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천 작품 목록

추천 작품 목록

글 목록

2019년 12월 29일 일요일

리뷰 : 진설 엽기의 함(2004/12/17, CALIGULA)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2004년도에 리메이크된 <진설 엽기의 함>입니다.
그래픽, 시스템, 스토리까지 대대적으로 갈아 엎고,
추가 캐릭터까지 넣어 사실상 새로운 게임으로 탈바꿈하였습니다.
보시다시피 현란한 그래픽만으로도 충분히 플레이할 가치가 있는 게임입니다.



다만, 원작에는 있었지만 리메이크에서는 삭제된 CG도 있습니다.
이 장면에서 시즈카가 술취해서 옷을 벗는 CG가 있는데
리메이크에서는 희한하게도 사라졌죠.
아쉽다는 건 아닙니다.



원작에서 단조로운 아이콘만을 사용했던 맵도 대대적으로 바뀌었습니다.
원작에 비해, 방문할 장소도 많아졌죠.

주요 캐릭터 이외의 SD캐릭터들도 많이 돌아다니는데
백화점의 북적북적한 분위기와, 영업시간 끝난 후의 휑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방문할 장소는 늘어났지만 미니맵을 만들었기 때문에,
이동도, 캐릭터를 찾는 것도 전작에 비해 훨씬 간단합니다.
어디로 이동하면 시간이 얼마만큼 흐른다까지 알려주는 시스템입니다.



캐릭터별로 그 캐릭터가 어디에 있는지 시간대를 알 수 있는
ZNS라는 시스템까지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보면, 원작에 비해 훨씬 편해진 것 같지만 사실 여전히 복잡한 시스템입니다.
시간은 금방가고, 중요 이벤트는 놓치기 쉽게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나름 버티면서 플레이할 수준은 되는 것 같습니다.


자, 그러면 문제의 스토리 얘기를 좀 해봅시다.
스토리에 들어가기 앞서 제가 원작 리뷰에서 스토리를 얘기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먼저 설명드리겠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원작의 스토리가 너무나도 허술했기 때문입니다.
눈에 거슬리는 부분이나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많았어요.
다행히도, 리메이크에서는 그런 부분에 대한 보완이 많이 추가되었습니다.

이번 리뷰에서는 리메이크 위주로 스토리를 설명하고,
원작에서는 어떤 허술함이 있었는지 몇 개만 추가해서 설명하는 방식으로
리뷰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트루엔딩까지 다 스포일러합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다시피, 주인공은 제로시키 그룹의 총수 마코토에게
실종사건 수사를 의뢰받습니다.
제로시키 백화점에서는 15년동안 무려 15명이 실종되었습니다.
1년에 한 명꼴이기는 하지만, 날짜가 늘 똑같았던 것도 아니고
실종자가 진짜로 백화점에서 실종되었는지도 확실하지 않은 상황입니다.



리메이크에서 추가된 프롤로그 장면입니다.
마나미라는 귀여운 소녀가 백화점 이벤트에 당첨되었다고 좋아하는 장면입니다.
어머니, 언니와 함께 백화점에 놀러갑니다.



사이좋은 세 모녀의 훈훈한 쇼핑 장면입니다.
그리고 어머니와 언니가 화장실 다녀온다고 한 그 잠깐 사이에
마나미는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게 됩니다.



참고로, 실종된 소녀 마나미의 언니가 바로 아키라입니다.
실종된 여동생을 찾기 위해서 백화점에 취직했던 겁니다.

주인공은 백화점을 돌아다니며 여러 사람들을 만나 보지만,
실종사건에 대한 단서는 전혀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그렇게 쉽게 찾을 수 있었다면 경찰의 수사망을 15년이나 피할 수 없었겠죠.



그러던 중, 츠카사 이벤트에서 참으로 충격적인 복선이 하나 등장합니다.
츠카사가 걸고 있는 정육점의 돼지 내장에서 수술자국같은 흔적이 보입니다.
츠카사는 돼지가 맹장수술이라도 받았겠냐, 그럴 리가 없다고 이야기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수술자국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굉장히 충격적인 소재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고작 에로게잖아요.
설마 인육같은 소재를 다룰까 싶지만, 생각해보니 이 게임의 제목은 '엽기의 함'입니다.
인육을 위한 납치가 실제 스토리라면 정말 엽기적입니다.



