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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5일 일요일

리뷰 : 내일의 유키노죠(2001/8/31,elf)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내일의 유키노죠> 시리즈는 그 시절 엘프 사에서 발매한 에로게 중에서
가장 트렌드에 가까웠던 게임입니다.
기본적으로는 선택지형 비주얼 노벨 게임이죠.

이 게임만의 독특한 부분도 있지만 일단은 1편의 스토리부터 살펴 보겠습니다.



프롤로그는 게임의 메인 히로인 카스가 세리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보충수업 때문에 다른 사람들보다 늦게 하교하던 세리나는
학교 앞에 엄청난 꽃미남이 서 있는 걸 발견합니다.

이 정도 꽃미남이 학교에 소문나지 않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이 남성은 이 학교 학생이 아닌 외부인이 틀림없죠.
세리나가 말을 걸어 보지만 남성은 무뚝뚝하게 대답도 안 하고 사라집니다.



남성의 무시에 열받은 세리나는 소꿉친구가 같이 놀자고 하여 오락실에 갑니다.
근데, 소꿉친구는 온데간데 없었고
어쩔 수 없이 혼자 게임 도중에 양아치들과 얽히게 되었죠.



세리나의 태도에 화가 난 양아치들은
으슥한 골목에서 세리나를 습격합니다.
세 남성의 힘에 손도 못 쓰고 당할 위기에 놓인 세리나였으나
학교 앞에서 봤던 꽃미남이 갑자기 나타나 '폭력, 멈춰'를 외칩니다.
양아치 세 사람은 꽃미남과 3대1로 싸우게 되며
세리나 시점의 프롤로그는 이렇게 끝이 납니다.



본편에서 주인공은 새로 전학을 오게 된 학생으로서
바로 세리나와 마주쳤던 꽃미남 유키무라 유키노죠입니다.
세 양아치에게 반격 한 번 못 해보고 두드려 맞았기 때문에
잘 생긴 얼굴은 붕대에 가려져 있는 상태죠.
붕대는 며칠 후에 풀게 되는데 학교 전체가 들썩일 정도의 미소년입니다.

유키노죠는 쿨하고 과묵한 스타일입니다.
작중 세리나의 표현으로 '이대로 가면 엘프 사상 가장 음침한 주인공이 될 수도 있다'는
메타 발언도 나옵니다.
그만큼 깊은 사연을 품고 있는 주인공이기도 하죠.



주인공의 옆자리는 어제 도움을 받았던 세리나입니다.
주인공이 백마 탄 왕자님처럼 자신을 도와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일방적으로 맞기만 해서 적잖이 당황을 했지만
어쨌든 감사의 마음은 갖고 있습니다.



실제로 세리나와 주인공을 도와 준 건 세리나의 소꿉친구들인
텟페이와 타츠야입니다.
둘 다, 대놓고 세리나를 좋아하고 있는데
세리나는 둘의 마음을 영 몰라 줍니다.

사실 타츠야는 억울할 만도 한데 부자집 도련님에,
유키노죠 이전 학교 최고의 꽃미남 자리도 차지하고 있던 캐릭터이기 때문입니다.
본성은 그렇게 나쁜 캐릭터가 아니지만 
세리나와 가까워지는 주인공을 계속 견제하고 
루트에 따라 좀 심하게 찌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어느 정도 통 큰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는 텟페이와 비교되죠.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세리나는 발랄하고 감정 표현에 솔직한 오지랖형 캐릭터입니다.
'이 이야기의 히로인은 나야'같은 메타 발언도 가끔 하며,
게임의 재밌는 상황은 대부분 이 캐릭터에서 나옵니다.

뭐든지 소극적으로 회피하고 싶어 하는 주인공과도 잘 어울리는 조합이죠.
주인공에게 은혜도 느끼고 있고, 첫 만남에서 반하기도 했기 때문에
자꾸 주인공과 같이 뭘 하려고 합니다.
이 게임의 전개에 필수적인 윤활유 같은 캐릭터죠.



그렇게 새로운 학교 생활에 적응하면서 점점 마음을 열어 가는 주인공 앞에
주인공의 옛 소꿉친구인 쇼코가 등장합니다.
주인공을 따라 전학을 온 쇼코는
주인공에게 '당신을 용서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남깁니다.

쿠보 마사루, 쿠보 쇼코, 그리고 주인공인 유키무라 유키노죠
세 사람은 소꿉친구였습니다.
쇼코는 마사루의 여동생이기도 하죠.

마사루와 주인공 두 사람은 복싱 특기생이었습니다.
주인공은 잡지에 나올 정도로 유명한 복싱 선수로
'내일의 유키노죠'라는 제목부터 전설적인 복싱 만화 <내일의 죠>의 패러디죠.

