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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29일 일요일

리뷰 : 천사들의 오후 시리즈(2)(Jas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소녀 게임의 원조 <천사들의 오후> 1편입니다.
타이틀 화면에는 '지금, 뜨거운 마음을 담아 당신에게 전하는 로망 어드벤처!! 그녀들은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자, LET'S LOVE!!'라는
문구가 적혀 있습니다.

정말 기만적인 문장입니다. 이 게임은 절대 순애물이 아닙니다.



주인공은 교내 최고 인기를 구가하는 테니스부의 미소녀 유미코를 노리고 있습니다.
주인공은 유미코와는 전혀 모르는 사이이지만,
장래를 대비해 러브호텔비까지 준비해 놓고 있습니다.(...)

시작부분에서 컴퓨터를 통해 읽을 수 있는 메모를 입수합니다.
그 메모의 내용은
'유미코의 중대한 비밀을 가르쳐주지. 그녀는 어떤 남자와 특별한 관계다. 그 남자는...'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이 생략되어 있는 메모입니다.



테니스부의 1학년인 마리를 만나 유미코에 대해 이런 저런 질문을 합니다.
그리고 갑자기 밑도 끝도 없이 덮쳐서 H씬이 시작됩니다.
시작하자마자 범죄부터 저지릅니다.
뜨거운 마음을 담아 전해준다던 로망 어드벤처는 어디갔는지 모르겠습니다.



밤에 전화가 걸려와 공원으로 나갑니다.
전화를 건 사람은 최근 소원해진 여자친구 쿠미입니다.
그렇습니다. 유미코를 노리는 주인공은 이미 여자친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여자친구와 H씬을 보면 유미코는 공략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이미 쿠미에게 질려 있습니다.

매달리는 쿠미를 주인공은 매몰차게 차버립니다. 쿠미는 울면서 돌아갑니다.



다음날, 주인공은 친구 이시이, 친구의 연인 나오코, 친구의 연인의 친구 요코와 놀러갑니다.



친구가 나오코랑 데이트할동안 주인공과 요코도 재밌게 놉니다.
같이 보트도 타고, 같이 도시락도 먹죠. H씬도 빠지지 않습니다.
만나는 여자와는 꼭 H씬이 있습니다. 여자친구만 빼고 말이죠.



유미코의 정보를 얻기 위해서 친구의 연인인 나오코의 집에 찾아갑니다.
나오코는 유미코에 대한 중요한 정보를 줍니다.
유미코는 어떤 학교선생에게 약점을 잡혀 협박당했으며,
그 일로 성격이 변해 매일 밤거리를 돌아다니며 놀아나고 있다는 정보입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H씬이 시작됩니다.
친구의 애인인데 도덕이고 망설임이고 없이,
당연하다는 듯이 NTR 전개가 펼쳐집니다.
이쯤에서 상기시켜 드리자면, 저는 지금 '미소녀 게임의 원조'라고 불리는 게임의
스토리를 설명드리는 중입니다.



주인공은 밤거리를 조사하다 디스코텍에서 드디어 유미코를 만나게 됩니다.
유미코는 매일 테니스부를 구경오는 주인공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주인공과 유미코는 호텔로 가게 됩니다.
H씬 후에 유미코는 진실을 이야기 해주는데,
유미코는 한 번 선생에게 습격당할 뻔한 적이 있었고,
그걸 빌미로 유미코가 선생을 협박해 돈을 계속 뜯어 내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 자신이 싫었던 유미코는 매일 밤거리를 배회하게 됩니다.

이 비밀을 알고 있던 사람은 주인공 외에 딱 한 명 더 있는데
바로 주인공의 친구인 이시이입니다.
자세한 설명은 안 나오지만 이에 대해
플레이어들은 여러 방향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에는 주인공이 그 선생을 패버리고,
유미코는 그런 주인공에게 반해버렸다는 엔딩입니다.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정작 주인공도 선생과 똑같은 짓을 하고 다녔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이상이 미소녀 게임의 원조라고 불리는 천사들의 오후 1편의 전체 스토리입니다.
오랜만에 풀 스토리를 설명했기 때문에 내용이 엄청 많아 보이지만,
실제로 플레이하면 텍스트가 엄청 많은 게임이 아닙니다.
당시와 비교하자면 내용이 충실한 편은 맞지만요.

