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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3일 일요일

리뷰 : 카와라자키가 일족(하원기가 일족)(1)(1993/12/22, 실키즈)

* 이 리뷰는 치명적인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추천하는 게임입니다.
이 게임의 리뷰는 둘로 나뉘어져 있으며 첫번째 편입니다.



그동안 미뤄뒀던 게임 중 하나인 <카와라자키가 일족>의 리뷰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노노무라병원사람들>, <애자매>와 함께 실키즈의 대표적인 3강 중 하나이며,
하원기가일족이라는 이름으로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는 고전 도스게임입니다.

제 리뷰에서도 자주 언급된 게임인데,
'저택물'과 '멀티엔딩'의 원조격이라고 불리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제 리뷰에서는 늘 '최초'와 '원조'를 구별해서 사용합니다.
하트전자산업이 먼저였지만 <프린세스 메이커>가 육성 시뮬레이션의 원조인 것처럼요.
단순히 가장 먼저가 아닌 당대 혹은 후대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작품이
'원조'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 거죠.
'원조' 칭호는 제가 임의로 붙이는 게 아닙니다.
일본에서 그렇게 불리고 있다고 소개하는 것뿐이죠.

저택물과 멀티엔딩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택물은 <흑묘관>이나 <금단의 혈족>이 먼저였으며,
멀티엔딩도 카와라자키가 일족 이전에도 엄청 많았습니다.
F&C 게임들을 리뷰하면서 많이 언급한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와라자키가 일족은 그 이전의 선배들을 전부 깔아뭉개고
두 요소의 원조로 기억되고 있는 겁니다.


스토리는 이렇습니다.
주인공 로쿠로는 높은 보수에 혹해서 카와라자키가라는 부자 가문의 대저택에
더부살이 아르바이트를 하게 됩니다.



카와라자키가의 마님인 쿄코입니다.
주인공이 저택에 오자마자 카와라자키가는 유서깊은 집안이기 때문에
행동을 조심하라고 잔소리를 합니다.
주인공이 이런 여자가 있는 곳에서는 도저히 일을 못하겠다고
저택을 뛰쳐 나오는 엔딩도 있습니다.

25년이 넘게 세월이 지난 게임이라서 그런지 주인공의 생각에 공감하기 힘들었습니다.
쿄코 첫인상 정도면 별 문제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뿐이었죠.
요즘 건방진 부잣집 아가씨 캐릭터에 비하면 정말 양반입니다.



위에서부터 장녀 사치코, 차녀 레이, 장남 슌스케입니다.
첫인상만으로도 친하게 지내고 싶은 캐릭터와
멀리 하고 싶은 캐릭터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메이드인 미사코입니다.
저택물로서는 특이하게도 메인 히로인이 아가씨가 아니라 메이드입니다.



또다른 메이드인 아리스입니다.



운전기사인 난바라입니다.
얼굴, 말투 등이 <유작>의 이사쿠와 흡사합니다.
윈도우판에서 성우 연기까지 들어보면 그냥 수건 대신 넥타이멘 이사쿠 그 자체입니다.

이 정도에 타이조라는 카와라자키가의 당주정도가 있지만
이 분은 굳이 주인공따위에게 인사하러 나오지 않습니다.


첫날부터 마당 쓸거나, 창문닦느라 기진맥진한 주인공은 잠자리에 들게 되는데
밤에 갑자기 여성의 비명이 들려옵니다.
비명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면 마님인 쿄코와 당주로 추정되는 인물이
SM플레이를 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낮의 쿄코는 가문이 유서깊고 예법을 중시하니 행동을 조심하라고 하더니
어처구니가 없습니다.

심지어, 비명소리가 나는 쪽으로 안 가고 그냥 침대에 있으면
주인공 방문 앞까지 와서 저 짓을 합니다.
아무리 층간 소음 걱정없는 대저택이라지만 기본적인 매너도 없습니다.

이런 식으로 주인공이 카와라자키가 저택에서 일하며,
저택사람들의 음란행위에 휘말리게 됩니다.



이 저택에는 미스테리한 요소도 많이 있는데
전혀 모르는 가족이 찍혀 있는 사진이나 변태적인 사진들이 돌아다니고,
마당에는 땅을 파고 다시 묻은 흔적들이 군데군데 보입니다.



장녀 사치코를 자동차로 마중나가면 사치코의 학교 친구 미나를 만날 수 있습니다.
미나는 대체 무슨 협박을 당하고 있는 건지
사치코의 변태적인 요구를 전혀 거절하지 않습니다.



차녀 레이의 가정교사인 카오리입니다.
솔직히 여기 아가씨들보다 더 부잣집 아가씨처럼 교양을 갖추고 있습니다.

이 캐릭터가 주인공 방에 찾아오는 시점부터 게임이 급전개되는데
주인공이 약에 취해서 미쳐있거나, 카오리가 약에 취해서 미쳐있거나
둘 중 하나의 상황이 전개됩니다.

정신을 차린 주인공 앞에 난바라와 쿄코가 나타납니다.
이 정신없는 집안꼴의 진실은 여러 엔딩에 나뉘어져 소개되는데
굳이 제 블로그에서는 설명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카와라자키가 일족은 2000년대에 플레이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호불호가 좀 갈리는 편입니다.
가장 큰 문제점은 90년대의 도스 게임이다보니 분량이 한정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H씬은 적고, 스토리는 너무 짧게 느껴집니다.



