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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7월 31일 일요일

리뷰 : 여계가족 ~음모~(2005/4/28, 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계가족> 시리즈의 2편인 <여계가족 ~음모~>입니다.
전작과 마찬가지로 여성 캐릭터로만 이루어진 가족의 유산 상속 스토리인데
비난을 쏟아냈던 전작과는 달리 제가 상당히 편애하는 게임이죠.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정치, 경제적으로 상당한 입지를 지닌 가문 아리미야의 당주가 
얼마 전에 노환으로 사망했습니다.
당주는 여성 편력으로도 유명한 인물인데
사망 당시에 그의 가족은 한참 젊은 후처와 세 딸뿐이었죠.



주인공은 그런 아리미야의 제3비서입니다.
재벌가의 제3비서하면 뭔가 있어 보이는 직함이지만
사실 심부름이나 하는 말단에 불과하죠.
제2비서인 쇼코도 그다지 권력을 갖고 있지 않고,
비서로서의 권력은 오로지 남자인 제1비서에게 몰려 있습니다.



하찮은 말단인 주인공따위가 재벌가의 유산을 노리고 있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인데
사실 여기에는 뒷사정이 있습니다.

아리미야 가문의 유산 싸움은
표면에 드러난 재산을 갖고 다투는 싸움이 아닙니다.
아리미야의 빌딩에는 비밀의 방과 금고가 있는데
그 금고에는 국가에 신고되지 않은 
어마어마한 뒷돈과 금덩이가 모셔져 있죠.
아리미야는 이걸 토대로 정치, 경제에 영향력을 발휘해 왔으니
여기의 재산이야말로 아리미야 가문의 가장 큰 힘인 겁니다.

근데, 당주가 사망하기 전날 비밀번호를 바꿔 버렸고,
그 누구에게도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사망해 버렸습니다.
상속권 유무에 관계없이 금고의 비밀번호를 찾아내는 자가 
아리미야의 모든 것을 손에 넣는 거죠.


그리고 주인공의 숨겨진 정체는
과거 누명을 쓰고 쫓겨난 금고지기의 아들이라는 겁니다.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아리미야의 재산을 손에 넣으라는 유언을 남겼고,
그로 인해 주인공은 제3비서로 취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봤자, 주인공도 비밀번호를 모르기는 매한가지지만요.



이 게임의 독특한 시스템은 선택지 방식입니다.
장소 이동의 선택지는 평범하지만,
그 외의 대사 선택지는 일반적인 방식과는 다르죠.

스토리를 진행하다 보면,
중요한 단어가 붉은 글씨로 뜨는 걸 볼 수 있습니다.
그 붉은 글씨를 클릭하거나, 혹은 '신경쓰지 않는다'를 선택하면서 진행하는 겁니다..
붉은 글씨를 클릭한다면 주인공이 그 문제에 개입하는 시스템이죠.



예를 들어 봅시다.
지하에 있는 비밀의 방에 몰래 잠입한 주인공은
메이드 에미리가 장녀 치사토에게 성적인 의미로 벌을 받는 것을 엿보게 됩니다.
치사토는 벌을 다 준 후 어디론가 떠나 버리고,
에미리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붉은 글씨를 선택한다면,
주인공이 에미리를 위로해 주는 스토리가 전개됩니다.
그 자리에서 바로 H씬까지 진도가 나가며,
결국 치사토에게 들켜 비서 자리에서 쫓겨난다는 배드엔딩이죠.
비밀의 방에 몰래 잠입한 일개 비서 따위가
주제도 모르고 설친 결과입니다.


이 시스템은 주인공의 처지와 잘 어울립니다.
일반적인 게임이라면 주인공은 온갖 오지랖을 다 부리며,
주변에 일어나는 사건에 다 개입하고 다니겠죠.

하지만, 이 게임의 주인공은 이 장소의 중심인물이 아닌 말단입니다.
다른 게임처럼 온갖 상황에 다 개입할 처지가 못 된다는 거죠.
최종 목표를 위해 적당히 낄끼빠빠해야 됩니다.
주인공이 관심을 가져야 할 일과 아닌 일을 잘 구분하여
과감하게 신경쓰지 않는 선택을 해야 하죠.

반대로, 별 신경도 쓰지 않았던 일이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이었다는 상황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주어진 상황에 과감하게 발을 디딜 것인가,
아니면 미래를 위해 한 발 물러설 것인가를 선택하는 시스템입니다.



가족 구성원을 살펴 봅시다. 먼저 모친인 스미레입니다.
요염한 스타일의 몸매로 늙은 당주를 유혹했으며,
당주가 사망한 이상 아리미야 가문의 가장 웃어른이 되었습니다.
친딸은 없기 때문에 딸들과 사이는 매우 좋지 않고
모두 금고를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사이죠.