이 게임 플레이 타임이 길어지는 이유는 시스템 때문입니다.
'명령 선택식'보다 더 구식인 '명령 입력식' 시스템입니다.

명령 선택식같은 경우는 커맨드 창에서 '말하다'를 선택하고
하위 커맨드로 '유미코'를 선택하는 방식입니다.
명령 입력식 같은 경우는 '유미코 말하다' 이런 식으로
키보드로 직접 커맨드를 입력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일본어로요.

80년대에 많았던 시스템인데 제가 80년대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게임에 동봉된 매뉴얼을 봐도 도통 무엇을 해야할지 막힐 때가 많습니다.



메모를 줍는다같은 간단한 명령을 입력하는 것마저 헤메게 됩니다.
주워야 할 것이 메모인지, 종이인지, 쪽지인지,
아니면 옛날 그래픽의 문제로 하얀 돌인지, 분필가루인지, 기저귀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천사들의 오후같은 잘 만든 게임은 이 정도까지는 아니고
여러 가지 힌트를 줍니다만 그래도 힘들어요.

또, 컴퓨터 프로그램이다보니 융통성이 없어요.
대충 오타쳐도 컴퓨터가 눈치있게 알아채주고 이런 게 없이 정확히 입력해야 됩니다.
큰 맘먹고 도전해 본 적도 있지만, 전부 실패하고
공략집 없이 클리어해 본 적이 전혀 없습니다.

도스 시절에는 파일을 찾거나, 파일을 복사하는 간단한 작업조차도
명령어를 입력해서 하던 시기였다고 이해하기에는
이미 천사들의 오후 이전에 명령 선택식 게임이 존재했습니다.
천사들의 오후는 2편까지도 명령 입력식을 선택했고요.

지금 시기에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불편한 시스템입니다.
혹시, 천사들의 오후 초기 시리즈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도
꼭 원작이 아닌 명령 선택식으로 리메이크된 버전을 플레이하시길 바랍니다.



95년도에 발매된 <천사들의 오후 Collection>에 수록된 1편입니다.
지금 플레이하시려는 분들에게는 가장 편리한 1편이죠.


저번 리뷰에서 말씀드렸다시피, 천사들의 오후 1편은
'미소녀 게임의 원조'라는 과분한 타이틀치고 
그다지 최초라고 할만한 요소는 없었습니다.

스토리가 그렇게 좋지 않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초기 에로게임에도 불구하고 뻔하고 정석적인 스토리는 또 아닙니다.
H씬을 보면 안 되는 여자친구 캐릭터라든가,
청초한 캐릭터일줄 알았던 메인 히로인의 반전이라든가
의외로 예측할 수 없는 부분도 많아요.


후속 버전도 많이 만들어졌고, 거기서도 혁신적인 시도는 많이 있었습니다.
사용되지 못하고 남은 CG로 만들어진 <천사들의 오후 번외편>은
요즘 나오는 팬디스크의 개념을 제시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쟈스트 사운드같은 것도 있죠.



천사들의 오후 발매 1년 후 나온 버전업판이 쟈스트 사운드와 대응합니다.
쟈스트 사운드는 놀랍게도 게임 음성 합성 장치입니다.

이걸 컴퓨터의 프린터 포트에 꽂으면 컴퓨터 스피커에서
게임 보이스가 나오는 방식이죠.
해당 기계가 사용된 게임 플레이 영상은 니코동에 존재합니다.

대응되는 게임이 많지도 않고, 음성 수도 별로 없으며, 음질도 좋지 못 하고,
연기도 형편없습니다.
그럼에도 30년 전 가격이 12800엔이라니 엄청 비싸군요.