악역은 쿄코, 사치코, 난바라, 슌스케, 그리고 수수께끼의 노인입니다.
악역 숫자가 너무 많기는 하지만, 이건 수긍할 수 있습니다.
구성원 전체가 미쳐있는 일족이니까요.

문제는 악역 포스가 분산되어 악역으로서의 매력이 전체적으로 반감된다는 점입니다.
슌스케는 가위들고 설치고 다니는 것에 비해 공포가 별로 없고,
난바라는 일족이 아니라 운전기사 포지션이다보니 한계가 느껴집니다.
수수께끼의 노인은 포지션상 최종보스가 되어야 했지만
분량이 너무 적었습니다.

쿄코정도가 메인 악역이 되어 줬어야 하는데,
정작 제일 활약없는 악역입니다.



같이 탈출하는 히로인 그룹도 다소 아쉽습니다.
미사코, 카오리, 레이 세 명중 하나와 탈출하는 엔딩이 있습니다.
근데, 사실 셋 다 카와라자키 저택에 오고 나서 만난 사실상 생판 남입니다.
대체 왜 같이 탈출해야 하죠? 좀 더 주인공과의 인연을 강화하는 이벤트가 필요했습니다.

레이의 경우는 공부라든가, 모델이라든가로 그나마 이벤트가 있습니다.
주인공을 도와주려고 한 노력도 보여줬고요.

근데 카오리의 경우는 정말로 인사만 하고 다닌 사이입니다.
어떤 선택지를 고르든 거의 접점이 없는 사이죠.

미사코의 경우도 메인 히로인인데 접점이 너무 부족했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답답한 부분은 미사코가 자꾸 대화를 걸어오는데
주인공이 일이 힘들다고 미사코와의 대화를 자꾸 건성으로 합니다.
나중에 가서야 주인공이 '미사코를 좋아하는 걸지도'라고 생각하는데
다소 뜬금없다고 생각되기도 합니다.
좀 더 미사코와의 일상 이벤트가 많았으면 납득하기 쉬웠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권선징악을 보여주는 엔딩도 없었습니다.
슌스케는 자주 사망했지만, 나머지 악당들의 경우는 행방불명될 뿐인
애매한 엔딩을 보여준 거죠.
해피엔딩을 맞았더라도 언제 일족이 올지도 모른다는
공포스러운 연출에는 성공을 했지만, 조금이라도 쿄코나 사치코가 한 방 먹는 씬을
만들었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제기한 문제들을 종합하면, 역시 가장 큰 문제는 분량이었습니다.
PC98 시절의 게임들은 분량에 한계가 있었고
많은 것들을 담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였습니다.
카와라자키가 일족이 시대를 고려하면 충실한 분량, 많은 엔딩을 보여준 게임이지만
지금 시점에서 플레이하면 아쉬운 점이 많이 보이는 거죠.

윈도우판으로 리메이크 될 때, 이런 점들을 반영하여
분량을 늘렸다면 좀 더 훌륭한 게임이 됐을 것입니다.

카와라자키가 일족에 대해 기대 이하였다는 평가를 많이 봤는데
상기한 이유들 때문에, 충분히 수긍할 만한 평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저는 이 게임을 높이 평가합니다.
사람들이 이 게임의 진가를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게임을 제가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다음 리뷰에서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3개:

  1. 아니 드디어.... 백개먼님의 하원기가일족 리뷰를 보게되다니 감개무량합니다..ㅠㅠㅠ 노노무라 리뷰 처음 읽고 하원기가 기다리면서 매주 들르다 고대로 백개먼님 팬 됐던 세월들이 갑자기 주마등처럼 지나가네요

    사실 말씀하신대로 그닥 별 내용이 없는 게임이긴 한데... 정말 스토리랑 캐릭터 정리하신 걸 보니까 너무 별게 없어서 새삼 놀랍네요ㅋㅋㅋ
    그럼에도 불구하고 갠적으로 지금까지 플레이한 에로게들 중에서(별로 많지는 않지만) 하원기가가 최고인 이유는 뭔가... 격이 다르다는 생각이 드네요 하원기가는ㅋㅋㅋ
    차분한데 귀기어리고 리얼리즘이 살아있는 문장이나 도트그래픽에서 느껴지는 범상치않은 포스(?)같은... 뭐 여러 요소가 다 합쳐져서 뭔가 품격이 느껴지는 이상한 게임같아요

    백개먼님은 왜 명작으로 평가하시는지 다음편이 정말 기다려지네요. 좋은 게임을 멋진 시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그렇게 흔하지가 않으니까요

    요즘 바쁘시다고 들은 것 같은데 시간 내주셔서 써주시는 글들 너무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날이 많이 추워졌는데 건강 조심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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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dkle p//
    에로 위주의 게임은 블로그에 올릴 수 있는 내용에 한계가 있어서 언제나 아쉽습니다
    하원기가일족도 에로적인 부분을 배제하고 얘기하려니 충격적인 부분이 많이 사라질 수밖에 없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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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덕분에 추억의PC98게임들을 많이보고갑니다 추억의 회사들도ㅎㅎ 이런좋은블로그를 이제서야 봤다니 ㅎㅎ 자주올게요 글도 재밌게 잘쓰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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