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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2월 23일 일요일

리뷰 : 흑의 단장(1995/7/14, 아보가도파워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아보가도파워즈에서 발매한 <흑의 단장>입니다.
<스즈사키탐정사무소파일> 시리즈의 첫 작품으로
크툴루 신화를 모티브로 한 작품입니다.
<네크로노미콘> 리뷰 때도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저는 크툴루 신화에 대해 전혀 모릅니다.



시스템은 포인트 클릭 방식입니다.
시스템에 비해서 비판이 조금 있는 편인데,
포인트 영역이 작고, 클릭해야 하는 포인트를 알기 힘든 단점도 있습니다만
제 입장에서 큰 문제는 없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장소 이동없이 화면 하나에서 막히기 때문에
마구잡이로 클릭하다보면 어떻게든 해결이 됩니다.
막히는 부분이 많지도 않고, 많은 경우에 캐릭터 입만 클릭해도 되고요.

세가 새턴판이나 윈도우 판이 기종이나 시대에 비해 아쉬웠던 점은 있지만
PC-98기준으로는 큰 문제 없는 시스템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보다 더 짜증나는 경우도 훨씬 많았죠.



그래픽이나 캐릭터도 꽤 마음에 들었습니다.
메인 히로인격인 아스카가 상당히 귀엽습니다.
다른 마음에 드는 캐릭터도 많았는데, 다 죽어요.
상당히 가차없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주인공인 스즈사키입니다.
겉보기에는 로커처럼 보이지만 하드보일드형 탐정입니다.

이 게임은 스즈사키 시점과 그의 동료인 쿠사나기의 시점,
두 시점이 번갈아가며 진행됩니다.
시점 전환이 갑작스러워서, 처음에 이 게임을 플레이할 때는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스토리면에서 쿠사나기의 시점에서 볼 필요가 없는 것 같고,
쿠사나기 자체가 굳이 등장할 필요가 있었는지도 의문입니다.
활약도 스즈사키가 다 하고, H씬 재미도 주로 스즈사키가 봅니다.



이 게임은 2부 구성으로 되어 있는데
1부는 주인공이 사는 맨션에서 일어나는 연쇄 살인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범인은 맨션 내부의 인물인데,
살인사건도 충격적이고, 탐정의 활약도 괜찮습니다.
맨션 내의 인물들이 한 사람, 한 사람 살해당하면서 긴장감도 점점 고조됩니다.

문제는 그렇게 한 사람, 한 사람씩 죽다 결국 거의 다 죽는다는 겁니다.
이 게임은 미스터리물이 아닙니다. 크툴루 신화를 모티브로 한 호러 서스펜스물이죠.
추리물 분위기도 잘 만들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결국은 중요인물과 범인빼고 다 죽는 것으로 1부 결론이 나게 됩니다.



2부의 배경은 미국입니다.
개인적으로 크툴루 신화를 전혀 모르기 때문인지
마지막 부분에서 전개를 잘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또한, 마찬가지로 캐릭터를 너무 쉽게 죽입니다.
멋있게 죽는 캐릭터도 있었지만, 그냥 허무하게 갑자기 시체로 발견되는 캐릭터도 있어요.
2부가 생각보다 짧았던 것도 아쉬운 부분이었습니다.



이 게임은 세가 새턴으로 이식되었고, 세가 새턴판은 다시 윈도우로 이식되었습니다.
이식판 그래픽이 더 좋지만 개인적으로 아스카는 PC-98판이 더 마음에 듭니다.

보이스도 추가되었는데, 2부인 미국편은 아예 미국에서 외국인 성우가 녹음했다고 합니다.
해외 원정 녹음 비용이 대체 얼마나 들었던 건지
이것때문에 결국 아보가도파워즈는 적자를 봤다고 합니다.