하지만, 제대로 된 에로게 보이스가 한참 후에 나왔다는 점에서
Jast가 시대를 앞서려는 도전을 많이 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일단 1편에 대한 리뷰는 이 정도입니다.
전편에서는 '미소녀 게임의 원조'라는 칭호가 과분하다고 했고,
다른 명작들과 비교해서 좀 폄하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시대를 고려하면 대단한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최초로 도입한 것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런 것들을 모으고, 발전시키고, 인기를 끌어서 후대에 많은 영향을 끼친 작품이죠.

역사적인 의미가 큰 게임입니다.
플레이할 가치는 없지만 기억될 가치는 있는 게임이라고 봅니다.

2019년 9월 22일 일요일

리뷰 : 천사들의 오후 시리즈(1)(Jas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85년도에 발매된 <천사들의 오후>입니다.
미소녀 게임의 원조라고 불리고 있는 게임이죠.
정식 넘버링 타이틀로는 6편이 나왔고,
번외편, 리메이크도 수도 없이 발매되었으며,
2001년도에 퍼플 소프트웨어에서 마지막으로 <천사들의 오후 SEASON2001>을
발매한 후 시리즈가 종료되었습니다.
초기 시리즈는 에로게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전통있는 시리즈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천사들의 오후 1편은 '미소녀 게임의 원조'라는 과분한 수식어가 붙어 있고,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는 사실입니다만 그 의미를 확실히 한정해야 할 필요는 있습니다.
우선, 일본 최초의 에로게는 아니라는 거죠.

일본 최초의 에로게가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의외로 논쟁이 있습니다.
1번 후보는 82년도에 발매된 코에이의 <나이트 라이프>입니다.
<삼국지> 시리즈를 만드는 그 코에이가 맞습니다.

<나이트 라이프>가 논란이 되는 부분은 이게 게임이냐 아니냐하는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부부의 생일을 입력하여 안전한 날짜를 계산해주고,
여러 질문 등을 통해 오늘의 추천 체X 등을 알려주는 소프트입니다.
게임은 당연히 아니고, 실용성조차 의심되는 물건입니다.

아무튼 이 <나이트 라이프>를 제외하면 일본 최초의 에로게 후보는
허드슨 사의 <야구권>, PSK의 <롤리타(야구권)>, 츠쿠모전기의 <야구권>이 있습니다.
특이하게도 세 개 다 야구권입니다.
야구권이란 옷벗기기 가위바위보를 의미합니다.

아무튼 세 게임들의 서열이 명확하지 않고 원조 논란이 있는 이유는 
이에 대한 내용이 기록된 책마다 내용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우선 허드슨 사의 <야구권>입니다.
<봄버맨> 시리즈를 만든 그 허드슨이 맞습니다.

허드슨의 <야구권>은 MZ-80K라는 샤프 전자의 컴퓨터용으로 발매되었다고 합니다.
명확한 발매 시기는 알 수 없습니다만,
81년으로 추정되어 시기상으로는 가장 먼저가 맞습니다.
일본 위키피디아에는 허드슨의 <야구권>이 원조가 확실하다고 적혀 있고,
여러 문헌에도 그렇게 적혀 있습니다.

이에 대해 반론하는 입장에서는 허드슨의 <야구권>은
MZ-80K 기종으로는 아예 발매되지 않았다는 입장입니다.
허드슨의 <야구권>이 최초라는 근거는 잡지의 판매예정 기사나
당시 허드슨 게임 광고리스트에 포함된 것뿐입니다.
정작 발매되었다는 명확한 근거가 없는 거죠.

지금 남아있는 허드슨의 <야구권>은 MZ-700 기종으로
이건 83년도에 발매된 것입니다.
81년도에 발매된 MZ-80K판 <야구권>의 실체가 확실하다면
일본 최초의 에로게가 틀림없으나 어쨌든 명확한 증거는 없습니다.

남은 것은 PSK의 <롤리타(야구권)>과 츠쿠모 전기의 <야구권>인데
둘 다 82년도에 발매되었습니다.
이 둘 중에 누가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거를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 발매했는지 날짜도 안 알려주고 서로 먼저라고 주장하는 글만 보일 뿐입니다.


아무튼, 일본 최초의 에로게는 81-82년도경에 만들어졌으며,
85년도에 발매된 천사들의 오후와는 3년 이상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3년 사이에도 많은 게임들이 발매되었습니다.



