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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4월 27일 월요일

리뷰 : 포제셔너(1994/3/18, 퀸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퀸소프트의 대표작 <포제셔너>입니다.
최근까지도 많이 회자되는,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높은 게임 중 하나죠.



인지도가 높은 이유는 바로 PC98에서도 손꼽히는 도트 그래픽입니다.
해당 짤은 인터넷에서 많이 돌아다니는 유명한 CG인데
이 게임의 장점을 잘 표현하고 있죠.

이 이외에도 감탄나오는 CG가 좀 더 있습니다.
움직임도 자연스럽고 분위기도 인상적입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2035년의 미래, 많은 여성들이 포제셔너라는 수수께끼의 의식에 몸을 지배당해
인류를 공격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상급 포제셔너에 대항하는 특수부대 '슬릿'의 소속으로 여성입니다.



전투에서 승리한 후, H씬을 통해 캐릭터를 정상으로 되돌리는 작업을 거칩니다.
등장인물 전원이 여성이기 때문에 백합씬입니다.
대략적으로 이런 전개가 반복되는 게임으로
당시에 많이 나오던 스타일의 게임입니다.



전투는 다양한 스킬이 있고, 기술마다 다양한 연출이 돋보입니다.
다만 실제 게임을 하면, 전략적으로 다양하게 사용하기보다
그냥 역할 분담 확실히하고 쓰던 기술만 계속 사용하게 됩니다.



총평하자면, 그래픽은 지금봐도 감탄이 절로 나옵니다.
PC98 에로게는 길게 보면 98년도까지 이어지지만
94년도에 나온 이 게임의 그래픽을 따라잡은 게임은 많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그래픽, 연출, H씬 등을 중시하시는 분께는 추천할만한 게임입니다.
지금 게임들과 비교하면 미흡한 점도 있겠지만,
웅장한 고대 유적을 보는 느낌으로 감탄하면서 플레이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 이외에 눈에 띄는 부분이 없는 게임이었습니다.
유명한 게임에서 이렇게 리뷰할 이야기가 없으면 조금 당황스럽군요.

2020년 4월 19일 일요일

리뷰 : PURE2(1990/12/20, 퀸소프트)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퀸소프트의 <PURE2>입니다.
90년대 초반에 꽤나 화제가 되었던, 당대를 대표하는 쓰레기 게임이죠.



스토리는 주인공이 폐부 위기에 빠진 축구부를 구하기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축구부는 부원이 없기 때문에 폐부를 걱정할 처지에 놓였고
주인공은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쁜 매니저를 영입하기로 합니다.
이쁜 매니저가 있으면 부원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는 얘기죠.



그러던 도중, 잃어버린 책 찾는 일도 하게 되고 아무튼 스토리는 별 거 없습니다.
별 내용없이 학교를 돌아다니는 내용일 뿐이지만,
사실 이 시기에 이런 무의미한 게임들은 넘쳐났습니다.
다른 게임에 비해 큰 문제가 있는 스토리는 아니라는 거죠.

시스템상 불편한 점, 두 가지만 짚고 넘어갑시다.



첫 번째로 짜증나는 부분은 대사 페이지를 넘기는 키와
커맨드를 선택하는 키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초기 퀸소프트 게임에서 자주 보이는 문제죠.
대사 페이지를 넘길 때는 키보드의 스페이스 바를 눌러야 하고
커맨드를 선택할 때는 키보드의 엔터 키를 눌러야 합니다.
반대로 누르면 게임이 미동도 없어요.

다른 게임같은 경우는 방향키와 엔터키만 눌러도 게임을 진행할 수 있는데
이 게임은 왜 이렇게 만들었는지 이유를 알 수가 없습니다.



또 다른 문제점은 쓸데없는 커맨드가 꽤 많은 편이라는 점입니다.
특히 '생각한다'의 커맨드가 너무 많아요.

명령 선택식 게임의 경우는 게임 진행이 한 번 막히게 되면
모든 커맨드를 전부 눌러보는 방법을 써야 하죠.
어떤 커맨드를 선택하지 않아서 진행이 안 되는지 모르니까요.