굉장히 음란한 본성을 갖고 있으며, 제1비서와는 밀통하는 관계입니다.
주인공을 유혹해서 자신의 편으로 끌어 들이려는 생각도 하고 있죠.
스미레는 주인공에게 세 딸에게 여자의 즐거움을 알려 주라는 의뢰를 합니다.
보수는 스미레의 육체죠.



장녀인 치사토입니다.
설정으로는 주인공에게 가장 어려운 상대인데
굳센 성격이고, 메이드들의 기강 관리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메이드뿐만 아니라 여동생인 시온까지 고문합니다.
게다가 남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레즈비언이죠.

그녀를 공략하기 위해서는 그녀의 트라우마를 찾아내야 합니다.



차녀인 미소라입니다. 오만하고 사치스러운 아가씨죠.
유산에 대한 욕심이 매우 크기 때문에 자기 편을 갖고 싶어 합니다.
'스미레가 금고를 차지하면 우리는 쫓겨난다'며 언니인 치사토를 설득하기도 하죠.

철부지처럼 보이지만 능력이 아예 없지는 않은데,
주인공의 정체도 단독으로 조사해 알아낸 후 자기 편으로 포섭하려고 합니다.
금고지기의 아들이 무언가를 알고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죠.
주인공은 쥐뿔도 아는 게 없습니다만 뭔가를 아는 척을 하기도 하고, 
스미레나 치사토와 손을 잡은 것처럼 허세를 부리기도 합니다.



막내인 시온입니다. 심약한 아가씨로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는 포지션입니다.

유산에 대한 욕심은 없지만 중요한 캐릭터인데,
당주가 사망 전날 금고 비밀번호를 바꿀 때
같이 있던 사람이 바로 시온이었던 겁니다.
시온은 비밀번호를 알아내는 가장 중요한 단서를
자기도 모르게 쥐고 있는 거죠.



캐릭터가 잘 짜여져 있는 것에 반해,
스토리가 빈약하고 H씬 위주로 흘러가는 점이 아쉽습니다.
좀 더 유산 상속과 얽힌 싸움을 보고 싶었지만
주인공이 위협을 느낄만한 강적은 존재하지 않았죠.

주인공에게는 운이 상당히 많이 따랐고,
전개도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스미레의 '세 자매에게 여자의 즐거움을 알려줘라'는 의뢰는
배드엔딩으로 가지 않으면 하루만에 클리어해 버립니다.
스미레조차 깜짝 놀랄 정도죠.


각각 캐릭터의 스토리가 
똑같은 스토리에 등장인물만 바꾼 수준에 그친 점도 아쉬웠습니다.
그렇다고 높이 평가할만한 배드엔딩이 있는 것도 아니었죠.
이 게임의 멀티 엔딩도 단순한 숫자 불리기였습니다.

ㄴㅇ루트를 따로 만들기도 했지만,
본편과 연결성도 없고, 개연성마저 날려 버린
외전 팬디스크 격의 스토리였습니다.
뭔가 반전을 계획하고 있었던 것 같기는한데
분량 문제 때문인지 결국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았습니다.

스토리에 대해 냉정하게 평가하면
제가 그렇게 욕했던 1편에 비해 크게 나아진 것이 없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적어도 1편보다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최소한 캐릭터와 설정을 살릴 정도의 분위기라도 만들었기 때문에
미흡할지언정 한 번은 플레이를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죠.



총평하자면, 이 시기 실키즈의 게임 대부분에 내릴 수 있는 평가인
'멀티엔딩에 집착하지 말고, 제대로 된 단일 루트 하나를 만드는 게 낫다'에
정확히 부합하는 게임이라고 봅니다.
소재도 캐릭터도 분위기도 좋았어요.
정성을 다해 스토리를 다듬어서
단일루트 게임을 만들었다면 훌륭한 게임이 나왔을 겁니다.

만일 제가 실키즈를 잘 몰랐고
캐릭터나 분위기에 속아 이 게임에 좀 더 큰 기대를 걸었다면,
저는 이 게임에 가차없는 비판을 했을 겁니다.
멋진 소재를 반도 살리지 못했던 게임이라고 말이죠.


다만, 당시에는 꽤 좋아했던 게임입니다.
실키즈가 나사 한 두개 빠진 게임을 만들었던 건 언제나 있는 일이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다른 에로게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소재가
언제나 저를 기대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죠.

여계가족 2편은 그런 실키즈에 제가 기대했던 부분을
가장 많이 충족시켜줬던 게임입니다.
화려한 소재에 어울리는 그래픽,
상류층의 여성 캐릭터와 비교할 수 없는 말단인 주인공의 처지,
그러한 처지를 뒤집는 스토리와
상황에 걸맞는 선택지 시스템까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요소요소에서 적절한 설계를 했던 게임이었습니다.