천사들의 오후가 발매된 85년도를 포함하여
당대 최고의 에로게 회사는 에닉스였습니다.
<드래곤퀘스트> 시리즈를 만든 그 에닉스가 맞습니다.

위의 CG는 에닉스의 <카루이자와 유괴 안내> 화면입니다.
85년도에 발매되었습니다.
명령 선택식 ADV와 RPG를 조합한 시스템의 완성도로 보나
스토리로 보나 천사들의 오후 1편보다 훨씬 괜찮은 게임입니다.
에닉스의 또 다른 게임 <엘도라도 전기>도 천사들의 오후보다 높이 평가합니다.


살펴본 바와 같이, 천사들의 오후 1편은 최초의 에로게도 아니며
당시에 시스템이나 스토리에 일대 혁신을 가져 온 명작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천사들의 오후는 왜 '미소녀 게임의 원조'인 걸까요?



이것이 그 대답입니다. 당시 기준으로 그래픽이 너무나도 좋았던 겁니다.
'미소녀 게임의 원조'라는 거창한 칭호치고는 맥빠지는 결론이지만
사실 미소녀 게임에 이보다 더 필요한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 이전의 게임들에 비해서 '미소녀'라고 부를 수 있는 캐릭터가 등장한다는 거죠.

들리는 얘기에 따르면 Jast가 개발한 스캐너를 이용하여
애니메이션이나 만화같은 그래픽을 도입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도트 밖에 가능하지 않았던 환경에서 이런 새로운 방법의 도입은
혁신이라고 부를만 하다고 생각되는군요.


이번 리뷰에서는 천사들의 오후 게임 그 자체보다는
초기 에로게의 역사를 설명하는 것에 대해 더 많은 내용을 할애하였습니다.
본격적인 천사들의 오후 시리즈 리뷰는 다음 리뷰에서 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9월 15일 일요일

리뷰 : 세 자매(1996/2/1, Jas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Jast의 <세 자매>입니다.
옆집에 사는 귀여운 세 자매와 함께 하는 하렘물이죠.
거짓말은 하지 않았지만 다른 하렘물처럼 가벼운 분위기를 기대하시면 안 됩니다.
복잡하게 꼬인 인간관계가 인상적인 게임이죠.



주인공의 아버지는 오카무라라는 부하에게 배신당해서 몰락하고 자살까지 하게 됩니다.
주인공과 그의 형은 오카무라에게 복수를 결의하죠.
주인공은 의도적으로 오카무라 옆집으로 이사하고, 오카무라의 세 딸과 친해집니다.

그런 식으로 정보를 캐낸 주인공은 그 정보를 형에게 보내 왔으며,
형은 오카무라를 파산하게 만들며 복수를 성공합니다.
오카무라는 세 자매를 남겨두고 어딘가로 잠수를 탑니다.

문제는 여기부터입니다.
주인공은 오카무라의 몰락으로 복수는 끝났다고 생각하지만,
주인공의 형은 재산도, 아버지도 잃어버린 세 자매에게까지 철저하게 복수하려고 합니다.

주인공은 오카무라는 당해도 싸다고 생각하지만,
남겨진 세 자매에게는 정이 들었습니다.
세 자매는 주인공에게 뒤통수를 맞았다는 사실도 모른 채로
주인공에게 애정과 신뢰를 보내 줍니다.

주인공은 세 자매에게서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형에게서 세 자매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내용입니다.



장녀 유키입니다.
차분한 연상 스타일의 회사원 누님입니다.



차녀인 에미입니다.
주인공의 연인으로 본래 밝은 성격이지만, 아버지가 잠적한 이후로
근심이 많은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막내인 리사입니다.
귀여운 여동생 스타일로 주인공에게 많은 애정을 보내줍니다.



끝없는 복수를 원하는 주인공의 형입니다.
친동생인 주인공에게는 그렇게까지 나쁜 짓을 하지 않지만
타인이 보기에는 좋은 사람이라고 할 수 없으며
세 자매에게는 지나칠 정도로 냉혹한 짓을 합니다.
주인공과는 서로 모르는 척하고 있습니다.