보다, 듣다, 말하다 이런 게 많은 것도 짜증나기는 합니다.
하지만 이것들은 개수라도 적죠.
'생각하다'의 커맨드는 열 몇 개가 됩니다. 게다가 그 중 열 몇 개가 쓸모없죠.
그리고 문제는 그 열 몇 개의 생각이
각 장소마다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는 겁니다.

축구부실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도서실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체육관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양호실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수영장에 가서 '부원'에 대해 생각하고, '선생'에 대해 생각하고, 누구누구에 대해 생각하고...
시청각실에 가서... 샤워실에 가서... 꽃꽂이 부에 가서... 

이게 무슨 데카르트인가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겁니까?
생각이 너무나도 많습니다. 
어차피 한 사람이 하는 생각이야 다 비슷비슷 할 텐데, 
장소마다 '생각한다' 커맨드를 만들 필요는 없잖아요.

게임 진행에 있어서 저 많은 커맨드를 일일히 다 눌러보는 경우가
많지는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저도 정확히는 모릅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플레이할 때는 게임 진행이 자주 막혔고,
저걸 다 안 누르고 어떻게 해보려고 했지만 도무지 게임이 진행되지 않았습니다.


근데, 고작 이 정도라면 이 게임이 90년대 초반 대표 쓰레기 게임이라고 불리지는 않았겠죠.
왜냐면, 90년대는 이 정도의 불편함을 강요하는 게임이 넘쳐나는 시대였습니다.

늘 말하지만, 이런 식으로라도 플레이타임을 늘리는 게 미덕이라고 생각했던 시대였죠.
따라서, 이 게임은 좀 과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독보적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이 게임은 대체 왜 그렇게 유명한 쓰레기 게임이 된 걸까요?
저도 궁금하네요.
지금까지 90년도의 쓰레기 게임 <PURE2>에 대해서 알아보았습니다.













이렇게 리뷰를 끝내버리면 바로 알맹이 없는 리뷰가 됩니다.
그리고, PURE2가 욕먹는 이유도 이와 같습니다. 알맹이가 없는 거죠.

다른 게임과 달리 PURE2는 
커맨드를 선택하면서 열심히 고생한 것에 대한 보상이 없습니다.
쉽게 말해, 스토리 내내 H씬이 없는 겁니다. '에로 없는 에로게'인 거죠.

게임내에 야한 CG가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게임이 전부 끝나고 엔딩을 보는 시점에서,
'그녀들은 어떻게 됐을까?'하고 대사 하나 없이 야한 CG가 슉슉 지나가고 끝입니다.

당시 플레이한 사람들은 이런 게임일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야한 장면을 보겠다는 일념하에 열심히 '생각한다' 커맨드를 눌러가며 고생을 했겠죠.
보상은 마지막에 적선하듯이 던져준 CG 몇 개따위가 전부였습니다.
이 게임이 트라우마가 됐다는 사람도 있어요.


놀랍게도, 사실 복선은 존재했습니다.
제목을 보세요. PURE입니다. 순수한 게임이라 H씬 따위는 없는 겁니다.

이름값을 톡톡히 하는 게임입니다.
젊고 순수하니 해놓고 고전 에로게나 리뷰하는 블로그에 비해
이 얼마나 정직한 게임입니까?

문제는 금도끼 은도끼도 아니고 사람들이 원한 건 정직함이 아니었다는 거죠.
게다가, 전작 <PURE>는 그냥 평범한 에로게였습니다.
이 게임이 이런 사기를 치리라고는 아무도 예상을 못 했고,
낚인 사람들의 분노는 엄청났습니다.

퀸소프트는 이후로도 많은 게임을 냈지만,
PURE2를 발매한 회사라는 오명을 벗기까지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고,
94년도에 <포제셔너>가 발매되고 나서야
비로소 회사의 대표 게임을 바꿀 수 있었습니다.



총평하자면, 에로게의 역사를 오래 지켜본 분들은 알고 계실 겁니다.
몇 년에 한 번씩 이런 미완성 작품이 발매됩니다.