이 게임 이후로 좀 더 발전된 실키즈를 기대했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공주기사 안젤리카> 리뷰에서 설명드렸던대로
실키즈는 오히려 다른 회사와 비슷한 소재로 눈을 돌려 버렸고
제가 기대해 볼만하다고 생각했던 게임은 한참 후에나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2022년 7월 24일 일요일

리뷰 : 여계가족(2002/10/25, 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계가족> 시리즈의 1편 리뷰입니다.
저는 <여계가족> 시리즈를 2편-1편-3편의 순서로 플레이했었는데
그 중에서 1편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날 정도로
엄청나게 실망했던 게임이었습니다.

일단 여계가족이라는 제목은 
1963년도에 나온 <여계가족>이라는 소설에 기반하고 있는데
저는 과거에 이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학교 도서관에 있더라고요.

오래 전에 읽은 내용이 뚜렷이 기억나는 건 아니지만
여성의 파워가 강한 가문에서
상대적으로 입지가 미약했던 남자 당주가 사망했고,
이후 드센 딸들의 유산 상속 싸움에 관한 스토리였습니다.
그 와중에 재산 관리인이 딸들의 뒤통수를 치려고 하고,
숨겨둔 애인이 재산 관리인의 뒤통수를 치려고 하는 등 
통수의 통수였던, 적당히 괜찮은 소설이었죠.

저는 게임 여계가족 1편, 2편을 플레이한 이후에야 소설을 읽었는데
스토리 자체는 전혀 접점이 없었지만
분위기는 꽤 비슷하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은 부자 가문인 산노우지 가문에 
자신의 형이 써 준 유서 한 통을 들고 갑니다.

주인공의 형은 산노우지 가문에 데릴사위로 들어갔는데
이런 저런 중압을 견디지 못해 결국 자살을 시도했고,
혼수상태가 되어 병원에 입원해 있는 상태입니다.
그의 유서에는 자신의 모든 유산을 주인공에게 상속한다고 쓰여있죠.



산노우지 가문의 여성들이 발칵 뒤집힌 건 당연한 일입니다.
어디서 본 적도 없는 말뼈다귀가 모든 유산을 가져 가겠다고 나타났으니까요.

현재 산노우지 가족은
어머니 미유키, 장녀 쿄코, 차녀 카오리, 막내 우라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딱 보기에도 장녀 쿄코는 성질이 더러워 보이는데
다른 캐릭터는 첫 인상으로 평가하기가 힘들군요.



어머니인 미유키가 주인공이 하는 이야기를 잘 알았으니
유서를 자신에게 맡기라고 합니다.
하지만, 유서는 주인공에게 있어 유일한 무기입니다.
유서가 훼손되면 주인공은 아무 권리도 주장할 수 없다고 하니
유서를 아무에게나 맡길 수는 없는 일이죠.

이 중요한 유서를 미유키에게 맡길 것인지 선택지가 뜨는데
뇌가 달려 있는 플레이어라면 당연히 거부해야겠지만,
이번엔 과감하게 맡긴다를 선택하겠습니다.
이 선택지 하나로 미유키가 적인지 아군인지 아닌지를 판별해 보는 거죠.

하지만, 넘기는 도중에 장녀 쿄코가 유서를 채가서 찢어 버립니다.
주인공이 이게 무슨 짓이냐고 난리를 피우는 도중에
미유키는 아예 둔기로 주인공의 뒤통수를 찍어 버리죠.

배드 엔딩을 보게 되었지만 이걸로 확실히 알았습니다.
미유키를 믿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요.



유서를 넘기지 않으면 주인공은 일단 산노우지 저택에 살게 됩니다.
아직 형이 죽은 건 아니기 때문에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저택에서 기다리기로 한 거죠.
이렇게 산노우지의 여성들과 같이 살게 된 주인공의 속마음에는
유산뿐만이 아닌 산노우지의 여성들 전부를 손에 넣겠다는
야망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참 그럴 듯한 게임입니다.
엄청난 유산을 두고 서로 눈치싸움을 하는 여성들과
그 사이에서 중요한 키를 쥐고 여성들을 노리는 주인공의 이야기니까요.


하지만, 이 게임은 제 에로게 인생에서도 
역대급에 속할 정도로 실망스러웠던 게임입니다.
스토리가 지나칠 정도로 형편없었기 때문이죠.



차녀인 카오리입니다.
사실은 미유키가 데려 온 양녀로 다른 자매들과 피가 이어져 있지도 않아
장녀인 쿄코에게서 눈총을 받고 사는 처지입니다.

현재 미유키는 집안이 어수선하다는 핑계로 고용인들을 전부 내보냈고,
모든 가사는 카오리가 전담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평불만없이 자기 일을 수행하는
착하고 상냥한 캐릭터죠.



유산 싸움에도 딱히 관심이 없고,
주인공을 적대하는 것도 아니고,
아무 꿍꿍이 없이 주인공 형 병문안을 가기도 하는
이런 완벽한 캐릭터를 주인공이 덮쳐야 하는 이유는 대체 뭘까요?
게임 내에서는 아무 이유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냥 만만해서인 것 같습니다.