그러던 중 불행한 사고가 겹쳐 마사루는 유키노죠와 시합 도중
의식 불명의 중태에 빠지게 됩니다.
주인공은 죄책감에 빠져 모든 걸 버리고 도망치듯이 전학을 왔던 겁니다.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을 때릴 수도 없게 되었죠.

쇼코의 등장과 함께 주인공은 다시 한 번 충격에 빠지게 되고
여러 캐릭터들과 그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간다는 게
이 게임의 기본적인 스토리입니다.



캐릭터를 살펴 보면, 세리나와 쇼코 이외의 캐릭터는
다소 애매하다고 느껴집니다.
애초에 엘프 사가 캐릭터에게 과도한 개성을 부여하는 회사가 아니기도 하지만
스토리가 큰 틀에서 다들 비슷비슷했기 때문에 개성이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그나마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을 만한 캐릭터는 타에코입니다.
주인공의 외모에 반해서 팬클럽을 만들기도 하는 적극적인 후배로
무려 15자매의 막내라고 합니다.

눈치가 없어서 말을 필터 없이 할 뿐더러
자기 마음대로 안 되면 울어 버려서 주인공을 곤란하게 하는
어마어마한 민폐 캐릭터죠. 나쁜 쪽으로 튀는 캐릭터입니다.
주인공이 곤란해 하는 것과 세리나가 열 받는 것따위는 신경도 안 쓰고
자신이 하는 일이 주인공을 위한 일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습니다.
옛날에도 별로라고 생각했는데, 오랜만에 해도 여전히 별로였네요.

이런 캐릭터는 대부분 공략 불가 조연 캐릭터에 그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주인공 팬보다는 쿨 계열 미소녀를 동경해서
주인공을 적대하는 캐릭터로 등장하죠.
타에코의 불행은 주인공을 동경하는 캐릭터에 공략 가능 캐릭터였다는 겁니다.



스토리 측면에서는 의미가 있는 캐릭터입니다.
다른 캐릭터들의 스토리는 패턴이 다들 비슷하지만
타에코의 스토리는 패턴이 유의미하게 다른 점이 보이죠.

쇼코랑 억지로 친한 척하면서 주인공과 엮이기도 하고,
쇼코에게 눈치없이 막말을 하기도 하는데
다른 스토리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입니다.



이 게임의 독특한 점은 바로 35개에 달하는 엔딩 개수입니다.
쇼코 엔딩은 무려 일곱 개가 있으며,
가장 적은 타에코 엔딩도 세 개는 되죠.
각각 캐릭터에게는 ㄴㅇ이 끼어 있는 배드 엔딩도 있는데
대다수의 엔딩들은 의미가 없이 숫자 불리기 식의 엔딩입니다.



담임 선생 캐릭터인 시오리의 경우를 예로 들어 봅시다.
시오리는 주인공의 상처를 이해하고 따스하게 위로해 주는 자애로운 선생님입니다.
그 과정에서 주인공을 자신의 차에 태워 주기도 하고,
주인공을 껴안아 주기도 하죠.

근데 시오리는 과거의 일로 학교 부이사장에게 찍혀 있는 상태였죠.
부이사장은 시오리가 학생과 부적절한 관계가 있는 게 아니냐는 모함을 하여
학교는 시오리에게 근신처분을 내리고 쫓아내려고까지 합니다.

이 때 플레이어는 용기를 내서 선생님을 구할 것인지,
아니면 선생님에게 오히려 민폐가 되니 사릴 것인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용기를 내는 선택지를 구하면,
주인공은 세리나를 비롯한 여러 학생들이 모아서 항의 서명을 받기도 하고,
지지자를 모으는 운동 등을 벌입니다.
하지만, 시오리는 주인공에게 오히려 피해가 갈 걸 우려해서
학교를 그만둘 것을 결정하게 되죠.
주인공은 학교를 그만두는 시오리를 설득하려 하는데,
시오리는 자신이 주인공에게 진짜로 마음이 없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에
선생을 그만두기로 했던 겁니다.
그런 식으로 여러 고민들이 교차하면서 둘이 맺어지게 된다는 스토리죠.



해피 엔딩 스토리 자체는 그럭저럭 잘 짜여져 있습니다.
이게 모두 주인공이 중요한 시점에 용기를 냈기 때문이겠죠.
그렇다면, 주인공이 용기를 내지 못했을 경우에는 어떤 엔딩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선택지로 돌아가 다른 선택지를 골라 봅시다.



주인공이 굳이 나서지 않아도
주인공을 제외한 다른 캐릭터들이 힘을 합쳐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습니다.
그걸 본 주인공은 자신도 시오리를 구하는데 힘을 모으겠다고 결의하게 되죠.
그 결의를 마지막 장면으로 엔딩입니다.
더 이상의 뒷내용 따위는 없어요. 그냥 끝입니다.