CG의 양이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적다든가,
H씬 장면에서 갑자기 화면이 까매진다든가,
캐릭터 중 몇 명은 예고도 없이 공략 불가라든가,
이런 게임들이 간간이 나오고 있죠.

미완성 게임들은 그 어떤 쓰레기 에로게보다도 욕을 많이 먹었고,
요즘은 발매 연기를 해서라도 최대한 그런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려고 합니다.

PURE2가 욕먹은 현상도 지금 보면 그렇게까지 특이한 경우는 아닙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런 사기를 치는 게임이 많지 않았고
PURE2는 대표적인 사기게임이 되어 버린 거죠.

30년이 지난 오늘날에는 낚시 여부를 떠나
플레이하는 게 시간낭비인 게임입니다.
전혀 추천하지 않고, 이런 쓰레기 게임이 있었다는 사실만을 기록합니다.

2020년 4월 13일 월요일

리뷰 : 웨딩 에란트리 ~역옥왕~(1994/12/9, 그로서)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그로서의 <웨딩 에란트리 ~역옥왕~>이라는 RPG입니다.



스토리는 주인공이 여자에게 차이고 뺨부터 맞고 시작합니다. 
주인공은 우유부단하고 한심한 성격으로 여자에게 차이는 게 일상인 청년입니다.
검술이나 마법같은 것도 공부한 적 없는,
기존의 RPG주인공과는 전혀 관계없는 일반 소시민일 뿐이죠.



그러던 어느 날, 왕국의 모든 총각에게 공주의 신랑감을 공개 모집한다는
초대장이 발송됩니다.
공주의 사위가 되는 조건은 궁정 마도사가 만든 '멋진 남자 양성 던전'을 제패하는 겁니다.
그 던전은 멋지고, 듬직하고, 강하고, 'H를 잘하는' 남자를 양성하는 던전입니다.

주인공같은 소시민은 당연히 공주와의 결혼은 꿈도 꾸지 못할 일이지만
'H를 잘하는 남자를 뽑는다' = '던전에서 H한 이벤트가 있을 것이다'라는
다소 불순한 이유로 주인공은 공개 모집에 참여합니다.



그런 주인공에게 희대의 운빨이 터지는데
1000번째 참가자에 당첨되어 공주의 키스를 받게 됩니다.
공주는 애초에 포기하고 H씬이나 누리려던 주인공은
진짜로 공주에게 반하게 되고 던전 제패를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입니다.


문제는 주인공이 마음먹었다고
금세 멋있고 듬직한 전사가 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거죠.
심지어 장비도 없어서 경비원이 던전에 들여 보내주지도 않습니다.
게다가, 무기점에 가보니 무기가 다 품절됐다고 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근처 식당에서 국자하고 냄비나 빌려서 장비하게 됩니다.
던전 앞을 지키던 경비원은 국자, 냄비로 장비한 주인공이 안쓰러웠는지
그냥 들여보내 줍니다.

던전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고 나서 필드형 RPG가 시작되는데
난이도가 말도 못하게 어렵습니다.

잡몹이라도 잡아야 경험치라도 얻을 텐데 첫 몹을 잡을 수가 없어요.
잡을 수 없는 정도가 아니에요.
대미지가 1밖에 안 들어갈 뿐더러
그마저도 명중률이 낮아서 제대로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결국 주인공은 도망만 다니다 지하 1층의 가디언에게 패배하고
참가자격까지 잃어버리게 됩니다.

굉장히 현실적입니다.
사실 아무리 잡몹이라도 국자와 냄비같은 걸 장비한 마을 사람에게
패배한다는 건 말이 안 되죠.
그래도 이건 게임이잖아요. 난이도가 너무나도 미쳤습니다.



가디언에게 패배하고 정신을 잃은 주인공은 눈을 떠보니
공주의 방에서 깨어나게 되고,
공주는 주인공이 마음에 들었는지 다시 한 번 참가자격을 줍니다.