캐릭터가 메인 스토리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없어요.
주인공과 미유키가 카오리를 두고 기싸움을 하는 장면도 있는데
어중간하게 흐지부지되어 버립니다.



막내인 우라라입니다.
역시 유산에 별 관심이 없는 캐릭터지만 마냥 순수한 건 아니고,
4차원 성격에 음란한 일에도 관심이 좀 있죠.
유산에는 전혀 관심없는 애송이입니다.

카오리도 그렇고, 우라라도 그렇고,
좀 유산 갖고 싸웠으면 좋겠는데
너무 어린 애들이라서 그런지 유산에 관심들이 없습니다.
우라라 같은 캐릭터를 유산에 관심은 없지만 본인 몫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분란의 중심에 서는 그런 캐릭터로 설정했어야 했는데
그게 아니니까 그냥 스토리에서 동떨어진 캐릭터가 되어 버렸어요.



그래도 우리에겐 장녀 쿄코가 있습니다.
쿄코는 주인공 형과 혼인한 관계로 주인공에게는 형수가 되는 캐릭터입니다.
주인공 형의 자살에는 쿄코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죠.

척보기에도 기가 세 보이는 캐릭터이며,
유산에 대한 탐욕으로 가득차 있는 캐릭터입니다.
게다가, 주인공에게는 형의 원수죠.


믿습니다. 쿄코님. 
제발 산노우지 가문을 유산 상속의 개싸움판으로 만들어 주세요.


제 소원에 화답하듯이 쿄코는 첫날 밤 주인공을 찾아옵니다.
자신에게는 아직 법적으로 유류분이 있다면서 
이 싸움의 기선을 제압하려고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주인공은 쿄코를 어떻게 설득할까요?



설득 그런 거 필요없고 그냥 물리적인 방법을 씁니다.
밧줄로 쿄코를 묶어 버리죠.
이런 야만적인 방법을 쓸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는지
쿄코는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만 합니다.

주인공은 바로 쿄코를 덮치지 않고,
쿄코를 완벽하게 굴복시키기 위하여 협박을 하게 되는데 그 내용은
"이대로 하룻밤동안 묶어 두면 팔이 썩어서 잘릴 것이다."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협박이 통하죠.

아니, 쿄코는 초등학교도 안 나온 겁니까?
지금 산노우지 가문의 유산을 걸고 일생일대의 싸움을 하고 있는데
협박 내용이 지나치게 뜬금없고, 허술하고, 어처구니가 없잖아요.
심지어 CG상으로 보면 손목을 그렇게 세게 묶지도 않았어요.
어떻게 꼼지락꼼지락하면 그냥 빠져 나올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아무튼 우리의 기대주 쿄코는 이렇게 첫날에 함락당했으며,
주인공에게 완전히 굴복하지는 않았지만 제대로 된 반격도 못하는 신세로
딱히 존재감 없는 캐릭터가 되어 버렸습니다. 안타깝군요.



마지막 희망은 모친 미유키입니다.
다행히 미유키는 적당히 음모도 꾸미면서,
한편으로는 주인공을 회유하려고도 하는 등 
주인공의 계획에 방해가 되는 캐릭터입니다.
미유키의 약점도 금방 잡았지만
미유키는 그에 굴하지 않고 끝까지 반격을 시도하는 
음험한 캐릭터입니다.

다만, 딸들이 다 부진한 상태에서
미유키 혼자 이 게임을 살리기엔 한계가 있었죠.
계략도 그렇게 뛰어나지 않았고요.



여성 캐릭터들이 아쉽더라도
주인공의 캐릭터가 괜찮았다면 게임이 살아날 방법은 있었을 겁니다.
세상물정 모르는 아가씨들을 탁월한 능력의 주인공이 
등쳐먹는 스토리로 가는 거죠.

하지만, 주인공도 한심할 정도로 능력 부족입니다.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요.
여성 캐릭터 둘은 주인공에게 적대할 의지도 없었으며,
쿄코를 이긴 방법은 너무 허술했고,
미유키를 위협한 방법도 다른 사람에게 거저 얻은 겁니다.

이런 자잘한 순간들을 제쳐두고 봐도,
애초에 누구와 협력하겠다, 어떤 방법으로 차지하겠다 이런 대전략도 없이
그냥 유서 하나 딸랑 들고 가서 여성 캐릭터들을 덮치는 게
주인공이 하는 일의 전부입니다.

'유산과 미녀들을 모두 손에 넣겠다'는 포부만 컸을 뿐
구체적인 계획은커녕, 추상적인 지침도 없이
그냥 산노우지 저택에 들어간 것뿐입니다.
그냥 산노우지 저택 출입증 역할 밖에 못하는 유서 하나만 믿고 있는 거에요.