이 게임의 주요 볼거리는 바로 주인공의 죄책감을 자극하는
세 자매의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장녀 유키의 경우는 생활비 부족으로 인해
동생들 몰래 밤 업소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막내 리사의 생일입니다. 세 자매와 주인공뿐만 아니라
리사의 학교 친구들까지 와서 축하해줍니다.
오랜만에 세 자매들도 밝은 표정을 보여줍니다.

그 때, 주인공의 형이 보낸 채권자들이 와서 깽판을 칩니다.



어린 애가 무슨 죄가 있다고 이건 너무하지 않나요?
전혀 상관없는 플레이어조차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장면입니다.
주인공은 이런 세 자매를 보며 큰 죄책감을 느끼는 거죠.


주인공의 형이 장녀 유키를 습격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때마침 주인공이 나타나자 형은 별 말하지 않고 습격을 중단하고 자리를 떠납니다.
그리고 에미가 집에 들어오죠.

에미는 주인공과 옷이 흐트러져 있는 언니를 보더니,
상황을 오해하고 오히려 주인공을 패버립니다.
도와준 주인공이 오해한 연인에게 쳐맞는 정석적인 전개죠.
러브 코미디물에서 흔히 나오는 전개입니다.

하지만, 이런 장면에서 이 주인공은 속으로
'에미는 나를 때릴 자격이 있어...'라고 생각합니다.
뻔한 전개 속에 굉장한 고뇌가 숨겨져 있는 거죠.

이 게임은 이런 독특한 설정이 마음에 듭니다.
불행한 세 자매를 단순히 동정하고, 무작정 도와주고
채권자에게 같이 맞서 싸우는 뻔한 주인공이었다면 그다지 재미없었을 겁니다.
세 자매에 불행에 한 쪽 발을 걸치고 있는 주인공이기 때문에
끊임없이 고뇌하는 거죠.



아쉬운 점은 스토리에 쓸데없는 사족이 붙어있다는 점입니다.
양호선생님이 여학생들과 H씬을 벌이라 식의 의뢰를 줍니다.
게임의 H씬이 부족하다고 여겨서 이런 내용을 넣었겠지만
세 자매와 전혀 관련이 없는 학생들과 교류하는 내용이다보니,
스토리가 쓸데없이 퍼져나가는 느낌입니다.

그런 주제에 하렘 엔딩은 배드엔딩입니다.
해피엔딩은 반드시 에미를 선택해야만 하죠.
각각 자매의 엔딩을 만드는 편이 더 좋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총평하자면, 여러 모로 아쉬운 점은 있지만 Jast치고는 나름 괜찮은 스토리의 게임입니다.
외부에서는 뻔한 러브 코미디식 전개가 벌어지는 도중에
주인공의 내면에는 무수한 고민이 자리잡고 있습니다.

다른 게임과는 차별화된 이런 독특한 스타일만으로도
충분히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됩니다.

2019년 9월 8일 일요일

리뷰 : 슈퍼 울트라 쭉쭉빵빵 사이보그 마리린DX (1994/5/16, Jast)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제가 80, 90년대의 에로게를 리뷰하려고 처음 생각했을 때의 계획은
엘프, 앨리스소프트, F&C, 소위 당시 3강을 먼저 리뷰하고
그 다음으로 버디소프트, Great, Jast, HARD 이 4 회사를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상기 회사 넷의 공통점은 80년대 혹은 90년대 초반이 저 회사들의 전성기였고
95~96년도쯤에는 이미 망해가는 회사였다는 점이죠.

Jast는 에로게 회사 중에서도 조상님에 해당합니다.
Jast가 만든 <천사들의 오후>는 미소녀 게임의 원조라고 불릴 정도죠.

이 회사에서 독립한 회사로는 F&C가 있습니다.
F&C는 지금 연명하고 있는 회사 중에는 앨리스소프트 다음의 최고참이고
엘프는 F&C에서 독립한 회사입니다.
엘프, F&C 같은 유명 고전 에로게 회사의 계보가 바로 Jast에서 출발합니다.
또한,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퍼플소프트웨어 또한 한 때 Jast 계열이었죠.