아키라와 경비원인 사이토, 그리고 주인공이 백화점의 최첨단 감시 카메라 시스템으로
실종사건의 단서를 찾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실종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백화점과 화물을 주고 받는 곳이 있는데
바로 카루마 병원이라는 대형병원입니다.
요즘에는 워낙 많이 사용된 진부한 소재이기 때문에
병원이라는 단어만 보고도 실종사건의 진실을 떠올리는 분들이 많을 거라고 예상됩니다.


바로 장기털이입니다.
백화점 어딘가에서 사람을 납치해서 장기 털고, 살은 정육점에서 처리하고,
뼈는 애완동물 가게의 노부코가 처리한다는 충격적인 진실인 거죠.

그럴싸한 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사실 엄청 허술한 내용입니다.
도시전설인 장기털이 괴담 수준이죠.
병원에다 백화점에서도 다수 인원이 대대적으로 참가해서 장기털이를 하는데
조직 적합성 검사도 없이 그냥 백화점에서 아무 사람이나 잡아다
장기털이를 한다는 게 문제입니다.

원작에서는 이에 대한 설명이 아무 것도 없어서 진짜로 허술한 내용이지만
리메이크에서는 주인공도 의문으로 생각합니다.
'아무 장기나 이식할 수 있는 게 아닐텐데...?'라고 말이죠.
이 부분에 대한 진실은 트루 엔딩에서 밝혀집니다.



이 범죄의 흑막은 신사복 매장의 점장 타마키입니다.
마지막에 주인공의 수사가 좁혀 오자 같이 식사를 하자고 하여
주인공을 매수하려고 합니다.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한 계기는 딸인 미스즈때문입니다.
미스즈는 사실 타마키와 이전 총수인 제로시키 코토에몬 사이에서
불륜 관계로 낳은 딸입니다.
미스즈가 병에 걸려 이식받을 장기가 필요하게 되자
제로시키 코토에몬이 장기를 얻기 위해 손을 썼던 거죠.

타마키는 그 이후로 범죄를 계속하면서 그 돈으로 고아원도 돕고 그랬다 얘기를 하는데
전혀 공감할 수없는 내용입니다.
아무튼 플레이어에게는 선택지가 뜹니다.



단호하게 거절하면 주인공이 맞이하는 결말은 이겁니다.
그 자리에서 독살당하게 되는데 독으로 사망한 고기를 팔아도 괜찮은 건가요?
물론, 그 이전에 인육을 팔면 안 되기는 하지만요.



'타마키씨를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습니다.'의 엔딩입니다.
사건을 조작해서 총수 마코토가 대신 체포당하게 되죠.
굳이 면회를 가는 주인공의 인성도 참 그렇습니다.
분노에 일그러진 얼굴로 마코토는 '당신을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어.'라고 말합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인공은 타마키와 함께 장기 매매하면서 잘 살았다는 결말입니다.
옆에 있는 남자는 장기매매를 돕는 사람인데
게임 도중, 신사복 매장에서 종종 보이는 사람입니다.

주인공이 마코토에게 신사복 매장에 수상한 사람이 출입한다고 보고해도
마코토는 우리 백화점에는 아무 것도 안 사는 손님도 많다. 손님이 뭐가 수상하냐고 무시합니다.
근데, 척봐도 수상해 보이잖아요.
생긴 것부터가 이미 범죄를 저지르지 않고는 이런 게임에 등장할 수 없는 관상입니다.

이 부분도 아쉬운 점입니다.
좀 더 번듯한 중년처럼 그렸다면, 플레이어가 이 사람이 진짜 범죄자인지
아니면 타마키의 숨겨둔 애인인지, 미스즈의 몰래 살아있던 아버지인지 추리하기 곤란했겠죠.
근데, 그냥 딱봐도 범죄자처럼 그려 버리니
'그냥 이 녀석이 범인, 이 녀석이랑 자주 만나는 타마키도 범인.' 이런 식으로
추리하기가 너무 쉬워져 버린 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마지막으로 그 장소를 어떻게 넘기고, 타마키를 고발하는 엔딩도 있습니다.
큰 메인 줄기는 대충 이정도입니다. 원작은 이렇게 마무리됩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조직 적합성 이런 문제에 대한 해명이 전혀 없는 엔딩이죠.