그 유서라도 제대로 관리하고 있느냐 하면 그조차도 아닙니다.
유서를 뺏기는 바람에 망했다 하는 엔딩이 한 두개가 아니에요.

유서는 문단속도 하지 않은 방구석에 있고,
지퍼만 열면 그냥 열리는 가방 맨 위에 놓여 있습니다.
주인공이 방을 잘 지키고 있는 것도 아니고
가짜를 준비했다거나 하는 대비책이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냥 허술한 방비와 산노우지 가족들의 양심만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고서 유서가 사라지면 전혀 예상치 못한 것처럼 좌절합니다.
하다 못해 가방 맨 밑에라도 숨겨 놨어야죠.



산노우지 가족들과 주인공이 형편없는 상태에서
유산을 노리는 제3자라도 멋진 악역이 되어 준다면
어떻게든 이 게임이 살 방법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여기까지 오면 쉽게 예측가능하지만
제3자 캐릭터가 게임을 살려주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산노우지 가문의 고문 변호사는 주인공을 도와주는 척하면서,
주인공을 뒤통수치고 자신이 산노우지의 재산을 차지하려는 생각을 갖고 있지만
역시 구체적으로 뭘하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냥 존재감이 없어요.
주인공은 대놓고 이 캐릭터를 믿지 않고,
몇 개의 엔딩을 제외하면 그다지 활약도 없습니다.

캐릭터의 역할이 있기는 한데,
굳이 없어도 상관없는 캐릭터에요.
주연, 조연 구분없이 다 망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게임의 스토리가 지나치게 미흡한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게이머들이 에로게 스토리에 기대하는 건
눈물나는 감동, 흥미진진한 모험, 열혈의 배틀, 높은 지적 유희같은 걸 바라는 게 아닙니다.
그런 스토리를 갖춘 에로게도 있고, 
그 중에서도 잘 만든 게임들은 상당히 높은 평가를 받고 있지만,
모든 에로게가 그걸 목표로 할 필요는 없어요.


하지만, 적어도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매력을 살릴 수 있는 
최소한의 스토리는 있어야 합니다.
이 게임의 문제점은 그 수준의 스토리조차 없다는 거에요.

부자집 아가씨를 모아 놓고 유산싸움을 하고,
주인공은 그 싸움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이런 좋은 환경을 왜 이용하지 못하는 겁니까.

유산에 관심도 없고 부자집 아가씨인지도 드러나지 않는 여성 캐릭터들부터 시작해서
자신의 유리한 위치를 활용할 줄도 모르고 그냥 덮치기만 하는 주인공까지
모든 캐릭터가 이 게임 소재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키즈가 자주 사용했던 멀티 엔딩의 활용 또한 최악이었습니다.
24개의 멀티엔딩이 있는데 무의미하게 개수를 늘린 엔딩이 많았죠.

희한했던 배드엔딩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전철에 타고 있던 주인공은 카오리가 치한을 당하는 모습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리고 '도와준다'와 '도와주지 않는다'가 선택지로 뜨죠.
'도와준다'를 선택하면, 이도 저도 아닙니다.
주인공이 도와주려고 가는 도중에
마침 치한 행위가 끝나 버리는 바람에 카오리도, 치한도 사라져버리죠.
주인공도 그냥 제 갈 길 갑니다.

근데 '도와주지 않는다'를 선택하면,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전철이 급정지하는 바람에
옆에 서 있던 뚱뚱한 아줌마에게 깔려 정신을 잃는다는 배드 엔딩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엔딩인데요.
플레이하는 저도 정신을 잃을 정도의 엔딩입니다.

이렇게 어거지로 늘린 멀티 엔딩이 대체 무슨 소용이랍니까?
도와주는 것도 안 도와주는 것도 아무 의미가 없는 선택지입니다.



총평하자면, 실키즈 최악의 게임을 꼽으라면 전 이걸 꼽습니다.
이후의 여계가족 시리즈도 스토리는 부실합니다만
분위기만은 맛볼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반면에, 이 게임은 설정을 살리고 못살리고의 수준이 아니라,
설정이 의미가 없을 정도로
완전히 따로 노는 수준의 게임이 되어 버렸습니다.

차라리 유산상속 문제가 없었다면
카오리나 우라라의 캐릭터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잘 살릴 수 있었던 설정과 잘 살릴 수 있었던 캐릭터로
이 정도 결과물 밖에 못 뽑아냈다는 점이 참 아쉽네요.

2022년 7월 17일 일요일

리뷰 : 공주기사 안젤리카 ~당신은 정말 최저의 쓰레기에요~(2007/2/23, 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공주기사 안젤리카 ~당신은 정말 최저의 쓰레기에요~>입니다.
과거 이 게임에 대한 제 평가는 가혹했는데
그 때 했던 제 평가는 이렇습니다.

"이 게임이 더 쓰레기에요."