총평하자면, 높은 평가를 받는 게임치고는 그렇게 즐기지 못했던 느낌입니다.
저도 재미있게 한 게임이지만, 저는 주로 아스카 캐릭터를 좋아했을 뿐
스토리를 즐겼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크툴루 신화를 잘 몰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이 게임이 미스터리물로서의 기대에서 벗어났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95년도는 그 어느 때보다도 탐정물이 많이 나왔던 때입니다.
<EVE ~burst error~>를 필두로 <유작>, <엽기의 함>, <진설 카미야 우쿄2>,
<암고양이 비서실>, <마리아에게 바치는 발라드> 등등...
제가 욕했던 것도 몇 개 끼어있는 것 같지만
어쨌든 다양한 매력의 탐정들이 있었죠.

흑의 단장은 그 중에서도 가장 독특한 전개가 돋보이는 게임입니다.
크툴루 신화에 관심이 많은 분에게는 추천할만하다고 생각됩니다.

2020년 2월 16일 일요일

리뷰 : 작별의 저편(1997/8/8, FOSTER)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작별의 저편>입니다.
포스터사의 다른 게임과 마찬가지로 단순한 시스템으로 가볍게 즐길 수 있습니다.



프롤로그에서 주인공은 아야노라는 여성과 결혼에 골인합니다.
그러나 불과 신혼생활 한 달만에 아야노는 교통사고로 사망하게 됩니다.
아야노는 네 자매의 장녀입니다.
아야노가 죽은 후, 아야노의 세 동생과 함께 산다는 처제물입니다.

처음에는 가족 모두가 슬퍼했지만 세월이 흐르며
아야노를 잃은 아픔이 점점 치유되는 상태입니다.



주인공은 아직도 죽은 아야노를 잊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회사에서 아야노와 똑같은 뒷모습을 가진 사람을 보게 됩니다.

회사 건물에서 뒷모습이 자주 보이는 걸로 봐서
같은 회사의 직원임에는 틀림없어 보입니다.
과연 그녀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주인공과 같이 사는 차녀인 리츠코입니다. 언니를 대신하여 회사 사장이 되었으며
주인공은 리츠코를 보좌하는 역할입니다.
젊은 여사장이기 때문에 대머리 부사장과 파벌 대립을 하고 있습니다.
사장자리를 노리는 부사장과의 치열한 권력 암투를 예상했지만
포스터사의 게임답게 그런 거 없습니다.



삼녀인 미사키입니다.
애인이 있고 그 애인과의 H씬을 주인공이 목격하는 장면도 있는데
뭔가 관계가 이상해 보입니다.
하지만, 역시나 별 대단한 스토리는 없죠.



막내인 치카입니다. 주인공에 대한 호감도가 높고 질투도 많이 하는 스타일입니다.
집안일도 도맡아서 하고 도시락도 싸주는 착한 여동생형 캐릭터입니다.



치카의 단점은 헤어스타일입니다. 머리끈을 압수해야 합니다.


이런 캐릭터들과 함께 90년대 회사드라마, 시트콤 느낌으로 전개됩니다.
다른 포스터 사의 게임들처럼 무작정 H씬만 들어있는 게임도 아니고
짧긴 하지만 나름 즐길만한 스토리입니다.

다만, 초반에는 복선을 실컷 깔아놓고서
그 복선을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게 아쉽습니다.

계속 나왔던 죽은 아내의 뒷모습도 그 정체가 마지막에 공개됩니다.
그 정체가 뭐냐고요? 다음 짤과 같습니다.



그냥 앞모습은 안 닮은 사람이었습니다.

뭐, 이렇게 허무한 결말을 보여주기 위해 넣어 놓은 복선은 아니겠죠.
뒷모습의 정체가 밝혀지는 건, 최후의 에필로그 파트입니다.
주인공과 리츠코가 연결되고 나서죠.
아마도 주인공이 이제는 죽은 아야노에 대한 집착을 버린다는
상징적인 장면으로 넣어 놓았을 겁니다.

근데, 이 게임은 에로게이며 단일 루트의 게임입니다.
스토리동안 주인공은 처제들을 포함한 여러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다녀요.
그에 반해, 죽은 아내에 대한 집착에 대한 묘사는 많지 않았어요.