이 조상님은 2001년에 문을 닫았는데,
사실 그 이전부터 게임에 문제점이 많이 보이는 회사였습니다.
그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끄집어 낼 생각은 없고,
대표적인 문제는 <천사들의 오후>시리즈 리뷰에서 요약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이번에 소개할 게임은
<슈퍼 울트라 쭉쭉빵빵 사이보그 마리린DX>입니다.
제목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약빤 게임 중 하나입니다.



게임은 주인공과 그의 여자친구의 대화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여자친구가 주인공의 집에 놀러가고 싶다고 이야기하자
주인공은 기겁을 하며 반대합니다.
이유는 아버지를 여자친구에게 소개시키고 싶지 않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아버지가 여자친구를 NTR이라도 하는 걸까요?
아닙니다. 차라리 그게 나을 정도입니다.



주인공의 아버지입니다. 자칭 '슈퍼 스페셜 닥터 죠'입니다.

어처구니 없는 패션 센스, 가슴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미소녀 피규어,
슈퍼 스페셜 닥터 죠라는 입에 담기도 부끄러운 이름 등은 정상적인 편입니다.
이 아버지의 정신상태에 비하면 말이죠.

직업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입니다. 미소녀 사이보그를 개발하는데 성공했죠.
주인공의 몸에서 뇌를 꺼내는 놀라운 과학기술을 보여줍니다.
주인공의 동의도 받지 않고요.
당황한 주인공은 당연히 자신의 몸을 원상태로 돌려놓으라고 합니다.



그 때, 갑자기 등장하는 것이 바로 악의 집단
'세계는 우리 것이야, 읏흥단'입니다.
단체명이 '세계는 우리 것이야, 읏흥단'이라고요.
이 게임 세계의 사람들은 쪽팔린 이름을 짓지 않으면
알레르기 반응이라도 나오는 걸까요?

아무튼 이 단체가 노리는 것은 사이보그입니다.
주인공의 아버지에게 사이보그를 내놓으라고 총들고 협박합니다.
그리고 뇌가 빠져나가 빈 껍데기 밖에 안 남은
주인공의 몸을 사이보그로 착각하고 가지고 돌아갑니다.

졸지에 주인공은 뇌밖에 남지 않은 신세가 되어 버렸습니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신의 연기력으로 사이보그를 빼앗기지 않았다고 좋아합니다.
몸을 되찾아 달라는 주인공의 부탁에도
한낱 과학자인 자신이 어떻게 찾아오냐고 매몰차게 거절합니다.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 뿐입니다.
주인공의 뇌를 사이보그에 이식하여 몸을 찾아오는 거죠.



그렇게 '슈퍼 울트라 쭉쭉빵빵 사이보그 마리린DX'가 탄생합니다.
당연하지만 주인공은 새로운 몸을 손에 넣자마자 아버지부터 팹니다.

이상이 초반부의 스토리입니다.
대체로 약빤 전개이지만 중후반부에는 나름 스토리가 멀쩡하게 돌아갑니다.
의외로 정상적이죠.



이 게임은 어드벤처 파트는 포인트 클릭식으로 진행되지만
부분적으로 3D 던전형 RPG 스타일도 차용했습니다.
미소녀 몬스터가 나오고 주인공이 승리하면 옷이 찢겨지는 방식입니다.

RPG 난이도는 낮은 편입니다만 귀찮은 부분이 있습니다.



던전에 미니맵은 커녕 좌표도 없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걸어가면서 좌우에 길이 있는지 없는지도 제대로 확인할 수 없습니다.
맵의 규모로 보나, 복잡함으로 보나
발목 잡힐 부분이 아닌데 편의 기능을 너무 생략해서 골치 아프게 합니다.



총평하자면, 제목과 제가 소개해 드린 초반부외에는 별볼일 없는 게임입니다.