나무위키를 보니, 
이 게임이 2채널에서 잠깐 밈화가 된 적이 있을 정도로 괴작이라고 적혀 있고,
지금 남아있는 평가들을 봐도 전혀 개그 장면이 아닌 부분에서 웃겼다는 등
조롱하는 식의 평가가 많았습니다.

일본에서 가장 문제가 되었던 부분은
지나치게 오버한 H씬 텍스트와 
그걸 열심히 연기한 성우의 분투때문이었습니다.

또다른 이유로는 캐릭터들이 H씬에서
너무 심하게 옷을 껴입고 있다는 점이 있습니다.
이 게임뿐만 아니라 
이후 이런 스타일로 나온 실키즈의 게임들이 
대부분 착의 H씬밖에 없어요.
알몸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는 세계관입니다.
심지어, 어떤 게임에서는 목욕할 때도 옷 입고 목욕하죠.

하지만, 저는 이렇게 조롱받았던 게임이었다는 걸 몰랐습니다.
제가 이 게임에 실망했던 이유와는 좀 달랐죠.
이번 플레이에서는 저런 비판점에 집중해서 플레이를 해 보았지만
저에게는 특히 와닿는 문제점은 아니었습니다.



게임의 세계관은 판타지 세계로서
적당히 사연있는 주인공이 복수를 위해
공주기사 안젤리카 및 그 외 높은 지위의 여성 캐릭터들을 조교한다는 내용입니다.
그다지 쓸만한 스토리는 없고, H만을 거듭하는 게임이지만
에로게로서 딱히 문제될 건 아니죠.



이 게임은 조교물입니다.
플레이어는 여러 행위를 선택하면서 여성 캐릭터들을 조교할 수 있습니다.
계속 조교를 반복하면 조교 레벨이 높아지고
조교 레벨이 높아질수록 행위를 당하는 여성 캐릭터들의 반응도 변화하게 되죠.
뭐, 조교물의 당연한 공식입니다.

어떤 조교물 같은 경우는 행위나 신체부위마다 개발도가 있어서
특정 행위를 더 많이 하면 그 부분을 위주로 조교되는 게임이 있긴 하지만,
이 게임은 그런 부류는 아니고 그냥 총체적인 레벨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수학적으로 딱딱 나눠지는 조교물은
스토리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 않는 단점이 있습니다.
단순히 조교횟수에 따라 레벨이 올라가기 때문에,
태도가 변화되는 계기가 스토리상 제대로 설명되지 않고
그냥 캐릭터가 갑자기 변화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는 거죠.


이 쪽 장르의 장점이라면
자신이 원하는 H씬을 언제든지 선택할 수 있다는 점과
같은 H씬이라도 레벨에 따라 다양한 반응의 조교를 즐길 수 있다는 점,
혹은 고고하고 자존심 높은 캐릭터를 점점 타락시키는 재미 등을 들 수 있겠죠.



조교물은 오랫동안 연구되었던 장르였고,
다양한 시스템을 개발했지만 개인적으로 선호하는 장르는 아닙니다.
조교물 중에서 좋아했던 게임이 있긴 하지만
시스템적으로 좋아했던 건 아니고, 다른 요소가 좋았던 거죠.

사실 이 게임도 조교물에 대한 제 비선호도를 제외하면
비슷한 게임들과 비교할 때 큰 단점이 있는 게임은 아니었습니다.
대체로 당시의 조교물 평균 수준의 게임이었죠.
그럼 당시에 제가 했던 혹평은 왜 나온 걸까요?



직접적인 원인은 바로 이거였습니다.
LUNE사의 <전을녀 발키리>와 큰 틀에서 완벽하게 똑같았어요.

애초에 조교물들이 대체로 비슷비슷한 느낌이 있고,
<전을녀 발키리>는 당대 조교물의 대명사급으로
그 장르에서 가장 핫한 게임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그걸 감안해도 지나칠 정도로 많이 비슷했어요.
LUNE에서 나온 스탭들이 참여하긴 했지만
그래도 회사가 바뀌었으면 어느 정도 변화를 줬어야죠.
심지어, 당시 LUNE는 망한 회사도 아니고
<전을녀 발키리>의 속편을 비롯해서 여러 조교물들을 꾸준히 발매하는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있는 회사였는데요.
 
이전까지 실키즈의 게임들은 제가 호평하지는 않았지만,
회사의 색깔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게임들이었습니다.
에로게 업계의 대세인 모에 붐에 편승하지 않고,
비교적 현실적인 캐릭터들과 좀 더 도전적이고 독특한 스토리가 많았죠.
그래서 저는 실키즈에 꾸준히 기대를 걸었던 겁니다.

근데 <애자매> 3편과 공주기사 안젤리카를 거치면서
실키즈만의 색깔이 사라졌습니다.
완전히 노선을 바꿔 버린 거죠.
이 이후에 실키즈에서 발매된  <학원최면례노>, <공주기사 올리비아> 등은 
안젤리카보다는 재밌게 했지만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의 뻔한 게임이었습니다.
장르만 진부했던 게 아니라, 내용 자체가 뻔했고
인상적인 장면 하나 내세울 게 없는 게임들이었죠.



