에게 억울하게 혼난 티아는 시무룩해져서 자리를 떠납니다.

그 후, 오로라가 설치해둔 폭탄이 터져 버리고,
주인공은 혼란한 와중에 티아를 구하지 못하고 혼자만 탈출해 지구로 돌아옵니다.


티아를 구하기 위해 다시 우주 정거장으로 출발할 준비를 하는 주인공은
정비 도중 충격적인 사실을 하나 알게 됩니다.
바로 오로라가 겨눴던 자신의 총이 고장났었다는 사실이죠.

주인공이 오로라에게 한 설득이 먹혀서 총을 안 쏜 게 아닙니다.
총이 고장나서 안 나갔던 거에요.
오로라가 주인공을 쏘려고 했다는 티아의 말이 전부 맞았던 거죠.
괜히 티아에게 뭐라고 하더니 이럴 줄 알았습니다.



남은 내용은 주인공은 다시 우주 정거장으로 돌아가 티아를 구하고,
모든 음모를 저지하는데 성공하며,
조연들은 조연들끼리 잘 맺어졌다는 해피 엔딩입니다.


전반적으로, 좋았던 장면이 많았던 작품입니다만 아쉬운 점도 있는데,
명장면의 사이사이를 채워주는 스토리가 다소 빈약했다고 생각합니다.

죽은 줄 알았던 사람이 사실은 살아있었고,
적인 줄 알았던 사람은 사실 아군이었으며,
아군인 줄 았았던 사람은 사실 적이었습니다.
이런 내용이 숨가쁘게 진행되는 와중에, 그 내용에 대한 복선이 부족합니다.

처음에 죽었다고 생각했던 숙부도 사실 살아 있었습니다.
근데 그 정체가 이렇다할 복선도 없었고, 게다가 딱히 비중도 없던 캐릭터가
갑자기 '내가 이 사건의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네 숙부다.'하는 격입니다.



총평하자면, 예전에 극찬한 적이 있는 칵테일소프트의 <NIKE>와
분위기가 비슷한 작품입니다.
실제로도 <NIKE>를 제작한 스탭들이 제작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NIKE>와 비교했을 때, 한 단계정도는 아래인 작품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티아를 비롯한 캐릭터는 너무 좋았습니다.
약간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추천하기에 충분한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