공주의 호의에 감동해서 다시 한 번 도전해 봤지만,
여전히 잡몹을 쓰러뜨리는 것도 버겁습니다.
뭐, 이딴 게임이 다 있어라고 욕하고 포기하기 딱 좋은 게임입니다.



사실 이 게임은 다른 RPG와 똑같은 방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핵심은 레벨이나 경험치가 아니라 바로 칼로리입니다.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근력이 붙고 그게 주인공의 스탯을 올려주는 거죠.
운동량과 칼로리를 적정 기준에 맞춰 유지하면 주인공이 성장하게 됩니다.

전투 한 번 제대로 안 되는데 운동은 어떻게 하느냐?
던전에서 걸어다니면 됩니다.
그러니까 초반에는 싸울 생각일랑 말고, 도망만 계속 다니고
던전에서 계속 걸어다니면서 칼로리 소모로 기본 스탯을 올려야 하는 겁니다.

운동을 너무 많이 하면 오버워크가 되어 오히려 안 좋습니다.
칼로리 섭취도 너무 많이 하면 주인공이 살 찝니다.
주인공 몸매는 S, M, L, LL 사이즈가 있으며, 몸매에 따라 맞는 갑옷도 따로 있습니다.
게다가, 살이 찌면 온 마을 사람들이 살쪘다고 주인공에게 한 마디씩 합니다.
심지어, 공주까지 주인공을 구박하죠.
주위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라도 꼭 적정 체중을 유지해줘야 합니다.



칼로리 섭취는 식당에서 합니다.
식당에는 자리가 부족한지 늘 다른 사람과 합석을 해야하는데
합석 상대는 주로 주인공의 라이벌인 페르난도입니다.



페르난도는 첫 인상 그대로 재수없는 라이벌 포지션입니다.
게임이 진행되면서 주인공과 자주 전투하고 거듭 패배하는데
마지막에는 그래도 주인공을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최후의 전투에는 파티원으로 합류하기도 하죠. 도움은 전혀 안 되지만요.



던전에서 만난 유리라는 여전사입니다.
국자와 냄비로 무장한 주인공을 보고 경멸하는 눈빛을 숨기지 않습니다.
그런 꼴로 공주와 결혼이 목표라고 하니 한심해 할 만도 합니다.
전투를 하는데, 잘 먹고 운동을 열심히 했다면 쓰러뜨리는 건 어렵지 않습니다.



식당에 가서 식사를 하면 이번엔 유리와 합석을 하게 됩니다.
국자따위에 패배한 것만해도 짜증나는데 장본인이 앞에서 신나게 밥먹고 있으니
얼마나 성질이 뻗치겠습니까?
제 취향을 저격하는 시츄에이션입니다.
유리가 울분을 꾹 참고 있는 모습이 정말 마음에 들어요.

유리 역시 모험 내내 주인공과 티격태격하지만
마지막에는 주인공을 인정하고 주인공을 사랑하게 되죠.



아무튼 주인공은 계속 던전을 탐험하면서,
점점 강해지고, 여러 여성과 좋은 관계가 되기도 합니다.



공주와 같이 탐험을 떠나기도 하면서 공주와도 사랑을 나눌 정도의 사이가 됩니다.
한심한 인생을 살던 주인공이 그야말로 승리자가 되어 버린 겁니다.



계속 던전을 모험하다 보면,
주인공의 동향을 신경쓰면서 이제 슬슬 행동할 때가 되었다는
흑막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빛이 바뀌더니...



흑막은 바로 공주님이었던 겁니다.
무시무시한 반전입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주인공과 사랑을 나누더니
어떻게 이렇게 갑자기 돌변할 수가 있죠?



사실 그녀의 정체는 공주가 아니라,
궁정마도사이자 공주의 숨겨진 쌍둥이 여동생입니다.
최후반부에서 궁정마도사는 공주를 납치하고,
주인공은 페르난도, 유리 그리고 피즈라는 여마술사와 힘을 합쳐
공주를 구하러 갑니다.