저는 안젤리카를 실키즈 노선 변경의 상징같은 게임이라고 생각했으며,
실키즈에 실망할 때마다 이 게임을 원망하게 되었던 겁니다.
그런 선입견 때문이었는지
오랜만에 해도 비슷한 게임들에 비해 재미가 없다고 느껴졌어요.
이번에도 재평가는 없었습니다.



총평하자면, 별 특색없는 조교물입니다.
일부 의견만큼 조롱받을 만한 게임은 아니지만,
플레이어의 흥미를 끄는 무언가도 존재하지 않아요.
굳이 저 시절의 조교물을 찾으신다면
<전을녀 발키리> 시리즈나 <공주기사 올리비아>가 낫다고 봅니다.

이런 인상적이지도 않고, 
많이 플레이하지도 않은 게임을 리뷰하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후 실키즈의 노선 자체가 이 쪽으로 변경되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려면 어쩔 수 없었죠.
실키즈는 이런 노선의 게임을 다섯 개나 더 냈는데
모두 리뷰 안 할 겁니다.


에로게 회사의 역사가 오래되면 
이렇게 스타일을 바꾸는 경우가 있습니다.
상기한 LUNE도 현재는 조교물 안 만들고 MC물만 만들고 있죠.

실키즈가 앞으로의 노선을 조교물로 가닥을 잡고 
<전을녀 발키리> 스타일로 가기로 했더라도
그 안에서 실키즈만의 느낌을 내려고 했다면
저는 이렇게까지 비판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노선을 변경한 회사가 다른 회사를 그냥 베끼는 수준으로 따라갔다는 점.
그것때문에 저에게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는 실망감으로 남아 있는 것 같습니다.

2022년 7월 10일 일요일

리뷰 : 사랑의 힘(2005/11/18,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힘>은 무려 실화를 기반으로 제작된 게임입니다.
어떤 잡지에 게재된 독자의 리얼 스토리를
어느 정도 살을 붙여 게임화한 거죠.

제가 그 잡지를 읽어 보지 않았기 때문에 원래 어떤 스토리였는지 모르겠지만
게임 스토리로 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겁니다.
무엇보다 이 게임은 실키즈 게임답게 멀티 엔딩 시스템을 취하고 있는데
현실은 멀티 엔딩이 아니니까 그 부분은 창작할 필요가 있겠죠. 



큰 줄기의 스토리가 있고,
선택지에 따라 배드엔딩 혹은 진엔딩 외의 다른 캐릭터와 맺어지는 엔딩으로 빠지는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이 중에서 진엔딩 스토리가 실화를 기반으로 한 스토리일 거라고 예상되네요.


사랑의 힘이라는 제목만 들으면 어떠한 고난과 역경이라도 
연인 두 사람의 사랑으로 넘어선다는 감동의 드라마가 떠오릅니다만,
이 이야기가 실린 잡지는 독자들이 야한 사진을 투고하는 성인잡지였고
이 스토리도 커플이 야외노출 같은 변태적인 플레이를 즐긴다는 이야기입니다.
굳이 이야기하자면, 
변태같은 성적 취향 차이를 사랑의 힘으로 극복한다는 이야기가 될까요?



주인공은 의료기기 메이커의 영업사원입니다.
여러 병원을 돌아다니면서 영업을 뛰는데 
나름 준수한 청년인지 간호사들에게 인기가 꽤 좋은 편이죠.
하지만, 주인공에게는 은밀한 취향이 있었는데 독자투고잡지의 애독자이며,
자신도 언젠가 잡지에 자기 애인 사진을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도입부에서 주인공은 의사에게 희롱당하고 있던 간호사 에미코를 도와줍니다.
에미코는 이 일을 계기로 주인공에게 호감을 갖게 되죠.
하지만 주인공은 에미코에게 그다지 관심이 없습니다.



주인공의 관심은 오로지
같은 병원 다른 과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카렌에게 향해 있습니다.
주인공은 카렌의 사진을 찍어서 
그 사진을 잡지에 올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유쾌한 성격의 카렌은 주인공에게 자주 장난을 걸어 오고
금세 둘은 절친한 관계가 됩니다.
언제 한 번 식사나 같이 하자고 약속까지 하죠.

이렇게 관계가 가까워짐에도 주인공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한데,
이 병원에는 여자 관계가 안 좋기로 소문난 미남 의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주인공은 그 의사가 카렌에게 손을 대지 않을까 노심초사하게 됩니다.



주인공은 에미코와 함께 우연히 빈 방으로 들어가
옆방에서 미남 의사가 간호부장에게 손을 대는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미남 의사의 안 좋은 소문은 사실이었던 거죠.