94년도는 이미 Jast의 신뢰가 떨어진 시기입니다.
무슨 방법을 써서라도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모아야 했기 때문에,
과장된 제목이나 초반부는 다소 의도적인 장치였다고 생각됩니다.
이미 역량이 없던 Jast는 충격적인 도입부까지를 만드는 것이 한계였고,
전체적인 완성도를 높이는 것은 실패했습니다.

이 정도의 게임이 당시 Jast의 게임 중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는 것이
더더욱 암울한 사실입니다.

2019년 9월 1일 일요일

리뷰 : 진설 카미야 우쿄2(1995/7/14, ALTACIA)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번에 소개해 드릴 시리즈는 ALTACIA의 <카미야 우쿄>시리즈입니다.
ALTACIA의 간판 시리즈로 9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발매된 시리즈입니다.



<진설 카미야 우쿄> 시리즈의 전신인 <오오에도탐정 카미야 우쿄> 시리즈입니다.
예전에 소개한 바있는 소프트웨어 자판기 TAKERU 게임입니다.
그래서 TAKERU판이라고 불리며 볼륨이 꽤 적은 편입니다.
TAKERU판은 두 편이 나왔습니다.

그 후의 작품부터 카미야 우쿄 시리즈에는 '진설'이라는 수식어가 붙게 되었습니다.
이 수식어 '진설'은 단순히 폼잡겠다고 붙인 것이 아니라,
이전작들과, 그리고 다른 작품들과의 차별성을 드러냅니다.

<진설 카미야 우쿄> 시리즈의 가장 큰 특징은 세미 픽션,
현직 변호사가 자신이 실제로 경험한 사건에
이름, 지명 등을 바꾸고 적당히 양념을 쳐서
시나리오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진설 카미야 우쿄> 시리즈는 리메이크를 빼고 총 여섯 편이 있습니다. 
PC-98판인 1편,2편까지는 픽션이 40프로정도였으며,
그 후의 WINDOWS판은 배드엔딩을 제외하면 거의 실화였다고 합니다.

여섯 작품이나 나올 정도로 유서 깊은 시리즈였으나
2002년도쯤에 나올 예정이었던 4편 <진설 카미야 우쿄 ~상아탑~> 리메이크가 
자꾸 연기되더니 어느 순간 ALTACIA 자체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카미야 우쿄> 시리즈는 텍스트 어드벤처 게임이며
모든 작품이 난이도가 짜증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TAKERU판과 <진설 카미야 우쿄> 1편의 경우를 살펴 보면,
주인공이 이동할 수 있는 장소도 최소화 되어 있고
선택지도 그다지 많지가 않습니다.
플레이어가 쓸데없는 커맨드를 누르느라고 힘을 빼지 않도록
간소하고 쾌적하게 시스템이 설계되어 있는 겁니다.

그러나, 실제로 플레이하면 놀라울 정도로
게임이 공허하게 흘러갑니다.
모든 커맨드를 눌러봐도 게임이 진도가 전혀 나가지 않습니다.

다른 게임같은 경우는 장소와 커맨드가 엄청 많다 보니,
'대체 뭘 안 누른 거야.'하고 짜증내면서 플레이합니다,
근데 이 게임 같은 경우는 커맨드 숫자가 확연히 적습니다.
'틀림없이 다 눌렀는데 왜 안 되는 거야.'하는 짜증이 나는 겁니다.

게임 진도 나가는 방식 자체가 모든 커맨드를 다 누른다고 되는 게 아닌 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미 몇 번이나 누른 똑같은 커맨드를 
열 받아서 엔터키를 연타하니까 갑자기 진도가 나가게 된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진설 카미야 우쿄2>입니다.
다행스럽게도 이 게임은 전작들과 같은 커맨드 선택 방식이 아닙니다.
멀티 엔딩 방식으로 그때 그때 선택지를 고르는 방식입니다.
선택지도 다른 게임처럼 복잡하지 않습니다.
그냥 하나의 선택지에서 제대로 된 선택을 하면 게임을 진행하고, 
잘못된 선택을 하면 배드엔딩이 나오는 방식입니다.

선택지1)
1번 -> 배드엔딩
2번 -> 선택지2으로..

선택지2)
1번 -> 배드엔딩
2번 -> 선택지3으로..