원작의 허술한 장면을 리메이크에서 보완한 내용을 한 번 봅시다.
실종사건이 일어나, 그에 대한 소문이 돌면 백화점은 매출이 떨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정육점과 시즈카가 경영하는 레스토랑 에레치오네의 매상은 떨어지지 않습니다.
백화점에서 그때마다 제공하는 특수한 고기때문이죠.

실력좋은 요리사인 시즈카는 그 고기의 정체에 대해 의심을 품고 있습니다.
사실 의심하기 딱 좋은 환경이죠. 실종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제공되는 고기니까요.
안타깝게도 시즈카는 고기의 정체에 의심을 품고도 인육이라는 생각까지는 전혀 못하죠.

인육이라는 발상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저런 큰 고기덩어리를 보고도 눈치채지 못하는 건 좀 어색했기 때문에
리메이크판에서는 인육을 다진 고기로 만들고
돼지고기 6, 소고기 3정도의 비율과 섞어서 납품합니다.

이런 리메이크의 보완을 통해, 범죄가 더 치밀한 것처럼 묘사되고,
함유량 10%밖에 안 되는 정체불명의 고기가 있다는 걸 간파하는
시즈카의 실력에 대한 묘사도 자연스러워집니다.



또 다른 장면으로는 주인공이 진실을 밝히기 전날 늦은 밤,
타마키와 그의 부하인 치카라가 납치를 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위에 보이는 소심해보이는 남자가 치카라입니다. 장난감가게 점원이죠.

츠카사 혹은 아키라를 납치하는데,
츠카사나 아키라를 살리고 싶으면 사건을 제대로 보고하지 말고 조작하라고 협박을 합니다.

'협박에 굴한다'는 선택지를 택하면 사건을 조작하게 됩니다.
그리고 원작에서 '협박에 굴하지 않는다'는 선택지를 택하면,
타마키가 '그 용기를 봐서... 오늘은 물러가 주지.'라고 하죠.

...왜죠?
무슨 판타지물의 대마왕인가요?
궁지에 몰린 범죄단체가 최후의 발악으로 납치에 협박까지 해놓고
왜 거절하니까 그냥 물러가는 거죠?
이럴 거면 그냥 집에서 잠이나 자는 게 이득이죠.

왜 이런 장면을 넣었는지 이유는 뻔하죠.
스토리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던 높으신 분이
능욕 H씬 한 번 넣고 싶었던 것뿐입니다.

리메이크에서도 이 장면이 어색하다고 생각했는지
거절하면 주인공을 살해하고 또 다시 고기로 다져지는 엔딩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아무튼 이런 식으로 리메이크판에서는 여러 점이 보완되었습니다.
하지만 원작이 너무 허술했기 때문에 이런 땜질 처방은 미봉책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천천히 살펴보면 리메이크도 여전히 빈틈이 많이 보입니다.
각 엔딩 사이도 어색하고, 같은 엔딩에서도 앞뒤가 안 맞는 점이 보이죠.



방금 전에 아키라가 납치 당했을 때, 협박에 굴하면
아키라가 체포당하도록 사건을 조작하게 됩니다.
아키라가 백화점에 입사하기 한참 전부터 발생한 사건인데
아키라가 여동생의 실종으로 인해 생긴 트라우마로 모방범죄를 벌였다는 조작이죠.

아무튼 주인공은 아키라를 살리기 위해 협박에 굴하기는 했지만,
그 후에도 사건을 비밀리에 조사해서 증거를 계속 모으고 있었습니다.
'반격의 날이 다가온다'라는 대사를 마지막으로 엔딩곡이 흐릅니다.

엔딩곡이 흐른 후, 에필로그가 나오는데
정작 에필로그에서는 '그 때 내 결정이 옳았던 건가.'하고 후회하는 대사가 나옵니다.