주인공과 대치한 궁정마도사는 진짜로 충격적인 마지막 반전을 주인공에게 들려줍니다.
'찌질한 너를 공주가 진짜로 사랑하는 줄 알았냐.
모든 것은 마법의 힘이었다. 나를 쓰러뜨리면 모든 마법이 풀릴 것이고
너는 모든 여성들의 사랑을 잃고 찌질했던 옛날의 모습으로 되돌아갈 것이다.'
맨 처음 이벤트로 당첨되어 받았던 공주의 키스가 바로 마법이었던 겁니다.

주인공은 큰 충격을 받아 망설이게 되고
페르난도와 피즈는 그 사이에 궁정마도사에게 당해 버립니다.

주인공에게 있어 옛날의 아무 능력도 없고 여자에게 차이기만 하던 시절은
그만큼 큰 트라우마였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유리는 망설이는 주인공을 설득하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과연 과거를 극복하고 공주를 구해낼 수 있을까요?
결말은 뻔히 정해져 있습니다. 하지만, 제 리뷰는 여기까집니다.



이 게임의 가장 재미있는 부분은 주인공의 성장입니다.
처음의 주인공은 장비가 없어 국자와 냄비를 장비하고,
싸움을 못 해서 도망이나 다니고, 던전이나 걸어다니면서
근근이 운동이나 겨우 하던 신세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인공을 한심하게 생각했죠.

하지만, 주인공은 던전을 탐험하며 성장하게 됩니다.
그 찐따같던 주인공이 맞나? 라고 생각될 정도로
멋있고 듬직한 왕도 RPG 주인공이 되는 거죠.
그야말로 '멋진 남자 양성 던전'답습니다.

처음 게임을 플레이해서 시스템에 적응 못 했을 때는 시스템이 별로라고 생각했지만,
그 때 그렇게 고생했기 때문에, 주인공의 성장에 더더욱 감정을 이입할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마지막 엔딩입니다.
주인공의 몸매에 따라 엔딩 CG가 바뀝니다.
정말 억울하게도 게임 내내 몸매 잘 유지하고 있었는데,
최후반부에 이벤트때문에 살 뺄 기회를 놓쳐 버렸습니다.
갑자기 던전이 폐쇄돼 버리는 겁니다, 글쎄.

엔딩에서마저 공주에게 살 빼라고 한 소리 들었습니다.


총평하자면, 매력적인 캐릭터, 흡입력 있는 스토리, 독특한 시스템 등이
잘 어울리는 멋진 게임입니다.

운동량이 실시간으로 보이지 않는 등 세세한 부분에서 시스템이 좋지 않았고,
설치가 이상하게 되는 문제도 있어서 당대에 평가가 많이 깎였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적어도 저에게는 게임이 끝난 후, 좋은 기억밖에 남지 않았던 게임입니다.

리메이크가 되었다면 강력하게 추천했을 게임입니다만
아쉽게도 윈도우로 그대로 이식된 것 이외에 리메이크는 없었습니다.

PC-98판은 불편한 점도 많기 때문에 추천하기에 망설여집니다.
제 좋은 추억으로만 간직하고 추천은 하지 않겠습니다.

2020년 4월 5일 일요일

리뷰 : 프린세스는 스트리트걸?(1989/12/21, 전유통)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전유통은 80년대 중후반~ 90년대 초반에 정말 많은 게임을 발매한 회사입니다.
사훈은 아마 '질보다 양'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사실 전유통에서 개발한 것들이 아닌  다른 회사에서 개발한 것을 출시만 했을 뿐인 경우도 많지만
어쨌든 대부분의 경우, 전유통의 게임들은 그 때 그 시절 기준으로 봐도 게임들의 완성도가 낮았습니다.


최근의 저가형 게임+다작 회사들의 경향은
정형화된 틀 내에서 비슷한 스토리, 패턴을 유지한 채로 캐릭터만 바꾸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전유통이 활약하던 시기에는 에로게 전반에 확실하게 정형화된 틀이 없었죠.
전유통의 많은 게임들은 다양한 소재와 시스템을 다루었고,
완성도에 관계없이 시대를 앞선 참신한 게임들이 몇 개 있었습니다.