이 게임의 장르나 스토리가 저런 장면과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차라리 다른 아는 사람이었다는 결말이 더 어울렸을 겁니다.



총평하자면, 이 정도라도 포스터 사의 게임 중에서는 가장 스토리에 충실한 작품입니다.
포스터사 게임들이 워낙 H씬만을 위해서 달리기 때문이죠.

짧고 허무하지만, 그래도 즐길 수 있는 스토리가 있는 게임입니다.
어떤 스타일을 좋아하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일단 포스터 사 최고의 게임으로 뽑겠습니다.

2020년 2월 9일 일요일

리뷰 : 여기는 낙원장(1994/4/22, FOSTER)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FOSTER는 Forest의 산하 브랜드중 하나였습니다.
Forest의 산하 브랜드는 Forest, FOSTER, FORESTER, FORST 등이 있습니다.
헷갈리기 딱 좋은 이름들입니다. 회사 직원들도 헷갈렸을 것 같습니다.

아무튼 이 회사는 2003년도쯤에 WILLPLUS 계열에 팔렸습니다.
그리고 소리소문없이 사라졌죠.
더 복잡한 계보를 이야기할 수도 있지만 딱히 기억해야할 이유가 있는 회사는 아닙니다.

아무튼 일단 FOSTER는 PC-98부터 윈도우 시절에 이르기까지
그냥 뽕빨물이나 만드는 회사였습니다.
<꽃의 기억> 시리즈나 <여기는 낙원장> 시리즈같은 것들이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는 낙원장>입니다. 총 세 편이 나온 게임입니다.
단일 엔딩에 선택지가 있기는 하지만 딱히 헤멜정도도 아닌
간편하게 즐길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회사를 그만둔 백수입니다.
주인공의 숙부가 자신이 해외에 다녀올 동안,
주인공에게 자기 건물 관리인을 맡기려고 합니다.
그 건물이 '낙원장'입니다.



낙원장에는 6개의 방이 있는데, 주인공은 101동에서 살고
나머지 방에는 전부 젊은 여성이 살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낙원입니다.
에로게답게 여성들이 적극적이라 야한 이벤트도 자주 일어납니다.

뽕빨물이지만 메인 스토리가 없지는 않은데
낙원장에서 각종 사고가 계속 일어납니다.
주인공은 계속 보이던 오타쿠같이 생긴 남자를 의심했지만
그 분은 결백했습니다.



범인은 203호에 살고 있던 미사였습니다.
건물주인 숙부의 딸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사촌 여동생이기도 합니다.
미사가 여러 사건을 일으킨 이유는 낙원장의 여성들을 쫓아내기 위해서 입니다.



미사를 제외한 나머지 넷의 정체는 바로 숙부의 애인입니다.
'낙원장'은 사실 '숙부의 낙원'이었다는 어마어마한 반전이죠.
숙부가 해외에 갔기 때문에 여성들의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주인공을 관리인으로 임명했던 겁니다.

마지막에는 모두 주인공이 마음에 들어버렸다는 수습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요즘 게임에서는 꿈도 못 꿀 반전입니다. 만약 이런 게 나온다면 난리나죠.
저는 에로게라면 좀 더 개방적인 것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입장입니다만
최근 소비자 경향이 이런 걸 원하지 않죠.
이 문제에 관해서는 말을 아끼겠습니다.

아무튼 마지막에는 사촌 여동생 미사와 사귀게 되지만,
다른 캐릭터와도 여전히 관계를 가지며 주인공의 낙원이 된다는 결말입니다.
결말이 좀 이상한 것 같은데 어쨌든 해피엔딩이라 칩시다.



하지만, 2편이 되자 미사도 해외로 떠나 버리고 주인공은 다른 여성과 또 놀아납니다.
3편은 그 와중에 해외에서 미사가 돌아오는 스토리입니다.

아침 드라마급 막장 스토리이지만 그다지 갈등은 없습니다.
그냥 뽕빨물이니까요.