뭐, 협박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조작했던 것도 후회할 수 있기는 하지만
'반격의 날은 온다.'하고 복수를 결의하던 사람이 노래 한 곡 흐르니까
'아, 후회된다.' 이런 대사를 치는 건 좀 애매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차라리 후회하는 장면을 먼저 넣어서
'후회는 되지만 곧 반격할 것이다.' 이렇게 하는 편이 자연스러웠겠죠.

이건 사실, '후회'장면이 모든 배드 엔딩 에필로그에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장면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입니다.
앞의 내용이 어떻게 끝났는지 관계없이 똑같은 내용을 갖다 붙여놓는 거죠.
리메이크도 이런 세밀한 부분에서 아쉬움이 많이 보입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리메이크에서 추가된 대망의 트루엔딩 소개입니다.
주인공은 진정한 흑막을 끌어들이기 위해 함정을 팝니다.
그리고 진정한 흑막의 정체가 공개되는데...



바로 총수 마코토입니다.
원작 게임에서는 마코토가 진정한 흑막이라는 묘사는 전혀 없었지만
들리는 얘기로는 소설판에서는 마코토가 진정한 흑막이었다고 합니다.

조직 적합성 문제에 대해서도 설명해줍니다.
대형병원인 카루마 병원에서는 광범위하게 시민들의 유전자 정보를 빼돌리고 있었습니다.
부자나 고위 관료가 필요로 하는 장기가 있으면 적합한 인물을 선택한 후,
백화점에서 그 사람에게 위치 추적 장치가 달린 이벤트 당첨권을 보내는 겁니다.

프롤로그에서도 마나미가 백화점 이벤트에 당첨되었었죠.
단순히 비극을 강조하는 장치가 아니라 치밀한 복선이었던 겁니다.
전혀 눈치채지 못했어요. 멋진 기법이었습니다.

게다가 마코토가 삐뚤어진 이유도 납득이 가는데
할아버지인 전 총수 코토에몬 때문입니다.
불륜으로 낳은 딸인 미스즈를 위해서는 범죄까지 저지르며 장기 이식까지 시켜 살려줬는데,
친손녀인 자신은 범죄 뒷처리나 해야하는 입장을 물려받았던 거죠.
그래서 타마키, 츠카사, 노부코를 죽인 후, 모든 죄를 뒤집어 씌우려고 했던 겁니다.

반전도 허를 찔렀고, 복선도 좋았으며, 스토리도 자연스러웠습니다.
모든 점에서 완벽했던 이 반전에는 딱 하나 문제가 있습니다.
게임을 하지 않고, 제 리뷰만 읽어도 어색하다고 느낄 수 있는 점이죠.



억울하다면서요. 절대로 용서 안 하겠다면서요.
억울하다고 소리치던 사람이 진범이 맞으면 어쩌자는 거죠?
진범은 맞지만 조작으로 잡혀서 억울했던 건가요?

이 장면은 원작에도 있는 장면입니다.
원작에서 마코토는 진범이 아니었으니까 무고하게 체포된 게 맞고
주인공에게 울화통이 터질만 합니다. 이 장면이 전혀 어색하지 않죠.
근데, 리메이크에서는 진범으로 바뀌었잖아요.
그럼 이 장면을 빼버리거나, 아니면 대사를 변경했어야죠.
허술한 스토리를 그때 그때 땜질 처방으로 해결하려고 하니
이런 빈틈이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트루엔딩 얘기로 돌아와 주인공과 마코토가 사투를 벌이던 중,
원작의 흑막 타마키와 그의 부하 치카라가 등장합니다.
원작의 흑막과 리메이크의 흑막은
서로 최종 흑막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일기토를 벌이죠.



결론은 러브샷 엔딩이었습니다.
두 범죄자의 허무한 사망으로 트루엔딩이 끝나나 싶었는데
이번엔 치카라가 이상합니다.



실성해서 웃는 게 아닙니다. 갑자기 자기가 최종 흑막이랍니다.
마코토 반전의 경우는 상당히 좋았다고 생각하지만
이 반전은 정말 뜬금없습니다.

애초에 치카라는 별 포스없는 동네북 캐릭터였습니다.
다른 엔딩에서도 해괴한 장면을 많이 보여주는 정신분열증 캐릭터였죠.
근데 갑자기 이러고 있습니다.