간호부장도 남자를 밝히기로 소문이 나서, 
주인공에게 접근도 하고 그랬는데 미남 의사가 어느새 채갔습니다.
주인공은 간호부장에는 큰 관심이 없어 그녀가 어찌되든 상관없지만,
카렌도 그렇게 되지 않을지 걱정이 태산입니다.
일도 제대로 손에 잡히지 않게 되죠.



결국 일을 너무 못해서 병원으로부터 담당을 바꿔 달라는 요구까지 받게 됩니다.
주인공의 상사는 주인공을 자르지는 않았지만 다른 병원으로 배속시켜 버리고,
카렌과는 이렇게 이별하게 되죠.



그렇게 방황하던 주인공은 우연히 간호사를 그만둔 에미코를 만나게 됩니다.
주인공은 여전히 카렌을 그리워하지만 카렌과의 인연은 이제 끊어졌고,
에미코와 마음이 맞아 그녀와 사귀게 됩니다.



그렇게 세월이 흘렀지만, 주인공의 마음 속에는
아직도 카렌을 사진으로 찍고 싶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에미코는 여전히 주인공을 사랑해서 그의 마음을 돌려 보려고 하지만
주인공은 결국 에미코와 이별을 결의합니다.

사실 에미코도 숨기고 있는 비밀이 있었는데
우연히 주인공을 만난 게 아니라 주소를 다 조사해서 쫓아 왔던 것이며,
주인공이 카렌을 좋아하는 걸 알고 주인공의 마음에 의혹을 불러 일으키기 위해
간호부장을 엿보는 사건을 계획했던 겁니다.
다 설계였던 거죠.

그래도 에미코의 주인공에 대한 애정만큼은 진심이었기 때문에
몸도 마음도 다 바쳤지만 주인공의 마음은 이미 멀어졌습니다.
에미코의 행적에 관계없이
에미코와 사귀는 내내 주인공 머릿속에는 카렌 사진 찍을 생각뿐이었니 
주인공도 참 지독하다는 생각도 듭니다.



마침 주인공 후임이 사고를 치는 바람에
주인공은 카렌이 있는 병원의 영업을 다시 맡게 됩니다.
주인공은 카렌이 아직까지 자신을 기억하고 있을지 걱정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카렌과 잘 해보기로 결심하고 카렌에게 말을 겁니다.

하지만, 그런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는데
카렌은 주인공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예전에 밥 같이 먹기로 약속했는데 어디서 먹을 거냐고 물어보기까지 합니다.



사실 카렌 역시 옛날부터 주인공에게 마음이 있었던 겁니다.
그렇게 주인공과 카렌은 사귀게 되었다로 끝났으면 행복한 결말이었겠지만
아직 이 게임은 제대로 된 주제로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이제부터 주인공이 오매불망 기다리던 촬영 타임입니다.
뭐, 이 파트에 관해서 할 말은 많지 않은데
이제부터 여러 도착적인 행위를 촬영하는 일만 남았고 
대단한 스토리는 없기 때문이죠.

카렌도 그런 행위에 적당한 소질이 있지만
주인공이 지나치게 과격한 요구를 할 때가 있어
둘 사이에 갈등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대체로 사랑의 힘으로 금방 화해하고 다시 촬영한다는 전개입니다.



게임의 그래픽이나 분위기는 비교적 실화를 잘 살리는 느낌이었지만
정작 스토리는 크게 특별할 것이 없는 무난한 수준이었습니다.
현실은 창작물을 초월한다는 이야기도 있듯이
실화를 바탕으로도 스펙타클한 이야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겠지만
이 게임의 실화는 그렇게까지 대단한 이야기는 아니었죠.

주인공이 위기에서 구해줬던 에미코와 달리,
주인공과 카렌이 사랑에 빠질 복선은 그다지 많지 않았는데
현실의 사랑은 그런 걸지도 모릅니다.

실화라고 생각하니 더 흥분된다는 의견도 있었습니다만
저에겐 실화의 메리트가 딱히 느껴지지 않는 스토리였습니다.



다만, 카렌의 캐릭터가 귀여운 점은 마음에 들었습니다.
순수한 카렌을 점점 물들여가는 듯한 전개도 괜찮았죠.

카렌의 성우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그런 거 없이도 대번에 누군지 알아 차릴 수 있을 정도로 
좋아하는 성우가 연기하기도 했습니다.



총평하자면, 개인적으로는 애정이 조금 있는 게임이지만
누군가에게 추천할 정도의 특별함은 없는 게임입니다.
실화 기반이라는 게임 외적인 특색은 신기하지만
그 특색을 게임 내에서 찾기 힘들다는 건 아쉬운 부분이죠.

H씬 위주의 게임입니다만 그 양이 그렇게까지 많은 건 아니고,
단순히 H씬 목적이라면 최근의 게임들이 더 좋다고 생각합니다.
딱히 이걸 플레이할 이유는 찾을 수 없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