총평하자면, 최근에 나오는 아틀리에 카구야 계열 게임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반전 이외에는 딱히 지금 시점에서 눈에 띄는 게 없는 작품이죠.
그래픽은 당시로서는 괜찮았기는 하지만, 현재 시점까지 통용될 정도는 아니고요.

요즘 게임 중 아무 거나 고르는 게 더 좋은 수준입니다.
뭐, 뽕빨물에 그 이상의 가치를 기대할 수는 없겠죠.

2020년 2월 2일 일요일

리뷰 : 전학생(1995/3/24, SPACE PROJEC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SPACE PROJECT에서 발매된 <전학생>입니다.
나름 유명했던 게임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졌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이 게임은 'DOS시절의 전설적인 개쓰레기똥겜'입니다.


저는 전학생의 이런 악명을 알고난 후에 이 게임을 플레이한 사람입니다.
보통 이 정도의 악평을 듣는 게임을 플레이하면,
생각보다 욕할 점이 많지 않다든가 의외로 괜찮은 부분도 보이거나 할 때도 있습니다.
왜냐면, 기대를 전혀 하지 않고 플레이하니까요.
기대가 없는데 어찌 실망이 있겠습니까?

전학생에 대한 제 평가도 아마 생각보다는 나쁘지 않았다로 결론이 날 확률이 높았죠.
옛날에 플레이할 때는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주인공 코우다 마리코는 고등학교 2학년으로 전학생입니다.
새로운 학교에서의 일상을 진행해 나가면서 로스트 버진을 목표로 한다는 내용입니다.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는 엔딩도 있고,
불행한 일을 당하여 게임 오버식의 배드엔딩도 있으며,
그냥 아무 일없이 1년을 진행하는 엔딩도 있습니다.



게임은 멀티 윈도우에 명령 선택식으로 진행됩니다.
'학교에 간다', '전철을 탄다' 등을 선택해서 주인공을 조작해서
여고생의 하루를 체험하는 방식이죠.

대부분의 경우는, 딱히 선택지가 없고 클릭할 수 있는 게 하나밖에 없습니다.
무의미하고 단순한 클릭일뿐이죠.

이런 클릭이 게임 시간 하루에 몇 번 나오느냐?
일반적으로 특별한 이벤트 선택지 몇 개를 제외하면
하루에 나오는 클릭할 것들은 대충 이정도입니다.

======================================

일어난다
학교갈 준비를 한다
집을 나간다
전철역으로 향한다
역에 들어간다
전철에 타지 않는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에 타지 않는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에 탄다
전철에서 내린다
역에서 나온다
학교로 향한다
수업준비를 한다
수업에 집중
쉬는시간 종료
수업에 집중
쉬는시간 종료
수업에 집중
오늘 수업 종료
혼자서 돌아간다
전철역으로 향한다
역에 들어간다
전철에 타지 않는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을 기다린다
전철에 탄다
전철에서 내린다
역에서 나온다
집으로 향한다
집에 들어간다
갈아입고 식사
무엇을 할까?
공부를 한다
공부끝
휴식을 한다
휴식 끝
공부를 한다
공부 끝
휴식을 한다
휴식끝
목욕탕에 들어간다
목욕을 끝낸다
이제 잔다
안녕히 주무세요

===================================

이정도입니다.
이 중에서 노란 글씨만 선택지입니다.
나머지는 선택지도 없이 그냥 클릭만 하는 거에요.

뭐가 이렇게 많죠?
게다가 대부분이, 아니 거의 100프로가 의미가 전혀 없습니다.

쓸데없이 세세하잖아요.
고작 등교를 하는데
'학교갈 준비를 한다.', '집을 나간다.', '전철역으로 향한다.'
'역에 들어간다.', '전철을 탄다.', '전철에서 내린다.'
'역에서 나온다.', '학교로 향한다.'를 다 클릭해야 됩니다.

학교 가는데 만나는 사람도 없고 아무런 이벤트도 없는데 이렇게 세분화되어 있다고요.
게다가 똑같은 식으로 하교까지 해야 됩니다.