지하시설로 내려가 마지막까지 남은 여러 의문들을 설명해 줍니다.
카루마 병원정도면 다른 시체처리 방법도 많았을 텐데 왜 인육을 팔았나는
의문도 해명해주는데 개똥철학입니다.

마코토가 최종흑막인 편이 더 괜찮은 결말이었을 겁니다.
기교를 너무 많이 부렸군요.
결말은 배를 찔린 타마키가 사실은 아직 안 죽었고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치카라를 총으로 쏴죽인다는 결말입니다.
그리고 주인공은 지하시설을 탈출하면서 드디어 트루 엔딩이 마무리됩...



그만해.
오냐오냐 해주니까 한도끝도 없습니다.
언제까지 흑막이 등장할 건데요?
전국민 다 쓰러뜨려야 엔딩 보는 건가요?



총평하자면, 전반적으로 훌륭한 게임입니다.
요코타 마모루의 원화가 너무 좋아서 CG감상만 해도 가치가 있는 게임이에요.

스토리는 원작의 허술한 부분을 많이 보완했습니다.
추리물만 보면, 과도하게 엄격해지는 제 입장에서는 헛점이 몇몇 보였지만
플레이하면 화려한 전개가 부족한 부분을 충분히 가리고도 남을 정도로
재미있는 스토리입니다.

추천 리스트에 올릴지 말지 리뷰를 쓰는 동안까지 고민했습니다.
원작에서 받은 실망감을 지워준 리메이크의 발전을 높이 평가하며,
스토리의 완성도는 부족하다고 생각하지만 게임으로서의 완성도가 넘쳐난다고 생각하여,
리메이크판 <진설 엽기의 함>만 한정해서 추천하겠습니다.

2019년 12월 22일 일요일

리뷰 : 엽기의 함(1995/8/25, 일본플랜텍)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일본플랜텍이라는 회사에서 발매된 <엽기의 함>입니다.
'엽기'는 우리나라에서 한참 전에 유행이 지난 단어로
보통 인터넷에서 기괴한 유머 사진에 많이 붙였던 단어였습니다.
반면에, 일본에서는 좀 더 강한 의미였는데 
일반적인 살인보다 잔혹한 살인에 붙는 수식어였죠.
엽기의 함, 제목만 봐도 범상치가 않습니다.



게임은 기본적으로 <동급생>과 비슷한 시간제한식 어드벤쳐 게임입니다.
6일이라는 정해진 시간 내에 여러 장소를 방문하며 이벤트를 확인합니다.
메인 캐릭터별 이벤트도 있고, 기타 캐릭터 이벤트도 있으며
꼭 봐야하는 필수 이벤트도 있습니다.

해피엔딩을 보기 위해서는 필수 이벤트+일정 횟수의 메인 캐릭터별 이벤트가 필요합니다.
필수 이벤트를 모두 보면서 츠카사 엔딩은 츠카사 이벤트를 20번 보는 것이고,
노부코 엔딩은 노부코 이벤트를 12번 보는 형식입니다.

필수 이벤트를 다 채웠더라도 캐릭터별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개인 엔딩으로 넘어갈 수 없는 방식입니다.
또한 캐릭터별 조건을 다 채웠더라도 필수 이벤트를 놓쳤다면
배드엔딩을 보게 됩니다.



배드 엔딩은 제대로 된 진상 규명없이 아무나 체포하는 엔딩,
아니면 주인공이 체포되거나 사망하는 엔딩 등이 있습니다.
필수 이벤트는 범인 규명에 필요한 이벤트인 거죠.

마지막 날이 지나고 플레이어에게는 선택지가 뜹니다.
'누구를 지켜주고 싶은가'와 '범인으로 누구를 지목할 것인가'입니다.
제대로 된 범인을 지목한다면 '누구를 지켜주고 싶은가'에서 
선택한 캐릭터의 엔딩을 볼 수 있습니다.


시스템상의 문제는 장난 아니게 어려운 난이도입니다.
방문해야 하는 장소는 그렇게 많은 편이 아닙니다만
필수 이벤트가 뜨는 시간이 너무 짧습니다.
짧은 이벤트같은 경우는 한 시간만에 그 장소를 방문해야 하는데
한 장소 방문해서 캐릭터와 대화 이벤트 한 번하면 20분이 지나갑니다.
엘리베이터 잘못 타서 엘리베이터 걸 쿠라라하고 대화하면
1시간 후딱 갑니다.