선택지형 멀티엔딩 게임에서 중요한 건
이 선택지를 고르면 과연 어떻게 될까를 보여줘야 하는 거죠.
항의 운동에 주인공이 빠졌다는 건 결과가 아니에요. 과정이죠.
항의 운동에 주인공이 빠짐으로써
주인공과 시오리의 관계, 그리고 주변 사람들의 상황 등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 줬어야 합니다.
근데 가장 중요한 게 빠져 있어요.

해피엔딩과 이 엔딩의 차이점이라고는
해피엔딩은 끝까지 보여줬고,
이 엔딩은 별 이유도 없이 중간에 스토리를 끊어 버렸다는 점밖에 없습니다.
차라리 비극으로 끝났다면 모를까 이건 그냥 애매한 엔딩일 뿐이죠.
진정한 의미의 배드 엔딩입니다. 안 좋다는 의미의 배드요.

이 게임은 이런 식의 엔딩으로 수십 개의 엔딩을 만들어 낸 겁니다.
아이디어가 넘쳐서 엔딩을 많이 만들자고 기획한 게임이 아니라
엔딩을 많이 만들자는 기획이 먼저 있고, 어떻게든 엔딩 숫자를 채우려고 한 것처럼 보여요.



무엇보다도 메인 캐릭터들의 스토리들조차도
중복되는 장면이 많고, 읽은 문장 스킵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지루한 면이 있습니다.

엔딩이 그냥 7개였어도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들었을 게임인데
무려 35개를 만들다니 대체 무슨 생각인 겁니까?


단순히 엔딩이 많다는 점이 비판받을 건 아닙니다.
90년대에는 수많은 엔딩을 가진 게임이 많이 나왔었죠.

근데, 그 시절에는 스토리를 끝맺는 방법의 스펙트럼이 넓었어요.
캐릭터가 자살한다거나, 어디론가 사라진다거나, 주인공 배를 찌른다거나 하는
막장 엔딩들도 많았죠.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그런 자극적인 엔딩들은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이 게임도 그런 자극적인 엔딩들을 넣지 않은 건 괜찮았다고 보지만,
그 부족분을 어떻게 채우겠다는 생각 없이 엔딩을 이렇게 많이 만들면 안 되잖아요.
그냥 귀찮은 게임이 되어 버렸습니다.



총평하자면, 메인 스토리만으로 보면 적당히 할 만한 게임입니다.
발매 시기를 고려해도 약간 고전적이라는 느낌이 들 때가 있지만
왕도 스토리가 대부분 그런 게 아니겠습니까?

엔딩이 많긴 하지만 골수 엘프 팬이 아닌 이상 굳이 다 보지 않아도 됩니다.
저는 불행하게도 골수 엘프 팬이었지만
세리나와 쇼코 스토리 정도나 일곱 캐릭터의 해피 엔딩정도면 보겠다면
재미있게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이라고 생각합니다.

댓글 2개:

  1. 엣날 실키즈의 게임을 하던 느낌을 많이 받은 게임입니다. 스토리는 평범한 학원물인데 여주인공 세리나의 폭주하는 대사가 조금은 볼만했습니다. 내일의 죠의 팬인 저는 제목을 제외하고는 그다지 패러디같은 내용은 없었다고 느껴집니다.

    대사 스킵의 경우 같은 대사라도 루트마다 다른 대사로 인식되기 때문에 스킵이 잘 안된다고 백개먼님이 느끼신 것 같습니다.

    게임은 전반에 유키노죠가 학원생활을 적응하고 축제에 참여하기까지 사람들을 만나고 이 때 했던 행동에 의해 후반 루트가 결정되며, 후반루트에서 선택에 따라 해피엔딩, 기타엔딩 등으로 분기하는 형식인데 후반 루트를 할 때 매우 힘들었습니다. 후반루트에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쇼코는 모든 루트에 등장해 비슷한 이야기가 계속 전개되며 각 루트마다 쇼코 루트로 가는 길이 붙어있어 쇼코에게 질리는 현상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전반은 꽤 재미있게 했지만 후반은 하면서 졸았던 기억도 납니다.

    이 게임으로 당시 엘프가 잘나가길 바라는 건 무리였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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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hityou2//
    사실 엄밀히 말하면 장면 자체는 다르긴 하지만
    결국은 주인공이 계속 같은 말만 늘어놓는 와중에
    듣는 사람만 바꾸는 방식이었죠.
    차라리 그런 장면은 통합해서 스킵을 쉽게 만드는 편이
    더 나았을 거라고 봅니다.

    히로인마다 끼어있는 쇼코 스토리는
    각각의 루트에서 각각 다른 느낌을 주는 방식으로 전개되었다면
    그나마 좋은 아이디어가 됐을 것 같습니다.
    결과적으로는 전혀 그렇게 되지 않았지만
    초기 구상은 그렇지 않았을까 생각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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