이런 방식인 겁니다. 굉장히 단순한 방식입니다.
근데, 이런 단순한 시스템의 게임이
실제로 플레이하면 굉장히 불편하다는 게 믿겨지십니까?

이 게임이 불편한 근본적인 이유는 세이브가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점입니다.
정확히 선택지에서만 세이브가 되고 다른 곳에서는 세이브가 안 됩니다.
이 시기에 '이전 선택지로 돌아가기'같은 시스템이 있을 리가 없으니
선택의 순간에 세이브를 깜빡하고 선택을 해버리면
세이브할 기회 자체가 사라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게임은 스킵 기능이 전혀 없습니다.
컨트롤 키도 안 되고, 엔터키를 계속 누르고 있는 방법도 안 됩니다.
유일한 방법은 손에 쥐가 나도록 엔터키를 연타하는 겁니다.

만일 플레이어가 선택지 1번에서 저장해야 한다는 사실을 잊고
배드엔딩을 보았다면 게임은 얄짤없이 처음부터 다시 해야 된다는 겁니다.

게다가 더 짜증나는 점은 대부분의 배드엔딩이 1번 선택지라는 점입니다.
플레이어가 세이브를 까먹어서 아무 생각없이 엔터키를 연타하다 보면,
선택지에서도 그냥 엔터키를 눌러서 또 1번 선택지를 누르게 된다는 거죠.
그러면 또 배드 엔딩을 보고 또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는 겁니다.
몇 번 정도 이 고통을 겪게 되면 엔딩따위 궁금하지도 않게 됩니다.



엔딩이 한정적이라는 것도 아쉬운 점입니다.
주인공이 영문도 모르고 갑자기 푹 찔리는 엔딩밖에 없습니다.

선택지 직후에 바로 배드엔딩이 나오는 방식은 아닙니다.
선택지 이후에도 스토리가 꽤 진행되다가 갑자기 푹 찔리는 거죠.
이런 변칙은 마음에 듭니다.
'제대로 된 선택지를 골랐나보다'하고 방심시키다가 찔러 버리는 거죠.
전개를 예측하기도 힘들고, 방심할 수도 없어 스토리에 긴장감을 불어 넣어 줍니다.

다만, 모든 배드엔딩이 이런 식이라는 건 안타깝습니다.
한, 두 번 당할 때야 놀랍고 참신하지,
여덟 번이나 같은 패턴을 쓰는데 누가 놀라겠습니까?



주인공은 당연하지만 시리즈 내내 카미야 우쿄입니다.
법학과를 나온 전직 변호사로 지금은 탐정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시나리오를 쓴 사람도 변호사고, 주인공도 전직 변호사인만큼
법률 용어와 해설이 자주 등장합니다.

세미 픽션 게임답게 보다 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등장합니다.
살인사건은 충격적이지만 현실에서도 충분히 충격적인 살인이 많이 등장하니 제쳐 두고,
동기가 채무 관계에 맞춰져 있다거나,
수사과정이 스펙타클한 추격전보다 견실한 수사가 되는 점이 현실적입니다.



또한 세미 픽션의 느낌을 살리기 위해, 실사 배경을 많이 사용했습니다.
게임의 무대도 최대한 당시 실제 사회에 가깝게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게임의 현실감을 좋아하시는 분들에게는 매력적인 게임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제 개인적으로는 게임이 세미픽션이든, 논픽션이든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시나리오가 흥미진진하냐에 관심이 더 많죠.

이 게임의 경우는 세미픽션의 특징 때문에 최대한 절제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수사과정도 사건 해결도 상당히 심심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리얼리즘이나 사회파 미스터리같은 느낌으로 플레이할 수도 있겠지만
분량이나 전개가 그에 적합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총평하자면, 에로게이기는 하나 다른 미소녀 게임들과 
같은 방식으로 접근할 게임은 아닙니다.
독특한 특징때문에 호불호가 다소 갈리는 게임이죠.

현대의 미소녀게임 트렌드와는 많이 다른 작품입니다.
ALTACIA가 건재했더라도 시리즈가 변화없이 그대로 유지되지는 못했을 거라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