언제 일어나는지도 모르는 필수 이벤트가 너무 짧고, 힌트도 없는데,
캐릭터별 대화 이벤트 횟수까지 채워야 하기 때문에
처음하는 사람은 정말 아무 것도 못 해보고 일주일이 지나갑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제로시키 백화점 직원으로 이번에 본사에 새로 발령을 받게 되었습니다.
제로시키 백화점에서는 15년간 무려 15명이 의문의 실종을 당했습니다.
백화점에서 실종되었는지 여부조차 확실하지 않지만
똑같은 사건이 계속 일어나다보니 경영진에서는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던 거죠.
백화점에서는 언론에 알려지기 전에 먼저 진실을 알아내서
사건을 무마하려고 합니다.



제로시키 그룹의 총수 마코토입니다.
주인공에게 수사를 의뢰하는 장본인으로 차분한 스타일의 여성이죠.
다만, 도짓코 설정도 가지고 있어서 틈만 나면 넘어져서
팬티 보여주는 역할도 맡고 있습니다.
어차피 보고 받는 역할 뿐인데 의자에 가만히 앉아 있을 것이지
고작 총수실 방 한칸 안에서 왜 굳이 걸어다니다가 자빠지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신사복 매장 '치미테로'의 책임자 타마키입니다.
그정도의 나이로는 보이지 않지만
사실 남편은 이미 죽고 고등학생 딸 하나를 키우고 있는 여성입니다.



정육점 '육즙의 마을'의 점원 츠카사입니다.
밝고 성실하고 친절한 성격이죠.
초반에서 보여준 모습때문에 음모로 가득찬 이 백화점에서 
플레이어를 치유해주는 역할을 기대하고 있었지만
중반부부터 갑자기 캐릭터가 우울해집니다. 상당히 아쉬웠죠.



펫숍의 노부코입니다.
고양이를 늘 데리고 다니지만 모든 동물을 사랑하는 소녀입니다.
출퇴근에 자전거를 타고 다니며 씩씩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레스토랑 에레치오네의 요리사 시즈카입니다.
이탈리아에서 요리 유학을 다녀와 젊은 나이에도 상당한 실력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기간 한정 특설 코너의 책임자 아키라입니다.
지적이고 냉정한 성격입니다.



타마키의 딸 미스즈입니다.
아키라를 멋지다고 생각하고 동경하고 있습니다.
이 캐릭터만 유독 주인공이 아이스케키같은 야한 장난을 칩니다.



경비원인 사이토 타케시입니다.
뭘 하면서 돌아다니는 건지 경비원 일은 안하고 농땡이를 많이 치는 스타일입니다.


여기까지가 대략적인 중요캐릭터들의 소개입니다.
나머지 캐릭터도 많이 있지만 굳이 소개할 필요는 없을 것 같군요.
지금하는 캐릭터 소개조차 부실하잖아요.

스포일러가 되기 때문에 캐릭터별로 자세한 내용은 소개해드릴 수 없었습니다.
소개된 캐릭터 중에서 몇 명이 연속 실종사건에 관여하고 있는 걸까요?
그에 대한 대답은 다음 리뷰, 엽기의 함의 리메이크인 
<진설 엽기의함> 스토리 소개에서 모두 정리하도록 하겠습니다. 

2019년 12월 15일 일요일

리뷰 : 페티(1994/3/18, Cat's pro)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Cat's pro의 작품 중에서는 <NOVA ~매료된 지체>나 <HHG ~하트 히트 걸즈>가
높은 완성도를 가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반면에, 오늘 리뷰할 <페티>는 완성도가 떨어지는 게임입니다.
볼륨도 적은 편이죠.
그럼에도 이 게임을 리뷰하는 이유는
완성도는 낮지만, 지금 봐도 독특하고 실험적인 스타일의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이 게임은 엿보기 에로게입니다.
엿보기 에로게 계보는 대체로 엘프 사의 <취작>부터 시작해서
그 영향을 받은 게임들 interheart의 <오이라와 반다이>라든가, MAIKA의 <NOZOKI마> 시리즈라든가,
최근에 그나마 유명한 건 벨제부브의 <자택경비원>정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페티는 위에 언급된 게임들과 전혀 다른 스타일을 보여주는데
결정적인 차이점은 처음부터 끝까지 엿보기만 한다는 점입니다.
다른 게임들은 과정의 차이는 있지만
결국 엿보기한 주인공과 엿보기를 당한 캐릭터와 H씬까지 진도가 나가지만
페티의 경우는 오로지 엿보기만 합니다.