거기에 보시다시피 저것만 있는게 아니에요.
'전철에 타지 않는다'와 '전철을 기다린다'도 있어요.
전철이 왔는데 전철이 혼잡하다면 주인공이 그냥 안 탑니다.
플레이어가 선택할 여지도 없이요.

이런 클릭을 대체 왜 해야되는 걸까요?
게임 제작자한테 한 번 물어보고 싶습니다.


학교 수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수업 준비를 한다.' 후에  '수업에 집중'과 '쉬는 시간 종료'가 세 번정도 반복되죠.
대체 수업시간 동안, 또 쉬는 시간동안 이벤트가 별로 없는데
왜 이걸 세 번이나 반복하는 거죠?
의미가 전혀 없잖아요.


선택지가 있는 것도 마찬가입니다.
'공부를 한다'같은 경우는 '공부를 한다'와 '공부를 안한다'가 있습니다.
공부를 안한다를 선택하면 '휴식을 한다'와 '휴식을 안한다'가 나옵니다.
휴식을 안한다를 선택하면 '산책을 한다'와 '산책을 안한다'가 나옵니다.
산책을 안한다를 선택하면 '공부를 한다'와 '공부를 안한다'가 나옵니다.
공부를 안한다를 선택하면 '휴식을 한다'와 '휴식을 안한다'가 나옵니다.
...

네, 무한 반복입니다.
'공부', '휴식', '산책' 중 뭐 하나는 해야하는 겁니다.
하나도 안 하면 게임이 진도가 안 나갑니다.


'이제 잔다'의 선택지같은 경우는 선택하면 하루가 끝납니다.
'아직 안 잔다'를 선택하면 '공부를 한다'와 '공부를 안한다'가 나옵니다.
공부를 안한다를 선택하면 '휴식을 한다'와 '휴식을 안한다'가 나옵니다.
휴식을 안한다를 선택하면 '이제 잔다'와 '아직 안 잔다'가 나옵니다.
또, 무한 반복입니다.


이 게임은 육성 시뮬레이션이 아닙니다.
주인공에게 능력치같은 게 없어요.
'공부'를 하든, '휴식'을 하든, '산책'을 하든 향후 전개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합니다.

그럼 이 선택지를 왜 만든 걸까요?
저한테 묻지 마세요. 저도 모릅니다.



사실 처음에 할 때는 의미 없어 보이지만 게임을 진행하다 보면
조금 선택지가 늘어나기는 합니다.

'수업에 집중' 같은 경우는 나중에 수업에 집중을 못해서 선택지가 생기는데
수업 중에 오나X를 할 수 있게 되는 식으로 선택지가 늘어나죠.
현실에서도 학기 초에서는 수업에 집중하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수업에 집중 못하고 그러잖아요.

근데, 그마저도 그게 끝입니다. 선택지가 많이 안 늘어나요.
그리고 조금 늘어난 선택지가 무한히 반복됩니다.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심각할 정도로 한정되어 있습니다.
현실의 학생이나 회사원의 평범한 일상도 저것보다는 더 다양한 일이 일어납니다.



제가 지금까지 말씀드린 건, 게임상에서의 단 하루입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이 짓을 최장 1년을 반복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저도 농담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이 지겨운 짓을 1년을 반복해야 한다고요.
비슷한 게임으로 리뷰한 것중 칵테일소프트의 <커스텀메이트3>가 있었죠.
그 게임은 신혼인 회사원이 하루에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했고 재미있었지만, 
그걸 1년이나 반복해야 하다보니 게임이 지루해지는 케이스입니다.

근데 이 게임은요?
하루가 이미 지겨운데, 그 하루를 1년동안 반복해야 하는 겁니다.


<커스텀메이트3>에서는 그나마 날짜를 자동으로 넘길 수 있는 방법이 존재했습니다.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 게임에도 자동 기능이 존재합니다.