전유통의 여러 게임들을 검토해 본 결과,
<프린세스는 스트리트걸?>이야말로 당시 이 회사의 참신함을 
소개해드리기에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프린세스는 스트리트걸?은 MSX2, X68000용 게임으로 PC-98판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육성을 소재로 한 게임으로
이 분야 원조인 <프린세스 메이커>보다 먼저이고,
이전에 이야기했던 하트전자산업보다도 먼저입니다.



주인공은 한 나라의 왕자로 곧 20세의 생일을 맞이하게 됩니다.
왕위를 계승하기 위해서 결혼을 해야하는 나이가 되었죠.
여러 나라의 공주들이 신부후보로 준비되어 있지만
주인공은 자신의 배우자는 자신이 직접 찾고 싶었기 때문에
전부 거절하고 왕궁에서 뛰쳐 나옵니다.



왕궁에서 계획도 없이 뛰쳐나온 왕자는
거리에서 만난 창X 애니에게 반하게 됩니다.



고아출신의 애니는 당연하게도 왕비에 어울리는 교양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주인공의 생일은 앞으로 5일.
5일 후 열리는 왕궁 무도회에서 부모님께 애니를 결혼 상대로 인정받기 위해
왕자는 5일동안 애니에게 여러 가지를 가르치기로 결심한다는 내용입니다.



스토리에서 볼 수 있듯이 이 게임은 애니를 육성하는 게임입니다.
다만, 육성을 소재로만 하고 있을 뿐 육성 시뮬레이션으로 보기는 힘들죠.
능력치같은 것도 따로 존재하지 않고,
가르치는 순서, 장소, 그날의 h씬만 신경써서 선택해주면 되는 게임입니다.
애초에 육성할 수 있는 시간이 4일밖에 안 되기 때문에
딱히 다양한 패턴을 실험해 볼 것도 없습니다.



시절이 시절이기 때문에 4일동안의 내용도 금방금방 지나갑니다.
대사도 많지 않고, CG도 많지 않습니다.
다만, 적게나마 있는 CG는 괜찮습니다.



게다가, 난장판을 치던 애니가 교육을 거치고 난 후,
성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CG가 마음에 듭니다.
많은 장점을 갖춘 게임은 아니지만, 확실한 장점을 갖추고 있는 게임입니다.



다른 문제점은 시대를 고려해서 이해할 수 있지만
진짜 불만스러운 점은 해피엔딩 결말입니다.

마지막 날에 갑자기 어떤 노인이 등장하더니
사실 애니는 어떤 왕국에서 어릴 적에 잃어버린 공주였다고 하고 데려가 버립니다.
무도회에서 애니는 공주 신분으로 등장하고 주인공하고 이어진다는 결말입니다.
비슷한 내용을 소재로 한 희곡이나 영화처럼 심도있는 내용을 다루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이건 너무나도 동화적인 결말이잖아요.

게다가, 4일동안의 육성 요소를 뒤엎어 버리는 결말입니다.
4일동안 캐릭터를 육성했으면 마지막 날에는 그 육성에 대한 평가가 있어야죠.
'육성같은 거 필요 없었고 사실 얘 공주임ㅋ'라는 결말이면 어쩌자는 거죠?
플레이어와 주인공 왕자는 그냥 뻘짓한 게 되어 버리잖아요.

사실 공주였다고 해도, 주인공이 가르친 걸음걸이나 예절, 댄스 등에 대한
평가가 있었다면 그나마 나아졌겠지만 그런 거 없습니다.
'나를 선택하지 않으면 널 죽이겠어'하는 얀데레스러운 대사만 있을 뿐입니다.



총평하자면, 소재는 정말 좋았던 게임입니다.
이런 소재의 게임이 조금만 더 나중에 육성요소를 강화시켜서 나왔더라면 
더 좋은 게임이 되었겠죠.

개인적으로는 재미있었고 나름 감탄할 요소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30년이나 지난 게임이라는 걸 감안하고 참신함에 중점을 둔 평가를 내린다면
괜찮은 게임이라는 평가를 내릴만한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