다른 게임에서는 엿보기 CG로 이목을 끌어들이고
그 엿보기를 하는 주인공을 중점적으로 묘사하며
엿보기는 그 다음 H씬으로 가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지만,
페티의 경우는 엿보기 그 자체가 목적이고
실감나는 엿보기 분위기를 만드는 것에 모든 노력이 집중됩니다.

엿보기를 당하는 캐릭터의 얼굴조차 제대로 나오지 않습니다.
엿보기를 당하는 캐릭터가 누군지조차 정립하지 않고 그냥 엿보기만 시킵니다.
스토리는 두 여성이 옷 갈아입으면서 주고 받는 대화로만 진행되며
주인공은 혼자 생각하는 것이외에 전혀 스토리에 개입하지 않습니다.
마치, 브라운관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플레이어에 가깝습니다.



이 게임의 또다른 특징은 캐릭터의 알몸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게임은 페티쉬에 호소하는 게임입니다.
여성의 얼굴, 여성의 알몸을 묘사한 CG는 전혀 없으며
속옷, 스타킹, 가터벨트 등의 CG만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이 게임은 속옷, 스타킹 등의 CG를 띄워놓고,
여성 둘이서 대화하는 걸 보고만 있는 게임인 겁니다.
마치 실제로 엿보는 듯한, 리얼한 느낌을 플레이어에게 주려고 한 것 같습니다.



총평하자면, 90년대에는 정말 별의별 게임이 다 나왔습니다.
틀이 정립되지 않은 도전의 시기였죠.
페티는 그런 흐름속에서 나름 일리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픽도 꽤 괜찮고, 판매 대상을 확실하게 특정한 게임이었죠.

관음증+페티쉬가 있는 분에게는 이런 장르가 계속 발전해왔다면
그런대로 가치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괜히 범죄 저지르지 않고 그림이나 보는 거죠.
하지만, 제가 아는 한에서는 이런 스타일의 게임은 더 없군요.

2019년 12월 8일 일요일

리뷰 : 암고양이 비서실(1995/12/22, Melody)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Melody에서 만든 <암고양이 비서실>입니다.
95년도는 지금처럼 학원물만이 범람하는 시절은 아니었지만,
OL을 전면에 내세운 회사물은 당시로서도 많지 않았습니다.



스토리는 헤드헌터인 주인공이 회사에 잠입하는 내용입니다.
본업인 헤드헌팅도 해야 되고,
먼저 잠입한 헤드헌터가 실종되었기 때문에 수색도 겸해야 하죠.
성희롱 조사원으로 위장해서 잠입하게 되는데
첫 장면에서 벌써 수사물로써의 기대를 버리게 됩니다.
할 일이 쓸데없이 많고 번잡스럽습니다.



실제로도 수사물로는 전혀 가치가 없는 게임입니다.
그리고 딱히 헤드헌팅 관점에서도 딱히 활약하는 게 없는 것 같아요.



마지막에 어쩌다보니 실종되었다던 전임 헤드헌터도 찾고
회사에 전반적인 음모도 파헤치게 되지만 스토리는 실망스러웠습니다.


이 게임의 장점은 농염한 숙녀들과 함께 하는 에로한 이벤트들입니다.
그냥 OL을 좋아하는 분들을 노리고 만든 게임이죠.



가끔 선을 넘는 경우도 있습니다.
회사 복장 규정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겠는데 위에 보이는 사람은 외부인이 아닙니다.
저러고 출근하는데 경비원이 제지도 안 하나요?