저속 시한진행, 중속 시한진행, 고속 시한진행의 옵션이 있군요.
지금의 오토와 비슷한 기능입니다.
선택지에서 주인공이 자기 마음대로 선택하면서 천천히 진행되는 방식입니다.
플레이어는 그냥 모니터만 하염없이 쳐다보면 됩니다.
계속 반복되는 똑같은 장면만 쳐다보고 있는 건 마찬가지라서
떨어지는 낙엽이나 흐르는 냇물을 지켜보는 것과 비슷한 재미를 느낄 수 있습니다.

시간도 재봤습니다.
고속 시한진행으로 하루를 보내는데 4분 10초가 걸렸죠.
이 4분 10초의 하루를 1년동안 쳐다보고 있어야 하는 겁니다.
정말 무쓸모한 자동진행입니다.

1년을 진행하지 않는 방법은 결국 빠른 로스트 버진뿐입니다.
배드엔딩이고 뭐고 빨리 무슨 엔딩이라도 봐서 이 게임을 멈추는 것이
이 지옥에서 탈출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하지만, 이 게임은 이런 탈출조차도 쉽게 허용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이벤트가 어떤 조건 하에서 일어나는지도 잘 모르겠고
자주 일어나지도 않아요.
이 지독한 일상을 계속 보내다 보면, 어쩌다 한 번 이벤트가 일어나는 겁니다.



게임 전체의 이벤트 숫자가 적은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이벤트를 보기 위해서는 불필요하면서도 지루한 일상을
수도없이 반복해야 하죠.

게다가 이 게임은 전체적으로 크게 세 가지 분기로 나뉘어집니다.
학생회에 들어가거나, 신체조부에 들어가거나, 아무 곳에도 들어가지 않거나입니다.
모든 이벤트, 모든 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세이브, 로드를 계속 사용하면서 이 엔딩, 저 엔딩을 보더라도
최소 세 번은 플레이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 지루한 게임을 세 번이나 플레이해야 한다고요.
하루가 1년같고, 1년이 10년 같은데 세 번이나 플레이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이 할 짓이 아닙니다.


게다가, 심지어 이 게임은 버그가 많기로 악명 높은 게임입니다.
무슨 버그가 많냐고요?
주로 게임진행이 잘 안 되고 똑같은 이벤트가 계속 반복되는 버그입니다.
안 그래도 똑같은 짓을 끊임없이 반복하느라고 짜증나는 게임인데
버그까지도 계속 같은 짓을 반복하도록 시킨다고요.
이 무슨 정신고문 게임입니까?


이렇게까지 지루하고, 귀찮고, 무의미한 고생을 시키는 게임은 본 적도 없습니다.
클릭하면서 하면 클릭하는 고생이 아깝고, 자동진행하면 시간이 아까운 게임입니다.
스토리를 감상한다는 건 어림도 없고, 선택지 게임으로서 즐기는 것도 불가능하며,
CG구경만 하는 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게임입니다.

똥겜, 쓰레기겜이라는 칭호조차 과분합니다. 겜이라는 글자를 붙이는 것조차 아까워요.
이런 건 똥, 쓰레기라고 불려야 합니다.



진정하고 총평하자면, 이 시기는 게임에 대한 표준이 없던 시기였습니다.
지금이야 틀에 박힌 에로게밖에 안 나오지만
이 시대에는 틀이 없었고 많은 시도를 하는 시기였죠.

이 게임도 무슨 시도를 하고 싶었던 건지 보일듯 말듯하기는 합니다.
아마 여고생의 평범한 일상을 체험시켜주고,
그 중에서 특별한 이벤트를 어떻게 버무려 나가는...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무슨 생각은 있었겠죠.

참신함은 있어요. 그건 인정합니다.
하지만 그 참신함은 그 시절에는 환영받지 못했고,
지금도 환영받기 힘들 것 같습니다.
먼 미래에도 아마 마찬가지겠죠.

남녀노소 그 누구도 재미있게 할 수 없는 게임입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의 생애가 너무나도 스펙타클한 나머지
대체 지루함이란 뭘까하고 궁금해 하시는 분들에게만 추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