난이도도 딱히 어렵지 않고 단일 스토리로 쭉 흘러가기 때문에
머리 비우고 가볍게 할 만한 게임입니다.
개인적으로도 스토리에 대해 실망하면서도 그럭저럭 재미있었습니다.



총평하자면, 사실 이 평범한 게임에서 눈에 띄는 부분은 제목 하나 뿐입니다.
뭔가 더 대단한 내용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처음 플레이했을 때도 그렇게 생각해서 실망했던 것 같은데,
이번에 까먹고 또 기대해서 또 실망했습니다.
그냥 제목만 매력적인 게임입니다.

2019년 12월 1일 일요일

리뷰 : 쿠라야미(1996/7/26, Melody)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Melody사의 쿠라야미입니다.

Melody사는 90년대에는 그나마 이름이 있었지만
2000년대에는 같은 계열의 회사였던 Cat's Pro와 팬더하우스라는 이름으로 통합했고,
Melody 이름을 걸고 나온 게임은 2000년이 마지막이었습니다.
'Melody'라든가, 'Cat's Pro'라든가, '팬더하우스'같은 이름들은
이 리뷰를 보는 분들에게 생소할 것이고, 사실 기억할 필요도 없습니다.
2007년도 이후로는 활동 정지한 회사이기도 하고요.

이쪽 회사 계열에서 가장 유명한 건 <신체조>가 아닐까 합니다.
사실 <신체조>도 게임보다는 애니메이션으로 유명하지만
만일 <신체조>마저 생소하다면, 더 이상 쉽게 설명드릴 방법은 전혀 없군요.



아무튼 쿠라야미는 어둠 정도로 해석하시면 됩니다.
주인공과 마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단 둘이 엘리베이터에 갇히고
그 안에서 여러 가지 상황이 펼쳐지는 선택지형 멀티엔딩 시스템 게임입니다.

무대는 고작 엘리베이터 내부뿐입니다.
휴대폰도 없던 시절이라 바깥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고
딱히 과거 회상같은 게 있는 게 아닙니다.



무대가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에 똑같은 장면만 계속 보고 있는 느낌이 들고,
게임 분량이 적은 편이 아니기 때문에 플레이하기 피로한 면도 있습니다.



다만, Melody측도 이런 점을 의식했는지 다양성을 주려고 노력한 모습이 보입니다.
마리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과 단 둘이 갇히는 이야기라고 표현했는데,
사실 마리가 세 명입니다.

여대생 마리편이 끝나면 안경 낀 다른 마리편으로 넘어가게 되는 방식이죠.
게다가 셋을 그린 원화가도 다릅니다.



사실 원화가를 다르게 한 부분은 그다지 칭찬하고 싶지 않은데
제 개인적으로는 게임을 진행할 수록 마음에 안 드는 원화였기 때문입니다.


주인공도 엘리베이터에 갇힌 이유도 계속 달라집니다.
다양한 등장인물, 다양한 상황, 다양한 엔딩을 즐길 수 있는
옴니버스 게임이기도 한 겁니다.

캐릭터마다 큰 줄기로 세 가지 스토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총 9개의 스토리에 그 안에서도 세세하게 많은 엔딩이 뻗어갑니다.
호러 엔딩도 있고, 개그 엔딩도 있습니다.
이런 다채로움을 높이 평가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다만, 제 입장에서는 리뷰할까 말까를 망설였던 게임인데
다른 분들의 평가와 달리 인상깊은 장면이 딱히 없었고
할 말도 별로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많은 안타보다 강렬한 홈런 한 방을 좋아합니다.
제한된 상황에서 수많은 결과물을 뽑아낸 것도 대단한 일입니다만
제 입장에서는 단 하나만 선택하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싶은 거죠.

이 게임의 분위기를 보고 저는 특히 서서히 엄습하는 공포를 기대했지만,
그런 자극은 기대 이하였습니다.



총평하자면, 개개의 스토리에 완성도가 낮은 건 아닙니다.
오히려 스토리 숫자에 비해 각각의 스토리에 공을 많이 들인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대체로 괜찮았지만 딱 그정도였습니다. 제가 원하는 걸 주지는 못했죠.
캐릭터는 셋이 아니라 하나였다면,
다양한 스토리가 아니라 한 스토리가 공포를 구체화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면
제 마음에 들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